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향교(江陵鄕校)<1>
홍살문(紅箭門) / 보물지정(寶物指定) 안내 비석 / 명륜문화관(明倫文化館)
2021년, 모처럼 고향 강릉을 내려갈 일이 있어 큰 맘 먹고 강릉향교를 방문하고자 하였는데 고맙게도 강릉향교 장의(掌儀)를 역임하였던 고교동기 최맹규(전 초등학교 교장) 친구의 안내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골고루 돌아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유도회장(儒道會長)을 맡고 있는 어기식(魚奇植)회장님께서 자세한 설명까지 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강릉역 뒤편 화부산(花浮山) 자락을 들어서면 홍살문(紅箭門)이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교문이 보이며, 왼쪽 기둥에는 강릉명륜(明倫)고등학교, 오른쪽에는 강릉향교(江陵鄕校)라 명패가 붙어있다.
홍살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곧바로 운동장과 잇닿아 명륜고등학교 건물이 마주보이고 오른쪽 담장 앞에는 보물로 지정된 내력을 기록한 강릉향교의 비석들이 보인다. 오른쪽 뒤의 건물이 명륜문화관(明倫文化館)으로 향교 관리사무실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옆에는 전통혼례를 치르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강릉시 교동(校洞) 화부산(花浮山) 자락에 있는 강릉향교(江陵鄕校)는 전남(全南)의 나주향교(羅州鄕校), 장수향교(長水鄕校)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향교(三大鄕校)로 꼽는다.
강릉향교 전경 / 대성전(大成殿)
우리나라 3대 향교 중에서도 강릉향교가 단연 최고로 꼽히는데 강릉향교는 고려(高麗) 충선왕(忠宣王) 5년(1313년)에 최초로 설립되었고 이후 조선 태종(太宗) 11년(1411년)에 화재를 만나 전소(全燒)되지만 2년 후 재건되었고, 조선 성종(成宗) 17년(1486년)에 확장중건(擴張重建)되었다고 한다.
이 후, 35회에 걸쳐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하는 유서(由緖) 깊은 향교이다.
건물의 배치를 살펴보면, 맨 안쪽에 공자님의 위패와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大成殿)이 있고 좌우에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그리고 바로 앞에는 내삼문(內三門)의 옛 모습인 전랑(殿廊)이 막아서 있다.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도 원래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던 곳이었으나 한국유림회의 결정으로 중국성현은 5성 18현(五聖十八賢)을 제외하고 모두 매안(埋安:땅에 묻음)하기로 결정한 후 대부분 비어있는 곳이다.
전랑(殿廊)의 아래에는 작은 뜰이 있는데 좌우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고 그 앞에 기다란 명륜당(明倫堂)이 있으며, 서재(西齋) 뒤에는 육고·주고(肉庫·酒庫)와 재방(齊房)이 있고, 반대편의 동재(東齋) 뒤에는 향교를 관리하는 명륜문화관(明倫文化館)이 들어서 있는 구조이다.
동무(東廡-58位 봉안) / 서무(西廡-57位 봉안)
대성전(大成殿)의 현판을 보면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로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명시된 형식이라고 하며, 기둥도 배흘림형식의 금강송(金剛松)으로, 주춧돌 위는 흰색, 중간은 검은색, 상부는 붉은 색으로 칠한 모습이 이채로운데 대성전 좌우의 동무(東廡), 서무(西廡), 뜰 앞의 전랑(殿廊)도 모두 같은 제향(祭享)공간이라 하여 기둥의 형식이 모두 똑같다.
특이한 것 중의 하나가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의 창(窓)은 창살이 안으로 휘어진 사롱창(斜籠窓)으로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건축기법이라고 어기식(魚奇植) 유도회장(儒道會長)께서 직접 설명을 해 주셨다. 우리나라 향교들 중에서 이런 고려시대의 건축기법이 남아 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한다.
내삼문(內三門) 형식의 예전 모습인 강릉향교의 전랑(殿廊)은 가운데 작은 문이 하나있고 기다란 복도(廊下)가 있는데 뒤편으로 나가 올려다보면 높다란 기둥을 세워 누각(樓閣)처럼 보인다.
사롱창(斜籠窓) / 전랑(殿廊)<내삼문(內三門) 이전의 형식>
명륜당(明倫堂) / 명륜당 회랑(回廊)과 서재(西齋)
명륜당은 유생들을 가르치던 교육공간으로, 전면 11칸인데 내부 면적이 60평이 넘어 우리나라 향교들 중에서 가장 넓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는 남루(南樓)라고 하여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바깥에서 보면 이 또한 높다란 기둥이 받치고 있어 정말 누각(樓閣)처럼 보인다.
안쪽의 마당을 중심으로, 양반 자제들이 기거하던 동재(東齋)와 일반 서민 자제들이 기거하던 서재(西齋)가 마주보고 있는데 이곳은 위의 제향(祭享)공간과 구별되는 강학(講學)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