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 예수님께서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것은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의 일들 중 하나가 아닐 수 없음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조금만 따지고 봐도 구주 예수님 단독이실 수 없는 것인데..
실질적으로는 11장 42절에서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과 같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예수님의 말씀, 곧 말씀대로의 간구와 함께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신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실상 구주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 창세 전부터 결코 떨어지실 수 없는 사이이자 관계이며 존재인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17장 5절에서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인데..
사실은 더 나아가 그렇게 나사로를 죽인 지 나흘 만에 다시 살리신 것을 위시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인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실제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증거된 말씀에서도 어렵게 않게 알 수 있는 것이듯이 구원자이신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하나님 아버지의 실질적인 구원 역사들에 있어서 현실적,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는 성령님께서도 단 한 시라도, 단 한 번이라도 별개이시거나 분리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성령님으로 인한 직접적, 실제적인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는 시편 104편 30절에서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에서도 아주 명료하게 알 수 있는 것으로 잘 통잘해 보면 결국은 말씀대로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에 있어서도, 말씀과 함께 출애굽에 있어서의 10가지 이적들에 있어서도, 말씀 그대로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림에 있어서도, 말씀대로 순행했던 가나 잔치에서의 하인들과 함께 물이 포도주로 뒤바뀜에 있어서도, 예수님께서 그 집에 직접 가시지 않고서도 정말 말씀대로 중풍병이 순식간에 낫게 되었던 가버나움 땅의 한 백부장 하인의 사례에 있어서도, 말씀에 약속된 대로 구주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성전 미문에서의 나면서부터 못 걸었던 자가 그 자리에서 낫게 된 역사에 있어서도, 2년간의 두란노 서원과 함께 은 오만이나 되는 마술책들을 다 불태웠을 정도가 된 마술사들의 실제에 있어서도, 더 나아가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대략 2000년이 지난 오늘 날의 우리들이 말씀의 약속과 계시대로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백성으로 실제로 뒤바뀌게 됨에 있어서도, 게다가 오늘 우리들이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과 함께 이 땅에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생생하고 강렬하게 누리게 될 수 있고 무엇보다 말씀을 따라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의 응답을 한 번이라도 실제로 받게 됨에 있어서도, 심지어는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과 영원한 나라의 실제적 경험과 누림들에 있어서도 모두 하나같이 아래 본문에서의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가 다시 살게 된 것과 원론적,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이치와 원리인 것으로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러한 사실과 실제들이 마땅하고 당연할 수밖에 없음은 근원적으로 바로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그러한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자체가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일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며 완전히 하나되어 한 뜻을 이루는 의미가 아닐 수 없는 것이며..
특히 본질적으로는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본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곧 말씀 그대로, 말씀대로의 믿음, 말씀대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그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들, 진정 그로 인한 모든 생생하시고 강렬하신 힘과 역사들, 응답과 이적들, 영적 각성과 부흥들 등에 있어서 모든 전제와 기준, 관건과 통로, 열쇠와 방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한복음11:42~44)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11월 27일(월)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