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3박 4일***
-.일자 : 2009년 6월 26~29일(3박 4일)
-.일정 : 인천국제공항-중국 장춘공항-연길공항-백두산등정-두만강발원지-숭선-북한 화령시조망-연길이동-연길공항-장춘공항-인천공항
-.백두산코스 : 북파산문-북파주차장-천문봉-천지-철벽봉안부-새우등능선-옥벽폭포-온천지구
1일 (26일)........
D팀의 1대간 9정맥 완주 1주년 기념산행으로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이 결정되었지만 백두산악회의 공식해외 산행이 C팀이 주관하는 하파설산으로 확정되었고 여찾사와의 공조산행으로 산악회의 관심에서 밀려나 트레킹보다는 관광의 색채가 강하다.
그래서 일까...
연일 계속되는 음주와 느슨해진 마음에 출발 전날까지도 안내산행에 참여하다 보니 배낭 꾸릴 시간도 없어 출발직전에서야 이것저것 챙겨 넣어 놓고 잠을 청했지만 여행의 설레임은 여지없이 강박관념으로 작용해 뒤척거리다 눈을 뜨니 새벽 3시다.
남아있는 숙취를 차가운 냉수로 가라 앉히고 김하사가 챙겨준 이슬와 함께 다시금 빠진 물품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사이 부스럭거림에 일어난 마눌을 다시금 방으로 밀어 넣고 소파에 앉아 꾸벅거리다고 있다 내려앉은 눈꺼풀을 겨우 끌어올려 조용히 집을 나선다.
일행들이 고인돌공원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사이 여행시 항시 부담으로 작용되는 생리현상을 말끔하게 해결하고 행담도휴게소에서 한번의 휴식을 더 가지고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로 갈아탄다.
공항이 부산에서 인천으로 바뀌어 다시금 이용하게 된 서해안고속도와 이 순환도로는 정맥산행시의 추억들을 되살려 놓는데 지금은 널널한 버스를 타면서도 지겨움이 앞서지만 발하나 제대로 뻗은 수 조차 없었던 15인승의 비좁은 승합차에서를 타고서도 장시간 산행을 소화해 냈던 것은 서로간의 목적의식과 끓어 올랐던 산우애의 차이일 것이다.
▲서해대교 행담도휴게소..
언제쯤이나 이런 버릇이 없어질런지는 모르지만 인천공항에의 출국수속을 마치고 맨 처음 찾은 곳이 맥주가계다.
첫만남의 어색함과 여행이 주는 아련한 불안감을 해소하기엔 어디 이만한 게 또 있겠는가...
▲인천국제공항
시간은 훌쩍 지나가 자릴 털고 일어서니 사람들은 흩어져 버렸고 일행의 끈을 잡고 비행기 탑승구를 찾아 가는데 이것은 완전히 미로 찾기다.
무빙워크인줄 알았던 이동수단은 전철이고 전철에서 내려서도 한참이나 휘어 돌아 겨우 탑승구를 찾았는데 놀아운것은 촌놈 기죽이는 이런 과정을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통과했다는 것이다.
중국으로 가는 남방항공은 상큼한 미소는 없으나 날씬한 몸매와 머금은 미소는 기존의 딱딱했던 기억들을 밀어내고 의사소통까지 가능하여 중국의 국내선에서 껵었던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되었고 나오지 않다던 기내식까지 나와 공항에서 배를 채웠던 님들은 매끄럽지 못한 진행을 토로한다.
▲탑승해야 할 비행기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장춘 풍경..
2시간 10여 분만에 인천에서 중국의 장춘공항에 도착하였지만 신종인플루엔자 반응검사를 위해 비행기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더니 검사원들이 탑승하여 이마에 레이저 한방씩을 쏘아대며 일일이 열반응검사를 한다.
여행기분은 완전히 다운되어 버렸고 사람의 인격을 철저하게 무시한 그들의 일 처리에서 중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한 채 북경과의 시차를 감안하여 시계를 한 시간 앞당겨 놓는다.
▲장춘공항
▲신종인풀루엔자 반응검사..
