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빠져나가려면 / 조미숙
류현진이 국내리그로 돌아온 것과 외국인 용병 페라자가 활약한 것에 힘입어 한화가 7연승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연일 구장마다 매진이다. 기아와 한화의 경기가 있는 날, 우리 작은딸은 서울에서 대전까지 달려갔다. 전문가들이 성적이 부진할 거라는 예견을 벗어난 팀들이 선전한다. 프로야구 이야기다.
요즘 살맛이 난다. 기아가 1등이다. 해마다 바닥에서 놀더니만 올해는 다르다. 연패가 없다. 말도, 탈도 많았던 감독과 구단장이 바뀌니 승승장구다. 동네 아저씨 같은 친근한 외모의 감독을 칭찬하느라고 입에 침이 마른다. 성적이 부진한 선수에게도 믿고 기다려 주고 따뜻한 말을 아끼지 않는단다. ‘꽃범호(이범호)’라는 별칭에 맞게 인기 미남 배우(차은우)보다 잘생겼다고 선수와 팬들은 우긴다. 이 기적 같은 날이 계속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런데 열기를 더해가던 프로야구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생겼다. 심판진의 오심 조작 논란이다. 그동안 판정 시비는 심심찮게 나왔다. 아무래도 사람의 눈으로 판단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에이비에스(ABS: 레이더와 카메라 등으로 스트라이크와 볼을 자동으로 판정해주는 기계)다. 심판은 인이어(In-Ear)로 에이비에스가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스트라이크, 볼 판정을 수신한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더그아웃((dugout: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감독, 선수, 코치들이 대기하는 장소)에서 실시간으로 에이비에스 판정 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각 구단에 태블릿 피시를 두 개씩 제공하고 있다. 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지만, 구단에 제공된 실시간 데이터와 심판 판정이 일치하지 않거나, 기계 오류가 의심되면 감독이 확인을 요청할 수 있다.
해당 경기에서 문승훈과 이민호 심판은 각각 주심과 3루 심이었다. 논란의 장면은 엔시(NC)가 1-0으로 앞선 3회 말 2사 1루 상황에 발생했다. 삼성 이재현이 타석에 들어선 가운데 엔시 선발 이재학이 던진 2구째 직구를 문 주심이 볼로 판정했다. 하지만 앞서 에이비에스는 이 공을 스트라이크로 분류한 상태였다. 규정대로라면 문 주심이 에이비에스의 판정 결과에 따라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려야 했지만, 이를 외면했다.
이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엔시가 심판진에 항의했고, 이에 4심이 모여 엔시의 어필을 받아들일지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이민호 심판이 문 주심에게 “음성이 안 들렸으면 안 들렸다고 사인을 줘야 하는데 넘어간 거잖아.”라며 “음성은 볼로 인식했다고, 들으세요. 아셨죠? 이거는 우리가 빠져나갈 방법은 이것밖에 없는 거야. 음성은 볼이야.”라고 했다. 문 주심이 “지직거리고 볼 같았다.”라고 하자, 이민호 조장은 “같았다가 아니라 볼이라고 나왔다고 그렇게 하시라고. 우리가 안 깨지려면:”이라고 다그쳤다. 이 장면은 티비 중계로 고스란히 전달됐다.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는 해명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주심은 볼로 들었다’라는 걸 확인하는 장면이었고 ‘우리가 빠져 나갈 건’이란 표현은 ‘심판의 은어’”라고 해명했다. 심판들끼리 “‘어필 상황을 정리하고, 매뉴얼대로 경기를 속개하자’라는 의미로 쓴다고 오해할 만한 일이라고 죄송하다"고 하면서, "하지만 은폐 행위가 아니었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케이비오가 오심 은폐 논란을 부른 이민호 심판을 해고했다. 19일 인사위원회가 끝난 뒤, “지난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엔시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도중 에이비에스 관련 판정 실수와 이후 부적절한 대처로 리그 공정성을 훼손한 심판진의 징계를 심의했다”면서 “그 결과로 이민호 심판과의 계약을 해지한다”고 발표했다. 현장에서 함께한 문승훈과 추평호에겐 3개월 정직(무급)처분을 내렸다. 문 심판은 정직 기간이 끝나면 추가 인사 조치를 진행키로 했다.
사실 그동안 나같은 비전문가 보더라도 믿기 어려운 석연찮은 판정도 많았다. 심판이 그렇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은 그들의 고유한 영역이니 억울해도 다들 참는 눈치였다. 판정에 불복했다간 퇴장당할 수도 있다. 그래도 공정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발등 찍혔다. 지난 모든 경기마저 의심스러운 눈길이 뻗친다. 신이 아닌 이상 실수할 수는 있겠지만 그 뒤, 일 처리가 올발라야 하지 않을까? 거짓말이 불러온 대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