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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독수리
‘휘익~’
논밭을 가로 질러 시커먼 그림자가 쓰윽 지나갔다. 순간, 마을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양철 지붕을 두드리던 소나기가 뚝 그친 듯 고요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먹 그림자라니. 혹시 비행기가 지나간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마을에는 비행기소리는커녕 닭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 때였다. 그루터기만 남은 벼논에서 떠오르는 물체가 있었다.
“저것 봐라, 저것 봐!”
바깥마당을 쓸던 할아버지가 빗자루를 내던지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영수네 논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물체는 검독수리였다. 하늘의 왕자로 불리는 수리 중의 수리, 검독수리(Golden eagle)였다.
검독수리의 억센 발톱에는 이미 약병아리 한 마리가 잡혀 있었다. 영수 할아버지가 애지중지 기르던 약병아리였다. 지난 가을 알에서 깨어나 이제 막 어미 닭의 품을 떠난 서리 배1)이었다. 검독수리의 억센 발톱 얽혀 든 약병아리는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른 검독수리는 소리없는 비행기였다. 좌우로 펼친 검독수리의 날개는 어른의 양팔보다 더 길었다. 검독수리는 앞산을 넘어 평사리 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허허!”
약병아리를 검독수리에게 빼앗긴 할아버지는 아쉬운 듯 허탈하게 웃었다. 지난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애지중지 기른 놈이었다. 아직 알을 낳기 전의 약병아리는 몸보신에 좋은 놈이었다.
‘이야! 멋지다.’
검독수리가 약병아리를 채가는 모습을 본 영수는 제 눈을 의심했다. 커다란 독수리는 개나 사람도 채간다는 말은 영수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러나 이처럼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지는 장면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때때로 하늘에 뜬 황조롱이가 들쥐를 채는 모습을 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약병아리를 채가는 모습을 보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하였다. UFO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검독수리의 모습이 꿈속처럼 여겨졌다.
“내일부터 닭장 문을 열어 놓지 마라. 내가 저녁때만 열고 닫을 터이니.”
닭장 문을 열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엄명이 떨어졌다. 그 날 이후로 할아버지는 약병아리를 들판에 내놓지 않았다. 닭장에 가두어 두고 하루에 한 번만 문을 열어 주었다. 해거름에 닭장 문을 열어 모이를 주고는 가두어 길렀다.
“영수네 수탉도 도망간다.”
검독수리가 마을에 나타나면 암탉은 물론 수탉도 무서워 도망갔다. 나무 울타리나 수풀 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동네에서 제일 억센 영수네 빨간 수탉도 꽁지가 빠지게 도망갔다.
검독수리를 무서워하는 것은 비단 닭뿐이 아니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강아지도 검독수리가 나타나면 마루 밑으로 숨어들었다.
“검독수리가 또 나타났다.”
검독수리는 한 달에 한두 번 쯤 영수네 마을에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이 검독수리의 습격을 잊을 만하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 때마다 마을에서는 한 마리의 닭이 없어졌다. 닭을 채어 간 검독수리는 늘 아랫마을 평사리 쪽으로 날아갔다.
“검독수리를 쫒아가자.”
“검독수리를 때려잡자.”
검독수리가 닭을 채어 가는 날이면, 영수와 또래 친구들은 검독수리를 추격했다. 검독수리의 공격에 대비할 지게 작대기를 들고 달려갔다. 검독수리의 둥지는 영수네 아랫마을 평사리의 벼락 바위에 있었다.
검독수리가 둥지를 튼 바위 벼랑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천둥 번개를 맞아 생긴 벼랑이어서 벼락 바위라고도 불렀다.
검독수리 둥지가 놓인 벼락 바위 아래로는 깊고 푸른 냇물이 흐른다. 마을 사람들의 말로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다고 했다. 방패연을 날리는 얼레의 연실이 다 풀려 들어간다고도 했다. 마을의 할머니들은 때때로 이곳을 찾아와 용왕님께 가족의 소원을 빌기도 한다.
큰 내와 작은 내가 합쳐지는 두물머리에 위치한 평사리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구곡리 사람들은 큰 내, 작은 내로 부르지만 평사리 사람들은 형 내, 아우 내로 부르는 냇가 마을이었다.
