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이사 49,1-6; 요한 13,21-38 / 성주간 화요일; 2024.3.26.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 49,6). 이 말씀은 이사야가 전한 ‘메시아 예언’ 네 꼭지 중 두 번째 꼭지에 나오는 내용인데, 전체 예언에서는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세 가지 역할을 하실 것이라고 내다본 그 결론에 해당합니다. ‘고난 받는 주님의 종’에 관한 이 네 꼭지 ‘메시아 예언’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5백 년 전에 나온 것임에도,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내다본 예언입니다. 예언의 본질이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미래 현실도 이처럼 정확하게 앞당겨 보여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은 구약성경 안에서 매우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메시아 예언의 첫째는,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는 일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고도 불리었던 야곱의 열두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시고자 제자들을 열두 명으로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열두 제자는 열두 사도가 되어서 그리스도 교회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그 열두 사도를 주춧돌로 하여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우상숭배에 물들어 메시아도 알아보지 못했던 유다인들은 모조리 제외시키시고, 하느님 신앙에 충실한 아나빔들만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우선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어(마르 6,7-13) 불러 모으신 예순 제자들까지 해서 일흔두 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루카 10,1-12). 이 일흔두 제자들 말고도 성모 마리아를 비롯해서, 수산나, 요안나, 막달라 마리아, 라자로의 두 동생인 마르타와 마리아 등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도 들던 여인들과, 니코데모, 아리마태아의 요셉, 라자로 등을 비롯한 토박이 제자들까지 합하여 도합 백 스무 명이 또 포함될 수 있습니다(사도 1,15). 이들까지가 모세 시절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의 유다인 혈통 중에서 예수님 곁에 남은 자들입니다.
이 남은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이 셋째 역할로 남아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 남은 자들 중에서 배신자들이 나왔습니다. 애초에 열두 제자 중 하나로 부름을 받았던 이스카리옷 유다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스승을 팔아 넘기는 배신을 저질렀고, 열두 제자 중 수제자로 임명을 받았던 베드로는 믿음이 약해져서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뭇 민족들에게 하느님의 빛을 전하는 이 세 번째 과정은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이루어질 것인데, 이 유다와 베드로에서 일어난 바와 같은 배신의 유형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족들의 빛이 되어야 할 메시아의 사명은 메시아 백성이 계승해야 할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난 2천 년 동안 온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해졌다고 하지만, 실제로 살펴보면 인류의 2/3가 넘는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의 민족들에게는 겨우 3%에게만 해당됩니다. 그 마저도 1억이 넘는 인구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을 제외하면 아시아 대륙 평균은 1% 남짓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게다가 나머지 97%에 이르는 절대 다수 아시아 인구도 극심한 빈곤과 가혹한 독재 속에서 사회 공동선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구원의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다행히도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이 빈곤과 독재에 맞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과업은 복음화이고 이는 한민족의 복음화만이 아니라 아시아 민족들의 복음화라는 지평이 열려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이 그러했듯이, 우리가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의 빛을 전하면 이 빛이 산업화와 민주화의 바탕이 될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에 따르면, 하느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메시아를 따르는 백성을 뭇 민족들의 빛으로 세우시려고 하십니다. 이것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 특히 가톨릭 아나빔들이 받고 있는 메시아적 소명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인도의 시성이라고 일컬어지는 타고르, 소설. 25시’를 지은 저명한 작가이자 루마니아 정교회의 사제인 게오르규 그리고 역사의 연구로 유명한 문명사가 토인비 같은 세계 석학들이 하나같이 칭송하며 고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에도 불구하고 유다인은 물론이고 세계 역사 안에 출현했던 그 어느 민족도 민족들에게 빛을 비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와 민족이 이 중차대한 메시아적 소명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선 한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소중한 전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제천의식(祭天儀式)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온 하느님 신앙의 전통을 인식하고 회복하는 일입니다. 이는 한민족이 하느님의 자손이라는 천손의식(天孫意識)의 발로였는데, 아담처럼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빌고 노아처럼 감사를 드리는 한편,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축복을 바라는 제사의 전통을 계승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미사 중 거행되는 성찬례도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조상제사 문제로 끔찍한 박해까지 받았던 한국 천주교인들한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전통입니다. 제사는 하느님께만 드리는 것이고 이는 미사로 충분합니다. 조상들에 대해서는 차례(茶禮)상을 차려서 공경을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일미사 참례의 의무는 으뜸으로 지켜져야 하며, 주일미사에서 받은 기운으로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서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일을 해야 주일을 거룩히 지낼 수 있습니다.
둘째는 공동체적인 문화를 이룩해온 역사를 계승해야 합니다. 사실 미사는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이면서도, 믿는 이들이 형제자매로 모여서 성찬을 나누는 공동체의 잔치입니다. 우리의 자비 실천으로 만나게 된 이들을 이 잔치에 초대해야 합니다.
셋째는 신기하고도 다행스럽게도 그 옛날부터 하느님을 공경해온 우리 민족에게 삼위일체의 계시를 전해주는 일입니다. 이는 우리가 계시에 따른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성을 제사로 흠숭드리고 여기서 받은 자비를 실천하는 동시에 공동체 잔치의 정신에 따라서 공동선을 증진시키는 증거의 행동으로서 가능합니다. 실상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은 최고선에 입각하여 공동체의 선 즉 공동선을 이루는 지혜를 성령의 이끄심에서 얻어서 우리 사회를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교우 여러분, 그러니, 이미 믿는 이들을 추스르는 일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 민족은,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 교회는 하느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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