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6일 오늘의 역사
2021년 윤여정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윤여정(74세) 배우가 미나리의 영화로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고 이여 제74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제27회 미국배우조합상 영화부문 여우조연상, 제1회 골드리스트 시상식 여우조연상, 제92회 전미비평가위원회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18년 필리핀 파괴된 해양생태계 복원을 위해 6개월 동안 보라카이 섬 폐쇄
2017년 주한미군 경북 성주 소성리 골프장에 사드 핵심장비 전격 반입
2013년 정부 개성공단 잔류인원 전원 철수 결정.
2013년 만삭 아내 살해한 의사 징역 20년 확정
2007년 티케이의 대부 신현확 전 총리 세상 떠남
2007년 서울대 무인항공기 ‘스너글’ 세계 첫 자동 이착륙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기창돈(46) 교수와 학생들이 6년간의 도전 끝에 GPS를 이용한 무인항공기 이착륙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200번의 실험, 그리고 비행기 다섯 대가 부숴지는 난관을 거쳐 그들은 꿈을 이뤄내고 말았다.
5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노마시(市)에서 열린 미국항공우주학회 행사장. 기창돈 교수팀이 “관성센서 없이 단일 안테나 GPS 수신기만으로 자동 이착륙이 가능한 무인항공기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하자 행사장이 술렁거렸다. 500여 명의 항공공학자들과 항공사 관계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관성센서란 비행기의 자세 정보를 감지하는 고가(高價)의 장비로 이 부품 없이 비행기가 자동 이착륙한다는 것은 학계에선 불가능한 일로 여겨져 왔다. 행사장에서 연구팀이 무인비행기의 자동이착륙 동영상을 보여주자 외국인 전문가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 교수팀은 위치·고도·속도 등 기존의 GPS 정보를 바탕으로 비행기의 기울기 등 자세 정보를 계산해 내는 노하우를 개발한 것이다.
연구는 2001년 시작됐다. 기 교수는 처음에 동료들로부터 ‘관성센서 없는 항공기 자동이착륙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연구팀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가능성을 엿보았다. 문제는 실전이었다. 기 교수는 “실전의 어려움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상처투성이인 스너글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스너글(SNUGL)’은 연구팀이 지어준 날개길이 2.5m짜리 무인항공기의 이름. 지난 6년간 스너글의 비행 성적은 처참했다. 200여 차례를 날아서 20번 추락하고 5번은 완파(完破)됐다.
마침내 4월 26일 스너글은 완벽한 자동 이착륙에 성공했다. 기 교수는 “GPS수신기는 관성센서 가격의 10분의 1에 불과해 무인항공기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2005년 롄잔 대만 국민당 주석 중국 방문
대만 야당인 국민당의 롄잔(連戰) 주석이 26일 분단 56년 만에 처음으로 7박8일 일정으로 중국 방문길에 올랐다. 롄 주석이 이끄는 국민당 대표단 70여명은 이날 홍콩을 경유, 난징(南京)에 도착했다.
롄잔(連戰) 대만 국민당 주석은 27일 난징(南京)의 쑨원(孫文) 묘소를 참배했다.
중국 신화(新華)통신은 롄잔 주석의 난징 방문을 ‘감격의 역(感念之站)’ 에 도착했다고 평했다. 대륙과 대만 양쪽에서 ‘국부(國父)’ 로 존경받는 쑨원 선생이 이곳 난징에서 ‘중화민국’ 을 세웠기 때문이다. 쑨원 선생 서거 80주기를 맞아 롄잔 주석 일행은 27일 오전 난징 외곽의 중산릉(中山陵)을 찾았다.
롄잔 주석은 난징(南京)과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시안(西安) 등을 차례로 방문하고, 29일에는 베이징에서 후진타오 주석과 만나 70년 만에 역사적인 ‘국공(國共) 정상 회담’ 을 가졌다.
2004년 2004년 1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 한국이 3.1%로 세계 1위 기록
2004년 1분기(1~3월)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몇몇 개발도상국을 제외하고는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분기 평균 3.1%를 기록, 한은이 통계를 파악하는 27개 주요 국가 중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필리핀에 이어 가장 높았다. 브라질의 1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8%이고, 인도네시아는 4.8%, 필리핀은 3.4%였다.
