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왕관 모양 감꽃 김인기 벌써 보름이나 되었나. 지난 7월 15일에 이곳 대구에서 많은 수필가들이 모이는 행사가 있었다. 아마 홍 선생도 무지무지 고생했을 것이다. 참석자가 오백 여명이었다고 하니, 이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그래도 더러는 야속한 소리도 하겠지만, 이거야 으레 그러려니 해야겠지. 이런 게 사람 사는 동네의 익숙한 정경이기도 하니까. 적어도 내게는 흠이 보이지 않았다. 더는 어쩔 수도 없었지 않았겠느냐. 하기야 모든 참석자들 소감이 나와 같았다면, 이것도 무척 싱거울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행사 도중에 살짝 빠질 생각을 했다. 이것도 내 성미 때문일까. 모임에 참석자들이 많으면 성황을 이루는 건 분명하지만, 나는 별로 재미가 없다. 이게 축구경기나 전당대회라면 군중의 열기로 어떻다고도 하겠으나, 문인들 행사에서는 다수가 도리어 장애이더라는 게 그간 내가 경험으로 터득한 바이다. 이런 일도 중요하다고 여겨 나도 참석이야 하지만, 내 속내는 늘 이랬다. 마침 내게는 도망칠 만한 사유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 나는 순발력이 많이 모자랐다. 그래서 대구작가회의에서 마련한 정대호 시인과 박경조 시인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번에 시집 『어둠의 축복』을 낸 정 시인이야 이미 경험도 있으니까 그렇다 하자. 그러나 처녀시집을 낸 박 시인한테 나는 인정머리가 없었다. 세월이 지나고 보면 이것도 그런가 보다 싶어도, 처음 작품집을 내는 그 마음이란 또 그렇지 않으니까. 남들한테야 이러나저러나 그만인 무명 시인일지라도, 당사자의 그 시심(詩心)이야 어디 그런 것과 상관이 있을까. 그런데 이 모임에 불참한 내게 박 시인이 일전에 시집을 보냈다. 그 서명(書名)부터 심상찮다. 이게 『밥 한 그릇』이 아니라 『밥 한 봉지』이다. 이제는 나도 그 연유를 안다. 아무리 생활이 구차하더라도 나름대로 위엄을 지키겠노라 하는 사람들은 밥을 그릇에 담아서 상에 올리고 먹는다. 그러나 어떤 이들한테는 이것도 사치이다. 무료급식소에서 나눠주는 밥을 몰래 한 봉지 더 챙기는 어느 노인의 간고한 삶을 시인은 놓치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러려니 여겼는데, 시인은 이런 시선으로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았다. 지난달에 출판기념회 소식을 듣고 내가 혹시 잊을까 싶어 달력에 표시를 했다. 어느 날 아내가 이걸 보더니 박껑조가 누구냐고 물었다. 내 필체가 나빠서 ‘경’이 ‘껑’으로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름을 이렇게 불러도 좋게 들린다. 시인을 아는 사람들 느낌도 대체로 이런가 보다. 이 시집 말미에 붙은 발문에도 보면 박 시인이 후배들에게 ‘경조 언니’로 통한다지 않는가. 그러니까 이런 호칭이 주는 울림이 그 시와도 잘 어울린다. 이래서 이 시집이 더 어여쁘다. ‘유년의 동화’란 부제가 붙은 시 「어머니」에는 ‘왕관 모양의 감꽃’이란 표현이 나와서 내가 한참 동안 추억에 빠져들었다. 나도 감꽃을 보고 왕관을 연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런 것 다 잊고 나 오늘에 이르렀구나. 그러다가 내가 ‘감꽃 모양 왕관’이 아니라 ‘왕관 모양 감꽃’을 간직한 시인을 발견하였다. 이 감꽃이 왕관보다 더 오래오래 우리들 가슴에 남아 저마다의 삶을 아름답게 하리니. 이렇게 사는 이들이라면, 아마도 그 목에 감꽃 목걸이를 걸어도 잘 어울릴 것이다. 어제 대구작가회의 여름문학제가 열렸다. 나도 이 자리에서 근래 시집을 낸 몇몇 분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집행부에서는 첫 시집을 낸 분들에게 줄 기념패도 마련했다. 나도 그 마음을 안다. 사람이 살면서 오직 한 번만 있어야 좋은 게 더러 있다. 그래서 이미 경험이 있는 문인이라면, 다시는 이런 기념패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러나 박 시인이야 지금이 바로 황홀경에 잠길 때가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이 기회를 놓칠세라 ‘경조 언니’를 ‘껑조 시인’이라며 놀려먹어도 좋겠다. 시인들이란 대체로 불가사의한 존재들이다. 간밤에도 그랬다. 자정이 넘어 한 시가 다 되어가도 가무음곡(歌舞音曲)이 끝나지 않는다. 이들이 그 솜씨가 시원찮아도 이런다. 이래서 내가 아득하다. 이들이 조금 전에 ‘즉자(卽自)’니 ‘대자(對自)’니 했던 그 사람들이 맞아? 어느 시인은 삶과 언어라는 측면에서 문학을 살펴야 한댔다. 왜 그렇지 않으랴. 더구나 촛불집회라는 뜨거운 주제를 내세운 행사이다. 그러나 저런 발언을 저렇게 하자면, 누구라도 뭘 알아야 저럴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게 정말 모를 일이다. 누구라도 이런 자리에 달마다 두세 번 정도만 오더라도 그는 아마 후유증으로 책을 펼치고 글을 읽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시인들이 예상과는 달리 언제나 멀쩡했다. 때로는 나름대로 절제한 나보다 상태가 더 좋다. 어제도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러면 가야금 연주자들이랑 학생 마술사의 활약상마저도 깡그리 잊을 텐데…….’ 그런데도 밤 한 시쯤 먼저 자리를 뜬 내가 도리어 탈이 난 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어느 시인의 작품집 출간을 축하하자는 이 글도 애초 뜻과는 달리 흘러가버렸다. 애써 시집을 처음으로 낸 시인한테 내가 뭐라 할 거야 있으랴. 그래도 나는 대구 지하철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시 「문(門)은 없다」나 일찍 이승을 떠나버린 친구를 말하는 시 「손수건 돌리기」를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시 「코스모스」에 보이는 이런 구절은 또 어떤가. ‘약속도 없이 행여 그대 마주치면 무슨 말을 할까요.’ 내가 이에 뭐라고 응답이라도 하고 싶었고, 나는 능히 그럴 수 있다고 믿었는데, 나 이제는 그러기 어렵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으나, 내가 그러자니, 나는 그게 다 군더더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2008.7] |
첫댓글 껑조 언니는 감꽃을 좋아합니다~ 닉네임도 감꽃~입니다~ 김 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인기선생님, 제 첫 시집 "밥 한 봉지"에 살면서 오직 한 번만 있어야 좋을 첫 이란 각별한 헤아림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왕관 모양 감꽃" 감동 입니다,~~~ 삼복더위 이기시고 건필하십시오****
동그라미님, 아파트 숲에 꼭꼭 숨어서 뭐하시나요. 염천에 끙끙 좋은 수필 한 편의 마지막 행에라도 묶여있나요^^
나름대로 절제한 나보다 /상태가 더 좋다./ 어제도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아한 에세이속에 잠시 머물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