이쁜 현지가이드의 안내로 공항을 뒤돌아 볼 시간도 없이 버스에 탑승하여 길림성 장춘의 인민대로를 따라 시내투어에 나서서 일본의 잔재가 그대로 들어난 위만팔대부거리를 차창 밖으로 관람하고 문화광장을 도보 관람한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는 옥수수가 자라고 있는데 이것은 식용보다는 자동차의 연료의 용도로 많이 이용되며 중국최초의 자동차 회사인 제일자동차와 장춘영화제작소가 있으고 산림의 도시로 상해와는 50년 정도의 경제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금호타이어와 하나은행 등의 진출하여 있고 코리아타운까지 형성되어 있으며 안중근의사가 사망한 곳도 이곳이라고 하니 일본의 끝없는 야망성과 항일투쟁이 처절성을 되 살펴보게 된다.
드넓은 땅을 스쳐 지나가며 이들을 이해하고 논하기엔 무척이나 위험스럽지만 아무런 경계도 없이 차도를 횡단하는 사람들에게서 도심속에서 무질서가 공존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이른 저녁을 먹고 다시금 장춘공항으로 이동하여 연길로 향한 비행기에 탑승한다.
▲장춘 현지 가이드..
▲장춘 문화광장..
▲석식 식당.
▲촌놈들은 요런 사진 꼭 찍는다.
▲식당주변의 도심지..
▲장춘공항..
연길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10여 분만에 숙소인 대주호텔에 도착하여 첫날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호텔객실에서 잠깐의 만남의 시간을 마련한 후 시내구경에 나서는데 연길역이 호텔 바로앞에 있어 이런저런 호객행위가 심해 몇 발자국 걷다 내일을 위해 조용히 하루를 마감한다.
▲연길공항.
▲연길의 투숙 호텔.
▲호텔에서의 만남의 시간..
▲연길 기차역의 야경..
2일차 (27일).......
아침의 공기는 상쾌하다.
구름이 백두산의 고봉을 넘지 못해 사시사철 구름에 덮여있어 백두산이라 하였고 신이 허락하여야만 볼 수 있다는 천지를 어쩜은 깨끗하게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식욕은 없지만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버스에 오른다.
가계와 건물에 한글의 박혀있는 연길은 겉보기와 달리 한 많은 역사의 현장이다.
한일합방으로 나라가 없어지고 토지의 약탈과 일본인들의 만행은 자연히 압록강을 넘어 항일투쟁의 의지를 불러 일으켰고 그들의 항쟁은 또 다른 탄압으로 이어져 대륙으로의 이동은 필연적이었다.
연길을 벗어나면서 용정으로 이동하는 길가에는 아시아에서 제일 규모가 큰 과일농장인 사과배의 재배단지가 드넓게 펼쳐지고 있고 둥그러한 산등성이에 망루가 조망되는데 이곳의 생활수준이 나아져 건강을 위해 저곳의 산을 찾는 이가 많다고 한다.
하얀꽃이 만발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장관이었을 배 밭은 푸르름에 묻혀 은폐되어 경계를 찾는 것도 애매하다.
여전히 한글과 중국어가 같이 표기되어 있는 용정은 3분의 2이상이 조선족으로 한국말이 통용된다고 하고 시내를 벗어나 좌측편으로 일송정의 정자가 조망된다.
또한 용정은 항일투쟁의 근원지로 용정중학교가 설치되어 수많은 민족투사들을 길러낸 곳이라 역사의 현장을 확인하고 싶으나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달릴 뿐이다.
해란강 줄기를 떨쳐내고 버스는 산허리를 가르며 올라간다.
평지를 내달릴 듯 하면서도 고도는 점점 높아지며 용정의 도심이 숲에 가려버릴 때쯤 침묵하고 있던 가이드가 이곳의 현장이 청산리대첩의 현장이라고 일깨워 주는데 그의 주장대로라면 김좌진과 홍범도의 연합부대의 승리의 주역은 홍범도로 그가 이북출신이라 가려져 있을 뿐이라고 하는데 또 하나의 이데올리기에 휩싸이기 싫어 역사의 현장만을 눈에 담는다.