반면 미국은 1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8%에 그쳐 작년 같은 기간의 2.9%에 비해 크게 떨어졌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도 2.8%에 머물렀다. 또 유럽연합(EU) 15개국은 1분기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7%로 작년 같은 기간의 2.2%보다 떨어졌다.
일본은 1월 중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3% 떨어졌고, 2월에는 변동이 없어 오히려 지나치게 낮은 물가 수준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대만은 1분기에 0.5% 오르는 데 그치고, 태국과 싱가포르(1 ~2월)도 각각 1.9%, 1.4% 상승에 그쳤다.
2004년 신목초교 신희범군, 청계천 소재 창작동요 대상 수상
서울시가 실시한 ‘청계천을 소재로 한 창작 음악’ 공모에서 초등학교 5학년생이 동요 부문 대상(大賞)을 차지했다
26일 발표된 화제의 입상자는 신희범(11·서울 신목초등)군. 가곡·가요·가요가사·동요 등 4개 부문 중, 신군은 총 116편의 작품이 경쟁을 벌인 동요 부문에서 교수·작곡가 등 쟁쟁한 어른들을 따돌리고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 ‘청계천에 놀러가요’ 로 영예를 차지했다
대상 수상 노래 ‘청계천에 놀러가요’ 는 신군의 풍부한 상상력에서 비롯됐다. 그는 공모 소식을 듣곤 “청계천 복원 후의 멋진 거리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을 상상하면서 노랫말을 떠올리고 곡을 지었다” 고 했다
2004년 이라크 새 국기 공개, 별 대신 초승달 문양
미국이 임명한 이라크통치위원회(IGC)가 26일 새로운 이라크 국기 모델을 선보였다.
“사담 후세인 시대에 사용하던 국기를 계속 사용할 수 없어 ‘새 시대’를 선언하는 차원에서 (새 국기를) 마련했다”며 “이번주 중 공식 공개해 며칠 후부터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 국기는 흰 바탕에 옅은 청색의 초승달을 위에 두고, 그 아래로 노란 줄 하나가 두 개의 푸른 줄 사이에 놓인 모양이다. 여기서 초승달은 이슬람을, 두 개의 푸른 줄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그리고 노란 줄은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을 각각 상징한다.
후세인 이전부터 사용돼온 아랍민족주의 정당인 바스당 스타일의 옛 국기는 검정색과 붉은색 띠를 아래위로 두고, 녹색 별 세개가 새겨진 흰 띠가 가운데 놓인 디자인이며, 1980년대 이란·이라크전 당시 후세인이 “신은 위대하다”는 문구를 새겨 넣기도 했다.
2004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2500년 된 석관 공개
2004년 4월 26일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2500년 된 석관이 공개됐다.
프랑스 고고학팀은 최근 카이로 남쪽 사카라에 위치한 4800년 된 피라미드 부근에서 이 석관이 놓인 무덤을 발견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방송심의위원회, 4·15총선 개표 방송 관련 KBS-MBC에 중징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방송심의위원회(위원장 임상원)는 26일 4·15총선 개표 방송에서 정당별 의석 수를 잘못 예측해 내보낸 KBS와 MBC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 를 의결했다.
SBS에 대해서는 16일 오후 8시 뉴스에서 사과한 점을 감안해 경징계인 ‘경고’ 조치만 내리기로 했다. KBS, MBC에 대한 조치는 방송법상 제재의 하나로 중징계에 해당한다.
심의위는 지상파 방송 3사가 정확하지 않은 총선 예측결과를 보도해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했다고 징계 이유를 밝혔다. 선거방송심의규정에는 공정성이나 정확성이 의심스러운 여론조사를 방송해서는 안된다고 돼있다.
지상파 방송 3사는 총선일인 지난 15일 오후 6시 투표 마감과 동시에 정당별 예상 의석 수를 발표했으나 개표 결과는 이와 크게 달랐다. KBS와 SBS는 비례대표를 포함해 열린우리당 172석, 한나라당 101석으로 예측했으나 실제로는 열린우리당이 152석, 한나라당 121석으로 20석의 오차가 났다. MBC도 열린우리당 155∼171석, 한나라당 101∼115석으로 발표해 개표 결과와 차이를 보였다.
