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원은 손가락으로 땅에다 일어쌍관(一語雙關, [註] 한마디 말에 두 가지 뜻이 있다.)이라는 넉 자를 썼다.
매향이 요원이 쓴 글 다음에 이어서 다시 무엇인가를 쓰려고 할 때 이총관의 사나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는 그 때 하도 기가 막혀서 오히려 저 놈이 나를 원망하니 터무니가 없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이 덤비라고 소리를 지르니 그는 여유만만하게 씩 웃으면서 손속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날카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본문(本門)의 뇌정검법(雷霆劍法)을 써서 공격을 하였더니 교묘히 피하면서 픽픽 웃더니, ‘원강(元江) 문하의 필부 녀석아, 이 어른이 뇌정검법을 깨뜨리는 것을 보아라’ 하더니 드디어 화산파의 운룡삼현성(雲龍三現成)의 검초로서 검기(劍氣)를 단번에 삼 초(三招)를 날리오니 그것은 나의 검영(劍影)을 뚫고 무서운 힘으로 공격을 하지 않겠어요. 나는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초식을 써서 내 몸 앞에 둥그런 검망(劍網)을 펴고는 그의 검세(劍勢)를 막으면서 재빨리 전광사사(電光四射)의 초식으로 변화시켜 그의 상체(上體)의 여러 요혈(要穴)을 구석구석 찌르니, 이놈은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괴상한 초식을 쓰지 않겠습니까! 그의 검세는 위에서 아래로 반으로 쪼개지면서 역습을 기도하여 나의 인후(咽喉)를 찌르면서 내가 쓴 초식 경천의 위치를 피하였을 뿐 아니라 출기불의(出其不意)로 나의 공격을 막아 버렸어요. 나는 전광사사의 초식을 쓸 수가 없어 전력을 거두어 한 개의 철판교(鐵板橋)로 겨우 피하였습니다. 즉 왼손으로 땅을 치고 오른발을 차 나가면서 그 놈의 사타구니 아래를 쳐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손에 들고 있는 칼을 반사출동(盤蛇出洞)으로 바꾸어 그의 오른손을 쳤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신필 왕천이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눈을 번쩍이면서,
『정말 그 도적의 초식은 묘합니다. 내 생각 같아서는 아마도 규지검법(虯枝劍法) 중의 괴목횡생(怪木橫生)일 거야!』
정송이 이의라도 있는 듯이 몸을 바로 잡으면서,
『그 도적의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볼 때, 그 놈은 곤륜파 화산파 점창파의 장점을 모두 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총관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습니다. 그 뿐이 아니라 이놈의 검법은 무궁무진하여 또 이런 수도 씁니다. 그는 무릎을 굽혀 몸을 앞으로 엎드리면서 내가 그의 사타구니 아래를 찬 공격을 피하면서 칼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며 나를 두 동강이로 내려고 합니다. 결국 내가 걷어찼던 다리는 뺄래야 뺄 수 없게 되어 버렸어요. 다행히 이 때 왼손이 땅에 닿아 있어 힘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오른손의 칼을 옆으로 휘둘러 그의 팔을 쳤습니다. 만약에 그가 초식을 거두지 않았더라면 나의 온 쪽은 공허하게 되고 그의 오른손 역시 나의 검세에 말려들어 잘려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손에 거머쥔 칼을 가로질러 나의 검신을 향하여 찍어 옵니다. 두 검이 서로 부딪치자 그는 그 힘을 빌어 뒤로 한 발 번쩍 뛰는 것을 보고는 나의 몸을 굴려 이어타정(鯉魚打挺)의 수를 쓰면서 맛이 어떠냐고 물어 보지 않겠어요!』
나무 그늘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요원은 참지 못하여 웃고 서 있었다.
그 당시 이총관은 분명히 검세를 꺾여 수세에 몰린 채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나려타곤(懶驢打滾)의 술법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어어타정이니 출괴노추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술법을 제멋대로 지껄여 대니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온 것이다.
이때 매향 역시 입을 삐쭉거리며 땅 위에 조찬각박(刁鑽刻薄, [註] 재치 있게 그때 그대 거짓말을 잘 한다.)이란 넉 자를 써놓고 요원을 바라보면서 생끗 웃었다.
정송이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리면서
『그 초식의 이름은 참 괴상한데 어느 문파의 절묘한 초식입니까?』
신필 왕천이 배꼽을 쥐고 웃으면서
『그게 무슨 출괴노추의 검법이요? 그 검법은 굴슬추연(屈膝墜淵)이라는 검법입니다. 나 역시 지난날에 한번 당한 일이 있소이다.』
왕천은 경험을 앞세우며 자기의 관점이 틀림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왕대협께서는 그놈이 어느 문하의 사람인지 아시겠구려?』
요백삼이 궁금해서 다급히 왕천에게 물으니 왕천은 얼마 동안을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 천천히,
『그건 판단하기가 곤란하군요. 사십 년 전 내가 일찍이 북요(北遼)까지 멀리 가서 북요파의 장문 김모인(金某人)을 만나서 무공을 겨룰 때 이 초식을 한 번 당한 일이 있습니다.』
한 가지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열 가지 거짓말을 머리에 생각해 두어야 한다는 이치를 모르고 함부로 지껄여댔던 이총관은 얼마 동안 말을 못하다가 때를 만났다는 듯이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왕노영웅(王老英雄)이 말하는 북요파니 하는 따위를 제가 어찌 모르겠소? 하지만 왕형께서는 북요파가 선천기공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아십니까?』
이때 요백삼이 깜짝 놀라면서,
『선천기공이라니?』
『그 도적놈은 내가 계속해서 싸울 것 같은 기세를 보이자 또 나에게 덤비겠느냐고 으르렁거리며 손을 써서 삼십 자나 떨어져 있는 수풀을 한번 획 치니 두 그루의 복숭아나무가 한꺼번에 와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동강이로 나며 쓰러져 버리지 않겠어요?』
신필 왕천이 마땅치 않다는 듯이
『그렇다면 이형은 그가 어느 문파의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하시겠구려!』
이총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천하에서 내공을 부릴 수 있는 자는 오직 소림파의 천일대사와 전진파의 청목도장 뿐이요. 이 도적의 운공(運功)이나 신법이 소림파와 닮은 곳이 많습니다마는 천일대사는 실종된 지 이미 오래이며 어떤 문하인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청목도장의 고제가 아닌가 하오.』
요백삼은 눈을 부릅뜨면서,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 운가란 놈! 동에 가 번쩍, 서에 가서 번쩍 하는 것을 보면!』
『이 복파보와 전진파는 분명히 세불양립(勢不兩立)이요.』
정송이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질러 이야기하니 동원 안이 찌렁찌렁 울려 퍼졌다.
