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공식 일정으로는 마지막날이다.
오전 7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원래는 쇼핑센터를 가기로 했으나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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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숙소에 들어와서 조용히 쉬다가
호텔 주변의 재래시장을 둘러보았다.
재래시장은 어느 나라나 사람사는 냄새가 진동한다.
특히, 시장 들어가는 입구의 좌판은 여기도 똑 같다.
김미진대리와 어르신 부부를 모시고 같이 구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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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것은 똑 같은 것 같은데
그 청결과 위생의 문화수준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경제력과 정비례하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의 어려운 시절, 소시적 시장에서 본 모습들을
여기서 볼 수 있음을 볼 때 더욱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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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경에 체크 아웃을 하기로 되어있는데
어르신들은 미리서 할 일이 없어 모두 정리하고
홀에 기다리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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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호텔 근처의 한국식당인 섬마을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12시경에 하노이로 출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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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베트남은 모계사회라고 했다.
여자들이 다 일을 하고 남자들은 밤에 힘만 쓴다는 것이다.
교육제도는 초등학교 5년제, 중학교 4년제며 고등학교는 3년제며
대학에 들어가면 군대는 안가도 된다고 한다.
하노이로 이동하는 가운데 날씨가 흐려서인지
베트남 날씨는 맑은 날이 별로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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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로 가서 일정은 먼저 황금호수라는 호안계 호수 주변의
한국의 명동이라는 거리에서 스트리트카를 타고
구시가지를 둘러보고 난뒤,
호치민 광장으로 가기로 했다.
하노이에는 호수가 185개가 있는데 호안계 호수가
가장 큰 호수라고 한다.
호안계 호수의 번화가에 도착하여
스트리트카에 몸을 실었다.
마침 날이 궂어서 비가 내리고 있어
날씨는 춥고 음산스러웠다.
시내 거리는 온통 오토바이 천국이라 오토바이 때문에
차량 교통이 수시로 끊기고 있었다.
비가 와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데
판초우를 쓰고 잘도 달리고 있었다.
30여분 정도 스트리트 카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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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람들은 1백년동안 프랑스 식민지를 거쳤기 때문에
식생활이 한끼니는 쌀국수로 하고, 다른 한끼니는 바게트 빵으로 해결한다.
특히, 남쪽지방으로 갈수록 더욱 프랑스식 생활이 고착되어있다.
최근에 베트남을 많이 찾는 나라는 역시나 프랑스며,
그 다음이 독일이다.
이렇게 하노이의 도심을 스트리트카로 둘러보고
바로 이어서 호치민 광장으로 갔다.
가는 중 비가 많이 내리고 시간이 맞지 않아
호치민 관저나, 박물관, 영모는 보지 않고 생략을 했다.
한쪽에서 비를 피해 설명을 듣고 나중에
광장에 가서 비가 오지만 기념촬영을 하고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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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은 1890년 가난한 유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 1910년 21세의 나이로 프랑스로 밀항하여 5년을 살면서
독립운동을 생각하며 지냈다.
1941년 51세에 베트남으로 돌아와서 그 이듬해 세계 제2차대전을 맞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독일이 점령하고 있다가 본국으로 돌아갈 때
베트남이 독립할 때가 지금이다고 생각하고 호치민은 중국에서 내려왔다.
그 뒤 일본이 독일의 허락을 받아 베트남을 점령했다가
1945년 일본이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자,
9월 2일 230명의 독립군과 함께 미국독립선언서를 그대로 낭독해
독립을 선포했다.
호치민광장에는 현재 잔디가 230개가 독립군을 상징하여 놓여있다.
호치민은 2층에 안치되어있다.
오전 8시에서 10시, 오후 2시에서 4시에 참배를 하도록 되어있다.
베트남이 이렇게 호치민을 참베케 하는 것은
그 동안 베트남 사람들에게 영웅이 없기 때문이었다.
호치민은 1969년 9월 2일에 열반했다.