물빛이 조금 흐린 큰 내에는 물고기가 많았다. 붕어, 메기, 피라미, 모래무지, 참게 등이 살았다. 그리고 물빛이 맑은 작은 내에는 버들치와 새우, 모시조개가 많았다. 족대로 갯버들 뿌리를 훑노라면 파닥파닥 뛰는 민물새우가 수북이 담겨 왔다.
평사리 마을 사람들은 냇가에 의지하여 살았다. 마실 물은 냇가 위쪽에서 긷고 목욕은 냇가 중간에서 하였으며 빨래는 냇가 아래쪽에서 하였다. 이것은 평사리 마을 사람들이 대대로 지켜오는 전통이었다.
“저기 있다. 벼락바위에 앉아있다.”
“검독수리 둥지가 벼락바위 중간에 있다.”
마침내 검독수리 둥지를 발견한 아이들이 소리쳤다. 검독수리가 서식하는 벼락바위는 50미터 정도의 절벽이었다. 절벽 40미터 높이의 바위틈에 검독수리는 둥지를 틀었다. 까치나 비둘기처럼 나뭇가지를 주워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검독수리 둥지는 까치집처럼 단단하지 못하고 엉성했다.
평사리의 벼락바위에 검독수리가 둥지를 튼 것은 3월 중순이었다. 둥지가 마련되자마자 어미 검독수리는 꿩알 크기의 알 두 개를 낳았다. 검독수리의 알은 뽀얀 흰색에 갈색 반점이 드문드문 있었다.
알은 암수 검독수리 두 마리가 번갈아가며 품었다. 검독수리가 알을 품는 시기는 영수네 암탉이 알을 품는 때와 비슷하였다.
‘삐악!, 삐악!’
신록이 좋은 5월이 되었다. 영수네 어미닭이 노랑 병아리를 데리고 사립문을 나섰다. 노랑 병아리는 어미닭을 따라 쪼르르 달려 나갔다. 어미닭이 찾아주는 먹이를 쪼거나 풀벌레를 찍으면서 너른 들판을 구경했다.
그 때였다.
‘휘익~’
논밭을 가로 질러 날아가는 시커먼 그림자가 있었다.
“꼬꼬댁 꼬꼬”
어미닭이 급히 소리를 쳐 품안으로 병아리를 불러 모았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다. 시커먼 그림자는 노랑 병아리 한 마리를 채 가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검독수리의 병아리 사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햇볕이 좋은 6월이 되었다. 검독수리는 이제 노랑 병아리를 잡아가지 않았다. 지난 가을에 서리배로 자란 영수 할아버지의 약병아리를 채갔다. 복날이 오면 할아버지가 몸보신으로 드실 약병아리를 잡아갔다. 약병아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니 검독수리의 새끼들이 제법 크게 자란 모양이었다.
“이야, 여름 방학이다.”
아이들이 신나는 여름방학이 왔다. 영수 또래의 마을 아이들은 매일 같이 냇가로 달려 나왔다. 1~2학년 꼬마들은 모래밭에서 놀고 3~4학년 아이들은 냇가에서 물장난을 치고 5~6학년 또래들은 삼각바위에서 다이빙을 했다.
“물고기를 잡자.”
“다슬기를 줍자.”
물놀이를 하다 싫증나면 아이들은 물고기를 잡았다. 두 손으로 풀숲을 뒤져 붕어를 잡는가하면 두 발로 모래를 쓸어 모래무지를 잡기도 했다. 바위틈에 기어 다니는 다슬기를 줍기도 하고, 매운 여뀌 풀로 게 구멍을 막아 참게를 잡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하며 큰 내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해가 설핏하면 저마다 냇가에서 잡은 물고기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마을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즐거운 눈으로 바라보셨다. 또래들과 어울려 씩씩하게 자라는 아이들을 미쁘게 여겼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을 어여삐 사랑하는 이는 영수 할아버지가 으뜸이었다.
“영수 할아버지가 물 건너 가셨다.”
“그래, 커다란 망태를 메고 지나가셨다.”
