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가 분기하여 “우리는 만인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자명한 진리로 본다”고 하는 신조의 참된 의미를 그대로 실천에 옮겨가며 살게되리라는 꿈을.
나는 하나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으스레한 언덕들 위에서 전에 노예였던 사람들의 자손과 전에 노예소유자였던 사람들의 자손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앉을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꿈을.
나는 하나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정과 압제로 시달린 미시시피 강도 언젠가는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변하게 되리라는 꿈을.
나는 하나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어린 네 자녀가 언젠가는 그들의 피부 빛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성품에 의해 평가되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꿈을.
………………………
나는 하나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아메리카가 위대한 나라가 되려 할진대 이것이 현실로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킹 목사는 미국이 가진 근본적 악을 보았다. 미국 사회에 편견과 증오로 가득 찬 인종 차별이란 무서운 죄악을 보았다. 그는 목숨을 걸고 그 죄악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분연히 일어섰던 것이다. 킹 목사는 ‘이중적 통합’을 부르짖었다. 인종 통합에 의해 ‘이중의 자유’를 획득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차별대우를 받으며 가난에 허덕이는 흑인들의 자유와 흑인들과는 종이 다른 양 그릇된 관념에 사로잡힌 백인분리주의자들이 스스로의 편견에서 해방되어 인간인 한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또 하나의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성적인 한 본능을 넘어 이성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킹 목사는 통합을 지상명령으로 삼고 통합이 이루어지는 날을 바라본 것이다. 그는 확신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것이 그가 자신의 동료들에게 제시한 비전이었다. 인종 통합을 위한 킹 목사의 투쟁은 그의 말대로 “사랑에 의한 혁명”이었다. 테네시 주 멤피스의 로레인 모텔 발코니에서 암살되기 전날 앞으로 닥칠 일을 예감한 듯 그의 마지막 연설에서(1968/4/3)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나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나의 관심은 현재가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바란다. 난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을 땅을 보았다. 나는 여러분과 같이 그것에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한 인간으로서 우리가 그 약속의 땅에 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바란다.’암살되기 전날 또 그는 자신의 동지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그래, 나는 오늘 밤 행복해. 나는 아무도 두려워하고 있지 않아. 내 눈은 주님이 오시는 영광을 보았네”그의 비전은 자신의 죽음으로써 언젠가 아메리카 땅에 영광이 오리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 천지에 흑인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감격과 함께 메아리치던 자유의 노래.
자유 얻었네, 마침내 자유 얻었네.
전능하신 하느님께 감사하네.
우리 마침내 자유 얻었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강연을 그 자리에서 들었던, 서두에 소개한 그분은 자신의 글에서 “그대의 예언자적 비전은 한갓 환상이 아님을 믿노라. 그것은 또한 그대의 의지와 같은 강철 같은 의지의 힘에 의해서만 실현됨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라고 적고 있다.미국 44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버락 오바마는 취임사에서 “우리는 두려움보다는 희망을, 갈등과 반목보다는 목적을 위한 단결을 선택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사사로운 불만과 허황한 약속, 그리고 우리 정치사에서 오랫동안 계속됐던 반목과 낡아빠진 도그마들의 종식을 선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했다.
또, “이제 우리의 영구적인 정신과 더 나은 역사를 선택하고 다음 세대들에 물려주기 위한 훌륭한 재능과 고상한 사상을 고취하고,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또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부여받았다는 신이 주신 권리를 재확인하는 시기에 있다”고도 했다. 오바마는 인종의 구별 없이 하나의 국가로의 통합을 주창했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넘어서는 ‘통합’의 의미를 강조하며 한 국가로의 통합을 강조했다. 국가의 통합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종의 벽을 넘어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서로 하나가 될 때, 도덕성과 정직성, 자신의 책임을 다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이 비전으로 제시했던 그 미래상이 가능적 현실로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젠 실현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킹 목사의 꿈이 진정으로 이루어져 미국이 진정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난 미국의 교육제도와 의료제도의 실패를 고백한 미국의 흑인 대통령을 정직한 대통령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정치적 꿈도 이루어지기를 소망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만 않은 모양이다.
“오늘의 일은 투쟁이고 내일의 일은 승리”라는 것을 확신해야
오늘 ‘여기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한다. 우리는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고 있는가? 남북으로 찢어진 이 현실에 가진 자와 없는 자로 양극화되고,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업신여기는 세상. 가진 자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세상. 그 논리에 의해 없는 자가 산 채로 불태워지는 이 현실이 과연 통합된 한 국가의 모습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남북의 분단도 모자라 아예 전쟁의 구렁텅이로 한 민족을 몰아가려는 전쟁광들의 집단 원무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젠 내부의 분열마저 조장해서 종교 간의 갈등과 불화를 만들어 내기까지 하려는 저자들의 행태를 어찌해야 옳단 말인가?
언론을 장악해서 사람의 눈과 귀를 막고, 눈을 뜨지 못하게 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저열한 인간 작태들, 끝없이 이어지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시위와 죽음, 동남아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 차별을 비롯하여 이젠 농민까지 죽어 나자빠져야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이 땅의 대통령이란 자는 과연 다양한 국민의 바람을 통합할 수 있는 비전과 능력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난 회의한다. 자신의 눈과 귀로만 보고 들으며, ‘난 모든 이와 소통한다’고 믿는 어처구니없는 독고다이 인생으로 전락한 정치가의 말로가 보이는 듯하다. 아니, 아예 그런 능력 따위가 있다고도 믿지 않았지만, 그나마 국민을 절망의 나락으로는 빠지겐 하지 말아서야 할 것 아니겠는가?
용산의 저 분노의 불길로부터 시작해, 온 국토를 구제역으로 짐승의 피로 물들인 이 땅의 산하에도 진정 봄은 오고 있는가? 왜 오늘은 그리도 혹독하게 추운가? 자연의 분노다. 더럽혀진 이 산하를 매서운 동장군의 기승으로 침묵의 시위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누가 이 발광하는 자들의 허접스런 춤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인가? 미래의 꿈을 먹어야 하는 젊은이들을 한량없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는 이 정권의 저 악질스러운 행태에 대해 무엇으로 그 분노를 표현하리. 그래도 우리는 미래의 희망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의 현실적 책무는 “오늘의 일은 투쟁이고 내일의 일은 승리”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우린 살아남아야 한다. 자유와 평등을 향한 민주 공화국의 승리를 위해.
소팅(Sorting)하다 문제 생기면 수기(手記)하면 되고…어제 한만호 공판에서의 핵심은 ‘채권회수목록의 증거효력 여부’
어제 두 재판이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천안함 관련 재판 그리고 오후 2시 한만호 관련 재판입니다. 오늘 외근을 나갔다가 오는 길에 어느 재판과 관련된 글을 먼저 쓸까 잠시 생각을 했었습니다만, 그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오전 내내 텁텁함과 불편함을 안겨 주던 그 무엇, 하릴없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 오르게 만들고 입맛마저 싹 가시게 만들었던 불쾌감의 근원지는 바로 하필이면 아침에 눈에 띄었던 허접한 기사 한 짝이었습니다. - ‘한신건영 한 사장 사건 관련’ 한겨레 보도 기사(송경화, 노현웅 기자)재판이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법정 문앞에는 기자들이 빼곡히 몰려들어 진을 칩니다. 방청 자리를 먼저 확보하기 위함이지요.
이 중대한 사건에 기껏 백석도 채 안 되는 재판정을 할당하다 보니, 앉을 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어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연로한 분들이 모두 서서 방청을 하고 있는 앞에서 새파란 젊은 아이들이 앉아 있는 것이 그리 좋은 그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해하게 되는 것은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긴 시간 동안 수첩과 볼펜을 들고 귀 기울이며 부지런히 메모해야 하는 일의 특성과 사실을 기록하고 전달한다는 사회적 기능에 대한 이해와 배려 때문일 것입니다.
때론, 중요한 내용들이 터져 나오고 검사와 변호인 간에 치열한 공방이 오고 가는 와중에 고개 푹 떨어뜨리고 잠에 곯아떨어진 몇몇 기자들을 보면서도 지치고 힘드니 그렇겠지 이해하는 마음이 먼저였는데, 오늘 아침 한겨레의 기사를 보니 만약 곁에 있다면 뺨이라도 한대 후려갈겨 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 오랜 시간 앉아서 적은 것이 겨우 그 정도 나부랭이뿐이며, 그 방대한 분량의 대화록에서 뽑아낼 수 있는 주제가 겨우 그것뿐이었는지, 그 많은 우선순위 앞에서 달아 붙여야 할 제목이 그것뿐이었을까 하는 생각 - 차라리 조선찌라시였다면 이리 처연한 느낌은 아니었을 터인데 하는 생각입니다. 그 기자에, 그 선임에, 그 데스크의 모습이란.
1. 사실 관계를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는 타이틀
한겨레 기사에 대하여 딴지 거는 듯한 모습이 마치 ‘우리 편끼리 그럴 수 있나’ 수준의 온정주의에 기댈 요량으로 지적하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사실 관계를 분명하게 밝혀야 할 언론으로서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그나마 조중동에게는 이미 거두어 버린 지 오래인 마지막 배려인 셈입니다.위의 제목과 기사는 심각하게 사실 관계를 왜곡하고 호도하고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지금까지의 모든 진술들이 뒤집어 진 것으로 보이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인물이 누구이며, 사건의 발단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종속적 관계에 있는 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뒤죽박죽 된 상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개념상실입니다.이 사건의 핵심이자 중심은 ‘한만호’입니다. 그가 ‘정치자금을 건네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함으로 인해 이 사건이 시작되었고, 그가 법정에서 ‘검찰에서의 진술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뒤집음으로 인해 현재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 흐름이 이 사건의 본질입니다. 어제 정 (경리)부장의 진술은 종속적인 관계자로서의 증언입니다. 그녀는 돈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기록한 사람입니다. 만약 그녀가 돈을 직접 어느 당사자에게 전달하는 역할까지 하였다면 상황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랬다면 그녀 역시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돈을 준비해서 한 사장에게 주는 역할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녀의 진술 즉, 한 사장으로부터 “이 돈은 누구에게 전달될 것이다”라고 들었다는 부분은 그녀가 ‘사실로 알고 있는 진술’인 것이지 그 자체가 사건의 본질을 뒤집거나 변화를 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구나 그녀의 진술이 이번에 처음 나온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이 사건 초기 증언에서도 그녀는 같은 진술을 한 바 있습니다.
2. 건설사 사장과 경리부장 간의 금전적 거래관계 - 대여 및 어음할인
한 사장이 법정에서 기존의 진술을 뒤집은 내용이 “한 총리께 돈을 주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그 돈은 박모씨와 김모씨에게 주었던 것이다” 입니다. 그렇다면, 정 부장이 알고 있는 내용(9억 모두 총리를 위한 돈) 중에서 3억은 김 실장(한 총리 비서실장)에게 대여, 3억+3억은 박모+김모씨,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정 부장의 진술의 의미는 <아무튼, 나는 그러한 사실은 모르고 있었고 사장님은 그 돈이 모두 한 총리께 주는 돈이라고 하였고, 그렇게 알고 있었다>라고 하는 정 부장 입장에서의 사실적 관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사장이 진술한바,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으니 그녀는 그렇게 알고 있었을 것>으로부터 전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한 사장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입니다.
