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쉬공동체와 세이비어공동체를 통해서 한국교회의 신앙과 영성을 성찰하기를 원한다. 지난 5년 감리교사태는 제도나 법의 문제인 것 같지만 핵심은 영성의 문제였다. 그 영성의 문제의 바탕에는 <대형교회 현상>이 있었다. 이제 대형교회는 유통기간이 끝났다. 오늘 대형교회는 하나님과 공교회와 세상 앞에서 이제 짐이요 부담이 되고 있다. 이 대형교회 현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미쉬들의 산업혁명
15년전, 스치며 지나가듯이 아미쉬들을 본 적이 있었다. 미연합감리교회(UMC) 위스콘신연회가 한국의 목회자와 교환프로그램으로 약 보름간 UMC 선교국을 들러 위스콘신을 다녀왔었다. 그 때 이동수목사는 어그스트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이목사가 목회를 하던 어그스트에는 주민 70%가 아미쉬들이었다. 짧은 시간 이동수목사의 안내로 아미쉬 가정과 학교를 방문했었다. 그 때 인상적이었던 점은 늦가을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아미쉬학교의 아이들은 맨발로 다녔다. 15년이 지나고 아미쉬가 50% 이상인 위스콘신주 클락카운티 니얼스빌의 아미쉬학교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은 맨발로 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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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쉬들의 실생활에서 전기를 사용하는 기계들:일라이목사의 목장에서 사용하는 사료배합기(상)와 샘의 농장 채소 세척기(중), 아래는 제임스 개인 목공소 진기대패(하)-사진/남재영 목사 |
15년 전 그 때 아미쉬들은 일체 전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미쉬들이 많은 전기동력기계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대부분 농장과 목장 일에 전기동력기계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규모는 조금씩 달랐지만 개인 목공소를 갖고 있는 아미쉬들이 많았고, 거기에도 전기기계들이 많았다. 사료를 섞는 기계나 수확한 호박 농산물을 씻는 세척기 등 농사일과 관련해서 사용하는 기계에 전기를 시용하고 있었다. 물론 이 기계들은 일반 전기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아미쉬전기라 하여 스스로 만든 발전기를 달아서 사용했다. 15년 전과 비교해보면 가히 아미쉬의 산업혁명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집안에서는 일체의 생활 전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여전히 호롱불을 켜고 생활하고 있고 TV를 포함하여 일체의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전화도 사용하지 않는다. 교통수단은 조상들이 타고 다니던 버기(buggy)라고 부르는 마차를 타고 다녔다.
아미쉬의 자존(自尊)을 배우는 아미쉬학교 교육
아미쉬를 찾은 첫날 운 좋게 나는 아미쉬 아이들과 마차를 타고 학교를 가는 기회가 있었다. 9살 소년(사실 9살이면 소년이라기보다는 아직 어린이다) 데이빗이 모는 마차를 타고 4킬로 정도 떨어진 아미쉬학교를 갔다. 아미쉬학교는 7살에 입학하여 8학년이면 모든 과정을 마친다. 아미쉬공동체는 26가정이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고 공동체마다 학교를 운영한다. 대부분 20대 초반에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은 열 명씩 낳는다. 그러다보니 공동체가 26가정이라해도 충분하게 학교를 운영할 만큼 아이들이 있다. 그래서 모든 아미쉬공동체는 미국의 공교육제도와 무관하게 8학년제 교육과정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미쉬 학교는 미국의 제도교육과 달리 아이들에게 아미쉬가 누구인지를 가르치고 아미쉬 조상들의 신앙과 현재 아미쉬의 삶에 대한 자긍심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다. 온전한 아미쉬로 양육하는 것이 아미쉬 교육의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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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쉬학교 전경 그리고 아이들이 등굣길에 몰고 마차들(사진/남재영 목사) |
한 때 아미쉬들은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낸 시절이 있었다. 그 때 아미쉬공동체는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인 미국의 교육제도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8학년까지 아이들을 보내고 아미쉬들이 더 이상 아이들을 보내지 않자 학교에서 아이들 부모를 의무교육위반으로 고발한다. 아미쉬 부모들은 재판과정에서 구금을 당하기도 하고 불이익을 당하지만 그들은 자녀들 교육에 대한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미쉬들은 스스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미국의 공교육제도와는 전혀 다른 자신들의 교육제도를 정착시켰다. 아이들 교육에 대한 아미쉬의 이 원칙과 기준은 아미쉬공동체의 정체성과 자존(自尊)을 드러내는 중요한 측면이다.
