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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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행복한 부모 자녀의 행복
엡 6:4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오늘은 자녀를 기르는 부모에게 주신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면서 제 두 딸을 생각했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어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격 없는 아빠가 설교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오직 주님만 의지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부모에게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가장 큰 복입니다. 자녀가 생겼다는 말을 들을 때, 자연스런 감정은 행복하고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복이니까요!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녀 때문에 정말 행복한 가정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식 때문에 힘들어 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여 돈을 벌었는데 정작 자녀는 망가진 경우도 너무나 많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복인데, 자녀로 고통당하는 가정이 왜 이렇게 많은 것입니까?
부모가 자기 마음대도 자녀를 길렀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잘 길러주고 싶다고 잘 기를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부모 자신이 죄인이요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존재임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하는 일이 자녀를 망치는 것입니다.
헬리콥터 부모, 헬리콥터 맘이라는 말 들어 보였습니까? 자녀 양육과 교육에 극성스러울 정도로 관심을 쏟는 부모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헬리콥터처럼 자녀의 머리 위를 맴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헬리콥터 부모는 대학까지 진출했습니다. 서울 지역 사립대학 한 교수는 학년말 학부모가 전화해 “우리 애가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이 이렇게 나온 이유가 뭐냐”고 항의하고, “로스쿨 들어갈 건데 이런 과목을 듣는 게 맞느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교수는 “강의실에 웬 중년 부인이 앉아 있기에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애가 아파서 대리 출석하러 왔다’고 해 기겁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대학이 유치원이 되었습니다.
요즘 헬기 맘은 군부대까지 출동합니다. 중대장에게 전화해서 아들 안부를 챙기는 부모가 있습니다. "아들이 산을 타다 넘어져서 긁혔다는데 겨울에 산에 올라가는 게 말이 되느냐?“ 하는가 하면 보직 바꿔 달라는 부탁은 흔하고 행군 따라가 간식 돌리는 아버지도 있다고 합니다. "군대가 '국방 유치원' 됐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입니다.
우리가 정말 자녀를 잘 기르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후 얼마나 조심스럽게 예수를 길렀겠습니다.
부모가 그런 마음으로 자녀를 길러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먼저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화를 내는 것에 대하여 너무나 무관심합니다.
어느 아버지가 4살 된 딸이 “아이 짜증나” 하면서 씩씩 거리는 것을 보고 웃으며 ’너무 귀엽다‘고 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귀엽고 작은 아이가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심각한 말을 하다니, 그 대조적인 모습에 어른들이 빙그레 웃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아내가 그렇게 화를 낼 때, 남편이 귀엽다고 반응한다면 아내는 어떻겠습니까? 사장이 그렇게 화를 낼 때, 부하 직원이 귀엽다고 반응하면 어떤 결과가 생기겠습니까? 우리 자녀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좀 더 크면 자녀들이 화를 내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버릇없다고 윽박지릅니다. 그러면 마귀가 자녀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감정은 상했는데, 화는 나는데, 표출하지 못하면 부모를 미워하고 부모를 떠나고 싶게 하고 죽고 싶은 마음,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도 감정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리니 더 섬세하여 상처받기 쉬운 마음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은 부모와 가까이 살기 때문에 부모의 모순된 모습, 이기심과 허물을 다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에게 잘하라고 말할수록 반발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점이 부모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는 싸우면서 자기들에게만 싸우지 말라고 하니 화가 나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는 드라마를 보면서 자기들만 공부하라고 하니 반발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자기에게만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니 화가 나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는 마음껏 화를 내고 말도 막 하면서 자기들은 화내지 말고 말조심하라고 하니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부모가 불완전한 사람, 죄인이기에 자녀를 잘 가르치려 할수록 자녀에게 화낼 거리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거실에서 놉니다. 아빠 엄마 놀이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자아이가 말합니다. “싫어, 나는 아이 안 할 거야. 그럼 너희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잖아. 난 아빠 할래!” 그러자 남자 아이가 말합니다. “그러니까, 넌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우리한테 이것저것 시키기나 하겠단 말이지!”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역할에 대하여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요?
부모 자신이 정직해야 합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정말 자녀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 자녀들에게 그렇게 많은 공부를 시키는 것입니까? 부모는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부모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계산이 있습니다.
