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17. 10. 22(주일) - 성령강림절후 스무 번째 주일 - (2017년 43주)
제목; “참된 개혁은 회개에서 나온다!”(개혁5)
성경; 요나 3:1-10(p.1288) (시 130:5-7, 272<330>, 585<384>, 3장)
<예배의 부름> (시 130:5-7)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 지난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깊어 가는 가을에 우리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지난 주에 추수감사절을 보냈는데, 감사가 넘쳐나고 풍성한 추수, 특별히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귀한 성도님들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지 500주년이 되는 해, 지난 9월 첫 주부터 한국장로교출판사에서 나온 ‘종교개혁 500주년기념, 한국 교회 강단 공동 설교의 꿈’이란 책을 기초로 해서 “개혁 이야기”란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첫 번째 말씀은 “야곱과 개혁 이야기”(창 35:9-15)란 제목으로 ‘험악한 나그네 인생’을 살아온 야곱이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놀라운 새 이름을 얻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인 세겜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므로, 잃어버렸던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의미를 회복하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었던 자손의 축복과 땅의 약속을 받습니다. 종교개혁이 ‘아드 폰테스’, 곧 ‘본질(근원) 로 돌아가는 것’이듯이, 우리도 종교 개혁의 본질인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총(Sola Gratia), 오직 성경(Sola Scriptura)”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신앙과 삶을 개혁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말씀은 “희년, 가장 아름다운 회복”(레 25:8-17)이란 제목으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희년의 은혜와 회복에 관해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희년에 공포되는 “자유”의 의미는 ①관계의 자유, ②땅의 자유, ③인간의 자유이며, “자유를 공포하라”는 개혁과 관련하여, ①‘개혁을 공포하라’는 것으로, ‘예배 회복 운동, 하나됨의 운동, 신앙 실천 운동’으로 구체화되어야 하며, ②‘고엘 제도를 공포하라’는 것으로, ‘토지의 상환자, 종의 속량자, 후손의 계대자’로서의 희생과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희년에 선포되었던 ‘자유’와 실제적인 회복의 상징인 ‘고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세 번째 말씀은 “다음 세대를 위한 신앙 개혁”(삿 2:7-10)이란 제목으로, 이스라엘의 「범죄(우상숭배)→징계(압제,고난)→회개→구원(해방)→평화(안식)」이라는 다섯 개 사이클로 이루어진 사사기 시작 본문인, 가나안 정복의 지도자 여호수아와 그 세대들이 죽은 후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중요한 역사적 사실 몇 가지를 보여줍니다. ①여호수아의 죽음(8-9), ②역사의 산 증인들의 죽음(10), ③지도자들과 역사의 산 증인들이 죽은 후에 일어난 우상숭배와 배교입니다(11-15). 그리고 신앙 공동체의 계승과 회복을 위해 ①강력한 영적 지도자, ②신앙 구성원들의 은혜와 영적인 체험, ③철저한 교육과 양육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네 번째 말씀은 “어떻게 사는가? 인생 개혁 선언”(전 1:1-14, 12:13-14)이란 제목으로, ‘헛되고 헛된’(헤벨, ‘공기, 호흡, 숨<입김>, 불만족함, 공허함’)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은, “에노스”(에노쉬, ‘덧없음, 연약함), 곧 ‘부스러지기 쉬운 존재, 죽을 운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 헛됨을 면하는 길은 인간의 모든 것을 아시고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12:13-14).
오늘은 다섯 번째 말씀으로 요나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4)는 경고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므로 구원 얻는 니느웨 성 이야기로 “참된 개혁은 회개에서 나온다!”(욘 3:1-10)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 들어가는 이야기
회개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회개의 목표는 천국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하나님의 다스림(통치)을 받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살았던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사는 것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이르게 하는 회개는 우리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성령)이 임해야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여 함이라”(요 15:16)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여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찬송가 190장, 행 2:4)라고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 성령을 의지해야만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있어야 참된 회개가 나옵니다. 그렇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 하는 회개는 근본적인 변화에 이르지 못합니다. 잠깐 뉘우칠 뿐입니다. 모든 종교에 이러한 부분적 회개가 있으니 그것이 죄인을 새롭게 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회개를 합니다. 그것이 참된 개혁입니다.
