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조아 마침내 써내는 신중함의 극치...'Artificial Intelligence'

[Dr. Hannibal "The Cannibal" Lecter]

이미 오래전에 영화 <인공지능>에 대한 평은 쓸까 말까의 고민 속에 결국 주저앉게 되었다. 흡사 큐브릭 감독이 제작을 고심하던 것과 마찬가지로...이렇게 써놓으면 뭔가 있을 법한 큰 평이 나오겠지만 그래봐야 허접떼기 평에 불과함을 미리 밝혀둔다.

<인공지능>은 단 한가지 사실에 집중되어 있기에 그 점만 분석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평이 되리라 믿는다. 그것은 바로 만인의 영화팬들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스필버그 감독과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조우일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흥행사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작가정신의 결정판이라고 불리우는 완벽주의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만남은 그 시작부터 의미심장하기 그지없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이 두사람의 만남이 표면화 된 것은 바로 지난 99년 아카데미 시상식 때 일것이다. 큐브릭을 추모하는 식순을 바로 스필버그가 소개하게 된 것. 이 어울리지 않는 오묘한 만남은 기실 스필버그가 <인디아나 존스>를 만들 당시부터 꾸준하게 이어져오던 끈이었다. 스필버그와 큐브릭은 특수효과 부문에서 - 그럼 그렇지. 두사람의 정신세계가 교류했을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 꽤나 많은 의견을 주고 받았으며 이 후에도 두사람은 많은 친분을 쌓아왔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풀 메탈 자켓>, <샤이닝> 등에서 보여준 작가정신(냉소와 객관적 시각으로 멀찌감치 떨어진...)으로 이미 충분히 화제가 된 큐브릭 감독의 야심찬 21세기 PLAN은 <아이즈 와이드 샷>을 거쳐 <인공지능>으로 직결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98년 큐브릭 감독의 사후, <아이즈 와이드 샷>을 끝으로 물거품이 된 이 프로젝트 <인공지능>은 시대의 흥행사 스필버그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자, 여기까진 영화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였고 이제 영화에 관해 얘기를 넘겨야겠다.

이 영화에서 충분히 화제를 모을만한 일은 먼저 스탠리 큐브릭이 스케치만을 했던 작품을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 및 각본 - 그가 직접 연출과 각본/스크립트를 맡은 경우는 <슈가랜드...> 이 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 을 도맡으며 제작되었다. 거기에 촬영은 스필버그의 뜻을 가장 잘 살린다는 촬영감독 야누스 카민스키가 맡게 되었다.

큐브릭 감독의 시각에서 해석되었다면 분명 처절하도록 잔인하고 냉정한 눈썰미로 해석되었을 21세기의 미래상은 스필버그에 의해 철저하게 바꾸어지고 있다. 스필버그는 큐브릭이라면 이렇게 했을법한 부분을 결국 자신의 스타일로 바꾸어 버리고 섹스와 폭력이 예상되는 부분은 가벼운 그만의 텃치와 장식으로 꾸며 없애(?)버리고 만다.

그래도 <인공지능>에는 분명 큐브릭의 숨결이 살아있다. 어떤 일간지에서 말하기를, 스필버그가 큐브릭의 그림자를 밟지않게 조심한 흔적이 역력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스필버그는 큐브릭의 스케치를 고스란히 차용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미 여러작품에서 보여준 큐브릭의 환상적인 화면 연출은 <인공지능>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여러 화면은 큐브릭이 보여줬던 지난날 환상적 분위기를 그대로 답습하며 - 물론 시대에 맞게 기술적인 진보가 있다. - 큐브릭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쯤되면 눈치 빠른 영화인들은 그렇다면 이 영화가 스필버그의 영화냐? 아니면 큐브릭의 영화냐? 라고 반문할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문제가 지적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스필버그의 영화도, 큐브릭의 영화도 아닌 애매모호한 영화로 길을 잃고 만다. 굳이 따지자면 결말부에서 스필버그가 보여준 동화적 연출로 이 영화는 스필버그의 영화다라고 판단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또 그렇게 결론 짓기에는 영화가 큐브릭의 그늘을 벗어나질 못했다.

단순하게 이분하자면 큐브릭이 보여준 비관적 측면(<풀 메탈 자켓>이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과 스필버그가 늘상 추구하던 휴머니즘과 해피엔딩(<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쉰들러 리스트>, <칼라 퍼플>)의 만남이 <인공지능>이란 말인데...어색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단순히 영화를 두사람의 특징을 두고 해석할 경우 이런 실망스런결론이 나온다는 것 뿐. 보시다시피 이 영화는 나쁘지 않다. 두사람의 기량이 다소 과소평가당한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분명 볼만한 작품이다. 큐브릭의 스케치나 스필버그의 얘깃거리나 둘다 놓치면 아깝기에 남기는 말이다.

존경해마지 않는 두 거장의 작품은 존경할 만한 작품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사족... <인공지능>이 내년 아카데미 후보로 예상된다면 너무 시기상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