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4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윤석열 대통령 5박7일간 미국 국빈방문
2023년 뉴질랜드 케르마덱 제도서 규모 7.3 지진 발생
2022년 프랑스 2017년에 이어 두 번째로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당선
2014년 헌법재판소 16세 미만 청소년의 인터넷게임 접속을 막는 셧다운제 합헌 결정(7대2)
2013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 의류공장 건물 붕괴 사망 622명
2011년 최초로 에베레스트 두 번 오른 셰르파 곰부 별세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등반대의 최연소 셰르파이자,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두 번 등정한 유명 셰르파인 나왕 곰부(79)가 24일 인도에서 별세했다.
곰부는 21살이던 1953년 고(故)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함께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숙부인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를 따라 힐러리 경의 등반대에 합류했다.
당시에는 정상에 서지 못했으나 10년 후 짐 휘태커가 이끈 첫 미국 등반대를 인도해 최고봉에 올랐고, 다시 2년 뒤 인도 등반대의 안내를 맡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두 번 오른 사람이 됐다.
이후에도 히말라야 일대에서 수십 개의 새 등정로를 개척하는 등 셰르파 집단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9년 자유형 100m, 47초 벽 깬 베르나르
알랭 베르나르(26·프랑스)가 수영 남자 자유형 100m의 47초 벽을 허물었다. 베르나르는 2009년 4월 24일 열린 프랑스 선수권(몽펠리에) 자유형 100m 준결선에서 46초94를 기록, 에이먼 설리번(호주)이 갖고 있던 종전 세계기록(47초05)을 0.11초 앞당겼다.
자유형 100m는 50m와 함께 최고의 ‘수중 탄환’을 가리는 종목. 특히 100m는 영법과 호흡, 턴(turn) 기술은 물론 작전과 스퍼트 능력까지 갖춰야 하기 때문에 스프린트 레이스의 꽃으로 불린다. 2008베이징올림픽 챔피언인 베르나르는 2000시드니올림픽 당시 피터 판 덴 호헨반트가 47초84로 들어오며 48초 벽을 무너뜨린 이후 9년 만에 46초대 진입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베르나르의 이날 기록은 당분간 ‘미공인’으로 남는다. 그가 입었던 첨단 소재 수영복이 아직 FINA(국제수영연맹)의 공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 수영복이 공인받으면 기록도 함께 공인된다.
2005년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 즉위식
24일 오전 10시 바티칸의 성 베드로광장에는 35만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즉위 미사가 거행됐다.
5개의 붉은 십자가로 수놓은 흰 영대(領帶)가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어깨 위에 놓였다. 성 베드로가 고기잡이 하는 모습을 새긴 어부의 반지(페스카토리오)가 교황의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지는 순간 성 베드로광장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제265대 교황이 즉위하는 순간이다.
이 의식은 이날 미사의 가장 상징적인 순서. 어부의 반지는 교황이 공식 문서에 찍는 옥새로 사용되는 것으로 교황의 권위를 상징한다. 영대는 어린 양의 털로 짠 2.4m의 흰색 모직 띠로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린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붉은 십자가 5개가 실크로 수놓아졌으며 3개의 못을 상징하는 3개의 금빛 핀으로 교황의 금빛 망토에 고정됐다.
모든 추기경들이 교황에게 충성을 서약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 대신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명(추기경 3명, 주교 1명, 사제 1명, 부제 1명, 수녀 1명, 수도사 1명, 부부 1쌍 그리고 어린이 2명)이 대표로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손에 입맞췄다. 그중에는 김수환 추기경도 있었고, 이탈리아에 사는 한국 교민 민동수·박은희씨 부부와 아들 재희군도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교황 앞에 나아갔다.
2004년 프랑스 갱스터 영화 감독 호세 지오바니 사망
‘암살자(La Scoumoune)’ 와 ‘암흑가의 두 사람(Deux Hommes Dans La Ville)’ 등 프랑스 갱스터 영화 감독 호세 지오바니가 2004년 4월 24일 스위스 로잔 병원에서 타계했다.
1923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시실리에서 유년을 보낸 호세 지오바니는 2차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동했으며, 전후에는 범죄조직 가담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사면되는 등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았다.
