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콜럼비아 경비행기 추락 성인 3명 사망 아이들 4명은 40일 만에 구조
콜롬비아 남부 아마존 정글에 소형 비행기가 추락했다. 조종사와 성인 승객 2명 등 어른 3명은 모두 숨진 채 발견됐지만, 아이들 4남매는 사고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콜롬비아 정부는 150명의 구조인력과 헬기 5대, 탐지견 등을 투입해 정글 속을 샅샅이 뒤졌는데, 아이의 젖병과 먹다 남은 과일 조각 등을 발견하면서 이들 남매가 살아 있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하지만 구조가 지체되면서 위험한 정글 속에서 어린 4남매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커지고 있었는데, 40일 만에 무사한 상태로 발견이 됐다. 돌쟁이도 있었는데 어떻게 그 긴 시간을 버텨온 건지, 이들은 볼 살이 쏙 들어갈 정도로 얼굴이 야위었지만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어 보인다. 남매 사이인 이들은 첫째가 13살, 막내는 실종 당시 11개월로, 정글에서 첫 돌을 맞았다. 아이들은 정글에서 구조대가 공중에서 떨어뜨린 비상식량과 생존키트로 하루하루를 버텼을 것으로 보인다.
2023년 미국 일리노이 중부 모래폭풍으로 고속도로 90중 추돌사고 6명 사망 30명부상
2022년 우크라 전선 나간 러시아 참모총장, 넓적다리 '파편' 부상
2019년 日 나루히토 일왕 즉위, 레이와 시대 개막
일본은 지난 5월 1일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즉위하며 새 연호 레이와(令和) 시대를 맞았다. 202년 만의 생전(生前) 양위에 일본 사회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전 세계 각국의 국빈 방문도 잇따랐다. 퇴위 후 상왕[上皇]이 된 아키히토(明仁)는 재임 30년 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전쟁을 반성하고 평화를 기원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며, 헤이세이(平成)를 '전쟁 없는 시대'로 만들었다. 나루히토 일왕 역시 즉위 직후 첫 메시지로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밝혔다.
2017년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내 선박건조장 대형 타워크레인 넘어져 6명 사망 25명 부상
2017년 트럼프 미대통령 북한 김정은 만날 용의 밝힘
2014년 부산시민공원 개원.
2012년 주한 미군 AFN Korea가 AFN TV 아날로그 송출을 전면 중단
2011년 전범 아이히만 사형 선고한 이스라엘 판사 별세
거물 나치 전범 아이히만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이스라엘의 모셰 란다우(99) 판사가 1일(현지시각) 별세했다.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추념일을 하루 앞둔 날에 세상을 떴다. 란다우 판사는 대법관이던 1961년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을 주관하며 사형을 선고했다.
아이히만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 집단학살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그는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자 남미 아르헨티나로 도피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추적에 나선 지 십수년 만인 196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결국 체포됐다. 1962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이히만 재판은 라디오방송을 통해 생중계될 만큼 국제적으로 관심이 컸다.
재판 과정에서 유대인 피해자들이 겪었던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과 비인간적 학대의 실태도 상세히알려지게 됐다.
2010년 장 루이 뒤마 에르메스 전 최고경영자 별세
뒤마는 1837년 에르메스를 창립한 티에리 에르메스(Hermes)의 5대손이다. 1964년부터 경영에 참여해 1978년 최고경영자에 올랐고 2006년 은퇴했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시인이자 마술사로 창작에 열정을 쏟았고 에르메스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식탁 소품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 호주·아시아 시장 등을 개척해 에르메스의 영역을 넓혔다. 뒤마의 후임은 2006년까지 공동 CEO로 일했던 전문경영인 파트리크 토마(Thomas)가 맡고 있다
2007년 영국 브리티시 페트롤리엄사의 CEO 존 브라운 사임키로
동성애, 거짓말, 그리고 불명예 퇴진. 석유업계의 ‘태양왕’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12년간 영국 최대 기업 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의 CEO로 군림했던 존 브라운(Browne·59·사진)이 임기를 불과 두 달 앞두고 동성애 스캔들과 거짓말 파문으로 1일 퇴진했다. 이에 따라 오는 7월 퇴직 때 받기로 돼 있었던 350만 파운드(64억원)의 보너스와 1200만 파운드(222억원) 상당의 주식도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영국 언론들이 전했다.