영수 할아버지는 큰 내와 작은 내의 중간의 모래밭에 참외를 가꾸셨다. 매일같이 참외밭을 둘러보시는 영수 할아버지는 때때로 아이들의 산타클로스였다. 할아버지는 영수 또래들에게 심심하면 밭에서 딴 참외를 선물로 주셨다. 그런데 영수 할아버지가 참외를 주시는 방법은 유별났다.
영수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위쪽으로 냇물을 건너 다니셨다. 그러다가 슬며시 꼴망태에 담긴 참외를 흐르는 물위에 띄워 놓으셨다.
“참외가 떠내려 온다.”
“가자. 참외 잡으러 가자.”
상류에서 둥둥 떠내려 오는 참외를 발견한 아이들은 참외를 향해 돌진한다. 참외를 얻기에는 헤엄을 잘 치는 아이가 단연 유리하다. 그러나 한꺼번에 두 개의 참외를 움켜잡을 수는 없다. 두 손에 참외를 움켜잡으면 헤엄을 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수 할아버지는 이 점을 미리 간파하고 아이들 머릿수만큼의 참외를 냇물위에 띄어 놓고 지나가는 것이다.
영수와 또래 친구들이 검독수리를 추격한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할아버지의 약병아리를 잡아간 검독수리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영수 할아버지에게 참외 선물을 받은 것이 얼마인가?
아이들은 할아버지에게 받은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에서 검독수리를 추격하였다. 그러나 검독수리가 채간 약병아리를 되찾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줄을 타는 등반가가 아닌 다음에야 검독수리가 둥지를 튼 절벽을 기어 올라갈 수는 없었다.
“에잇!”
아이들은 열적은 마음에 검독수리 둥지를 향해 돌팔매질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던진 돌은 검독수리 둥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겨우 냇물을 건너가거나 절벽 아래에 부딪쳐 ‘풍덩!’ 냇물에 떨어졌다.
영수와 또래 친구들은 심통이 났다. 지게 작대기로 벼락바위 부근의 참나무를 후려갈겼다. 참나무에서 서너 개의 상수리가 ‘후드득’ 떨어져 발밑에 굴렀다. 아이들은 잘 여문 상수리를 까서 입에 넣으며 마을로 돌아왔다. 입안에 상수리의 텁텁하고 씁쓸한 맛이 감돌았다.
‘쓰름! 쓰름!’
한 여름이 지나도록 검독수리는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쓰르라미가 울면서 즐겁고 신나던 여름방학도 끝났다.
아이들은 검독수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자기네들의 공으로 여겼다. 검독수리의 둥지를 찾아가 돌팔매질로 혼내준 까닭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이 왔다.
“영수야, 학교 끝나거든 곧장 집으로 달려 오거라.”
“예”
“춘식이 아재와 너덜이골의 밤을 따야 한다.”
“예,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토요일 오후에 할 일을 영수에게 일러 주었다.
구곡리 아이들은 놀 새 없이 바빴다. 벼논에 날아드는 참새 쫒기와 텃밭에 붉게 익은 고추 따기를 해야 한다. 고구마 캐는 일도 도와야 하고 소에게 먹일 꼴도 베어야 했다. 가을걷이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부모님 일손을 도와야 했다.
토요일 오후였다. 학교를 일찍 파한 영수는 춘식이 아저씨를 따라 너덜이골로 갔다. 춘식이 아저씨는 가끔 영수네 농사일을 해주고 쌀을 얻어 가는 동네 일꾼이었다.
“영수야, 너는 자루를 들어라. 나는 장대를 들 터이니.”
영수는 춘식이 아저씨를 따라 나섰다.
너덜이골에는 아름드리 밤나무가 많았다. 영수 할아버지께서 젊은 나이에 심어 가꾼 밤나무였다. 춘식이 아저씨와 영수를 쫓아 춘식이 아저씨네 개 누렁이도 따라왔다.
굵은 바윗돌이 나뒹구는 너덜이골에는 여러 마리의 너구리가 산다. 골짜기에는 밤, 도토리, 개암 등의 나무 열매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하여 계곡에는 들쥐, 개구리, 뱀, 참게, 물고기, 곤충 등도 많았다.
