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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들. 그리고 소중한 친구.<프렌즈>*
"하영아, 나왔어."
"나두 왔다-0-"
문틈에 깜찍하게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하는 저 두 사람.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런 짓을 할 수 없다고 말 하고 싶다.
"문 확 닫아 버리기 전에 들어와라."
인상을 쓰며 내가 말하자 쪼르르 병실 안으로 들어오는 사천이와 여울이.
"우와-너 머리 진짜 크다."
사천이가 붕대로 칭칭 감겨져 있는 내 머리를 손으로 꾸욱_찌르며 하는 말.
왜, 왜! 그렇게 찌르는 것이야!
"절로 치우지 그러니?"
가뜩이나 지끈거리는 머리를 힘을 주어 눌렀으니 신경에
거슬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내 머리가 크면 네 머리는 수박이란 말이냐.
사천이는 내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놓치지 않고 손가락을 안으로 쥐었다.
"아, 맞다. 하영아. 오늘 학교에서 정말 장난 아니었어."
여울이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손 벽을 치며 말한다.
"왜? 무슨 일 있었어?"
"기한이가 기희경 교실에서 밟고 장난 아니었거든. 기희경 얼굴 망가지고
나중엔 기절까지 했다니까!"
얼마나 때렸는지..알 거 같다.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괜찮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왜 나쁜 일은 너가 다 하니..
"맞아! 그래서 기한이 학생과로 끌려갔어."
사천이의 그 말에..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학..생과..? 나 때문에..?
"뭐? 학생과?"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사천이에게 물어본다.
사천이는 말하면 안 될 걸 말했다는 듯이 손으로 입을 가린다.
"빨리 말해. 어차피 들었으니까."
"..이씨..기한이가 말하지 말라 그랬는데.."
"빨리!"
"기희경 때리다가 지나가다 보라돌이한테 걸렸지 뭐야. 게다가 저번 수업시간에
대든 것도 있고 해서 감정이 많이 상했는지 기한이 데리고 학생과로 끌고 갔어."
사천이는 내가 소리를 지르자 꼬리를 내리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 말은 날 더욱더 죄스럽게 만들었다.
나 때문에 왜 니가 나쁜 거 다하는데..아픈 건..니가 다하는데..
넌..나와는 달리 착한 애잖아..
"우와-여기 먹을 거 진짜 많다!"
언제 냉장고 앞으로 달려갔는지 냉장과를 뒤지며 감탄을 하는 사천이.
그리곤 음료수 세트를 열더니 마치 자기 것인 마냥
나와 여울이에게 나누어준다.
"마셔. 많이 아프지?"
"너만 없으면 아프지 않을 거 같다."
사천이 준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 있는데 지금 사천이 놈 뭐하는 짓인가.
냉장고에 있는 먹을 걸 다 꺼내가고 있다. 이런 몹쓸 놈.
"뭐하는 짓이냐."
"나눠 먹자."
"내려놓고 얼른 병실에서 나가거라."
"쳇!!!치사하다!"
내 위협적인 목소리에 사천이는 꺼냈던 음식을
그대로 놓고 병실을 나가버린다.
하지만 뒤에 숨긴 봉봉을 나는 보았단다.
사천이가 나가고 여울이도 따라나간다.
이것들은 병원에 왜 온 거야-_-^
이제 쉬어야 겠다는 생각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데 또 다시 병실문이 열렸다.
사천이 놈이 들어 온 모양이다.
"쟤네들 어디 가냐?"
또 다른 목소리에 몸을 일으켜 기한이를 바라보았다.
"몰라. 저 것들은 병원에 왜 온 건지."
"큭. 근데 한 손에 들고 있는 봉봉 쪽팔리더라."
"그거 내꺼 거든?"
눈썹을 찡그리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난 시선을 선생님한테로 돌렸다.
"하영양, 몸은 좀 괜찮아요?"
"아, 네."
"이렇게 머리를 심하게 맞았는데 멀쩡한 게 신기하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머리를 조심하도록 하세요. 절대 안정입니다."
저 선생.. 그래서 내가 머리가 두 조각이라도 나야 했단 말이야-_-^
의사 선생님은 참으로 내 신경에 거슬리는 말만 하곤 나가버리셨다.
기한이 놈은 뭐가 그리 좋은지 배를 잡고 낄낄_웃어댄다. 저 망할 놈.
"웃지 마라?!"
"크크큭. 알겠어."
"그러면서 왜 자꾸 웃는데!"
"그럼 생각해봐! 멀쩡한 게 신기하대잖아! 안 웃기냐?!크큭"
어우- 저걸. 몸만 성했어도 머리 고문 한 시간동안 해 주는 건데.
난 기한이를 계속 노려보았다. 그 놈은 분위기 파악도 못한 채 계속 웃어댔다.
지끈거리는 머리 때문에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반대쪽으로 돌아 누운 채 기한이에게 말했다.
"왜 그랬냐."
"뭘? 크큭"
"..학생과 가니깐 좋디? 그냥 놔두라고 했잖아."
"..."
웃음소리가 멈춰지고 기한이 놈은 아무 말이 없다.
순간 싸늘해진 병실 안.
"그러지 말랬잖아. 바보야. 너가 왜 나 때문에 아파야 되는데..
왜 나 같은 애 때문에 나쁜 거 다하는데?!"
..정말 이기적인 난..고맙다고 말 못 할 망정..
기한이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기한이의 긴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사랑하니까."
듣지 말 걸 그랬다. 귀를 닫아 버릴 걸 그랬다.
왜 하필 그 말을 들었는지..난 귀를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친구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야. 친구니까."
기한이는 친구라 말을 빌려 사랑한 단 말을 하고 있었다.
사랑 앞엔 아무 것도 붙지 않는 건데..
그리고 난 이불을 더욱 뒤집어 쓴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려댔다.
기한이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왜 세상엔..나 보다 더 아픈 사람들이 많은 걸까.
왜 하필 그 사람이...착한 기한이 인 걸까.
우린...친구 밖에 안 되는데..친구가..제일 잘 어울리는데..
하느님은..정말 나쁘신 신이다..
.
.
.
병원에 입원한지 몇 일이 지났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따뜻해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병실을 나왔다.
밖에 나가서 뛰어 놀아야지!
그렇게 난 거의 다 낳은 팔을 위, 아래로 흔들며 병원 복도를 걷고 있었다.
팔엔 깁스를 풀었지만 머리에 두른 붕대는 아직 풀지 않았다.
머리를 많이 다쳤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다.
이렇게 큰 머리로 밖에 나가야 하다니 여간 창피한 게 아니다.
그렇게 복도를 걷고 있는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교복을 보니 우리학교 교복인데..기한인가 보다!
난 얼른 기한이한테 폴짝폴짝 뛰어갔다.
"기한아!!"
아니다..기한이가 아니었다.
바보같이 기한이라고 착각하다니..
한심한 내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치고 내 등장에 적지 않게
놀란 듯 보이는 이반이를 바라보았다..
뭐라고..말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하지..
머릿속은 이미 텅 비어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반이는 많이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그리곤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조용히 말한다.
"..뭐야."
"..미, 미안. 기한인 줄 알구..그만.."
이반이는 아무 표정 없는 얼굴을 저 쪽으로 돌려버렸다.
그렇게..나와 마주하는 것조차..싫다는 건가..
그리고 이반이는 아무 말 없이..차갑게 날 스쳐 지나간다..
아직 아무 말도 못했는데..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는데..
마지막 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있는 용기를 다 끌어내 이반이의 교복을 살짝 잡았다.
그대로 멈춰버린 이반이의 몸. 차가운 두 눈과 마주쳐 버렸다.
"..저기..괜찮으면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이반이는 아무 말 없이 옷자락에서 내 손을 빼내더니 그대로 걸어가 버린다.
무너지는 내 마음.
"..긴 시간은 안 돼."
..그렇게 이반이는 먼저 휴게실 안으로 몸을 감춰 버렸다.
72)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들. 그리고 소중한 친구.<프 렌 즈 >*
휴게실에 들어 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었지만 십 분이 지났지만..
우리 둘은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는 나.
턱을 괴고 시선을 돌려 무언가 바라보는 이반이.
"..저기..오랜만이야."
그리고 고요한 침묵을 깨고 먼저 내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시선을 돌린 채 이반이는 대답한다.
"..어."
또 이어지는 침묵 속에 이반이한테 할 말을 찾아내고 있었다.
"담임이 나 학교 안 나온다고 뭐라 그러지 않아?
매일 아침마다 조회하러 올 때 내 욕하고 그러지??"
그러다 아무렇지 않게 화제를 돌려야 겠다는 생각에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주절대고 있었다.
이반이는 내 말을 듣는 건지 날 바라보더니,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야."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내 마음을 읽어 내듯 말한다.
그리고 난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한심하게 또 눈물이 나오려고 할 게 뭐람..
"할 말 없으면 나 먼저 일어난다."
이반이는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자리에서 일어나
휴게실을 나가려고 한다.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는 이유가 뭐야..?"
고작 내가 생각 해 낸 건 아직도 그 소리.
헤어진..이유.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모든 게 아직도 꿈 같으니까.
이반이는 다시 쇼파에 몸을 앉히고 다시 내 귀에 똑똑히 새겨준다.
"너가 싫어졌다고 말했잖아."
..그래. 말했었지.
내게 헤어지자는 말을 할 때 차가운 네 목소리를 잊을 수 가 없으니까.
근데..머리로는 이해가 갔는데..아직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변하는 거라면..
차라리 죽을 때까지 사랑 같은 거 안 할걸..
왜 널 사랑하게 되어 버렸는지..너무 후회가 된다.
잊지도 못 하는 사랑을 왜 했는지..왜 하필 그게 너인지..후회가 되.
"그랬었지..그래."
"다신 그런 거 물어 보지마. 두 번 말하는 거 귀찮으니까."
"...미안..약혼한다고 그랬었나.."
"..어."
내가 잘못 들은 걸까.
대답하는 이반이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린 듯 했는데..
"...그래. 축하해.."
내가 너에게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축하한다는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올 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눈물이 나는 말인지..몰랐다.
이렇게 가슴 아픈 말 인 줄 알았으면..하지 말걸.
"..그래. 할 말 다 끝났으면 간다."
이반이는 그렇게 말하곤 휴게실을 나가버렸다.
아직 너한테 할 말 반도 못 했는데.. 아직 꺼내지도 못 했는데.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하니..
이반이의 뒷모습을 볼 용기가 없는 난 그저 고개만 숙일 뿐이다.
환자복 바지 위로 떨어지는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바보 같이 붙잡지도 못하다니..
겨우 한 다는 말이..축한다는 말이라니.
정말 병신이다. 류하영..
.
.
.
일주일 동안 병원 신세를 진 나는 오늘 퇴원을 한다.
기한이가 병원에 와서 같이 짐을 싸고 병원을 나섰다.
병원을 퇴원하는 기분이 참 묘하다.
자꾸만 자꾸만 뒤를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반이의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 자꾸 눈에 보인다.
기한이와 병원 도로에서 택시를 탔다.
택시는 금세 집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난 집 앞에서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깜짝 놀랬다.
집 앞에 선인장 화분 여러 개 가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집 앞에 놓인 선인장 화분을 누가 버렸는 줄 알고
가져갔었는데 또 놓여져 있다니 말이다.
새어보니 족히 일곱 개정도 되어 보인다.
버렸다고 하기엔 화분이 너무 많았고,
게다가 왜 우리집 앞에다만 버렸는지..좀 이상했다.
"뭐해?"
기한이가 내가 주춤하는 모습을 보더니 묻는다.
"아..아냐. 화분이 많네.."
"그러게. 매일 아침마다 놓여 있던데?"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 누군가 아침마다 가져다 놨다는 거구나.
그냥 버릴까 하다가.. 그러기엔 선인장이 너무 예뻤다.
난 기한에게 손을 빌려 선인장을 집으로 가져놓는 작업을 마쳤다.
다음 날/
오늘은 누가 화분을 가져다 놓은 건지 알아내기 위해 아침
새벽부터 일찍 일어난 나.
하지만 집 앞에 나가보니 이미 화분이 놓여져 있었다.
아마 잠이 없는 사람인 갑다.
아니면 아침에 신문 배달하는 사람일 지도..
난 화분을 들고 다시 집에 들어갔다.
"또 들고 오냐-0-"
도이가 내 손에 있는 화분을 보며 소리를 지른다.
"버릴 순 없잖아."
"버려. 버리래두. 저주의 화분이 분명해."
도이는 내 주위를 빙빙 돌며 자신이 가제트 형사라도 되는 듯
착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됐어. 저주는 무슨. 학교 갈 시간 다 됐네. 화분 버리지마!"
난 학교 갈 준비를 하며 집을 나서며 도이에게 말했다.
도이는 여전히 화분 주위를 빙빙 돌며 가제트 흉내를 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학교에 등교한 난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느라 고생을 했다.
푹신한 침대에서 놀고 먹고 하다가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는데
불편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가운 햇빛 때문에 짜증도 나 있었는데 더욱 내 신경을 거슬이
는 것은 바로 사천이 놈이었다.
내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이반이 얘기를 꺼내는 사천이 놈이다.
가뜩이나 신경 쓰여 죽겠는데 뭐 그리 할 말이 많다고 이반이 얘기를 하는지.
이런 눈치도 없는 놈.
"너 좀 가라."
"왜에-0-"
"시끄러워."
"아직 할 말 더 남았는데.."
"필요 없어. 가라."
"쳇. 후회하게 될 거야."
사천이는 두 눈을 부릅뜨고서 내게 악담을 하고서 사라졌다.
후회는 얼어죽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너와 인연을 안 끊고 살았다는 걸
제일 후회하는 사람이야. 그거 보다 더 후회하는 일은 없어!
하루종일 사천이의 따가운 눈총을 받은 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구.
눈치 없는 네 성격 잘못이야. 이 성격 장애자야=_=
사천이의 성에 못 이겨 오늘 술자리에 가야만 하는 나다.
이런 몹쓸 놈.
