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아뿌아... 골골골골... 괙괙괙괙... .
밤새도록 뉘 집에서 펌프질을 해 대는 듯한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 등 물가 개구리들의 향연에 귀 기울여 본다.
2박 3일간의 낚시터에서의 올 여름휴가가 시작되었다. 해마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일탈을 꿈꾸며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방학을 맞은 아이들의 교육적인 차원을 운운하면서 내가 가고싶은 곳을 선정했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내 남편은 썩 내키지 않은 듯 하면서도 응해 주었다.
그러나 올 여름에는 남편의 뜻에 따라 가까운 낚시터로 계획을 세웠다. 낚시꾼의 아내가 되어보기로 했다.
아이들에겐 목적지가 무인도라고 했더니 기겁을 한다. 생각 같아서는 방학동안 컴퓨터나 T.V 에서 떨어질줄 모르는 두 아이를 데리고 무인도에 들어가 일주일동안 문명세계와 단절을 해볼까도 헀지만 여러가지 여건이 허락지 못했다.
일정을 위해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출발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져버려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삼천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진분계 숲에 도착하여 숲 속의 야영객 들과는 조금 떨어져 저수지 하류 물가에 텐트를 쳤다. 평일이라서 인지 낚시꾼들이 한 명도 없었다. 남편은 몇 번 들리던 곳이었고 나 역시도 초행은 아니었다. 5월말 이른 새벽에 그 곳 낚시터에 있는 남편을 데리러 간 적이 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서투른 운전이지만 고향을 지나서 가는 길이라 제대로 찾을 수가 있었다. 자욱히 내려앉은 새벽안개와 그 5월의 푸르름과 산새들의 지저귐, 일급수라고 자부하던 맑은 물을 잊지못해 다시 찾기로 한 것이다.
남편과 아이들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나는 그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 주기위해 코펠에다가 밥과 찌개를 만들었다. 사전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한 것이 쌀, 된장, 고추장을 집 냉장고에 그대로 두고 오는 불상사를 범하여 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사야만 했다.
이래저래 두통은 더 심해져서 앓는소리를 내니 남편의 채근이 시작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가장 기본적인 것도 안 챙기고는 머리까지 아파야하는 이유에 대해 T.V 드라마 `앞집여자`들을 들먹이며 넌지시 일침을 놓는다.
저녁을 맛나게 먹고 어둡기 전에 텐트 속 잠자리 단도리를 해 놓고는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주위의 쓰레기들과 나뭇가지들을 주워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사위(四圍)가 깜깜해지니 달도 없는 밤하늘은 더없이 맑아 별들이 총총했다. 가지고 온다고 챙겨 놓은 별자리판도 집에 두고 와 버렸다. 할 수 없이 알고있는 별자리만이라도 찾아보기로 했다.
외딴집 영감님 집으로 밤마실 가시는 홀어머니가 차가운 냇물을 건널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준 일곱 아들들이 죽어서 북두칠성이 되었다는 전설을 얘기하면서 여름밤에만 볼 수 있는 거문고, 독수리, 백조자리를 찾느라 하늘을 두리번거리기를 몇 시간 째. 그러다가 시간 때마다 별자리의 위치가 움직인다는 것을 관찰하게 되고 결국은 북극성,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의 위치만 확인 한 채 고개를 내렸다.
모닥불에 감자를 구워 먹었다. 숯 검뎅이가 된 감자를 보자 과연 먹을 수 있을까 으아해 하던 아이들이 하얗게드러낸 감자의 속살을 보고는 군침을 삼킨다. 모닥불씨도 다 꺼지고 자정이 훨씬 지나서야 아이들은 하품을 하며 텐트 속으로 들어가 단잠에 빠졌다.
떠나올 때의 두통은 말끔히 사라지고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 거리를 심어주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아이들 옆자리에 누웠건만 침대가 아닌 고르지 못한 땅바닥은 편치 못했다.
남편은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 낚싯대를 향해 밤새 들락거린다.
일정에는 이틀 밤을 이 곳에서 머물기로 했었지만 깨끗했던 물이 너무 오염이 되어 날이 새자마자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번 장마에 인근 농가의 축사에서 또는 가까운 공장의 폐수가 흘러들었을 거란 추측을 해 보면서 남편은 산수 좋은 쉼터를 잃었다는 사실에 연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씩씩거린다. 다시는 찾아 올 일 없어져 버린 그 곳에 아쉬움을 남기고 짐을 챙겼다.
