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인각사 (軍威 麟角寺)
대한불교조계종 제 10교구 은해사 말사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삼국유사로 250 /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북리 612
대구광역시 군위군은 2023년 7월 1일부로 대구시로 편입되였고
삼국유사면(三國遺事面)은 원래 의흥군에 속하였고 1914년 고려 고로곡 부곡(古老谷部曲)의
이름을 따 고로면이라 하고 군위군에 편입되었다.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으로 알려진 인각사가 위치한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2021년 1월 삼국유사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인각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642)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로,
절 입구에 있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에 기린이 뿔을 얹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인각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고려시대 충렬왕 때 보각국사로 책봉된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입적한 곳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군위 인각사지(사적 제374호)에는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보물 제428호),
군위 인각사 석불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9호),
군위 인각사 미륵당 석불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6호)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인각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불
군위 인각사 삼층석탑(軍威 麟角寺 三層石塔)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북리 화산(해발 828m)의 서북쪽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인각사에 있는 삼층석탑.
현재 지면상에 노출된 것은 기단의 상대갑석부터인데,
탑의 양식은 전형적인 신라탑의 양식을 이어 받은 삼층석탑으로 보기 드물게 상륜부 일부가 남아 있다.
지표면 위에 노출되어 있는 상대기단의 갑석은 2매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툼한 부채꼴 모양의 받침에 얕은 사각형의 받침이 겹쳐져 있는 이중의 탑신 괴임대가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옥신의 체감비율과 어울리게 줄어들고 있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전체가 4단으로 되어 있으며, 모서리의 선은 많이 둥글려져 있다.
3층의 옥개석 위에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 앙화(仰花) 등이 차례로 놓여 있다.
그 위에 보륜(寶輪)이 얹혀져 있는데 앙화와 마찬가지로 문양이 많이 마멸되어 있다.
보륜의 위에는 불꽃 모양의 장식물이 이어져 있는데, 상륜부의 다른 부재에 비해서 석질이 달라 원래 탑재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기단의 우주하단에 있는 재목을 서로 이을 때 쓰는 나뭇조각 자국이나 갑석과 면석이 이완되면서 보이는 적심석을 볼 때
한번 해체되었다가 조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탑의 양식은 전형적인 신라탑 양식을 이어받은 삼층석탑으로 보기 드물게 상륜부가 남아 있어 양식과 구조연구에 중요하다.
또한 이 탑의 제1탑신석이 제2탑신석보다 높이의 비례가 크고, 옥개석의 옥개받침이 4단인 점 등을 볼 때
고려전기의 양식을 따르는 것으로 생각되어 나말선초 석탑의 편년 연구에 있어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군위 인각사 미륵당 석불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6호)
학소대와 인각사 전경
현존하는 보각국사비는 점판암(粘板岩)의 석재로 손상이 심하다.
비신의 높이는 1.8m, 너비 1.06m, 자경 약 1.8㎝로 행서이다. 자체는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집자하여 새겼다.
글자는 비신의 전면에 150여 자가 남았고, 비음(碑陰: 비의 뒷면)에는 100여 자가 현존한다.
비문은 월정사 소장의 사본에 의하여 이미 알려져 있었으나 근래 탁본의 전문이 발견되었다.
비문에 의하여 비를 세운 시기는 1295년(충렬왕 21)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부도의 건립 역시 그가 입적한 해인 1289년에서 1295년 사이로 짐작된다.
이같은 시기는 부도 자체의 양식과도 부합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보각국사 정조지탑(普覺國師 靜照之塔)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의 부도
본래 이 부도와 비는 사역(寺域)으로부터 약 1㎞거리의 마을 뒷산에 위치하는 이른바 부도골[浮屠谷] 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곳에는 민묘(民墓)가 설치되어 있으나, 원래 한말에 일본인의 사리 절취로 인하여
부도가 무너졌다고 전한다. 부도는 그 뒤 1962년 면사무소에서 이전하였다.
부도는 자연석으로 된 지대석(地臺石) 위에 8각의 하대석(下臺石)을 놓았는데, 상면은 급한 경사를 이루었고,
그 중앙에는 8각의 낮은 굄을 나타냈으며, 이 굄과 연이어서 작은 연화(蓮花)를 조각하였다.
그 위의 중석 역시 8각이며, 각 면에는 넓은 구획을 마련하고 그 내부에 동물상을 조각하였으나 뚜렷하지 않다.
상대석 역시 8각이지만 원형에 가깝고, 그 밑에서부터 단조롭고 소박한 연화문을 선각으로 나타냈다.
8각의 탑신 전면 광곽(框郭)내에 ‘보각국사정조지탑(普覺國師靜照之塔)’이라는 자경 6㎝의 해서로 탑명을 새겼다.
후면에는 문비(門扉)가 새겨졌으며, 나머지 6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과 연화좌 위의 보살입상을
돋을새김하였다. 사리공은 탑신 상면에 마련되었고, 8각 옥개석(屋蓋石) 밑에는 낮은 받침이 있으며,
두꺼운 추녀 밑은 전각(轉角)에 이르러 위로 느리게 반전(反轉)되었다.
낙수면(落水面)은 급한 편이며, 여덟 가닥의 우동(隅棟: 옥개석의 귀마루)이 내려온 끝부분에 단조로운 귀꽃을
조각하였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보개(寶蓋)가 있고, 그 위에 앙련(仰蓮)과 화염문(火焰文)을 새긴 보주(寶珠)가
1석으로 마련되었다. 부도의 형식은 팔각원당(八角圓堂)의 기본형식을 취하였으나, 조각수법과 함께 형태가 둔중하다.
인각사지 출토 석조유구
인각사지 출토 석조유구
인각사지 승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