브라운은 이날 영국 타블로이드지 ‘메일 온 선데이’에 대한 출판금지청구 소송에서 위증한 혐의가 발각돼 패소한 직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 신문은 당초 브라운이 캐나다인 남자친구 제프 셰발리어(Chevalier)와 4년간 동성애 관계를 유지했고, 셰발리어를 위해 회사 자산을 유용했으며, 정치권 로비를 통해 회사의 이득을 챙겼다는 기사를 실으려 했다. 그러자 브라운은 소송을 내, 셰발리어와의 관계를 부인하고 셰발리어를 알코올 중독자라고 몰아붙였으나 거짓으로 드러났다.
2005년 세계 최초로 위성DMB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본방송 시작.
2004년 ‘수퍼 EU(European Union)’ 출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25개국으로 확대되어 출범 했다
25개국 정상들이 모여 공식 행사를 가진 아일랜드 더블린은 물론, 새로 가입한 10개 회원국에서는 다양한 축제가 벌어졌다.
리투아니아 방송국에서는 2004년 5월 1일 태어난 ‘수퍼 EU 베이비’들을 카메라에 담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반면 일부 국가에서는 반(反)EU 시위도 벌어졌다. 7년간 자유로운 인력 이동을 제한하는 등의 현 EU 정책에 반대하거나, EU 통합으로 인해 개별 국가의 주체성이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었다.
2001년 부시 미국 대통령, 국가 미사일방어체제 공식 천명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1일 워싱턴소재 국방대학에서 이른바 ’불량국가’ 의 미사일 및 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다국차원의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을 공식천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선언에서 ’국가미사일방어’ 용어 중 ’국가(national)’ 라는 단어를 전혀 쓰지 않고 대신 미국의 우방과 동맹국들의 안보와 안전을 지키기 위한 “미사일방어체제” 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나 사실상 자신의 대선공약을 그대로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이같은 미사일방어체제 구축과 관련, 민주당 의원 등 미 의회와 여론 일각에서 그 구상의 타당성 및 막대한 소요비용을 들어 반대의사를 밝혔다.
2001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 일본에 불법입국하다 체포(4일 강제추방)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2001년 5월 1일, 처인 신영희와 그녀의 친척인 30대 여성, 그리고 아들로 보이는 4세 남자아이와 함께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싱가포르발 JAL 712편으로 나리타(成田) 공항으로 불법입국하려다 체포돼 4일 간 일본경찰의 조사를 받고 중국으로 강제추방됐다.
김정남은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김정남임을 시인했으며, "도쿄에는 디즈니랜드를 보러 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법무당국에 따르면 김정남은 도미니카 정부 발행 여권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름은 `팡 시옹(PANG XIONG)`, 출생지는 `KOREA`로 기재돼 있었다.
김정남은 외부엔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북한 내부에선 `작은 김정일` 또는 `새끼 장군님`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뚱뚱한 체형, 통 큰 스타일, 급한 성격 등 외모와 성격이 아버지 김정일을 빼닮았으며, 김정일과의 관계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의 첫째 부인 성혜림의 소생인 김정남은 컴퓨터와 인터넷에 능해, 이 분야의 `전문가`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언론은 김정남이 과거 일본을 수차례 드나들었으며 미국과 제주도에도 방문한 것으로 보도했다.
한편 일본 정부가 김정남을 중국으로 추방, 서둘러 사건을 종결시킨 데 대해 일본 내에서 강한 비판론이 제기됐다. 일부 정치권과 언론, 북한 인권단체 등은 "좀더 잡아두고 철저한 조사를 벌여야 했음에도 불구, 조기 송환함으로써 `외교카드`를 스스로 포기했다"고 아쉬워했다.
1998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훈할머니 50년 만에 영주 귀국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지 55년 만에 국내 혈육과 한국 국적을 되찾은 훈할머니 이남이씨가 캄보디아 생활을 정리하고 1998년 5월 1일 영주 귀국했다. 경남 진동에서 태어나 18세인 1940년대 초 부산항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훈할머니는 1943년 캄보디아에서 일본군 장교와 살다가 전쟁후 그가 떠나자 캄보디아 남자와 다시 결혼해 어려운 삶을 영위하다 1997년 한국인 사업가에 의해 우연히 발견돼 이날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대검찰청의 유전자 감시을 통해 고향과 가족, 한국이름 이남이까지 되찾는 감격까지 느꼈던 훈할머니는 한동안 경북 경산에 머물렀으나 한국말을 전혀 못하고 캄보디아 가족이 그리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훈할머니는 2001년 2월 15일 굴곡많은 인생역정을 뒤로 한 채 생을 마감했다.
