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하 소설가의 첫 산문집 『세상살이와 소설쓰기』(푸른사상 산문선 51).
결핍과 허기로 가득했던 젊은 날을 글쓰기로 버티며 문우들과 열정을 불태운 모습들, 문단 원로들과의 인연, 국내외 작품들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 등이 그득하다. 견고하고도 정갈한 언어의 세계를 가꾸어온 한 소설가의 문학적 사유가 풍성하게 펼쳐지고 있다.
2023년 6월 30일 간행.
■ 작가 소개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해방과 함께 경북 경산으로 귀국했다. 서라벌예술대학과 건국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거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정년 퇴직했다.
196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전쟁과 다람쥐」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모래』 『바람의 집』 『저문 골짜기』 『폭력연구』 『삼학도』 『문 앞에서』 『우렁각시는 알까?』 『매운 눈꽃』, 연작 중편으로 『장난감 도시』, 장편소설로 『우울한 귀향』 『도시의 늪』 『숲에는 새가 없다』 『냉혹한 혀』가 있으며, 영역 단편 선집 Shrapnel And Other Stories가 미국에서 간행된 것 외에, 『장난감 도시』가 영어, 아랍어, 중국어, 베트남어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창작문학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요산문학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소설상을 수상했다.
■ 꼬리말 중에서
등단 이후 지금까지 중단편소설집 여덟 권과 장편소설 다섯 권을 내놓은 것이 전부다. 50년 넘는 문필 생활이었지만 산문집 한 권 따로 묶은 적이 없다. 오직 소설 쓰기에만 전념했다기보다 남들처럼 부지런하지 못했던 탓이 더 크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여기저기 조각 글들을 썼던 모양이다. 묵은 서랍 정리를 하다 본즉 그 양이 적지 않다. 그냥 내버리자니 미련이 남아 생각 끝에 일부나마 묶어두기로 했다. 글도 세월에 빛이 바래기 마련이라 독자의 공감 같은 것은 기대하지 않는다. 혹 관심 두는 독자가 있다면 허구로서의 소설의 세계와 그것을 빚어낸 작가의 삶과 시대와의 틈을 잠시 기웃거려보는 기회는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언 팔순의 내가 지난 세월의 나를 만나는 자리임에는 분명하여 그것만으로 나는 만족한다.
■ 추천의 글 중에서
이동하 교수께서 평생 써오신 수필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견고한 언어의 성벽에 자신의 존재를 못 박아두고 싶은 욕망은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수필 세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 편 한 편의 글이 깔끔하고 정갈해 정성스럽게 잘 가꾸어놓은 뜰처럼 자꾸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작품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가난하고 허기졌던 지난날과 그 세월을 글쓰기로 버티던 시간,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행복했던 추억들, ‘결핍과 허기’가 오히려 삶을 추동하고 지탱해주는 힘으로 작용했던, 겸손과 자기반성으로 일관된 삶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 이덕화(평론가, 작가포럼 대표)
■ 산문집 속으로
‘나’에서 출발하되 ‘우리’의 이야기로 만드는 것, 그것이 내 작법의 요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적 진실이란 다른 게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적 삶의 구체 체험에서 얻어진 어떤 감동적 세계 인식 내용입니다. 나의 경우 그것은 거의 매번 일상적 삶에서 감동의 형식으로 얻어집니다. 작가로서 내가 하는 일은 이것(감동)을 다시 언어(소설)의 형식으로 재현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독자에게도 의미 있는 각성을 줄 수 있도록 소설의 미학 구조를 짜 맞추는 데에 늘 나의 방법론적 고민이 있는 것이지요.
작업에 임하여서는 투명한 문장을 쓰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합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그것(감동적 체험)이 무엇인지 나로서도 잘 알 수 없는 때가 많고, 그리고 간신히 이해하고 나면 다시 언어의 저 엄청난 저항 앞에 마주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와 소설쓰기」, 16~17쪽)
다시 소 이야기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오늘의 우리야말로 참으로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옛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의식이 그것이다. 소와 같은 우매한 가축에게조차도 식구처럼 느끼고 생각하는 그런 의식 말이다. 경제적 대상물로 보기 이전에 하나의 생명체로, 이웃으로, 마침내는 한식구로 생각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어진다. 인간 존재마저도 돈벌이의 도구로밖에 치부하지 않는 참담한 현실 앞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참다운 관계 의식의 회복 같은 일을 이 세모에 생각해본다. (「소 이야기」, 238~2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