사장이 은밀한 자금을 만들면서 <이 돈은 누구에게 빌려주는 돈>, <이 돈은 A씨에게 커미션으로 주는 돈>, <이 돈은 B씨에게 커미션으로 주는 돈> 등으로 말하는 것과 <이 돈 모두 유력한 분에게 건네어지는 돈>으로 뭉뚱그려 단일화하는 것 중 어느 것이 한 사장에게 유리한가 여부 말입니다.<빌려주는 돈>은 대여금이므로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의 성격을 가지며, <커미션>은 공금횡령과 알선수재가 문제 될 수 있는 자금이 됩니다. 정치자금 역시 문제가 있긴 하지만, 한 사장 입장에서 경리부장에게 어떤 명목으로 말했는지 여부는 순전히 한 사장의 유·불리에 따른 문제인 것입니다.
더구나, 사장인 한만호와 경리부장인 정모씨는 단순히 회사 내에서 사장과 월급쟁이 경리부장이라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 부장은 총 15억에 이르는 돈을 회사에 투자 혹은 어음할인 등으로 얽혀 있습니다. 선의로 보자면 어려울 때 도왔던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달리 보자면 대여 및 어음할인으로 고율의 이자라는 이득을 취했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정 부장은 총 15억에 이르는 대여 혹은 어음할인자금 대부분을 회수하고 회사로부터 아직 3억의 받을 돈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건설사 대여와 어음할인의 특성을 감안할 때, 3억의 받을 돈이 원금에서 까먹은 3억인지, 고율의 이자 및 수수료를 포함한 받을 돈의 일부인지 여부는 그녀의 장부를 세밀히 들여다보아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어쨌거나, 부도 직전 자금에 쪼들리는 경영자인 한 사장과 (회사로부터 자신이 찾아가야 할 몫이 남아 있는) 자금 입출금을 담당하는 경리부장 간에 <비밀자금 지출에 관한 대화>가 정상적일 수 없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추론일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은 단순히 그녀가 어떤 증언을 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조명되어야 할 팩트라 생각됩니다.
3. 어제 한만호 공판에서의 핵심은 ‘채권회수목록의 증거효력 여부’
어제 공판을 통틀어 가장 핵심 사안은 남모씨의 강요에 의해 정 부장이 작성하였다는 ‘채권목록’이 증거로서 어느 정도의 효력을 갖고 있는가 여부인 것은 새삼 말할 나위가 없다 할 것입니다.그 채권목록은 한 사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한 사장에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주도하에 작성된 문서이며, 전직 고위임원으로부터 ‘조작된 서류’라는 진술이 나왔던 문제의 서류입니다. 그것은 한 사장의 거짓 진술의 기초가 되었고, 검찰에서 전직 총리를 기소하고 법정에 서게 한 핵심 서류가 됩니다.그러나 그 문서는 치명적인 오류들을 안고 있습니다. <엑셀로 작성된 파일을 소팅(Sorting)하는 과정에서 항목이 잘못되어 누락되는 바람에 수기로 첨가하였다>는 부분은 그 자체로 증거효력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발언입니다.
엑셀프로그램을 조금이라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어떤 현상인지 모르지는 않고, 컴퓨터에서 점 하나라도 다른 문자로 인식하게 되어 같은 내용이지만 Sorting시 별개의 항목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컴퓨터를 조금만 다루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것이 ‘몇 억’의 존재 여부를 좌우하는 단서로서의 주장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경리부장’으로서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시 정리할까 생각도 했지만 귀찮아서 그냥 손으로 적었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그 증언의 진실성 여부조차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작은 건설사들의 한계이고 고질적인 병폐이기는 하지만 자금에 쪼들리는 사장과 돈을 만지는 경리부장의 지위적 혹은 역할상의 상관관계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얽힐 수 있다는 것 역시 이 사건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장면 하나 : 채권회수목록이 빼곡히 적힌, 정갈하게 인쇄된 내역과 수치가 기록된 문서가 스크린에 비취지고, 그 하단에 수기로 작성된 금액이 적혀 있었습니다. 변호인이 정 경리부장에게 물었습니다. "인쇄된 내역 하단에 적혀있는 수기된 금액은 무엇인가요?" "......"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시력이 좋지 않아 미간을 찡그리고 한참 스크린을 쳐다보던 정 경리부장이 입을 뗍니다. "저건 제 필체가 아닌데요... 제 글씨가 아니고... " 그러자 법정과 방청석의 모든 사람들이 스크린과 정 부장을 번갈아보며 어색한 침묵을 흐릅니다. 그때.. 검찰석에 앉았던 부부장 검사가 일어나며 마이크를 잡고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뗍니다. "아, 저것은 검찰에서 적어 넣은 겁니다. 오해가 있을까봐 말씀드리는 건데, 검찰에서 B장부에 적여 있는 내용를 저기에다 옮겨 적어 넣은 겁니다.." # 결론 : 재판이 진행중인 사건의 중요한 증거물에, 검사가 임의로 수기로 기록을 하여, 마치 그 자체가 전체적인 증거인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어떠한 이유로든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며 그러한 검찰의 행위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보편적인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
최중경과 전두환, 그들이 ‘복지의 적’인 이유--[기고] 한국은 ‘탈세범의 천국’, 복지는 없다--( 선대인 )김광수연구소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대전 유성구의 밭과 충북 청원군에 있는 임야를 대상으로 부동산 투기를 한 의혹이 드러났다. 최 후보자는 거래 사실조차 몰랐다고 발뺌했지만, 그걸 어느 누가 믿겠는가. 더구나 서울 강남 오피스텔 임대소득에 대한 부가가치세 탈세 사실도 밝혀졌다.현재 140억 원대의 자산가인 그는 현 정부 초기 기재부 차관으로서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을 도와 종합부동산세를 사실상 무력화한 전력도 있다. 종부세 무력화로 그는 수천만 원의 종부세를 줄일 수 있었다.알다시피 세금은 이 땅에서 태어난 당신이 공공 서비스를 받을 이용료에 해당한다. 당신이 잘 가꿔진 공원을 거닐고, 지하철을 이용하고, 사방팔방으로 뚫린 도로를 따라 여행하고, 화재가 났을 때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고,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 경찰이 달려오는 것도 모두 이런 공공 서비스에 대한 이용료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군대의 많은 군가들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편안하게 밤잠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이 땅의 아들들이 혹한의 겨울 새벽에도 최전방 철책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런 공공서비스는 국가가 아닌 민간시장에서는 잘 제공하지 않는다. 물론 아파트 경비원이나 민간 방범서비스처럼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일반 가계가 그런 서비스를 개별적으로 이용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내 집 앞이 비만 오면 진흙탕 길로 변한다고 해서 그 앞에 포장도로를 까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설사 그 정도는 가능하다고 해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여행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깔거나 전용 헬기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는 막대한 돈이 든다. 따라서 우리가 내는 세금은 이 같은 공공서비스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 구매하는 자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돈을 잘 내도록 하기 위해 국가는 우리 모두에게 납세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벌금을 내거나 실형을 사는 등 처벌을 받게 돼 있다.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나라에서 우리의 재산권을 행사하는 데 일정한 제약이 되지만, 세금을 내고 나면 우리는 자신의 재산을 자유롭게 획득해 보유하고 처분할 수 있다.그래서 우리 모두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세금을 내고 나면 대한민국의 떳떳한 납세자로서 상응하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아니 누려야 한다. 이것이 원리이고 당위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나 세금을 성실하게 내는 당신은 지금 이 땅에서 ‘봉’ 취급을 받을 뿐이다. 네이버의 지식검색에서 ‘납세의 의무를 잘 지켰을 때 이로운 점’을 묻는 질문에 “남들이 바보라고 부릅니다”라는 답이 올라오는 세태다. 하지만 그런 답을 읽는 우리는 왜 쉽게 부정하지 못하고 서글픈 웃음을 짓게 되는가.세금을 잘 내는 사람이 왜 바보가 되는가. 그것은 누군가는 정직하고 성실히 내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요금을 내지 않고 버스를 타는 무임승차자(free-rider)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가 이 나라의 사회경제적 약자라면 ‘생활이 곤궁해서 그러려니…’ 이해라도 하겠지만 그런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재벌들이고 최고의 권력자들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글 머리에 소개한 최중경 후보 경우는 어찌 보면 약과다.
예를 들어, 2008년 특검 과정에서 4조 5000억 원에 이르는 차명재산 보유 사실이 드러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단 한 푼의 상속세도 내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냈다면 최소 2조 원의 상속세를 내야 했지만,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돈이 넘쳐나서 주체도 못할 국내 최고 재벌이 세금 안 내려고 얼마나 파렴치한 짓을 한 것인가. 그런가 하면 이 회장이 막대한 재산을 세금 한 푼 안 내고 이리 빼돌리고 저리 빼돌릴 동안 도대체 이 땅의 국세청과 금융감독원과 검찰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건희 회장에 그치지 않는다.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인식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수조 원대의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낸 세금은 달랑 증여세 16억 원이 전부다. 2010년 가을 잇따라 불거져 나오는 각종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과 탈세 의혹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일은 비단 삼성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다.
뇌물수수와 군형법상 반란 등의 혐의로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어떤가. 미납한 추징금 1672억 원을 안 내면 곱게 안 낼 것이지, 추징시효 만료를 몇 달 앞두고 300만 원을 납부해 지켜보는 국민들을 우롱했다. 1원이라도 납부하면 3년씩 강제집행이 면제되는 것을 노린 것이다. 전씨는 29만 원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의 3남 1녀는 수백억 원대의 자산가다. 손자, 손녀까지도 거액의 부동산 소유자다.그런데 이렇게 추징금을 안 내고도 그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너무나도 훌륭히 받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그의 자택 주변을 가보라. 경찰 1개 중대가 주변에 좍 깔려 경호를 서고 출입을 엄중히 단속한다. 그가 일찌감치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주변 주차 구역에 대 놓은 차를 빼달라는 경찰의 재촉이 여간 성가시지 않다.
검찰은 추징금 징수가 어렵다고 우기고 있지만, 국민들은 검찰의 그런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실제로 서울방송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전 씨에 대한 추징시효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검찰에서 먼저 연락을 해와 전씨가 300만 원을 납부했다는 정황을 방송했다. 이쯤 되면 검찰은 강제집행에는 전혀 뜻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전 씨의 버티기를 오히려 도와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전직 대통령까지 갈 필요도 없다. 현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자신의 자녀들과 자신 및 부인인 김윤옥 씨의 운전기사까지 위장취업시켜 경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탈세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서울 강남권에 여러 채의 빌딩 등을 포함해 모두 수백억 원대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0∼2002년 동안 사실상 세금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보험료를 월 1만 5000∼2만 3000원씩만 내기도 했다. 한 달 수입 100만~200만 원인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도 이 대통령보다는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낸다. 그 밖에 그는 지방세를 체납해 여섯 차례나 재산을 압류당했으며, 고용산재보험료를 미납해 강제 추징당한 전력도 있다. 미국이라면 이 가운데 단 한 가지 사실만 드러나도 대통령은커녕 정치권에서도 사실상 추방당할 텐데, 이런 사람이 대통령까지 되는 게 대한민국의 기막힌 현실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98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적절한 관계’ 의혹으로 한참 궁지에 몰려 있었지만, 결국 그 해 열린 중간선거에서 승리했다.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메리카와의 맹약’이라는 이름 아래 보수 정책 의제들을 이슈화해 당시 공화당의 스타로 떠올랐던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의 탈세 사실 때문이었다. 그가 국세청으로부터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자 미국 하원 윤리위원회는 그에 대한 징계 권고안을 결의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의원직을 사퇴해야 했고 사실상 정치권에서 추방됐다.이 대통령뿐이면 다행이다. ‘대통령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인 신재민 전 문화관광부 차관은 장관 임명 인사청문회에서 10억 원대의 부동산을 3년 이내에 팔고도 등기날짜를 맞춰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가 드러나 낙마했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미국시민권자인 딸이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았는데도 국내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도록 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전·현직 정부의 장관들이나 정치인들이 부동산 투기 과정에서 벌어진 탈세나 건강보험료 등을 체납, 미납한 경우는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엄정한 처벌을 비켜갔다. 당장 진수희 장관만 해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일반 직장인들은 칼같이 내야 하는 세금을 이들은 어떤 신출귀몰한 재주가 있기에 내지 않을 수 있을까. 심지어 그렇게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사실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도 제대로 된 처벌도, 세금 추징도 당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일까.