바로 어제 병원에서 퇴원한 친구에게 이런 몹쓸 짓을 시키다니.
넌 친구도 아니야.
이미 넌 내 친구 목록 리스트에 빠져 있지만. 후훗.
"야-0-빨리 나와."
수업이 끝나고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방문을 쾅쾅_두드리며
기한이 놈이 소리를 지른다.
"네 어디 감히 남의 집 문을 몰상식하게 두드리는 게냐."
옷을 다 갈아입은 난 녀석의 째려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빨리 가자! 빨리 알코올에 풍덩 빠지고 싶어!"
이 눈치 빠른 녀석은 알고 있었던 거야.
내 두 손이 주먹으로 쥐어지는 것을.
기한이는 내 팔을 잡아당기며 집 밖으로 나온다.
그렇게 도착한 구석에 자리잡은 허름한(?) 술집.
안에 들어가니 요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다들 고삐리 들이다.
"여기야, 여기!"
어디선가 들리는 양쪽으로 갈라지는 굉음 소리.
그리고 제발 날 부르는 소리가 아니길 바랬다.
"여기야! 기한아, 하영아!"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사천이 놈이 큰 소리로 문 앞에서 두리번대는 나와
기한이의 이름을 크게 불러댄다.
졸지에 술집 안에 있는 시선을 받게 된 나와 기한이.
쪽팔려 고개를 숙인 채 사천이 놈이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인상을 있는 대로 쓴 나와 기한이는 사천이와 여울이가 따라주는 술을
한잔씩 받아 마셨다.
"입 좀 닥쳐라. 유사천."
"왜, 왜! 입 닥치면 울 자기랑 뽀뽀 어떻게 하냐!"
그래, 내가 말은 만다.
저런 성격 장애자 놈한테 무슨 말을 하겠니.
술잔을 들이키며 딸랑_소리가 나는 문쪽 으로 시선을 돌렸다
73)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들. 그리고 소중한 친구.<프렌즈>*
「나 여자잖아. 아니라는 거 알면서 자꾸 기다리는 여자잖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문으로 들어오는 너만 보이는 거니.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움직일 수 가 없다.
"어머, 이반이네."
멍한 내게 여울이가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조심스럽게 말한다.
술집으로 들어와 하필이면 왜 우리가 앉아 있는 옆 테이블에 앉는
이반이와..낮선 여학생.
예전에 신호등 맞은편에서 이반이와 같이 있던 여자 아이.
"우리 약혼식이 언제지?"
마치 나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이반이의 어깨를 치며 말한다.
"몰라. 기억 안나."
이반이는 관심 없다는 듯 테이블에 있는 술잔을 들이키며 말한다.
"이반이 약혼해?"
큰 목소리로 놀라며 사천이가 내게 물어본다.
그러다 이반이 듣겠다.
그리고 난 뻣뻣한 고개를 힘없이 끄덕인다.
"넌 너무 무뚝뚝하다니까. 이러다 결혼까지 하면 너랑 무슨 재미로 살아?"
듣지 않으려 이미 귀를 닫았는데 왜 난 너의
관한 얘기만 듣게 되는 거니..
맥주 잔을 잡다 그 여자의 목소리에 컵을 땅에 떨어뜨리고
놀란 난 자리에 벌떡 일어난다.
종업원이 곧 달려와 깨진 잔을 치우지만 아직도 멍한
머릿속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영아, 괜찮아?"
"..어? 아, 괜찮아.."
여울이가 내 팔을 흔들고 물어오자 정신을 차리고 대답하는 나.
여기서 무너지면..안 돼. 아무렇지 않게 그냥 웃어.
"나..잠깐 밖에 바람 좀 세고 올게."
"같이 가자. 하영아."
"아냐, 괜찮아. 금방 올게."
같이 가자고 일어서는 여울이의 몸을 자리에 앉히고선 술집을 나왔다.
..왜 넌 내가 어디 있는지 그렇게 잘 아냐.
내가 어디에 있든 여기저기서 튀어 나오냐.
그럼, 너 잊을 수 없잖아..나 또 한심한 애 되잖아. 병신 되잖아..
그리고..또 혼자 울잖아..
옆에 있는 가로등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서있었다.
그리고 딸랑_종소리와 함께 누군가 밖으로 나왔고,
내 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감고 있던 눈을 뜨니..이반이와 같이 있던 여자다.
날 보더니 싱긋_미소를 짓곤 내 옆으로 다가와 선다
"류하영. 맞지?"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순간 놀래 그 여자와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놀랠 거 없어. 난 유혜미 라고 해. 반갑다."
여전히 얼굴에선 웃음을 잃지 않고 나에게 달갑지 않은
손을 내밀며 인사를 한다.
난 머뭇거리다 그 여자가 내민 손을 살짝 잡았다.
"..그래."
"그래, 너도 들었겠지만 난 이반이의 약혼자야.
그러니까 앞으로 행동 조심해 줬으면 해."
구지 그렇게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아도 들을 만큼 들었고 이미
난 이반이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데..
내가 저 여자한테 그런 말까지 들어야 하는 걸까.
"..걱정 마. 그런 거라면."
"걱정하는 건 아닌데..우리 이반이가 너무 사람들한테 잘 대해 해 주거든."
더 이상 이 여자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 듣고싶지도 않다.
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유혜미에게 등을 돌려 술집 안으로
들어가려 한 걸음 내딛었다.
"더 이상 못 듣고 있겠다. 나 먼저 들어간다."
순간 내 팔을 뒤에서 끌어 당겼고 내 몸은 그대로 뒤로 젖혀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있다 가. 재미있는데. 피식."
순간 유혜미의 입에서 나는 웃음소리를 듣고 더 이상 같이 있으면
위험하다는 걸 느낀 난 내 손목을 세게 잡고있는 팔에 힘들 주며 말했다.
"놔. 나 더 이상 듣고싶지 않아."
하지만 유혜미는 내 팔을 더욱 세게 잡았고 난 다른 손으로
유혜미의 손을 빼내려 했다.
..그런데 그저 살짝 힘을 주어 뺐을 뿐인데 유혜미는 바닥에
철푸덕 쓰러지고 말았다.
정말..뭐야. 뭐하자는 건데..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그리고 뒤에서 들리는 날 얼어붙게 만드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뒤에 있는 사람이..지금 내 귀에 들리는 목소리가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길..바라고 또 바랬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 앞에서 날 매섭게 노려보더니 바닥에
쓰러진 유혜미를 부축이고 있었다.
"괜찮냐."
"괜찮아. 내가 실수로 넘어진 거야. 하영이는 아무 잘못 없어."
나에게만 보이도록 한 쪽 눈을 깜박이는 유혜미.
정말 너란 애도 기희경 만큼이나 무서운 애구나..하아..정말 무섭다.
유혜미를 일으키고선 내 앞으로 천천히 다가오는..이반이.
"너 뭐야. 뭐하자는 건데."
"..뭘..?"
그렇게 경멸한 다는 듯이 쳐다보지마..
"뭘? 정말 몰라서 물어?"
..어느 때 보다 화난 듯한 이반이의 목소리.
그렇게 유혜미가 너한테 소중한 존재니..?
이반이는 내 앞에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고,
또 한번 가식의 목소리는 내 귀에 꽃힌다.
"그만해. 하영이는 잘못 없어. 내가 실수한 거야."
"놔."
"이반아.."
유혜미는 이반이를 말리는 척 팔을 잡아끌지만 결국엔 이반이
뒤로 유혜미의 웃고있는 얼굴이 보인다.
이걸 바라는 거 였구나. 유혜미.
그렇게 보지마. 휘이반..나도 아파. 나도 많이 아프다구.
쟨 넘어져 몸이 아플지 몰라도 난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졌단 말야.
더 이상 나 아프게 하지 마. 하지만 이반인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면상에 대고 아픈 말만 해댄다.
"더 이상 내 앞에서 알짱거리지마. 그럼 나도 어떤 일 저지를지 모르니까."
이반인 그렇게 말하곤 유혜미와 골목 안으로 몸을 감춰버린다.
..바보야, 나 울잖아. 나 아프다 그랬잖아..
너..자꾸 왜 너 미워하게 만들어..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아 버렸다..
더 이상 아플 마음도 없는데..이반인..아픈 마음을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누군가 내 머리를 꾸욱 누르곤,
"숙여. 눈물 보이니까."
아픈 걸 매일 너에게 들키는 건 나. 아픈 걸 감싸주는 건 매일 너.
그리고 항상 울고있는 건 나. 그럴 때마다 나타나는 건 너.
아마 우린 이런 공식으로 연결되어 있나 보다.
"..흐윽.."
입을 틀어막은 채 더욱 더 서럽게 울었다.
그 날은 내가 제일 아픈 날 이었다.
이반이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 보다..
지금이 더 아프다. 그리고 난 지금에서야 이반이와 헤어졌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뼛속 깊은 아픔을 느끼고 나서야..말이다.
이반이의 처음 보는 차가운 모습이 내 마음을 더욱 쓰라리게 만들었다.
그 날 밤은 왜 그렇게 길던지..아무리 울어도 아침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긴 어둠 속에 내일이 오지 않길 바랬다.
..
그래도 아침은 오긴 오나 보다.
그렇게 긴 어둠 속에서도 빛은 있나보다.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이불을 걷어 내곤 시계를 보았다.
작은 바늘이 6을 가리키고 있다. 벌써..이렇게 지났네.
창문으로 다가가 아직 캄캄하기만 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 누군가 우리 집 앞에다 무언 갈 놓더니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게 보였다.
바닥엔...선인장 화분이 있었다.
난 생각할 틈도 없이 집 밖으로 뛰어 나갔다.
난 집 앞에 놓인 화분을 들고 저 멀리 걸어가는 사람을 향해 뛰어갔다.
가까이 가면 갈 수 록 그 사람의 모습이 보였고, 난 그 사람의 팔을 잡고
얼굴을 보곤 두 눈이 점점 커져만 간다.
"..너..뭐야."
그 사람은..매일 이렇게 집 앞에다 화분을 놓고 간 사람은..이반이었다.
믿을 수 도 없고..믿고 싶지도 않았다. 내 머릿속을 자꾸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반이한테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가 없었다.
그런 이반이는 자신의 손목에 내 손을 획 빼내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을 잇는다.
"뭘?"
"너지? 매일 이렇게 화분 가져다 놓은 사람..너 맞지?"
"하. 너 미쳤나? 내가 왜 그걸 가져다 놔?"
"..너 맞잖아. 왜 그래? 왜 가져다 놓았는데?!"
따지듯 이반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날 싫어하면서..이러는 이유를 난 모르겠다.
너에 대해..난 잘 모르겠다.
"너 정신이 이상해 진 거 아냐? 아님 아직도 나 좋아해? 생사람 잡지마."
정말..너한텐 해 줄 말이 없다.
"이거..가져가."
난 더 이상 이반이와 입씨름을 하고싶지 않아 손에 들린 화분을
이반이한테 내밀었다.
이반인 화분을 한번 슬쩍 보더니 고개를 돌려,
"난 이런 거 필요 없거든?"
"가져가! 가져가라구!!"
길거리에서 주위의 시선도 느끼지 못한 채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다 아는데 자꾸만 아니라고 하는 이반이가 야속하기만 했다.
"버리고 싶으면 네가 버려. 나한테 그러지 말고."
순간 이반이의 그 말에 난 화분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쨍그랑_화분은 바닥에 산산조각이 나고 선인장은 흙더미에 뒤덮여있다.
내 마음이 산산조각이 나듯 화분도 같이 깨졌다.
그리곤 난 뒤도 안 돌아보고 집까지 냅다 달렸다.
뒤에서 이반이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 두 눈을 지끈 감아버렸다.
74)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들. 그리고 소중한 친구.<프렌즈>*
「누군가 나에게 사랑해 봤냐고 물어온 다면 그냥 나는 너를 떠올린다.」
이반인 오늘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이제 내가 신경 쓸 일도 아니고 신경 쓰고 싶지도 않다.
띠띠띠-♪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베란다에 놓은 선인장을 밖에 버릴려고 하는데
침대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울려댄다.
시끄러운 단음소리이기에 베란다에서 튀어나와 핸드폰을 열었다.
"여보세요."
[나야, 나! 부영 중 얼짱!!]
전화를 받자마자 전화기에 대고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이 아이.
"고거 참 시끄럽구나."
[오랜만에 내 목소리 들으니까 좋지?]
"얘 뭐래니. 얼른 용건이나 말하고 끊거라."
[왜, 왜! 난 오래 전화통화하고 싶은데!]
자칭 얼짱이라는 유다휜은 전화기에 대고 소리만 질러댄다.
"할말 없으면 난 이만-안뇽"
그리고 막 전화를 끊으려 할 때 다급한 유다휜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말이 있단 말야. 지금 너네 집 앞인 데 빨리 나와.
안 나오면 후회하게 될 거야.]
뚝_
어찌나 말을 그렇게 빨리 말하던지 끊긴 전화기를 계속
귀에 갖다 대고 있던 나다.
그리고 유다휜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 마지막 엑센트를 주어
후회하게 된 다는 말에 얼른 집 앞으로 나갔다.
사실 저 아이의 할말이 그다지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던 나지만 무슨 말을
할지 들어보기라도 하자는 생각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얼짱을 찾아보지만,
그 아인 어디로 꼭꼭 숨어버렸는지 보이질 않는다.
설마, 숨박꼭질을 하자고 날 불러낸 것은 아니겠지.
만약 그런 거라면 난 널 가만두지 않을 테야.
아무리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유다휜은 없었다. 난 인상을 쓰며 집에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 할 때 누군가 내 옷깃을 잡았다.
실실 쪼개는 유다휜. 얘 어디서 나타난 거니.
"그 웃음 저리 치우렴."
"헤헷. 나보고 싶지 않았어?"
"나 이만 들어갈란다."
"할 말 있다고 했잖아."
유다휜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는 내 어깨를 잡아끈다.
지금까지 봐왔던 모습 중에 제일 진지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할말 있으면 빨리 해. 그렇게 시간 끌지 말구."