II. 전체(숲) 이야기
구약성경은 율법서 5권, 역사서 12권, 시가서 5권, 선지(예언)서 17권 등 39권으로 되어 있는데, 앞서 각 부분에서 한 권씩 살펴보고 오늘은 예언서 말씀 중 하나인 요나서를 통하여 참된 개혁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요나”서는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요나서는 구약성경에서 가이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선민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미침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적대국이고, 종국에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 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요나서의 기적은 큰 물고기 배속에서 요나가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큰 성 니느웨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이야기가 더 큰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1:2). 니느웨의 죄악을 지적하여 회개시키라는 말씀입니다. 니느웨는 당시 전 세계를 지배하는 강대국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누구건 잘되면 방종에 빠지고 타락하기 쉽습니다. 돈이나 권력이 많아지면 절제하기 어렵습니다. 전 세계에서 부가 들어와 강해지니까 니느웨도 방종하고 타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니느웨의 강포가 극심하자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멸망시키겠다고 경고를 하십니다. 요나가 그 경고를 전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앗수르가 멸망하기를 원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힌 앗수르가 멸망하기를 마음속으로 바랐습니다. 그래서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1:3).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바다의 풍랑을 일으키셨고, 같은 배에 탄 사람들이 요나를 바다로 던지자 풍랑은 잔잔해졌습니다. 그리고 바다의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습니다(1:17). 요나는 큰 물고기 배속에서 자신의 죄를 깨달았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회개의 마음도 주셨습니다(2:2-9). 큰 물고기 배속에 3일간 갇힌 요나가 하나님께 드린 회개 기도의 결론은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2:9)입니다.
요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요나로 하여금 다시금 니느웨로 가게 하십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자 니느웨가 회개합니다(3:5-8).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니느웨를 용서하십니다(3:9-10).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요나서는 모든 민족과 세상을 사랑하시는 자비하신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이 사랑의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죽은 인간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요 3:16). 죄 없으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대속의 사실을 믿게 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섭리를 아무리 거부하려 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요나서는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사랑 이야기 안에는 회개를 통한 개혁이 있습니다.
III. 본문(나무) 이야기
오늘 우리의 본문 말씀 요나 3:1-10은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회개”란 히브리어 ‘슈브’(בושׁ)나 헬라어 ‘메타노이아(에오)’(μετάνοια<εω>), 둘 다 ‘돌아서다, 돌이키다, 회복하다, 새로워지다, 전환시키다’는 뜻입니다. ‘사상이나 감정의 변화, 실제적인 개조, 변형’으로 ‘과거 행한 것에 대한 반전, 탄식’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겔 14:6)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
이와 같이 회개는 잘못된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하고 다시금 돌이켜서 바른 길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왜곡된 마음이 바른 마음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 말씀이 이러한 참된 회개가 무엇이며 그 회개를 통한 개혁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회개는 불순종에서 돌이켜 순종하는 것입니다(1-2).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1-2)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였다”는 1절의 표현은, 이미 한 번 불순종하여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는 요나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여전히 당신의 말씀 심부름꾼, 요즘 흔히 쓰는 말로 메신저(messenger)로 사용하려 하셨음을 알려줍니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표현은 예언을 가리키고, 그 ‘여호와의 말씀이 아무개에게 임하였다’ 함은 말씀 계시 사건이 아무개에게 일어났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또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였다”는 표현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메신저로 뽑은 사람이 당신의 뜻을 한 번 거슬렀다고 해서 곧바로 그를 버리시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에 맞추어 그에게 다시 한 번 같은 사명을 맡기시며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지난날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번 실수했다고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또 다시 기회를 주시려고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행여나 지금 잘못된 길로 들어서신 분이 계시다면 과감하게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신천지나 구원파 같은 이단의 유혹에 빠졌다고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서면 우리 하나님은 분명 다시 받아주시고 다시금 당신의 일꾼으로 삼아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회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3-4).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3-4)
두 번째 명령을 받은 요나가 할 일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명한 바를 니느웨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었던 니느웨로 갑니다(3). 그리고 하루 동안 걸어다니며 외칩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4)
여기서 ‘무너진다’(네흐파케트, תכפהנ)는 히브리 낱말은 ‘뒤엎어진다’라는 뜻입니다. 이 낱말은 창세기 19:21에서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실 때 ‘뒤엎어버린다’라는 동사의 수동형입니다. 결국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구절은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뒤엎어진다는, 하나님께서 멸망시키겠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니느웨가 지난날 소돔과 고모라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엄청난 죄악을 저지른 도시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선지자의 임무는 늘 하나님께 받은 명령을 하나님이 정해주신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는 예레미야 1:7에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좀 더 똑똑히 드러납니다.