동창회비를 제대로 내지도 않은 사람들이 동창회장이나 총무를 맡아 떵떵거리고 위세를 부리고 있는 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 많고 힘세다는 사람들부터 국민의 기본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무임승차를 하는데 원하든 원치 않든 꼬박꼬박 세금을 내야 하는 ‘유리알 지갑’ 인생들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이러니 대한민국의 성실한 납세자들은 ‘봉’ 취급을 당하고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이뿐인가. 당장 얼마 전 나온 “쏘나타 평생 몰면 기름 값만 1억 4천만 원” 기사를 보면 일반인이 평생 내는 기름 값 가운데 세금이 절반인 7000만 원 정도에 이른다. 그것도 이 세금은 모두 삼성 이건희 회장과 우리가 똑같이 내는 간접세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평생 내는 세금은 평균 잡아 약 5억 원에 이르게 된다. 이 엄청난 돈들이 한국 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삶의 질 향상에 제대로 쓰이지도 못하고,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의 시름을 달래는데 제대로 쓰이지도 못한다.더구나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납세하는 사람만 ‘봉’이 되는 현실은 어떤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경제 규모는 7500조 원, GDP로 대표되는 생산경제 규모는 1064조 원에 이른다. 자산경제 규모가 생산경제보다 7배 크지만, 부과되는 세금은 생산경제 쪽이 5배 이상 많다. 근로소득에 불로소득보다 30배 이상 과중한 세금을 매기는 셈이다.
간이과세제를 배경으로 세금계산서 없는 거래를 통해 자영자들의 탈세도 매우 심각하다. 건강보험의 직장 가입자는 고소득자가 많지만, 지역가입자 중 고소득자는 멸종위기종으로 보일 정도로 탈세가 만연해 있다. 더구나 부패와 각종 비자금의 온상 건설업계에서는 매년 10조~20조 원씩 비자금이 조성돼 수조 원의 탈세가 횡행하고 있다.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는 감세정책으로 오히려 전속력으로 역주행하고 있다. <도표 1>을 보면 국세 수입의 3대 축 가운데 법인세, 소득세수는 줄어드는데 모든 국민이 소득수준 상관없이 내는 세금인 부가가치세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 <도표 1> (주) 국세통계연보로부터 KSERI(김광수경제연구소) 작성 |
또 아래 <도표 2>를 보면 ‘서민경제 지원을 위한 세제 개편안’이라고 떠벌렸던 감세정책 이후 고소득층인 5분위의 조세부담은 감소하는 반면 저소득층인 1,2분위의 조세 부담은 느는 추세가 확연하다. 도대체 저소득층 세금 부담을 늘리면서 서민경제를 지원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 <도표 2>(주) 통계청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
이처럼 정직하고 성실한 납세자들만 ‘봉’이 되는 현실,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왜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떠나 이 근원적인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해 제대로 언급하지 않는가?진정으로 한국사회 근본적 개혁을 위해서는 이제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개혁에 나서야 한다. 집값, 사교육비, 보육비, 고물가 등의 민생고 해결하기 위한 건전한 경제구조를 만들고 저출산고령화 충격에 따른 생산경제 위축과 복지부담 증가에 전략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식 복지론’이든 ‘보편적 복지국가론’이든 말로는 뭘 못하겠는가?
근원적인 과세구조 불평등에 대한 개혁과 토건사업 등 낭비성 예산사업에 대한 구조개혁 방안 없이 말로만 떠드는 ‘복지국가’는 가능하지 않다.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라면 여야 떠나 이 문제를 심각히 다뤄야 한다. 더구나 올해부터 저출산 고령화 충격이 본격화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결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그런 점에서 우리가 초등학교 아이들 친환경 식단으로 밥 먹이는 정도의 문제를 가지고 티격태격하거나 감세정책의 세율 일부를 가지고 노닥거릴 만큼 한가하지 않다. 더구나 생산경제 위축과 복지부담 증가라는 ‘이중의 충격’을 불러올 저출산 고령화 충격이 본격화되는 시대를 앞두고 근본적인 조세구조개혁과 세출 구조조정은 절실히 필요하다.
여기에서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최근 출간한 <프리라이더: 대한민국 세금의 비밀 편>을 참고해 보기 바란다.) 개발연대 때 구축된 시대착오적인 조세구조와 재정지출구조를 개혁한다면 양쪽에서 50조 원씩, 약 100조 원의 추가 재정 여력을 중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이른바 50/50 전략이다. 하지만 현재 정치권은 조세 및 재정 구조개혁에 대한 근본적 논의는 도외시하고 시대착오적인 ‘부자감세’에 집착하거나 여전히 성실한 납세자들의 부담을 늘린 증세론부터 거론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유권자의 뜻을 반영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런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납세자들의 목소리를 모아 ‘납세자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실제로 최근의 의무급식 지원 논란과 예산안 날치기 과정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우리의 세금이 어떻게 걷혀 어떻게 쓰이는가에 대해 상당한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평균적인 생활인이라면 평생 내는 세금은 줄잡아 5억 원에 이른다. 이 5억 원의 주인 노릇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 나라의 운명이 바뀐다. 이 돈을 제대로 쓰면 이 나라 경제에 활력을 주고 국방을 튼튼히 하며 우리 이웃의 약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다. 우리 부모님들을 좀 더 편안히 모시고, 우리 아이들 교육의 질도 크게 높일 수 있다.
반면 이 돈을 잘못 쓰면 기득권의 배만 더욱 불리고 금수강산의 자연을 황폐하는 엉뚱한 사업들을 잔뜩 벌여놓게 된다.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이웃들이 고통받게 되고, 많은 돈을 탕진하면서도 우리의 삶은 개선되지 않는다. 따라서 당신이 이 나라가 잘되기를, 삶의 질이 올라가기를 바란다면 이제 5억 원이 어떻게 걷히고 쓰이는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납세자 혁명에 함께 나서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에게 ‘걸었다’”
1월 19일 오후 7시 충남도청에서 노무현재단 주최의 안희정 지사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안희정 지사 인터뷰는 배우 문성근에 이어 노무현재단이 주최하는 두 번째 인터뷰입니다.안희정 지사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20여 명의 노무현재단 회원과 블로거들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명언들을 쏟아냈습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해선 명쾌하면서도 절제된 비판을 했습니다.그런 안희정 지사를 보면서 지사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안희정 지사가 정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점점 쌓아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날 참석자들의 고개를 연신 끄덕이게 했던 안희정 지사의 말 몇 개 소개합니다.
1.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에게 ‘걸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각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안희정 지사는 “노무현 대통령은 일을 ‘맡긴 게’ 아니라 바로 사람에게 ‘걸었다’”고 답했습니다. 걸어버리니 떠날 수 없었고 권한이 생겨 더 책임을 가지고 일을 했다고 합니다. 안희정 지사는 사무국장 시절을 그 예로 들었습니다. 다른 정치인과 달리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자금을 뭉텅이 돈으로 구해 오는 게 아니라 소액후원에 의지했는데 사무국장인 안희정 지사가 허락하지 않으면 노무현 대통령도 돈을 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결정권마저 사람에게 걸어버렸습니다.
2. “혁신은 신뢰다.”
안희정 지사의 선거 슬로건인 ‘행정혁신’에 대해서는 혁신을 효율과 생산성으로 보는 건 좁은 생각이라며 혁신은 결국 행정을 함에 있어 신뢰를 주는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사회를 맡았던 노무현재단 관계자는 이 말을 평하면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떠올릴 만큼 혁신에 대한 신선한 정의였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3. “정치를 하면 예뻐진다.”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는 말에는 “사람은 정치적 태도와 견해를 가질 때 예뻐진다”며 성장하면서 어느 순간 자신에게 맞서는 아들에게 겉으로는 ‘이놈 봐라’ 하지만 속으론 흐뭇해 하는 아버지처럼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을 보는 시각도 그럴 거라고 답했습니다. 여자에게 인기를 얻으려면 당당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인 거 같습니다.
4. “구제역 사태에서 대한민국의 품격을 봤다.”
구제역 사태에 대해 안희정 지사가 보탠 시각 하나는 좀 놀라웠습니다. 안희정 지사는 대한민국이, 가축이지만 죽어가는 소를 보며 눈물을 흘릴 정도가 되었다는 점을 얘기했습니다. 동물의 죽음에도 눈물을 흘리는 이 나라가 점점 품격을 갖추어 나간다는 점에 주목한 것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는 안희정 지사의 긍정성이 도정에도 좋은 영향을 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5. “이명박 대통령 특별법 준수하겠다고만 하라.”
안희정 지사는 세종시 문제에 대해 잘하겠단 말까진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법을 따르겠다는 말이라도 해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시장이 안심하고 투자할 것이라면서 지금 대통령의 태도는 ‘거봐라 내가 말한 대로 잘 안되지 않느냐’ 말할 수 있길 기다리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6. “로미오 가문과 줄리엣 가문을 화해시키겠다.”
안희정 지사는 진보와 보수 양쪽의 화해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보수는 식민지와 쿠데타 등 오욕의 역사를 발전이 있었다는 식의 불가피론으로 합리화하지 말고 진보는 대한민국이 6·25 때 이 땅을 지킨 사람들이 세운 나라라는 걸 존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합의하면 우리는 20세기를 과거로 돌리고 미래를 재밌게 논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한 안희정 지사의 말은 아주 민감한 발언입니다. 현 정치 여건으로 볼 때 진보와 보수 어느 쪽으로도 이해받지 못하고 양쪽의 공격만 받을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그러나 노무현의 사람인 안희정만큼 이런 화해의 언어에 진정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화해의 적임자가 했다는 점에서 생각해볼 말이었습니다.