요원은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하였으나 운학이 본래 담백한 사람이라 인정하고 있어서 설마 그가 보물을 놓고 시시비비를 가리려 복파보에 온 것이라고 인정하지는 않았다.
이총관은 눈을 두리번거리며 여러 사람의 눈치를 살피면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이때 그 수풀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한 사람이 달려 나왔었죠.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수풀을 떨게 하였고, 그의 공력 여시 추측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그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복사꽃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어느새 그 도적놈의 뒤로 다가서니 바로 축지성촌(縮地成寸, [註] 축지법)의 절정의 현공(玄功)이었습니다.』
요원은 다시 그들의 목소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느끼자, 손을 잡고 몸을 수풀 속으로 숨겼다.
얼마동안인가 동원은 조용하였다.
이때 숲 사이의 작은 길의 구부러진 곳에서 네 사람이 걸어 나왔다.
제일 앞에 선, 붉은 얼굴에 두 눈에서 나는 정기로 해서 위엄이 있어 보이는 사람은 바로 이총관이었다.
그는 천천히 걸어오면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웃음소리를 멈추고 노인은 입을 비쭉거리며 중얼대기 시작하니 나와 도적 같은 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늙은 사람이 잠을 좀 자려는데 시끄럽게 구니 어떻게 하겠느냐고 중얼거리기에 혼잣말인줄 알았는데, 그때 좀 떨어진 곳에서 별안간 점잖은 소리로, ‘뭘 그리 화를 내노? 늙은이도 눈을 감으면 잠들 것을!’ 하는 소리가 들려 그만 깜짝 놀랐지요. 그쪽을 보니 역시 한 노인이 이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품(品)이 공력이 대단하여 보이더군요. 먼저 노인을 보고 이 노인이 노대(老大)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나이가 위인 것 같습니다. 노대라는 사람은 태연스럽게 당신 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노삼(老三)이라는 사람에게 물으니 옆에서 또 한 노인이 나오면서 노대께서는 망령을 부리신다면서 그까짓 놈들 때문에 다섯 사람이 손을 쓸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더니 몸을 꿈틀거리면서 몸의 공력을 일으키니 노대라는 사람이 삼(三) 대 이(二)면 되겠지 하면서 노사(老四), 노오(老五)는 구경이나 하라고 하는 꼴이 마치 저 혼자의 세상을 만난 것같이 안하무인격의 행동을 하니, 나는 반드시 저 도적 같은 젊은 놈이 그에게 손을 쓰리라 믿었지요. 헌데 놈은 오히려 공손히 머리를 숙이면서 노선배의 법호(法號)를 알고 싶다니까, 노대라는 사람은 허공을 쳐다보면서 자기는 돈도 필요 없고 목숨도 필요 없다면서 도적 같은 젊은이를 노려보니, 젊은이는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서 두 손으로 받들어 노인 앞에 진상을 하지 않겠소. 자세히 보니 그것이 진보(鎭堡)의 야명주(夜明珠)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재빨리 몸을 날려 그것을 빼앗으려 하였으나 노대의 손이 가볍게 흔들리면서 한 줄기 기류(氣流)가 쏟아져 나오더니 내 몸을 저지하여 버렸습니다. 노대는 빙긋이 웃으면서 그따위 유리구슬은 필요 없고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은 값나가지 않는 한 장의 양의 가죽에 그린 지도거나 아니면 그 젊은 도적의 살가죽이라 하지 않겠어요! 이 젊은 도적은 대경실색하며 그 두 가지는 모두 바치기가 어렵다고 거절하였습니다. 노대는 화를 버럭 내면서 죽은 귀신 너의 사부에게 내가 요구한다고 전하라는 겁니다. 그 젊은 도적은 머리를 푹 숙이고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있으니 노대는 다시 너의 죽은 사부같이 되지 말라면서 ‘지금 다른 사람들이 나와 비교해서 실력의 차가 없는데도 너에게 기선(機先)을 제압당한 것은 너의 대잡희의 술법에 눌려서 그런 것이지만 내가 옆에서 몇 마디 저 사람들을 깨우쳐 주었다면 너는 도망갈 구멍도 잃었을 것이다.’ 하는 노인의 모습은 여전히 노기를 띠고 있으면서, 다시 ‘지금 네가 쓴 그 등갱공(登坑功)이라는 초식을 때려 부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서 설명을 하는데, 만약 그 때 상대방 사람이 왼발을 굳게 디디고 왼손으로 땅을 차면서 몸을 반쯤 돌리기만 했었다면 등갱공의 초식을 피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너의 사타구니를 오른발로 차서 사각조천(四脚朝天)을 쓸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젊은 도적 보고 자기의 이론에 허점이 있으면 말을 해보라고 화지 않겠소. 그놈은 아무 소리 못하고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를 본 노대는 그 초식을 출추노괴(出醜老乖)라는 것이라는 주석까지 붙여 주니 그런 것을 사람이 말로서 사람을 다스린다는 말과 흡사합니다. 내 마음까지 체증(滯症)이 떨어진 것같이 통쾌하여 나는 그 야명주가 폐방의 진산(鎭山) 보물이니 노선배께서 돌려주시도록 주선을 하여 달라고 부탁을 하니 노대는 나를 쳐다보면서 굉장히 약은 친구라면서 젊은 도적을 보고 죽은 귀신 너의 사부의 뜻은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니겠으니, 순순히 양가죽에 그린 지도를 자기에게 바침으로서 살려주겠다는 거야! 도적은 멀거니 서 있더니 야광주를 땅에 버리기에 나는 빨리 이를 주워들으니 젊은 도적은 노대 앞에 머리를 숙이면서 명령에 따르겠으니 노대의 법호를 알려 달라는 거야! 노인도 선뜻 그렇게 하겠다니까 도적은 풀섶으로 뛰어 들어가서 양가죽에 그린 지도를 노인에게 공손히 바치더군. 나는 즉시 이것이 보중에 감추어졌던 보물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물건은 한 번도 뜯어 본 일이 없어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 다섯 늙은이가 다투어 뺏으려는 걸 보니 굉장히 귀중한 물건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제가 참견할 계제가 되지 못하여 아무 소리도 하지를 못하고 있었지요. 노대는 태연하게 몸을 돌려 가버리려고 하니 젊은 도적이 노선배! 하고 부르자, 노인은 껄껄 웃으면서 명년이면 나는 백 살이 되니 황학루(黃鶴樓)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시일이 지나면 기다리지 않을 테니 자기보고 박정한 사람이라 욕하지 말라는 거야! 그의 몸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중을 날아가니 뒤쫓을 겨를도 없었지. 허공을 쳐다보고 서 있으려니 수풀 속에서 나지막한 소리로 추운숭풍(追雲乘風)의 마교오웅(魔敎五雄)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네.』
이때 네 사람은 요원이 숨어있던 꽃밭까지 걸어오고 있었다.