1967년 ‘대모험’ 으로 데뷔한 그는 알랭 들롱 주연의 ‘시실리안’(1969), ‘암흑가의 두 사람’(1973), ‘르 지탕’(1974) 등의 수작을 낳았다.
2003년 베이징, 초ㆍ중ㆍ고교 사스(SARS)로 임시 휴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갈수록 확산되는 중국에서 베이징(北京)시 당국은 각 초·중·고교들에 대해 24일부터 2주일간 휴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22일 허용했다. 이에 따라 시내 대부분의 초·중·고교들이 휴교에 들어가기로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3일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캐나다 토론토 3곳을 홍콩·중국 광둥성에 이어 여행 자제 권고 지역으로 추가 지정했다
중국 정부는 5월 1일부터 시작되는 노동절 연휴 동안 대규모 인구 이동으로 인한 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성(省) 간 여행을 금하라는 긴급 통지문을 하달했다. 또 사스 방역을 책임진 공직자가 업무 수행을 제대로 못할 경우 엄벌에 처하고, 사스 관련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전원 체포키로 했다고 신화통신 등 관영 언론들이 보도했다.
지난 22일 오후 10시(현지시각) 현재 홍콩을 포함한 중국 전역의 새로운 사스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하루 전에 비해 각각 171명(홍콩 24명)과 15명(홍콩 6명)이 늘어났다. 이로써 총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3763명과 211명에 달했다. 특히 사스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베이징시에서는 하루 동안 105명의 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7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2년 800년 잠깬 `고려의 빛` 군산앞바다서 발굴
서해안 바다 속에서 잠자던 신비의 고려청자 비색(翡色)이 800년 만에 햇빛을 봤다. 전북 군산시 비안도 근해에서 12세기 후반기의 고려청자가 다량 발굴된 것이다. 문화재청은 2002년 4월 24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인양한 고려청자 일부를 공개했다.
군산 비안도 앞바다에서 인양된 고려청자 450여점은 고려청자 전성기인 12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이며 그동안 15차례 있었던 ‘고려청자’ 해저 발굴 사상 가장 양질의 것으로 밝혀졌다.
한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다가 발견했다고 신고해와, 국립해양유물전시관과 문화재청이 발굴 인양한 고려청자는 454점에 달했으며, 앞으로 정식 발굴조사를 거칠 경우 더 많은 양의 청자가 인양될 예정이다. 발굴된 청자는 대접과 접시, 통 모양 잔 등 다양했으며, 연꽃과 모란을 주로 새겼다. 형태가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은 150점 정도였다.
2000년 중국최고위 조선족 조남기 정협부주석 62년 만에 조국방문
조선족 출신으로 중국에서 최고위직에 오른 조남기(74) 정협부주석이 한국 정부 초청으로 2000년 4월 24일부터 5월 3일까지 열흘간 한국을 방문했다. 조 부주석은 방한 기간 중 김대중 대통령과 정·재계 인사들을 만났고, 12살 때 떠난 충북 청원군 강내면 태성리 고향땅을 62년 만에 다시 밟았다.
조 부주석은 12살 때인 1938년 독립운동가인 할아버지를 따라 중국 길림성 영길현으로 이주, 중학을 졸업한 뒤 중국 팔로군에 입대하여 직업군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6·25 당시 후근부 사령관인 홍쉐즈의 통역장교로 근무하며 중국 인민지원군의 군수품 수송에 큰 역할을 한 공을 인정받아 출세가도를 달렸다.
옌볜 조선족 자치주 인민정부 주석과 지린성 성장 등을 지낸 그는 1987년 인민해방군 총후근부 사령관에 임명됐고, 이듬해 중국군 최고 계급인 상장으로 진급했다. 예편 후인 1998년 3월 제9기 전인대에서 정협 부주석에 뽑혔다.
1997년 노사개혁위원회 설치
1996년 북한 외교담당 고위대표단, 4자회담 논의 위해 미국 방문
1996년 한국노동청년연대 간부 13명 중부지역당사건 관련 3명 국가보안법으로 무더기연행 구속
1996년 강원도 고성에 산불 가옥 70채 불 탐 이재민 160명 산림 3,000ha 불탐
1993년 박준규 국회의장, 재산공개파동과 관련 의장직사퇴서를 국회에 제출
1991년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출전
1991년 4월 24일 일본 지바에서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개막됐다. 남북한은 남북분단 46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단일팀인 `코리아`팀으로 출전했다.
