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시옷 맞춤법에 대한 나의 문제제기에 대해 국어를 오랫동안 가까이 하신 두 분 고수가 훈수를 해 주셨습니다.
역시나 전문가답게 두 분 다 깊은 내공으로 현행 사이시옷 규정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주셨군요.
다시 한 번 고마운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처음 내가 의도하여 주장하는 바와 두 분 고수의 훈수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고 그것을 바로잡아 서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에 사족을 달아 봅니다.
나는 1988년 제정된 사이시옷 맞춤법을 올바로 쓰기가 얼마나 어렵고 불편한지 여러가지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많은 사용자가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사이시옷 맞춤법은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여야 한다고 설파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분은 내가 사이시옷 규정을 미처 숙지하지 못해 그런 혼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잠깐 착각을 하여 이렇게 사이시옷 규정을 알면 그것을 바르게 쓸 수 있다는 의도로 나름대로 정리한 사이시옷 규정을 쉽게 잘 해설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이시옷 규정 정도는 이미 숙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많은 예를 들어 가며 사이시옷을 논한다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 되고요.
실제로 사이시옷 규정은 보통 사람이 완전 숙지하는데 수 십분이면 가능하리라 믿고, 좀 아둔한 사람도 수 시간이면 충분히 이해되겠지요.
내가 처음에 밝혔듯이 규정 자체가 어려운 건 없습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이쯤해서 내가 쓴 글에서 제기했던 핵심적인 질문 하나를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글 맞춤법 30항 사이시옷 규정 전문이나 혹은 두 분이 자세히 제시해 주신 사이시옷 규정 항목을 100% 숙지만 한다면.. 그럼, 틀리지 않고 완벽한 사이시옷을 구사할 수가 있을까요?
어림도 없다는 것이 내 주장의 요지입니다. 규정만 완전히 숙지한다고 사이시옷을 완벽히 쓸 수 있다면 애초에 내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았겠지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내사거 선생이 제시한 사이시옷 규정과 내가 예로 들어 사용했던 단어를 가지고 논증해 보이겠습니다.
4. 고유어+한자어, 한자어+고유어로 구성된 합성어 중 된소리가 나거나 ㄴ 혹은 ㄴㄴ 음이 첨가되는 경우에는 사이시옷을 씁니다.
고등엇값, 고양잇과, 맥줏집, 방앗간, 샛강, 장밋빛, 전셋집, 횟집, 제삿날, 훗날……
5. 고유어+고유어로 구성된 합성어 중 된소리가 나거나 ㄴ 혹은 ㄴㄴ 음이 첨가되는 경우에는 사이시옷을 씁니다.
나룻배, 모깃불, 바닷가, 뱃길, 쇳조각, 아랫마을, 시냇물, 깻잎, 나뭇잎……
"고유어+한자어, 고유어+고유어 를 막론하고, 된소리가 나거나 ㄴ 혹은 ㄴㄴ 음이 첨가되는 경우에는 사이시옷을 쓴다" 라고 했습니다.
'막내 + 동생'은 [망내동생] 여린소리일까요, [망낻똥생] 된소리일까요?
된소리가 나는 경우에 "ㅅ"을 쓴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된소리인지 여린소리인지.. 어느 경우인지 자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직접 발음을 해봐도 분명 막내동생[망내동생]이 맞은 것 같은데, 그건 틀리고 막냇동생[망낻똥생]이 맞다네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국어사전을 뒤져 일일이 낱말을 찾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막내동생[망내동생] X 막냇동생[망낻똥생] O 란걸 알 수가 있었습니다.
즉, 사이시옷 규정을 100% 숙지해도 'ㅅ'을 쓸지 말지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막내 + 동서'는 막내동서[망내동서]일까요, 망냇동서[망낻똥서]일까요?
사이시옷 규정을 완전 숙지했는데도 역시 이게 된소리인지 여린소리인지 모르긴 마찬가지고, 국어사전을 뒤져 낱말을 찾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어? 같은 막내라도 이번엔 여린 소리가 맞네."라며 막내 동서[망내 동서] O 막냇동서[망낻똥서] X 란걸 알 수가 있었습니다.