"여기선 좀 곤란하고..공원에 가서 얘기하자."
유다휜은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을 가리키며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곤 먼저 앞서 걷는 유다휜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유다휜이 먼저 입을 열길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삼십 분쯤 지났을 까..다휜은 긴 한숨과 함께 입이 열렸다.
"..하아. 세상이 존나 좆같다."
"너 무슨 일 있니?"
"오늘이 무슨 날 인지..혹시 아냐?"
다휜은 하늘을 바라보며 내게 물어본다.
오늘은 무슨 날이더라..
글쎄다=_=그 날은 아니고, 엄마 생일도 아니요.
용돈 받는 날도 아니다. 난 그저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이다.
"오늘 이반이 새끼 약혼하는 날이란다. 가서 축하해 줘야지. 하하"
그렇구나..오늘이구나.
다휜은 씁쓸한 표정으로 허탈하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설마, 할 말이..이건 아니겠지..?
"..그래, 할 말이..어거야? 약혼하는 거 알려주러 왔니?"
"어. 그거야. 그 말하려고 숨도 안 쉬고 여기까지 뛰어왔어."
"미안하지만 헛수고했네. 난 아무렇지 않아. 그다지 반가운 말도 아니구."
"이반이 새끼가 왜 약혼하는 줄 아냐?"
"내가 그걸 어찌 알리요. 그 얘기라면 이제 그만 하자."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이반이와 관련 된 어떤 얘기든 듣고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들리는 다휜의 목소리가 내 두 귀를 의심케 만들었다.
"너 때문이야. 이 여자야."
"..나 때문이라니. 너 뭘 좀 알고 말해."
뭐가 나 때문이라는 거야. 그 놈 때문에 아픈 건 난데..
"널..위해서 영감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약혼하는 거라고."
다휜은 고개를 돌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내 어깨를 꽉 붙잡곤
내 귀에 똑똑히 새겨준다. 날 위해서 라고..
이해 할 수 없었다. 다휜의 말을.
"그게 무슨 말이야...?"
"아마도 그 영감은 보나마나 널 걸고 넘어졌을 게 뻔해.
그리고 이반이 새끼는 너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기 위해 영감이 시키는 대로
약혼한다고 그랬나봐. 그 새낀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야."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날 위해서라니..나 때문에 약혼하는 거야..?
나한테 그렇게 모질게 대했던 것도 널 잊게 하려고..?
난..널 미워했잖아. 원망했잖아.
너 그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나 대신 아픈 것도 모르고..
나 이제 어떻게. 너 그렇게 아픈데 나 이제 어떻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난 두 손을 얼굴에 묻고 엉엉 울어버린다.
정말 한심하다..사랑하는 사람을 믿지도 못하면서..사랑한다고 떠들어대니..
정말 아픈 건 내가 아니라..그 녀석이잖아.
"그 영감은..말야. 널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앨 수 도 있어.
그걸 잘 아는 이반이는 지 혼자 멋있는 척 폼 다 잡으면서 널 감싸 준 거라고."
다휜의 목소리가 내 귀에 똑똑히 새겨진다.
얼마나 아팠니. 얼마나 힘들었니. 나에게 이별을 얘기할 때 얼마나 아팠니.
날 모른 척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개를 돌리고,
웃기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했니.
울고 또 울어도 이젠 난 이반이한테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너무 많이 내가 아프게 했으니까..아픈 말만 골라 했으니까.
꼴도 보기 싫다고 했지..네 앞에서 화분도 던졌어.
..약혼 축하한다는 말까지..해 버렸는데..하하. 세상 참 불공평하다.
그리고 다휜은 계속해서 어려서부터 이반이가 어떻게 자랐는지..어떻게 컸는지..
내게 말 해주었다. 그 말은 나에게 충격의 연속이었다.
항상 내 앞에서 담담했던 녀석이...그런 아픔을 가지고 사는지..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오늘이 약혼식이자..너랑 이반이 놈이랑 백일 되는 날이란다.
이반이 놈은 알고 있었어. 달력에다 하나씩 표시하면서 백일 되기 열흘 전부터
너네 집 앞에다 화분 갔다 논거야. 너한테 아무 것도 해 준 게 없으니까."
난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이반인 달력에다 표시하면서 세고 있었단다.
그것도 모라자 매일 새벽 같이 화분도 놓구가고.
넌 얼마만큼 날 나쁜 애로 만들래....
"근데, 화분 하나가 모자르지...?"
다휜은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곤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왜 그랬어..? 그냥 받아 두지."
"..몰랐어. 몰랐단 말야."
울고 또 울어도 나오는 건 눈물 뿐.
이젠 목이 메어와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내 얼굴위로 손 하나가 보인다.
"가자."
"...."
"이반이한테."
"하지만..이반인.."
"깽판 놓으러 가야지! 아자. 재미있겠다!"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어 다휜의 손을 잡았다.
그래, 가야지. 이반이의 진심을 알아버렸으니까..가서 내 진심을 말해줘야지.
이젠 울지 않을 거야. 도망치지도 않아..
이젠 이반이는 내가..지켜 줄 거야. 내 손으로..내가.
75)
<번외-그 남자 이야기>
오늘 내가 그 녀석을 뻥 걷어찼다. 하하.
나에게 원래 사랑 같은 건 어울리지 않았다.
지켜주지도 못할 사랑이라면..
이쯤에서 그만 두는 게 좋을 거다..
이젠 난 더 이상 그 녀석 옆에 있을 수 없으니까.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난다. 자꾸 가슴 한쪽이 욱씬거린다..
학교에선 그 녀석과 마주치지 않도록 노력을 했다.
그래서 다른 놈들과 어울리며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 때 미치광이 었던 나로..
그리고 달력을 보다 이제 조금 있으면 녀석과 백일이 되는 날이라는 걸 안다.
..그 날은 게다가 약혼식이기도 하다.
녀석에게 준 건 눈물 밖에 없지만..마지막으로 녀석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선인장 화분 밑에 깨알 만한 글씨로 '91일'이라고 적어 놓고
녀석의 집 앞에다 가져다 놓았다.
이렇게 써 놓으면 절대 못 알아보겠지.
그 후로 계속 녀석의 집 앞에 화분을 가져다 놓았다.
다행이 내가 놓은 걸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
밤에 혼자 술 한잔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크큭. 네가 휘이반 이니?]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여자는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누구야?"
[나? 큭. 기희경. 지금 류하영 내가 데리고 있거든?
망가지고 있는 모습보고 싶으면 오라구. 초대해 줄게.]
"..기희경? 니가 그 녀석을 왜 데리고 있는데?"
[없앨려구.]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들지마. 그랬다간 다..죽어."
눈이 뒤집혔다. 난 전화를 끊고 기희경이 알려준 대로 창고를 찾아갔다.
역시나 바닥에 쓰러져 발길질을 당하고 있는 그 녀석.
참을 수 가 없었다..참고 싶지도 않다.
그 녀석을 건든 년들을 다 하나씩 잡아다 죽이고 싶었지만 주먹을 꾹 쥐고서 난
냉정한 내가 되어야만 한다. 그 녀석한테만큼은 냉정한 나로 기억되어야 하니까.
"이제 장난은 그쯤 해두지."
난 창고 안에 들어가 그 년들을 노려보며 한 마디 내 뱉었다.
하지만 기희경은 내 말은 들은 채도 안하고 그 녀석 몸 위로 발길질을 해댄다.
그 녀석은 숨도 쉬지 못하고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결국 난 냉정함을 잃고 기희경의 얼굴을 내리치고 말았다.
순간 조용해지고 기희경의 친구란 년들은 하나같이 뒤로 물러난다.
"죽고싶지 않으면 당장 나가."
여기서 더 무너질 것만 같아 기희경을 노려보며 낮은 음성으로 내 뱉었다.
기희경의 친구들은 바닥에 침을 뱉더니 아무 말 없이 창고 안을 나간다.
그리고 녀석은 쓰러진 채로 날 바라본다.
피로 얼룩진 얼굴 위로 눈물을 흘린다.
바보야, 날 보면서 울지마. 눈물 아까워.
너한테 준 건 눈물 밖에 없는데..왜 자꾸 우는 거야..울지 말란 말야..
"착각하지마. 너 좋아서 온 거 아니니까. 나중에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
온 것 뿐이야..병원에나 가라."
병신 같은 난 끝까지 녀석에만큼은 무너지는 걸 보이기 싫어 뒤를 돈 채
차갑게 또박또박 귀에 새겨준다.
뛰어가 울지 말라며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 내 마음과는 주먹을 쥐곤
창고를 나오기 위해 한 걸음 내 딛는 순간,
"..이..반.."
내 이름을 채 부르지도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 녀석.
난 뒤를 돌아 그 녀석에게 달려갔다.
"정신차려! 류하영, 정신 좀 차려봐!"
뺨을 내리치며 녀석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녀석은 죽은 듯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
설마 녀석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이미 제정신이 아닌 난 녀석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이 팔에 금이 나고 머리 조금 다친 정도로 괜찮다고 했다.
녀석의 핸드폰으로 기한이에게 지금 와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난 그대로 병원을 나가 이리저리 다 뒤져 기희경을 찾아내서
죽지 않을 장도로 밟았다.
며칠 후 아저씨가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에 갔다.
젠장. 하필이면 그 녀석이 입원해 있는 병원일게 뭐냐.
203호. 그 녀석과 같은 층의 병실.
녀석과 마주 치진 않겠지..
그럼 난 그대로 무너져 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병실 복도를 지나가는데 멀리서 어떤 여자가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뛰어 오는 게 보였다..멀리서 봐도..누군지 금방 알아 볼 수 있었다.
내 눈은 그 녀석 밖에 안 보이니까..
"기한아!!"
녀석은 내가 기한인 줄 알았나 보다.
차갑게 식은 내 눈을 보더니 녀석은 놀란 눈이 되어 날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다.
"..뭐야."
"..미, 미안. 기한인 줄 알구..그만.."
고개를 숙인 채 죄인이라도 된 듯 내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이게 내 한계다. 무너질 수 없으니까..무너지면 여기서 끝이니까..
난 아무 말 없이 그 녀석 옆을 차갑게 지나쳤고,
녀석은 살며시 내 옷자락을 잡는다.
"..저기..괜찮으면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병신 같은 난..녀석 손에서 옷을 빼내곤 그대로 걷다 녀석에게 말한다.
"..긴 시간은 안 돼."
먼저 휴게실 안으로 들어가 쇼파에 앉았다.
녀석도 들어 와 맞은 편에 앉아 손톱만 물어뜯는다.
난 시선을 돌려 텅빈 눈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십분 후 녀석은 조심스럽게
말을 한다.
"..저기..오랜만이야.."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울 거 같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
고개 좀 들어..나쁜 건 난데..용서받아야 할 사람은 난데..
왜 네가 고개를 숙이고 있냐..
"..어."
이렇게 밖에 말 할 수 없는 내 자신이..죽도록 밉다.
사랑하는 여자조차 지키지 하고 아프게만 하는 무력한 내가 미치도록 싫다.
그렇게 내가 짧은 대답을 하고, 휴게실 안은 또 조용해진다.
"담임이 나 학교 안 나온다고 뭐라 그러지 않아?
매일 아침마다 조회하러 올 때 내 욕하고 그러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녀석은 반짝 빛나는 두 눈으로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어색함 채우기 위해 주저리 말을 늘어놓는다.
눈물 맺힌 거 다 보이는데..이미 봤는데..바보야..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야."
녀석은 아무 말 없이 또 고개를 숙인다.
그럼 난 또 차갑게 말 할 수밖에 없잖아..
"할 말 없으면 나 먼저 일어난다."
그렇게 난 휴게실을 나가려는데 녀석의 목소리가 내 발목을 잡아버렸다.
하마터면 그게 아니라고..미안하다고..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 뻔했다.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는 이유가 뭐야..?"
난 다시 쇼파에 앉아 녀석에게 다시 한번 깊이 새겨준다.
이런 건..너 아프게 하는 건..
한번으로 족하는데 왜 자꾸 나 나쁜놈 만드냐..
너 아프게 하는 건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다.
"너가 싫어졌다고 말했잖아."
"그랬었지..그래."
"다신 그런 거 물어 보지마. 두 번 말하는 거 귀찮으니까."
"..미안..약혼한다고 그랬었나.."
녀석이 묻는다. 그리고 난 녀석이의 물음에 목소리를 떨고 만다.
"..어."
..녀석이 눈치 못 챘겠지..
녀석은 눈치 못 챘는지 조용히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래. 축하해.."
축하한단다..
바보 같이 눈에선 눈물이 떨어지는데..축하한다며 목소리를 떨고 있다.
"..그래. 할 말 다 끝났으면 간다."
더 이상 녀석의 눈물을 볼 수 가 없어 휴게실을 나왔다.
그리고 난 주저앉아 버린다.
휴게실 문이 살짝 열린 문 사이로 울고있는 녀석이 보인다..
왜 자꾸 우냐..이제 눈물도 다 말라 버렸을 텐데..왜 자꾸 울어.
그렇게 울어도 갈 수 없다는 거 알잖아..
아저씨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난 병원을 나왔다.
정처 없이 걷다 내가 들어간 곳은 술집.
녀석과 헤어진 후로 내가 메일 같이 가는 곳.
이제 술 없이는 단 하루도 없이 살수 가 없게 되어 버렸다.
단 하루도 맨 정신으로 녀석을 잊고 살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조금 후 내 앞에 누군가 앉는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유다휜이 실실 웃고 있다.
"뭐냐."
"부영중 얼짱이지!"
"꺼져, 임마. 재미없어."
술 한잔을 들이키며 디휜에게 말했다.
다휜은 내가 마신 술잔을 가져가 잔에 술을 따라 쭉 들이킨다.
"정말 쓰긴 쓰구나."
"그럼 쓰지 다냐?"
하..정말 보고싶다.
보고있어도 보고싶은 사람이 넌데..이렇게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는 게 너무 힘들다..미칠 거 같다.
"근데, 너 뭐하는 짓이냐? 그게"
다휜은 테이블에 있는 안주를 집어먹으며 나에게 묻는다.