세금폭탄론’ 안먹히네…복지 증세 여론 높아
복지 논쟁이 증세를 포함해 재원마련에 대한 논의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의 우려와는 달리 실제 민심은 증세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사가 20일 나왔다. 포털사이트 야후가 네티즌폴에서 19일부터 실시한 ‘무상복지 증세 논쟁’에 대한 네티즌 여론조사(9321명 참가)에서 20일 오후 5시 20분 현재 ‘무상복지 실시하고 증세’에 대한 응답이 34.4%(3203명)로 ‘무상복지 포기하고 세금유지’(23.1%, 2150명)보다 11.3%p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가장 높은 응답은 ‘세금 한도내 일부 무상복지’가 42.0%(93915명)로 가장 높지만 현재 재원으로 무상복지가 힘들 경우 세금을 올리더라도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은 것이다.
“30억 이상 자산가에 부유세를 부과하자”는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의 주장에 대해서도 총 4360명의 참가자 중 찬성이 69.1%(3012명)으로 반대 30.2%(1317명)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실제 보수진영은 20대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며 미래세대의 ‘세금폭탄’ 공포에 호소하고 있지만 복지 확장으로 부유층들의 세금 부담이 늘어날 것에 대해 더 크게 우려하고 있는 분위기다. 뉴라이트계 바른사회시민회의의 김상겸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19일 토론회에서 “세금은 누구나 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담세력이 있어야 납부할 수 있다”며 “현재에도 많은 부분을 대기업, 고소득자들이 부담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증세에 대한 논의는 진보진영내에서도 나뉘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이날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와 합동 토론회를 갖고 “재원대책 없는 복지정책은 거짓”이라며 “재원 문제의 핵심은 ‘세금’이며 ‘세금’ 문제의 핵심은 ‘조세구조개혁과 증세’”라고 증세와 부유세의 구체적인 도입 방법을 제시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18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증세에 대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책임을 나누는 것이고 조금 더 여유 있는 분들이 책임을 좀 더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드리는 일이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 적극적인 증세도 필요할 테고 비과세 감면도 역시 필요한데 이 둘은 사실상 똑같은 무게를 지닌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소득세법과 법인세법 개정을 냈다. 소득세 구간에서 최상위층의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에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근로소득자 중에 한 0.5% 수준으로 6만명 정도 되는 그분들한테 소득세를 좀 더 걷으면 1조5천억원 정도 더 걷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21일자 칼럼에서 “증세부터 꺼내면 증세 찬반론이 복지 찬반론을 대체, 국면을 뒤집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증세없는 복지는 힘을 잃을 것이다”며 “더 내고 더 많이 받기를 설득해야 한다”고 증세에 대한 본격 논의를 주문했다.
반면 김효석 의원은 “복지 재원은 증세보다는 재정 개혁과 정부 개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부유세는 윗돌을 빼 아랫돌로 괴는 ‘로빈후드’식 세금이다, 부자에게 꼬리표를 붙이는 세금은 지속시키기 쉽지 않다”고 부유세에 반대했다. 홍성태 상지대학교 교수는 트위터에 “어렵게 조성된 복지국가 열기가 급속히 와해될 것 같다”며 “재원 논의가 왜곡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홍 교수는 “한국에서 복지국가는 세금을 잘못 쓰는 토건국가와 세금을 잘못 걷는 부자감세를 해결하는 것으로 시작돼야 한다”며 “증세는 다음 단계의 과제”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계안 전 의원도 “긍국적으로 세금”이라며 “그러나 증세, 부유세를 말하기 이전에 조세개혁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진영이 ‘망국적 포퓰리즘’에서 ‘세금폭탄론’으로 공세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진보진영은 재원에 대한 현실적 고민을 바탕으로 A부터 Z까지 다양한 논의들이 시작되고 있는 분위기다. 포퓰리즘 공세 국면에서 벗어나 국가 미래에 대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복지 논쟁에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매우 좋은 일이다”며 “보다 치열하게 보다 구체적으로!”라고 주문했다
내 소원은 민주정부 장기집권… 100만 명이면 된다”-양정철
문성근.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개성 강한 연기로 국민들을 울리고 웃긴 배우. 이지적 이미지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이름을 날리다, 어느 날 노무현 선거에 뛰어들어 강렬한 포스를 남긴 한국의 대표적 현실참여 문화예술인. 자신이 밀었던 후보가 대통령이 되자 아무 덕도 안 보고, 뒤도 안 돌아본 채 은둔에 들어간 결벽증 환자 같은 사람. 이 때문에 방송-영화판에서 ‘신세 망친’ 것으로 알려진 비운의 주인공. 노 대통령 서거 후 자폐생활을 이어가다 1주기 행사 때 눈물의 추모연설로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사람.
따라서 영화나 연극만큼이나 극적인 인생을 살아온 사람. 그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배우로서가 아니라 시민혁명을 주창하며. 무대가 아니라 시장골목을 누비며. 거리극의 제목은 ‘100만 민란 프로젝트,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궁금했습니다. 그만큼 ‘쓴맛’을 봤으면 됐지, 왜 또 사서 고생하는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무모해 보이는 고난의 길로 다시 나섰는지. 14일 안산의 한 시장골목 카페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안산시민들과의 민란행사를 세 시간 앞두고, 그 간의 굴곡 많은 인생과 현재 생각, 앞으로의 삶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2012, 총선서 승리하면 대선도 이긴다”
양정철(이하 양) : 괜찮으세요? 몇 달째 빡빡한 전국순회일정 소화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얼굴이 덜 상했어요.
문성근(이하 문) : 체질인가 봐. 아직 쌩쌩해. (웃음)
양 : 요샌 100만 민란 활동에 거의 올인하고 계시죠. 모르는 분들이 아직 많은 것 같은데 100만 민란 프로젝트가 뭐예요?
문 : 2012년 12월이 대선인데, 4월에 총선이 먼저 있어요. 그래서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대선에 이길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아요. 어떻게든 총선을 이겨야 하는데, 지금 야당이 다섯 개, 사회당까지 치면 여섯 개로 분열돼 있는 구조거든요. 이걸 어떻게 극복할 거냐. “지난 6·2선거에서 연대를 했으니까 그 방법으로 가능하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6·2선거 경우엔 후보의 층이 네 개란 말이에요. 기초의원,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광역단체장. 후보는 수천 명. 주고받기가 얼마든지 가능했는데도 불구하고 중앙에서의 연대는 깨졌어요. 각 지역별로 노력한 거였죠.
그런데 2012년 총선은 국회의원 240개 지구당에서 한 자리를 놓고 모든 정당이 경쟁을 하는 구도거든요. 그러니까 벌써부터 조직 만들고 돈 쓰기 시작하고, ‘왜 내가 되고 저 사람은 안 되는가’ 논리 개발하면서 서로 상처를 주기 시작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 임박해, 어떻게 후보를 조정해 낼 것이냐? 그 방법으로는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거죠.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은평을’이나 경기도지사같이 선거에 임박해서 후보단일화하는 건데, 방법은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겠죠. 그렇게 되면 최선의 후보가 안 뽑힐 가능성이 커요. 바로 은평을 같은 경우죠.
최선의 후보가 뽑혀도, 선거는 연애 같은 거거든요. 후보자와 유권자가 마음을 주고받는 과정이에요. 이미 한번 마음을 줘버린 유권자 입장도 있고 당원들 입장도 있죠. 그러니까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탈락하면, 처음에 지지했던 후보만큼 단일화된 후보를 지지하지 않게 돼요. 그게 경기도지사 선거의 경우죠.
양 : 재미있는 메타포네요.
문 : 물론 ‘불리한 점이 있다’ ‘불리한 점을 가지고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어요. 민주당의 변화를 추동해볼 기회를 상실한다는 거예요. 민주당은 지금 반민주적 운영구조를 갖고 있고, 방치하면 그 정당구조의 한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전혀 남지 않아요. 총선을 이기려면 한나라당과 1:1로 맞붙는 최강의 후보를 민주진보진영에서 찾아내야 된다, 그 방법은 결국 같은 정당 안에서 상당한 기간을 두고 경선을 통해서 최강의 후보를 뽑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판단이 되는 겁니다.
그랬을 때 방법은 정당 지도부 간의 통합인데, 이거는 정당 내부 논리가 있고 기득권이 있어서 안 되는 거죠. 연대가 안 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남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 다수가 모여서 국민의 힘으로, 여론의 힘으로, 야 5당을 압박해서, 그들이 국민의 뜻에 복종하게 만들고, 그 안에서 야권 단일정당을 만들어서 후보를 단일화하는 것이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게 생각한 거죠.
양 : ‘취지와 뜻은 좋은데, 현실적으로 그게 되겠느냐?’ 하는 걱정이 많은 게 사실 아닌가요?
문 : 처음에 걱정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첫 번째는 유력한 정치인이 없다, 두 번째는 2012년 선거 일정을 국민들이 잘 모르신다, 대선 전에 총선 있다는 점도 모르신다, (다들 대선 후보만 관심을 갖고 있는데, 전 전혀 없거든요.) 세 번째는 촛불이 붙었다든가 선거라든가 하면 모르는데, 평시체제에서 이런 운동을 어떻게 긴박하게 호소할 거냐, 이런 걱정인 거죠. 그것 때문에 모든 분들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 많이 했어요. 그래서 채택한 방법이 삼보일배입니다. 거리로 나가 바닥부터 불씨를 지피고 전국을 돌았어요.
반응이 오고 느낌이 왔어요. 서서히.한 전환점이, 우금치 대회였던 것 같아요. 시민사회단체 지도급에 있는 분들도 참관을 많이 왔고 정당관계자도 많이 오셨어요. 일반 시민들도 1500명가량 모이면서 아주 열기를 가지고 진행이 됐지요. 그게 한번 넘어가는 단계였고 그때부터는 ‘이건 됐다’라고 자신했어요.
그는 이 대목에서, 전국 각 지역에서 자신이 만났던 많은 참여자들, 여러 자원 봉사자들의 아름다운 희생과 헌신과 고생을 한참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의 반응과 체온으로 느낀 민심을 진지하게 설명했습니다.
양 : 가장 첨예한 이해당사자인 현실정당 쪽 입장을 무시할 순 없을 텐데, 각 정당들 반응도 중요하지 않나요?
문 : 민주당의 경우에는 최고위원 세 분(이인영, 천정배, 박주선 최고위원)이 회원으로 들어왔습니다. 김영춘 최고도 같은 의견이라니까, 최고위원 가운데 반이 함께 하는 거죠. 그리고 정치적 비중이 있는 김근태 유인태 원혜영, 이런 원로들이 뜻을 같이해 주셨구요. 지자체장 중에서 김두관 안희정 이광재 지사도 뜻을 함께해 주셨고. 참여당에서 정찬용 고문, 이백만 최고위원, 창조한국당 김서진 전 대표 등도 함께해 주시기로 한 상태예요. 민노당 진보신당은 고민 중이시지요. 두 당도 현장에 계신 분들은 고민 많이 하고 있고, 당 결정을 기다리는 거죠.
양 : 민노당 진보신당은 고민이 더 클 텐데요. 흡수소멸 되는 거 아니냐는….
문 : 오해가 있습니다. 저희 제안대로 가면 당이 흡수 소멸되는 것 아니냐는 거죠.
“당대당 통합 아닌 연합정당, 제1당 가능하다”
양 : 대부분 그렇게 이해할 텐데요.
문 : 아닙니다. 결코 아니에요. 저희 제안을 잘 안 보신 겁니다. 연합정당으로 가자는 거예요. 당론을 강제하지 않는, 합의할 수 있는 만큼만 합의하고 합의 안 되는 거는 정파로서 경쟁하자는 거거든요. 당대당 통합하려는 게 아니에요. 당대당 통합하면 당연히 소멸되죠.