1997년 토니 블레어 영국 노동당 당수, 총선승리로 수상에 취임
영국에 1백85년 만에 40대 초반의 최연소 총리가 탄생했다. 43세인 토니 블레어 당수가 이끄는 영국 노동당은 1997년 5월 1일 실시된 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에 더블 스코어 이상의 압승을 거둬 토니 블레어 당수가 총리에 올랐다. 블레어 당수는 1812년 리버풀경이 42세로 총리가 된 이래 최연소 영국 총리가 됐다. 보수당은 대처리즘으로 상징돼 온 18년간의 집권에 종지부를 찍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날 알현차 버킹엄궁을 들른 블레어 당수를 총리로 정식 임명했다. 블레어 신임 총리는 여왕을 만나고 다우닝가 10번지를 둘러 본 다음 주요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영국은 총선이 끝난 다음 정권이 바뀌게 된다고 해도 다른 나라들처럼 `거창한 취임식`이나 인수인계식 같은 행사가 아예 없다.
블레어는 노동당이지만 전형적인 보수당 못지 않은 가족적 배경과 학력의 소유자로 1953년 5월 6일 에딘버러에서 부유한 도시 부르조아의 가문에 3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보수당이었다. 장발과 록음악으로 상징되는 1970년대 옥스퍼드대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학창시절 그는 록음악광이었다. 이때 캠퍼스에서 피터 톰슨 성공회 목사를 만나 신학과 정치학을 접목한 기독사회주의의 열정을 갖기 시작했다. 이것이 출신성분을 버리고 노동당에 발을 딛게 된 계기가 됐다.
1996년 `학교종` 작사-작곡한 김메리 여사 내한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우리나라 어린이가 즐겁게 따라 부르고 있는 `학교종`의 작사작곡가 김메리 할머니(92)가 1996년 5월 1일 김포공항을 통해 내한했다. 김할머니가 `학교종`을 작사작곡한 것은 광복 첫해인 1945년. 당시 김할머니는 현제명, 김성태 선생과 함께 음악교과서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초등학교 1학년용 음악교과서를 맡았다.
1904년 서울에서 태어나 배화학교를 졸업한 김할머니는 잠시 논산 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다 1930년 미시간대로 유학, 영문학을 전공했다가 1년후 전공을 음악으로 바꿨다. 이어 1934년부터 13년간 이화여전 음악과 교수와 이화여대 음악과장을 맡은 뒤 웨인주립대에서 화학과 미생물학을 다시 전공, 20년 간 병원에서 근무했다.
1978년 칠순을 넘긴 김할머니는 평화봉사단원을 자원,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2년 넘게 봉사활동을 했고, 자선사업단체인 `육영선교회`를 만들어 한국문화보급에도 힘썼다. 1989년 뇌일혈로 쓰러졌으나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해 이후 뉴욕 한인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어린이들을 지도했다.
1993년 노동절 행사 35년 만에 해금
1993년 스리랑카 프레마다사 대통령 폭탄테러로 사망
라나싱게 프레마다사 스리랑카 대통령이 1993년 5월 1일 수도 콜롬보에서 발생한 폭단 테러로 사망했다. 프레마다사 대통령은 이날 집권 통일국민당(UNP)을 이끌고 노동절 퍼레이드에 참여해 행진하던 중 폭탄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이날 발생한 테러로 대통령의 개인경호원 등 3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60여명이 부상했다. 목격자들과 경찰은 폭탄을 몸에 부착한 자살 테러범이 대통령 일행에 접근하는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대통령 피살사건으로 스리랑카 전역에 무기한 통금령이 선포됐고, 수도 콜롬보 일대에 군이 배치됐다. 68세인 프레마다사 대통령은 10년 간 총리를 역임한 뒤 1988년 12월 대통령에 당선, 1989년 대통령 취임 이후 끝없이 정치적 위협에 시달려왔다. 프레마다사 대통령은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데다 지칠 줄 모르는 추진력과 천성적으로 예리한 판단력의 소유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지난 195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좌익계의 거물 인사와 싸워 패한 뒤 1977년 주니우스 자예와르데네 대통령 집권당시 실권이 없는 총리직을 맡아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대대로 가난에 찌든 지방주민들을 위한 1백만 가구의 주택 건설과 빈민들을 위한 구호정책의 실시로 주로 지방과 하류층을 중심으로 지지 기반을 쌓아왔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 장관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적용, 자신의 사전허락 없이는 해외 여행까지 함부로 할 수 없도록 했으며 장관의 임명을 임의대로 행하는 등 다소 독선적인 통치로 많은 정적들을 만들어왔다.