요백삼과 정송은 대경실색하였다.
『바로 마교오웅이었구나!』
신필 왕천의 두 눈썹에 주림이 잡히더니,
『이 다섯 살성(煞星)은 모두 백 살 이상일 거야. 그런데 어떻게 이번 일에 참견할 수가 있었을까?』
요백삼은 눈을 지그시 감고 천천히
『만약, 장대가(張大哥)가 강호로 떠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 복파보는 무림 중에서 아주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어 버리겠는걸.』
『그들이 전진파와 마교오웅이란 것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단 말야! 분명히 큰 화근인걸.』
신필 왕천이 뒤따라 길게 한숨을 쉬면서 말을 하니 정송이 근심스러운 말투로,
『그들의 백 회 생일은 명년 이월 십이일이니 꼭 일 년 남았군.』
하고 받아 넘긴다.
그들 일행은 작은 교차로를 지나쳤다.
요원은 매향의 손을 끌고 나는 듯 지름길로 들어섰다.
대략 한 잔의 차를 마실 시간이 지났을 무렵에 두 소녀는 만년청(萬年靑) 뒤에 몸을 숨기고 무엇인가를 염탐이라도 하듯이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그리 좁지 않은 흙마당이 있었다.
그 마당에는 네 사람의 어린 소년이 사각(四角)으로 분립하여 서 있고, 그 한 가운데에 한 사람의 선비가 서 있었다.
요원과 매향은 장대가가 무공을 가르쳐 줄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마침내 그 선비 모양의 사나이가 손바닥을 치는 것을 신호로 하여, 그 네 사람의 소년은 말없이 각자 동작을 시작하였다.
먼저 동쪽 머리에 서 있던 소년이 앞으로 반걸음 나서면서 두 손을 쳐 나갔다.
그의 초식은 아주 평범한 추창망월(推窓望月)이었으나 그 기세는 대단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유생(儒生)은 몸을 피하지도 않고 몸을 움직이지도 않은 채 태연자약하다.
그러나 소년들의 장풍이 이르는 곳에 유생의 몸이 떠오르고 있었으니 그 유생의 동작의 민첩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생의 몸이 허공에서 땅으로 떨어질 순간 서쪽 머리의 소년이 다시 일 장을 치니 그의 몸은 다시 공중으로 솟구쳤다.
이런 동작의 순환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어떤 때는 동서에서 합격(合擊)을 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남북이 배합되기도 하며 세 사람이 합장(合掌)하여 공격하기를 반 시간 이상 계속되었을까? 그 유생은 드디어 발을 땅에 붙이지 못하고 공중을 이리 저리 왕래하고만 있었다.
가만히 공중에 떠 있는 몸을 자세히 보니 공중에서의 그의 동작은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힘을 배합하여 몸을 오므렸다 폈다 하여 몸의 모양이 일정하지 않았다.
마당 가운데는 풍뢰(風雷)가 사방에 동하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날랐다.
그러나 그 유생은 여전히 태연자약하니 마치 독수리가 날고 봉황이 춤추는 것 같았다.
네 사람의 소년은 모두가 쌍장으로 쳐 낸다. 공중에 떠 있는 유생의 몸은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는 몸매가 마치 제비와 같다.
삽시간에 그의 몸은 마치 팽이 모양 공중에서 흰 옷소매를 펄럭이면서 맴돌기 시작하니 이것을 보고 있던 요원과 매향은 도원경에 빠진 사람 모양으로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유생은 갑자기,
『에잇!』
하는 기합 소리와 함께 땅에 내려서니 네 사람의 소년은 전력을 다하여 함께 쳐들어갔다.
그는 전신을 한번 굽히니 삽시간에 기구(氣球)와 같은 진력을 빌어 고공으로 솟아올랐다.
네 사람의 소년은 유생에게 당할 수 없음을 알자 그가 허공으로 치솟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후퇴하여 몸을 네 그루의 백년 거목 뒤에 숨겼다.
하늘로 치솟은 유생이 손바닥을 뒤집으면서 네 소년이 서 있던 흙마당을 장풍으로 후려치니 네 귀퉁이에는 장인(掌印)이 새겨진다.
유생은 다시 땅 위로 떨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그의 얼굴색은 조금도 변함이 없이 일대약진을 거듭한 사람같이 보이지 않았다.
