4월23일 오늘의 역사
2023년 방탄소년단 슈가, 솔로곡 ‘해금’으로 첫날 최다 판매량 신기록
그룹 방탄소년단 슈가의 솔로 앨범 ‘D-DAY’가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방탄소년단(BTS) 슈가가 어거스트 디(Agust D) 명의로 21일 발표한 첫 공식 솔로 음반 ‘D-데이’(D-DAY)가 발매 당일 한터차트 기준 107만 2000장 넘게 판매되며 ‘밀리언셀러’가 됐다. 케이팝 솔로 가수로는 첫날 최다 판매량 신기록이다.
‘D-DAY’의 타이틀곡 ‘해금’은 22일 오전 9시까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전 세계 86개 국가/지역의 아이튠즈 ‘톱 송’ 차트 1위를 찍었다. ‘해금’의 뮤직비디오는 22일 9시 기준 1천만 뷰를 넘기며 여러 국가/지역에서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 차트 상위권에 자리했다.
2022년 광주지역 초등학생 4명이 세걔최대 로봇대회에서 입상
광주지역 초등학생 광주계림초 3학년 김태운 군, 송원초 4학년 조현규 군, 봉산초 3학년 나예준 군, 싱가포르 국제학교 SIS 3학년 김유수 양 등 4명이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로봇대회인 ‘2022 FIRST Championship’에 참가하여 '스마트 백신 운송로봇 시스템' 작품으로 입상했다.
미국 FIRST 장학재단이 주관으로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열린 대회는 전 세계 108개 국가에서 약 70만 명의 청소년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 로봇대회다.
김군 등은 초등부 대회에서 ‘스마트 백신 운송 로봇 시스템’ 작품을 제출해 ‘Team Poster Award’를 수상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각 가정에 백신을 공급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한 시스템이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19년 이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번 대회에서 각 팀에 주어진 ‘화물 운송에 대한 문제점 파악과 솔루션 개발’이라는 과제에 코로나19를 겪었던 경험을 상상력으로 녹여내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2022년 손흥민 파워랭킹 1위 등극
스카이스포츠는 2021-2022 파워랭킹을 발표했다. 손흥민은 9118점으로 1위에 올랐다. 지난주 보다 2계단 뛰어 오른 1위다.
파워랭킹은 선수의 골, 도움, 유효슈팅, 태클, 승패 등 35가지 통계치로 순위가 매겨진다.
지난 아스톤빌라전에서 해트트릭을 작성하는 등 3경기서 6골-1도움을 기록한 손흥민은 올 시즌 17골로 프리미어리그 득점 2위에 올라있다.
파워랭킹 2위는 맨체스터 시티의 케빈 데 브라위너였다. 3위는 뉴캐슬의 브루누 기마랑이스, 4위는 리즈 유나이티드의 잭 해리슨이었다.
반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5위에 머물렀다
2018년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피해자 최덕례 할머니 세상 떠남
2016년 북한 신포 앞바다 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1‘ 발사 30km 비행
2015년 한·일 원로시인 신경림·다니카와 ‘시낭송 콘서트’
2015년 한국 막장 드라마계 대모 임성한 작가 은퇴 선언
2010년 멕시코의 로레나 오초아 LPGA 은퇴 발표
2010년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폭발로 항공대란
2010년 러시아 리듬체조 스타, 나탈리아 라브로바 사망
2010년 4월 23일 러시아의 ‘리듬체조 요정’ 나탈리아 라브로바(Lavrova·27)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라브로바는 이날 모스크바 남동쪽에 위치한 펜자 지역에서 차량 충돌로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당시 차량을 운전했던 라브로바의 여동생도 함께 숨졌다.
라브로바는 우리나라의 김연아 선수에 비견할만큼 높은 인기를 누렸던 ‘리듬체조 스타’로 사고 소식에 러시아는 충격에 빠졌다.