4월 29일에 치러진 여자단체전 결승에서 코리아팀은 중국을 3대 2로 꺾고 세계를 제패했다. 2대 2 동점으로 중국과 숨막히는 접전을 벌인 코리아 여자팀은 마지막 단식에서 북한의 유순복이 중국의 가오준에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조국에 감격적인 승전보를 안겨주었다.
우승의 주역인 홍차옥, 유순복, 현정화, 이분희를 비롯해 우리 동포들은 경기장에 한반도 지도가 그려진 단일기가 오르고 단일팀가인 아리랑이 울려퍼지는 순간 남북의 7천만 동포는 그야말로 하나라는 것을 실감했다. 특히 이 대회에서 남북의 선수들은 "내몸 하나보다 코리아팀이 더 중요하다!"는 각오하에 코리아팀의 승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연습과 경기에 임했고, 그 결과로 단체전 우승을 일구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89년 언론인, 작가 송지영 사망
언론인이자 작가인 송지영 선생이 1989년 4월 24일 사망했다. 평북 박천에서 출생, 1943년 중국 남경중앙대를 졸업한 선생은 광복전 동아일보-상해시보 기자를 거쳐 1946년 한성일보 편집부장을 시작으로 국제신문-태양신문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냈다. 1959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되어 그해 9월 편집국장을 맡아 4.19를 겪었다.
5.16직후 민족일보 사건으로 구속되어 혁명재판소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감형되어 출옥한 후 1971년부터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했다. 1979년 문예진흥원장에 취임했고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84년부터 KBS 이사장을 역임한 후 말년에는 집필생활을 해왔다. 백발단구에 조용한 몸가짐으로 흐트러짐 없는 생을 살다간 송지영 선생은 이 시대의 재인이자 풍류객이었다.
`정론직필`을 신조로 살아온 당대의 대언론인이자 중국야사에 해박했던 역사소설가로 필명을 남긴 송 선생은 노년에 문화행정과 정계에 잠시 투신한 것을 빼고는 예술속에 살면서 만인의 아낌을 받았던 문화인이었다.
1983년 오스트리아 총선서 사회당이 과반수 획득
1982년 영국, 대 아르헨티나전서 남조지아 탈환
1981년 미국정부, 소련으로 곡물수출 금지조치 해제 발표
1980년 재경 종합대학교 교수 361명, 교수 재임명 철폐-학원민주화 촉구 등 학원사태에 관한 성명서 발표
1979년 한국-세네갈, 경제기술 협력 및 문화협정 체결
1979년 로디지아 총선 흑인정부 수립
1978년 소련에 강제착륙했던 KAL기 승객 귀국
1976년 팔당수원지 건설공사 착공
1975년 에티오피아 토지 국유화
1970년 중국최초의 인공위성 `중국1호` 궤도진입 성공
1968년 청원경찰 정식 발족
1967년 소련 우주선 소유즈 1호 귀환 중 추락, 낙하산 고장으로 코마로프 대령 사망
1965년 인도네시아 대통령 전국외국인기업체 국유화 선언
1964년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발효
1961년 영국-소련 공동으로 라오스 휴전
1960년 이란에 대지진
1960년 이승만대통령 자유당 총재직 사퇴
1957년 한국-영국간의 공사를 대사로 승격
1957년 한미항공협정 조인
1956년 중국군, 대만의 금문도 포격
1955년 반둥회의(아시아-아프리카 회의) 폐막
1955년 4월 18일 아시아 23개국과 아프리카 6개국이 모여 '제1차 아시아·아프리카회의'를 열고 7일간 논의한 반둥회의 결과, 24일 `세계 평화와 국제협력 증진에 관한 선언`이 채택됐다. 회의는 선언을 발표하고 폐막됐다. 이른바 `반둥 10원칙`이라 불리는 이 선언은 비동맹과 중립주의, 상호협력 등의 정신을 담은 것으로 `제3세계`라는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다.
