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과 더위에 지쳐 책읽기를 멀리하던 요즘, 간만에 여유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서야 책을 읽게 되다니 나도 참..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_-;
그렇게 간신히 마음잡고 손에 든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1Q84> 나오기 전부터 예약하고 어쩌고 해서 산 책인데 결국은 이제야 간신히~
무라카미 하루키(1949년 1월 12일~ )
첫 장부터 읽는데 이 책 심상치가 않다
평범한 상황 묘사 이렇다 할 만한 은유나 묘사 서사도 없는 단순한 도입이지만 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눈앞에 그려지는 풍경과 귓가에 맴도는 멜로디 그렇다 음악이다 익히 알아온 이름이지만, 평소 한 번도 떠올린 적 없었던 그 이름, 야나체크!
하루키 소설을 읽으면서 음악을 연상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품마다 많게는 50곡 이상의 음악이 등장하니까
교사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듣게 됐다는 클래식부터 중학생 시절 용돈을 모아 샀다는 팝송 앨범, 그리고 재즈까지(심지어 그는 ‘피터캣’이라는 재즈카페까지 차리지 않았던가!) 그의 음악에 대한 무궁한 애정과 지식은 고스란히 작품 속에 녹아 있다 팝은 195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부터 지금의 콜드플레이까지 섭렵한다니 정말 대단한 하루키 씨다(우리나라 나이로 환갑인데, 환갑의 나이에 콜드플레이를 듣는 우리 주변의 아저씨를 떠올려보라!)
장면을 더욱 살려주는 영화의 OST처럼 하루키 소설 속 음악들은 주인공과 소설 속 장면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하루키 작품 속 음악들은 하나하나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방대하고 하나같이 유명한 것들이지만, 그중에 몇 곡은 내 머릿속에 콕 하고 박혀 있다 심지어 어떤 음악은 가물가물한 책의 내용보다 더 선명하다
소설의 OST! 하루키 소설 속 음악들을 들어보자(수록된 곡의 앨범은 대표 앨범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앨범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임을 알려드립니다)
1.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風の歌を聴け, 1979년
청춘의 단편들을 가볍고 경쾌한 터치로 그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장편 소설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그가 재즈카페를 경영하던 당시에 쓴 작품이라고 한다 대학생인 ‘나’와 ‘쥐(드디어 등장인가!)’라는 별명의 친구 그리고 J’s 바 그리고 낯선 여자
맥주와 음악은 마치 소설의 등장인물이라도 되는 양 놀라운 출연 비중을 보인다 여름방학이라는 한정된 시간, 그만큼 격정적이고 아쉬움이 가득한 시간 음악은 적재적소에서 안타까움과 열정, 따분함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CCR의 <Who’ll Stop the Rain>도 좋지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기억나는 곡은 크게 두 곡이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마일스 데이비스와 여름에 꼭 맞는 비치보이스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A Gal In Calico>
<The Musings of Miles>라는 앨범에 실린 이 곡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을 결성한, 음악적 기량이 최절정이었던 1955년에 만든 곡이다 경쾌한 피아노 선율에 맞춰 울리는 트럼펫의 리드미컬한 음색이 특징이다 쿨재즈의 특징이 가득한 곡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퓨전재즈 음악을 좋아하지만 이 곡은 여러모로 듣기에 손색없는 곡이다
비치보이스Beach Boys, <California Girls>
여름이면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그들의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비치보이스!’ 엘비스 프레슬리의 약간은 느끼한(?) 로큰롤이 아니라 콜라의 청량함이 실린 듯한 로큰롤이 바로 비치보이스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푸른 바다와 비키니아가씨, 서핑, 자동차가 생각난다(이름 때문일까?) 낯선 여자의 신청곡으로 ‘나’가 틀게 된 <캘리포니아 걸스>는 비치보이스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Endless Summer>라는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2. 노르웨이 숲(상실의 시대)
ノルウェイの森, 1987년
1987년 이 책이 처음 발간됐을 때만 해도 이 책이 불러올 반향을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노르웨이 숲>은 도시적 감성, 청춘에 대한 추억, 젊은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무국적성이라는 힘으로 일본을 넘어 세계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을 알린 작품이다 반일감정이 남달랐던 한국, 중국 독자들은 물론 피부색 다른 수많은 독자들에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킨 작품이니 말 다했지 ‘하루키=연애소설’이라는 공식을 나은 작품이라면 실례일까? 아무튼 일본에서는 순애보의 물결(와타나베의 작태가 순애보라는 걸까? 나오코, 미도리, 게다가 레이코까지 섭렵하려는 와타나베가?-_-)을 일으킨 작품이다 한 줄기 연기 같은 젊은 시절의 허무를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데는 동의!
