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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전쟁의 실체와 본질. / 霊的な戦いの実体と本質。 ( 2024년 1월 21일 주일예배)
본문; 마태복음 16:13-20
마 7:13 ○예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1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엄명하시기를,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13. イエスは、フィリポ․カイサリア地方に行ったとき、弟子たちに、「人々は、人の子のことを何者だと言っているか」とお尋ねになった。14. 弟子たちは言った。「『洗礼者ヨハネだ』と言う人も、『エリヤだ』と言う人もいます。ほかに、『エレミヤだ』とか、『預言者の一人だ』と言う人もいます。」15. イエスが言われた。「それでは、あなたがたはわたしを何者だと言うのか。」16. シモン․ペトロが、「あなたはメシア、生ける神の子です」と答えた。17. すると、イエスはお答えになった。「シモン․バルヨナ、あなたは幸いだ。あなたにこのことを現したのは、人間ではなく、わたしの天の父なのだ。18. わたしも言っておく。あなたはペトロ。わたしはこの岩の上にわたしの教会を建てる。陰府の力もこれに対抗できない。19. わたしはあなたに天の国の鍵を授ける。あなたが地上でつなぐことは、天上でもつながれる。あなたが地上で解くことは、天上でも解かれる。」20. それから、イエスは、御自分がメシアであることをだれにも話さないように、と弟子たちに命じられた。
지난 주일까지 3주간 연속으로 사랑의 성경적 가르침과 약속에 대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서 사는 권세와 능력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사랑에 순종하여 우리 눈에 보이는 존재인 이웃과 친구와 가족을 사랑하면 현실적으로도 놀라운 복의 열매를 풍성하고도 넘치게 받고 누리게 되는 것이지요. 저와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변인들을 사랑함으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많은 복으로 충만한 삶을 누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부터는 영적전쟁에 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하는데요. 흔히 영적전쟁이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특별하고도 신령한 감각을 가진 사람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대단하고 신비주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은 영적전쟁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바로잡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과 내용에 대해서 점검을 해 보려고 하는데요. 제가 지난 해 3월에 이스라엘로 성지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때 오늘 본문에 기록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도 다녀왔는데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시던 장소에 저도 다녀왔습니다. 그 때의 사진을 잠시 보도록 하겠는데요.
당시 빌립보 가이사랴는 로마의 ‘판’이라는 우상을 제사하는 제단과 신전이 있었던 곳입니다. 소위 사람들이 많하는 신령한 기운으로 가득한 곳이었지요. 사진에 보시면 아시다시피 이 산 아래에서 물이 샘솟아 흘러나와 시내를 이루고 마침내 갈릴리 호수와 요단 강, 그리고 사해까지 이어지는 수원지 중의 한 곳입니다.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서 바위에서부터 물이 샘솟아 시내와 계곡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하고, 신령하게 여겨졌을까요? 비교적 물이 풍부하다고 하는 온대 지방에 사는 우리도 아마 이런 광경을 보면 신비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하물며 이스라엘과 같은 건조기후에서 물이 샘솟는 지역은 정말 놀라운 땅이었지요.
그런 곳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판’이라는 우상신을 제사하고, 그 신에게 소원을 비는 제단을 바위에 굴을 파서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은 당시의 유적을 개발하여 관광지가 되어 있는데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곳에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여하튼 지금이나 그 때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거리는 장소입니다.
특히 당시에는 판 신에게 제사하고 소원을 빌기 위해서 모이는 수많은 사람들로 지역경제와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지역의 이름을 빌립보 가이사랴라고 하는데, 이는 빌립이라는 유대 분봉왕이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에게 바치는 도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세속적인 유복함과 풍요로움을 얻기 위해 소원을 비는 곳이며, 동시에 로마제국의 힘을 과시하는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실질적으로도 돈과 권력이 맹위를 떨치는 곳이기도 하였지요. 현재는 판 신을 제사하는 신전과 제단은 흔적만 남았고, 신전건물에 사용되었던 건축자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역사유적지로만 남은 상태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물이 나오게 하시는 수원지인 샘은,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여전히 그 맑은 물을 갈릴리 호수와 요단강까지 흘려 보내고 있지요.
인간이 신화와 권력으로 만들어진 도시와 건물은 무너지고 땅에 묻혀버렸지만, 하나님의 창조는 변함없이 그 자리와 사명을 지키고 있는 것을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속적인 탐욕의 가치와 세계관으로 소란스러운 우상의 신전 앞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은 답합니다.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물으십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말하겠느냐?”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아멘.
그렇습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이 곧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적전쟁의 핵심이자 그 실체에 대해서 명확하게 짚어주고 있습니다. 이 답변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의 대답이 인간 베드로의 답이 아니라, 그의 혈통이나 지적인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곧 하늘의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요.