회의 참가국이 속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대륙 이름을 따 'AA히의'라고도 하고 개최지의 이름을 따서 보통 반둥회의라고 불리는 이 모임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잇달아 독립한 구 식민지 국가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이 회의를 마련한 것은 콜롬보 그룹이라고 불리던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버마(미얀마)의 5개국이었다. 남-북한, 대만, 남아공, 이스라엘 등 어느 한 진영에 현저하게 치우쳤거나 인종차별적인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들이 초청됐다. 29개국의 국기가 휘날리는 회의장에 자리를 함께 한 320명의 사절단은 14억명을 대표했으며 이는 당시 전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반둥회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주도되던 국제무대에 많은 새로운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개최국의 이점을 십분 활용한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중국의 강경 이미지를 누그러뜨리는데 탁월한 수완을 보인 주은래 등은 이 회의를 통해 국제적 인물로 떠올랐다.
그러나 반둥의 회의장에서 드러난 각국의 상이한 이해관계는 곧 이어 발생한 중국-인도 국경분쟁, 중소분쟁 등으로 심화됐고 결국 알제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제2차 아시아-아프리카회의`는 무산되고 말았다.그러나 반둥회의를 계기로 등장한 `비동맹` 그룹은 점차 세를 더해갔고 이들은 1960, 70년대를 지나면서 국제정치의 한 축을 담당했다.
1953년 백두진 제4대 국무총리 취임
1952년 이윤영 국무총리 서리 취임
1952년 서민호 의원, 말다툼 하다 서창선 대위 사살
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제안했으나 국회가 이를 부결하고 오히려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해 이 대통령과 국회가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던 때였다.
1952년 4월24일, 서민호(徐珉濠) 민의원이 이튿날 치러질 제1회 지방의회의원선거 감시차 전남 순천을 찾았다. 오후 8시40분쯤, 서 의원 일행이 한 식당에서 술을 마시던 중 광주에서 출장온 서창선 대위와 사소한 말싸움이 벌어졌다. 싸움이 격해지자 서 의원은 권총을 발사했고 서 대위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국회가 정당방위를 내세워 살인혐의로 구속된 서 의원을 석방시키긴 했지만 이 대통령과 대립하고 있던 국회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서 의원이 평소 내각책임제 개헌에 앞장서 이 대통령이 기피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방선거도 여당인 자유당이 압승을 거둔 터였다. 민족자결단·백골단 등 정체 모를 집단들이 때를 만난 듯 “살인 국회의원 석방한 국회는 해산하라”며 야당 의원들에게 공공연히 테러를 가했다. 곧 닥쳐올 ‘부산정치파동’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5월 25일 0시를 기해 선포된 계엄령으로 다시 수감된 서 의원은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계엄령 해제 후 8년 형이 확정돼 1960년 4·19 때까지 7년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1950년 대한정치공작단사건(야당의 간첩접선 적발)
1950년 문교부, 문맹퇴치운동 5개년 계획 발표
1949년 중국군 남경 입성
1945년 독일, 연합군에 항복 제의
1942년 `빨간머리 앤` 작가 몽고메리 사망
앤 셜리는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이었다. 빨간 머리에 주근깨 가득한 얼굴, 긴 머리. 부모님을 일찍 여읜 것도, 2층 다락방 창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것도, 또 마음의 친구와 변함없는 우정을 맹세하던 것도 모두 작가 자신을 앤 셜리에 투영한 것이었다.
1874년 11월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작은 집에서 태어난 그녀는 2살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의고 외가에서 길러졌다. 대학 졸업 후 교단에 올라 선생님이 됐지만, 그녀가 24살 되던 1896년 우체국장이던 외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외할머니를 도와 우체국 일을 도왔다.
그리고 그녀가 30세가 되던 1904년, ‘빨간머리 앤’ 을 쓰기 시작했다. 봄에 시작한 집필은 그 해 10월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러나 출판사로부터 모두 외면당하는 수모를 겪어야했고, 그로부터 3년 후 다락방에서 우연히 원고를 발견한 몽고메리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결국 미국 보스턴의 한 출판사에 출판을 의뢰, 1908년 첫 작품 ‘빨간머리 앤’ 이 발간됐다. 이후 ‘빨간머리 앤’ 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후에도 앤을 주인공으로 하는 속편들이 계속 출간, 일본에서는 만화영화로도 제작돼 각국에 수출됐다.