"뭐가?"
"나 봤다. 하영이네 집 앞에다..이상한 화분 놓고 가는 거.
언제부터 그런 게 네 취미였냐?"
난 아무 말 없이 그냥 술만 마셨다.
이렇게 맨 정신으로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녀석을 아프게 했다고.
그렇게 술 한 병을 마시고 나서야 입을 여는 나.
"..하아. 정말..보고싶다. 씨발."
테이블 위로 난 엎어지고 술병들은 바닥으로 떨어져 깨진다.
그리고 병신같이 눈물이 떨어져 테이블을 적신다.
"헤어졌다. 헤어졌어. 하하. 내가..아프게 해 버렸다.
병신같이 지켜 줄 수 도 없으니까..더이상 아프지 말라고 놨는데..
그 녀석은 지금이 더 아픈 가 보다..맨날 울어..맨날.."
"..그게 무슨 말이야?"
"씨발..안 그러면 녀석을 죽여버린대."
다휜은 테이블 위로 쓰러져 있는 내 몸을 흔들며 소리를 잘러댄다.
"무슨 말이냐구 묻잖아!"
"하하. 나 약혼한다. 좋겠지? 좋겠지? 크큭."
미친 사람처럼 실실 웃으며 다휜에게 지껄이는 나.
다휜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내 멱살을 잡고 말한다.
"약혼? 너 미쳤어? 그 녀석은..?"
"안 하면 그 녀석 죽여버린대. 그럼 나 더러 어쩌라고?"
눈물 고인 눈으로 다휜을 바라보며 멱살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빠진다.
또 생각난다. 울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축하다는 말을 하는 녀석의
떨리는 목소리가..생각이 난다.
.
.
.
유혜미는 날마다 집에 찾아와 날 어디든 끌고다닌다.
난 어떨 수 업이 아저씨 때문에 같이 가야만 한다.
그리고 오늘은 술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가잖다.
이젠 유혜미한테 싫다는 말하기도 귀찮고 짜증난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난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동그랗게 뜬 녀석의 눈과 마주치고 말았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난 녀석이 앉아 있는 테이블 옆에 앉았고 유혜미는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앉는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온 거냐. 그리고 쉴새 없이 떠드는 휴혜미.
"넌 너무 무뚝뚝하다니까. 이러다 결혼까지 하면 너랑 무슨 재미로 살아?"
마치 녀석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유혜미의 목소리에
녀석은 들고있던 잔을 떨어뜨리고 만다.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가버린다.
녀석이 나가고 난 계속 문만 바라보고 있다.
유혜미는 잠깐 밖에 나갔다 온다며 나간 지 이십분이 지났는 대도
들어올 생각을 안 한다.
밖으로 나갔더니 녀석 앞에 유혜미가 쓰러져 있었다.
녀석이 그런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난 녀석에게 차가운
모습으로 아프게 한마디 하곤 그 곳을 빠져 나왔다.
"왜 그랬니? 류하영이 날 밀친 게 아니란 거 알았잖아."
"..미치기 싫으니까."
"뭐?"
"안 그럼 나 그 자리에 빡 돌아서 너 밟았을 지도 모르니까.
그 녀석 앞에서만큼은 그러면 안 돼 잖아."
정말 밟아 버리고 싶은데..유혜미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난
그저 주먹을 굳게 쥔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녀석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난 또 주먹을 쥔다.
냉정한 내가 되기 위해 난 또 주먹을 쥔다..
이렇게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내 마음속에서 녀석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
오늘이 마지막이다. 오늘이 녀석과 백일이자..내 약혼식.
정말 슬프기도 기쁜 날..
난 새벽같이 일어나 화분을 하나 들고 녀석의 집 창문을
바라보다 화분을 내려놓았다.
..안녕. 오늘이 마지막이네요..미안해요. 아프게 해서..눈물밖에 준 게 없어서..
이젠..행복하세요..안녕.
칭문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곤 뒤를 돌아 걷고 있는데..
뒤에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내 팔을 잡아끈다.
그리고 놀란 눈의 녀석이 보이고..
난 당황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녀석을 쳐다보았다.
..녀석이 묻는다. 화분을 매일 가져다 놓은 게..나냐구..
바보야, 그럼 난 너 더 아프게 할 수밖에 없잖아.
녀석은 계속 내게 따지듯 물어왔고 내 앞에서 화분을 던져버렸다.
깨진 화분엔..'100일'이라고 써져 있는데..
이게 오늘 마지막인데..그냥 모른 척 하지 그랬어.
녀석은 그대로 아무 말 없이 뒤를 돌아 뛰어간다.
그리고 난 녀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바라본다.
하하. 널 아프게 한 건 난데..눈물나게 한 건 난데...왜 내가 더 아프냐.
76)
택시를 잡아타고 내린 곳은 "A lake"이라고 큼지막하게 써져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호텔 앞.
그리고 난 비장한 표정을 한껏 지으며 동시에 주먹을 굳게 쥐곤
호텔 안으로 들어갔지만=_=그만 경비 아저씨한테 쫒겨나고 말았다.
아아아악! 나와 이반이의 사이를 가로막는 악의 무리들!
길거리 한 복판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악을 하고 있는 나.
"내 화려한 외모로 아저씨를 유혹할게. 그때, 넌 안으로 들어가."
다휜은 굉장한 자신감으로 내 어깰 치며 말한다.
근데=_=저 아저씨는 남자거든?
남자한테 반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도록 해.
차라리 내가하는 게 더 낫겠단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꼴에 여자다-_-)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다휜은 이미 경비 아저씨 앞에 다가가고 있었고,
난 어쨌든 그 틈을 타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 걸 성공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이반이가 약혼하고 있을 룸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이리저리 둘러보며 1층 룸이란 룸을 뒤지고 있길 20분 째다.
마지막으로 남은 룸 하나. 저기엔 이반이가 꼭 있길 바라는 바다.
난 뒤끔치를 들어 문에 몸을 밀착시키곤=_=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을 하였다.
"껄껄_이 녀석이 원래 말이 없어요. 이 회장. 언제 봐도 혜미는 참 예쁘네요."
"하하. 이반이야 말로 듬직하니 좋은데요."
안에선 아저씨들의 시원스런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반이의 이름을 말 한 걸 보면 내가 제대로 찾아왔음이야..
이렇게 끝에 있을 줄 알았으면=_=여기부터 뒤지는 건데.
난 손잡이를 잡고 긴 호흡을 내쉬었다.
그리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고선
그대로 문을 열어 재꼈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꽃히는 순간이다.
이반이는 멋있는 정장을 입고 있고, 유혜미는 5센치 정도의 진한 화장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있었다.
그리고 이반이의 눈은 커져만 간다.
이반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가."
낮은 음성으로 한마디 내 뱉는다.
"싫어."
"너 미쳤어?"
"그래-0-나 미쳤다! 너한테 미쳤어!"
"..아저씨."
이반인 조용히 문 옆에 조용히 서 있는 검은 정장의 아저씨를 부르고,
마네킹 인줄로만 알았던 아저씨는 내 우악스런 손으로 내 팔을 잡아당겼다.
"놔요-_-^어딜 함부러 잡는 겝니까!"
"나가시죠."
아저씨는 내가 나가지 않고 버팅기자 어떤 터미네이터 같은
아저씨 하나가 더 다가오더니
양쪽으로 내 팔을 잡곤 밖으로 밀어낸다.
이대로 나갈 순 없다. 오늘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
"휘이반!! 나 다 알아버렸어. 놔요! 너 마음 알아버렸다고!
나 너 절대 포기 안 해! 아씨. 이 아저씨가 왜 이래-0-
그러니까 우리 이제 더 이상 엇갈리지 말자. 이반아!!"
아저씨들에게 끌려나가면서 이반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반이는 이무 표정 없이 의자에 앉아있고,
옆에 있는 유혜미는 고까운 눈으로 날 쳐다 보고있었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이반이 아버지의 그 무서운 시선을..
"아저씨! 그만 해요. 이제..이제 그만해요. 이반이한테 그만하라구요."
난 이반이의 아버지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아저씨는 아무 표정 없이 날 노려보더니,
"강 비서. 끌고 나가."
"나가가시죠."
"나갈 거 에요! 잠깐만요..
이반이요..숨 좀 쉬게 놔둬요..제발 이제 답답하게 하지말고 숨 좀 쉬게 놔둬요!"
두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난 할말도 다 못한 채 밖으로 끌려나갔다.
결국 이렇게 되는 구나..오지 말 걸 그랬다.
괜히 너만 또 곤란 해 지는 구나..
경비 아저씨한테까지 끌려나가 호텔 문은 굳게 닫혀 버렸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하"
젠장..이게 뭐야.
하늘에선 비까지 내린다.
비를 맞지 않으려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난 그저 하늘만 바라보았다.
"존나 거지같애."
그리고 빗줄기 속에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 꿈이 아니길..바랬다.
삐딱한 자세로 재킷은 한 손으로 멋지게 들곤 갑갑하다는
듯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있는 이반이..
정말 멋진 이반이..내 앞에 있다.
그리고 검은 재킷을 내 머리위로 던진다.
"이반아.."
"너 이제 큰 일 났다!"
"..뭐?"
"이제 넌 죽을 때까지 내 옆에 있어야 돼. 네가 내 인생 망쳐 놨으니까."
이반이의 장난 가득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꿈이 아니다.
너무 좋은데..좋은 일인데 눈물이 멈추지가 않는다.
이반이는 두 손으로 머리 위에 뒤집어 쓴 재킷을 부비적 거리며
내 머리를 털어 준다.
난 재킷을 걷어내고 이반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예전처럼 차가운 눈이 아닌 따뜻한 눈과 마주치고,
팔을 뻗어 이반이의 목을 끌어안았다.
"..미안해..미안해. 이반아.."
"..각오 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죽을 때까지 괴롭힐 테니까..훗."
"..흐으윽."
평생 날 괴롭힌 다 해도 그게 이반이라면 괜찮아.
아마 너무 행복해서 죽을지도 몰라..그게 이반이라면..
너무 슬퍼도 울고, 행복해도 울고 난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바보가 아닐까.
이반인 큼지막한 손으로 내 머리를 꾸욱_누르곤 내 머리를 옆으로 돌린다.
지금 뭐하지는 플레인지=_=
"야,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지 않냐?"
그제야 이반이의 깊은 뜻을 알 곤 눈알을 돌려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
"고거 참 시선이 고까운 걸?"
언제 비가 그쳤는지 하늘에선 해가 쨍쨍 내리쬐고
이반인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민다.
그동안 봐왔던 표정 중 가장 따뜻한 표정으로.
난 이반이의 손을 망설임 없이 잡곤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손놓지 말고 계속 잡고 있자..이반아..
비에 홀딱 젖은 우리들은 길을 걸으며 서로를 바라보며 키득거리며 웃었다.
아픈 길을 서로 같이 걸으며 우리는 마음 속으로 약속했다.
다신..서로 아프게 하지 말자고..
.
.
.
집에 들어와 이게 꿈은 아닌가 하고 얼굴을 몇 번이나 꼬집어 봤다.
볼이 얼얼한 걸 보니 꿈은 아니다.
"들어가. 내일 보자."
집에 데려다 주면서 이반이의 마지막 인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어 이반이의 번호를 꾹꾹 누르는 나.
[보고 싶냐?]
전화를 받자마자 내게 하는 말.
이거, 이거 현대 사회를 이끌어 가는 발신번호 라는 게
편해서 좋긴 하다만 놀려 줄 수 도 없고 재미없잖아.
근데 이 놈 너무 느끼해 진 거 아냐=_=
"당연한 거 아냐?"
=_=거기에 또 당연하다고 큰 소리 치는 난 뭔가.
[그럼 창 밖을 좀 봐라]
전화기를 귀에 갔다대고서 창문을 내려다보았다.
밖에서 핸드폰을 귀에 대고 손을 흔드는 저 멋진 내 남자.
"계속 거기에 있었어? 이반아!"
밖으로 내려가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뒤에서 들리는 이반이 목소리.
[백일 축하한다. 류하영.]
다시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이반이를 바라보자
이반인 씁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곤 지나간다.
그리고 난 끊긴 전화기에 대고서,
"너도 백일 축하해. 이반아."
이반이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그녀가 집에 들어가 씻고 있는 동안 이반이는
그녀의 창문을 계속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곤 밑에다 선인장 화분을 내려놓습니다.
그녀가 던져 하나가 모자란 화분을 이반이는 다시 채워 줍니다.
"류하영♡휘이반. 백일 축하한다."
깨알 만한 글자가 달빛에 유난히도 비칩니다.
마지막 화분에 써 있는 글자를 그녀는 알까요?
77)
화분이 하나 놓여있다. 그리고 누가 가져다 놨는지 알 거 같다.
내가 버려 깨진 화분을 다시 채워주는 거란 것도 안다.
그럴 사람은 단 한사람 밖에 없다는 것도..안다.
기한이 놈은 먼저 갔는지 혼자 학교에 온 나는 왠지
모를 웃음을 참을 수 가 없다.
그런 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사천이가 내 이마를
짚어 보더니 한마디한다
"이상하다. 열은 없는데..더위를 먹을 리는 없구."
"그 더러운 손 저리 치우거라."
"말투나 표정을 보면 류하영이 맞는데..이반이랑 헤어져서 정신이 이상해졌나?"
=_=저 놈의 표정을 보면 남자친구와 헤어진 친구를 위로하는
표정이라고 볼 수 없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저 표정.
이반이랑 다시 만나지만 않았어도 넌 내 손에 죽었어.
그리고 이반이가 교실에 들어오자 예전에 같이 놀던
시끄러운 아이들도 같이 들어온다.
"이반아, 그래서 얼마나 웃겼는 줄 알아? 우리 1교시 땡땡이 치고 나가서 놀자."
아이들은 이반이의 주위를 둘러싸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시끄럽게 조잘거리고 있었다.
이반이는 아무 말 없이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서
가방을 뒤적거리기 바쁘다.
"이반아, 나가자. 응? 오늘 뭐하고 놀까?"