곧 영화로도 제작된다니 이 작품의 생명력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출간된 지 벌써 20년이 넘은 작품이 여전히 청춘들의 허무와 고뇌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니 고전은 고전이다)
<노르웨이 숲> 역시 음악은 빠질 수 없는 요소로 등장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처럼 37세의 와타나베는 함부르크 공항에서 우연히 듣게 된 비틀스의 음악을 통해 이 긴 과거를 여행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나오코(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는 미도리이지만, 내가 남자라면 나오코를 선택하지 않을까 하고 줄곧 생각했다)가 좋아하는 브람스다
비틀스Beatles, <Norwegian Wood>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비틀스 <Anthology2> 앨범에 실린 이 곡은 약간은 우울하고 약간은 말라 있다 과거의 기억이 선연해질 만큼 놀라운 코드를 숨긴 음악일까 하는 의구심은 들지만 여담이지만 고양이를 좋아하는 하루키 씨의 취향이 반영된 선곡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노르웨이숲’은 유명한 고양이 품종이기도 하니까
브람스Johannes Brahms, <브람스 심포니 No.4Brahms Symphony No.4 in e minor op.98>
브람스 심포니 곡은 솔직히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직접 찾아서 들어봤다 그동안 귀에 익었던 곡들은 약간은 화려하고 또 밝은 곡들이 주류였지만 이 곡은 어딘지 모를 슬픔을 안고 있다 마치 한 편의 비극을 읽은 기분이랄까 심포니임에도 화려하고 웅장한 색채는 없고 내성적이다 이 곡을 즐겨 들었을 나오코를 생각하니, 아프다
3.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國境の南、太陽の西, 1992년
이 작품은 내게 꽤나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장 처음 접한 하루키 소설이라는 점도 그렇고 단 한 문장만으로 나를 굴복시켰다는 점도 그렇고 처음 번역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안긴 작품이라는 게 그렇다 늘 하는 말이지만 <노르웨이 숲>의 와타나베의 성인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하루키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실연과 상실, 그리고 고독으로 빚어진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다 이들은 과거라는 이름의 덫에서 헤어나고자 괴로워하는 군상들이다 구원을 찾지만 구원의 길은 소원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어느 정도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하루키는 한 인터뷰에서 “과거라는 덫에 대해 사람은 무엇이 가능한가를 쓰고 싶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내가 이 작품에서 쓰고 싶었던 것은, 첫째로 사람이 직접적인 과거로부터의 영향에 대해서 도대체 무엇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이며(그것은 도덕적인 문제에 깊게 관련되어 있다), 둘째로 사람은 현실과 비현실, 각성과 비각성을 어떠한 형태로 같이 공생할 수 있는가, 요컨대 자기 자신 안에서 어떻게 동시에 존재시킬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하지메와 시마모토의 술래잡기 같은 연애, 상처로만 남게 된 이즈미 청춘이라기보다는 어른의 모습과 고뇌를 담고 있어서인지 음악 역시 팝보다는 재즈가 눈에 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듀크 엘링턴, 그리고 냇킹콜까지 책을 읽고 앨범을 사 모을 정도로 열광한 곡들이다
냇킹콜Nat King Cole, <Pretend>
감미로운 목소리와 호소력 있는 가사들로 가득한 이 음악은 <The Ultimate Collection>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고통스러울 때는 행복한 척해요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라는 가사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외로움을 숨기는 하지메와 시마모토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Star Crossed Lovers>
어긋난 인연의 연인들, 이 곡 만큼 두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곡이 있을까 아련한 피아노 선율에 깃든 섹소폰 소리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있어 외로운 밤에 술 한잔 홀짝이며 들으면 더 없이 좋은 곡이다 빌리 스트레이혼과 함께 만든 이 곡은 <로미오와 줄리엣>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라고 <Such Sweet Thunder>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찰리 파커Charlie Parker, <South of the Border>
이 음악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하니 역시 빠질 수 없는 곡이다 찰리 파커가 만든 곡이지만, 책에서는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버전으로 나와 있다 개인적으로 시나트라 음색은 느끼해서 좀-_-;
