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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토론 ●자유게시판 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를 체포 했을까?
지바고 추천 0 조회 672 07.11.14 21:08 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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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7.11.14 21:17

    첫댓글 30경비단실에 모인 지휘관이 대부분 하나회 소속인가요?

  • 07.11.14 21:22

    그렇지 않습니다. 그 중에는 김재규 부하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인근 지휘관들이 모여서 차를 함께 마시는 일은 종종 있었으니까요.

  • 07.11.14 22:10

    김재규 부하로서 김대중 심복이었던 이종찬 중정 총무부장은 송죽회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육사에서 송죽회가 먼저 조직되었기에 명단만 보고 누가 송죽회 소속이고 누가 하나회 소속인지 분간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차규헌, 유학성, 황영시 등은 4년제 육사 출신이 아니기에 송죽회든 하나회든 소속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참고로, 당시 수도권은 송죽회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근 부대 지휘관들이 모였을 때 하나회만 별도로 모이는 것을 불가능핶고, 또 장성들의 세계에서는 그런 구분이 구태여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 07.11.16 11:25

    김재규를 체포한사람도 정승화 입니다.정승화가 김재규를 지지한다고 하지 않했습니다.그만 거짓말 하소소

  • 07.11.14 21:21

    만약 그 당시 정치장교가 있었다면 분명 그 인물은 정승화였습니다. 누가 최규하 권한대행을 대통령으로 임몀하다시피 9대 대통령으로 결정하였는가요? 정승화였습니다. 정승화가 최규하 권한대행을 차기 대통령으로 결정할 때 국민에게 물어본 적도 없고, 국회의 동의를 구한 적도 없었습니다. 독단적으로 결정하였으며,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 선출에 영향을 미치는 이들을 정치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거의 임명하다시피 최규하 권한대행을 차기 대통령으로 결정한 자가 정치장교가 아니라면 누가 정치장교라는 말인가요?

  • 07.11.14 21:28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12월 초의 대선 때 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씨가 대선에 출마할 자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종필씨는 출마하지 못하도록 권력을 사용한 이도 정승화였습니다. 여당 총재가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군권을 사용하는 이가 정치장교가 아니라면 누가 정치장교라는 말인가요? 4공화국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이 끝까지 최규하 대통령 정부의 여당 역할을 거부하였던 이유가 바로 정승화의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 정승화가 민주공화당 총재의 대선 출마자격을 금지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김영삼과 김대중 등 3김씨가 차기 대통령이 되면 아니되므로 정승화와 손잡고

  • 07.11.14 22:04

    혁명을 일으키려 하였다는 김재규의 발언을 지지하는 말을 공공연히 했습니다. 미개인들이 숨기는 사실이 있는데 김영삼과 김대중은 정치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는 정승화였으며, 이듬해 3월 최규하 대통령 지시로 양김씨를 사면 복권시킨 이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었습니다.

  • 07.11.15 21:31

    정승화는 절대 온건파가 아님.김영삼 정권의 정치보복으로 5.18특별법 만들어 죄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 대통령을 감옥에 구속수감 부터 한 뒤 조사를 하고 5.18과 관계없자 12.12사태로 내란죄 성립시켜 수괴로 몰아 12.12에서 집권까지의 과정을 내란으로 몰아 모든 책임지우는 만행을 저질렀기에 일부 언론들이 유신에 부정적 이었던 정승화를 온건파로 분류한 것뿐 정승화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영삼은 자질이 부족하고 김대중은 사상이 불순하여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면 군은 쿠데타를 해서라도 막을 것이라고 말했슴.이것은 개헌을 해도 김영삼.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국민의 뜻과 관계없이 쿠데타 하겠다는 뜻이었죠.

  • 07.11.16 11:07

    역사학도님,제대로 밝혀봅시다.30경비단에모인 지휘관중에 누가 김재규 부하인가요? 그리고 저중에 하나회 군인이 누구인가요?

  • 07.11.16 12:19

    좋은 질문인데요. 30경비단에 모인 지휘관들과 보안사 장교들 중에 누가 김재규 부하인지는 전두환 장군 본인도 알 수가 없었고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12.12사태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은 30경비단에 모인 지휘관들이 아니라, 이희성 대장이었는데 정승화 부하였던 이희성 대장이 12.12사태 때 철저하게 중립을 지킬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이희성 대장처럼 상당 수는 뚜렷하게 어느 편에 서기보다 중립이었습니다. 만약 각자 분명하게 설 편이 정해져 있었다면 30경비단에 모일 필요가 없었지요. 정승화가 김재규의 쿠데타를 완성시키려는 거사일이 다가왔고 장교들 일각에서 그 거사를 막으려는 움직임이