저번에 이반이와 같이 키스를 하고 있던 여학생이 이반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묻자 이반이는 매섭게 손을 탁_쳐낸다.
"시끄러. 저리 가라."
"이반아, 오늘 놀러가기로 했잖아. 안 갈 거야?"
여학생은 무안한데도 표정하나 안 바뀌고 이반이에게 물었다.
"내가 왜 가야 되는데? 귀찮아."
"너, 너 왜 그래?! 내가 뭐 잘못 한 거 있니?"
"내 앞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 자체가 잘못 된 거야.
알면 이제 꺼져. 훠이-훠이-"
참으로 우스운 장면이 아닐 수 가 없다.
어울리지 않게 손까지 흔들며 나가라고 하는 이반이.
그리고 얼굴에 무슨 철판을 그리 많이 깔았는지 절대 네버
교실을 나갈 줄 모르고 이반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너 류하영 때문에 그러지? 그 계집애랑 다시 만난다고 그러는데 맞니?"
무섭게 변한 이반이의 얼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을 번쩍 올린다.
여학생은 두 눈을 지끈 감고 이반이의 손은 여학생의 얼굴에서 멈춰진다.
"다음엔 이렇게 안 끝나."
"그딴 기집애가 뭐가 좋아서 그러는데! 미쳤어!!
내가 그 계집애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나아!"
내가 보기엔 너의 그 화장품 빼고는 나을 게 없는 거 같은 걸?
화장품 하나는 좋은 거 라는 건 인정해 주도록 하지.
그토록 까만 피부가 하얗게 변했다는 건 아마 우리나라 화장품이 아닐 듯 싶다.
그리고, 결국 이반이의 손이 5센치 화장품이 묻어나는
얼굴위로 떨어져 내린다.
짜아악-
여학생은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고,
그렁그렁 눈물 맺힌 눈으로 이반이를 노려본다.
왜 이 순간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걸까.
그 여학생의 눈이 딱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곤 여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쌩하고 교실을 나가버렸다.
아마 얼굴의 철판을 다 깔았나 보다=_=
이반이와 눈이 마주쳐 버리고 민망한 나는 그냥 베시시
웃는데 긴 손가락을 까닥해대는 저 몹쓸 놈-_-^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이리 오라고."
누구한테 말하는 것인지 아무도 이반이한테 가지 않는다.
고개를 두리번거려 아이들을 바라보자 왜 하나같이 날 바라보는 것일까.
빨리 가라는 듯이.
"너, 너."
도대체 누굴 보며 너라고 하는 것이니.
얘야, 이름을 그냥 폼으로 있는 게 아니란다.
이름을 불러주면 참 고맙겠어.
그렇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이반이의 눈썹이 성난 눈썹이 되고,
사천이는 멀뚱히 서 있는 내 몸뚱이를 밀쳐 앞으로 튕겨 나가버렸다.
뒤를 돌아 사천이를 째려보지만 사천이 놈은 내 시선을 외면해 버린다.
"누굴 부른 거니?"
뻘쭘히 서서 이반이에게 조심스레 물어보는 나.
"존나 느려터졌네. 너 부른 거 잖아."
"이름은 부르라고 있는 거야. 이름을 불러줬으면 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빙딱. 말은 잘 한다."
어디 감히_여자친구한테 빙딱이라 욕지껄이를 내 뱉는 것이니.
이반이는 내 째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머리를 꾹_누른다.
시선을 아이들에게 돌림으로서 오만가지 인상을 쓴 내 얼굴을 반 아이들 모두
알아차린 순간이다.
"다들 죽는다. 한 번 더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떠들고 다니면 다 죽는다고.
류하영 울리는 놈들 있으면 선생 할 거 없이 다 하수구에 머리 처박아 놀을 테니까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마음 한 군데서 울컥_하는 게 감동을 먹은 모양이다.
휘이반, 너 그거 알아? 나 너 때문에 평생 울 거 다 울었다는 거.
너 먼저 하수구에 머리 처박을 각오 해 두는 게 좋을 거야.
그런데...지금 너 조금 멋있어서..한번만 봐주는 거야..알아?
글썽 글썽 울먹거리는 내 얼굴을 보더니 이내 내 얼굴을 가려버린다.
"울지마. 나 하수구에 머리 처박기 싫다."
"..저리 치워. 이 놈아."
"울려고 하잖아. 안 울 거지?"
"..그래, 안 울어. 그니까 손 치워.."
하지만 이미 내 눈에선 눈물이 이반이의 손을 적셔버렸다.
이반이는 몸을 돌려 날 품안 가득 안아 주었다.
평생..이러고 있자. 나 울리면 아까 말 한 거 지켜야돼.
그러니까..나 이제 울리지마..나 울리는 거 너 밖에 할 수 없다는 거..알지..?
나 웃게 할 수 있는 것도 너 밖에 없다는 것도..알잖아.
난 너 때문에 웃고, 너 때문에 울어..그리고 너 때문에 숨쉬면서 살아.
"너 쇼한 거지?"
사천이 놈이 다가와 우습다는 듯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지껄인다.
난 턱을 괴고 사천이를 벌레 보듯 바라보다 저리 꺼지라는 뜻으로 손을 훠이 훠이
저어보지만 웬 질긴 놈이 내 옆에 앉아 계속해서 내 성질을 긁어 놓는다.
"그럴 줄 알았어. 동정심을 사기 위한 수작이었던 거야."
"=_=모든 사람들을 모두 너와 똑같은 사람으로 보지 말래?"
"역시! 넌 그런 애 였어. 실망이야. 창피하게 동점심 따위나 사는 애랑은 안 놀아."
"뭐-_-^이 놈이."
혼자 독백을 하던 사천이는 자기 말만 하고선 내 앞에서 사라졌다.
그동안 머리를 심하게 다친 모양이다. 불쌍한 놈.
오늘 하루는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이 그렇게 따스하고 좋을 수 가 없었다.
게다가 내 앞에 지금 수업을 하고 있는 보라돌이가 멋있게 보이다니..
눈이 많이 나빠진 모양이다.
수업이 끝나고 이반이와 나란히 교실을 나섰다.
햇빛이 이렇게 따스했었나? 아마 내 옆에 이반이가 있기 때문에 따뜻한 가 보다.
"이반아-"
내 부름에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본다.
"화분 잘 받았어-너가 모자란 화분 채워준 거 알아."
"훗."
"그리고 고마워."
"뭐가?"
"다시 웃게 해 줘서."
"..."
이반이는 삐딱하게 고개를 돌려 아무 말 없이 지그시 날 바라본다.
"다시 숨쉬고 살 게 해 줘서..고마워."
이반이는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잡고있던 손에 힘을 주어 꽉 잡는다.
누군가 그랬다. 진짜 사랑은 눈을 감아도 그 사람이 보이는 거라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그 사람만이 보이는 거라고..
지금 나 눈을 감아보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가슴이 아파 포도송이 같은 눈물이 흐를 뿐이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자꾸 들리기 때문에..
"조심히 들어가. 이반아."
어느새 집까지 당도한 우리 두 사람.
하지만 아쉬움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그래."
너무 집이 가깝다. 너무 집이 가까워.
아직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말야.
안 되겠어. 내일 당장 저 멀리 부산으로 이사를 가야지.
그러면 하루 종일 이반이와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하루가 다 되어 집에 못 가면 다음 날, 그 다음 날 집에 오면 돼.
다리가 아파 퉁퉁 부으면 이반이가 날 엎어 주 테니까 걱정 없어.
집에 막 들어가려고 몸을 돌리는데 이반이가 내 팔을 잡아 돌린다.
"나랑 놀자."
"뭐-_-^"
"내일 나랑 놀자고. 어차피 토요일이라 일찍 끝날 테니까."
좀-_-말을 할 땐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좀 해 줄래?
앞 뒤 다 짤라 버리고 말하지 말구.
"재밌게 해 줄겨?"
"그 표정은 뭔데? 재밌게 안 해 주면 한 대 치겠다?"
"어찌 감히 내가 널 칠 수 있겠니."
"알면 됐고, 내일 노는 거다. 그럼 나간다!"
난 아직 대답 안 했거든?
이반이는 손을 흔들며 저 멀리 몸을 감춰버린다.
손을 높이 들어 흔들던 내 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폴짝 잘도 뛰어가던 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집으로 들어갔다.
내 뒤에서 늘 챙겨주고 아파하는 누군가 있다는 걸 잊은 채 난 내일 이반이와
데이트를 한다는 생각에 잠도 못자고 있었다.
78)
녀석과 이반이가 다시 만난다고 사천이한테 들었다.
그리고 이반이 놈한테 무슨 사정이 있어서 녀석을 울린 거 란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다.
이반이는 다른 놈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녀석이 울었을 땐 돌아버리는 줄 알았지만 마지막에
다시 웃게 해 사람은 이반이 밖에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 녀석은 이반이를 볼 때 항상 웃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조금 일찍 집에서 나왔다.
학교에 거의 다 왔을 때,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다.
뒤를 돌아보면 뛰어 왔는지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 쉬는 이반이 놈이 있다.
"하아. 걸음 존나 빠르네."
"내가 좀 빠르긴 빠르지..경보 대회나 나가 볼까?"
장난 섞인 내 말에 이반이 놈은 피식 소리를 내며 비웃는다.
"뭐야-_-^"
그리곤 먼저 앞서 걷는 이반이.
난 뒤에서 이반이를 뒤를 따라 걸어가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
여전히 앞서 걷는 이반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나에게 되묻는다.
"뭘?"
"류하영.."
내가 말 끝을 흐리자 이반이는 뒤를 돌아 웃으며 말한다.
"훗. 보면 모르냐? 어떻게 되긴..지금처럼 됐지."
"류하영 가고 노는 건 아니겠지?"
이반이 앞에 서서 강한 어조로 물었다.
얼굴엔 미소가 지워지고 머리를 쓸어 넘기며 이반이는 꽤나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그럴 놈으로 보이냐?"
"그럴 놈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
"그럼 됐다."
"그런데, 다시 한번 류하영 울리면 저번처럼 안 끝나.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거야.”
"걱정마. 다신 그럴 일없을 테니까. 훗."
.
.
.
다정히 교실 뒷문으로 들어오는 이반이와 기한이 놈이 보인다.
저번에 치고 박고 싸워서 사이가 안 좋을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다.
그들을 보며 역시 남자들의 우정은 대단한 것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여자들은 조금만 삐치면 풀어 줄 때까지 토라져 있는데 말이다.
"너 이반이랑 다시 만난다며?"
어느새 내 옆에 앉은 기한이는 가방을 풀으며 내게 물었다.
"응. 그렇게 됐어."
"근데, 너 혹시 이반이한테 바지자락 붙들고 매달린 거 아냐? 쪽팔리게.”
"뭐시-_-^넌 내가 그런 애로 보이냐?"
몹쓸 놈. 가방을 푸는 척 하며 고개를 숙인채 비웃는 걸 난 보았다.
"응."
바로 ‘응’이란 말이 나오긴 쉽지 않을 텐데 저 놈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해 버림으로서 날 다시 한번 비참한 여인네로 몰고 가고 있었다.
"죽고싶지? 그 동안 안 맞아서 몸이 근질거리지? 엉?"
어제 이반이처럼 성난 눈썹을 만들자, 기한이는 턱 끝으로 내 앞을 가리킨다.
그러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얼굴의 이반이가 날 바라보고 있다.
바로 표정관리에 들어가는 류하영.
"어머, 이반이 아니니! 네가 무슨 연유로 내 자리에 다 왔니?"
오버스러움을 티라도 내듯 손 벽을 치는 모션까지 취하며
이반이에게 말하는 나.
"웬 오버."
역시나 이반이 놈은 딱 세 마디로 내 행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해준다.
"좀 네 자리로 가지 그러니."
=_=속 좁은 이 여인은 이반이 놈의 말에 삐쳐 녀석을 쳐다보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나 단순한 난 다음 이반이의 그 말에 눈이 반짝 빛이 나고 말았다.
"오늘 나랑 놀기로 했지? 어디서 만날까?"
"글세, 어디서 만날까나-?"
나름대로 귀여운 표정을 짓는다고 지었건만
이반이 놈은 인상을 쓰더니,
"재수 없다. 그 표정은 뭐냐."
표정을 보아하니-_-못 볼 걸 봤다 이거로군.
이런 센스 없는 놈 같으니라고.
"내가 뭘-_-어쨌다고 그러시나."
"시치미 떼긴. 이상한 표정 지었으면서."
어머, 어머. 이상한 표정이랜다. 이상한 표정..=_=
내 귀여움과 깜찍함을 담은 내 얼굴이 그리도 못 봐주겠더냐.
상처받은 난 속으로 이반이의 ‘이상한 표정’이 대해 고민에 빠져 버렸다.
과연 이 놈이 말하는 이상한 표정이란 무엇일까..
"에씨-_-^말 좀 끊지마. 자꾸 까먹잖아."
이반이 놈은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툴툴거린다.
"말하시게나."
"그냥 이따 두 시에 블루 카페 앞으로 나와. 들어가지 말고 앞에서 기다려.
들어가 있으면 놔두고 나 혼자 놀러 갈 거니까."
저런 인정머리 없는 놈. 나랑 놀고 싶었던 게 아니었니.
그러나 마음속으로 절대 카페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나 였다.
"응. 앞에서 기다릴게. 늦지 말고 오려무나."
"피식_"
어찌 내 말에 대답이 없는 거니. 늦게 오겠단 거니-_-
이반이는 피식_소리를 내며 웃더니 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짧은 4교시가 끝나고 집에 일찍 온 난 기름진 머리부터 감았다.
오늘 아침에 물이 안 나와 감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기한이 놈이 이반이 앞에서 놀리지 않은게 다행이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로 말리고 있는데 도이가 내 앞에서 알짱댄다.
"또 어디 좋은데 가는 구나."
밝은 표정으로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는 도이.
"그냥 친구 좀 만난다. 좋은 데는 아니야."
"그래, 깜댕이 잘 만나고 와-"
도이는 씨익_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리곤 방을 나가버린다.