▲연길역의 아침풍경..
▲연길시내
▲호텔의 조식..
버스는 산하나를 넘고 약 2시간을 내달려 휴게소에 정차한다.
여성들이나 큰일을 보지 않을 거면 굳이 들어설 것도 없는 상술상의 휴게소이나 얄팍한 재래식 화장실 하나 달랑 갖추고 휴게실이라 하고 산삼이며 잡다한 물건들을 팔고 있다.
어떻게 보면 농사가 주업인 이곳에서 재활용 가치가 높은 인분을 그대로 흘러보낸것도 낭비라 이중의 이득을 얻고 있는 셈이지만 그래도 급한 사람은 꼭 있는 법이라 참수리님은 오고 가는 사람들의 시선도 무시한 채 앉아 쏴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 보는 사람이 더 민망하다.
이도백하의 경계에서부터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가로등이 서있어 의아심이 드는데 강호동의 1박 2일침이 백두산에 와서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불러 중국정부를 자극해 연길에서 길림성 직속으로 행정권이 넘어가 버렸다는 가이드의 설명엔 씁씁함이 맴돈다.
중국정부가 고구려의 복원을 꿈꾸고 있는 한민족과의 격리를 위한 수순중의 한편이겠지만......
▲백두산이동 중 휴게소..
▲휴게소의 화장실..
▲설마...
▲이것은 30년된 산삼...
아직도 쌀을 먹지 않고 밀가루를 주식으로 하고 있다는 이곳부터는 쭉쭉 뻗은 미인송이 즐비하여 백두산이 가까워졌음을 암시한다.
길가의 푸르름이 가득한 숲은 벌목의 후유증으로 우람한 모습을 잃어 버렸다.
평길을 지나듯 하는 버스는 어느새 백두산입구의 주차장에 들어선다.
주말이라 그런지 비포장의 주차장에는 차량들이 빼곡하여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된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의 언저리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이도백하에서의 중식 식당..
▲식당옆의 세월의 흐름이 멈춰 버린 듯한 가계
▲고물 수집...
▲백두산 주차장
버스에서 내려 백두산산문까지 도보로 이동한다.
청명한 하늘로 보아 백두산의 진 모습과 천지는 확보되었지만 워낙 변화무쌍한 게 백두산의 날씨라기에 마음이 급한데 표를 끊는데 한참의 시간이 소요된다.
표는 입장권과 셔틀버스승차권으로 두 가지인데 산문을 통과해 여기서부터 셔틀버스로 갈아탄다.
친환경버스라고 하지만 상술이 더 돋보인 게 사실이다.
▲백두산 입구
▲셔틀버스로 갈아탄다.
30분만에 셔틀버스에서 내려 짚차로 갈아타는 곳까지 왔다.
구름한점 없는 하늘금으로 백두산의 하얀 설들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군인용으로 연상했던 짚차는 우리의 RV차량으로 기사포함 6명이 타는데 지그재그로 된 도로를 속도도 줄이지 않고 끽끽 소리를 내며 막힘 없이 올라간다.
쏠리는 몸을 곧추세우면 또다시 쓰러지곤 하여 소리라도 치고 싶지만 더 흥분한다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찍소리도 못하고 차량의 흔들림에 따라 몸을 맡겨 백두산에서 바람이 제일 세게 분다는 흑풍구을 지나 짚차승강장에 도착한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짚차로 갈아탄다.
▲휘어져 돌아가는 도로가 지리산의 성삼재 도로는 저리 가라다.
풀 하나 없는 스카이라인상으로는 사람들이 나무처럼 솟아있어 마음의 울렁거림을 부축이나 단체라 뛰쳐나갈 수가 없다.
▲짚자 주차장에서 바라본 백두산의 하늘금..
▲기상대와 주차장의 건물..
천지를 향해 올라가는 길......
발걸음이 붕붕 뜨는 것도 같고 전력질주를 위해 스타트라인에 선 것처럼 후들거리기도 한다.
▲천지 올라가는 길..