  • 07.11.16 12:25

    일고 있었을 때 님이 그 지역 부대 지휘관이라 하더라도 어느 편에 서야 할 것인지 아시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판단이 목숨을 거는 판단이었습니다. 만약 다음날 아침 김재규의 쿠데타가 완성된다면 반대 편에 섰던 장교들은 죽습니다. 따라서 그날 그 시각의 시국읽기는 지금 우리가 목숨에 큰 위협을 느끼지 않고 하는 댓글놀음과는 성격이 달랐어요. 따라서 지휘관들끼리 전화를 주고 받게 되고, 전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깐 그러면 만나서 의논하자고 해 갑자기 모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어느 편에 설 것인가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는지는 노재헌 국방장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승화의 거사를

  • 07.11.16 12:31

    막으라는 신호탄을 보내고서는 어디가서 숨었습니다. 김재규의 쿠데타를 10월 26일 막았던 전두환 장군이 다행히 다시 나서 정승화의 거사에 제동을 걸려 하였지만 노재헌 국방장관의 시국읽기로는 김재규 부하들이 분명 이기는 싸움이었습니다. 거대한 김재규 부하들의 세력에 합수부가 맞섲는 것은 바위에 계란 던지기 싸움이었다는 것이 노재헌 국방장관의 시국읽기였습니다. 군사전문가 노재헌 장관의 판단이 그러하였다면 다른 지휘관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30경비단이 3군 예하부대였으며, 3군 사령부 사령관이 김재규였습니다. 따라서 그 일대의 지휘관들은 과거에 한번씩은 김재규 부하들이었으니 중정의 김재규

  • 07.11.16 12:35

    부하들처럼 김재규가 잘못하는 것을 알고도 옛 상관을 여전히 주군으로 받들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가를 위해 김재규에게 반기를 들어야 하는 것인지 다수의 지휘관들은 갈등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 위에 보면 8기, 10기 장성들이 있지요. 이분들은 성우회 소속입니다. 하나회는 4년제 육사 양대 동문회 중 하나인데 11기 이전 기수는 4년제 육사 기수가 아니었으므로 성우회 소속이었습니다. 따라서 성우회 소속 장성들을 하나회 소속이라고 미개인들이 아무리 우겨도 그분들은 하나회 소속이 아닙니다. 그리고, 11 이후 기수 지휘관들이 모두 하나회 소속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나회보다 먼저 조직된 송죽회는 김재규

  • 07.11.16 12:41

    부하들에게 연줄을 대고 있습니다. 님이 어느 고등학교 동문회 소속이라고 합시다. 그것이 님이 동문회 이름을 다 아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인터넷상에서 논객으로 활동하다 보면 수없이 많은 고교 동문, 대학 동문들이 제 곁을 스쳐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으로 일일이 제가 그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육사 동문회도 일년에 한차례씩 모이기 때문에 양대 동문회 중 누가 어느쪽 동문회에 참석하는지 알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한 지역 지휘관들이 모일 때는 그런 구별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기는 계급과 군번으로 서열이 정해지는 군대 사회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8기이면 한참 선배이기에 거기서는

  • 07.11.16 12:48

    8기가 최고 어른입니다. 거기는 차규헌 장군이 주재하는 자리이며 본래 정승화 사람이었던 차규헌 장군이 하는 시국읽기에 다른 장교들은 따르기 마련입니다. 차규하 장군이 하나회 소속이 아닌데 어떻게 그 모임이 하나회 모임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습니까? 30경비단 모임에 하나회 소속 장교들이 껴있었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진실은 그 모임은 모자이크였습니다. 옛 김재규 부하들도 섞여있던 모자이크였습니다. 논리적으로, 만약 모두 하나회 소속이었다면 도대체 그 모임이 무슨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님은 체육대회 선수로 뛸 때 님의 가족에게 님편 되어달라고 30경비단 가족회의 소집하십니까?

  • 07.11.16 12:54

    그것은 넌센스입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합수부장의 권한으로 정승화의 거사를 막으려 해도 김재규의 부하들이 군대를 움직여 막으려 할 상황이 충분히 예상되기에 필요했던 모임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회 이름으로 소집하면 김재규 부하들이 참석하겠습니까? 그리고 김재규 부하 부대 영내에서 하나회 모임 가지면 김재규 부하들이 대포 한방 쏘면 다 죽는데 하나회 모임을 호랑이 소굴에서 할만큼 모두 미련하였을까요? 아닙니다. 그 모임은 하나회 성격이 없었기에 가능한 모임이었습니다.

