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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cjstory.com%2Fdata%2F200501%2Fimages%2Ftitle_50p_6.gif) 굴비는 민어과에 속하는 조기(助氣)를 소금에 절여 통으로 말린 것이다. 참조기, 보구치, 수조기, 부세, 흑조기 등 우리나라 연안에서 잡히는 약 10여 종의 조기류 가운데서도 참조기로 만든 것이 특히 맛있는데, 영광 법성포 굴비는 바로 이 참조기를 건조해 만든다. 옛날, 봄이 오면 법성포 앞바다인 칠산도 부근 바다엔 이런 참조기가 수없이 올라왔다고 한다. 요즘엔 이상 기온에다 중국 어선의 활동 등으로 겨울철에도 목포 남쪽의 가거도나 추자도, 동중국해 등지에서 조기를 잡아와 말린다.
영광 굴비의 명성은 칠산 앞바다에서 잡은 참조기를 인근 염산면과 칠산바다에서 생산된 천연 소금으로 염장해 법성포 특유의 햇살과 바람에 말리는 데서 비롯됐다. 간수를 빼 순수한 소금맛을 내기 위해 법성포 어민들은 굴비 절이는 데 사용할 소금을 선창가에 쌓고 1년 이상 묵힌다. 알맞게 절여 말린 굴비는 한 줄에 흔히 20마리(두름)를 꿰는데 큰 것은 5마리씩 10마리(오가재비)를 엮어 말린다. 오가재비는 백만 원이 넘는 것도 있다. 기운을 북돋아 주는 효험이 탁월하다해서 붙은 이름 조기(助氣)가 굴비로 된 데는 고려 인종 때 영광으로 귀양살이를 왔던 이자겸에서 유래한다. 영광에서 조기 말린 것을 처음 먹고는 “천하일미, 이 놈을 임금께 진상해야지. 내 비록 귀양살이 신세긴 하지만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굴비(屈非)라 하겠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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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창 때는 수백 척의 어선으로 북적대던 법성포, 지금은 옛날 같지 않지만 약 200여 가구가 굴비를 말리고 판매하는 일로 생업을 삼고 있다. 포구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굴비’가 들어 있지 않은 간판을 보기 힘들 정도다. 전화나 인터넷을 이용한 택배 주문으로 굴비를 사러 들락거리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법성포의 바닷바람에 말리는 것을 보고 만지고 굴비정식을 한 상 먹어보려면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다. 포구 안쪽에 위치한 장보고굴비집(061-356-7608)에 가면 영광 굴비의 비결을 주인 내외가 친절히 설명해주고 판매도 한다. 영광 법성포마을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gulbi.invil.org)에서 법성포 굴비와 생산, 판매 등에 관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굴비정식은 법성포에서 가장 유명한 30여 년 내력의 일번지식당(061-356-2268, 1인분 2만 원)이 있다. 40여 가지나 되는 전라도식 한정식 찬에 입이 딱 벌어지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우면 근처 강화식당(061-356-2562, 1인분 1만 원)도 괜찮다. 푸짐함으론 일번지식당에 견줄 수 없지만 굴비맛은 뒤지지 않는다는 게 마을사람들의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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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cjstory.com%2Fdata%2F200501%2Fimages%2Ftitle_50p_7.gif) 섬으로 이루어진 낙월면의 가장 중앙에 있는 섬으로 4.4㎢의 면적에 해안선 길이 15㎞, 50여 가구에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법성포 위쪽 계마항에서 하루 한 번 여객선이 다니고 있지만 파도가 높은 날에는 그마저 뜨지 못한다. 마을 바로 앞에 흰 조약돌 해수욕장과 전국 최대 규모로 알려진 왕소사나무 군락지, 초분 등이 있는 송이도는 마을이 워낙 작고 여행객들의 방문도 적어 낯선 이들이 오면 거의 모든 마을사람들이 곧 알게 된다.
“이 겨울에 그 사람들 어째 왔뎌?” “초분 볼라고 왔따는디.” “앗따 까짓 초분 모 볼게 있다고 그 먼데서 와. 배삯 찻삯 나한테 보내주면 내가 짱하게 찍어 보내줄란디.” “워메, 그 사람들 사진기가 보통 사진기가 아니던데 말도 안 되는 소리 작작혀.” 화장실에서 마을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우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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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들었다. 이렇게 삽시간에 퍼진 낯선 이들의 정보, 마주치는 마을사람들마다 “초분 볼라고 왔담서요?” 모두가 아는 체다. 2~3시간 정도면 마을을 대충 둘러볼 수 있다. 그렇게 환영을 받으며 초분은 물론 학생이 세 명뿐인 송이분교도, 송이교회도, 마을에 전기를 대는 발전소도, 전국에 하나뿐이라는 몽돌해변도 둘러보았다.
군대 간 아들 은근한 자랑으로 점심을 해준 민박집 아줌마, 믿기지 않던 젊은 얼굴로 일행을 놀라게 한 50대 중반 학교 선생님, 깍듯하게 인사 잘 하던 송이분교 5학년 지희·지영이, 잘 생기고 의젓한 폼으로 카메라를 주눅들게 하던 이장님, 떠나는 배를 향해 오랫동안 손 흔들던 우체부 아저씨…. 짚으로 덮은 무덤 초분보다, 송이라는 예쁜 이름보다,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보다 잊지 못할 송이도 사람들, 정지된 풍경으로 오랫동안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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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법성포의 1번지 한정식은 먹어 볼만 하지요.
참 멋진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