1921년 이상재-윤익선 등 고학생구제회 창립
1916년 아일랜드 시민군, 부활절 봉기
1916년 4월 24일 부활절 다음날에 아일랜드의 민족주의 지도자 페트릭 헨리 피어스가 아일랜드 공화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반영 봉기를 일으켰다. 봉기 자체는 실패로 끝났지만, 후에 성립된 아일랜드공화국 실현의 기점이 되었다.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피어스는 아일랜드 시민군을 지휘했다. 이 봉기에는 더블린 노동자들과 얼스터 의용군에 대항해 창설된 아일랜드 의용군, 아일랜드 공화주의 형제단, 신페인 당원 등이 참여했다.
봉기계획을 미리 안 영국이 무기 밀수 혐의로 로저 케이스먼트 경을 체포하자 아일랜드 의용군 지도자 맥닐은 계획을 취소했다. 그러나 2,000명 정도의 시민군은 더블린 중앙우체국을 점령하고 아일랜드 공화국 선언문을 낭독했다.
결국 영국군에 밀린 시민군은 항복했고, 지도자 피어스와 동료 13명은 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은 뒤 총살당했다. 부활절 봉기는 영국의 아일랜드 지배의 종말을 예고했다.
1915년 조선호텔서 전조선기자대회 개회 - 조선신문협회 조직키로 결정. 경성기자단 발기
1909년 터키, 반혁명군 진압으로 모하메트 5세 즉위
1904년 네덜란드 태생의 미국 화가 데 쿠닝 출생
1902년 경의철도 기공
1898년 스페인, 쿠바 봉쇄한 미국에 전쟁 선포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19세기 중엽부터 신에게서 새로운 땅을 개척하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믿어온 미국 팽창주의자들의 영토확장 슬로건이자 명분이었다. 캐나다ㆍ멕시코ㆍ쿠바까지 합병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1895년, 16세기부터 줄곧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에서 대(對) 스페인 독립전쟁이 시작됐다. 스페인의 탄압이 거세지자 미국인들 사이에서 군사개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업인들은 새로운 시장을 위해, 종교인들은 가톨릭의 쿠바를 개신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참전을 재촉했다.
1898년 2월15일, 쿠바 아바나항에 정박중인 미국 전함 메인호가 갑자기 폭발, 배에 타고 있던 군인 260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원인불명으로 판명됐지만 선동적인 신문들은 스페인의 음모라며 자국민의 감정을 부추겼다.
미국이 쿠바를 봉쇄하며 압박을 가해오자 궁지에 몰린 스페인이 1898년 4월24일,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식민지를 둘러싼 미국ㆍ스페인 간의 제국주의 전쟁이 불을 뿜었다. 미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3개월 만에 끝난 짧은 전쟁이었지만 미국이 얻은 열매는 너무나 달콤했다. 그해 12월 파리조약은 쿠바를 독립시키고 필리핀ㆍ괌ㆍ푸에르토리코를 미국의 영토로 복속시킨다고 결정했다. 하와이는 7월에 태평양 진출 교두보로 미국에 병합된 상태였다.
1877년 러시아-터키전쟁 발발
1856년 프랑스의 군인 겸 정치가 앙리 필리프 페탱 출생
1845년 스페인 문학가 시피텔러 출생
1771년 일본, 야에야마(八重山) 지진·쓰나미로 약 1만2000여명 사망
1756년 암행어사 박문수 별세
조선 후기 부정한 관리를 적발한 암행어사로 이름이 높은 문신. 본관은 고령, 자는 성보, 호는 기은으로 소론 계열의 인물이었지만 당론의 폐해를 비판하고 당색에 구애됨이 없이 인재를 등용할 것을 주장했다. 또 농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부담으로서 군포의 폐단을 들고, 이를 적절히 감면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지적했다. 1723년 증광문과에 합격하여 예문관 검열로 벼슬길에 오른 뒤 암행어사가 되어 영남과 호남 지역을 순행하면서 부패한 관리와 제도를 엄정하게 적발하여 많은 일화를 남겼다.
1743년 영국의 방직기 발명가 카트라이트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