너구리는 야행성 동물이지만 가끔 낮에도 숲속에 나타날 때가 있다. 몸은 땅딸막하고 네 다리는 짧으며 귓바퀴는 작고 둥글다. 주둥이는 뾰족하며, 꼬리는 굵고 짧다. 몸의 털은 길고 황갈색이며 등줄기와 어깨에는 끝이 검은 털이 많다. 얼굴, 목, 가슴 및 네 다리는 흑갈색이다.
“밤송이에 맞지 않게 조심해라!”
“걱정 마시고 어서 털기나 하세요.”
영수는 춘식이 아저씨가 터는 밤나무 아래에서 알밤을 주워 담았다. 춘식이 아저씨가 바지랑대로 밤송이를 휘갈기면 알밤이 우수수 쏟아졌다. 영수는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알밤을 주워 마대자루에 담았다.
그 때였다. 밤나무 고목 사이를 시커먼 그림자가 휙 지나갔다. 이 모습을 제일 먼저 본 누렁이가 ‘컹컹’ 소리를 내어 짖었다. 검독수리였다.
밤나무 숲을 날아간 검독수리가 노린 것은 너구리였다. 때마침 너구리는 알밤을 주워 먹으러 굴 밖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소리 없이 날아간 검독수리는 이내 너구리의 머리를 억세게 움켜잡았다. 그러더니 곧장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하였다. 그러나 살찐 너구리가 버둥대며 저항하자 쉽게 날아오를 수 없었다. 검독수리는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하고 너구리는 검독수리의 발톱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검독수리와 너구리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컹, 컹!’
그때였다. 춘식이 아저씨네 개 누렁이가 싸움판을 향해 달려 나갔다. ‘으르렁’ 소리를 내며 검독수리와 너구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감히 검독수리 가까이는 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면서 큰소리로 짖을 뿐이었다.
이 모습을 본 춘식이 아저씨도 너구리 사냥에 끼어들었다. 춘식이 아저씨는 힘주어 바지랑대를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삼국지의 관우처럼 바지랑대를 비껴들고 검독수리에게 돌진했다.
“이야아~”
춘식이 아저씨가 고함을 지르며 검독수리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자 검독수리는 발톱으로 잡고 있던 너구리를 내려놓았다. 잠시 밤나무 고목으로 날아가 춘식이 아저씨의 바지랑대를 피했다.
“왕, 왕!”
춘식이 아저씨의 돌진에 누렁이도 함께 달려들었다. 춘식이 아저씨의 공격에 힘을 얻은 누렁이는 너구리의 뒷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탁, 탁, 타악!”
순간, 춘식이 아저씨가 바지랑대로 너구리를 때려잡았다. 통통하게 살찐 몸에 짧은 다리를 가진 너구리는 몇 걸음 도망치지 못하고 쓰러졌다.
너구리의 몸에서 피비린내의 더운 기운이 확 끼쳐 졌다. 너구리의 두 눈에서는 붉은 피가 철철 흘렀다. 그러고 보니 너구리의 눈알이 없었다. 검독수리가 제일 먼저 공격한 것은 너구리의 눈이었다. 너구리의 눈알을 먼저 찍어 도망가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가자, 마을로 돌아가자.”
춘식이 아저씨가 쓰러진 너구리를 지게에 올려 실었다. 영수는 춘식이 아저씨를 따라 서둘러 마을로 돌아왔다. 너구리와 알밤을 지게에 옮겨 싣고 돌아왔다.
그러자 검독수리가 춘식이 아저씨와 영수의 뒤를 따라 왔다. 하늘을 천천히 빙빙 날며 따라왔다. 영수는 겁이 더럭 났다. 누렁이도 겁을 먹었는지 춘식이 아저씨 곁을 뱅뱅 돌며 떨어져서 걷지 않는다.
동구 밖 소나무 곁을 지날 때 할아버지를 만났다. 영수 할아버지가 고추를 따던 손을 멈추고 춘식이 아저씨에게 물었다.
“어이, 춘식이. 어인 일인가? 그새 밤을 다 털었나?”
“아니요.”
“그런데 왜 벌써 돌아오나?”
“아, 예. 어르신, 너덜이골에서 너구리를 잡았어요. 그래서 밤은 내일 털기로 했어요.”