민주당, 민노-진보, 참여당까지 당원 수 차이가 각 당별 거의 10만입니다. 각 당의 대의구조, 논의구조의 한계를 압니다. 그 위험 부담을 안으라는 얘기가 아니고, 국민이 모이겠다, 다수가. 다수가 모여서 우선 10만 이상 되면 동수가 된 거 아니냐, 원컨대 각 야당 다 합친 40만 보다 더 모이겠다, 우리는. 50만 100만이 모여서 여기에 들어와 같이 가자는데 왜 소멸되느냐는 겁니다. 저희 안에 대해 동의하는 시민들은 상대적으로 개혁 진보적인 사람들이 참여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절대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죠.
양 : 그 다음에는요?
문 : 연합정당이 되면 민주적 운영구조로서의 결선투표가 있잖아요? 그러면 결선투표에서 진보적인 분이 통과될 가능성이, 지금 독자존속 할 때보다 훨씬 높아져요. 그러면 당연히 당선 비율도 높아지죠. 이 연합정당 틀로 제1야당이 되자는 겁니다. 그렇게 2012년 4월 총선에서 제1당이 되자, 집권당이 되자, 그래서 진보진영의 복지와 노동을 맡는 정파가 되자, 그러면 지역구도가 완화된다는 얘기고 남북분단이 완화된다는 얘기 아니겠어요?그러면 발판이 약화되지 않느냐고 하는 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정치는 진보가 돼 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진보진영이 결국은 집권당의 소수 정파가 아니라 집권당의 다수 정파까지 갈 수 있죠. 그게 방법 아니겠어요?
민노당이 2012년에 집권목표를 2022년으로 다시 옮겼어요. 지금 구조에서 그런 목표가 되냐 이거에요. 일단 연합정당 해서, 제1공약을 표의 등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 개편으로 걸자, 그렇게 해서 만약에 집권하자마자 선거법 개정에 성공하면 분립하자, 아예. 분립 꼭 해야 하면 하는 거고 안 해도 된다면 그냥 있는 건데, 선거제도 개편이 안 되면 길게 보고 진보가 확산 돼 가는 세월을 두고 한나라당이 3당 될 때 분립하자는 거거든요. 그게 맞는 방법 아니겠어요?
노동자와 빈민의 고통이, 진보정당이 없어서 고통스러운 걸까요, 아니면 법을 못 고쳐서 고통스러운 걸까요? 법을 못 고치는 거 아닌가요? 그러면 법 고칠 수 있는 다수당 되자는 거예요. 민노당 진보신당 경우도 당내 여론이 조금씩 확산돼 갈 것으로 봐요.
저는 민노당 진보신당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분들의 20년 노력이 보통 일인가요. 그걸 존중하면서 모두가 이기는 좀 더 나은 방법을 제시 드리는 것이에요.
양 : 민란 취지와 방법론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또 힘든 일을 자청하신 거예요?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돼서 묻는 겁니다.
문 : 이 안을 발상한 건 저예요. 처음에 논의한 사람이 이창동, 조기숙, 김창호, 최민희, 김두수 이랬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 안을 대중적으로 알리려면 얼굴이 알려진 제가 하는 수밖에 없었던 거죠. 제 책임감도 있었고. 선거에 출마해본 사람만 아는 아픔일 텐데, 거리에 나갔을 때 시민의 냉대나 무관심이 말이죠. 이게 선거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거리에 나갔을 때 관심 못 끌면 얼마나 마음의 상처고 충격인지 잘 아는데,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민란 발상, 예술적 발상 전환에서 가능”
양 : 발상이 도발적이고 독특한데, 직접 짜 낸 제안이죠?
문 : 안 그래도 누가 물어보던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아, 내가 배우라서 이런 발상을 했구나.’ 싶더라구. 그러니까 배우나 감독은 모든 체제의 무게를 안 느껴요. 뒤집어 보는 거예요. 영화 <웰컴투 동막골> 식의 발상 전환, 영화감독이니까 하는 거지, 그런 상상을 어떻게 해? 체제에 대한 위압을 안 느껴요. 늘 뒤집어 보죠. 심지어 윤리 도덕도 뒤집어보잖아. 영화 <경마장>이나 <너에게 나를 보낸다>도 그랬고. (웃음)
양 : 문화 예술적 상상력에서 나왔단 얘기네요?
문 : 그런 거죠. ‘왜 안 돼? 왜 민주당은 개혁이 안 된다고 생각해. 문제가 뭔데? 25만 당원이 문제야? 그러면 그보다 많은 100만이 모여서 같이 하라고 요구하면 될 거 아니야?’ 그런 발상을 내가 아마 배우라서 그랬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양 : 처음 시작이 힘들었을 텐데요.
문 : 제가 완전히 수공업으로 제안서를 이메일로 뿌렸어요. 제가 거의 컴맹에 가깝기 때문에 이메일 주소를 파일로 받으면 즉시 옮길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걸 모르니까 하나씩 하나씩 입력을 했어요. 돋보기 쓰고 메일 보내는 데만 8시간 걸리고 그랬어요. 눈이 아파가지고. 그러면서 뿌리기 시작해서 한 50명 정도가 공동제안을 했지요. 그러면서 촛불도 집단적으로 만났고. 정치인 팬클럽 쪽 짱들한테도 뿌렸고.
양 : 앞으론 어떻게 해 나갈 생각이세요?
문 : 5만 명 넘어서면서 지금까지 지지한 분들 명단을 공개했어요. 그전에는 시민운동, 시민정치운동이고, 정치인들도 1/n이니까 특별히 우대하는 것도 모양새가 안 좋아 덮어두고 있었는데, 공개를 했어요. 그런데 인터넷으로 가입한 분들이 많아서 아직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1월 말쯤 되면 마이페이지 기능을 둬서, 정치인들께 방 하나씩 드리고, 다른 회원들과 대화도 할 수 있게 해서 확산시켜나가려 합니다.
그다음에, 이 일이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해서 시작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배우 한 사람이 그냥 지른 일’인 듯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상당히 정교하게 시작한 것이니만큼 5만 넘어가면서 ‘정책위원회’를 구성했어요.
조기숙 교수가 정책위원장을 맡아서, 정치사 쪽으로 이 운동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등을 놓고 심포지엄도 하고요. 그다음부터 각 정당이 합의할 수 있는 최대 공약을 만들어 간다 할까요? 이미 정당들 정책공약 작업이 있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시민생활 정치영역에서 제안할 수 있는 정책을 강화하는 그런 일을 할 계획이지요. 10만이 넘어가면 조금 더 공격적으로 할까 싶어요. 일단 정당들은 당론을 결정하기 어렵잖아요. 대신 각 당마다 동의하는 분들이 계시니까, 동의하는 분들과 시민사회에서 동의하는 분들, 일반 시민들, 이렇게 해서 원탁회의 같은 것을 제안 드릴까 싶어요.
안양교도소 옥중 부자의 기막힌 짧은 만남
양 : 전국을 돌면서 해야 되는 강행군인데 체력은 버틸 만하세요?
문 : 80일 했지요. 어제까지. 처음에는 주 6일을 거리에 나갔어요.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어느 순간 핑계를 노짱(그는 노 대통령을 항상 ‘노짱’이라 부릅니다.)한테 댄 거죠. ‘노짱이 주5일제 도입하지 않았냐. 우리도 주5일제로 민란 하자.’ 저는 몰랐어요.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한 번은 2시간 인터뷰 두 개를 내리 했어요.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샌드위치 먹으면서 강연장 갔어요. 얘기가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아, 인간의 한계가 있는 거구나.’ 느꼈죠.아주 힘들 때, 마침 아버지(고 문익환 목사님) 묘에 인사드리러 갔었어요. 그때 드는 생각이, ‘왜 아버지는 우리가 면회 갔을 때마다 그렇게 늘 웃으셨나?’
양 : 문익환 목사님이 그러셨나요?
문 : 응. 아버지 얘기 잠깐 하면, 방북사건 공판장에서 내가 법정소란죄로 열흘을 감방에 들어갔었어요. 아버지 갇혀 있는 안양교도소. 그것도 아버지 옆 수감동에. 수감 돼 있는 분들한테 물어봤지. 문 목사 어디 계시냐고. 저기 계시대요. 3미터 높이 담벼락을 단박에 올라갔어요. 마당에 나와 운동하던 여러 수감자들이 도와줘서 그 사람들 등 타고 무단으로 넘어간 거지.
양 : 전설 같은 비화네요. 옥중야사.(웃음)
문 : 간수들이 잡으러 와서 끌려가기 전까지 아주 잠깐, 아버지 방 창문 쇠창살 사이로 얘기를 나눴는데, 찰라의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아. 아버지는 정말 칼같이 방을 정리해 놓고 계셨어요. 깨끗하게. 군대 신참들이 모포 접어 놓은 듯 방 구석구석을. 그리고 거기에 단정하게 누워 계시더라고. 그런데 방에서 우선 노인 냄새가 확 나는 거라. 돌아가신 듯 조용히 누워계신데. 저러다 진짜 가시면 어쩌나 그 걱정이 들었어요. “아버지!” 불렀더니, 못 알아들으셔서 더 크게 불렀어요. 그랬더니 “어” 하고 일어나서 오시는데 얼굴이 시체 같아.
아무 표정이 없어요. 지금도 안 잊혀져. 그런데도 우리가 면회를 가면 언제나 늘 웃으며 “아! 좋아. 염려 없어. 유쾌한 일 있었어.” 맨 날 그러셨거든. 교도소에서 직접 본 모습은 그게 아닌데. 가족이 걱정할까 봐 일부러 그러신 거였지.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하며 그의 눈에 잠시 눈물이 고였다.) 본인이 지쳤다고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갖고 계셨던 거예요. 아버지가 왜 그러셨는지 나도 이 일 하면서 느껴요. 나 지친다고 얘기 못 하는 상황을….
거짓말이었군요. 처음 얘기는. 사람인 이상, 전국을 돌며, 밤마다 홀로 여관방에서 새우잠을 자며, 날마다 열 시간 이상을 떠들어대며, 사람들 만나 연설하고 설득하는 이 일이 체질인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이 무지막지한 일을. 화제를 돌리고 싶었습니다.
“1주기와 6·2선거 도우며 이대로 안 된다 결심”
양 : 좋은 일이긴 한데, 이제 먹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예요?
문 : 아, 나? 어떻게 먹고 살 거냐? 막걸리를 좋아하니까 대폿집을 만들어볼까 생각도 해봤고. 근데 안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웃음) 생계로 뭔가를 해야 되는데, 일단은 지금은 잊고 가요. 노짱 취임하고 나서 일부러 산에만 다녔어요. 참여정부 5년에 대해서도 일부러 관심 안 갖고, 열린우리당 공중분해부터 막 흘러가는 과정도 솔직히 아무 관심 안 가졌어요. 역사가 이렇게 흘러가나, 참 참담하게 흘러가네, 이렇게만 느꼈지 과정은 전혀 모르고. 그런데 노짱 돌아가신 직후에 다시 공부를 했어요.