4. 태엽 감는 새 연대기
ねじまき鳥クロニクル, 1994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드디어 하루키도 서사를 아는구나’라는 엄청나게 건방진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순문학으로서의 가치가 높았던 작품이다 방대한 양도 양이지만, 전체적인 플롯이 연결되는 서사가 정말 일품이었다 물론 이것 역시 모두 개인의 취향이지만 <해변의 카프카>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다음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다소 이야기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으로, 인간 존재의 심연을 건드리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갖고 있기도 하다 모든 것이 수수께끼이자 암시인 이 책은 오카다 도루가 아내를 찾기 위해 떠나는 신비한 모험이라는 유치한 말로도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당신 기억에는 뭔가 사각 지대가 있다”는 말이 두고두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책이다
컬트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이지만, 의외로 실린 음악들은 고전에 가까운 클래식이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단연 롯시니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베르디를 능가하고도 남았을 이 천재적인 작곡가의 오페라와 널리 천재로 알려진 모차르트의 오페라, 그리고 슈만의 피아노곡 이렇게 세 곡을 골랐다
롯시니Gioacchino Rossini, <도둑까치La Gazza Ladra> 서곡
밝고 경쾌한 템포의 이 서곡은 특히 드럼 연주가 인상적이다 새소리를 연상시키는 관악기의 새치름한 연주도 재미있다 그러나 오페라의 내용은 곡만큼 경쾌하지는 않다 은그릇을 훔쳤다는 혐의를 받은 어느 하녀의 이야기로, 결국 이 하녀가 처형되고 나서야 진짜 범인은 까치였음이 드러나는, 정말 블랙코미디 같은 내용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이 이야기가 프랑스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 희극적이고 시종 밝은 면모를 잃지 않는 곡으로 롯시니 음악 가운데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라고 한다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를 추천한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마술피리Die Zauberflote> 파파게노의 아리아
모차르트의 오페라들을 베르디의 것보다 유쾌하고 푸치니보다 세련됐다고 늘 생각한다 사실 <마술피리>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는 ‘밤의 여왕’이겠지만(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밤의 여왕 아리아는 정말 힘이 넘치는 명곡이다) 파파게노의 아리아 가운데 ‘나는 새잡이’라는 곡은 이 책의 제목과도 절묘하게 어울린다 바리톤이 목소리는 새소리를 연상시키는 관현악기 연주와 어우러져 참 재미있다
슈만Schumann, <숲의 정경Waldszenen Op.82> 예언의 새
슈만의 피아노곡들은 언제 들어도 마음 편하고 또 문학적이다 그의 아도니스 클라라는 슈만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디 하나 모난 데 없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그의 곡들은 아마도 사랑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듯 <숲의 정경>은 <사냥일지>라는 잡지를 읽고 감동해서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사냥에 관련한 내용이 어떻게 하면 감동적일 수 있을까?) 역시 작곡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5. 해변의 카프카
(이미지 초과로 이미지 삭제) 海辺のカフカ, 2003년
<태엽 감는 새>이후 7년 만에 나온 장편소설이라는 점에서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던 작품이다 그러나 기다림은 헛되지 않아 이 책을 읽는 순간, 나는 하루키 작품의 또 다른 고지를 발견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른과 아이의 기로에 선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세 소년 카프카의 눈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극복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이은 교차 편집(이는 <1Q84>에서도 똑같이 차용된다)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절묘하게 엮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하루키 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가 이 작품을 통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기저에 깔고 있다고 말하는 평단의 얘기처럼 이 작품 역시 문학의 원형을 밟아간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나 이 책에 쓰인 음악은 폭넓고도 세계적이다 수많은 음악들이 등장하지만, 단연 이 곡을 꼽아야 하지 않을까 바로 라디오헤드!