'배 + 멀미' 도 배멀미{배멀미]인지, 뱃멀미[밴멀미] 사전을 찾아 봐야 배멀미[배멀미] X 뱃멀미[밴멀미] O 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두 줄로 정리하면...
1. 사이시옷 규정을 100% 숙지한 사람도 정확한 사이시옷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2. 사이시옷을 쓸지 말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선 사이시옷 관련되는 모든 단어를 하나하나 배우고, 일일이 암기하고 난 후에야 가능하다.
라고 요악할 수 있습니다.
보통 국민이 이게 가능할까요?
사이시옷 규정을 만든 사람이나 한글 전문가 외의 절대다수의 보통국민이 바른 사이시옷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어떤 문제를 푸는데 모든 공식을 다 알아도 문제를 풀 수가 없고 항상 '해답'을 봐야만 정답이 무엇이지 알 수가 있다면 문제를 푸는 사람으로선 얼마나 막막한 일일까요?
이게 바로 사이시옷 규정입니다.
그럼, 하나 더 실제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기 한글을 열심히 공부해서 사이시옷 규정을 완전 숙지한 외국인이 한 사람 있습니다.
그는 사이시옷 규정을 마스터 했으니 이제 올바른 사이시옷 쓰기를 할 수 있다고 자신하겠지요.
그런데...
사이시옷을 바로 쓰려면 먼저 국어사전에 있는 모든 단어가 (1) 순 우리말(고유어)인지, (2) 한자어인지, (3) 외래어인지 그 단어의 뿌리부터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 그 말이 된소리가 나는지 ㄴ, ㄴㄴ 소리가 덧나는지 하나하나 모두 암기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이시옷 쓸지 말지를 판단 가능하다 라고 말해주면 그 외국인의 반응은 어떨까요?
아마 십중팔구 두 손 두 발 다 들고 올바른 사이시옷 쓰기를 바로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사이시옷 규정이 생기기 전이라면 어땠을까요?
예를 들어 이 외국인이 '만화' 와 '가게'라는 두 단어의 뜻을 알고 쓸 줄만 안다면 '만화가게' 합성어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만화가게'가 맞은지 '만홧가게'가 맞은지 전혀 헷갈리지 않고 '만화가게'라고 거의 완벽하게 올바른 맞춤법을 아주 쉽게 구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주) 현행 사이시옷 맞춤법으론 물론 만화가게 X, 만홧가게 O 입니다.
사이시옷 규정이 터무니없다고 느끼는 다른 얘기를 또 하나 해 볼까요?
2. 한자어+한자어로 구성된 합성어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습니다.
마구간(馬廐間), 일본어과(日本語科), 장미과(薔薇科), 전세방(傳貰房), 제사상(祭祀床)……
내사거 선생이 제시한 먼저 규정엔 된소리나 ㄴ, ㄴㄴ 소리가 덧나면 사이시옷을 쓴다고 되어 있지만, 위와 같이 한자어+한자어인 경우에는 사이시옷을 쓰면 안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를 들어 '전세 + 집'은 '전셋집'이라고 써야 맞지만, '전세 + 방'은 '전셋방'이라고 쓰면 틀리고 '전세방'이라고 써야 맞다는 것입니다.
[찝]이나 [빵]이나 둘 다 된소리가 나는데 왜 한자어라고 해서 "ㅅ"을 붙이면 안된다는 것인지....
이런 일관성없는 어거지 규정을 만들어 놓았으니 일반 국민에게 "전셋집"은 되는데 "전셋방"은 틀리는, 더욱 어색하고 헷갈리는 맞춤법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문자라는 것은 내는 소리에 따라 발음이 달리 난다고 해서 문자 자체까지 변형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등어' + '값' 이 [고등얻깝]으로 발음된다고 해서 '고등어값'이 아니라 '고등엇값'으로 문자 자체를 바꾸어 버리면 어문체계에 혼란이 오지 않겠습니까?
'고등어값' 문자는 그대로 두고 [고등어갑]으로 여리게 발음하든 [고등어깝] 이나 [고등얻깝]으로 되게 발음하든 사람에 따라 혹은 경우에 따라 내는 소리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지요.