아미쉬 학교는 철저하게 아미쉬로 양육하는 교육을 한다. 오늘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자녀 교육은 어떤가? 교회마다 중고등부가 침체되고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대학입시교육은 대한민국의 교육의 처음과 끝이다. 자녀들의 대학입시를 위해서 거의 이성을 상실한 부모들은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앙인의 가정에서도 대학입시를 위해서는 자녀들이 신앙생활까지 잠시 유보해도 되는 것처럼 가르치는 가정이 적지 않다. 학교를 찾아가서 우리 아이는 수요일 저녁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야간자율학습을 시킬 수 없다며-아이들 교육에서 신앙교육에 더 큰 방점을 찍는 부모가 몇 명이나 있나?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보다 대학입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여 부모의 곁을 떠나서 생활할 때, 아이들에서 신앙생활이 최우선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부모들의 또 다른 탐욕이 아닐까. 아이들은 자신들의 인생에서 신앙이 별거 아니라는 것을 대학을 입학하는 기나긴 교육의 과정에서 부모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미션스쿨도 여기서는 예외가 아니다. 서울대학에 몇 명을 보냈느냐가 학교의 자긍심이지 정말 참된 신앙인을 얼마나 배출했느냐는 미션스쿨에서도 별로 비중있는 관심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은 영물이기에 말 안 해도 아이들은 다 안다. 신앙이 별거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들 교육문제 만큼은 우리가 이단이라고 그렇게 비난하는 신천지만도 못한 것이 오늘 교회의 현상이다. 이처럼 교육에 대한 신앙적인 정체성을 상실한 가정교육과 교회교육이 교회가 내리막을 달리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
아미쉬들에게는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다. 아미쉬들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진정한 아미쉬로 살아가는데 많은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이 배우고 똑똑하다고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고위공직자들의 청문회 때마다 우리 사회에 많이 배우고 똑똑한 인간들이 어떻게 그 똑똑한 머리로 사회공익에 반하여 이기적인 치부를 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확인했지 않는가. 나는 입만 벙긋하면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우리나라의 고위공직자들이 애국자들인 줄 안다. 그런데 이 애국자들이 어떻게 애국을 하기에 자녀들의 병역의무를 피하기 위해서 자녀들에게 국적을 포기하도록 만드는지. 그 깊은 애국의 뜻을 알 수가 없다. 많이 배우고 똑똑해서 참된 사람구실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혜안이 아미쉬들에게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조상 때부터 살아온 자기들의 삶의 양식을 지키고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는 딱 그 만큼이 아미쉬가 지향하는 학교교육의 총량이었다.
데이빗이 모는 마차를 타고 학교에 갔더니 이동수목사가 먼저 와있었다. 느린 마차에 비하면-볼일을 다 보고도 먼저 도착해있는 자동차의 속도감을 새롭게 확인했다. 이목사의 도움으로-선생님들은 우리가 뒷자리에서 잠시 수업을 참관하도록 허용해줬다. 2명의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실에서 하루 수업이 진행되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하루 수업을 찬송으로 시작했다. 아미쉬 찬송은 아미쉬의 신앙의 뿌리이고 역사이다. 아미쉬 선조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고난을 겪었고 순교를 감수해 왔었던가 하는-선조들이 고난 가운데 지켜온 믿음의 역사를 노래하는 것이 아미쉬 찬양이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선조들의 믿음의 역사를 날마다 수업 첫 시간에 찬양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배운다. 그날 반주 없이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부르는 그 아미쉬 찬송은 뒷좌석에서 수업을 참관을 하는 내 예민한 영적인 감수성을 자극하였고, 그레고리안 성가처럼-그 교실의 찬양이 가슴에 전율과 감동을 쏟아 부어주었다.