예전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날 뛸 줄 알았는데 이런
도이의 행동에 낯설기만 한 나다.
난 옷장에서 사두고 오랫동안 입지 않은 하늘색 피스를 꺼내 입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서 시계를 보았다.
앗! 벌써 두 시가 다 되어 가잖아.
이러다 이반이 놈 그냥 가 버리는 거 아냐=_=그 놈 성격에 그럴 지도 모르지.
난 서둘러 손가방을 하나 들고서 집에서 나오는데 도이가 내 팔을 잡는다.
시간이 늦은 나로서는 짜증이 나는 게 당연했다. 인상을 쓰며 도이를 바라보자,
"자, 이거 가지고 가. 특별히 주는 거야."
도이가 자랑스럽게 말하며 내 손에 쥐어준 것은 학 한마디가
떡하니 그려져 있는 오 백원 짜리 동전이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도이를 바라보자 도이는 내 등을 밖으로 떠민다.
"과자 하나라도 들고 다니면서 깜댕이랑 데이트 잘해,"
"도이야.."
"너무 고마워하지는 마."
너무 우스워서 할 말을 잃었는 걸?
난 도이가 건네 준 오백 원을 원피스 주머니에 넣고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 앞에 도착했다.
아직 시간이 십 분이나 지났는데도 놈은 아직 안 온 모양이다.
설마, 나보는 카페에 들어가지 말래 놓고 자기가 들어가서
기다리는 그런 야비한 놈은 아니겠지.
그러면서 검은 색 선텐이 되어있는 카페 안을 들여다보며 살피는 나다.
훗, 없다.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카페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이반이가 언제 오는지 기다리고 있다.
젠장-_-이게 뭐야.
다들 커플끼리 안에 들어가는구만. 나 혼자 이게 뭐하는 짓 이람.
투덜거리며 바닥을 발로 차 보지만 행여나 이반이가 안에
들어가 있는 날 보고 그냥 가 버릴까 들어가지 못하고 앞에서 서성이는 나다.
이십 분쯤 지났을까..
카페에서 나오는 사람마다 다들 이상한 눈으로 한번씩 이상한 눈으로
힐끔거리며 쳐다보며 지나간다. 이 놈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_-^
오기만 해봐! 아까 그 이상한 표정 계속 지을 테니까. 후훗.
그렇게 다짐하면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데 이반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바보야, 이 십 분이나 지각이라구...
나 카페 안에 안 들어가고 너 기다리잖아.
차마 꺼내기 부끄러운 단음 핸드폰을 가방 속에서 꺼내
이반이 핸드폰을 꾹꾹_누르는 나.
하지만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된다는
자주 듣는 어느 여자의 지조있는 목소리뿐이다.
혹시나 이반이한테서 전화라도 올까봐 핸드폰을 들고 서 있는데..
전화는 오지 않고 시간만 더디게 간다.
어느새 카페에 들어갔던 커플들은 하나 둘 씩 밖으로
나오고 아까 와 같은 눈으로 날 아직도 기다리고 있냐는
표정과 함께 불쌍한 듯 바라본다.
나 오늘 너 만나려고 잘 안 입는 치마 옷장에서 꺼내 입었다?
너 만나려고 질끈 묶던 머리도 풀고, 예쁜 구두까지 꺼내 신었어.
그리고 도이가 너랑 데이트하면서 과자 사먹으라고 준 돈 오 백 원도 있단 말야..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도이가 너 만난다니까 준거란 말야.
빨리 오려고 온다는 게 그만 십 분이나 늦었지만 설마 그것
때문에 안 오는 건 아니지?
..빨리 오란 말야.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불쌍한 눈으로 아직도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잖아.
어느새 하늘에선 부슬부슬 빗방울이 떨어진다.
애써 빗은 머리가 빗물에 적시고 오랜만에 입은
하늘색 원피스가 젖어버렸다.
머리끝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고 턱 끝에서도 뜨거운 물이 흘러내린다.
내 얼굴엔 빗물과 뜨거운 물이 겹쳐 턱 끝에서 끝없이 떨어진다..
그나마 다행이다..빗물에 젖어 내가 우는 걸 아무도 모를테니까.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 여섯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꼭 올 거야. 두시는 넘었지만 올 거야. 무슨 사정이 있을 거야.
가방을 쥐고 있는 손에선 힘이 더 들어가고 시야가 점점 흐릿해 진다.
"학생, 비 맞지 말고 들어와서 기다려."
언제 나왔는지 카페 주인 아저씨가 젖어있는 내 모습을 보다니
안쓰럽게 한마디 하신다.
"괜찮아요. 곧 올 거에요."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지만 아저씬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버린 내 모습을
다시 한번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혀를 차신다.
"괜찮긴..다 젖었구만.."
"안 돼요. 들어가서 기다리면 그냥 가 버린다 그랬거든요. 그래서 저 못 들어가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의구. 비 다 맞아 감기 걸리겠어."
"정말 괜찮아요.."
아저씨는 카페에 들어가기 전 내 모습을 안쓰럽게 한번 더
보시더니 카페 안으로 들어가셨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카페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으니까..안에 들어가서 기다리는데
이반이가 그냥 가 버린 단 말야..그러니까 들어가지 못해.
고개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눈물은 턱 끝이 아닌 눈에서 바닥으로 떨어지지만
비와 같이 떨어져 내려 보이지 않는다.
나 많이 기다렸지..
다섯 시간 됐다..이만하면 나도 꽤 기다리는 거 잘 하지?
태어나서 이렇게 오래 기다린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그러니까..넌 꼭 와야돼. 꼭 올 거야..
.
.
.
[휘이반. 너희 아버지가 쓰러지셨어. 어서 병원으로 와!]
녀석을 만나러 막 나가려는데 휴혜미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사실 아저씨가 쓰러지던 말던, 내 아버지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프던 말던 쓰러지던 말던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상관없다고? 그 말 진심이니?]
"어. 진심이야. 이제 나 나가야 되니까 좀 끊어라."
그리고 막 전화기를 끊으려 할 때 전화기 너머로 유혜미의
조용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이제 죽을 지도 모르는데?]
난 나 두 귀를 의심했고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갖다대고 유혜미에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궁금하면 지금 당장 한림병원으로 와. 지금이 아니면 말 해주지 않을 테니까.]
"뭐?!"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유혜미는 전화를 끊었고,
난 머뭇거리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도 모른 채 말이다.
병원엔 금방 도착했고 아저씨가 어디 병실에 입원해 있는 지
아는 건 쉬운 일이었다.
저번에도 쓰러졌었는데..또 쓰러 진 걸 보면 많이 안 좋은 모양이다.
병실 앞에는 유혜미가 있었고 난 다가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건데?"
"상관없다며"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잖아."
"..암 말기래. 가망이 없대. 아버지랑 말씀을 나누시다가..
갑자기 고통스러워하시면서 쓰러지셨어.."
유혜미는 반쯤 정신이 나간 내 모습을 보더니 천천히 말을 했고 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다.
할 말을 잃은 난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멍한 눈으로 병실을 바라보는데,
강 비서 아저씨가 안 좋은 얼굴을 하고서 병실을 나왔다.
"도련님."
"..네."
"들어가 보세요."
아저씨는 병실 문을 반쯤 열고 나에게 말했고,
난 어떤 얼굴로 산소호흡기를 끼고 누워있는 저 사람을 봐야 할지 몰랐다.
내가 제일 미워하는 사람. 아니, 증오하는 사람.
엄마를 죽게 만들고 내 인생을 망쳐놓은 저 인간을..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안 들어갈래요."
"너 왜 안 들어간다는 거야?"
유혜미는 내 팔을 잡아끌며 다그치듯 물었다.
"죽든 말든 상관없으니까. 저 사람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사람이야.
아버지? 웃기지 말라 그래. 누가 아버지라는 건데? 하!"
조금 느릿한 말투로 말을 마치자마자 강 비서 아저씨의 매운 손길이 내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놀란 눈으로 아저씨를 바라보자 아저씨 자신도 놀란 듯
내 얼굴을 스친 손을 바라보신다.
"죄송합니다.."
지금까지 내게 항상 따뜻하기만 했던 강 비서 아저씨가 내 얼굴에 손을 댔다.
아저씨는 허리를 굽혀 내게 사과를 했고 난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근데 좀 아프네요. 픽."
"도련님, 잠깐 드릴말씀이 있습니다. 잠시 휴게실로."
"알았어요."
유혜미를 내버려 둔 채 먼저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저씨는 아까 전 보다 표정이 굳어져만 가고 있었다.
"말씀하세요."
무언가 말하길 꺼려하는 아저씨한테 내가 먼저 말을 했고,
아저씨는 무언가 결심하신 듯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다시 미국으로 가세요."
순간 들고있던 음료수 캔을 떨어뜨릴 뻔했다.
난 당황한 표정을 다시 원래 차가운 표정으로 되돌리고
난 아저씨의 말에 쏘아붙였다.
"지금..장난하는 겁니까?"
"도련님, 미국에 가셔서 경영 공부를 하고 오세요. 지금 회장님 상태는 굳이 말씀
드리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회장님 자리를 물려받으십시오."
순간 아저씨의 진심이 담긴 눈을 보았다.
나에게 만큼은 적인 아저씨를 강 비서 아저씨는 존경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지금 나보고 미국에 가서 경영 공부를 하라고?
지금껏 살면서 회사를 이어 받겠다 거나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당황한 게 당연한 것이었다.
난 음료수를 벌컥 마시곤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전 그럴 생각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한국에서 말뚝 박고 살 거니까요."
"전에 뵙던 아가씨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알면 됐어요. 그 녀석 아니라도 난 아버지한테 조금의 보탬이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요. 그것뿐만 아니라 아버지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난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아저씨한테 말했고,
아저씨는 조금 더 표정이 험악해 지셨다.
"회장님 돌아가시면..도련님은 누가 돌봐 줄지는 생각 해 보셨습니까?"
"..난 어린애 아니야. 혼자 사는 것 쯤은 할 수 있어."
처음으로 아저씨한테 반말을 써가며 대꾸했다.
이러지 않으면 정말 다시 미국에 가야 할지 모르니까.
"밑에 있는 사람들이 도련님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겁니다. 우리 회사는 전통적으로
회장님이 돌아가시면 자식이 회사를 물려받게 되어 있다는 건 도련님도 아실 겁니다.
첫 째 도련님이 살아 계셨다면 도련님이 이런 상황에 처할 일도 없었을 테지만..
어쨌든, 회장님이 돌아가시면 도련님의 목숨은 저희도 지켜 드릴 수 없습니다."
강 비서 아저씨의 논리 논건 한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알고 있다. 그런 전통쯤이야 알 고 있지만,
이런 일이 갑자기 생길 줄은..몰랐다.
빈 캔을 손으로 꾹 쥐곤 아저씨한테 진지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 시켜. 난 회사 물려받을 생각 한 적 없으니까."
"회장님께서도 원하십니다.
도련님이 미국에 가서 경영 공부를 하고 회사를 물려받길.
지금까지 도련님께 해 준 게 아무 것도 없다며..
회사 물려받아 도련님 스스로 도련님을 지키길 바라십니다.
이게 회장님께서 해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일입니다."
찌그러진 빈 캔을 있는 힘껏 던졌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났는 줄도 모른 채 난
휴게실 안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휴게실 안에는 조용한 정적이 흐른다.
"생각..해 볼게."
자리에서 일어나 휴게실을 막 나가자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유혜미가 있었다.난 상관하지 않고, 한번 슬쩍 쳐다보곤 병원을 나왔다.
언제부턴지 하늘에서 빗방울이 거침없이 떨어지고, 그제야 녀석과 만나기로
했다는 걸 생각이 난 난 그대로 카페로 뛰어갔다.
설마 자금까지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 바보는 정말 카페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역시나 녀석은 카페 앞에서 비를 쪽딱 맞고 서서 날 기다리고 있다.
이런 널 놔두고 내가 어떻게 미국에 가냐..바보 같은 널 놔두고..
79)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들. 그리고 소중한 친구.<프렌즈>*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땐, 빗속에서 흐릿한 시야로
누군가 뛰어 오는 게 보였다.
..왔다..올 줄 알았어..
숨을 몰아 쉬며 나만큼이나 젖은 이반이는 화가 잔뜩 난 표정이었다.
화낼 사람은 난데. 벌써 다섯시간이나 지났는데..
오히려 화난 사람은 이반이로 보인다.
"하아..왜 이러고 있어?"
"너 기다리고 있었지. 벌써 다섯시간이나 지났다구..지각이..야."
"너 병신이냐? 비오는데 왜 이러고 있어?!"
"..왜 이러고 있냐구? 네가 카페 안에 들어가지 말구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
화가 났다. 오히려 되래 나보고 화를 내는 이반이한테 말이다.
그래서 비에 젖은 얼굴을 들고 소리를 질러댔다.
덕분에 눈물이 흐르고 있는 내 얼굴이 이반이한테 들켜 버렸다.
어차피 비 때문에 보지 못 했을 테지만..
"안 오면 들어가서 기다리던가..그냥 가던가 해야지. 너 진짜.."
"..올 거라 생각했어. 꼭 올 거라고..그래서 기다렸어."
...왠지 모를 서러움에 복받쳐 고개를 숙인채로 중얼거렸다.
"근데..왜 바보 같이 울고 있어?"
들켜 버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반이는..
내가 우는 것쯤은 빗속에 가려도 보이나 보다..
걱정스러움이 담겨있는 이반이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울지 않았다고 말하는 나.
"병신..안 울긴.."
이반이는 가까이 다가와 내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내며 말한다.
걱정했다. 또 엇갈리는 건 아닌지..결국 우리는 어떡해
서든지 다시 만난 운명인가 보다.
..하아..그런데..왜 이렇게 어지럽냐.. 이반이의 얼굴이..안 보인다.
"류하영, 정신차려!!"
온 몸이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 내 몸을 안고 소리를 지르는 이반이의
모습이..얼핏 보인다...이반이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인다..
.
.
.