베트남 전쟁이 극에 도달할 때 죽었는데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
죽으면 화장을 해서 동서남북에 뿌리라고 했다.
호치민은 맑스레닌을 존경하지만 그들을 우상화 하는 것에 반대했다.
또한, 본인이 죽으면서도 우상을 세우지 마라고 했는데
그 말이 지켜지지 않아 동상이 엄청 많다.
호치민은 죽어서도 해외출장을 일년에 두 번 간다.
소련에 가서 김일성, 모택동, 호치민이 같은 소련 미용실에서
치료를 받고 오기 때문이다.
호치민은 남쪽 사람들을 많이 걱정했는데
결국 두 동강이 나서 반토막이되고 말았다.
프랑스 사람들이 호치민을 인정을 안해주었다.
1940년부터 54년까지 전쟁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바로
인도차이나 정쟁이다.
프랑스군 2만명이 오는 것을 호치민이 분쇄시켰는데
항복을 안해 제네바에서 남북을 그었다.
그래서 북쪽은 호치민이 다스렸고
남쪽은 프랑스가 다스리라고 했는데
프랑스가 전쟁을 싫어해 미국에게 넘겨주었다.
남과 북의 빈부차가 3배나 되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기차를 타고 북쪽끝에서 남쪽 끝까지 가려면 무려 33시간이나 걸린다.
그러다보니 남북간에 이질감이 많다.
호치민광장에 보면
"호치민 선생은 우리 마음에 영원하며, 공산주의는 영원하다."고 적혀있다.
하루에 몇 만명이 참배를 한다.
호치민 시신을 보는 시간은 단 15초밖에 되질 않는다고 한다.
호치민은 키가 147cm밖에 되질 않고 아이큐는 138이다.
평생을 농민복 3벌로 살았고
신발은 폐타이어를 끈으로 메고 다녔다.
인도차이나 전쟁 8년동안 땅굴생활을 했다.
카멜이라는 담배를 두 갑을 피웠다.
밥은 평생 두 끼밖에 먹지 않은 근검한 생활을 했다.
그리고 결혼도 하질않고 혼자 살았다.
호치민이 가장 마음적으로 존경하는 분이
우리나라의 다산 정약용이라고 한다.
호치민이 가는 곳마다 다산 정약용선생의 책을 수지독송하고
돌아가실 때는 목민심서를 베고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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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호치민 광장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이동을 했다.
공항에 와서도 현지 한국 가이드는 바쁘다고 가버리고
현지의 베트남 가이드가 모든 수속을 밟아 모든 일정을 마무리 하고
하노이에서 현지시각 11시 25분에 출발을 했다.
공항에서 많은 시간을 기다리며 보냈다.
어르신들이 못 드시고 남겨놓은 과일을 버리기가 아까워
같이 먹어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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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은 한국시간으로 오전 5시 반 경에 도착했다.
이상으로 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을 모시고 베트남 문화탐방을 다녀왔다.
우리나라의 가이드가 없이 현지 가이드만 믿고 다녀오는 것은
참으로 모험이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불어 우리나라의 가이드가 서비스 정신이 좀 더 투철하게 요구되어야겠다.
그곳에 도착했으면 도착했는지 확인하고 다음달은 별 일이 없는지 확인하며,
베트남 여행사에 확인도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노력이 없었던 것이다.
중간에 일정이 변경되어 조정하는 문제라든가, 취소된 문제라든가
좀 더 세밀하게 앞으로는 살필 필요가 있다.
이번 여행에 다녀오신 어르신들은 비록 엔트지역의 자이완 사원은 못갔지만
하롱베이를 다녀온 것만으로도 100% 만족을 하며 좋아하셨다.
더구나 전날 비가 그렇게 쏟아졌는데
당일은 날씨가 맑아 여행하는데 지장이 없게 해준데 대해
모두들 감사하며 좋아해 하셨다.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다녀옴에 정말로 감사를 올린다.
첫댓글 사랑합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