아미쉬들의 삶의 양식과 가치는 교회가 정한다
모든 아미쉬공동체는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이다. 26가정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고, 이 공동체는 독립적인 교회공동체이기도하다. 아미쉬는 2주일에 한 번씩 아미쉬 가정을 돌면서 예배를 드린다. 1년 52주 동안 모든 아미쉬 가정마다 한 번씩은 돌아가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26가정으로 교회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아미쉬교회는 예배당 건물이 없다. 그리고 목사는 별도의 신학교육을 받지 않는다. 목사가 별세를 하거나 유고가 생기면 교인들 가운데서 목사를 뽑는다. 그때는 제비뽑기로 감독(목사)를 뽑게 된다. 아미쉬는 유아세례를 부정한다. 대체로 18-20살에 세례를 받고, 세례를 받은 후에 결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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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스세일(말경매)에 보기 드물게 자건거를 타고 온 아미쉬(시진/남재영 목사) |
아미쉬들이 세례를 받을 때는 반드시 두 가지를 서약해야 한다. 하나는 평생을 아미쉬로 살며 교회공동체가 정한 규칙을 지키겠다는 것과 만약에 교회공동체에서 목사로 선택이 된다면 그 직임을 감당하겠다는 서약이다. 목사라고해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미쉬들은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모두가 땅을 갖고 농사를 짓는다. 목사도 마찬가지이다. 아미쉬의 삶은 철저하게 교회 중심적이다. 아미쉬의 일상생활은 온전하게 교회가 정한 규칙에 따라서 생활한다. 마차의 색깔과 여인들이 쓰는 모자의 색깔까지, 그리고 일상 생활복과 예배 때 입는 옷을 어떤 색을 입을 것인지. 모두 교회가 정한다. 공동체가 전기장치를 사용할 것인지 아닌지 심지어 담배를 피워도 되는지 아닌지-아미쉬의 일상생활은 교회가 정한 <오드뇽>이라는 규칙을 따라 살아간다. 생활에 필요한 문명의 이기를 얼마만큼 받아들일지-이를 결정하는 것도 교회이다.
그래서 아미쉬공동체는 각 공동체마다 서로 조금씩 다른 차이들이 존재한다. 일례로 어떤 공동체는 담배를 피는 공동체가 있는 반면에 어떤 공동체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는 아미쉬가 있고 자전거를 타지 않는 아미쉬들이 있다. 이런 차이는 곧 교회공동체의 규칙의 차이이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선조들의 신앙을 계승하고 자신들 신앙공동체의 삶의 양식을 지키는 아미쉬의 정체성에서 일체감을 가지고 있다. 아미쉬교회가 세상의 문명을 받아들일 때 원칙이 있다. 그것을 받아들여서 과연 아미쉬들이 조상들이 살아온 삶의 양식을 지킬 수 있고 조상들이 물려준 신앙을 공동체가 잘 지켜 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 교회가 뭔가를 결정할 때 가장 크게 고려하는 원칙이다. 이 원칙(오드뇽)을 어겼을 때는 교회공동체에서 추방을 당한다.
나는 이번에 아미쉬들을 만나기 전까지 그들이 문명을 거부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15년 전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일체의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에 대한 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만난 아미쉬들은 첨단 자본주의 문화의 홍수 가운데 살면서 문명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만큼만 문명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았다. 만약에 아미쉬들이 자신들의 신앙과 삶의 양식을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절대 세상의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무리 그 문명이 편리하고 화려해도 선조들의 신앙과 삶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장애가 될 때는 그 어떤 세상의 풍조도 본받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종교문화를 소비하는 소비자로 전락한 오늘의 교인들
오늘 현대인들은 자본주의 소비에 중독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현대인들에게는 소비가 곧 사회적 신분이자 지위이고 능력이다. 그래서 많은 부분 우리는 소비에 포로가 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또 우리는 너무 쉽게 세상의 풍조에 실려 가고 있다. 현대인들 대부분은 세상의 편리하고 세련된 문명의 파고에 가볍게 떠밀려 가며 살아간다. 교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아미쉬들은 세상 문명의 물결이 아무리 거세도-뿌리 깊은 바위처럼 결코 거기에 자신들이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살아간다. 오늘과 같은 소비 만능사회를 살아가면서 교회가 우리들의 일상의 생활과 삶의 양식을 결정하고 기준을 제시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더하여 교인들은 이제 어제의 교인이 아니다. 나는 오늘 한국교회 교인들 대부분은 종교문화를 소비하는 소비자로 전락해 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교회와 교인들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상실해버린 가장 큰 원인을 나는 교인들이 종교문화를 소비하는 소비자가 되었다는 데서 찾는다. 이들을 그렇게 양육(?)한 책임은 자본에 포로가 된 대형교회에 있다.