** (주) 현행 사이시옷 맞춤법으론 물론 고등어값 X, 고등엇값 O 입니다.
'효과'는 [효과]로 여리게 소리내는 사람도 있고, [효꽈]로 되게 소리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이시옷 만든 사람 생각대로라면 이런 글자도 "효과-->효꽈" "성과-->성꽈" "별도-->별또"로 문자 자체를 바꿔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문자 자체를 변형시켜 나가기 시작하면 결국 보통 국민이 한글 맞춤법을 바르게 쓰는 것은 아예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1988년에 새로 제정된 사이시옷 맞춤법은 너무 헷갈려 대다수 보통 국민이 그것을 올바로 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생각입니다.
국어 쓰기에서 사이시옷 규정이 절대 다수 국민을 바보로 만들어 놓았다는 주장 역시 결코 지나친 것은 아닌 듯 하구요.
이런 사이시옷 규정을 우리나라 국어 학계의 내노라는 권위자들이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불편하지만 그냥 계속 유지해야 할까요?
백보를 양보하여..
사이시옷 규정이 어문학적으로 과학적이고 논리적이어서 한글맞춤법 쓰기에 있어 타당성과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용자(User)인 절대다수 국민이 헷갈려서 혼돈스러워 하고, 그것을 익혀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일부 전문가 외에는 거의 없다는 게 현실이라면 아무리 좋은 사이시옷 규정이라도 그것은 이미 존재 이유가 퇴색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이시옷 맞춤법은 폐지되거나 대폭 축소되는 게 옳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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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두 분 앞에서 내가 또 한 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짓'을 한 건 아닌지 두렵네여...
맞춤법을 연구해온 국어학자가 아니라 분명 나도 모르는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지여...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바로잡아 주시면 고맙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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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비'가 아니고 '장맛비'라는 걸 알았을 때 저도 처음엔 그렇게 불만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장맛 나는 비도 아니고 도대체 장맛비라고 하는 사람들이 누구일까..... 그러나 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모든 표준어는 다수 언중들의 발음을 기준하여 정해지는 것이지요. 장마비라고 발음하는 이들보다 장마삐라고 발음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이를 표준 발음으로 채택하여 장맛비가 된 것입니다. 한두 사람 학자들이 탁상에서 결정한 것이 아니고요. 그리고 이런 사이시옷 조항은 일제시대 때 마련된 한글맞춤법 통일안에서도 채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글학회에서 학술용으로 발간한 <<우리말 큰사전>>(1992)에는 된소리나 거센소리로 발음되는 것은 고유어나 한자어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사이시옷을 쓰고 있더군요. 그래서 일좃권, 투푯권 등 조금은 거북살스럽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던데요, 저는 시가, 시점, 차수 같은 2음절 한자어는 싯가, 싯점, 찻수처럼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사이시옷이 왜 꼭 필요한지, 만약 사이시옷을 없앤다면 우리 언어 생활에 어떤 불편이 있다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국립국어원이나 한글학회에 문의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코멘트 감사 드리고...
내사거 선생의 어드바이스대로 언젠가 국립국어원이나 한글학회에 마음 먹고 문의를 한 번 해 봐야겠슴다.
달걀로 바위치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폭염이 당분간 더 계속된다 하니 건강관리 더욱 잘 하시고... ^^
국문법연구가 국어학자 저리가라 수준입니다. 수십년 언론밥을 먹은 사람이지만 세벗들의 논쟁에 감탄과 함께 경의를 표합니다. 국문법에 대한 연구가 그리 깊을 줄 몰랐습니다, 야매 국어학자들의 식견이 이리 높 으니 권위있는 국어학자인 춘천의 일로선생이 입을 닫고 있지요. 내 소견으론 세 사람 다 옳은데, 굳이 한쪽을 택하라면, 국민 대다수가 쓰기 편한 실용주의쪽에 서고 싶네요. 논쟁하느라 수고많았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이런 토론의 광장이 마련되기 바랍니다. 동로 공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