이제 요나는 두말 않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니느웨로 갔습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적국이고 이방인들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회개의 메시지를 외칩니다.
그런데 이 멸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요나의 태도가 문제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고 진지하게 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전할 때 걸어서 사흘 길이나 되는 큰 성읍을 하루 만에 해치웠습니다. 전 주민이 한 번이라도 들으려면 사흘도 부족하지만 하루에 다 해치운 것입니다. 전심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얼렁뚱땅, 성의 없이 그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어지는 4장에 보면 요나는 니느웨가 망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저 전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차피 듣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요나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십니다. 악이 극에 달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멸망당해야 할 인간들이지만 그래도 그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나 4:11에 보면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나옵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 4: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탕자를 기다리는 그 사랑으로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요나가 전하는 그 무성의한 예언을 들은 그들의 마음을 설득하십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3. 회개는 믿음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5-8).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니느웨 성에 들어가서 하룻길 동안 하나님께서 명하신 경고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이 요나의 경고의 말씀을 들은 니느웨 성에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놀랍게도 니느웨 사람들은 재난을 경고하는 요나의 예언을 듣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5). 글의 흐름으로 볼 때 여기서 ‘믿었다 함’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요나를 통해 선포하신 재앙이 사실이 되리라는 점을 그대로 받아들였음을 뜻합니다. ‘성이 무너진다’, ‘성이 뒤엎어진다’는 듣기에 매우 좋지 않은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함은 그 말씀을 전하게 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이 재앙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낯선 이방인 선지자가 나타나서 외치는 말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선지자를 보내심은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그들이 회개하고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면 구원이 임합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첫째, 그들은 굵은 베 옷을 입고 금식하며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5-8a).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5-8a)
요나의 경고의 말씀을 들은 니느웨 왕은 자신이 먼저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 조서를 내립니다. 사람이나 짐승 할 것 없이 전부 다 먹지도 말고 물로 마시지 말라고 금식을 명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회개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굵은 베”(사크, קשׁ)는 곡물을 담는 자루(창 42:25)나 부대(레 11:32)로도 번역되는 낱말로, 삼베로 만든 볼품없는 거친 옷을 가리킵니다(사 3:24). 히브리인들은 전통적으로 극도의 슬픔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죄악에 대하여 참회하며 애통해 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 바로 이 굵은 베 옷을 입었습니다(왕상 21:27). 따라서 누구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으라는 말은 곧 자신이 지은 죄를 애통해하며 철저하게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이 예고해 주신 재난에서 벗어날 길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지위가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굵은 베 옷을 입었습니다(5). 니느웨 성읍 백성들과 왕은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금식”은 개인의 금식이 아닙니다. 한 성읍에 사는 사람이 함께 하는 금식입니다. 금식은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기 위해서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자신이 하나님께 바라는 바를 하나님이 꼭 이루어주시도록 자신의 기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합니다. 따라서 굵은 베옷을 입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금식함은 자신들에게 재난을 내리시기로 하신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예언했던 요엘은 말합니다.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욜 1:13-15)
여호와의 심판을 연기하고 면하기를 원하십니까? 굵은 베 옷을 입고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슬피 울며 금식하며 부르짖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8b).
