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으로의 여행 크로아티아, 발칸을 걷다]
Serbia
05 세르비아의 하얀성, 베오그라드(1)
베오는 흰색, 그라드는 도시를 뜻한다. 이곳은 선사시대 유럽 문화인 빈카 문화가 있었으며 키릴 문자와 라틴 문자를 사용한다. 칼레메그단의 요새에서 바라본 베오그라드의 신시가지 모습으로, 이곳에서 사바 강과 도나우 강이 만나 흑해까지 흘러간다.
베오그라드는 칼레메그단이라고 부르는 성채(城砦)가 있는 석회암대지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시(市)가 창건된 기원전 4세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기간까지도 수 많은 침략으로 인해 고대, 중세의 유적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헝가리에서 묵었던 숙소는 도나우 강이 바로 앞에 내려다보이는 호텔이었다. 거의 다섯 시간을 달려와 묵은 이곳은 생각보다 주위 풍경이나 모든 것이 좋았다.
오전에 아침 식사를 하고 조금 일찍 출발하였다. 부다페스트를 벗어나 세르비아 국경에 도착했을 때는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헝가리를 벗어나 세르비아 입국 심사를 받았다. 국경을 지나자마자 바로 있는 휴게소에 들른 다음 톨게이틀를 지나 옆으로 흐르는 도나우 강을 끼고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베오그라드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다 되었다.
베오그라드로 들어가면 다리를 건너게 된다.
다리를 건널 때 오른쪽이 사바 강, 왼쪽이 도나우 강이다.
우선은 호텔로 이동하였다. 호텔은 중앙역 근처에 있었다. 차를 호텔에 주차시켜놓고 밖으로 나갔다. 어디로 방향을 잡을까 생각하다가 가까운 중앙역 근처로 가보기로 하였다.
역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다른 서유럽의 여러 역사 같은 화려함은 없었지만 그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역이다. 천천히 거닐다 역 앞 광장에 있는 철로 된 줄에 걸터앉았다. 약간 흔들리는 그네처럼 앞뒤로 흔들거리며 앉아있었다.
그때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다시 들었을 때 믿지 못할 장면이 나타났다.
그라츠에서 보았던 그 여자 “엘레나”였다. 둥근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짐 가방을 끌고 다른 한 손으로는 메는 가방을 어깨에 멘 채 그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주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먼 거리도 아닌 곳에서의 모습은 분명 엘레나였다.
나는 일어나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그녀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그녀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내 쪽을 바라보았다.
우리 둘의 눈이 마주쳤다. 둘은 동시에 반갑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의 가방을 하나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호텔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호텔 예약을 하지 않고 왔다고 하였다.
나는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이 얼마 멀지 않은 곳인데 가보자고 하였다. 다행히 방이 있어 체크인을 하고 좀 쉬었다가 호텔 바에서 맥주 한잔하자고 약속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방으로 돌아와 있으려니 자꾸 시계만 보게 되었다. 7시가 되기도 전에 바로 내려가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조금 후 그녀가 내려왔다. 둘은 마주보고 앉아 맥주를 시켰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는 어색함이 잠시 흘렀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자 말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오셨어요?”하고 붇자 그녀는 열차를 갈아타고 왔다고 했다.
바로 그녀가 나에게 반문했다.
“비행기 타고 오셨나요?”
나는 웃으면서 손을 저어 아니라고 하였다. 차를 가지고 왔다고 하였다.
“이전에 동서유럽을 차를 가지고 다닌 경험도 있고 내비게이션이 있으니 그리 어렵지 않네요.”하고 대답하였다.
그녀는 “아, 네.”하고 짧게 대답하였다.
내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발칸을 여행하실 생각을 하셨는지요? 이곳 발칸에는 한국과 국교가 없는 나라도 여러 곳 있는데, 지금 계신 이 세르비아도 마찬가지구요.”
그녀는 “글쎄요,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유럽을 여행하면서 꼭 한번은 마지막 지역으로 발칸 국가를 여행하고 싶었어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쨌건 중요한 건 아무 탈 없이 여행을 마치는 겁니다. 특히 수교가 없는 곳에서는 말이죠.”
“한잔 마시죠.”하고 둘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가 나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베오그라드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나는 “네.”하고 대답하였다. “베오는 흰색, 그라드는 도시라는 뜻이죠.”
“그리고 이곳은 선사시대 유럽 문화인 빈카(Vinca)문화가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죠. 강물이 넘쳐 홍수가 많이 일어난다는 신기두눔(Singidunum)이라는 곳에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 더 아시는 것은?”
“글쎄요.”하고 나는 웃었다.