어느 부모나 자녀들이 공부 잘하기를 바라고 유명한 학교에 다니고 성적이 상위권이면 좋아합니다. 자랑스러워합니다. 그것은 반대로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창피하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기대만큼 행동하지 못하면 아무 생각 없이 말합니다. ‘너 때문에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이 말이 자녀들에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아십니까?
젊은이교회 특별새벽기도회 때, 한 남자청년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간증하였습니다. “내가 어릴 때, 집이 고물상을 하고, 슈퍼마켓을 할 때도 부모님에게 나는 자랑거리였다. 내가 학교에서 시험점수 잘 받아오면 엄마 아빠가 행복해하시는 것을 알고, 부모님께 힘이 되어 드리고 싶어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런데 대학교 합격 발표 며칠 후 아버지와 함께 간 낚시터에서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는 네게 실망했다. 더 좋은 학교 갈 수 있었는데 너는 도전을 포기했다.”그 때 내 마음에 큰 상처가 생겼다. 나는 나름 열심히 했고 들어간 대학교에 만족하였는데, 아버지의 그 기대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고시합격을 해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아야지 결심하고 20대를 그 꿈 하나를 품고 지내왔다. 그런데 생각처럼 고시합격이 되지 않았고 아버지는 나에게 실망을 감추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내가 변했다 하셨다. 그렇지만 나는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그냥 예전처럼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 아버지께 실망만 안겨드리는 아들이 되었고, 그런 아버지의 실망에 원망하고 반항하는 아들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내가 없어지면 아버지가 행복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참해졌다. 아버지는 나에게 아픔이었고, 두렵고 힘든 존재였다.“
자녀들은 엉망인 성적표를 받았다고 마음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런 성적표 때문에 집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부모가 창피해 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뒤 떨어지는 것 때문에 죽고 싶지 않습니다. 뒤 떨어진 것 때문에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겨질 때 죽고 싶은 것입니다.
부모를 보고 하나님도 그러실 것이라 여기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자녀들을 양육해야 합니까?
자녀 양육에 있어서도 주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무거운 짐들 중에 무거운 짐이 자녀 문제입니다. 주님께서는 자녀로 인한 짐도 져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부모에게 말씀하십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말은 단순히 말하면 더 이상 부모 자신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자녀를 주님께 내어드리라는 것입니다.
부모인 자신보다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를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모 자신보다 주님이 자녀들과 더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어디서나 자녀와 함께 하시고 언제까지나 함께 하십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한동대 이기복 교수님은 고등학교에 올라간 딸의 성적이 떨어졌을 때, 주님의 마음으로 딸을 보니 하나님은 딸을 사랑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딸을 끌어안고서 “난 널 성적과 상관없이 사랑한단다.” 하였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도 또 성적이 떨어졌답니다. 그 때도 주님의 마음으로 딸을 격려하고 칭찬했답니다. 세 번째 성적표를 가져 왔을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그렇게 얼굴이 밝더랍니다. 그런데 성적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순간 이 교수님에게 실망감이 다가 오더랍니다. “내가 잘못했나?" 그런데 그 순간 깨달아지기를 요즘 학교 성적 때문에 방황하고, 거짓말하고, 심지어 가출하는 아이들이 많다는데, 내 딸은 성적이 계속 떨어지는데도, 밝고, 어머니에게 담대한 것이 너무나 감사하더라는 것입니다.
매 주일 교회에 보내고, 성경을 읽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가정예배 드리는 것이 귀합니다. 그러나 율법적으로 흐르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강요가 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깁니다. “예수 잘 믿으라, 잘 믿으라.” 노래를 부르는데도 커서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는 일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좋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정말 좋은 것입니까?” 자녀들은 말없이 부모에게 묻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도 말없이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행복한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함께 살아보면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으로 인하여 행복하면 최고의 부모입니다. 자녀를 구원하는 부모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실수하는 가장 큰 요인이 조급해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진정 예수님 안에서 행복한지 살피지 않고 자녀들을 잘 기르려고만 덤비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를 억압하게 되고 부모는 좌절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빠 엄마는 정말 행복하셨어!” 이렇게 자녀들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왜 우리 아빠, 엄마는 행복하실까?” 질문하게 됩니다. 자기도 살아보니 부모에게 힘든 일도 많고 고통스런 때도 있었는데 행복한 것이 너무나 궁금해지는 것입니다. 그 때, 대답해주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하시기 때문이야”
여러분,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전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부 잘해야 행복할까? 성공해야 행복할까? 마음에 드는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할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부모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저는 이 시간 부모가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을 다 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가정에 대한 책을 읽어 보시라고 권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 믿는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부모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행복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자녀를 위해서도 부모가 진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항상 “주님이 지금 함께 계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분명히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아무 것도’ 라고 했습니다. 자녀를 잘 기르는 것도 포함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설명하면서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롬 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이것이 자녀를 기르는 정답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통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말하소서.” “주님 나를 통하여 아이들을 기르소서.”