요원이 보고 있다가, 박수를 보내려 할 때 갑자기 맞은 편 수풀 속에서 어떤 사람의 갈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요백삼 일행이 그들 앞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유생은 요백삼 앞에 서면서,
『무공을 단련할 때는 검객의 예를 잃기 쉬우니 요형들께서는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유생은 요백삼 일행이 이곳에 이른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요백삼은 얼굴에 희색이 만면하여,
『수업을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하고 머리를 주억거린다. 그의 옆에는 세 사람이 한 줄로 도열하고 있었다.
먼저 정송이 입을 열어,
『장형의 그 실력 놀랍습니다!』
『수풍도류(隨風倒柳)의 초식은 아직 팔할(八割) 밖에는 닦지를 못하였습니다. 완전히 수련이 되었다면 장풍이 떨어질 때 자취가 없어져야 하는 것인데!』
유생은 겸손인지 몰라도 고개를 숙이며 손을 머리로 올리면서 말을 한다.
『그러나 수십 자 밖에서 흙을 부수어 버리는 술법 어찌 천하제일이 아니겠습니까?』
원래 흙이란 무르고 연한 것이라서 돌이나 바위와는 달라, 돌이나 바위를 치는 것과는 다르다. 구래서 공중에서 돌이나 바위를 쪼개는 일은 쉬우나 흙을 부서뜨리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유생은 곧
『왕형께서는 지나친 칭찬이시오. 그런데 형장께서 이곳에 오신 까닭은 무엇이오이까?』
요백삼이 싱긋이 웃으면서,
『간밤에 보중(堡中)에 일이 있었소이다. 장형께서도 소문은 들으셨겠지요?』
유생은 소매에서 부채를 꺼내서 펴 들면서,
『지나가는 말로 약간 들었습니다.』
요백삼이 한 발 다가서더니 그의 손목을 잡으면서
『청목도장이 도전(挑戰)을 해 왔소이다.』
유생은 길게 한숨을 내 쉬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요백삼은 침통한 얼굴로,
『그까짓 것은 아무 것도 아니요. 마교오웅이 그들 속에 끼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생의 얼굴빛은 크게 변하였다. 그러나 얼마 뒤에 그는 본연의 자태로 돌아가며 유생이 아무 말 없는 것을 보자, 요백삼은 안타깝다는 듯이 말한다.
『그 다섯 명의 늙은 귀신이 남겨 놓은 말이 있소이다. 명년 이월 십이일에 황학루에서 담판을 내자는 것입니다.』
유생은 미소를 지으면서 침착하게,
『무슨 담판을 지을 일이라도 있습니까?』
『우리 보중의 보물 중 야명주는 청목도장에게 뺏겼으나 요행히 야명주는 이총관 형이 찾았고 지도는 마교오웅에게 뺏겼소이다그려.』
그 유생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의 이 긴박한 사태를 해결하려면 아무래도 장형에게 수고를 끼칠 도리 밖에는 없겠습니다.』
신필 왕천이 슬금슬금 곁눈질을 하면서 말을 하니 이총관은 왕천의 말을 거들기나 하듯이
『야명주야 그리 귀중하지 않지마는 그 나머지 물건들은 무림의 운명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소이다. 이 보물이 그들의 손에 들어갔으니 자연히 악용될 것이 틀림없소이다.』
유생은 이상하다는 듯이
『삼십 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던 그 늙은이들이 죽은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살아서 날뛰고 있다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지요.』
『그 다섯 늙은 영웅들이 전제하고 있는 이상 강호에 그들을 제어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요.』
정송이 겁에 질린 얼굴로 탄식하면서 말을 한다.』
『장형께서도 잘 알지 못하시리라 생각이 됩니다마는 우리들이나 강호에서도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십여 년 전에 무림에서는 성대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 모임은 생사를 가리는 중요한 모임이었습니다마는 한 사람도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 장소까지도 의문에 싸인 채로 풀리지를 않고 있습니다.』
신필 왕천이 차가운 웃음을 띠우면서
『정형, 잘못 아셨소이다.』
요백삼 등은 왕천의 말을 듣고 대경실색하면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를 쳐다보고 있자니까 다시 말을 계속한다.』
『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소이다. 오직 청목도장이 나타난 것으로 봐서 분명히 그가 유일한 생환자에 틀림이 없소이다. 천일대사는 작고한 것에 틀림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 유생만이 손을 좌우로 흔들면서,
『혹시 착오라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신필 왕천이 불쾌한 어조로
『장형께서 알고 계시면 말씀을 해 주시오.』
그 유생은 가볍게 부채를 흔들면서
『천하 무림에서 천일대사와 청목도장을 천하제일고수로 공인하고 있습니다. 그 공인된 사실이 절대적이라고 믿을 바는 못됩니다마는 두 분의 공력이 백중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청목도장과 마교오웅이 이 복파보에 온 까닭이 보물을 뺏으려 왔었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 천년지보(千年之寶)는 사람의 공력을 증진시킵니다마는 극히 무예에 정통한 사람에겐 조력(助力)이 그리 크지 않으며 공력이 커지면은 오히려 마(魔)의 경지에 이르러 오히려 해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림의 절정 고수는 절대로 이것을 얻으려고 목숨을 걸고 싸우려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도는 보중의 제자들도 탐내고 있을 뿐 아니라 천하 무림의 고수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상 고수나 거장(巨匠)들은 보중의 보물이 자기들에게는 이용 가치가 없다 하여 포기하였으며 이,삼 류의 고수로서는 이 지보(至寶)를 엿볼 수 없는 형편이라, 삼십 년 동안이나 아무 사고 없이 보물을 간직할 수가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 보물의 최대 이용 가치는 내상을 치료하는데 절대적인 영물(靈物)입니다. 내가 보기로는 청목도장과 마교오웅이 심한 내상을 입어 보물을 뺏어가느라 소란을 피운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말을 듣고 있던 요백삼이 조용히 웃으면서,