“이 도시는 2000년의 세월 동안 많은 분쟁을 겪은 도시입니다.”
“유고슬라비아와 신 유고슬라비아연방의 수도였고 현재는 아시겠지만 세르비아 제1의 도시죠. 인구는 200만 명 정도입니다.”
내가 그녀에게 이야기하였다.
“세르비아는 인구가 700만 명이 조금 넘습니다. 1인당 국민 소득도 만 달러가 조금 넘지요.”
이렇게 말하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계속 이야기해 보라는 제스처를 하였다.
“화폐는 디나르(RSD)를 사용하는데 대략 1유로 대 110디나르 정도 됩니다. 또 여러 인종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어떤 인종이죠?”하고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세르비아인이 가장 많은 83퍼센트 정도, 보스니아와 집시가 3퍼센트를 조금 넘고 헝가리인이 약 4퍼센트 정도 차지한답니다.”
“종교도 정교회의 비율이 85퍼센트로 가장 높죠. 가톨릭이 5.5퍼센트, 이슬람이 3.1퍼센트, 개신교 1.1퍼센트 정도 됩니다. 이곳의 글자는 로마자와 키릴 문자 다 사용합니다. 하지만 키릴 문자가 더 보편적이고 언어는 세르비아어를 사용합니다.”
그녀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시더니 말하였다.
“그럼 오늘의 마지막 설명은 제가 장식하기로 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이야기 해보라고 하였디ㅏ.
그녀는 “세르비아는 2006년 6월 5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에서 분리되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정말로 유쾌한 여자였다.
내가 말하였다.
“오늘은 좀 피곤하실 겁니다. 저도 장거리를 운전하고 와서요. 올라가서 쉬시고 내일 베오그라드를 함께 보시면 어떨까요?”
그녀가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는 내일 아침 9시에 로비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한국을 떠난 지 얼마 안 된 탓인지 시차 때문에 뒤척이다 아침을 맞이하였다. 일어나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한 다음 나갈 준비를 하였다. 호텔에서 환전을 해주었다.
로비에 9시가 조금 안되어 나왔다. 의자에 앉아 그녀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데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반갑게 눈인사를 하였다.
“어디를 먼저 갈까요?” 하고 나는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칼레메그단으로 먼저 가죠. 그리고 그곳에서 다음 장소를 생각하죠.” 하고 말하였다.
우리는 첫 장소까지는 택시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우리 둘은 칼레메그단 입구 도로에서 내렸다. 칼레메그단은 원래 요새였으나 현재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그녀와 나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차에서 내려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엘레나”하고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면서 “네”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혹시 ‘칼레메그단’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그녀는 “아뇨, 하지만 동로마 시대에 건축한 요새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어요.”하고 대답하였다.
“칼레는 요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메그단은 전쟁터라는 뜻이고.”
우리는 천천히 요새의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에 그녀에게 성에 관하여 설명해 주었다.
조금 떨어져 보이는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이곳이 정말 요새라는 느낌을 주었다.
내가 말하였다.
“이 성의 입구에 있는 높은 성문은 스탐블 게이트(Stamble Gate)로 1750년 오스만 투르크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곳을 한번 보세요. 유럽에 있는 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죠. 해자입니다.”
성 입구로 들어가기 전의 1차 방어선인 해자는 다른 어느 곳의 해자보다도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보는 것은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18세기에 재건된 모습입니다. 이곳을 점령하고 있던 오스트리아가 전세가 바뀌어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오스만 투르크에 유리한 기반 시설을 파괴하였고 이것을 다시 오스만 투르크 군이 복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오스만 투르크 군이 만든 것입니다.”
“이곳에는 아주 오래전 약 2세기경 켈트족이 처음으로 성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150회의 전쟁을 겪으면서 주인이 40번이나 바뀐 곳이니 얼마나 전쟁이 치열했는지 알 수 있겠죠.”
안으로 들어가 강의 전망이 보이는 곳으로 갔다. 요새 끝자락이었다. 요새 아래로는 사바 강과 도나우 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베오그라드의 상징인 승리의 기념탑이 있었는데 시가지를 내려다보면서 강을 굽어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아주 오랜 옛날에 수많은 정쟁이 있었겠죠. 아마도 저기 아래로 흐르고 있는 두 강은 그런 역사를 잘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이곳 칼레미그단은 아가 이야기하였듯이 켈트족을 시작으로 535년경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에 건설된 요새입니다. 공원으로 조성된 것은 1868년도이니 그것조차도 오래되었네요. 현재는 지금 우리가 보았듯이 군사용 성채, 망루, 성벽만이 남아있습니다. 공원에 현대식 무기들이 놓여있는 것을 보면 현재까지도 군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는 하나봅니다.”