춘식이 아저씨가 의기양양해서 대답했다.
“무어? 너구리를 잡았다고?”
“예, 바지랑대로 때려잡았어요. 마을 사람들과 잔치를 벌여야겠어요.”
그 말을 들은 영수 할아버지의 안색이 갑자기 붉어졌다.
“예끼, 이 사람아. 따라는 밤은 안 따고 너구리 사냥을 해.”
“너구리를 잡은 일이 뭐 어때서요?”
춘식이 아저씨가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야! 이 사람아. 내일 모레면 조상님을 모시는 추석이야! 그런데 어째서 산짐승의 피를 보나? 내 집으로는 아예 들어올 생각을 말게. 동네 사랑으로 가서 그슬리던지 알아서 처리하게. 내 집으로는 고기 한 점도 보낼 생각을 말게. 알아들었나? 알밤이나 이리 내어 주게. 내가 들고 감세.”
"아, 예."
춘식이 아저씨가 할아버지에게 면박을 받고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춘식이 아저씨는 알밤 자루를 할아버지에게 건네었다.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춘식이 아저씨가 잡은 너구리를 집안으로 들여놓지 못하게 하셨다. 춘식이 아저씨는 너구리를 짊어지고 자기의 집으로 건너갔다.
그때 까지도 검독수리는 춘식이 아저씨의 지게에 실린 너구리를 노리고 쫒아 왔다. 동구 밖 소나무 가지에 올라 앉아 춘식이 아저씨가 어디로 가는 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검독수리는 땅거미가 져서 어두워질 때까지 동구 밖 소나무를 떠나지 않았다.
“어? 아직도 그대로 앉아 있네.”
이튿날 아침에도 검독수리는 동구 밖 소나무에 앉아 있었다. 검독수리는 밤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춘식이 아저씨에게 너구리를 빼앗긴 일이 무척 분하였던 모양이다. 한참을 앉아있던 검독수리는 춘식이 아저씨네 집 위를 빙빙 돌다가 사라졌다.
사흘째 아침에도 검독수리는 동구 밖 소나무에 나와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춘식이 아저씨네 집 위를 빙빙 돌다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영수야. 혹시 우리 집 누렁이 보지 못했니?”
“아니요. 못 보았는데요.”
춘식이 아저씨네 강아지 누렁이가 없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검독수리가 잡아 간 것이라고 쑥덕였다. 검독수리가 너구리를 빼앗긴 일에 복수전을 펼친 것이라고 말 하였다. 그러나 검독수리가 누렁이를 잡아가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후로 검독수리는 두 번 다시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와도 검독수리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듬해 봄이 왔다. 영수네 암탉이 또다시 병아리를 깠다. 노랑 병아리가 어미 닭을 따라 논밭을 돌아다녔다. 영수는 문득 검독수리가 병아리 사냥하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과 평사리의 벼락바위로 가보았다.
벼락바위 아래를 흐르는 물은 여전히 깊고 고요하였다. 냇물에 비친 벼락바위의 모습이 더욱 높아 보였다. 한참을 기다려도 검독수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검독수리의 그림자는커녕 산새 한 마리도 날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영수는 가끔 무서운 꿈을 꾸었다. 높은 벼랑에서 떨어지는 꿈이었다. 파란 물이 넘실대는 냇물로 떨어지다가 소나무 가지에 걸려 겨우 살아나는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보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떤 때는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 영수 어머니가 걱정스레 영수 할머니의 의견을 물었다.
“어머님!”
“왜 그러느냐?”
“영수, 병원에 한번 데려가야 할까 봐요.”
“병원은 무슨 놈의 병원이냐?”
“엊그제는 식은땀을 흘리더니 간밤에는 코피를 쏟았어요.”
“다 크느라고 그런다. 인삼 넣고 약병아리 한 마리 달여 먹여라.”
무서운 꿈을 꾸는 영수를 두고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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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인돌님의 동화속 인물들은 인자하고 어질어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동,식물들과 공존공생해야 하는 이유와 미물들의 존재가치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됩니다...감사합니다
비판을 먼저 주세요. 칭찬만 받다가 비난을 받으면 수용하기 힘들어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한 봄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자연을 떠난 도시의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자연을 알게 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