『청목도장과 천일대사가 사투를 벌인 다음에 비록 청목도장이 승리를 얻었으나 진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보물을 찾아 치료를 하러 온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유생은 깊은 의문을 품은 채로
『유감스럽게도 천일대사가 죽고 청목도장은 상처를 입었으니 천하 무림이 자연히 마교오웅의 손아귀에 들어 간 것입니다. 그들은 먼저 손을 쓰면 썼지 명년 봄까지 기다릴 리가 없습니다. 그들이 명년 봄에 가서 만나자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대로의 약점이 있을 것입니다.』
신필 왕천이 장대가의 이 말에 반기(反旗)를 들면서,
『아마도 부상한 것은 마교오웅이 아닐까요?』
유생 장대가는 부채를 가볍게 흔들면서,
『또 하나 유감스러운 일은 청목도장이 평소 정통파로 자처하기 때문에 결코 남의 위태로움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교오웅 역시 전진문하와 싸우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벌써 자기들이 먼저 손을 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이 손을 쓰는 것을 주저할까요?』
정송이 이상하다는 듯이 질문을 하니 장대가가 반문하면서,
『천하에서 청목도장을 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이 말을 요백삼이 선뜻 받아서,
『천일대사면 가능할지 모르겠군!』
이총관이 뒤를 이어
『마교오웅의 힘도 무시 못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는 청목도장이 무림의 그 모임 중의 유일한 생존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겁니다. 나는 청목도장이 그 모임에 참가하기 전에 그 마교오웅들에게 부상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성격으로 어찌 그 당시 도망을 갔겠습니까? 그러니 생환자는 응당 소림파의 천일대사일 것입니다. 마교오웅이 먼저 청목도장에게 상처를 입히고 천하 무림을 한번 정복하여 보겠다는 야심이 생겼을 것입니다. 청목도장에게 최후에 독수를 쓰지 않은 것은 그를 앞세워 천일대사의 행방을 찾으려는 생각에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도를 뺏고서 호언장담하여 기일을 정하고 무공을 비교하자고 했던 것입니다.』
요백삼과 그 일행들은 이 말이 가장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신필 왕천은 슬쩍 화제를 돌려서,
『그러니 오늘의 계책은 어떻게 새우는 것이 좋겠소?』
장대가는 길게 탄식을 하면서,
『내가 거듭 맹세를 깨뜨려서 강호에 발을 들여 놓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주 미약한 몸이라서…….』
요백삼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장대가를 쳐다본다.
이 때 요원은 마음속으로 자기 나름대로의 맹세를 지었다.
즉 운학을 도우면서 그의 힘을 빌어 보물을 찾아오리라고…….
요원은 어디까지나 운학이 결백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결심이 떠올랐던 것이다.
복보파의 고수들이 총동원되어 이 보물찾기에 나서니 강호는 벌집을 쑤셔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훌렁 뒤집혀 있었다.
며칠 뒤에 요원이 소문도 없이 복파보를 빠져 나오니 다시 한 번 복파보는 뒤집혔고 장대가가 말을 타고 요원을 찾으러 가는 북새통이 일어났다.
안개가 자욱이 끼여 있는 대지위에 황산의 신녀봉(信女峯)은 우뚝 솟아 있다. 사방은 조용하기만 하고 무거운 습기가 주위의 공기를 억누르고 있다.
산모퉁이에는 한약곡, 운학 신룡검객 하마가 다정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마가 분노한 어조로
『나는 정말 사형령주(蛇形令主)가 변신술을 쓰는 놈이라고는 믿지 않아요.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놈의 정체를 밝혀 낼 수가 없을까요?』
운학이 말을 이어
『화양(華陽)의 소무사(蕭武士)를 비롯하여 철연옹(鐵煙翁)……, 김대붕(金大鵬) 우리가 본 비참한 일만 해도 다섯 가지나 되는군! 그러나 우리 삼형제가 천리를 달리는 데도 사형령주의 그림자도 발견 못하니 이놈의 종적을 알 수가 있어야지!』
『나는 이 가운데에 큰 곡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가 다다른 곳마다 참극이 발생할까요? 사형령주는 숨어서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하마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을 하니 운학이,
『네가 말을 하니 말이지, 나도 이상하다고 느끼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사형령주는 정말 우리를 놀리고 있는 것 같아!』
한약곡(韓若谷)은 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주먹으로 땅을 치며 말을 한다.』
『그만 두어! 그 잔인무도한 살인배는 이 한약곡이 기어코 찾아내서 누구의 목숨이 질긴가 내기를 해야 하겠다.』
운학(鄆鶴)은 그의 얼굴에 늠름한 대장부의 기색이 보이게 되자 마음속에 깊이 존경하는 마음이 용솟음쳤다. 그는 고개를 돌이켜 하마(何摩)와 눈짓을 바꾸었다.
한약곡이 소리를 높여,
『이제(二弟) 삼제(三弟)! 아우님! 그렇다면 우리 계획대로 해보세. 이제(二弟)는 산남의 천전교(天全敎)를 탐색하러 가기로 하자. 둘째 아우는 잘 기억하여 두게! 삼제(三弟)와 규염객이 서로 싸우지 않도록 해 주어야 된다. 일이 일단락되면 곧 농남(隴南)으로 와서 나를 찾아주기 바라네.』
한약곡은 운학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낭랑하게 말한 뒤,
『다시 만나세!』
하는 말소리가 끝이 나자 그의 몸은 벌써 수십 자 밖을 달리고 있었다.
운학도 몸에 진기를 일구어 앞으로 달리기 시작하니 뒤쫓던 하마가 팔꿈치로 운학을 치면서,
『둘째 형, 우리 산으로 올라갑시다.』
운학은 대답도 하지 않고 몸을 가벼이 날려 앞으로 달음질을 치니 이들의 경공술과 발을 움직이는 빠르기가 비할 데 없이 빨랐다.
이름이 천하에 떨친 황산의 절경(絶景)이 양쪽에 펼쳐지니 두 사람의 입에서는 쉬지 않고 찬사가 흘러 나왔다.