자본의 운동법칙은 최대이윤의 법칙이다. 최대이윤을 위해서 인간을 이익살현을 위해 수단화-도구화하는 자본은 악마적이다. 악마와 같은 자본은 재물이 근본이 된 세상에서는 하나님처럼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전능한 실체다. 아니 이미 자본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하나님이 되어 있다. 심지어 교회에서까지 야훼 하나님을 밀어내고 자본이 그 자리를 점하고 있다.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본과 싸워 이기는 방법은 자본에 대항하는 또 다른 힘이 아니다. 십자가만이 자본을 이길 수 있다. 십자가는 희생의 상징이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은 전지전능하지만 그 전지전능한 자본이 결코 할 수 없는 것이 하나있다. 바로 희생이다. 희생은 자본이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거룩한 능력이다. 그래서 희생과 헌신이라는 십자가를 버린 신앙은 결코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을 이길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어떻게 헌신하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어떻게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지. 십자가에 위에 선 신앙만이 자본을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의 교인들은 희생과 헌신의 설교를 듣기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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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들의 승용차에 해당하는 아미쉬 마치-버기(buggy), 마차에는 방향지시등과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차 뒷면에는 삼각형의 야광판이 붙어있다.(사진/남재영 목사) |
교회에서 희생과 헌신은 이제 못 배우고 덜떨어지고 모자라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스스로 똑똑하고 잘난 이들은 종교적인 취향을 따라 교회에서 예배를 소비하고, 설교를 소비하고, 찬양을 소비하고, 종교문화를 소비하는 소비자로 만족하고 있다. 목사들이 똑똑한 교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설교로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동안에-교인들은 알게 모르게 종교문화를 소비하는 소비자 체질로 변화 되었다. 이제 교인들은 작은 교회를 신앙공동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다. 신앙생활에서 부담이란 교회생활에서 희생의 기쁨이 없고 헌신의 감사가 없을 때 생기게 된다. 희생과 헌신이 기쁨이요 감사라는 고백은 자기부정이 없으면 불가하다. 똑똑하고 잘난 교인들에게 자기부정이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부담만 잔뜩한 작은교회 교인들은 부담 없이 대형교회로 옮겨 갔거나, 아니면 지금도 옮겨갈 생각을 가지고 고민 중에 있다. 이 소비자신앙의 폐해는 그동안 교인들을 끌어 모으는데 혈안이 되었던 대형교회가 오염시킨 신앙과 영성의 대표적인 폐해이다. 어쩌다 오늘 교인들의 신앙생활이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 어머니 세대는 몇 십리 길을 걸어 새벽기도를 다녔다. 그 신앙의 이야기는 이제 한국교회에서 <전설 따라 삼천리>에나 있었다던 과거지사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이룬 부흥과 성장은 우리 어머니세대의 이런 헌신적인 신앙으로 이룬 기적이었다.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의 신앙에 빚지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한국교회는 그 빚을 부담으로 생각하여 다 털어내어 버렸다. 우리의 가장 큰 과오는 우리 믿음의 선대가 가졌던 그 순결한 신앙을 버렸다는 점이다. 교회 안에서 현대 신앙인들이 고급스런 종교문화를 소비하지만 실상 그들의 신앙은 싸구려가 되어 버렸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싸구려가 되게 했을까? 아래 이만열 선생의 글에서는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귀중한 영성과 신앙의 자산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901년 평양에서 모인 여성 사경회에는 사경회 기간동안 사용할 양식과 옷가지들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삭주·창성 지방에서 300리 길을 걸어온 여성들이 있었다. 1902년, 400여 명이 모인 평양의 '사나이'사경회에는 전라도 목포 무안 지방에서 참석한 이들도 있었다. (나는 이 대목을 소개할 때마다, 1971년 이 자료를 발견했을 때 눈물을 흘린 그 감격을 잊지 못한다.) 선교사들은, 1909년 10일간의 성경 공부를 위해 머리에 쌀자루를 이고 300마일을 걸어온 한 자매를 소개했고, 거기에다 아이들까지 업고 온 다른 자매들의 손에는 손때 묻고 닳은 성경책을 갖고 있었다고 증언했다.<이만열 교수의 글에서>
어머니 세대의 믿음을 버린 한국교회의 비극
십 수 년 전의 이야기지만 본부 신문사의 편집부장으로 수년 간 일을 했었다. 당시 어느 대형교회의 봉헌식에 갔던 적이 있다. 교회를 입당하는데 교회 회중석의 의자가 푹신한 극장식 의자였다. 그래서 담임목사에게 물었다. 왜 이런 의자를 놓았느냐고. 그때 그 목사의 대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는 교회가 교인들에게 서비스를 해야 하는 시대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한탄했다. <아! 한국교회는 이렇게 해서 망해가는 구나>. 믿음의 힘으로 기쁘고 감사하게 희생과 헌신을 감내하던 시대는 가고-대형교회가 교인들로 서비스를 받아야할 소비자의 자리에 서있게 만들고 있었다.