라디오헤드Radiohead, <Kid A>
라디오헤드의 4번 째 앨범 <Kid A>라는 앨범에 실린 이 동명의 곡은 라디오헤드 특유의 염세주의적 사운드와 이질적인 사운드 그리고 놀라운 연주가 돋보이는 명곡이다 이전에 비해 일렉트로니카적인 변모가 많은 앨범임에도 터프한 15살 소년 카프카를 성장시키는 데 전혀 손색이 없는 곡이다 톰 요크의 목소리가 이토록 염세적이라니!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나 역시 카프카가 될 것만 같다 도서관에서 체육관으로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일상을 보였던 카프카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찍는다면 이 곡은 당연히 그 배경음악으로 쓰여야 한다
6. 어둠의 저편
(이미지 초과로 이미지 삭제) アフタ-ダ-ク, 2005년
아마 하루키 팬들의 반응이 가장 극명하게 갈렸던 작품이 아닐까 싶다(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도쿄기담집>이라는 단편을 열외로 했을 때의 이야기다) 밤 12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도쿄라는 대도시의 어느 일부, 그 속에서 펼쳐지는 드라마 같은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는 모호하다 못해 위험하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모티프를 두었다는 이 작품의 실마리는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하루키 작품에 깃든 폭력성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며, 굉장히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것도 이례적이다(분량에 비해 등장인물이 참 많다) 동생이 밤을 지새우는 패밀리레스토랑이나 샐러리맨이 장을 보는 세븐일레븐, 카라멜마키아또를 홀짝이는 스타벅스 등 이 소설을 읽고 있으면 마치 이 모든 게 우리 옆집에서 벌어지는 일만 같다 음악은 바로크 음악부터 재즈, 블루스, 그리고 팝까지 다양하다
커티스 풀러Curtis Fuller, <Five Spot After Dark>
피아노와 트럼본의 절묘한 조화가 정말 듣는 이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약간은 기름지다 느낄 수도 있는 이 블루스는 낯선 이와도 쉽게 어울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친화력이 있다 이 노래의 몇 소절을 흥얼거리던 남자와 그 흥얼거림을 듣고 제목을 맞춘 여자의 대화가 특히 더 기억에 남는 곡이다 책 제목도 아마 여기서 비롯된 것이겠지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Sophisticated Lady>
<Star Crossed Lovers>처럼 아련한 느낌은 덜하지만 이 곡 역시 몽환적이다 강한 색소폰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듣고 있으면 도시의 야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색소폰 연주가 얼마나 강한지 어느 부분은 마치 자동차가 부웅 하고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날 때도 있지만(^^;) 듀크 엘링턴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재즈가 마치 클래식 같다 반듯한 작곡가에 반듯한 음악 재즈 특유의 즉흥성은 없지만 세련된 맛이 일품인 그의 음악은 정말이지 하루키 소설과 딱 맞는다는 생각이다
7. 1Q84
(이미지 초과로 이미지 삭제) 1Q84, 2009년
꽉 막힌 수도고속도로 위의 한 택시 안, 아오마메는 뜻밖의 정체에 초조해하며 시계를 들여다본다 그러다 일순 그녀의 귀는 카스테레오 스피커가 있는 곳으로 집중된다 정말 훌륭한 음질이라 생각하며 지금 흐르는 곡은 야나체크가 연주한 <신포니에타>라고 알아채버린다 어떻게 자신이 그걸 알고 있는지 본인도 의아해하며 체코의 작곡가 야나체크가 1926년에 작곡한 <신포니에타>에 몰입한다 곧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출간 전부터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1Q84>는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이의 기대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의연하고 담담하게 행동하려는 듯 태연하게
도입부부터 음악이 눈에 띈다 야나체크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신포니에타>라는 곡은 기억이 안 나기에 CD를 사버렸다
야나체크Leo Janccek, <신포니에타Sinfonietta>
일본에서는 <1Q84>의 고공행진에 힘입어 야나체크 앨범 역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단다 <신포니에타>를 들으면 얼핏 드보르작이 생각난다 전원 풍경이 선연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라면 섬세하고 기교 많은 드보르작에 비해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더하다는 정도(일단 내 귀로 듣기에 그렇다) 많이 꾸미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는 듯 알레그로 안단테로 넘어가는 악장들은 하나같이 수수하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 이 음악이 초라하다는 뜻이 아니다 담담하게 뿜어내는 용기가, 이 곡에는 있다
글을 쓰면서 다른 책에 실렸던 음악까지 속속 떠올랐다
지금 읽고 있는 <1Q84> 안에서 또 얼마나 멋진 곡들을 만나게 될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