두 사람은 어느덧 신녀봉 꼭대기에 이르러 사방의 경치를 살피고 있으려니 뒤에서 돌연 호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하마 정말 호한(好漢) 대장부로군!……아이구, 전진파의 고수도 오셨구나!』
운학과 하마가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았더니, 바위 뒤에서 갑자기 육척 거한이 나타났다.
바로 황산파의 규염객 안오였다.
하마가 명랑한 목소리로 웃으면서,
『안형과 같은 쾌남아를 만나는 것이 나의 평생소원이었는데 어찌 약속을 저버리겠습니까?』
하고 껄껄거리고 웃으니 운학은 팔짱을 끼고 서서,
『소제 운학은 안형이 이 하형제와 약간 오해를 사고 있는 것 같이 듣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오해는 소제로 하여금 일어난 것이라서 당돌함을 무릎 쓰고 똑똑한 해명을 들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안형께서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말씀이외다. 저는 어떤 변명의 말을 들어야 할까요?』
운학이 보니 아직도 그가 믿기지 않는 눈치인지라, 하마의 옷소매를 당기면서 쌍쌍이 허공을 날랐다.
『휘익――』
하고 두 사람은 일제히 큰 바위 위에 올라서서 규염객과 마주보는 자세를 취하였다.
운학은 팔짱을 끼고서 큰 소리로
『그날 복파보 중에서 운학이 하형제의 이름을 도용(盜用)한 것은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사람이 저를 그렇게 만든 것이올시다. 그런 까닭에 강호에서는 모두 제가 복파보의 보물을 얻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 말을 들은 규염객은 껄껄거리고 웃으면서,
『사실 보물은 운 노형께서 가지신 거지요? 놀랬습니다. 놀라워!』
운학은 입장이 대단히 난처하여 졌다.
무슨 말로 변명을 해야 좋을는지 몰랐으나 아니오라는 말로 대신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규염객은 호쾌하게 껄껄대고 웃으면서
『운형의 견식은 대단하십니다. 이 안오는 반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좋은 친구를 갖지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참된 지기를 만나게 되었구려. 이 세상 자연 만물에는 주인이 없는 법! 하늘이 만물을 창조하실 적에는 아주 공평무사하게 만드셨던 것인데, 속세에 사는 속인들이 견식이 좁아서 부자는 만리전(萬里田)을 갖게 되고 빈자는 설 땅조차 없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소? 우리들은 그저 마음을 곧게, 또 곱게 먹고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손을 뻗쳐 얻으면 되는 것이오.』
사실 안오는 천성이 호방하여 세상에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인정사정없이 철추를 가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가끔 부귀 권문의 집에서 재물을 털어다가 어려운 사람 돕는 일을 능사로 삼았던 터에 북파보에서 운학이 보물을 얻었다는 말을 듣고서는 바로 지기라고 칭찬하며 치켜올려 주었던 것이다.
운학이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하자, 규염객이 재빨리 가로막아,
『비유해서 말을 한다면 요가보(姚家堡)의 물건은 안오가 한 걸음 늦어서 운형에게 빼앗긴 것이오. 우리들은 이 중요한 물건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먼저 손을 쓴 사람이 강하다.」라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그 말은 천추만대(千秋萬代)가 되어도 변하지 않는 말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 안오가 운형과 같은 지기를 만나게 된 것을 평생의 쾌사(快事)라고 생각합니다.』
운학은 이 번드르하게 이죽거리는 안오의 태도가 미워지기도 하였으나
『안형께서는 오해하셨군요. 몇 번씩 말씀했지만 나는 그 보물을 결코 얻은 일이 없습니다.』
규염객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뭐라고?』
『나는 그 보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내가 얻기는커녕 지금까지 그 보물에 대한 이야기도 당신에게서 들었소.』
안오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더니 얼굴에 가벼운 비웃음을 띠우면서 불쾌한 듯이
『운형은 돼먹지 않았군. 대장부가 저렇게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안형은 도대체 무슨 보물인데 그렇게 얼굴을 붉히고 야단이슈! 설사 천하 사람들이 다투어 얻으려는 보물이라도 이 운학은 거들떠보지도 않겠소이다.』
규염객 안오는 이 말을 듣고 놀라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운학을 노려본다.
『운학! 나는 자네가 정말 호한(好漢)인줄 믿기 때문에 자네가 보물을 갖고 있지 않다고 믿고 싶네! 그러나…….』
운학은 그가 자기를 믿는다고 하는 말에 다소 안심이 되었으나 그러나…… 하고 다시 의심 깊은 표현을 남기는 데는 자기도 모르게 어떤 반감이 솟아나기 시작하였다.
안오는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눈앞에 놓인 보물을 보고도 당신이 모른 척 한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인걸!』
하마가 옆에 서 있다가,
『그러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당신의 마음과 같다는 뜻이구려!』
하마가 이렇게 안오를 비꼬았으나 안오는 얼굴색 하나 변함이 없이 태연스럽게
『그것은 당신들이 아직 이 보물의 신비로운 점을 모르는 까닭이오.』
이 말을 들은 운학이 하늘을 쳐다보면서 큰 소리로 웃으며
『이 운학이 비록 똑똑하지는 못하나 아직까지 물욕(物慾)에 눈이 어두워 자신을 속여 본 일은 없소이다.』
규염객은 한참 눈을 지그시 감고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더니
『좋은 물건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 기뻐진다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요. 일취일득(一取一得)이란 하늘이 안배(按排)하신 바요. 그러나 물욕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는 말은 안오의 귀에는 믿어지지 않는구려.』
운학은 이 말을 듣고 화를 버럭 내면서
『안형의 그 말씀은 극히 생각이 바르지 못한 말씀이오.』
안오 역시 다소 얼굴을 붉히면서,
『운형이 지금 내 말한 뜻을 그르다고 고집한다면 그 보물이 운형의 손아귀에 들어온 거나 다름없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고 천지신명에게 맹세하시오. 그러면 내 생각이 부정(不正)하였고, 수십 년을 헛되게 살아 왔음을 자인(自認)하고 무림에서 발을 빼고 독서삼매의 지경에서 자기 수양이나 하렵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뼈가 있는 말이었다.