5세 때부터 리듬체조를 시작한 라브로바는 1998년 러시아 국가대표팀에 발탁됐으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두 번이나 획득한 리듬체조 선수는 러시아에서 라브로바가 유일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마치고 정상의 자리에서 은퇴한 라브로바는 이후 러시아 리듬체조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동해 왔다.
2009년 관광버스, 승용차 10여대와 추돌사고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진 관광버스가 승용차 10여대와 잇따라 추돌해 7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2009년 4월 23일 오후 10시쯤 서울 강북구 수유동 4·19탑 삼거리 부근에서 운전기사 이모(59)씨가 몰던 관광버스가 이묘숙(여·45)씨의 아반떼 승용차 등 주행 중이거나 길가에 주차된 승용차 10여 대를 잇따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아반떼에 타고 있던 이씨 등 모두 7명이 숨졌으며, 5명이 중경상을 입고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숨진 7명은 아반떼 승용차에 타고 있던 중년여성들로 서울 강북구 주변 초등학교 교직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인근 음식점에서 계모임을 마치고 찻집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를 낸 A관광 소속 45인승 버스 운전사인 이모(61)씨는 23일 밤 10시께 서울 강북구 수유리의 북한산 중턱에 있는 아카데미하우스에 외국인 관광객들을 내려놓고 차를 돌렸다.
꼬불꼬불한 내리막길을 200∼300m가량 달리던 이씨는 ’끽끽’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브레이크에 이상이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별다른 점검없이 그대로 운행했다.
브레이크는 얼마 가지 못해 아예 작동하지 않는 상태가 됐고, 제어장치가 고장 난 내리막길의 버스는 대형참사를 불렀다.
2004년 강인선 조선일보 기자, 제21회 최은희 여기자상에 선정
강인선(姜仁仙)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이 올해 제21회 최은희 여기자상 수상자로 23일 선정됐다.
최은희 여기자상 심사위원회(위원장 김후란·문학의 집 서울 이사장)는 “이라크 전쟁 종군취재기로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강 특파원은 여기자의 취재영역을 확장시킨 동시에 새로운 신문기사 스타일을 개발해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강 특파원은 1990년 월간조선 기자로 출발, 2001년부터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으로 활약해왔다. 97년에는 캄보디아 내전을 종군취재하기도 했다.
최은희 여기자상은 일제 강점기에 기자로 활동하며 큰 발자취를 남긴 추계 최은희 여사가 기탁한 기금을 바탕으로 제정됐다.
2004년 일본 횡혈묘 공주서 무더기 발굴, 백제-일본 교류 입증
지금까지 일본 특유의 묘제로 생각되던 횡혈묘(橫穴墓·언덕에 구멍을 뚫고 현실을 만든 무덤)가 2004년 4월 23일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충남 공주군 우성면 단지리 일대에서 횡혈묘15기가 모여있는 것이 발견됐다고 충청문화재연구원이 이날 밝힌 것이다.
박순발 조사단장은 “단지리 횡혈묘의 연대는 동성왕(재위 479~501년)~무령왕(501~523년) 때로 추정할 수 있어 일본 횡혈묘의 연대와 거의 일치하거나 오히려 이르다”고 밝혔다. 그동안 문헌에 드러나지 않던 백제와 일본 사이의 교류를 입증하는 유적으로, 앞으로 고대 한·일 관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단지리 횡혈묘는 대부분 온전한 상태로 보존돼있었으며, 인골과 뚜껑 있는 접시(蓋杯), 작은 항아리(小壺) 등 부장 유물도 출토됐다. 공주 단지리 횡혈묘는 현실(玄室·무덤방)에 연결되는 연도(羨道·무덤 입구에서 현실까지의 통로)가 매우 짧거나 거의 없으며 판석·목판이나 자갈로 무덤을 폐쇄한 점에서 일본 횡혈묘와 아주 비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후쿠오카·오이타 등 북부 규슈 일대에 집중 분포된 일본 횡혈묘의 조성 시기는 5세기 후반~6세기 전반으로, 이날 횡혈묘의 발굴이 ‘횡혈묘 백제 기원설’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02년 야구선수 송진우, 국내 최다승인 147승 달성
한화의 송진우가 2002년 4월 23일 청주구장에서 열린 삼성증권배 프로야구 SK전에서 9안타 3실점 무4사구 완투승을 거두며 통산 147승을 기록했다.