1990년 불교방송(BBC) 개국
1989년 서울교대 휴교령
문교부는 1989년 5월 1일 학내분규로 47일째 시위하고 있는 서울교육대학에 휴교령을 명령했다. 문교부가 대학에 휴교령을 내린 것은 1986년 10월 31일 인천대에 휴교령을 내린 이후 처음이다. 이에 따라 단순학교관리 업무를 제외하고는 학교기능이 이날부터 무기한 정지됐다.
문교부의 서울교대에 대한 휴교령은 교육법시행령 제68조 3항 `감독청은 특별히 급박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휴교처분을 할 수 있다` 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문교부에서는 "제2세 국민을 교육해야 할 교사를 배출하는 국립교원 양성기관에서 교수들에게까지 폭행과 폭언을 하여 교권이 유린당하고 있음은 매우 통탄스러운 일로 더 이상 인내할 수 없게 됐다"는 휴교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교대 사태는 지난 3월 15일 학생들의 기성회비 동결요구로 시작돼 학장실 점거, 분신자살, 학생들의 자치학교 개설 등으로 확대돼 왔다. 대학 당국은 이에 맞서 4월 26일 "4월 29일까지 학교를 정상화하지 못할 경우 법적조치를 강구하겠다"는 내용의 계고장을 발송한 바 있다.
1989년 로드리게스 파라과이 대통령에 당선
1989년 5월 1일 실시된 파라과이 대통령 선거에서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장군이 당선됐다. 로드리게스 장군은 1989년 2월 수백명의 희생자를 낸 쿠데타로 사돈 지간이기도한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를 권좌에서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했었다. 로드리게스는 이에 앞서 지난 수년간 스트로에스네르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7번에 걸친 명목상의 선거를 통해 34년간 강압통치를 펴온 스트로에스네르 밑에서 파라과이 제2인자의 지위를 누려왔었다.
로드리게스는 쿠데타 성공 직후 `수정같이 맑고 투명한` 총선실시를 공약하면서 육군내의 스트로에네르 지지자들을 축출하고, 집권당인 콜로라도당을 재규합,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합법화 된 이번 선거에서 당선됨으로써 파라과이 최고의 갑부임과 동시에 최고권력도 공식 인정받게 됐다. 로드리게스는 빈한한 농촌 가정출신이지만 현재는 파라과이 최대의 외국환전소, 광대한 농장, 대형화물차 운송회사, 항공화물회사, 각종 수출입회사에 대한 이권, 양조장 등 막대한 재산을 자랑하고 있다.
그는 사탕수수 줄기의 껍질을 벗기는 가난한 생활을 하다가 1942년 17세의 나이로 아순시온의 사관학교에 입학, 4년 뒤 기갑병과 소위로 입관한 뒤 1961년 제1기갑사단 사령관직에까지 오르고 이어 1970년 소장으로 진급, 1982년 제1군단장이 되는 등 출세길을 밟아 왔다.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총재 김영삼)
1985년 제22회 법의 날
1984년 서울대공원 개장
서울대공원이 1984년 5월 1일 과천에 조성된 서울대공원이 개장했다. 이날 개원식에는 전두환 대통령 내외를 비롯, 정부인사와 서울시 관계자, 각계인사, 시민, 학생 등 1천2백여명이 참석했다. 육군군악대의 주악으로 시작된 개원식에서 전 대통령내외는 안상영 서울종합건설본부장으로부터 공원현황을 보고받은 뒤 개원식에 초청된 서울시내 어린이 4백여명과 함께 큰물새우리 해양동물관 맹수사육장 등을 약 40분간 돌아보았다.