"정신이 좀 드냐."
잘 떠지지 않은 눈을 떠 제일 먼저 보인 사람은 이반이.
가벼운 티 한 장에 침대에 걸터앉아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다.
"..응. 어떻게 된 거야..?"
입고 있던 하늘색 원피스는 어디로 갔는지 하얀 남방에 반바지가 떡하나
내 몸뚱이에 걸쳐 있다.
"보면 모르냐? 빗속에서 몇 시간을 있었는데 멀쩡한 게 이상한 거지.
열이 30도가 넘었어."
내 이마를 짚으며 이제야 안심이 된 다는 듯 긴 숨을 내쉰다.
"근데..입고 있던 옷은? 여긴 어딘데?"
낯선 곳이라 그런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반이에게 다그치듯이 물었다.
이반이는 씨익_웃으며 내 귀에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인다.
"어디긴-러브호텔 몰라?"
"뭐?! 러, 러브호텔?!!!!"
흥분한 나머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내 옆에 있는 이반이를 밀치고선
지금 내가 어떤 차림인지도 잊은 채 문 손잡이를 잡고 막 나가려고 할 때,
"바보야, 장난이야. 장난이라구. 그렇게 밀치니까 아프잖아."
바닥에 주저앉은 이반인 허리를 감싸며 내게 말하고 있었다.
"많이 아프니-_-"
"그럼 간지럽겠냐. 아씨. 존나 아프네."
"미얀. 그럼 여긴 어딘데?"
"어디긴 우리 집이지. 길거리에서 그렇게 쓰러지면 어떡하냐."
그랬지..어쩐지 기억이 가물가물 한다 했는데..결국 또 쓰러졌구나..
긴장이 풀려버린 난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어느새 앞엔 이반이가 날 바라보고 있다.
"미안해. 너무 늦게 와서."
그리고 진지한 이반이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히면
내 두 눈에선 눈물이 끝도 없이 떨어져 내린다.
고개를 숙인 채 손등으로 연신 문지르며 눈물을 닦지만
웬 눈물이 닦아도 닦아도 계속 떨어진다.
"..많이 기다렸단 말야. 오지 않는 줄 알구.."
"내가 왜 안 가? 너가 기다리는데. 좀 늦었을 뿐야."
손으로 눈 주위를 닦아주며 날 안아주는 이반이.
그리고 난 이반이 품에서 목놓아 울어 버린다.
"근데..이반아."
한참을 울다 뭔가 생각난 난 이반이에게 무언가 말하기 위해
엉망이 된 얼굴을 들었다.
"왜?"
"이 옷은 누가 입혀 준 거니?"
"누구긴 누구야. 당연히 나지!"
당연하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말하는 이반이.
당황한 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양손은 내 몸을 감싼 채로.
"뭐? 정말이야?"
"그럼-이젠 우린 하나가 된 거야."
"이, 이런 짐승! 나쁜 놈!"
언제 울었냐는 듯 이반이가 내 알몸을 봤다는 사실로 창피하기도
하고 분한 마음에 냅다 소리를 질렀다.
"뭐 어때?"
"어떠긴!! 가까이 오지마! 나쁜 놈아!"
나에게 다가오려는 이반이를 향해 소리를 지르자 이반이는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큰 소리로 웃어댔다.
"크큭. 진짜 장난이 안 통하는 구만. 내가 그렇게 할 짓이 없냐?"
"저, 정말이지?"
"그럼, 그럼. 아줌마가 가라 입혀줬어."
이반이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안심이 된 난 긴 한숨을 내쉬는데 피할 새도 없이 쪽 하고 이반이의 입술이
부딪쳤다. 살짝 부딪쳐 스치기만 했는데 화끈_ 입술이 뜨겁다.
놀란 난 빨개진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이반이를 바라본다.
"다음엔 이렇게 빨리 안 끝난다. 훗."
아직-_-난 마음의 준비도 안 했단 말이다.
이런 거 할 땐 분위기 꽤 잡고 하던데..=_=
아쉬운 마음에 손으로 입술을 만져 보는데,
"근데 너 살 좀 빼야 겠더라. 배가 완전 삼겹살이야. 큭."
"너, 너 뭐야!"
"하하. 진짜 놀리는 거 재밌네."
이렇게 환하게 웃는 이반이의 모습을 처음이다.
항상 피식_소리나 짧게 미소를 짓는 게 다 였는데 말이다.
가끔은 이렇게 큰 소리로 웃어도 좋을 거 같다.
똑똑_
"도련님, 식사 준비 다 되었습니다."
방 문 너머로 들리는 아줌마 말에 이반이는 배를 두드리며 내 손을 잡는다.
"밥 먹으러 가자."
"그래."
이반이와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역시나 기다란 식탁 위에 음식들이 잔뜩 있다.
반짝 눈이 빛나고 젓가락으로 맛있어 뵈는 고깃덩어리 하나를 집는데 휙_접시를
빼앗아 가 버린다.
"잠깐, 아줌마."
이반이가 아줌마를 부르자 어떤 아줌마 한 분이 접시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온다.
내 앞에 놓은 그릇을 보아하니..이거 죽 아닌가.
"뭐니-_-"
"넌 환자야. 이런 소화 잘 안 되는 거 먹지말고, 죽 먹어."
내 손에 수저까지 쥐어주며 말하는 이반이. 난 정말 괜찮은데=_=
"나 안 아파. 환자라니..당치도 않는 구나."
"아냐, 넌 환자야. 그러니까 죽 먹고, 약 먹어야 되. 어여 먹어."
식탁 위에 내려놓으려는 수저를 내 손에 더욱 세게 쥐어주곤
내 등을 토닥 거려주는 이반이. 지금 뭐 하자는 거니.
내 앞에 있는 별 맛있어 뵈지 않은 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반이를 차마 실망시킬 수 가 없어 수저를 들고 죽을 먹는 나.
이럴 때 보면 인간미 넘치는 내 자신이 이토록 자랑스러울 수 가 없다.
죽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물 한잔을 먹는데 옆에서 밥
한 수저도 먹지 않은 이반이가 아줌마를 부른다.
그러면 아줌마는 내가 먹어 치운 빈 그릇을 가져가시고
약 봉지 하나를 다시 내려놓는다.
"약 먹어야지. 아까 의사 선생님이 열이 많다고 지어 준거다."
참 친절하게도 약 봉지를 뜯어 알 약 다섯 개를 내 손에 쥐어준다.
꿀꺽_이반이를 바라보다 목구멍으로 알약을 넘기고
사약이라도 먹다 살아남은 사람처럼 한 손을 가슴 위에 올려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나.
"다 먹었으면 올라가자."
"너 아직 밥 안 먹었잖아."
"됐어. 빨리! 오늘 재미있게 해 주기로 했잖아."
"천천히 좀 가!"
이반이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내 손목을 잡고서 식당을 빠져나왔다.
긴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더니 제일 끝에 있는 방 앞에 멈춘다.
여긴..예전에 노래를 불러주었던 방.
"아직 12시 안 됐지? 그 전까지 오늘 하루 시간은 널 위해 쓸게."
시계를 보더니 문을 열고 방안으로 먼저 들어간다.
그리고 불을 켜면 환한 불 빛 아래 키보드 위에 긴 손가락을
움직이는 이반이가 서있다.
이반인 나에게 자주 들려주던..내 눈물을 만들어내는 노래를 불러준다.
♬아무리 기다려도 난 못 가. 바보처럼 울고 있는 너의 곁에.
상처만 주는 나를 왜 모르고 기다리니 떠나가란 말야.
보고싶다. 보고싶다. 이런 내가 미워질 만큼.
울고싶다. 네게 무릎을 꿇고 모두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면
미칠 듯 사랑했던 기억이 추억들이 너를 찾고 있지만
더 이상 사랑이란 변명에 너를 가 둘 수 없어.
이러면 안 되지만 죽을 만큼 보고싶다._♬ 김범수-보고싶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반이의 노래.
역시 이반이는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가 제일 멋있다.
바닥에 쪼구리고 앉아 키보드를 치는 손가락 하나, 하나 그리고 이반이의
예쁜 목소리를 듣고 있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이 노래를 들어도 울지 않는 다는 거..
그 전 보다 이반이의 목소리가 더 좋아졌다는 거.
이젠 난 하늘을 보고 웃을 수 있는 내가 되었다는 거..
이반이가 노래를 다 부르곤 쑥스럽다는 듯 바지 주머니에서
반으로 접힌 종이를 꺼낸다.
"이건 나중에 불러 주려고 했던 건데..아니다. 그냥 나중에 불러 줄게."
뭔데 저렇게 쑥쓰러워 하지?
"뭔데? 이반아."
"흠. 그냥 노래 좀 지어 본 것 뿐이야. 아직 완성 안 됐으니까 나중에 들려줄게."
"조금만 들려주라-응?"
"싫어. 나중에 다 완성해서 멋있게 불러 줄 거 란 말야."
그럼-_-^왜 처음부터 말을 꺼낸 거니.
"나 오늘 너 몇 시간 기다렸게? 휴. 누구 때문에 옷도 자 젖구, 머리두 아프구."
"에씨. 알았어. 알았다고. 그 대신 조그만 들려 줄 거야."
"헤헷."
이반인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종이를 다시 꺼냈다.
다섯 시간이나 늦은 이반이는 지금도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my last love was Rheu ha young."
긴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추듯 미끄러지면 이반이의 목소리가 내 귀에
또 다시 하나 하나 새겨진다.
♬그녀가 내 앞에 있네요. 항상 날 보면 슬프게 웃네요.
항상 아프게만 한 그녀한테 너무 미안해요.
그녀는 알까요.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 하루 하루는 그녀를 위한 시간이라는 걸.
이젠 사랑한다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해 버렸는데_♬
울컥_끝까지 노래를 듣지도 않았는데 마음 한 구석이 무척 아프다.
키보드 위에서 춤추고 있던 손가락은 하얀 건반 위에서 멈춰지고
노래를 멈춘 이반이는 날 바라본다.
"내 마지막 사랑은 류하영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내 사랑도 휘이반 너야. 끝까지 내 사랑은 너 일 거야.
날 다시 웃게 만든 사람은 너니까. 날 다시 울게 만든 것도 너니까.
그리고 처음으로 사랑하게 만든 것도..너니까. 마지막도 너 일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내 사랑도..너야..이반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얀 덧니가 보이도록 입가에 미소를 띄우면 난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내가 얼마나 이반이를 좋아하게 되었는지...알았으니까.
80)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들. 그리고 소중한 친구.<프렌즈>*
"그러고 가려고?"
시계를 보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걸 알아차린 난 지금 내가 어떤 차림인지도
잊어버리고 막 이반이의 집에서 나가려는데 이반이가 내 차림을 위, 아래로 훑어보
며 묻는다.
그제야 고개를 숙여 내 모습을 보고 민망함에 웃는 나에게 아줌마 한 분이
깨끗하게 세탁 된 내 옷을 건네 주신다.
"갈아입고 내려와."
고개를 끄덕이고 옷을 꼭 끌어 앉고서 아줌마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5분도 안 돼서 다시 이반이가 서 있는 문 앞에 섰다.
"너무 늦었다. 나 이만 가야겠다. 이반아."
몸을 돌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이반이가 내 손목을 잡는다.
"뭐 잊은 물건 없냐?"
한 손에는 내가 집을 나갈 때 들고 온 손가방을 흔들며 피식
소리를 내며 웃는 이반이.
손으로 이반이의 손에 들린 손가방을 잡으러 들자 이반이는
가방을 뒤로 내 뺀다. 지금 뭐하는 거니.
지금 집에 가서 울 어무니께 싹싹 빌어도 내 두 다리가 나마 날지
의문인데=_=나랑 놀자는 거니.
"좀 주려무나."
까치발을 들어 나뭇가지에 들린 가방을 빼내듯이 아등바등 대는데 이반인 뭐가
웃긴지 피식_소리를 낸다.
"늦었으니까 차 타고 가."
턱 끝으로 내 뒤에 무언갈 가리키고 뒤를 돌아보자 매끈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우두커니 서 있다.
그리고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앞좌석에 검은 정장을 입은
아저씨가 내리더니 뒷좌석 문을 열어준다.
내가 분명히 말하건데 이 아저씨는 분명 이반이 찾으러 호텔에 갔을 적에 옆에
마네킹처럼 서 있던 아저씨가 분명했다.
"아저씨, 집에 데려다 주세요. 전."
"네. 도련님. 타세요. 아가씨."
이반이는 무언가 말하기 곤란한 듯 말끝을 흐리자 아저씨는 내가 차에 타기를 재촉
하셨고, 이반이는 멀뚱이 서 있는 내 몸뚱이를 차안으로 구겨 넣는다.
차 문을 닫고 이반이는 몸을 숙여 선탠이 되어있는 창문 앞에 손을 흔든다.
나도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들고, 차는 금새 쌩하고 출발한다.
창문을 내려 빠르게 지나가는 밖을 내려다보고 있는데=_=
"에취이∼ 콜록."
감기에 걸린 모양이다.
훌쩍거리며 손등으로 콧물을 닦고서 창문을 다시 올렸다.
"저..아가씨."
"아, 아가씨라뇨. 그냥 하영이라고 부르세요=_="
참으로 민망하지 않을 수 가 없다. 아가씨라니.
꽃다운 청춘 열여덟 살 소녀보고 아가씨?
내 말에 아저씨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곤 다시 말문을 열었다.
"도련님하고는 언제부터..만나셨습니까?"
"음..한 삼 개월 좀 지났어요."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며 아저씨한테 말하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운전을 하신다.
그렇게 짧은 대화 속에 차는 금새 집 앞에 멈추었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차에서 내리며 고마움을 담은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 집에
가려고 하는데 어느새 차에서 내린 마네킹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날 부른다.
"저, 아가씨.."
"네?"
뒤를 돌아 마네킹처럼 서 있는 아저씨를 바라보자 아저씨는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 듯한 표정으로 되어버린다.
"..제가 이런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말하는 게 좋을 거 같군요."