바람을 앞세우고 펼쳐지는 백두산의 연봉들과 푸르디푸른 천지의 물결은 진정 여기가 민족의 기상이 발원되는 영산으로 명명되었음에 스스로의 자부심이 끓어 오른다.
언제 또 와 볼 것이냐…..
민족의 영산의 봉우리봉우리들을 사진 찍듯이 하나하나 흩어나간다.
북한이 경제난으로 반쪽을 중국에 팔아버려 반쪽이 되어 백두산대신 중국의 장백산에 오른 지금 백두산의 주봉인 장군봉을 향한 눈길은 거둘 길이 없다.
온전한 백두산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주봉인 장군봉이 있어 다행이라고나 할까 아님 중국을 통해 천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라고나 할까.
비록 만주땅은 내 주었을 망정 백두산이라도 온전하게 지켰더라면 백두산에 올라 만주평야를 내려다보는 맛이 기가 막힐 것 같은데 감동은 곧 원망으로 변해한다.
푸르디 푸른 물결은 역사를 담은 채 고요하기만 하고 분주한 것은 사람들뿐이다.
여기저기서 추억을 남기고 가슴에 속에 신 하나를 심어 놓는다.
▲천지
▲북한의 천문봉아래 북한군 초소가 보인다.
▲천문봉에 운집해 있는 인파..
▲산행이 금지된 북한 방향..
▲서파 방향..
우리나라 땅을 비행기타고 빙글빙글 돌아 온 시간과 그 비용이 얼마든가....
정상에서 정상 주 한잔 하지 않고는 도저히 못 내려갈 것 같아 한 켠에 자릴 펴고 국산주를 나눠 마시고 감동을 사그라 뜰인 후 다시금 짚차 승강장으로 내려선다.
▲천지봉에서의 정상주..
▲짚차 주차장으로 내려온다.
천지로 내려서기 위해 현지가이드 3명과 함께 달문을 향해 내려간다.
관광코스에서 트레킹으로 변신한 이순간 백두산의 속살을 탐익 할 수 있어 또 하나의 희열로 변해 발걸음이 가볍다.
화산 지역답게 부석거리는 돌들이 있어도 내딛는 발걸음은 경쾌하고 혹독한 찬바람을 이겨내고 꽃을 피워내고 있는 야생화의 생명력에 덩달아 힘이 솟는다.
▲천지의 달문을 향해 내려선다.
▲내려다 본 온천지구..
천지의 반짝이는 물결은 계속적으로 시선을 묶어 놓고 빤이 보이는 달문을 향해 급비탈의 너덜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달문으로 내서는 너덜지대..
천지의 물길이 장백폭포를 거쳐 송화강의 원류의 길목인 승사하를 건널 때는 시리디 시린 물에 발이 급냉되어 피로가 풀린다.
▲천지에서 승사하를 통해 장백폭포수가 된다.
▲달문에서 올라다본 서파 트레킹 코스의 차일봉..
먼저 바다처럼 드넓은 천지의 맑디 맑은 물로 목을 축이고 백두산의 중심에서 천지창조의 신비함을 간직한 천상의 호수를 여기서부터 뻗쳐나갔을 국토의 등뼈인 백두대간길을 그려본다.
일렁이는 물결 때문에 물을 뜨기가 쉽지가 않아 나무발판위로 올라서는데 현지관리인이 나무를 일으켜 세워 천지입간판을 보여주며 사진을 찍으려면 1000원을 달래기에 몰빵이 5000원을 내미니 너무 많다고 받지 않은 순수함 또한 간직하고 있다.
▲천지
모두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축하주들을 나누고 있는 틈새를 몰빵과 함께 빠져나 와 조용히 백두대간의 종지부를 고하고 자축주를 나눠 마신다.
그래도 뭔가가 허전해 백두산원정의 취지를 살려보려 산행팀들을 불러 모았지만 이미 분위기는 돌아서버렸다.
▲천지에서의 1대간 9정맥 마무리의 자축..
▲천지 관리인 숙소인 듯...
이젠 장백폭포로 방향을 잡는다.
녹아 내리는 눈이 물길을 만들었고 야생화가 만발한 내림길은 평지를 이뤄 부담이 없다.