니느웨 백성들은 굵은베 옷을 입고 금식하며 철저히 회개한 후에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8)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부르짖다’(카라, ארק)라는 낱말은 ‘마주치다’라는 기본 의미에서 유래하여, ‘말을 걸다’, ‘간구하다’(왕하 20:11) 등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회피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겸허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사정을 아뢰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 ‘기도’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애타게 부르짖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죄인인 인간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사죄와 구원의 은총을 간구해야 합니다.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는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마 7: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죄를 용서 받고 구원 얻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매어달려 전심으로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그들은 돌아섰습니다.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났습니다(8c).
굵은 베 옷을 입고 금식하며 철저히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은 니느웨 백성들은 이제 구체적으로 그들의 삶 속에서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났습니다. 과거의 죄악된 모습에서 완전히 돌아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22에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고 말했습니다. 개가 그 토하였던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몸을 씻고서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우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완전히 돌아서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사죄의 은총을 간구하고서도 여전히 죄악된 행실을 공공연히 일삼는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런 이유에서 요나는 마지막으로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떠나다”(슈브, בושׁ)는 말의 의미는 ‘돌아서다’, ‘돌아가다’(창 18:33)는 뜻으로 앞서 살펴본 대로 ‘회개’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을 향해 있던 사람은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각종 죄악에 그 발이 빨랐던 사람은 그 발걸음을 돌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이단 사이비의 유혹과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우선하는 우상 숭배에 빠져있다면 지금 즉시 돌아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6-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 떨어지기 전에 악한 길에서, 잘못된 삶에서 돌아설 수 있기 바랍니다. 물론 지금 내가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돌아서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4. 회개를 통해 복을 받습니다(9-10).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9-10)
요나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경고의 말씀을 듣고 믿은 니느웨 백성들이 굵은 베 옷을 입고 금식하며 철저하게 회개하는 모습을 본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고(9),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10).
니느웨 사람들이 굵은 베 옷을 입고 금식하며 철저하게 회개하면서 하나님은 본래 계획했던 재앙을 내리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행한 것, 곧 그들이 철저하게 회개하고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유추해 보면 니느웨 사람들은 굵은 베 옷을 입고 금식하며 기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잘못하고 있던 바를 그만 두거나 바로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들만 12만명이나 되는 니느웨 성 사람들은(4:11)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사십 일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아서는 백성들을 구원해 주십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나서를 면밀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뜻은, 그저 니느웨의 멸망을 미리 알려주시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경고를 통해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 살리시려는 데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은총과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깨달은 성도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입으려면, 앞서 살펴본 대로 니느웨 백성들처럼 먼저 굵은 베 옷을 입고 금식하며 철저하게 회개해야 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야 하고, 지금 가는 길과 행위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과 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지금 나의 죄를 고백하고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입술만의 회개가 아니라 지금 가고 있는 악한 길에서 돌아서고, 지금 자행하고 있는 거짓과 강포에서 떠나시기 바랍니다.
IV. 개혁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니느웨는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니느웨는 지금 우리 속에 있습니다. 누구나 삶이 평온하고 잘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간절함이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교회도 등한시하고 가족도 관심이 없게 만드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을 재로 만들어 그 위에 앉아 회개하십시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받으십시오. 그러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자 않고 보내는 모든 시간은 죄로 가득할 뿐이요, 그 결과는 악행이며, 삶의 고난입니다.