방송 3사는 2000년 16대 총선 개표 방송 때도 원내 제1당을 잘못 예측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 조치를 받은 바 있다.
2004년 전쟁기념관, 여방오 중사 2004년 5월 호국인물에 선정
전쟁기념관은 26일 6·25전쟁 때 중동부 전선에서 많은 전공을 세우고 전사한 여방오(呂芳午) 육군 일등중사를 ‘5월의 호국 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여 중사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 군에 입대한 뒤 53년 6월 12사단 52연대 3대대 9중대 3소대 2분대장으로 강원도 인제군 서화 북쪽 812고지 전투에 참가했다.
당시 한국군은 북한군의 야포와 박격포, 기관총 공격 앞에 수많은 사상자만 내고 있었으나, 여 중사는 아군 공군기의 지상공격을 유도하기 위해 특정 색깔이 칠해진 대공포 표지판을 메고 북한군 기관총 진지로 혼자서 돌격, 공습으로 진지가 완전히 파괴될 수 있도록 임무를 완수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이 중사의 전공을 기려 1955년 화랑무공 훈장을 추서했다.
2004년 미국 위조방지 50달러짜리 지폐 공개
2003년 동성야자 인권운동가 육우당 자살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제2동 동성애자인권연대 건물 3층에서 대한민국의 동성애자 인권운동가 육우당이 사무실 문에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육우당은 동성애는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단죄된다는 기독교 단체들의 성명서에 항의 표시로 유서 6장을 남겼다.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로 취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후생상이 2001년 4월 26일 국회에서 연립 3여당에 의해 일본의 새 총리로 임명됐다. 이에 앞서 24일 열린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고이즈미는 과반수(244)를 훨씬 넘는 298표를 득표, 155표의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를 크게 누르고 1차 투표에서 총재로 선출된 바 있다.
고이즈미의 별명은 `독불장군` 이미지와 연관된 것이 대부분이다.
사립 명문 게이오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영국 런던대학에 유학간 그는 부친이 급사하는 바람에 급거 귀국,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자민당 우파의 거두인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의 비서로 들어가 정치를 배웠다. 29세 때 처음 중의원에 당선됐고, 내리 10연속 당선되며 29년간 후쿠다·아베·미쓰즈카·모리파로 이어지는 보수 파벌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총재 경선 직전 파벌을 탈퇴하며 내건 `파벌해소` 슬로건의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1999년 사상 최악의 컴퓨터 바이러스 ‘CIH바이러스’ 대란
사상 최악의 컴퓨터 바이러스 대란이 1999년 4월 26일 일어났다.
컴퓨터의 부팅기능을 아예 망가뜨리거나 하드 디스크의 모든 데이터를 못쓰게 만드는 CIH바이러스가 국내 수천개 기업과 관공서의 PC를 감염시켜 일부 업무가 마비되기도 했다. 경제적 피해규모가 국가적으로 20억-30억원 규모로 추산됐다.
대만 타이페이대 정보처리학과 4학년생인 24세 청년 천잉하오(Chen-Ing-Hou)의 머리글자를 따서 명명된 CIH바이러스는 평상시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잠복해 있다가 4월 26일 출현해 컴퓨터에 저장된 데이터를 모조리 파괴하는 악성바이러스에 속한다.
천잉하오는 단순한 과시욕으로 인터넷에 올렸다고 주장하지만 결과적으로 세계 각국에 큰 피해를 입히고 말았다.
1997년 ‘영원한 북경시장’ 팽진 사망
1902년 산서성 곡옥현에서 출생한 팽진이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 것은 21세 때였다. 입당 후 그는 주로 중국 북부지방 일원에서 항일과 국민당에 대한 게릴라 활동을 펼쳤다.
1941년 연안으로 가 당조직 부장에 임명됐고, 1945년 제7차 당대회에서는 정치국원으로 선출됐다. 일본이 패퇴하자 팽진은 요녕, 길림, 흑룡강 등 3개성을 관할하는 동북국 서기로 임명돼 현재의 조선족들이 흩어져 사는 이 지역을 접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66년 5월 모택동에 의한 문화대혁명의 와중에서 북경시장과 일체의 공직에서 해임당했으나 등소평이 복권한 직후인 1979년 다시 회복했으며 1983년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으로 선출됐다.
