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1-14) 앞선 15장에서는 무익한 들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예루살렘 멸망의 필연성에 대해 예언하였으나 본장에서는 버려진 신생아를 곱게 키워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끊임없이 가증한 음행을 저지름으로 자신을 더럽히는 음녀의 비유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스라엘의 범죄가 얼마나 파렴치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버려진 여자아이로 비유되는데 아모리와 헷사람을 이스라엘의 부모로 표현한 것은 이스라엘이 그들처럼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비참하게 버려진 갓난아이와 같은 예루살렘을 죽음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들풀처럼 자라 아름답게 되었을 때에는 자신의 옷으로 덮어 주셨고 그의 신부로 삼아 주셨습니다. 기름을 바르고 좋은 옷과 신을 주시고 각종 보석으로 장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화려한 왕관을 씌우심으로 예루살렘을 왕후의 지위에 올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변방의 성읍이었던 예루살렘을 택해 주시고 아름답게 해 주시며 빛나는 왕의 성읍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15-52) 그런데 하나님께 사랑받고 왕후가 된 예루살렘이 자신의 화려함과 명성을 가지고 우상을 숭배하는 영적 행음을 저질렀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낳은 자녀를 우상의 제물로 불살났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예루살렘을 향해 화가 임할 것이라고 반복해서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음란의 범위를 계속 확대하여 높은 대를 쌓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유혹해 행음했습니다. 애굽과 행음했고 앗수르뿐만 아니라 바벨론과도 행음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은 일반 창기들은 돈을 받았으나 예루살렘은 자신의 음욕을 채우기 위해 오히려 상대에게 선물과 돈을 주면서 행음을 저질렀다고 탄식하십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하나님은 행음과 배교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그들과 사통하던 바로 그 이방 나라를 통하여 심판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소돔과 사마리아와 비교하시며 예루살렘이 그 성읍들보다 더 타락하고 부패하였다고 고발하십니다. 소돔은 음란과 죄악으로 멸망한 성읍입니다 (창19장). 사마리아는 우상숭배로 앗수르에 멸망당했습니다 (왕하17장). 그런데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죄가 소돔과 사마리아의 죄를 능가한다고 하신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 것에 분노하시고 자신의 아름다운 자녀가 죄로 얼룩진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하십니다. 끝까지 기다리시지만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는 것으로 인해 슬퍼하십니다. 이 모든 감정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줍니다
(53-63) 본문은 회복을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이 수치 속에서 심판을 받을 때 하나님은 옛적일을 기억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아 피투성이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예루살렘을 하나님이 구해 주시고 높여 주셨습니다. 혼인 관계로 언약을 세워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은혜를 잃은 채 교만해 타락했고 그 결과 징벌을 받고 비참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예루살렘과의 첫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변 족속에게 비웃음을 받으며 벌을 받는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시고 예루살렘이 행한 모든 일을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워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영원한 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압도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예루살렘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신에 죽으신 주님의 그 크신 은혜를 한시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매 순간마다 말씀과 기도와 순종의 삶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