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외로움과 고독의 극복
자연은 온갖 상징적인 비유(譬喩)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시인들은 자연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자연의 웃음소리를 듣고 또 그들의 흐느낌을 가슴으로 느끼기도 한다.
그러므로 시인들이 자연을 소재로 삼고 자연의 시를 읊어 나갈 때 그것은 곧 시인들이
자연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자연의 목소리는 모두 우리 인간들에게 들려주는 목소리요, 그래서 이 이야기들을
전하는 자연의 시는 곧 우리 인간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비유 중에서 가장 솔직하게 우리 인간의 슬픔을 말해주는 비유는 가을날
흩날리는 나뭇잎들이다.
우리는 이제 먼 날 저 신라의 고을에 죽음을 슬퍼하고 인생의 허무를 시와 노래로 달래다가
가버린 월명사(月明師)를 상기해보기로 하자.
죽고 사는 길은/ 이에 있음에 저어하고/ 나는 간다고/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서 나서/ 가는 곳 모르누나/
아 미타찰(彌陁刹)에서 만나고저/ 내 도(道)닦아 기다리련다.
시인 월명사는 누구보다도 향가(鄕歌)에 능한 시인이었다. 향가는 우리말이다.
우리말을 적었다. 순수한 우리말로 엮어진 서정시, 이젠 아쉽게도 그의 값비싼 작품들이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희귀한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 가슴을
울려준다. 사람은 모두 한 번 나면 다시 죽음의 길로 떠나야 하는 것, 더구나 죽음은 항상
예고 없이 다가온다. 아무도 자기의 죽을 날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어느 때인가, 자기 생(生)이
다했을 때 그는 홀연히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한다.
그의 누이동생은 「나는 간다고 말 한마디 이르지 못하고」 어느 날 홀연히 세상을 떠나버렸다.
이렇게 가버린 누이를 생각하며 그는 낙엽을 이야기했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흩어지는 나뭇잎처럼 이별의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영원히 작별해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생 허무가 있고
부조리(不條理)가 있다. 그리고 절망적인 고독이 있다.
이런 허무와 부조리와 고독의 외딴 자리에서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
결국, 이러한 인간의 운명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의 신앙만이
그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그런 인간 존재를 초극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누이에게 긴긴날의 어려운 약속을 해야 하였다.
「아, 미타찰(彌陁刹)에서 만나고저 내 도(道) 닦아 기다리겠노라」라고.
그는 결국 종교적인 세계로 귀의하여 그의 외로움을 달랬다.
또한, 그는 자기 모든 슬픔과 외로움을 달랠 방법이 종교적인 신앙만이었을까? 우리가 외로움을
달래며 고독한 인간 존재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는 시를 잘 썼다.
지금까지 역사에 그 이름이 남도록 그는 향가에 능했었다. 어떻게 그가 시에 능했다는 것은
그의 타고난 재주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든 진실한 시인이 그런 것처럼 그는 쓰지 않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외로움 때문에 마냥 시로써 나약한 자신의 기둥을 지탱했을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