이날 경기 9회초 SK의 마지막 공격. 13―3으로 이미 한화의 승리가 굳어졌음에도 축제분위기에 휩싸인 관중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2사2루서 SK 양용모의 타구가 2루쪽으로 힘없이 굴러가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환호성을 터뜨렸다. 국내 최다승인 147승이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지난 4월 11일 선동열이 갖고 있던 투수 최다승(146승) 기록과 타이를 이룬뒤 12일 만에 달성한 대기록이다. 데뷔 해인 1989년 4월 12일 대전 롯데전서 첫 경기를 6대0 완봉승으로 장식하며 프로야구에 등단한지 만 14년 1개월 만이고, 3만3860개의 공을 던져 이룬 위업이다. 신인 데뷔전 완봉승, 좌완 투수 첫 1000탈삼진, 노히트노런, 개인통산 최다이닝 및 최다타자상대기록…. 그가 지금까지 이뤄놓은 기록은 모두 이 147승을 위한 힘든 여정의 한 부분이었다.
1999년 현대그룹과 LG그룹간의 반도체 빅딜 타결(현대전자가 2조5600억원에 LG반도체 인수)
1999년 한국선물거래소 개장(부산)
1998년 콘스탄틴 카라만리스 전 그리스 대통령 별세
콘스탄틴 카라만리스 전 그리스 대통령(91)이 1998년 4월 23일 새벽 아테네에서 숨을 거두었다. 카라만리스 전 대통령은 지난 1974년 군사정부가 붕괴한 이후 총리로서 그리스가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으며 대통령직에 있던 지난 1981년에는 유럽공동체(EC) 가입을 성사시킨 그리스 정계의 거목이었다.
카라만리스는 프로티에서 가난한 교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1935년에 정계에 입문하여 국회의원, 1946년 노동장관, 1947년 운수장관, 1948~1950년 사회복지장관, 1950~1952년 국방장관, 1952~1954년 공공사업장관, 1954~1955년 정보장관을 거쳐 1955~1963년 총리를 역임하였다. 1956년 급진국가연합당(ERE)을 조직하고 당수로 활동했다. 1980년 5월 총리직을 사임하고, 대통령선거에서 자신이 당수로 있는 신민주주의당의 추천을 받고 입후보하여 당선됨으로써 1980~1985년, 1990~1995년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직을 역임했다.
1997년 `남도들 노래` 예능보유자 조공례씨 별세
중요무형문화재 51호 남도들노래 보유자인 조공례(67)씨가 23일 오후 6시 전남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조씨는 어릴 때부터 어깨너머로 남도들노래를 배워 이를 전승해 왔으며 1973년 보유자로 인정됐다.
1942년 간이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름난 소리꾼이던 아버지 조정옥에게서 노래를 배웠다. 빼어난 노래 실력으로 어려서부터 강강술래 등의 놀이판에서 선소리꾼으로 활약했다.
진도의 토속적인 노래를 매우 잘한 명창으로 꼽힌다. 그의 소리는 질박하지만 자연스러우며, 두툼하고 묵직했으며 고음에서는 굵고 힘차게 질러내는 특유의 득음을 이루었던 것으로 평가 받는다.
타계 이후에는 막내딸인 박동매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면서 조정옥 – 조공례 – 박동매로 이어지는 소리판 가계(家系)가 형성되었다.
1996년 동두천 미군 탱크사격장 야산서 화재 발생 - 공익근무요원 6명 사망
1996년 강원도 고성군 산불 - 20여억원 피해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마좌리 죽변계곡 군부대 사격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산불은 1996년 4월23일 오후 8시30분쯤 발생해 강풍을 타고 인근 산으로 확산, 죽왕면 전체 면적의 절반이 넘는 2천5백여ha의 임야를 태웠다. 이날 발생한 강원도 고성군 산불은 발화 54시간 만인 25일 오후7시쯤 불길이 잡혔다.