목사가 자랑스럽게, 교인들에게 서비스 제공하는 차원에서 극장식 푹신한 의자로 놓았다는 말을 들으면서 그 때 나는 절망했다. 서비스를 해야 하는 대형교회는-희생과 헌신이 교인들의 미덕인 시대를 마감하고, 교인들이 교회를 통해서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실존으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푹신한 극장식 의자로 상징되는 종교 마케팅과 상술(商術)은 대형교회 만이 할 수 있다. 오늘 대형교회들은 최첨단 영상시절에 푹신한 극장씩 의자로 소비자가 된 교인들에게 최상의 예배서비스를 제공하고, 매 주일마다 강단 위에서는 소비만능의 세상을 살아가느라 지치고 힘든 영혼들을 설교말씀으로 달콤하게 위로하고 격려한다.
그래서 주일날 예배와 설교 또한 고급스럽고 세련된 종교문화를 소비해야하는 교인들에게 제공되는 양질의 소비재 가운데 하나로 전락했다. 이 고급스런 종교소비재를 소비하는 대가로 교인들이 지불하는 헌금을 수익으로 유지되는 대형교회가 과연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체(聖體)라 할 수 있는가.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대심문관의 이야기>는 이제 오늘 한국교회의 실존이 되어 있다. 희생과 헌신이 없이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도 이제 대형교회는 얼마든지 교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말씀을 파는 3차산업>으로 충분하게 자신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이 대형교회 현상은 어디에서 뭐가 잘못되었을까? 아미쉬 신앙과 영성을 통해서 성찰해보면 보면-문제의 원인은 조상들의 믿음을 버린 때문이다. 조상들의 삶의 양식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의 문명을 분토처럼 여기는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소비에 중독된 소비만능의 세상 풍조를 따라가느라 너무 쉽고 가볍게 선조들의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을 버렸고 또 십자가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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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스세일에서 마차를 몰다 묘기를 부리는 아미쉬. 아미쉬들에게서 이런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사진/남재영 목사) |
이제 교인들은 십자가를 지기 싫어한다. 희생을 감내하지 못하고, 자기를 부정할 수 없는 체질로 변해버린 것이다. 오늘 우리는 감리교사태라는 우환을 겪으면서 그렇게 체질이 바뀐 대가를 아주 비싸게 치루고 있다. 희생과 헌신의 십자가를 버리고 세상의 편리를 선택한 그 순간에 교회가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는 것은 예정된 순서이다. 나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곁에 앉아 딱딱한 마루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리던 그 예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가능하면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푹신한 극장식 의자로 바뀐 교회는 어디에도 무릎을 꿇을 자리가 없다. 대형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될 만큼 속이 꽉차있어서 그 자리를 없앤 것이 아니다. 교인들에게 편리를 서비스하느라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자리를 없애 버렸다. 이것이 대형교회가 자초한 영성의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자가 된 교인들에게 예배당 안에서 더 편리하고 질 좋은 소비재를 제공하기 위한 대형교회의 종교적인 마케팅은 지금도 한국교회의 영성을 깊게 병들게 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순결한 영성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어머니세대가 딱딱한 마루바닥에 않아서 삶의로 보여주신 희생과 헌신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진정한 회개운동의 내용은 이래야 한다. 어설프게 <하디>를 팔고, 1903년 회개운동을 팔아서 동원된 체육관의 회개운동은 소비에 중독된 교회와 교인들에게 회개조차도 소비하게 만드는 기만적인 종교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한국교회가 초기 신앙의 선조들의 신앙생활의 양식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비극이다. 조상들의 삶을 그대로 추종하는 아미쉬가 전부 옳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아미쉬를 보면서 뼈저리게 성찰해야 될 한국교회의 주류신앙의 명백한 과오는 우리 어머니세대가 몸으로 보여주신 희생과 헌신의 믿음을 너무 가볍게 벗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주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축복은 재앙