어떻게 보면 노짱이 부엉이 바위에 몸을 던짐으로 해서, 포위망이 해체되고 우리 나아갈 길이 뚫린 거잖아요. 어떻게 단결하고 다시 묶어내는가, 늘 그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그래서 서거 직후엔 참여정부 했던 분들 계시니까 그분들께 자꾸 건의만 했지요. “어떻게 뭉칠 거냐?” 건의해도 뭐가 잘 안 받아들여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선수’들이 안 된다고 하시니 안 되나 보다. 잊어먹고 있었지. 그러다 1주기 행사 때 스피치를 하라는 거야. 그전에는 정치발언 일절 안 하고 살았거든. 서거 직후에도 언론에 아무 코멘트 안 했고. 거절할 수가 있나.
우리 노짱 제사인데. 원고가 왔는데 도저히 못 읽겠더라고. 내 생각이 아니야. 그래서 ‘에이 내가 직접 쓰자!’ 결심했죠. 그걸 쓰느라고 동영상부터 봤어요. 마지막 날(5월23일), 집 나가시는 동영상부터. 글이 써지나. 술 한 잔 마시고, 혼자 대성통곡하다가. 그러고 어쩌고 하면서, 정말 내 마음속 얘기를 담아 스피치하면서 전국을 돌았죠.전국을 돌며 그 얘기 하면서 서울 할 때쯤 됐을 때, ‘6·2 선거에 뭐라도 해야 되겠구나. 2012년에 이기려면 6·2 지방선거를 이겨야 되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6·2 선거에 지원운동을 다니기로 생각을 한 거죠. 그리고 6월2일 밤에, ‘이제 민란이다!’ 이렇게 생각한 거죠.
그의 ‘생고생’이 안쓰러워 화제를 돌렸는데 다시 민란 얘기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이 일에 얼마나 목숨 걸었는지 확연히 보였습니다.
양 : 다시 민란 얘기네요.
문 : 그러네. (웃음) 처음 얘기할 때, 사람들이 생뚱맞다고 하고, 그다음엔 워낙 거대한 규모의 일이니까 잘 안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제가 “그럼 좋다. 나 혼자 한다. 나 혼자 여의도, 광화문, 민주당사 앞에 천막 치고서라도 한다. 당원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얘기 할란다.” 그렇게 시작을 한 거지요. 처음에는, 무조건 총선에서 이기는 것 중심으로 생각한 거에요. 첫 번째, 지역구도 넘어가야 된다, 부산과 경남에서 다섯 석씩만 먹자, 그러면 천지개벽이다. 두 번째, 20∼30대를 어떻게든 능동하자, 정치에 대단히 관심이 많으면서 정당원이 되지는 않으려고 하는 그들의 이중심리 구조를 어떻게 완화시킬 거냐? 통로를 넓게 해줘야 된다, 그래서 온오프 결합을 생각한 거에요.
여기서 온오프 결합은 세 가지 측면이죠. 하나는 열린우리당의 공중분해가 71년부터 김대중 후보를 돕기 위해서 입당한 분들, 40년 가까이 야당 활동해 온 분들이어서 존중해야 되는 거고, 2000년 이후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시민의 정치참여가 활성화됐는데 이 두 부분을 진성당원제로 무리하게 엮어서 충돌이 생긴 부분이 있다고 봐요. 그거를 어떻게 따로, 그러면서 같이 갈 수 있게 하느냐? 오래된 분들은 오프 정당으로, 새로운 분들은 온 정당으로 따로 또 같이 의사를 합의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면 되거든요. 바꿔 얘기하면 40∼50대 경우는 대세나 정책에 영향받는 사람들이에요.
그다음에 젊은 세대들, 이분들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의 맛을 충분히 본,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세대이기 때문에 소통의 문제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기존야당같이 촌스럽고 폐쇄적인 구조가 아니라 자유롭고 즐거운 구조가 되지 않는 한 안 된다는 거죠. 그런데 온오프로 하면 그들이 원해서 얼굴 가리고 이름 가리고 직업 가리고 닉네임으로 활동하게 하면 20∼30대도 된다, 온오프로 하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의무공천을 하자, 이들의 정책적 요구가 달라졌으니까 그렇게 하면 20∼30대도 되지 않겠나 하는 판단이에요. 그다음으로 진보적 정당과 자유주의정당, 즉 민주당부터 진보신당까지 어떻게 같이 갈 수 있을 것인가, 그걸 연합정당 내 정파로서 경쟁하자, 이런 식으로 하면 다 같이 갈 수 있지 않겠느냐, 이 세 가지가 엮어져야 선거에 승리할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제안서를 꾸리기 시작했어요.
양 : 민란의 출발지점은 노 대통령이시네요.
문 : 노짱이 당일 아침 집을 나가시는 마지막 동영상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봤어요. 그 독한 결심 한 양반이 전경한테 고개 숙여 인사하시고, 마지막 집 나가면서 집 앞에 잡초 뽑고, 참…. 그 풀 뽑는 모습이 나는 기가 막힌 거예요. 그리고 몸을 던지시고 거기에 묻히셨는데 내가 배우를 한다는 게 무슨 지랄이냐, 한마디로 지랄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아버지 얘기에 이어 또 한 번 눈물을 글썽였다.) 그 지랄이 알게 모르게 굉장히 저에게 강박이 돼 있었던 거에요. 노짱 돌아가시기 전까진, (나도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어떻게든 성공적으로 (무대에) 복귀하려고 발버둥을 친 거죠. 예전 같으면 절대로 안 했을 영화들을 막 했어. 하자는 대로 다. 왜? 난 배우여야 하니까.
그런데 그게 나를 엄청나게 발목을 잡아서 꼼짝 못하게 하는 족쇄라는 거를 깨달은 거죠. 그 순간에. 이 양반은 돌아가시고 묻혔다. 여기. 너는 뭔데? 배우가 뭔데? 그 생각이 든 거죠. 서거 직후엔 참여정부 하셨던 분들에게 제안을 드렸는데 그게 무산돼서 그냥 손을 놓았다가 1년 지나서 생각해 보니까 ‘제안할 사람이 마땅히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 정파가 있으니까. 만약 나도 입각을 했었거나 출마를 했었으면, 나도 어떤 정파에 들어가 있거나 또는 내가 정파를 만들었거나, 내 성격상 어떤 정파에 속했겠지요. 그러면 이 제안을 못 했겠죠. 결과적으로 참여정부 5년 동안 산만 다니고 있었던 게 무지하게 고마워진 거에요. (웃음)
양 : 화제를 돌려볼까요? 노 대통령하고 처음 인연은 어떻게 시작이 됐나요?
문 : 5공 청문회 때 ‘멋있다.’라고 느꼈었죠. 아버지 방북사건 직후에 변호인단이 구성됐는데, 다 평민당 분들이야. 모양새가 너무 안 좋은 거라. 그래서 통일민주당 쪽에서도 누가 있으면 좋겠는데, 노무현 의원이면 해 줄 것 같아. 그래서 갔죠. 그랬더니 굉장히 활달하고 에너지가 보통 넘치는 게 아니더라고. 조용히 말씀드렸어. 이리이리 돼서, 모양새도 안 좋고 그래서, 좀 변호인단을 맡아 주실 수 있을까 싶어서 왔습니다, 했죠. 그랬더니 단번에 “아! 합시다.” 그러시네.
두 번째는 92년 대선에 여의도 SBS 지하 커피숍으로 임채정, 이해찬, 노무현 이렇게 세분이 오셨던 것 같아. 나보고 대선 운동 같이하자고. 나는 안 한다고 그랬더니 노무현 의원이 뭐라고 하셨냐면 “나도 청문회 때 인기를 누려봤는데 그거 별거 아닙디다. 그리고 할 때 하는 거 아닙니까?”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굉장히 거칠게, 거친 게 아니라 특유의 팍팍 지르는 말투로.
양 : 노 대통령 선거엔 어떻게 뛰어들게 됐나요?
문 : 노사모는 명계남이 먼저 시작했지. 나, 명계남, 이창동, 정지영 감독 넷 다 일산 살았거든요. 넷이 같은 차 타고 들어오며 얘기 나누는 일이 많았어요. 한 번은 넷이 차에서 얘기 나누다 자연히 “다음 대통령은 누구냐?” 했는데, 넷 다 동시에 “노무현!” 이리됐네. 하여튼 2002년 대선 전 총선에서 386들 격려한다고 처음으로 유세장 갔다가, 생각지도 않게 연단 가서 인사까지 하게 됐어요. 나중에 대선 앞두고 명계남이가 “이제 너도 같이할 때 됐다. 들어와야 된다.” 그래요. 그래서 “그러면 시작하자.” 된 거죠. 그런데 그때는 제가 연설을 하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죠. 근데 부산에 무슨 노 후보 행사에서 명계남이가 사회를 보면서 다짜고짜 그냥 불러올린 거야. 연단에. 깜짝 놀라 뛰어나가면서 생각을 한 거에요. ‘짧게 무슨 얘기를 하나.’ 내가 길게 얘기할 수 없는 거잖아요. 짧게 뭐를 얘기했는데 그게 괜찮더라고. 그다음부터 계속…. (웃음)
“노무현의 눈물은 우연한 상황들의 만남, 그였기에 가능”
양 : 2002년 대선 때 그 유명한 ‘노무현의 눈물’을 흘리게 한 명연설의 장본인인데, 피를 토하듯 절규했던 당시 심경은 어땠어요?
문 : 근데 나는 그 연설이 그렇게까지 될 줄은 정말 몰랐죠. 선거 때, 나한테 계속 연설을 시켜요. 계속 했지. 한 번은 젊은 참모들이 “386들을 울릴 수 있는 명연설을 준비해 주세요.” 그러네. 2주 동안 무지 열심히 원고 썼어요. 그 연설을 여기저기 다니며 오래 했죠. 관심이 된 연설은 우연적 상황이 많아. 심혈을 기울인 기존 연설에 몇 가지를 추가했어요. ‘농부가 밭을 탓하지 않는다’, 유시민 씨가 연세대에 가 강연하면서 썼던 ‘찢어진 깃발’ 이런 표현 넣고. 그러고 그날 행사장 갔는데 행사가 늦어진 거야.
원래 내가 먼저 해야 되는데 노 후보가 와 버렸어. 그리고 후보가 30,40분을 얘기를 해버리신 거예요. 그분 얘기하는 동안에 “에이 이거 하지 말까?” 했는데 참모들이 그냥 가재요. 그래서 “노무현 후보는 담담하다고 말하지만 그 뒤엔 피눈물이 흐르는 걸 왜 모르겠습니까?” 이런 표현 써서 하는데, 내 심경과 느낌에 최선을 다했지만, 사실 그냥 한 거에요. 원래, 전에 하기로 한 거고, 주요 내용은 거의 두 주 동안 계속 했던 내용이기 때문에 실제로 다 외운 거나 마찬가지고. 현장에서 들어갔던 말은 느낌이죠. 심경이었고. 그런데 노 후보는 당신의 정치생애를 주욱 반추하면서 그냥 눈물이 흘렀나 봐요.