이 산불로 사흘동안 5개 마을에서 모두 가옥 75채가 불에 탔으며 1백72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피해면적이 3천ha, 재산피해액은 20여억원을 넘었다.
강원도는 이번 산불이 1986년 4월8일 고성군 수동면에서 군사훈련 중 발생한 산불의 피해를 훨씬 넘어 최근 20년 내 최악의 산불이라고 밝혔다. 내무부는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은 3개 읍-면 이재민 57가구 1백72명의 재해복구 경비로 강원도에 특별교부금 10억원을 지원했다.
1995년 옴진리교 2인자 무라이 히데오 살해
1995년 4월 23일 밤 8시30분쯤 동경 미나미아오야마에 있는 옴진리교 동경 총본부 앞에서 교단의 2인자 무라이 히데오씨(촌정수부. 36)가 20대 재일교포에게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무라이씨는 이날 승용차로 동경 총본부에 도착, 잠시 건물 안에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 보도진과 섞여 있던 군중 속에서 식칼을 들고 뛰어든 한 남자에게 배 등을 찔린 뒤 인근 동경 도립 히로오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다음날 새벽 2시33분쯤 숨을 거뒀다.
무라이씨를 습격한 남자는 경비 중이던 경찰관들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돼 아카사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결과 한국 국적의 서유행(29)씨로 신원이 밝혀졌다. 서씨는 경찰조사에서 자신이 1년 전 미에현의 한 우익단체에 입회했으며, 사회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옴진리교 측에 따끔한 경고를 주기 위해 이날 오후 1시반부터 동경 총본부 앞에서 간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1986년 남아프리카공화국,흑인의 국내이동을 규제하는 `패스법` 관련법을 폐지 또는 개정한다고 발표
1983년 춘천서 300년 전 미이라 출토
1983년 낙동강 하구언 공사 기공
1981년 북아일랜드 신구교간의 종교분쟁 재현, 난동화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와 단교
1977년 한일대륙붕협정 체결에 중국 항의
1976년 태국, 반공법 고수 발표
1975년 미국-인도네시아 지전 종식 선언
1975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한국에서 발효
1975년 3월 19일 세계에서 86번째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비준한 한국에서 같은 해 4월 23일부터 조약이 발효됐다. 1968년 7월 1일 세계 62개국이 조인한 핵확산금지조약은 1969년 11월 24일 미소양국에서 비준돼 1970년 3월 5일 정식 발효됐다. 정식명칭은 `핵무기의 불확산에 관한 조약`이다.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핵보유국은 핵무기와 이와 관련된 것을 비핵국의 핵제조에 어떠한 원조도 할 수 없으며, 비핵국은 핵무기와 관련된 어떠한 것도 스스로 제조할 수 없고, 비핵국은 원자력 이용을 평화적 목적에 한정하고 원자력의 군사적 목적으로서의 전용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 원자력기구의 보장조치를 수락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 조약의 이행상황은 5년마다 검토하게 되어있는데 지난 1980년 이뤄진 제2회 검토회의에서는 개발도상국이 미소양국에 대해 핵군축의 진전이 없다는 불만을 토로했고 1990년의 제4회 검토회의에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미소양국을 겨냥해 핵무기를 폐기하고 거기서 회수되는 핵분열 물질을 발전용으로 전용하라고 촉구했다.
