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같은 문제를 계속하면서 '맛'이 무엇인지, 어떻
게 힘쓰지 않는 채 얻어지는지를 비유로써 밝힘.
1. 이야기가 어디로 빛나갔는지 지금까지 다루던 문제조차 잊어버렸습니다.
여러 가지 일과 건강 때문에 딱 좋은 대목에서 그만 붓을 놓쳐버렸습니다.
기억력이 나쁜 데다가 다시 읽어볼 수도 없으니 문맥이 통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갈팡질팡 갈피 잡을 수 없는 말만 할 것 같은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영적 환희가 우리의 격정과 합쳐질 때,
때로는 느껴워서 울음이 나온다는 데까지 말해둔 듯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가슴이 메어지고,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밖으로 고통이 따른다 하였습니다.
나는 여기에 대한 경험이 없으므로 아무 할 말도 없습니다만,
그것이 환희임에는 틀림없을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 그것은 모두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고 지존을 누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내가 다른 데서 고요의 기도라고 이름지은 하느님의 맛은
저것과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입어 이 맛을 보았다면, 잘 알아들으실 것입니다.
이것을 더 깊이 알아듣기 위해서 여기 두 샘과 물이 그득한 물통 두 개를
가정해 봅시다.
나는 영적인 것에 대하여 무엇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물을 가지고 비유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는 것이 없고 제주라야 별것이 없어서도 그렇지만, 워낙 물을 좋아하는 성미라서
다른 무엇보다도 이 물을 깊이 관찰하기 때문입니다.
그지없이 지혜로우신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은
모두가 그윽한 신비를 지니고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이용할 수 있고, 또 사실 그것을 깨친 사람들은 많은 덕을 볼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창조하신 가장 작은 것일지라도
그 하나하나에는 -한 마리의 개미 새끼에 이르기까지 -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그 이상의 무슨 신비가 숨어 있으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3. 자, 그럼 물통 두 개가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채워지는 것을 생각해봅시다.
하나는 먼 데서부터 많기도 한 수도관을 통해서 그리고 사람의 공력을 들여서
끌어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바로 생수 구멍에다 들이대어서 아무 소리도 없이
물이 가득 차는 것입니다.
지금 말하는 이 생수가 수량이 풍부하고 보면, 이 물통이 철철 넘어서 큰 물줄기가 되고,
나아가서는 구태여 힘을 들이거나 수도관을 배치할 필요가 없이 물은 항상 거기에서
콸콸 나올 것입니다.
그 기쁨이란, 우리가 피조물을 빌려서 명상에 잠긴다든지
애써 오성을 부려서 생각하는 데서 오는 것으로, 결국 우리의 노력의 결과인 까닭에
그것이 다소라도 영혼을 이롭게 채우려면 이상 말한 바와 같이 소리를 내기 마련인 것입니다.
4. 그러나 또 하나 다른 통의 물은 바로 생수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어떤 초자연스런 은혜를 내리시고자 할 때면,
그 물은 말할 나위 없는 평화와 정밀과 감미를 가지고 우리의 가장 그윽한 속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용솟음쳐오는 것인지는 모릅니다.
그 기쁨, 그 즐거움은 이승의 그것들처럼 처음에는 마음속으로 느끼지만,
후에 가서는 완전히 모는 것을 채워버립니다.
이 물은 차츰 모든 궁방, 영혼의 모든 능력을 채워나가다가
마침내는 육체에까지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비롯했다가 우리들 안에서 끝나는 것이라고 내가 말한 것입니다.
정말이지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맛스러움은 온통 인간의 바깥까지를 흐뭇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5. 이것을 쓰고 있노라니 문득 위에서 말한 "제 마음을 넓혀주셨기에(cum dilatasti cor meum)"
하는 시편의 구절이 떠오릅니다.
내가 보는 대로 말한다면 이 기쁨은 마음에서 솟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 더더욱 깊숙한, 깊디깊은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영혼의 중심일 것입니다.
이것은 뒤에 와서 내가 깨친 일이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정말 나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신비를 발견하고 가끔 놀라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도 얼마나한 신비가 더 있겠습니까!
오! 내 주 내 하느님이시여,
당신의 위대하심은 얼마나 크오신지!
그렇건마는 우리는 마치 철없는 목동들처럼 땅 위를 다니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그래도 당신에 대해서 무엇을 아는 체합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신비마저 우리는 모르는 게 아니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라고 했습니다만, 그것은 당신 안에 있는 너무나 많은
신비에 비해서 그렇다 함이옵고, 우리가 볼 수
첫댓글 평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넣어주신 선험적 신비 ,초월적 신비를 통해 유한함 속에 살고 있는 피조물인 우리가 영원하신 하느님을 믿고 그 사랑을 누리며 신비를 깨달아 갈 수 있음. 이 보다 더 큰 신비가 있을까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올려주시는 "영혼의 성"을 다시 읽으며 저도 은총의 생수를 마십니다. 미소님! 쉐마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