내려왔던 철벽봉의 너덜지대와 남파코스인 차일봉의 비탈길을 내려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V자를 그르며 우리들을 향해 협공하듯 내려서고 있다.
▲철벽봉사이로 달문을 향해 내려서고 있는 사람들..
장백폭포로 내려서는데 혼란이 생긴다.
폭포로 내려 갈려면 1만원의 추가비용을 더 내야하고 차일봉의 트레킹을 위해선 사고시 여행사와는 관계가 없다는 각서를 쓰라고 하는데 둘 다 불합리하지만 마음은 이미 트레킹으로 돌아서 버렸으니 더 이상 따질 것도 없어 각서에 싸인을 하고 너덜길을 택한다.
장백폭포의 그림자를 찾아 눈길은 승사하의 물줄기를 흩어 내려갔다가 너덜지대로 방향을 잡는다.
▲장백폭포의 갈림길에서 차일봉으로 올라선다.
▲장백폭포로 내려서는 길..
▲차일봉을 오르는 너덜지대..
모처럼만에 심장의 박동에 따라 떨어지는 땀방울의 진실성에 세포는 되살아나 기다시피 하여 급비탈을 차고 오르니 그곳은 또 다른 천상의 세계다.
만발한 야생화들과 평지와도 같은 분지는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밟기가 조심스럽지만 꿋꿋한 생명력으로 다시금 일어서길 바라는 이기심에 평원을 말 달리듯 팔뛰어다니다 어디선가부터 가슴시린 느낌을 받는데 거기에 높이가 60m나 된다는 장백폭포가 허연 포말을 휘날리고 있다.
▲능선은 야생화가 가득하다.
▲새우등 능선에 올라서서...
▲꼬리를 잡고 있는 산객들...
▲평원을 이루고 있다.
▲새우등능선에서 내려다 본 장백폭포..
이 물줄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온갖 생명체들을 길러내는 생명수로 골골이 흘러 가겠지.....
가까이 하고 푼 마음과 그 위용에 이끌려 뛰처 내려가고 푼 욕망을 억누르며 발길을 돌려 옥벽폭포로 아쉬움을 삭힌다.
▲유월의 막바지임에도 잔설이 남아있다.
▲옥벽폭포..
곧 허물어져 내릴듯한 봉우리들은 묘한 형상을 만들어 놓아 웅장함과 함께 이국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위험성도 내포되어있어 근접치 못하겠다.
온천지구를 빤이 내려다보며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급비탈길을 내려선다.
차츰 푸르름으로 바뀌어가고 얼마 후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온천수가 계곡으로 흘러나온다.
▲온천지구로 내려선다.
현지 트레킹가이드가 더 뿌듯해하는 하산은 또 다른 아쉬움의 뒤안길로 넘어가고 온천욕으로 말끔하게 몸을 씻고 셔틀버스에 몸을 맡긴다.
▲현지 가이드가 더 뿌듯해 한다.
▲자연 온천수..
▲온천지구의 주차장...
▲셔틀버스를 타고 백두산 산문으로 내려간다.
저녁은 이도백하에서 송아지한마리로 한단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다.
첫날부터 몰빵과 나의 지칠 줄 모르는 주량에 기가 질린 사람들이 우리들의 테이블을 슬금슬금 비켜나 기분이 좀 그렇지만 이 또한 술 한잔으로 경쾌히 넘기고 장백산호텔의 숙소로 들어간다.
▲송아지 한마리를 잡는다고 잔뜻 기대했던 저녁..
▲여기가 중국 맞어..
이젠 누구를 부를 처지도 아니고 동갑내기들끼리 뭉쳐 민생투어 길에 나서는데 마침 우리에게 익숙한 길거리풍경이 있어 접근해보니 중국인의 상술로 인해 한국인들이 곤욕을 치루고 있다.
계산을 할려고보니 처음에 메뉴에 가격은 10배 가까이 부풀려있고 메뉴판도 치워져 버리고 막무가내로 돈을 내어 놓으라고 으름짱을 놓고 있는데 저들이 당하지 않았으면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들은 훨씬 더하면 더했지 덜 했지는 않았을 것이다.