나는 대형교회의 넘치는 돈이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또 나는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는 축복의 선물은 재앙이 된다고 확신한다. 오늘 대형교회의 현상은 한국교회가 축복의 길을 걸어 재앙으로 가 닿도록 했다. 소비가 만능인 시대를 살며-가질 수 있는 것을 다 가지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는 것을 성찰하지 못하면-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그 소비능력은 재앙이 된다. 아미쉬들은 가질 수 있어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절실한 필요까지도 그것이 자신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를 먼저 따진 다음에 신앙생활에 유익이 된다는 확신이 있을 때 그들은 그 필요를 최소화하여 자신들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순결한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아미쉬의 지혜가 오늘 한국교회에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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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쉬가 사는 지역에는 아미쉬를 보호하기 위한 교통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사진/남재영 목사) |
맘몬우상숭배냐 아니냐는 돈이 넘쳐나는가 아닌가로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 돈을 대형교회가 자신의 소득으로 생각하는 것은 맘몬우상숭배에서 나왔다. 헌금으로 거둬들인 대형교회의 그 많은 돈은 대형교회의 소유가 아니다. 그것은 공교회와 이웃을 섬기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청지기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대형교회이기주의는 축복의 선물로 재앙의 길을 가도록 했다. 더하여 이렇게 넘치는 축복을 사유화시켜버린 대형교회의 지도자들의 탐욕이 하나님의 축복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게 만들었다. 이 지점이 한국교회가 회개해야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릴 때 목사들을 지극정성으로 섬기던 우리 어머니세대의 그 섬김은 아름다운 믿음의 향기였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 섬김을 하나님에 대한 섬김이 아닌 목사 자신에 대한 섬김으로 착각하고 제왕적으로 교인들에게 군림한 목사들의 죄악이 문제였다. 교회의 재정을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넣어둔 돈으로 착각하는 분별력을 상실한 목사들과 그 목사들을 그냥 추종하는 평신도지도자들로 한국교회는 지금 불행하다. 이 목사들이 교권에 대한 탐욕을 주체하지 못해서 돈으로 감독이 되려고 하다 발생한 것이 감리교사태이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선거자금 8억원 설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속으로 곪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는 벌써 20여년 정도 감독(회장)선거 때마다 매번 그런 돈이 뿌려졌다. 정말 불행은 이 세월동안 한 번도 영적지도자가 감독이 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뽑힌 감독들은 단언컨대 그 어느 누구도 영적인 지도자가 아니다. 지금 한국감리교회는 영적지도자가 감독이 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교회 권력은 될 수 있을지언정 영적지도자는 결코 될 수 없는 감독들을 매번 때가 되면 뽑아야하는 것은 교회의 비극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 감리교회공동체의 불행은 감독이 되겠다고 머리를 디밀어대는 그 사람들 탓만이 아니다. 그런 자들을 놓고 투표를 해온 우리 죄악이 어쩌면 더 크고 깊다. 감리교사태는 감리교회의 문제만 아니다. 한국의 모든 교회는 거의 대부분 감리교회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맘몬에 오염된 한국의 대형교회 현상이 어떻게 오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공교회에 해악을 끼치는지. 감리교회사태를 통해서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이 추태 역시 오늘 대형교회의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대형교회의 유통기간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감리교사태는 이제 한국사회에서는 대형교회가 존재해야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21세기 벽두에 교회세습을 감행한 광림교회로부터 시작해서 현재 사회적으로 비난받고 있는 한국 교회의 그릇된 행태는 거의 대부분 대형교회에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나는 결정적으로 대형교회 목사들이 공공연하게 혹은 한기총을 앞세워 이명박장로를 대통령으로 지지하면서 교회는 선교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고 생각한다. 이때부터 교회를 이탈하는 교인들이 급증하고, 철새처럼 교회를 떠도는 소위 <가나안 성도 증후군>이 본격화 되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이 대형교회 현상은 대형교회가 한국사회를 위해 순기능을 하기에는 구조적인 결함을 갖고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한국교회 영성운동에서 대형교회의 결정적인 과오는 한국교회 교인들의 신앙과 영성을-소비에 중독된 세상을 따라 사는 소비자신앙으로 변질시켰다는 점이다. 나는 이것을 대형교회의 가장 큰 과오로 지적한다.