눈물 흘리는 장면도 우연히 포착된 거야. 그때 한 친구가 늘 같이 다니며 영상을 찍었는데, 그 카메라도 내가 사줬어요. 캠프에 돈이 없으니 카메라를 안 사줘서 어떡해. 내 돈 거금 750만 원 들여서. 큰돈이지. 걔가 그거를 들고 다니며 찍었는데, 원래 나를 찍고 있다가 노짱 우시는 건 알지도 못했어. 그런데 나를 찍는데 뒤가 땡기더래. 지금 노 후보는 어떤 표정일까 하고 싹 돌려보니까 노짱 얼굴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거야. 그래서 눈물 주르륵 흐르는 게 잡힌 거야. 마침 그때 <오마이뉴스>도 찍었거든. 그 장면을 잡았어요. 걔가 찍은 것과 <오마이뉴스>가 찍은 거를 같이 합하니 전체가 살아있는 거지. <오마이뉴스> 영상 없었으면, 그다음에 한나라당에서 ‘그 눈물 가짜다’ ‘CG다’ 그랬는데 다행이었죠. 이러는 바람에 그 연설 영상이 당시까지 인터넷 사상 최대 클릭을 기록하게 됐죠.
양 : 노 대통령 당선되시고 나서 아무 덕 본 것도 없이,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친노’ 딱지가 붙어서 부담은 커지고 힘든 길을 걷게 됐죠?
문 : 그렇게 됐지만 어쩌겠어요. <인물현대사>라는 프로를 KBS에서 하는데, 그때까지 내가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서는 가장 평가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프로그램 진행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어요.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내부에 복잡한 문제가 있는지 몰랐어요. 갈등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게 말썽이 되는 걸 보면서 ‘아, 뭘 해도 말썽이구나. 활동을 하면 그거 자체가 조선일보의 씹히는 소재다. 명계남 연극한다고 노짱이 구경 간 것조차 씹고. 뭘 해도 씹히니까 부담이 되겠구나. 내가 언론에 안 비치는 게 낫겠다. 그게 노짱 돕는 거다.’ 그래서 그냥 산으로 가버렸어요. 5년 내내 산만 다녔어요. 지금 와서는 ‘아, 그건 잘못 됐구나’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어찌 됐든 부담이 안 되려고 빠졌던 거죠.
“노짱과는 부엉이 바위 등반이 마지막…. 아, 부엉이 바위”
양 : 대통령 마지막으로 뵌 게 밀양이었죠? 돌아가시기 전에. 밀양연극제였나요?
문 : 네. 퇴임 후 봉하에서 밀양으로 밀양연극제 공연 보러 가신다고, 나하고 이창동 같이 올 수 있냐고 해요. 그래서 갔죠. 같이 연극 보고 식사하고, 봉하 사저에 가서 맥주 한잔했어요. 그런데 뭔 놈의 집이, 편하게 둘러앉아 술 한잔할 공간이 없어. 그 양반 서재 겸 손님 맞는 탁자에서 마시는데, 이게 술 맛이 나나. 무슨 회의테이블 앉아서 맥주 마시려니까 되게 어색하데, 그거. 그래서 속으로 ‘이 **들아, 이걸 아방궁이라고 했냐?’ 냅다 욕을 했지요. 그때 내게 정치를 한 번 해보라고 하시대요. 그래서 “저는 못합니다.” 얘기를 드렸죠. 그러고 나서 그 주제는 넘어간 거고.
그 다음 날 아침에 산에 같이 올라가자고 하셔서 갔어요. 그리고 부엉이 바위에 같이 올랐어요. 부엉이 바위 올라갔을 때 나는 좀 좋은 등산화를 신었었는데 노짱은 등산화가 아주 부실하더라고. 싼 거. 나는 내 등산화 자랑한다고 바위 끝에 바짝 가서 아래쪽 내려다보니까 노짱이 “그거 불안하게 왜 자꾸 거기까지 갑니까?” 그러세요. 그래서 “아, 제 신발 좋은 거에요. 비싼 등산화라 괜찮아요. 안 미끄러집니다.” 했더니 “그래도 그렇지, 사람 불안하게.” 이러세요. 그분 돌아가시고 자꾸 그때가 떠올라서…. 무슨 결심을 그리 독하게 하셨는지….
양 : 노 대통령 돌아가시고 상당히 힘들었죠? 고통도 남다르고….
문 : 난 잘 잊어버려요. 배우라서 한번 작품 하고 나면 과거가 잊혀지는 거에요. 사실 23일은 경황 없이 내려갔지요. 봉하 갔더니 노사모 사람들하고 모인 사람들이 많이 격앙돼 있고, 왜곡보도 때문에 상태가 안 좋더라구요. 그래서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런 상황 정리하고 말리느라고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갔다가 다음날 내가 SBS <자명고> 녹화가 있어 밤에 출발했어요. 새벽에 도착해서 겨우 한두 시간 자고 아침에 촬영을 갔는데 촬영을 못하겠는 거야. 두 문장이 연결이 안 돼. 도저히….
힘들어했습니다. 다시 화제를 돌렸습니다.
양 : 아버지 고 문익환 목사님, 형님인 연출가 고 문호근 선생, 그리고 문성근. 집안의 세 사람 다 반독재 통일운동, 공연예술, 연극-영화 각 영역에서 일가를 이루신 분들이고, 셋 다 대한민국 진보운동의 상징적인 족적을 남기신 거 같아요. 집안에 어떤 저항적 DNA 같은 게 있다고 보나요?
문 : 아무래도 가정에서의 여러 것들이 영향을 미쳤지 싶어요. 할머니가 아버지 어렸을 때 베개에 직접 태극기를 수를 놓아 그걸 베고 자게 하셨대요. 목사가 되신 것도 독립운동 때문이고. 아버지 어렸을 때 민족운동가 이동희 선생이 오셔서 “독립운동을 하려면 목사가 제일 좋은 직업이다, 기독교라는 데 의탁할 수가 있고, 국민들을 1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얘기하면서 민족의식 고취할 수 있다”고. 그래서 목사를 하게 되셨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늘 기도하시는 내용이 나라 걱정이었고. 아버지가 윤동주 시인과 함께 광명중학교 다녔는데, 어느 날 선배들이 와서 시국강연 한다고 다 모이라고 해서 갔더니 졸업생들이 와서 출세하려면 일본 군관학교를 가야 된다고 주장했대요.
그때 군관학교 간 선배 동료 후배들이 5·16의 한 축으로 나오는 거에요. 출세하려고 일본 군관학교 간 애들이 5·16 주체세력으로 나왔으니. 그전엔 아버지가 휴전협정 할 때 통역관을 했는데, 그때 남쪽 협상대표로 나간 사람이 한국말을 못 했다는 거라. 장성이 일본말만 했다는 거지. 그런 얘기를 어려서부터 계속들은 거지요. 그런 게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아버지뿐 아니라 박형규 목사님, 김관석 목사님 이런 분들 보면 그 아들들이 다 감방에 갔어요. 나는 무서워서 못 가겠더라구. 인간 같지가 않아요. 아버지 하시는 게. 근데 나중에 안 거지.
“윤동주 죽여, 장준하 죽여, 이젠 내가 죽을 차례야, 나도 죽여라” 그러시는데 그게 무슨 협박이 되겠어. 그런 사람한테. 그런 삶을 사셨어요. 나는 그 경지가 도저히 안 되는 경지였고, 못 했던 거고. 내가 왜 노 후보 도운 지 아세요. 그의 인간적인 매력, 그가 단 한 장의 필승카드였다는 것도 있지만 내 가족사도 있어요. 그 존경하는 아버지도 87년 대선에서 양김 분열을 극복 못했잖아요. 나는 그 책임을 느껴요. 물론 당시 민주화 운동 진영 안에서의 절차를 밟았지만, 어찌 됐든 과제를 남긴 거잖아요. 사실은 (아버지 대신) 속죄한다는 마음으로….
양 : 아버지로서의 문익환 목사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문 : ‘문익꽝’이잖아요, 별명이. 굉장히 원칙주의자였고, 팍팍했고, 굉장히 단호했고, 고집 세고. 그런 분인데, 딱 결정하는 순간부턴 목숨을 던지는 거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돼 버린 건데. 엄혹한 탄압국면에서 부단히 자기를 열고, 변화시켜 나가는 사람이었고, 굉장히 단호한데, 우리한테는 완벽한 자유를 보장해줬어요. 자식들한테는. 다 마음대로 살도록.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았고, ‘네가 네 인생 개척하라’고 그냥 맡겨 두셨어요.
양 : 아버지의 삶을 생각해보면, 본인은 지금 어떤 아버지인가요?
문 : 개판이지, 뭐.(웃음) 일종의 자기비판이 될 수 있는데, 가정을 잘 유지해 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엑스와이프나 아이들에게 무지하게 미안해요. 그리고 헤어졌지만 엑스와이프나 아이들한테 아빠로 할 수 있는 거를 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 최선을 다했다 라고는 생각은 하는데, 헤어진, 헤어지게 된 것, 유지 못 한 것, 이것에 대해서 무지무지하게 미안하죠.
양 : 문익환 목사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있나요?
문 :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처음부터 자유를 줬고 엄마가 규율을 잡으려고 그랬다 할까? 그런 부분은 좀 있고.
양 : 배우의 길로 접어들게 된 건 어떤 배경인가요? 서강대 졸업하고 취직해서 직장 다니다가 배우의 길엔 늦게 접어들었죠?
문 : 처음에 시작한 건, 형들이 대학교 때 연극을 했기 때문에 ‘나도 대학가면 그냥 하나보다’ 생각 없이 시작했던 거고. 졸업할 때는 연기자로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한 직장생활 5년쯤 지나면서 인생의 끝이 보였어요. ‘큰 기계의 작은 부품으로 마모돼서 결국 버려질 것이다, 이러지 말고 망하더라도 내가 결정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다가, 망해도 내가 망하자.’
이런 생각으로 거의 만용에 가까운 결정을 했어요. 배우들 들여다보면, 천부적인 배우가 있고 후천적으로 노력하는 배우가 있고 그래요. 노력하는 배우도 DNA 연기자 감정이 찍혀 있어야 되는 거지. 아예 없으면 안 되는 거고. 나는 DNA가 한 80점쯤 된다고 할까? 아버지가 예술적인 분이고, 삼촌도 그렇고, 집안에 그런 내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아예 타고난 연기자는 아니고 뭐랄까 집안의 배경이랄까.
양 : 그러면 본인의 타고난 일정한 재능 플러스 스스로의 노력?
문 : 나는 한 80점 되는 것에, 부단히 노력해서 좋은 연기자가 되려고 노력해온 사람이고, 그런 게 불행히도 전성기라고 그럴까, (작품을) 무지하게 많이 했던 90년대 중후반 때엔 깨치지 못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 후에 오더라고. 지금은 굉장히 편안하고 연기가 즐겁고 잘 할 수 있고 그렇죠.
“해야 될 일이어서 하지만 연기할 때가 행복”
양 : 지금은 배우의 길을 접은 겁니까? 아니면 한국 정치를 바꾸기 위한 일로 인해 잠시 접어두신 겁니까?
문 : ‘일단은 잠시 접는다’ 하고 접는 거에요. 이를테면 정치참여 이 부분은 바람직한 일이고 실제 현실정치를 해 주는 분들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해요. 사실 정치를 백안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잘못된 거라고 보고,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응원하고 그러죠. 그런데 이런 삶 자체가 행복해 보이진 않아요. 지금 내가 하는 일도 굉장히 고통스러운 과정이고.