1971년 전북 지하당 간첩당 13명 검거
1968년 틀라텔롤코 조약(군사적 목적의 핵무기 실험과 보유를 금지시켜 남미 핵자유지대 설치) 발효
1966년 주중국 스웨덴 대사 페트리, 판문점 통해 입북
1962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 태평양 핵실험 재개 지시
1961년 드골 프랑스 대통령, 알제리 주둔 프랑스 반군의 본토침공에 대비한 비상대권 선언
1961년 공민권제한 국회심사위원회 심사 종결. 민-참의원 8명씩 자격 박탈
1960년 장면 부통령 사임
1952년 미국 네바다 사막서 최대규모의 원폭 실험
1945년 중국 7전인대회 개최
1919년 한성임시정부 수립
1919년 당시 3.1운동 여파로 국내외에서 임시정부 수립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한성 임시정부는 마지막으로 수립된 임시정부로 4월2일 인천 만국공원(지금의 자유공원)에 모여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할 것을 결의하고 4월23일 전국 13도를 대표하는 25명이 서울 봉춘관에 모여 국민대회 간판을 걸고 임시정부 포고문과 국민대회 취지서 결의사항을 발표하고 이승만을 집정관 총재로 하는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학생과 시민대표들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고 임시정부 수립을 알리는 전단을 뿌리며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함.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 2차 기공식
1895년 동학혁명 지도자 전봉준 교수형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전봉준이 1895년 4월 23일 서울에서 처형됐다. 41세였다. 전봉준은 그 전 해 공주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대격전에서 패한 후 순창으로 피신, 동지들과 재기를 모색하던 중 부하의 밀고로 체포돼 서울로 압송됐다.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1월 동학의 고부 접주인 녹두장군 전봉준이 고부군민을 이끌고 전라도 고부군수 관아를 습격한 때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흰 수건을 머리에 동여매고 몽둥이, 죽창을 들고 폐정개혁 조목을 내걸며 노도와 같이 관아로 밀어닥쳐 무기를 탈취하고 불법징수한 세곡을 모두 빈민에게 나누어주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와 탐학에 대한 응징이었다.
이날부터 그 해 10월 금구싸움으로 마무리되는 동학농민운동 혹은 갑오농민전쟁은 근대를 향한 조선 민중의 몸부림가운데 가장 찬란하고 처절한 장면이었다. 이들은 19세기 말 조선의 정치 지형도 안에서 최고의 진보성을 대표했고 그 진보성을 감당하지 못한 지배 세력은 나라를 외세에 내주는 길을 택했다. 결국 이 농민전쟁의 비극적 마무리로 조선은 그 뒤 식민화와 뒤틀린 근대화를 겪게 되었다. 이 운동의 한 가운데 있던 사람이 전봉준이었다
1895년 독일 물리화학파의 창시자 루트비히 사망
1865년 비변사, 의정부에 통합
1858년 광혜원 설립 기초를 마련한 한말의 주한외교관, 선교사 앨런 출생
1850년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암 워즈워스 사망
영국왕실이 영국의 가장 명예로운 시인에게 내리는 칭호인 `계관시인`을 지낸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암 위즈워스가 1850년 4월 23일 사망했다.
잉글랜드 북부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했고, 프랑스 혁명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나, 프랑스 혁명으로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국교가 악화되자 그는 공화주의적인 정열과 조국애와의 갈등으로 깊은 고뇌에 빠졌다.
그 때 쓴 비극 `변경 사람들`에서 혁명과 합리적 급진주의에 대한 반성이 엿보인다. 테일러 콜리지와 공저한 `서정 민요집`(1798)이 영국 낭만주의 운동의 시발점이 되면서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졌다. 그의 작품에는 자연을 사랑하는 감수성이 잘 나타나 있으며, 낭만주의와 자연주의가 잘 조화되어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791년 미국의 제15대 대통령(1857-1861 재임) 뷰캐넌 출생
1720년 빌뉴스의 가온(유대교의 정신적 지도자에게 주어졌던 칭호) 엘리야 벤 솔로몬 출생
1616년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사망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뛰어난 시인으로 또 극작가로 인정받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616년 4월 23일 52세의 나이로 고향에서 사망했다. 극작가로서의 셰익스피어 활동기는 1590~1613년까지의 대략 24년 간으로 볼 수 있다. 이 기간에 그는 모두 37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작품을 시기별로 구분해 보면, 습작적 경향을 보이던 초기와 영국사기를 중심으로 한 역사극에 집중하던 시기, 그것과 중복되지만 낭만희극을 쓰던 시기, 그리고 그의 대표작 일부가 발표된 비극의 시기, 화해의 경지를 보여주는 만년의 이른바 로맨스극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시기적 구획이 다른 어느 작가보다도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이 셰익스피어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1599년 템스강 남쪽에 글로브극장을 신축하는 등 평생을 연극인으로서 충실하게 보냈으며, 자신이 속해 있던 극단을 위해서도 전력을 다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 등의 4대 비극과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등이 있다. 현재까지도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은 고전의 살아 있는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1616년 ‘돈 키호테’ 저자 세르반테스 사망
러시아의 대문호 투르게네프가 말했다. “‘돈 키호테’와 ‘햄릿’만큼 인간을 저돌형과 우유부단형으로 적절하게 묘사한 문학작품은 이제껏 없었다. ” 두 작품의 작가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는 공교롭게도 1616년 4월 23일 같은 날 죽었다.