운학은 침착한 어조로,
『운학은 절대로 물욕에 마음을 동하는 따위의 헛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밝혀 두렵니다.』
규염객은
『좋소.』
천지요동이 일어날 정도의 큰 목소리로 소리를 치면서 볼의 수염을 빳빳이 일으켜 세우면서
『이 보물을 얻는 사람은 십 년 전의 새북(塞北)에서 천하 정예(精銳)들이 모여 치룬 결전(決戰)이 결과가 어떻게 되었다는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당시 천하제일의 고수가 누구였는지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운형은 이 보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맹세할 수가 있단 말이오?』
이 말을 들은 하마는 갑자기 눈에서 날카로운 정기를 띠우면서 운학을 바라보았다.
이 말을 들은 운학의 마음은 초조하고 몹시 괴로웠다.
안오의 말 자체를 믿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으나, 그의 성격이나 인품으로 보아서 거짓말을 할 위인은 아니었다.
안오의 말이 운학의 신경을 곤두세울 만한 가치는 있었다.
즉 운학은 전진파의 제자였기 때문에 소림파를 위하여 천하제일고수를 겨루던 새북의 일전의 결과를 누구보다도 알고 싶어 하던 차였기 때문에 보물에는 욕심이 없었다손 치더라도 명예심과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운학은 놀라면서 다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얼마 뒤에 고개를 들은 운학은,
『모두 소용없소이다. 무슨 비보(秘寶)니 보물이니! 나의 소유가 아닌 이상 추호라도 물욕을 갖겠소?』
『내가 지금 말한 보물에는 또 한 가지 신비스러운 점이 있소. 가령 지금 운형이 이 보물을 얻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천하백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내상(內傷)이라도 하루아침에 거뜬히 치료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공력(功力)을 무섭게 증진시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소, 운형!』
운학은 비로소 억만 근의 쇠뭉치로 자기의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머리속에 번개같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이 보물을 얻는다면은 사부(師父)의 내상을 치료할 수가 있을 것이 아니냐?
안오의 설명은 운학에게는 무서운 유혹의 말이었다.
그러나 이때 운학의 귀에는 사부 청목도장의 엄격한 가르침과 명언(銘言)이 귓전에서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으나 안오의 유혹의 말을 이겨낼 만한 힘에는 여간 모자라는 것이 아니었다.
규염객 안오의 사나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내가 지금 하나에서 열까지 세는 동안에 당신의 결심에 변동이 없다는 것을 굳게 표명하지 못한다면은 안오가 운학을 잘못 봤다는 산 증거가 되는 것이오. 알겠소? 하나, 둘…….』
『나의 소유물이 아니거든 추호라도 취하지 말아라.』
청목도장의 엄격한 훈계의 목소리가 운학의 시청에 연거푸 울려오기 시작하고 운학의 이성과 지혜를 깨우쳐 주는 것 같았다.
만약에라도 운학이 이성과 지례에 호소하지 않았더라면 성인(聖人)의 진(進)•퇴(退)•사(捨)•여(與)의 도(道)가 안오의 감언이설에 짓밟혀 버리는 셈이 되는 꼴이다.
그러나 사부의 내상(內傷)으로 인한 괴로운 현재를 생각할 때
――만약 온 천하의 자랑스런 보물을 내 눈앞에 갖다 놓는다 하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나 안오가 말하는 보물! 나의 사부와 깊은 인과가 되는 보물!
규염객은 목청을 돋구면서
『여섯――일곱――』
안오의 이 소리는 운학을 채찍으로 때리는 것 같았다.
운학의 눈앞에는 은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늙고 힘이 빠져 창백한 사부의 모습이 자꾸 눈앞을 어지럽힌다.
――천하제일의 고수인 사부가 늙고 약한 범인(凡人)이 되다니!
운학은 다시 자기가 어릴 때의 일을 생각한다.
――만약에 사부가 아니었다면 험악한 세파(世波) 속을 망연자실(茫然自失)하여 울면서 세상을 배회하고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여덟――아홉――』
운학은 굳게 결심을 하였다.
안오가 빨리 열을 세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였다.
드디어 안오가 힘주어
『열!』
하였을 때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얼마 뒤에 안오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였다.
운학은 정중하게
『안오!』
안오는 대답 대신에
『내가 이겼구려!』
그러나 운학은 침착하게,
『당신이 분명히 졌구려! 나는 당신이 열을 셀 동안에 맹세를 하지는 않았지만 당신은 다음 두 가지를 잊어서는 안 되오. 첫째 당신의 사고방식(思考方式)이 근본적으로 틀렸다는 것과 둘째로는 이 운학이 절대로 물욕에 눈이 어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당신은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오.』
규염객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멍하니 서 있다가 히죽히죽 웃으면서 몸을 날려 산봉우리를 뒤로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가 히죽거리며 웃는 웃음소리는 분명히 운학에 대한 조소(嘲笑)에 틀림이 없었다.
하마가 가볍게 운학의 어깨를 치면서
『둘째형! 나는 당신을 믿어요! 형을 이해합니다.』
이 때 산 아래에선 산봉우리를 향하여 한 떼의 사람이 나는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규염객 안오는 신녀봉의 뒷길을 내려갔기 때문에 이 사람들과는 만나지 못한 것 같다.
이 한 무리의 경공술은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산허리에서 봉우리까지 정말 가가 막힐 정도로 빠른 것으로 봐서 보통 사람들 같지가 않았다.
맨 선두에 달려오던 사람은 어느덧 공중에 몸을 날려 운학과 하마의 등 뒤로 돌아 우뚝 서더니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더니 다행히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군!』
운학과 하마는 고개를 돌려보고서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는 키가 육척 같고 몸집이 바위와 같이 커서 그 위세가 당당하게 생긴 복파보주 요백삼이 서 있었다.
하마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둘째형! 저들은 분명히 우리를 찾으러 온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찾아 온 뜻이 그리 달가운 것 같지 않은 눈치입니다.』
어느덧 요백삼의 뒤에는 십여 명의 대한이 서 있었다.