  • 작성자 07.11.17 00:47

    역사학도:두가지 물어보겠습니다.1.정승화가 김재규 쿠테타를 완성시키는 거사일에 어떻게 참여했다는 얘기인지 증거나 정확한 정황을 밝혀보세요. 2.저 표 지휘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부하가 누구 누구요? 계엄령 상황중에 옆의 부대와서 차를 마신단 말이 상식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내용을 잘 모르는 일부 모자란 젊은이들은 깜빡 님의 의견에 넘어갈줄 몰라도 대부분 현명한 자들은 당신 주장 글이 거짓투성인것을 알게될겁니다. (답변은 자유게시판에 질문을 올릴테니 거기에 해주시길..)

  • 07.11.17 01:02

    지바고님 좋은 질문입니다. 사람들은 광주사태 당시 김재규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데요. 만약 광주시민들이 그 당시 김재규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면, 재판 도중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라"는 명령을 내렸는지 안내렸는지 그의 어록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당시 광주시민들이 서울 보안사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놓고 어록을 청취했었는지, 만약 도청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어록을 듣고 소문을 퍼뜨린 것이라면 과거사위가 보안사 도청 기록까지 모두 공개되고 있는 이때에 그 도청 자료를 왜 공개하지 않는지 묻는 것입니다.

  • 07.11.17 01:07

    자, 그러면 님의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요즘 사육신이란 드라마가 있는데 생육신과 사육신의 운명이 종이 한장 차이입니다. 역사는 수양대군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럼에도 반란죄에 몰려 죽은 쪽은 성삼문 등 충성스러운 사육신들이었습니다. 12.12사태가 그러한 사태였습니다. 사실은 12.12 사태에서 승자가 되고도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불안해서 집에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언제 김재규 부하들에게 사살당할지 몰랐으니까요. 그러기에 그의 이름은커녕 신분조차 공개되지 않았었습니다. 그가 얼굴을 드러내놓고 활동할 수 있었던 때는 5월 하순 김재규 재판이 완료되었을 때였습니다.

  • 07.11.17 01:13

    대법원 최종판결이 있을 때까지는 언제 판이 뒤집혀질지 몰랐으며, 언제 합수부가 사육신꼴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5월 하순 이전에는 김재규 부하들이 역쿠데타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어요. 님은 언제가 묻기를 왜 정승화가 이등병으로 강등되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정승화 연행 때 장태완 장군이 대포까지 쏘면서 일을 크게 벌리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합수부 관계자들을 먼저 사실상의 이등병으로 강등시키는 인사를 정승화 편에서 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12월 13일자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해임하고 동해 초병으로 강등시키려 했던 것이 그 한 예였습니다.

  • 07.11.17 01:18

    장태완 장군이 본래 그런 중직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12.12사태 이전에 김재규 부하들을 높은 자리, 힘쓰는 자리, 수도권으로 등용하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12월 9일 노재헌 국방장관과 회동하면서 김재규 쿠데타를 완성시킬 계획을 말하고 협조하겠는지 물었습니다. 김재규 부하들의 파워를 잘 아는 노재헌 국방장관은 단호하게 "No!" 하지 못하고 대통령 재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승화가 대통령 재가는 필요 없고 노재헌이 협조하든 협조하지 않든 계획대로 거사를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노재헌 국방장관은 겁이 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승화에 협조하여도 노재헌은 죽습니다.

  • 07.11.17 01:22

    10.26사태 때 김재규가 대통령 시해 범인인 것을 알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김재규 체포 명령을 내린 이는 노재헌 국방장관이었으므로 이제와 김재규 편을 든다고 해서 무사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막자니 그것 역시 겁이 나는 일이라 정승화의 인사 명령을 소문으로 공개했습니다. 예를 들어,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동해 초병으로 강등된 것 등 인사 명령은 본래 그 명령서가 전달되는 날까지 비밀인데 노재헌 국방장관이 그것을 모두 소문으로 공개하여 그때부터 지휘관들과 장교들 사이에 전화가 자주 오가고 시국읽기를 하면서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의논하였습니다. 그런데, 4년제 육사 출신 장교들은 만약 정승화의

  • 07.11.17 01:56

    쿠데타가 성공하면 자기 목숨을 내놓고 정승화에게 총을 쏘겠다는 결의들을 하였습니다. 그만큼 그때 분위기는 살벌하였습니다. 영관급 장교들이 그런 결의를 밝히고 있었을 때 전두환 보안사령관도 생사를 거는 모험을 선택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습니다. 정승화가 보안사령관직을 해임한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었습니다. 대통령 재가가 없는 지휘관 해임이었으니까요. 만약 정승화의 불법 인사에 굴복해 동해 초병으로 강등되면 목숨이 안전하였을까요? 8명을 죽이면서 쿠데타를 시도했던 김재규 편에선 합수부 해체와 더불어 복권되었을 때 전두환이란 존재를 용서할 리 없었을 것입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체포되던 순간