‘돈 키호테’가 발간된 1605년, 스페인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5세 때의 번영과 레판토해전 승리로 한껏 고양됐던 영웅적 분위기가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무적함대도 영국에 격파되고 영토까지 점령·약탈당하면서 국가의 기운도 수명을 다한 듯 느껴졌다. 번영의 시대(1547년)에 태어난 작가 개인사에도 영광과 좌절이 교차했다.
24세에 레판토해전에 참전, 스페인의 승리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지만 전투 중에 맞은 총탄으로 왼손이 불구가 되고 설상가상 귀국 중에 알제리 해적들에게 나포돼 5년 동안 갤리선의 노를 젓는 노예생활까지 맛봐야 했다. 그는 풀려난 뒤에도 시인으로, 구매담당자로, 세금징수자로 생계를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았으나 어는 것 하나 성공하지 못했다. 세르반테스 개인에게도 영웅주의 시대는 끝나고 환멸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스페인의 운명과 개인의 경험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한 ‘돈 키호테’에 그대로 투영돼 주인공은 현실과 가상세계를 넘나들었다. 2002년 5월 노벨연구소가 세계 유명작가 100명에게 의뢰해 세계 문학사상 가장 훌륭한 문학작품을 선정한 결과 ‘돈 키호테’가 압도적으로 1위에 올랐다.
1447년 안견, 몽유도원도 완성
조선 전기 최고의 그림으로 평가받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일본 텐리대(天理大)가 소유하고 있다.
1447년(세종29년) 4월20일,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이 박팽년과 함께 도원(桃源)을 거닐었다는 간밤의 꿈을 안견(安堅)에게 전한다. 안견은 당대 최고의 화가였고, 안평대군은 그의 자질을 진정으로 이해해 준 후원자였다.
사흘 뒤 안견은 가로 106.6cm, 세로 38.7cm 크기의 비단위에 먹과 채색으로 꿈을 담아 안평대군에게 바쳤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였다. 조용하고 온화한 평지와 구름허리를 뚫고 솟은 웅장한 기암절벽이 꼼꼼한 필치로 묻어나왔다. 당대의 명필 안평대군이 제서(題書)ㆍ발문(跋文)ㆍ시1편을 그림에 싣자 성삼문ㆍ정인지 등 21명의 대학자들도 앞다퉈 친필로 23편의 찬양시를 그림에 올렸다.
하지만 안평대군을 포함해 이들 중 상당수는 수양대군(세조)이 권력을 잡고나서 줄줄이 처단되는 바람에 그림에 오른 이름들은 결과적으로 ‘살생부’가 되고 말았다. 정작 안견은 목숨은 부지했지만 그가 언제 누구의 자손으로 태어나 또 언제 세상을 떠 어디에 묻혔는지는 일체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1893년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 일본 텐리대(天理大)에 소장돼 있는 몽유도원도가 한국으로 돌아올 기회가 한번 있었다. 전 중앙박물관장 최순우의 기록에 의하면 1952년에 80만엔으로 구입할 수 있었지만 당시 정부의 예산부족으로 기회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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