이들은 분명히 복파보의 정예(精銳)들이 틀림이 없었다.
운학은 손을 합장하고 요백삼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러나 주위의 공기는 뜻밖에도 몹시 싸늘하다.
요백삼 일행이 운학과 하마를 노려보는 눈초리에 살기가 등등하여 심상치가 않았고 그럴수록 하마도 몸가짐이 긴장해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소리도 없이 슬금슬금 발을 옮겨 어느덧 운학과 하마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요백삼은 무서운 눈초리로 운학과 하마를 번갈아 노려보고 서 있었다.
운학은 슬그머니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더듬었다.
『운학아! 너를 알아보기 참 힘들구나! 꽃을 빌어 나무에 옮겨 심는 계교가 있는 모양이구나!』
운학은 이 말을 듣고서 저윽이 놀랐다.
――요백삼은 응당 나를 하마라고 알아야 할 텐데! 요백삼이 설마 내가 하마의 이름을 빌어서 썼던 것을 알고 있을 리가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니 운학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는지 얼른 입을 뗄 수가 없다.
그러나 요백삼은 이런 사실은 전연 모르고 있는 터이었다.
오직 그날 청목도장이 요가보(姚家堡)에 와서 도제(徒弟) 운학을 찾는다고 들었고 운학이 복파보(伏波堡)를 빠져 나갔다는 말을 듣고 청목도장도 바삐 복파보를 빠져나갔다는 것과 자기의 누이동생 요원이 똑똑히 운학이 복파보에 있다고 대답하는 것을 듣고 요원에게 자세한 내막을 물었으나 시원스런 대답을 듣지 못하여 대략의 어림으로만 짐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요백삼은 그날 밤의 하마라는 사람은 분명히 운학의 장난질일 것이라는 짐작이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요백삼은 마음속으로,
――요 놈의 햇병아리들을 단단히 혼을 내 주어야겠다!
요백삼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가 강호의 고수들이라 늙은 구렁이들이었다.
요백삼은 고개를 지그시 숙이고 무엇인가 깊이 생각을 하고 있다가
『운학! 자네가 우리 보에 와서 장난질을 치고 간 일은 탓하고 싶지 않으나 신룡검객 하마의 이름을 빌어 강호를 쏘다니며 시끄럽게 군다는 것은 신룡검객이 죽지 않은 이상 용납 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네.』
하마가 별안간 불호령을 내린다.
『아가리 닥쳐!』
요백삼은 고개를 들고 천천히 하마를 쳐다보면서
『본인의 눈이 나쁜 것을 관대히 용서하시오. 이 분의 친구 되시는 당신의 고성대명(高姓大名)을 알고 싶소이다.』
『소인의 성은 하(何)요 천명(賤名)은 마(摩)라고 하오.』
요백삼은 눈을 크게 뜨면서,
――오늘 이 자리의 일이 제법 시끄럽게 되겠는걸! 우선 이 친구의 장단점(長短點)을 떠 봐야 하겠다!
『좋다! 두 분은 본래부터 아는 사이였군! 그렇다면 요백삼은 크게 실례 했소이다. 보아하니 두 분은 계획적으로 나 요백삼을 골리려고 하였었군!』
요백삼은 어느 정도 자기 수양이 되어 있는 인물이었으나, 일이 여기에 이르자 인격이고 수양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는지라 표독한 소리로 떠들기 시작하였다.
하마가 운학의 옷소매를 잡아 흔들면서 귓가에 입을 대고서는,
『둘째형! 이 판국은 우리에게 극히 불리하니 우리는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운학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요백삼과 그 일당을 살펴보니 노기가 충천하여 있었으니 이들은 운학과 하마가 고의로 그들을 약 올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때 요백삼의 뒤에 서 있던 한 대한이 점잖은 목소리로
『장강(長江)의 뒷 물결은 언제나 앞 물결을 밀고 나온다고 하지만 무림에 하나의 새로운 사람이 나와서 옛 사람을 바꾸니, 이 새로운 사람들이란 건방지기 짝이 없단 말야!』
운학은 말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니 바로 복파보의 고수 신필 왕천의 목소리였다.
요백삼은 왼쪽 눈을 지그시 뜨면서,
『운학! 오늘 우리는 사람이 많다고 기세를 믿어 너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겠네. 다만 자네가 우리에게 몇 마디 답변만 하여 주면 된단 말야. 사십 년 전의 마교오웅(魔教五雄)은 자네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말 좀 해 보게!』
요백삼(姚百森)은 분명히 마교오웅과 하마와 운학이 서로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운학은 복파보에서 보물을 잃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지금 요백삼의 말을 듣고서야 무엇인가 조금 알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요보주께서는 왜 그런 말을 저에게 물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간단히 물으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수 없이 많은 의문이 생겨났다.
――내 한 때 호기심으로 잠시 동안 하마의 이름을 빌려 썼다가 큰 낭패를 당하는걸! 마교오웅과 나와의 관계를 요백삼이 묻는 까닭이 무엇이람!
요백삼은 눈을 치뜨면서 낭랑한 목소리로
『운학 자네는 전진파의 현문(玄門)으로 어찌 외가사문(外家邪門)의 마교오웅과 관계를 맺었는가, 그 까닭을 우리에게 알려 주게.』
마교오웅은 근 사십 년 간이나 종적을 감추었으나 그들이 강호에 다시 나타난 뒤로는 무림의 사람들에게 흉악무도한 마귀의 상으로 보이고 있었다.
운학이 이상스러운 눈치로,
『나와 그들이 어떤 관계라니요?』
요백삼의 뒤에 도사리고 서 있던 정송이 화난 목소리로
『운가야! 아직도 시치미를 땔 셈이란 말이냐?』
『무슨 말씀? 이 운학은 마교오웅의 인물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그들을 찾아 일전(一戰)을 치르려고 그들을 찾고 있는 중이요.』
그의 말 속에는 씩씩한 기개와 확고부동의 결심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