학력은 없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사회주의 법률체계에 밝고 모택동이 내린 임무수행에 철저한 것으로 중국공산당 내에 소문나 중국공산당의 중요 인물이 됐다.
1996년 성수대교 복구 착공
1994년 극진가라테 창시자 최배달 사망
1994년 남아공, 최초의 총선 실시
342년 간의 백인통치와 흑백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종지부를 찍은 남아공 최초의 다인종 선거가 1994년 4월 26일부터 3일간 투표에 들어갔다. 이번 선거에는 흑인 민권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와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대통령의 집권 국민당 등 총 27개 정당이 참여했다.
한편 투표 전날인 25일 백인극우파의 소행으로 보이는 2건의 폭탄 폭발사고로 12명이 사망하는 등 선거 방해테러 행위가 격화되기도 했다. 선거 방해테러에도 불구하고 하루 연장한 29일 투표가 끝났고 투표결과 아프리카 민족회의(ANC)가 전체 유효 투표의 62.5%를 획득하며 승리했다.
남아공의 역사적 전인종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넬슨 만델라 의장이 5월 10일 첫 흑인대통령으로 취임했다
1994년 대만기 폭발로 260여명 사망
1994년 4월 26일 저녁8시16분쯤 일본의 나고야 공항에 착륙하려던 타이베이 발 중화항공기가 착륙에 실패, 활주로 부근에서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는 활주로에 진입하던 비행기가 랜딩기어가 빠져나오지 않자 기수를 다시 올리는 과정에서 오른쪽 날개가 지면에 충돌하면서 일어났다.
사고 여객기는 대북 중정공항을 출발한 중화항공기 F140편으로 기종은 에어버스사의 A300600R형이며, 271명(승객 257명, 승무원 14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재일교포 1명을 포함해 모두 262명이 사망했고 9명이 구조됐다. 사고원인은 경험이 부족한 부기장의 조작 미숙과 음주인 것으로 밝혀졌다.
1991년 강경대 명지대생 시위중 전경에 맞아 사망
구속된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요구하며 교문 앞에서 시위를 하던 한 대학생이 전경들의 집단구타로 사망하는 일이 1991년 4월 26일 발생했다. 이날 오후5시10분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명지대 정문밖 50m쯤 떨어진 곳에서 동료학생 3백여명과 함께 시위를 벌이던 이 대학 강경대군(20. 경제학과 1년)이 학생들을 교문안으로 밀어붙이던 경찰에 붙잡혀 쇠파이프 등에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사망했다.
이번 폭행치사사건으로 대학가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어 서울 연세대에서 규탄대회가 열린 것을 비롯, 부산 광주 등 전국 20개 대학에서 강군의 폭행치사에 항의하는 집회와 시위가 잇따랐다. 경찰 조사결과 이번 폭행치사사건에 가담한 전경은 5명으로 밝혀졌고 이들은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1989년 방글라데시 중부 마니크간즈 지방에 폭우, 1000여명 사망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1988년4월26일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선거는 1971년 8대국회 이래 17년 만의 소선거구제에 의한 선거였다. 선거결과(전국구 포함) 민정당 125석, 평민당 70석, 민주당 59석, 공화당 35석의 순으로 우리나라 의정사상 처음으로 집권당 의석이 과반수에 미달하는 여소야대 현상이 나타났다. 정당별 득표율은 민정당 33.6%, 민주당 23.6%, 평민당 19.2%, 공화당 15.4%의 순이었다.
여소야대라는 총선결과는 강한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견제, 5공화국에 대한 반감 등이 작용한 것이었으나 총선결과의 가장 큰 특징은 1987년 대통령선거 때 나타났던 극심한 지역감정이 더욱 심화됐다는 점이었다. 집권 민정당의 경우 호남에서 단 1석도 얻지 못했으며 호남을 기반으로 한 평민당은 신안을 제외한 호남의 전 선거구를 휩쓸었다.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 발생 방사능 누출로 3000여명 사망
1986년 4월 26일 소련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북동쪽 100km 지점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이곳에서 그린피스가 20세기 역사에서 `전쟁을 제외한 가장 큰 재앙의 날`로 정한 비극이 일어났다.