중학생인 아들의 `부모님과 과학여행`이란 방학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숲에서 가까운 공룡 화석지인 영남의 쥬라기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고성 상족암으로 갔다. 상족암이라는 지명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는데 밥상머리 같다고 해서 상족(床足)이라고도 하고 여러 개의 다리모양 같다고 해서 쌍족, 또는 쌍발이 라고도 한다. 물이 빠졌을 때 볼 수 있는 상족암의 절경은 변산 채석강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한다.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계발되기 이전에 몇 번 가 본 곳이었지만 이제는 소문이 나 관광객들이 많이 붐볐다. 미로 같은 천연동굴을 들여다보며 자연의 오묘함에 새삼 감탄을 해 가면서 공룡발자국이 웅덩이가 되어 물이 고여있는 곳에 우리들의 발을 넣어보기도 했다. 작은아이의 물장난에 시간을 조금 할애한 뒤 떠나왔다.
사춘기를 맞은 큰아이는 이제는 절대 물놀이를 위해 물 속에들어가는 일도 없으며 복장 역시도 이런 삼복더위에도 남방의 맨 위 단추까지 꼭꼭 채워야하며 바지는 반드시 점잖은 긴 바지를 입고 다닌다. 아무리 타일러도 소용없다. 현관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도 양말과 운동화까지 챙겨 신는다. 신체적인 변화에 쑥스러워 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참 귀엽다.
다음 목적지는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에 있는 장안지 였다.
산도 깊고 물고기도 잘 잡힌다는 남편의 2번째 낚시터에서 짐을 풀었다. 산 속 마을 입구 논둑을 따라 낚싯꾼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도로변에 텐트를 치고 아이들은 아빠를 따라 낚싯대를 붙잡고 있있다. 두 아이 모두 낚싯대에 걸려서 올라오는 물고기를 보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아빠가 낚시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제야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인지 남편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흐른다.
장안리 산골 마을의 인심도 후했다.
낚싯꾼들이 스치고 간 자리에는 항상 흠이 생기며 농작물의 피해도 있으련만 싫은 내색 하나 없었다. 오히려 어느 쪽이 낚시가 잘 되며, 수심은 어느 정도여야 하며 도랑에서 쌀을 씻고 있으니 친절히 도랑을 치워 주시기도 하면서 요즘은 농약을 쳐서 물이 좋지 않으니 마을에 가서 물을 받아서 쓰라는 등... .
깜깜한 밤 수면 위로 하늘의 별들이 내려앉은 것처럼 군데군데 찌의 불빛이 무리를 이루어 떠오르고 숨소리마저 죽인 채 이 밤 낚싯꾼들은 다 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왜 낚시를 하냐고 물어보면 세상사 번거로움을 잠시나마 잊고 싶을 때 무아 삼매의 경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어쩌다가 고기라도 낚아 올리게 될 때엔 자기만의 황홀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즐거웠던 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더 없는 즐거움이겠지만 때론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될 때가 있다. 어쩌면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남편은 낚시의 즐거움이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모양이다. 혹한 엄동설한에도, 8월의 불볕더위에도 물때가 맞아 낚시를 하게 되는 날이면 얼굴에는 생기가 돈다. 나는 10년이 넘게 같이 살아가면서도 물고기를 한번도 잡아 본 적이 없다.
낚싯대를 드리운 수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시려와 눈물이 날 것만 같고 물결따라 속이 울렁거려 멀미를 할 것 같기도 하고 바닷속으로 빨려드는 것 같아서 지긋이 앉아 있질 못한다.
하루에 몇 명씩 자살했다는 사건사고 뉴스가 보도되는 요즘처럼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각박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비켜가기 위해서라도 취미생활이 절실히 필요할 것 같다. 이제는 내 남편에게도 낚시는 진정한 취미생활로, `꾼`으로 인정해 줘야 될 것 같다.
2박3일간의 일정을 정리하면서 작은아이의 일기장을 뒤적여 보았다. 특종을 기대하면서 ....
세상에 이렇게 허탈 할 수가 ... . 밤하늘의 별자리도 모닥불 속의 감자이야기도 없었다. 한바닥 가득 적어놓은 것은 말벌 이야기뿐이었다. 길목 풀섶에 붙어 있던 벌집의 벌들에게서 위협을 느꼈던 모양이다.
첫댓글 너의 휴가기 실감난다. 너의 가족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구나. 그리고 네 작은 아이의 일기, 그것 정말 실감난다. 우리 애들은 더 하다. 내사 교육적으로 키운다고 한 껏 키우는데, 손님 오거나, 친척들 모이면 꼭 에미 체면 깍이는 소리만 골라서 한다.
어제 백중 이라 가버린 오빠(니가 아는 오빠말고 그 위 오빠)모셔놓은 절에 갔다가 제사 갔다가.. 논다고 어찌나 부려물라 산는지 힘드네. 벌써 귀뚜라미가 운다. 입추 지나니 바로 정말 민감한거 있지? 뒤숭생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