휴게소에서 그리고 백두산의 온천지구에서의 산삼의 흥정에서부터 이곳에서 느껴지는 중국인의 민족성은 우릴 봉으로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중국의 시골의 가계에서 술을 먹을 때는 선 계산을 하고 먹어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고 현지가이드도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체험하였다.
▲중국인의 상술에 격해하는 내국인들..
발짓 손짓으로 저녁술상을 마련하여 백두산등정을(?) 자축하고 아침을 맞는다.
▲장춘시 민생투어...
▲어렵사리 마련했다...
3일차 (28일).......
어제의 길을 다시금 거슬러 올라 좌측의 비포장길로 들어서고는 하염없이 숲길을 달릴 뿐 보이는 것이 없다.
땅의 넓음을 실감하며 점점 지쳐가며 이런데 서 차가 고장 나면 에니카서비스를 불러도 숲속에 깊숙이 박혀 여기가 어디라고 알켜 줄 수가 없어 밀고갈수 밖에 없고 통닭을 시키느니 삥아리를 키워 잡아먹는 게 낫겠다는 농담 속에 두만강발원지에 도착한다.
▲숙박했던 길림성 장춘시의 장백산 호텔...
▲호텔옆의 장춘시 신민광장..
▲두만강 발원지로 향하는 비포장길..
▲일자형의 도로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가이드는 어제의 산행에 피곤이 가중되어 목이 잠겨 침묵한지 오래라 스스로들이 그 유래나 뜻을 감으로 알아채야 된다.
시멘트 말뚝에 파이프를 가로질러 놓은 것은 밀수방지를 위한 차량통제시설이고 이곳을 넘어가면 좌측의 숲에 국토경계비가 세워져 있으며 두만강의 물줄기는 철책으로 막혀있는 북녁땅으로 부터 시작되고 전방에는 북한초병이 지키고 있다.
처음 만난 광경이라 긴장감이 들었지만 곧 같은 민족임을 자각한 님들은 북한초병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는 여유를 보인다.
▲밀수를 방지하기 위한 차량 차단벽이라 하는데...
▲두만강 발원지...
▲두만강을 경계로 5km 간격으로 1~21 까지 경계비가 있다고 한다.
▲해당화..
이곳은 민족성이 없다는 결코 올 수 없는 오지중의 오지다.
철책이 두 국가를 가르며 길가로 이어지고 두만강의 수량이 더해져 제법 강을 이룬 곳에 김정일 낚시터가 있다.
훌쩍 뛰어넘으면 북한으로 이곳도 북한의 성지라 숲사이로 잘 다듬어 놓은듯하고 중국쪽의 초소에서는 이들과의 마찰을 피하려는지 초병을 보내 사진촬영을 저지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진촬영금지 안내판이 있었지만.....
중국군인에 밀려 차에 올라 두만강 가를 하염없이 달린다.
▲국가 분계선을 따라 도로가 이어진다.
▲수량을 더해가는 두만강...
▲김일성 낚시터...(훌쩍 뛰어 넘으면 북한이다.)
▲북한군인이 사진촬영을 저지한다.
군사도로의 목적보다는 관광의 목적이 강한듯한 도로건설로 섰다가 다를 반복하고 강 건너로 북녁땅의 건물들이 조망되어 다들 관심이 쏠렸는데 그것도 자주 나타나다 보니 시들해간다.
흘러 드는 물이 없는데도 불지도 줄지도 않아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고 가는 곳으로 까치한마리가 날라다 준 열매를 먹고 여진족의 시조를 잉태하여 천녀욕궁처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는 옥녀늪은 가이드의 침묵으로 스쳐 지나가고 점심을 먹기 위해 우리의 콘도시설과 같은 광평휴가촌으로 들어간다.
한꺼번에 밀어 48명이나 되는 인원이 예약도 없이 밀어 닥친 것으로 보아 짐작했어야 했는데 20분이면 된다는 점심식사는 1시간이 지나서도 감감무소식이다.