서울시는 이날 오후2시부터 가장행렬, 씨름, 그네뛰기 등 개원축하행사를 가졌으며, 남녀고교생 6백 80명이 참가한 가운데 지하철 2호선 서초역을 출발, 대공원입구까지 10km구간의 단축마라톤도 있었다. 오후 6시부터 2시간동안 대공원호수앞광장에서는 인기연예인들이 출연한 경축쇼가 있었다. 총공사비 9백85억원을 투입, 착공 5년7개월 만에 우선 1단계로 문을 연 대공원동물원들은 4백31종 4천61마리의 동물을 수용하고 있으며, 면적만도 창경원의 16배인 87만평규모에 달했다.
1983년 슐츠 미국 국무장관 동베이루트 미국 대사관서 피격 모면
1982년 영국 아르헨티나 개전
1981년 정부, 1982년부터 교육세 신설 발표
정부가 1981년 5월 1일에 교육세를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콩나물 교실, 2부제 수업 등 열악한 교육환경의 개선이라는 `명분`과 조세부담의 가중이라는 `현실`사이의 진통 끝에 교육세가 신설됐다.
교육세 신설 문제는 거의 1년 내내 사회의 쟁점이 되어 찬반이 엇갈렸고 끝내 재산세에 대한 부가징수방안이 철회되는 등 진통을 거듭했었다. 담배 술 이자 및 배당소득 등에 과세되어 이듬해에 2천3백80억원을 징수하는 등 5년동안 모두 1조5천억원이 거두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1981년 공직자윤리법안 의결
1980년 팔레스타인 자치문제 타개 위한 미국 이집트 이스라엘 3국회담 개막
1978년 남산 3호터널 개통
1973년 미국 상하원 워터게이트사건 수사를 위한 특별검찰관 임명요구 결의안 가결
1973년 닉슨-브란트 1차 회담
1970년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태자 영왕(영친왕) 이은 사망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태자 영왕(영친왕)이 1970년 5월 1일 서울에서 향년 73세로 별세했다. 이름은 은(垠)으로 고종의 일곱번째 아들이며 순종 황제의 이복 동생이다. 1900년에 영왕(英王)에 책봉되었다가 1907년 황태자로 책립되었으나 그 해 12월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11세의 나이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다.
영왕은 한국에 이미 약혼자가 내정되어 있었으나 일본 왕실의 마사코(方子ㆍ이방자)를 비로 맞았다. 1910년 한일합병으로 순종황제가 폐위되자 황태자에서 왕세자로 불렸다. 일본의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을 졸업해 중장까지 진급한 그는 해방후 귀국을 시도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로 조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일본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내다가 1963년 11월, 56년 만에 환국할 수 있었다. 귀국 후에도 7여년 동안 병상에서 지내다가 1970년 오늘 한많은 일생을 마쳤다. 미망인 이방자 여사는 창덕궁 낙선재를 지키다 1989년 4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1970년 미군 캄보디아 침공
시아누크 실각으로 좌경화된 캄보디아의 공산군성역을 소탕하기 위해 닉슨 미 대통령이 1970년 5월 1일 미군의 캄보디아 진공을 명령했다.
닉슨 대통령은 미군 전투부대를 캄보디아 내에 있는 공산군 은신처를 공격하도록 캄보디아로 파견했다고 발표했다.
전국에 방송된 TV 연설에서 닉슨 대통령은 "캄보디아를 침입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전쟁의 빠른 종결과 미군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월남전쟁의 필요한 확대라고 말했다.
공산군 수용 지역인 사이공 북서쪽 80km 지점으로 월남쪽으로 돌출된 부분을 공격하기 위해 수천명의 미군이 캄보디아 국경을 넘어갔다.
닉슨 대통령의 이 조치는 반전주의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을 일으켰고, 미 국민은 물론 전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미군은 두달후인 6월 29일 캄보디아에서 철수했다.
1962년 프랑스. 사하라사막서 첫 지하 핵실험
1962년 해양경찰대 발족
1961년 중국-캄보디아 우호불가침조약 체결
1961년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 사회주의 공화국 선언
1960년 미국 정찰기 U2, 소련 상공에서 피격
소련 상공을 침범한 미국 정찰기 `U2기`가 1960년 5월1일 오전 7시30분경, 소련 우랄산맥 상공 2만m에서 격추됐다.
소련 수상 흐루시초프가 오전5시에 U2기의 영공침입을 보고받고 격추를 지시한 뒤였다. 소련은 그동안 U2기의 영공침범에 대해 수차례 항의했지만 미국은 1956년 7월 이후 줄곧 소련 전역을 정찰하고서도 이 사실을 부인해 왔다.