지금 여러분 자신을 점검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무엇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돈입니까? 내 직업입니까? 가족입니까? 아니면 그저 무기력해 하고 우울해 하고 신세타령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것을 재로 만들어 그 위에 앉아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사십 일이 지나면 멸망이 옵니다. 사십 일은 상징입니다. 어느 날 멸망이 강도처럼 임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이 내게 멸망을 주는 것입니다. 점검해 보고 확인해 보십시오. 내가 지금 잘되고 있습니까? 아무 문제가 없습니까? 주변 사람들을 진정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나의 삶의 도움과 구원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분께만 생명이 있습니다. 다른 생명은 거기서 나온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분께만 능력이 있고, 그분께만 모든 좋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그토록 좋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만 따르면 그림자놀이로 그칩니다. 어둠뿐입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모든 사람을 품으십시오. 이런 삶이야말로 회개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개혁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먼저 나의 삶, 나의 가정, 나의 교회, 나의 일터를 보십시오. 가장 필요한 개혁은 회개입니다. 성경의 선지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마음의 방향이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나님을 모셔 들이고 말씀을 받으십시오. 나부터 고치십시오. 그것이 개혁입니다. 진심어린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개혁할 힘을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십시오.
개혁은 참된 회개로부터 나옵니다. 인간적 회개와 하나님의 영, 성령에 감동된 회개는 다릅니다. 루터 시대에도 가톨릭의 교황청이 주도하는 회개와 개혁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타락한 종교 권력과 사람들의 탐욕을 온전히 개혁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과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는 개혁은 절대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루터의 개혁은 칼뱅을 비롯해 여러 개혁자들로 이어져 종교개혁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종교개혁은 신자들이 하나님과 영적 세상을 제대로 알고 누릴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참된 회개와 개혁은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다시 복음의 말씀을 붙들어야 하고, 성령의 감화로 우리 자신을 개혁시켜야 합니다. 니느웨의 경우에서처럼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향해 가슴을 찢으며 부르짖는 회개만이 근본적인 변화를 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V. 나가는 이야기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의 한 분이 제16대 아브라함 링컨(1809-1865) 대통령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노예 해방을 위해서 시작된 남북 전쟁이 중반으로 접어들어 한창 치열했던 무렵인 1863년 4월 30일 목요일을 ‘국가적인 금식 기도의 날’로 정하자는 연설문을 작성한 바 있습니다. 링컨은 그의 연설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 온 국민의 의무입니다. 죄와 허물을 겸손히 고백하고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나라들 만이 축복받을 수 있었다는 숭고한 진리를 깨달아야 하며,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황폐케 하는 이 남북 전쟁의 참화는 우리의 염치없는 죄에 대한 형벌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징조일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우리는 계속되는 성공에 도취되어 아무런 부족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오만해졌고,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 기도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교만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진노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들 자신을 낮추고 국가적인 죄를 고백하며 그분의 자비와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적인 금식 기도의 날’을 정해 기도한 링컨 대통령과 북군들에게 남북 정쟁의 승리가 돌아간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회개야 말로 하나님께서 내리기로 작정하신 심판과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유열한 방법임을 분명히 깨닫고, 왕으로부터 온 백성들이 굵은 베 옷을 입고 금식하므로 죄를 회개하고 돌아섰던 니느웨의 이같은 모습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부하면서도 도무지 회개할 줄 모르고 멸망의 길을 걸어갔던 이스라엘보다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니느웨를 기억합시다. 그들은 요나를 통해 듣게 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즉각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요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서, 하나님을 믿고 굵은 베 옷을 입고 금식하며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므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니느웨 성읍 백성들의 철저한 회개를 불러일으킨 동기가 바로 요나의 순종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기 때문에 이런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구원의 역사가 이뤄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순종은 많은 사람들을 회개케 하는 강한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우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알아야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되어 말씀을 믿고 의지하면서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실천하면서 변화된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전해야 합니다.
때로는 요나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의 작음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다시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애타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개혁에 동참합시다. 나를 개혁하고, 우리를 개혁하고, 이 나라를 개혁하여 온 세상에 개혁의 새 물결을 일으키고 생명을 살리며, 일치와 회해,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성도님들 다 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