  • 07.11.17 01:32

    "자네, 그러지 말고 나와 손잡으면 뒤를 잘 봐줄게" 하며 거래 제의했지만 전두환이 거절하고 체포했습니다. 따라서, 김재규의 복권과 전두환의 존재는 양립할 수가 없었습니다. 광주사태 당시 시위 구호 "전두환 물러가라"도 실은 이 사실에 그 뿌리가 있었어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에 그 어떤 해도 끼친 적이 없었고, 그때까지 전혀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인물을 증오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광주시민들이 전두환을 증오하였기에 "전두환 아가리를 찢어죽이자"는 구호를 외쳤던 것이 아닙니다. 그 사실은 님과 님의 부모님과 님의 학교 스승들이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전두환을 거세하려는 세력이 그런 구호를

  • 07.11.17 01:39

    외치도록 시위 분위기를 지폈던 것이지 광주시민들이 그를 증오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광주사태 이후의 그에 대한 증오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자, 사육신 드라마를 예로 들어 봅시다. 수양대군쪽과 김종서쪽은 싸움을 피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려 있었습니다. 님과 제가 그 입장에 있었어도 뒤로 물러서도 죽음이라면 싸움 외에 선택이 없었을 것입니다. 12.12사태가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 누가 전두환보안 사령관에게 정승화의 불법 인사 명령에 굴복에 동해 초병으로 좌천되어 있다가 죽을 날을 기다리라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정승화가 대통령 재가 없이 주요 지휘관들을 해임하려 했다는 것은 쿠데타를 의미합니다.

  • 07.11.17 01:44

    만약, 일단의 지휘관들이 대통령 재가가 없는 정승화의 불법 인사명령에 굴복하여 순순히 해임당하였 때 최규하 대통령의 존재는 국가원수와 국군통수권자로서 아무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12.12사태 며칠 전 정승화가 최규하 대통령이 10.26사태 때 수상했다면서 수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일개 장성이 일국의 대통령을 제멋대로 수사하는데도 대통령이 막지 못하고 취조당해야 했습니다. 하물며, 김재규의 쿠데타를 막던 지휘관들마저 해임되고 난 후에 힘의 역학 구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동해 초병으로 좌천된 후 김재규가 그를 살려둘지의 문제는 둘째치고, 대통령 재가 없이

  • 07.11.17 01:49

    일군의 지휘관들이 해임될 때 그것은 사실상 쿠데타입니다. 국가 지도자는 지지세력이 있을 때 존재가 가능합니다. 그 지지 세력이 지식인이든, 경찰이든, 정치권이든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군부의 지지라도 있어야 정권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규하 대통령의 경우 여당도 없었던 상황에서 정승화의 꼭둑각시로 전락할 때 사실상 그 정권은 정치학에서 정권이라 부르는 정권이 아닙니다. 만약 12.12사태가 없었으면 그것은 김재규 부하들의 쿠테타 완성을 의미했습니다. 정승화가 12월 9일 노재헌을 만나 그 계획을 말했던 것도 그 증거요, 대통령 재가 없는 인사명령을 정승화가 이미 발부하여 12월 12일 다음날 해당

  • 07.11.17 01:54

    지휘관들에게 발송될 예정이었다는 것도 그 증거입니다. 저는 정승화가 김재규의 쿠데타를 완성시키는 것을 반대하는데, 그것은 제가 가방끈 이야기를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초등학교 졸업자였던 정승화가 정치, 경제, 사법, 행정 등 모든 분야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통치자로 떠오른다는 것은 국가를 위해서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불안한 상황은 정승화에게 나라를 맡겨도 되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합수부 해체와 더불어 그가 잡았을 절대권력 또한 정통성 있는 권력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대통령 재가 없이 거사를 일으키려 했었던 것이니까요.

  • 작성자 07.11.17 12:55

    ((자유게시판에 답변으로 올려주십사 요청했지만, 거기에 글이 없고 여기에 있어서 제가 게시판에 퍼가서 실었습니다.거기서 봐주세요))

  • 07.11.17 12:39

    지바고님 질문은 김재규부하냐 누구냐는것인데 장황하게 늘어놓기면했군 그러니까 김재규 부하가 장태완이란 말이요? 김재규 부하가 상당수있다면서 도대체 누구인지를 얘기하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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