중간에 마땅한 마을도 없고 숭선에 도착하여서도 식사할 곳이 없어 차선책으로 선택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 시간 때문에 옥녀늪을 다녀올 기회마저 잃어 버렸다.
그나마 이곳이 1270m의 고지라 에어컨바람보다 시원한 바람이 끓어 오르는 열기를 식혀주고 시방이 반찬이라 반찬이 다 올라오기도 전에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다.
▲차장으로 바라 본 옥녀늪..
▲광평휴가촌..(점심장소)
▲휴가촌에서 바라 본 옥녀늪..
▲무섭지 않는가..........
다시금 공사중인 비포장길을 타고 중국과 북한의 교역이 두만강의 다리를 통해 이뤄진다는 숭선에 도착하였다.
강 건너의 북한마을과 밭일을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이고 북녘의 강가에서 목욕을 하는 꼬마 애들이 보인다.
다리를 통제하는 숭선고성리변경검사참은 사진조차 거부하여 북한군과 공존하는 현실을 확인한 후 가계에서 아이스크림하나씩을 물고 세월의 변화에 무디어진 마을주민과의 어설픈 대화도 나눠본다.
▲북한의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중국의 민가와 북한의 초소...
▲중국과 북한의 첫번째 다리(중국측 차량만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중국의 숭선..
▲숭선 세관
곳곳은 공사중이다.
남평으로 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북한은 평지를 이룬 중국과 대비되어 산의 꼭대기까지 밭을 일구어 놓았는데 강하나를 사이에 놓고 극심한 대조를 이뤄 보기가 안타깝다.
곳곳에 북한의 선전문구와 북한의 마을들이 보이는데 물이 흐려지는데 그곳이 철광석채석지인 무산인 줄은 뒤 늦은 가이드의 말을 듣고 알았다.
남평에서 잠깐 휴식의 시간을 가지고 화룡을 거쳐 삼합으로 이동하는 도중 윤동주시인 생가의 안내푯말을 보지만 어디까지나 눈이 부지런한 사람만의 몫이라 여행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곳곳이 도로공사 중이다.
▲북한의 산비탈 부터 봉우리까지 밭으로 일궈 놓은 모습에서 빈곤이 느껴진다.
삼합의 전망대에 올라 북한의 회룡시를 관망하는데 어느새 공안이 다가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중국의 배려겠지만 그래도 북한의 힘이 미치는 것을 확인하니 그나마 당행이라고나 할까...
망강각에서 단체사진만을 남기고 순순히 물러나 연길로 이동하는데 오늘 버스만 12시간을 탔다.
▲삼합의 전망대에서 북한의 회룡시조망
인공둑을 만들어 물을 채웠다는 연길의 브르하통하의 친수광장은 불을 밝혀 화려하게 변신하였고 우리들의 차안에서의 부딪김도 한잔 술과 전신맛사지로 풀어진다.
▲연변자치구 연길로 이동후 식당앞에서...
▲전신 맛사지 대기...
그 동안 참았던 비가 주적주적 내린다.
가이드의 신종인플루엔자에 대한 경고도 있었지만 피로에 지친 사람들은 휴식을 하고 있고 밖으로 나돌지 못한 주당들 만이 로비를 차지하고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나눈다.
▲호텔 라운지에서의 만남의 자리..
4일차 (29일).....
귀국 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부터 알람이 울린다.
몰빵과 둘이 호텔을 빠져나 와 사람들이 빠져나 오는 분주한 연길역으로 발길을 돌려 인간의 체취를 맡고 호객행위로 더욱 시끄러워진 광장을 뒤로하고 연길공항으로 이동한다.
▲분주한 연길역...
▲연길역의 기차시간표
▲연길 공항...
연길에서 장춘까지 장춘에서 인천공항의 역순인 길은 눈에 익어 순조롭고 무엇보다도 그리운 고국으로 향한다는 마음에 피곤함에 부어 오른 눈마저도 부담스럽지 않다.
외국에 나가봐야 애국자가 된다고 인천공항의 분주함에 생기가 느껴지니 대한민국 만세다......
▲대한민국 화성휴게소에서...
첫댓글 난 술도 안취했는데 ~~?? 분위기 Up 되었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