벧전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
한국 초대교회 유명한 목사님이신 길선주 목사님의 아들은 술주정뱅이에, 망나니였습니다. 길선주목사님이 장로님일 때, 아들을 볼 때마다 야단을 쳤습니다. 너무 안타까워서 볼 때마다 책망을 하고 저주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아들은 더 빗나가는 것입니다. 한번은 미국 선교사님께서 그런 길선주 장로에게 “아들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보세요.”하고 권면했습니다. 길장로님은 그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의 심정, 안타까움, 노여움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새벽 100일 동안 축복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때 아버지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예수님의 눈으로 보였습니다. 술주정뱅이지만 하나님의 복된 아들임이 믿어지고 그래서 더욱 축복하고 선포하였습니다. 100일 기도가 끝난 다음 날 아침, 새벽기도회에 그 아들이 술이 취하여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예배당 바닥에 앉아 대성통곡을 하고 우는 것입니다. 그 날 이후, 그 아들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모세와 사무엘, 두 사람에게 공통점은 믿음이 좋은 부모 슬하에서 「젖 뗄 때까지」 자랐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젖 뗄 때까지」 엄마의 기도로 자랐고, 엄마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슬하를 떠났습니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에게로 갔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엘리 제사장은 타락한 제사장이라 그에게서 하나님에 대하여 배울 것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 들어가 이방 학문을 배우며 자랐으니 더욱 하나님에 대하여 배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젖 뗄 때까지 어머니를 통하여 들었던 하나님에 대한 말씀으로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었고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언젠가는 험한 세상에 나가야 할 것입니다. 무서운 유혹이 있을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핍박이나 시련을 겪을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 자녀가 모세와 사무엘 같이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으려면 주님과 인격적으로 동행하게 해주는 눈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들을 기르면서 또한 헤어지는 연습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자녀들의 마음에 계시다는 것을 항상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주님과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도록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부모도 믿음의 실험을 해야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들을 양육할 때,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주님과 함께 자녀를 길러보는 흥미로운 실습으로 여겨야 합니다.
저희 둘째 딸이 고등학교 들어가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너무나 괴로워할 때, 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영이와 함께 하시는 주님, 하영이에게 공부의 기쁨과 감사를 깨닫게 해 주옵소서”그랬더니 저희 딸이 울면서 소리쳤습니다. “아빠는 정말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 것이 믿어져요? 나는 안 믿어져요. 아빠는 믿어지는데, 나는 왜 안 믿어지는 거야!” 저는 저의 딸의 탄식이 교인들의 탄식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목사님 정말 예수님이 목사님 안에는 계신가요? 그런데 왜 저희들은 안 믿어지나요?”
다시 기도했습니다. “주님, 하영이 안에 계신 것이 믿어지게 해 주옵소서”그것 밖에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딸이 고3이 되었을 때, 학교에 데려다 주는데 불쑥 “아빠, 감사해요”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랬더니 “아빠 아니었으면 나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을 거예요”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기독교에 대하여 이런 저런 말을 많이 듣다보니 어떤 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릴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빠를 보니까 아빠는 분명히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정말 믿는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계시기는 계신가보다!’하고 믿음을 버리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등부에서 영성일기를 쓰게 되면서 놀랍게도 주님이 자기 마음에 임하여 계신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마음에 확신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버지로서 딸에게 무엇을 감출 수 있겠습니까? 허물 많은 아버지를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니 눈물이 핑 돌만큼 감사했습니다.
어떻게 내가 딸에게 이런 도움이 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제가 영성일기를 쓰면서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려고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 뿐 이었습니다.
자녀를 잘 기르는 것이 부모에게 무거운 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힘으로 자녀를 잘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런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함께 하시는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자녀들이 사는 길입니다.
찬송 430장
우리 가정이 날마다 날마다 한걸음 한걸음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