여기서 말씀하시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말씀하게 하셨다는 것이 곧 영적전쟁의 의미를 드러내는 가르침입니다.
영적전쟁이란 어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어떤 신령한 기운을 받아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세력다툼을 하며 미워하거나, 기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전쟁이란 이 땅의 사람들이 선호하고 부러워하는 어떤 실력이나 재능, 혹은 풍요함을 과시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을 말하고자하는 태도이며 순종의 자세와 그 결과 나타나는 활동들인 것이지요.
특별히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하신 이유가 있는데요. 그것은 온통 혼란스러움과 번잡함, 그리고 분주함과 허무함이 난무하는 우상숭배의 심장부에서 영적전쟁의 태도와 자세, 그리고 행동으로 나타나는 순종의 결단을 가르쳐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여전히 더욱 물질의 풍요를 갈구합니다. 여전히 남보다 우월한 힘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여전히 힘을 가진 이들이 나약한 이들을 지배하고 깔아 뭉게려는 사악함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에 주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는 예수를 누구라고 고백하겠느냐? 그 복음을, 하나님의 나라를, 그 뜻을 무엇이라고 고백하겠느냐?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나의 지식과 경험과 실력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말씀으로 대답해야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이것이 영적전쟁의 본질입니다. 영적전쟁의 본질은 어떤 세계관을 갖고 살겠느냐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세계관, 과학만능주의 세계관, 혹은 진화론적인 세계관, 유물론적이며 인본주의적인 세계관으로만 세상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세계관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이 가르쳐주시는 세계관이지요. 물론 과학적 사실이나, 물리학 법칙, 그리고 인간을 존중하려는 가치관이 완전히 사악하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세속적인 세계관은 결국 인간의 인간다움을 회복하기에 온전하지 못한 가치관이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 나라의 세계관, 창조의 세계관을 기본으로 가지고 물리학적 법칙이나, 인간존중의 가치관을 활용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경의 가르침과 그 내용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갖추고, 그 뒤에 인간들의 모든 지식과 정보, 그리고 가치관과 체계들을 유용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영적전쟁은 이 땅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활동이며 행동인 것입니다.
그런 영적전쟁의 베이스 캠프가 되는 곳이 곧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시지요. 여기서 이 반석이란 베드로의 고백을 뜻합니다. 자신의 노력이나 선입견으로 알아낸 말이 아닌, 하늘의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고백을 초석(반석)으로 삼아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이지요. 이 땅의 모든 사도적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는 그래서 모두 예수님께서 주인되시는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교회, 혹은 남의 교회라고 말들하지만, 실제로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너무도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모두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의 입을 통해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 1:24)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2)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12:27)
이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그 몸의 각 지체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신 교회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의해서 자라고, 성숙하고, 활동하고, 부흥하며,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지요. 어떤 이들이 오해하듯이 목사가 주인이고, 성도는 방문객이나 손님이 아닙니다.
따라서 교회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야 건강해집니다.
만일 여러분의 생각과 의지대로 자기의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여러분은 스스로를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병원에 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뜻대로 교회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공동체는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과 같지요.
예수님께서 오늘 제자들에게 세계관에 관한 질문을 던지신 후에 그들의 생각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짚어 주셨고, 그 후에 그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18절과 19절입니다.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영적전쟁을 서포트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물론 우리의 현실에서는 영적전쟁만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볼 수는 없지요. 하지만, 교회는 세속의 다른 공동체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영적전쟁을 위해 주님께서 세우시고, 주님께서 친히 주인되시는 주님의 몸된 공동체인 것은 명확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의 사명 중에 중요한 것이 마귀의 일을 멸하는 일이라고 분명히 전언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일 3:8)
바로 영적전쟁을 선포하신 것이지요. 그렇다면 마귀의 일은 어떤 일일까요? 성경은 주님의 가르침을 또한 기록해 놓았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예수님께서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하시지만, 마귀는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귀의 도둑질은 영생과 영혼을 도둑질하는 것이고, 죽이는 것은 말 그대로 목숨을 죽이는 것이지요. 또한 멸망시킨다는 것은 결국 영적인 생명력인 사람다움을 도둑질하여 타락하게 말들고, 죄짓게 만들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는 마귀의 종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모든 악하고 나쁜 것들의 근원이 곧 마귀의 일입니다. 온갖 나쁜 것들에 중독시키려 합니다. 우상을 섬기게 하여 영혼이 타락하게 만들지요. 또한 사람들이 절제하지 못하고 자기 욕구대로만 살게 하여 자연스럽지 못한 육신적인 질병을 일으켜서 고생하고, 서로 싸우다가 멸망의 길로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가 하는 짓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마귀의 하는 짓에 대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걱정과 염려를 할 필요도 없지요. 오늘 본문에서도 분명히 약속하셨지만, 음부의 권세, 즉 마귀의 세력이 교회를 이기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에 속하고, 교회와 연결되고, 교회로 세워지면 마귀와 사탄은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성경은 또한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일 5:18)