엘레나와 나는 벤치에 앉았다. 조용한 오전 공원의 모습은 한적하고 좋았다. 공원 안에 있는 끼오스끄는 이제 문을 여는 듯하였다.
“세르비아 사람들은 세 손가락을 펴서 서로 인사한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하고 나는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아뇨, 모르는데요.”하고 대답했다.
“이것을 스르비아라고 합니다. 엄지, 검지, 중지를 펴고 서로 인사하는 것이죠.”
“스르비아”하고 그녀가 반복해서 말하였다.
얼마쯤 있었을까? 나는 엘레나에게 일어나서 나가자고 하였다. 천천히 다시 택시에서 내렸던 곳으로 걸어 나갔다. 공원 입구로 가는 길에는 오른쪽으로 예술가들의 흉상이 들어서 있었다. 조금 더 걸어 나갔다.
엘레나가 앞쪽에 있는 조각을 보면서 나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저 앞에 있는 조각에 대해서 아세요?”
조각은 풍만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두 손은 뒤로 쪽 뻗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 조각은 네모난 돌로 되어있는 받침대 위에 있었다.
나는 엘레나를 보면서 설명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고아들을 프랑스 여인들이 돌봐 주었던 것에 대해 감사함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곳 주위의 화단은 프랑스식 정원 양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엘레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나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조각상 주위를 천천히 돌고 있었다. 잠시 후 엘레나는 나에게 이리 와보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녀는 조각 받침대 뒤편에 세르비아어로 쓰여 있는 글을 보고 물었다.
“혹시 이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
“글은 모르지만 뜻은 알지요. 이 글은 ‘1914년-1918년 사이 프랑스가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는 프랑스를 사랑합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녀가 걸어 나가면서 나에게 물었다.
“혹시 노비사드 가보셨는지요?”
“노비사드? 아, 어제 이곳으로 올 때 점심 식사를 했어요. 그때 잠시 들러서 왔지요.”
“이곳 세르비아의 제2의 도시라고는 하는데 보기에는 그렇지도 않던데요. 하지만 생활 수준이 높은 곳이라고 합니다. 철도, 도로, 운하 등 교통 시설이 잘 발달되어 있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녀는 아쉽다는 듯 “실은 그곳에 가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동선 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무슨 다른 이유가 있나요?” 하고 나는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특별히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런데 그 도시는 조그만 어촌에서 시작하였다고 하는군요. 또한 역사적으로 오스만 투르크와 오스트리아 경계 지점에 있어 군사적으로 중요하게 되면서 발전한 도시랍니다. 19세기에 오스만 투르크 치하에서 세르비아 사람들이 도나우 강을 건너면서 정착하기 시작한 곳이고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시절 세르비아인의 중심지가 되었답니다. 현재는 세르비아의 공업 중심지이고 하고요.”
“제가 본 곳은 페트로바라딘 요새인데 그 곳은 헝가리의 시토회 수사들에 의해서 13세기에 만들어졌어요. 주변 국가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오스만 투르크에 함락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다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탈환하여 재건하였다고 합니다. 요새 아래로는 도나우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2차 대전과 유고슬라비아 내전 시 두 번이나 부서지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죠. 그 요새에는 큰 바늘이 시침, 작은 바늘이 분침인 상징적인 시계탑이 있습니다. 요새 위에서 내려다보면 도시 전체와 유유히 흐르고 있는 도나우 강이 보인답니다.”
엘레나와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스템블 게이트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 왼편으로는 군사 박물관으로 가는 계단이 있고 아래에는 탱크가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엘레나에게 말하였다.
“저기 군사 박물관은 두 개의 층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어요. 0층, 한국식으로는 1층이죠. 여기에는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1층엔ㄴ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것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이전에는 군사들의 병영 숙소였고 오스만 투르크 군인의 흡연 장소였기도 합니다.”
엘레나는 나를 쳐다보더니 물었다.
“저기 아래 보이는 탱크는 왜 흰색이죠?”
나는 엘레나를 보면서 이야기하였다.
“탱크가 하얀 이유는 사막용 탱크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걸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성벽 끝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베오그라드의 신도시가 보였다.
두 개의 강줄기가 하나로 합쳐서 흘렀다. 엘레나는 나에게 물어보았다.
“저 두 개의 강줄기는 무슨 강이죠?”
“저 강은 사바 강과 도나우 강입니다. 흑해까지 흘러갑니다.” 엘레나와 나는 한동안 강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엘레나에게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