"..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아가씨 상처받기 전에..이쯤에서 도련님과 그만 만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아저씨는 그렇게 말씀하기고 난 동그랗게 큰 눈으로 할말을 잃은 채 쳐다보았다.
"그게..무슨.."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그 다음은 도련님한테 들으세요."
아저씨는 의미심장한 말만 해놓고 차안으로 몸을 감춰 버리셨다.
난 선탠이 되어있는 창문을 두드리며 아저씨한테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네?"
"제가 드릴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전 이만."
아저씨는 창문을 두드리며 물어보는 날 보지도 않은 척 하고선 차를 출발시키고,
난 멍한 표정으로 이미 멀리 가버린 차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가 상처를 받다니..그게 무슨..말이야?
설마 이반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아니겠지? 나 때문에..
가뜩이나 아픈 머리를 감싸며 집 앞에서 머뭇거리며 생각을 하다
집에서 지금쯤 몽둥이를 새로이 준비하시고 날 기다리고 계실
어무니 생각이 번뜩 났다.
후다닥_
집안으로 튕기듯 들어가자 불 꺼진 거실에 누군가 앉아있는
형태가 달빛에 비쳤다.
누군지=_=말하지 않아도 탁자에 놓인 몽둥이를 보면 누군지 알리라.
그리고 달빛에 어무니에 성난 얼굴이 여력히 들어 남으로서
내 두 다리는 지금보다 더 두꺼운 무 다리가 되어야만 한다.
.
.
.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 난 다는 말은 다 거짓이었다.
어젯밤 어무니한테 다리를 두들겨 맞고, 늦은 사간 잠이 들었지만
지금 8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난 정말 바보가 아닐까-_-
학교 가야지=_=교복을 입고 집을 나서는 내 팔을 잡는 도이.
"어디가?"
"GO School!"
"정말 멍청이 아니야?!"
도이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쪼르르 다시 나와 달력을 내 눈앞에 내민다.
"오늘은 일요일이라구!"
오-_-이런 조크가 있나.
도이가 아니었으면 일요일날 교복입고 학교 가는
모범생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찍힐 뻔한 나다.
잠깐!! 도이가 쥐고 있는 달력을 다시 한 번 확인 해 보았다.
오+_+좋았어! 이제 얼마 남지 않아구만.
얼른 방에 들어가 빨간 색 싸인 펜으로 마지막 날 9월 31일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흐뭇한 미소를 한껏 지어 보는 나다.
이 날은 하영님이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민 날이란 말이다!
훔하하하! 방에서 얼마 남자 않은 생일에 큰소리로
웃어대는데 도이는 미친 사람 보는 마냥 날 쳐다보며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네. 거기 정신 병원이죠? 저희 누나가 좀 이상해요. 원래 좀 이상하긴 했는데.."
-_-^저 놈이 감히 날 기희경과 같은 사람으로 취급해?
그리곤 얼른 도이의 달력을 찢어 빨간 색으로 내 생일 표시를 하고서
집 앞으로 나갔다.
"기한아-0-놀자!"
기한이네 집 앞에서 소리를 질러대는 나.
그러면 부스스한 머리에 츄리닝 바람으로 기한이 놈이 얼굴을 빼꼼히 내민다.
"뭐야-_-^아침부터 예의 없게."
"선물^--^"
어울리지 않게 씨익 웃으며 내가 선물이라고 하며 기한이 놈이게 내민 것은
아까 집에서 찢은 도이의 달력이었다.
내 생일이 큼지막하게 표시되어 있는 달력!
기한이 놈은 그걸 보더니 순식간에 표정이 일그러지고, 내가 애써 찢은 달력을
바닥에 떨어뜨리곤 문을 닫아버렸다.
이런, 인정머리 없는 놈 같으니라고.
내 생일이 이토록 기한이 놈이 반가워하지 않을 줄을 몰랐다.
휭_바람이 내 머리칼을 흐트러뜨리면 난 입고있던
노란 색 잠옷을 휘날리며 집으로 몸을 숨켜 버린다. 에취이-
"훌쩍. 기한이 놈 어디 두고 보자!"
콧물을 닦으며 기한이 놈에게 독기어린 눈으로 문자를 보내는 나.
[네 이놈! 네가 정녕 무사할 줄 아느냐!]
삐이익_♬
문자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핸드폰이 울려댄다.
[-_-^난 네가 태어난 날이 하나도 반갑지 않아.
나에겐 저주스러운 날이 아닐 수 가 없어.]
이, 이런 매주로 한 대 처 맞을 놈을 봤나.
반갑지 않으면 않은 거지..저주스럽다니..
나도 여자인지라 상처받은 난 더 이상 놈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내일 학교에서 이 놈을 어떻게 죽일까 생각을 하면서
잠이 깬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잠이 들어 버렸다.
오늘 부로 미인은 잠꾸러기란 말은 진실임이 과학적으로 발켜진 순간이다.
다음날 학교/
평소 같았으면 절대 사천이 놈 자리로 행차하는 일은 없었을 터.
오늘은 이들에게 내 생일을 알려줘야 하는 날이다.
그래서 몸소 사천이와 여울이 자리로 성큼 앞에 섰는데 그들은
그런 나를 벌레 보듯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어찌 그런 눈으로 우릴 바라보는 거니? 우리가 너한테 잘못 한 거 있니?"
한참을 바라보다 약 5초 후 겁에 질린 듯한 사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하얀 이까지 모자라 잇몸을 들어내며 생글 웃는다.
더욱 겁에 질린 듯한 사천이 놈과 여울이.
아마 적응이 안 되는 듯 싶다.
"그럼-_-^네 자리로 돌아가. 여긴 우리 허니와 내 자리야."
마치 달려드는 파리를 내 쫒듯 한 손으로 내 몸뚱이를 밀어내며 가차없이 내
말을 잘라먹고 날 투명인간 취급을 해댄다.
"허니, 오늘 수업 끝나고 문구점 가자."
"그래, 너 뭐 살 거 있어?"
"어제 허니 펜 산다고 했잖아."
"참-넌 뭘 그런 걸 다 기억하고 그러니. 히힛."
날 투명인간 취급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쏘아대려다 어차피
이 떨거지들에게 축하 받아봤자 라는 생각으로 이반이
놈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놈이면 충분히 내 생일을 축하해 줄 것이다. 후훗.
그런데 웬 놈이 지금 2교시가 시작되려는 데도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게 영 불안하다.
핸드폰으로 이반이 놈에게 문자를 날리는 나.
[이반아, 왜 학교에 안 오는 것이니. 무슨 일 있는 거야?]
약 10초후 내 책상 서랍에 있던 핸드폰은 거대한 진동소리를 내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못 갈 거 같아. 담임한테 잘 말해줘.]
이게 놈에게서 온 답장이었다.
얼마나 머리가 아프길래 학교에 다 못 오는 것일까.
빗속에서 정녕 몇 시간 동안이나 서 있었던 난 멀쩡한데 말이다.
[그래. 많이 아프니? 푹 쉬렴.]
[응. 겁나게 아프다. 머리가 터질 거 같아.]
[이런, 이런 터지면 안 돼지.]
그렇게 녀석에게 문자를 보낸 지 십 오분만에 답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빙딱.]
아마 이 놈은 십 오분 동안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오는 걸 참기 어려웠다.
"풋."
정확히 내 웃음소리가 앞에서 수업을 하고 계신 선생님
두 귀에 똑똑히 들렸을 것이다.
칠판에 무언가 열심히 적으시던 선생님은 분필의 움직임을
멈추곤 험상궂은 얼굴로 뒤를 돌아보신다.
다행이 웃음소리의 주인공이 나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누구야. 수업시간에 웃은 게?!"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 마냥 조용해 졌고,
난 공책에 열심히 필기하는 척을 했다.
그렇게 선생님은 추궁을 해 왔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자
그냥 조용히 넘어 갈 줄 알았다.
사천이 놈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류하영, 너잖아."
자리에서 일어나 긴 손가락까지 펼쳐 정확히
내 면상을 가리키는 저 못된 놈.
순간 선생님의 시선은 나에게로 꽃히고=_=내 등에서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저 놈을 결코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이다.
사천이 놈을 째려보자 앞에서 수업을 하고 계신 선생님의
굉음이 내 귀를 찔렀다.
"류하영이 학생 맞나?"
"아마도 그럴겁니다."
"왜 신성한 수업시간에 웃었는지 이유를 말해봐."
여기다 대고 이반이놈이 문자를 보낸 게 너무 웃겨 웃었다고
말 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수업시간에 수업을 방해한 것말고도 핸드폰을
사용한 죄까지도 들어나 버린다.
한참을 고민에 빠진 난 최대한 머리를 굴려 고작 하는 소리란 이랬다.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웃음이 나더라구요. 하하."
멋쩍게 머리까지 긁으며 말하자, 선생님 또한 자신의
수업이 재미있었다는데 크게 나무랄 생각이 없으셨는지
헛기침을 두 어번 하시곤,
"다음부터 조심하도록 해."
이 말씀만 하셨다.
이를 부드득 가며 괘씸하기 그지없는 사천이놈을 쳐다보았다.
놈은 수업이 집중하는 척 하며 힐끔 날 쳐다본다. 저런 몹쓸 놈.
수업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천이 놈 자리로 성큼 걸어가는 나.
그리곤 소위 날라리들이 하는 말투와 행동으로 사천이 놈
책상에 불만스럽다는 듯 탁! 하고 손을 올려놓고 다른 한 손은
허리춤에 올려놓고 비꼬는 듯 말했다.
"너 정말 웃기는구나!"
가잖다는 듯 양손을 가슴 위에 꼬고서 녀석을 노려보았다.
"내가 뭘."
"뭐긴? 그러고도 네가 친구니? 이 놈아! 다들 가만히 있는데 그 잘난 손가락으로
잘도 날 가리켰겠다!"
숨도 쉬지 않고 불만스럽게 말을 내 뱉는데 사천이 놈은 할말이 없는지
그저 책상 위에 무언가 정리하기 바쁘다.
"뭐야? 너 내 말이 말 같지 않다는 거야?"
"..안해."
"뭐라고?"
"잘못했어ㅠ_ㅠ"
이런 비굴한 놈 같으니.
놈은 이제야 사태 파악이 되었는지 금새 비굴한 표정이 되어
나에게 잘못했다고 빌고 있다.
이봐, 옆에서 여울이가 어떤 표정이 되어있는지 좀 보라구.
금방이라도 너랑 헤어질 거 같은 표정이야.
잘못했다고 비는데 차마 거기다 대고 쏘아 붙있 순 없는
일이었기에 난 아무 말 없이 내 자리로 가 앉았다.
거대한 진동소리가 책상 서랍에서 울리기 전까지 난 비굴한 놈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나 유혜미야. 오늘 꼭 할 말이 있어. 수업 끝나고 학교 앞에서 기다릴게.]
핸드폰을 열자 보이는 메시지 내용.
내 머릿속에 기억하는 한 유혜미는 이반이의 약혼녀가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 그 여인네는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하는 것일까.
설마, 협박을 하려고? 이반이한테 떨어지라는 말을 하려고?
메시지를 본 후로 머릿속에는 수 만가지 생각이 들었고,
난 그녀에게 답 문을 보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딱히 뭐라 보낼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다.
핸드폰을 쥐고 혼란스러움에 빠진 난 한참을 창문만 바라보았다.
그래, 기사 아저씨도 이런 말을 했었지..
"아가씨 상처받기 전에..이쯤에서 도련님과 그만 만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은데..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야, 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옆에서 기한이 놈이 내 팔을 툭 치며 말하기 전까지는
생각에 잠겨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웃으며 기한이 놈에게 대꾸해 준다.
"생각은 뭐. 내 표정이 어떤데 그러냐."
"음..일주일 동안 화장실에서 볼 일 못 본 사람 표정이라고나 할까?
아님, 한 달 동안 밥에 굶주린 사람 표정이라고 할까?"
내가 네 놈한테 무얼 바라겠느냐 만은-_-^
제발 좀 사람이 생각 할 수 있는 아니, 짐작 할 수 있는
그런 말을 좀 하란 말이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설마 교문 앞에 정말 와 있는 건 아니겠지?
라는 마음으로 교문을 통과했다. 역시 없다. 없어.
그럼, 그렇지. 난 안도의 한 숨을 내 쉬며 그렇게 뒤를 돌아 집으로 가려는데
뒤에서 분명 유혜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네."
순간 내 귀를 의심하며 어정쩡하게 뒤를 돌아보자 과연
그녀는 손까지 흔들며 날 반겨 준다.
아무 말 없이 벙쩌 있는 나를 보더니 유혜미는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왜 반갑지 않은 가보지?"
당연하지! 라는 말을 내 뱉을 뻔했다.
예전에 술집에서 만난 뒤로 다신 길에서 우연이라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할 말이 있다며? 무슨 말이니?"
내 얼굴 가까이 다가온 유혜미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난 빨리 이 여시 같은 계집애한테 벗어나고 싶었다.
내 말에 유혜미는 잠시 고개를 숙여 무언가 생각을 하더니 이내
비장한 표정이 되어버린다.
"말하기 전에, 잠시 널 만나고 싶어하는 분이 계셔. 잠깐 동안은 괜찮겠지?"
내가 무어라 대답도 하기 전에 유혜미는 나 보다 몇 걸음 앞서 걷는다.
"누굴 만나러 가는데? 말하고 가."
"걱정 마. 안 잡아먹을 테니까. 설마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걸어가던 몸을 살짝 비틀어 비아냥대는 목소리에 두 주먹을 굳게 쥔 나였다.
"무서워? 하! 빨리 가자.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거든?"
유혜미는 안 보이게 살짝 코웃음을 치고서 도로 앞으로 나가 택시를 잡곤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보곤,
"안 탈 거니?"
난 아무 말 없이 유혜미 옆자리에 앉았고,
"한림병원으로 가 주세요."
유혜미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옴에 난 동그랗게
큰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병원..? 병원엔 무슨 일로?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자 유혜미는 그저 씨익 웃을 뿐이다.
그리고 택시는 빠르게 병원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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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4.2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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