여러분, 원칙적으로 우리가 자발적으로 몸과 마음을 내주지 않는 한... 악한 자는 우리를 만지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탄의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알되 주님과 동행하면 절대로 우리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더 뚜렷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교회가 무시무시한 사탄의 세력을 겨우겨우 방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수비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만으로도 마귀의 세력을 멸하는 공세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의 존재는 인정하되 그의 능력은 무시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자고 예수동행 제자훈련교재는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탄의 무리와 악령들을 긴장시키는 사람이 되자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사탄과 귀신들 사이에 두려움의 대상으로 유명한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영적전쟁은 이처럼 우리의 여러가지 가시적인 일상의 환경에서 교회와 멀어지게 하고, 말씀과 기도에서 멀어지도록 하는 환경과 형편으로 나타나는데요. 또한 동시에 우리의 내면세계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그 임재 가운데 살면 예수님의 성품을 닮게 되는데요. 그 과정 중에 사탄은 조금의 틈만 있으면 우리를 유혹하고 미혹하여 간섭하고 반대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내면세계에서의 영적전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복음을 믿고, 회개하여, 거듭나서, 영생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인생을 살지만, 영생을 누리는 일상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으로 자라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는대로 믿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믿는대로 살기 위해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임재에 신경을 쓰고, 매일 하루만큼의 흔적들을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이지요.
이렇게 성실하고 경건한 일상을 살려고 하면 꼭 사탄과 마귀가 방해를 하려고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며 유혹합니다. 특히 우리의 옛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며 지속적으로 참소하고 고발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이미 십자가를 통과하며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사탄과 마귀가 우리에게 속삭이고 거짓말로 참소하고 고발하여도 절대 속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영적전쟁은 그러므로 자신의 정체성을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왜곡되고 상처받아 찌그러진 자신의 존재가 진짜 자기자신이라고 믿게 만들려는 것이지요. 마치 검은 먹물을 끊임없이 우리 위에서 뿌려대며, 마치 원래 우리가 더럽고 검었던 존재였던 것처럼 속이려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을 계속 묻히고 다니다가 결국에 씻지 않고 지내면 검은 상태로 머물게 되듯이, 사소하게라도 끊임없이 죄를 짓게 만들어 결국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정한 방법을 쓰더라도 물질적이고 금전적인 이득을 보거나 성공하거나 출세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고까지 생각하게하지요.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 세속의 가치관과 그럴듯한 세계관을 동원해서 우리의 사람됨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복음을 믿기 전에는 모두 이런 사탄의 종으로 살았던 존재였음을 기억하고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6)
더 이상 우리가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옛사람을 당신의 몸과 함께 못 막으셨습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4)
사탄은 우리를 혼미하게 하여 복음의 광체가 비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이것이 곧 영적전쟁의 실체입니다.
사탄은 영적전쟁의 현실적인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가치를 허물고, 그래서 성도로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을 부끄럽게 만들어, 말씀과 기도가 사라지게 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보혈로 주고 사신 거룩한 성도의 내면세계에 끊임없이 죄악의 먹물을 뿌려 더럽히고, 성도로서의 존재가치를 가리게 하여 영광의 광채를 비추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지요.
하지만, 여러분 걱정하거나, 낙심하거나, 또한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이나 대책도 없이 살아갈 일도 아닙니다. 지난 3주간 동안 사랑이 우리를 복되게 하는 것을 들었던 것처럼, 우리가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권능으로 이 모든 사악한 권세의 도전에 당당히 맞서 경건하고 거룩하며 선량하고 정결하게 사는 것을 기쁨과 뿌듯함으로 용기내서 자신을 지키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교회와 공동체를 지키는 일에 힘을 모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영적인 세계과 존재는 분명히 실재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령과 사탄의 활동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셔서 음부의 권세가 우리를 이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서로 연결된 한 몸으로 연대하여 영적인 전쟁에 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귀는 우리의 내면세계에 침투하여 끊임없이 죄의 유혹으로 우리를 더럽히려고 합니다. 매일 회개와 주님과의 동행함으로 각자의 내면세계를 지키며 내적인 영적전쟁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와 여러분이 주님과 동행함으로 혼란함이 더 해가는 세상에서 횡행하는 영적세계과 가치관에 대한 허무맹랑한 거짓 가르침을 분별하고, 진리의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채우시는 풍성하고 충만한 복의 열매를 매일 하루에 하루만큼 맺는 증거를 남기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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