사고는 이날 새벽 1시24분, 가동 중인 4기 가운데 제4호기 원자로가 터빈발전기의 관성운전시험 중 폭발하면서 일어났다. 시험가동 중 초고온이 된 핵연료로 인해 주위의 냉각수가 순간적으로 비등해 일어난 수증기 폭발이었다. 하늘로 치솟은 불기둥과 함께 지붕이 날아가고 원자로에 있던 핵연료가운데 3~4%가 공중으로 분산돼 동쪽 스칸디나비아 쪽으로 날아가 그 지역까지 오염시켰다.
누출된 방사능 물질이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350배나 될 정도로 대규모 폭발이었다.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아침이 되어서야 간밤에 체르노빌 원전에서 폭발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부의 특별지시가 없어 일상생활을 계속했다.
소련 정부가 공식적으로 폭발사고를 인정한 것은 이틀 후인 28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건을 축소하는 데 급급해 "체르노빌 원전에서 작은 사고가 발생해 총 31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4월 30일이 되어서야 반경 30km 이내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졌지만 이미 대부분의 주민이 방사능에 노출된 뒤였다.
1995년 발표된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태로 인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등 3개국에서 900만명의 주민들이 직간접으로 피해를 당했으며 최소 6,500명에서 3만 명이 사망했고 최소한 80만명이 피폭우려자로 분류됐다.
체르노빌 원전은 2000년 12월 15일 영구 폐쇄됐다.
1985년 한미정상회담(한국시간 27일 새벽) 워싱턴서 개최
1982년 경남 의령에서 우순경 총기난사
1982년 4월 26일 밤 9시 30분쯤 경남 의령경찰서 궁유지서 우범곤 순경(27)이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소총 2정, 실탄 1백29발, 수류탄 6발을 들고나와 6시간 동안 궁유면 내 4개 마을을 쏘다니며 무차별 난사, 주민 56명을 죽이는 가공할만한 범행을 저질렀다.
우순경은 내연의 처와 결혼문제로 다툰 후 술을 마시고 범행했다.
이 사건으로 서정화 내무부장관이 물러나고, 당시 근무지를 이탈했던 의령서장 등 3명의 경찰관과 방위병 3명이 구속됐다.
1979년 중동평화조약 정식 발효
1978년 미국 하원위원회, 주한미군 철군 수정안 통과
1975년 일본귀화 한인 간첩사건
1965년 인도, 파키스탄 국경에서 격전
1963년 뉴욕 각 신문사 파업
1960년 경향신문 복간
1960년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 발표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이승만은 6.25전쟁 중인 1952년 발췌개헌으로 제2대 대통령에 재선됐다. 1954년 자신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종신대통령제 개헌안을 발의, 국회에서 1표 부족으로 부결되었는데, 사사오입의 해석논리를 변칙적으로 적용하여 1956년 대통령에 3선됐다. 1958년 12월 차기 대통령선거에 대비해 국가보안법 등 관계법령을 개정하고 경제시책의 빈곤으로 인한 특정재벌에 대한 특혜 등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1960년 3월 15일 여당과 정부가 전국적, 조직적으로 부정선거를 감행하여 대통령에 4선됐고 이어 마산에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김주열의 시체가 발견되자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극에 달해 결국 이승만 독재와 탄압에 대항하는 4.19가 일어났다. 이를 일단락 짓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이 이날 하야를 발표했다.
195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1회 국제해양법회의 개최, 대륙붕조약 채택
1954년 제네바 정치회담 개막
1954년 4월 26일 한국 통일 문제와 인도-차이나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UN의 한국 참전 16개국과 한국, 북한, 소련, 중국이 참가한 정치회담이 개최됐다.
한국을 대표한 변영태 외무장관은 5월 22일 UN감시 하에 남북한 자유선거 실시, 자유선거를 위해 언론자유·인권보장·비밀투표 보장, 이같은 원만한 성과가 확인되기까지 UN군의 완전철수 불가 등을 골자로 한 한국통일에 관한 14개 원칙안을 제시했다. 한편 북한을 대표한 남일은 6월 5일 외국군 철수 및 감군, 모든 절차를 논의하기 위한 전조선위원회 구성, 경제 및 문화 교류 등 6개항 통일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회담개시 후 50여일이 지나도 양측의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6월 14일 UN참전 16개국은 한국통일문제를 유엔총회에 넘기기로 결정하고 제네바회담의 결렬을 공식 선언했다.