소련은 내심 분통을 터뜨렸지만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데다 아직 요격기나 요격 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해 속으로만 끙끙앓고 있었다.
U2기는 최대상승고도 2만7400m에 속도는 마하 0.7의 제원을 갖고 있는, 록히드사가 극비리에 개발한 첨단 첩보기다.
목표지 상공에서는 제트엔진을 정지시켜 소리를 내지않고도 정찰비행이 가능하고, 광선 반사를 막기 위해 기체 전체를 검은색으로 뒤덮어 `검은 스파이기`라고도 불렸다.
이날 격추된 U2기는 파키스탄의 페샤와르를 발진해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어 소련 영토를 가로지른 후 노르웨이에 기착할 예정이었다.
조종사 게리 파워스는 기체가 피격되면 기체를 파괴해야 하는 원칙을 지키지 않고 낙하산으로 탈출했다.
자살용 독약도 사용하지 않고 체포돼 결국 미 CIA의 정찰기라는 사실을 자백하고 말았다.
미국은 이 사실도 모른 채 기상관측기가 실종됐다고 둘러대다가 흐루시초프가 증거를 들이대자 그제서야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5월 17일 예정된 동서 4개국 정상회담이 연기되는 바람에 1년 전 흐루시초프가 방미때 제창한 `평화공존` 무드도 일거에 물거품이 됐다.
10년형을 선고받은 조종사는 1962년 2월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과 독일 그리니케 다리에서 교환됐다.
1956년 농업은행 발족
1956년 일본 미나마타만에서 미나마타병 발생 첫 보고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 있는 신일본질소 미나마타공장 부속병원 원장이 미나마타보건소에 `원인불명의 중추신경질환이 빈발하고 있다"고 1956년 5월 1일 보고했다. 이것이 후에 사회적인 문제로 된 미나마타 공해문제의 첫 발단이다. 구마모토대 의학부는 그 원인이 구마모토시에 있는 신일본질소 미나마타 공장의 폐수에 함유된 유기수은이 어류를 매개로 해 인체에 들어와 중독을 일으킨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1965년에는 니이가타현 아가노가와 하류에서 같은 유기수은중독에 의한 제2의 미나마타병이 발생, 669명이 중독증상을 보이고 55명이 사망했다. 미나마타병 환자동맹은 신일본질소 사장과 공장장을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살해 혐의로 고소, 1979년 구마모토 재판소는 유죄판결을 내렸다.
1953년 미국 국무성서 한국전 공산측 포로중 송환거부자는 48,000여명 이라고 발표
1952년 일본, `피의 메이데이`
미일강화조약이 발효된 후 처음 맞는 메이데이(노동절)인 1952년 5월 1일.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는 행사를 `인민광장`이라 불리는 황궁앞 광장에서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불상사 발생을 이유로 사용을 금지시키자 행사장을 명치신궁 근처로 옮겨 개최했다. 집회는 40여만명이 모인가운데 성황리에 끝났다. 참가자들은 집회가 끝나고도 가두행진을 계속했다.
해산지점의 한 곳인 히비야공원에 시위대가 모이자 이들 가운데 수천명이 `인민광장 탈환`을 외치며 황궁앞 광장으로 이동했다. 시위대가 이중교 앞에 도착해 집회를 열려하자 황궁 주위를 지키던 5천여명의 경찰들이 이들의 집회를 제지했다. 최루탄과 플래카드가 난무하는 대혼란의 와중에 돌연 경찰이 발포하기 시작했다. 2명이 사망하고 1천500여명이 부상해 일본에서는 이날을 `피의 메이데이`라고 부른다.
체포된 사람만 1232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261명이 소요죄로 기소되었지만 이들 전원이 무죄로 확정될 때까지는 자그만치 20년의 세월이 흘러야했다.