하나님 앞에서 교회 건물의 크기나 푹신한 극장식 의자와 최첨단 전자기기들과 컴퓨터로 관리되는 예배시설이 자랑이 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한국교회가 어떻게 청빈을 버렸고, 교인들의 신앙을 희생과 헌신이라는 십자가의 영성이 아닌 자본에 포로로 잡힌 소비자신앙으로 변질시켰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일 뿐이다. 교인들에게 서비스를 하는 대형교회들-그들이 사용하는 <서비스>라는 말 속에는 생명 있는 복음의 영성이 아닌 자본이라는 악마의 음모가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한국의 대형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의 축복을 결과라고 할 수 없다. 대형교회의 태생 자체가 탐욕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실의 대형교회는 이미 DNA 자체가 스스로 자신을 정화하고 거듭날 수 있는 체질이 아니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대형교회는 이미 오래전에 유통기간이 끝났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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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스세일이 열리는 날에는 아미쉬 벼룩시장이 함께 열리고 팔려고 내논 매물들은 주로 농기구들이다.(사진/남재영 목사) |
오늘 대형교회는 하나님과 공교회와 세상 앞에서 이제 짐이 되고 있을 뿐이다. 한국사회에서 예수가 살고, 복음이 살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체가 순결한 영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형교회 현상>은 반드시 극복 되어져야만 한다. 대형교회를 적정 규모의 교회로 해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래야만 어머니 감리교회도 순결한 영적인 생명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 어떻게 해체하여 순결한 신앙과 영성의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여러 교회를 세울 것인지는 대형교회들이 고민해야할 몫이다. 아미쉬교회는 26가정이 넘으면 예외 없이 또 다른 교회공동체를 세운다. 그래서 교회공동체의 적정규모를 26가정으로 철저하게 제한한다. 이 규모가 넘으면 공동체를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으로 교회공동체의 영적인 생명력을 유지해나가는 아미쉬를 통해서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자신을 제대로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 내리막 급물살을 타고 있는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하는 길을 아미쉬들의 교회공동체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대형교회들은 아미쉬에게 길을 물어야 한다. 개체교회가 자기의 사명을 잃지 않고 존재하는데 필요한 교인수는 300명이면 충분하다. 가톨릭교회도 대부분의 성당은 300명을 넘지 않는 것으로 안다. 개신교 교인들이 가톨릭 신도들보다 충성도가 더 높은 점을 감안하면 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기며 선교를 해나가는데 300명 교인이면 충분하다. 사치스런 건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복음의 생명력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현재의 대형교회를 300명 수준의 교회로 해체하는 그 길도 한국교회가 살 수 있는 대안이다. 300명의 교인이 넘으면 또 다른 교회를 세우고 세워진 교회가 300교인으로 성장하도록 주변의 교회가 돕는-이런 날을 서둘러 만들지 않으면 한국교회가 내리막으로 치닫는 이 불행을 막을 수 없다.
덩그렇게 큰 예배당에 머리가 백발인 노인들이 자리를 지키는 유럽교회의 이야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곧 우리 이야기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 복음서에서,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은 고난을 통해서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가 아버지의 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 감리교사태 5년은 이제 우리가 돌아갈 자리가 어디인지를 충분하게 학습했던 고난의 세월이었다. 아직 늦은 것은 아니지만, 돌아서야할 길을 바삐 서둘러야 할 때다. 만신창이 된 어머니 감리교회가 하늘의 생명을 회복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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