참가국; 남한, 6.25 참전 15개국, 북한, 중국, 소련 등 19개국.
남한측 주장; 유엔감시하 대한민국 헌법절차에 따른 자유선거 의원 수는 인구수에 비례
북한측 주장; 남북조선 대표들로 구성되는 전조선위원회 구성하에 총선거 6개월 이내 외국군대 철수
1953년 휴전회담 본회담 6개월 만에 개최
1952년 일본 해상경비대 발족
1949년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국회 통과
1943년 여성 소설가 강경애 사망
필명은 가마(珂瑪)로 1907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에서 출생했다. 6살 때 개가한 어머니를 따라 장연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23년 장연에서 문학강연을 하던 양주동을 만나 ‘금성’ 사에서 기거하며 문학을 공부하게 됐다.
1931년 ‘조선일보’ 에 단편 ‘파금(破琴)’ 을, 그리고 ‘혜성’ 에 장편 ‘어머니와 딸’ 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1931년 장하일과 결혼해 간도로 옮겨간 후에도 작품을 계속 발표했다. 1934년 ‘동아일보’ 에 연재한 장편 ‘인간문제’ 는 그녀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1935년 ‘모자’ ‘원고료 이백원’ 1936년 ‘지하촌’ ‘이땅의 봄’ ‘파경’ 1937년 ‘산남(山男)’ ‘검둥이’ 등을 발표했다. 그녀의 작품활동은 1931년에서 1939년에 이르는 짧은 기간에 집중되어 이루어졌다.
동아일보에 연재된 ‘인간문제’ 는 식민지 시대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이자 최고의 노동소설로 평가받았다. 농민에서 노동자로, 노동자에서 각성된 노동자로, 각성된 노동자에서 조직적 활동가로 변모해 가는 식민지 시대의 투쟁적 인간상을 그린 이 작품은 공장 내부에 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가 더욱 돋보였다.
1941년 독일군, 아테네 점령
1937년 독일군, 스페인의 소도시 게르니카 폭격
독일군의 폭파로 1,654명이 사망하고 889명이 부상하였다. 사상자 대부분이 노인, 여자, 아이들이었다는 기사를 읽은 피카소는 자기 조국에서 일어난 참상을 60여점의 크로키 및 데생으로 그렸고 폭 3.51m 길이 7.52m에 달하는 캔버스에 이 작품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게르니카>를 완성하였다.
1933년 경성방송국 조선어방송 시작(제1방송은 일어)
1925년 힌덴브루크, 독일 대통령에 당선
1916년 스위스의 포토 저널리스트 비쇼프 출생 - 인간에 대한 이해, 강한 디자인 감각, 감각적인 빛의 사용으로 유명
1904년 유관순 출생
1900년 미국의 물리학자, 지진학자 리히터 출생 - 지진의 규모를 측정하는 리히터 척도 개발에 공헌
1890년 육당 최남선 출생
1889년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출생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암살자 부스 사망
1731년 영국 소설가 다니엘 데포 출생
1711년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 출생
1681년 서울에 지진 발생(숙종7년)
1607년 영국 첫 아메리카 이민단 버지니아에 상륙
1564년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출생
세계 연극사와 문학사에 길이 남을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564년 4월 26일 영국 중부 잉글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국 르네상스의 최정점인 엘리자베스 여왕1세 때 출생해 유복한 가정의 장남으로 유년시절을 보냈으나 13세때 집안이 몰락해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1580년대부터는 배우로서 생활하기도 했으며 1592년경에는 신인배우로서의 평판이 높았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극작가로서 초기에는 선배작가의 희곡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주요작품으로는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밤의 꿈` `햄릿` `오셀로` `리어왕` 등이 있다. 그는 연극이라는 매개를 통해 인간 내면세계의 극한을 추구했다.
1412년(조선태조 12년) 경복궁 경회루 준공
1392(고려 공양왕 4) 정몽주 개성 선죽교에서 이방원 부하에게 피살됨
121년 로마의 황제(161~180 재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출생 - `명상록`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