1949년 첫 전국 인구조사 실시 (남한인구 2,018만명)
제1회 전국인구조사가 1949년 5월 1일 전국적으로 실시됐다. 조사결과 총인구는 2천18만명이었다. 남자는 1천20만명, 여자는 9백98만명으로 성비는 102 대 100명이었다. 경북과 경남이 각각 320만, 313만명으로 가장 많았고 제주와 충북이 각각 25만명, 114만명으로 가장 적었다. 서울 인구는 144만명이었다. 그해 7월 유엔 세계경제보고에 의하면 세계인구는 23억 2천이었다. 인구조사에 즈음해 조선일보에는 `당당한 우리한국 정확한 인구로 자랑하자!`는 독려 포스터가 실려 눈길을 끌었다
1948년 미소라 히바리 가수 데뷔
1948년 재판 3심제 실시
1947년 내몽고자치공화국 수립
1946년 메이데이 제60주년 기념대회 개최
1946년 국방경비대 사관학교 창설
1945년 나치 선전상 괴벨스, 가족과 동반자살
1945년 5월 1일, 2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끝나갈 무렵 베를린이 포위된 가운데 요제프 괴벨스가 자살했다. 아내와 6명의 자녀를 먼저 권총으로 죽인 뒤였다.
괴벨스는 히틀러를 만나기 전까지 나치주의자도 반유대주의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괴벨스는 1922년 6월 히틀러를 처음만난 뒤 곧 그에게 빠져들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독일문헌학으로 막 학사학위를 받은 뒤였다.
괴벨스는 빠르게 히틀러의 사람으로 변신해 갔고, 히틀러는 그를 중용했다. 괴벨스는 히틀러를 총통으로 만들기 위해 선전, 선동과 조작된 여론으로 대중을 나치즘으로 끌어들였다.
1933년 1월 마침내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자 괴벨스는 내각선전상 겸 제3제국 문화원장에 임명됐다. 괴벨스는 선전 전문가로서의 동물적 후각으로 당시 새로운 전파수단으로 떠오른 라디오를 적극 활용했다. 또한 그는 영화에도 손을 뻗쳐 대중들을 전체주의로 끌어들였다.
괴벨스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와 아프리카에서 패배해 전세가 역전되던 순간이였다. 신문과 라디오를 이용한 선전활동을 강화했고, 나치 간부들이 지하벙커와 요새로 숨어든 뒤에도 끊임없이 대중 앞에 다가섰다. 하지만 이미 전쟁은 막바지로 접어든 뒤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 폐간
1936년 경부선 복선화
1935년 레니 리펜슈탈, 영화 `의지의 승리`로 국가대상 수상
1935년 5월 1일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에서 개막된 독일제국 문화원식전에서 영화 `의지의 승리` 감독 레니 리펜슈탈이 선전상 괴벨스로부터 국가대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1934년 9월에 뉘른베르크에서 개최된 나치당 전당대회를 기록한 것으로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는 국민투표로 압승한 히틀러가 나치스의 위세를 내외에 과시하고자 개최한 것이다.
`의지의 승리`는 나치스의 찬미작품이라는 비판과 관계없이 7월의 파리 국제예술박람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사상적으로는 부도덕하지만 이 작품의 예술적인 면에서 관객은 감탄한다"고 평가했다.
1924년 그리스 공화제 선언
1922년 소파 방정환, 매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제정
1919년의 3.1독립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1923년 방전환을 포함한 일본 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주축이 되어 5월1일을 어린이날로 정했다
1927년에 5월 첫 월요일로 바뀌었다가 1946년에 5월 5일로 바뀌었다
1961년 정부는 아동복지법을 제정, 공포했는데 5월5일을 어린이날로 정했다
1973년에는 기념일로 지정했다가 1975년부터 공휴일로 제정했다
방정환 등 색동회 중심으로 처음 어린이날이 정해진 것은 5월 1일
1918년 조선임야조사 시작
1915년 제주군과 울릉군을 제주도, 울릉도로 개칭
1914년 원세개, 중화민국약법 제정
1910년 경원선, 호남선 착공
1906년 프랑스 파리서 20만인 파업. 계엄선포
1906년 휘문의숙 설립 (민영휘)
1905년 급행열차 첫 운행, 서울-초량간 14시간.
1904년 체코 작곡가 드로브작 사망
1903년 민속학자, 철학자 임석재 출생
1900년 일본, 동경에 전차 운전 개시
1890년 제1회 국제메이데이 행진 실시
1886년 미국 메이데이 제정
1873년 탐험가 리빙스턴 사망
1851년 세계최초의 만국박람회 개최
1844년 미국 모르스 볼티모어 워싱턴간 전신 타전 성공
1819년 프랑스 언론자유 인정
1707년 영국-스코틀랜드 합병
1700년 영국의 시인, 문학비평가 드라이든 사망
1415년 조선, 일식 발생
1127년 송의 고종, 남경에서 즉위 (국명은 남송)
1091년 고려, 일식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