연기하는 게 행복하고, 정치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즐거운 게 아니기 때문에 즐겁게 정치를 할 수가 없는 거지. 대신 2002년에는 그런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직업을 안 바꾼다고 얘기를 했는데, 지금은 직업을 안 바꾸겠다고 미리 약속할 생각이 없는 거에요. 내 자유니까. 그냥 상황을 보자, 상황을 보고 열어두는 건데…. 행복하진 않아요. 행복한 건 여전히 연기죠.
양 : 배우로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작품이나 배역은 어떤 건가요?
문 : <경마장 가는 길>이 제일 기억에 남는데, 그런 류의 영화가 처음이었고. 아쉬운 거는, 지금 하면 기가 막히게 할 텐데 라는 아쉬움? (웃음) 참 재밌는 영화였는데 그때 내가 연기를 충분히 해내지 못한 게 제일 아쉽지요. 그 이후 영화는 지금 해도 비슷하게 할 것 같아요. 그다지 (연기가) 많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데. 특히<오! 수정> 이때부터는 껍질이 많이 벗겨졌기 때문에, 그때 이후 영화는 지금 해도 다 똑같이 할 것 같아.
양 :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나 영화 가운데, 저 역할이나 저 작품은 내가 했으면 참 잘 했을 것 같다는 게 있나요? 혹시 <시크릿가든>의 현빈 역? 크크.
문 : 요새 안 봐서.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고, 전혀 못 보고 있어서 몰라요. 영화도 요새 거의 못 봤어요. <부당거래> 본 이후에 못 봐서. 이제 뭐, 아예 잊고 살지요.
양 : 가려지지 않는 진실논쟁 하나가 있어요. 문성근과 명계남, 누가 더 연기를 잘한다고 봅니까? (웃음) 명계남 선배는 자기가 몇 수 위라고 공공연히 주장하시던데.
문 : 연기는 누가 잘하고 잘못하고 평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양 : 겸손인가요, 무시인가요?
문 : 74년에 걔를 처음 만났는데, 그때 걔는 연희극회의 기둥 배우였고 나도 서강극회에 기둥 배우였어요. 근데 걔 하는 거 보고 경탄을 했었어요. ‘어떻게 저렇게 힘이 있게 카리스마를 갖고 할 수 있을까’ 거기다가 ‘얼굴이 어떻게 저렇게 늙었을까’ ‘애가 저렇게 험상궂나’ ‘천상 배우구나’ 그런 경탄을 했었죠. 나는 굉장히 순진한 사람이었고. 걔는 뭐 거의 경험 많은 배우들 같은 노숙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웃음)
양 :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출마 권유를 많이 받았고 노 대통령께서도 생전에 출마권유를 하셨는데, 일종의 시민적 영역으로 이 캠페인과 운동을 하고 계시지만 직접 나가서 정치해본다는 생각은 가져보신 적이 없나요?
문 : 그거는, 두고 있는 거에요. 행복하지 않다, 가급적 안 하면 좋은 거고. 이 운동과 야권 단일정당문제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변화될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기 때문에 그냥 열어두고 있는 거지요.
양 : 지금 몰입해 있는 이 일이 아니면 평소 낙이 뭐에요?
문 : 산 다니고, 촬영하고, 친구들하고 막걸리 마시고 그런 거지요. 책은 그다지 잘 안 읽어요. 종종 읽지만. 왜냐하면 배우는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손해예요. 먼저 생각하게 돼. 느껴야 되는데. 소설집이나 시집을 읽는 건 괜찮은데.
양 : 상상력을 자극하는 콘텐츠 쪽으로 가면 좋다는 거지요?
문 : 그렇게 가야지. 경제학 이런 거 읽는 거 안 좋아요.
“하도 힘들어 살이 안 찌니 원 없이 먹을 수 있어 행복”
양 : 배우가 된 이후 평생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하나요?
문 : 네. 그런데 이거 시작하면서부터 아무거나 먹어도 활동량이 많아서 체중이 늘지 않아요. 요새 삼겹살, 피자, 막 먹습니다.
양 : 먹는 걸로만 따지면 가장 행복한 시기네요.
문 : 가장 행복해. 아무것도 안 가려.
양 : 문익환 목사의 아들 문성근, 노무현의 동지 문성근이 아니었다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문 : 한 가정의 가장으로, 좀 막사는 배우 하고 있겠죠.
양 : 우리가 흔히 보는?
문 : 예.
양 : 다음 목표나 소망이 뭔가요?
문 : 민주정부가 장기집권 하는 거에요. 이 운동이 성공하고 틀거리를 만들어 야권 단일정당을 창출하고, 2012년 선거 후에, 시민정치운동으로 남겠다는 지금 제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서 전국 네트워크를 만들어보는 거에요.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집권의 길을 여는 거라고 생각해요. 장기집권이 되면, 나는 편안하게 연기하면서 노는 게 제일 좋죠.
양 : 먼 훗날, 사람들이 문성근에 대해서 평가할 때 명배우로 남기를 원합니까, 한국정치를 굉장히 의미 있게 바꾼 보람 있는 운동가로 평가받기를 원하십니까?
문 : ‘열심히 살았던 사람’ 정도지.
양 : 긴 시간 진솔한 말씀 고맙습니다.
인터뷰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안 끝났습니다. 현직 기자 때 포함해서 꽤 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인터뷰 요청은 제가 했는데, 그는 할 말이 남았다며 얘기를 더 하자고 했습니다. 제가 성의없는 인터뷰어였나 싶을 만큼 미안했습니다. 평소 그는 말이 많거나 얘기를 길게 하는 스타일이 결코 아닙니다. 늘 사양하는 스타일입니다. 민란에 대해 못다 한 얘기가 남았던 겁니다. 왜 민란인지를 말하는 그의 모습은 흡사 노무현 대통령 선거유세 때 보여줬던 그 열정 그대로였습니다.
“정치는 연애… 연대해 잘할 수 있다는 진정성부터 보여줘야!”
문 : 요새 자꾸 ‘정치는 연애다’ 하는 느낌이 들어요. 시민들은 뭔가 정치적인 변화를 요구하시는 거지요. 정치는 연애라는 게, 마음을 서로 주고받아야 돼. 마음이 열려야 서로 소통이 되고 이러는 건데. 스님들 삼천 배 하는 그런 심정으로 하게 돼요. 왜 그런 생각이 드냐면,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이다, 우리 시민은 존중받고 싶다, 위로받아야 된다, 그동안 정치권이 국민을 너무 고문해왔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국민의 심리상태가 뭐냐면요. 배우는 인물을 연기하려면 그 사람 특징 하나를 딱 잡아. 그걸 문고리로 잡고 문을 열고 들어가. 문고리라는 말은 이창동 표현이에요.
많은 국민들이 왜 이명박을 선택했냐? 그러니까 민주정부 10년 동안 평가받을 참 좋은 일들을 많이 했어요. 그러나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만족시키지 못 했어요. 이유야 어찌 됐든 불만족 상태에서 화도 많이 났고, 그래서 홱 돌아앉았지만 이명박 하고 연애하는 건 아니에요. 이명박이 돈을 벌게 해 주겠다, 집값을 올려주겠다고 하니까 그냥 다 찍었어요. 다 놓아버린 거죠. 정의, 도덕, 이런 거 놓아버렸다고.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보니까, 아주 개차반이거든. 완전히. 돈 벌게 해 준다는 것도 아니야. 그랬을 때 국민들 심리상태는 뭐겠어요. 나는 그걸 ‘욕망을 택했던 것에 민망함, 허망함’이라고 봐요.
그렇다고 민주 정부가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야. 그때는 굉장히 짜증이 났었고 그래서 돌아섰던 것이니까. 그러니까 국민들의 이 상태가 어떤 거냐면, 속이 다 빠져나가고 넋이 다 빠져나간 허망한 상태라는 거죠. 거기다 노 대통령은 바위에서 몸을 던졌단 말이에요. 그러고 나니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경제를 잘했다’가 15에서 60이 됐잖아요. 45%의 국민이 속았다는 걸 안 거야. 그래서 고개를 돌려서 이쪽으로 돌려보는? 한 번씩, 이제 보는 거야. 다시. 미안한 부분도 있어요. 노무현에 대해서. 그렇게 욕했던 게. 그래서 6·2선거에서 그렇게 표현해 준거죠. 근데 아직 옛날처럼 돌아앉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실망했었고 화가 났던 게 다 풀린 게 아니니까.
그런데 내가 조금 미안한 건 있어. 그러나 ‘너희들 잘못했어. 왜 나를 실망시켰냐’ 이거거든요.지금 민주진영은 뭐를 해야 되겠어요. 국민들이 정치인에게 다가와서 “미안해, 내가 오해 했어” 이렇게 얘기할 리는 없는 거에요. 그러면 이쪽이 다가가서 “죄송합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잘할게요.” 이 얘기를 해야 되거든요. 돌아선 애인, 연인이에요. 그런데 가서 그들에게 지금 뭐 어쩌고저쩌고 정책 얘기하는 건 뭐냐면 “우리가 결혼하면 내가 어떻게 해 줄 게”로 얘기하는 거야. 결혼할 생각이 아직 없는데. 소용없어요. 정책은 말짱 꽝이야. 마음으로 다가가야 돼요. 다가가서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렇게 내가 달라졌습니다.
옛날하고 달라졌습니다.” 라는 거를 확인을 시켜 드려야 돼요. 속이 빠져나가고 넋이 다 빠져나간 사람한테 가서 “야, 이런 게 낫지 않냐? 야, 민주정부 10년 동안 소득을 이렇게 높였어. 4.5% 성장했어. 이명박은 3.2%잖아. 우리가 더 잘 했잖아.” 아무리 얘기해도 안 들어요. 이걸 채워 드려야 돼. 허망함을. 그러려면 우리가 믿음직한 상대가 되어야 해요. 믿음직한 상대가 된다는 거는, 정책적으로 다시 반성하는 부분도 있지만, 자세가 달라야 돼요. 그 자세의 핵심이 뭐냐. 한나라당을 보자 이거야. 쟤네들은 사찰을 해도 안 깨져요. 집권하니까 4대 권력기관을 휘둘러서 개차반을 만들어요. 조중동, 뉴라이트, 다 뭉쳐서 완벽한 철옹성 동맹구조를 만들고 있어요.
우리 민주정당 10년 돌아보자 이거야. 열린우리당, 참여정부를 지지고 볶았어요. 진보정당은 신자유주의라고 욕했어요. 국민들이 볼 때는 그게 그건데. 시민사회단체는 정치 중립이래. 자기네가 주장하는 정책 들어주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죽어라 해서 60점 정도 하면 신자유주의라고 욕했잖아요. 시민들은 뽑아놓고 손 놓았어요. 갈기갈기 찢겨진 거야. 이렇게 갈라진 상태에서 우리가 국민들에게 “우리, 잘 할게요?” “뭘 어떻게 잘할 건데?” “정책이요.”
“너희들부터 봐. 이놈들아. 너희들이 하는 얘기를 어떻게 믿으라고. 또 지지고 볶을 거지? 쟤네들 봐. 쟤네들 저렇게 똘똘 뭉쳐 하는데 너희들 어떻게 믿어. 어떻게 믿고 마음을 다시 열란 말이야.” 이 상황이에요. 그러니까 지금은 “정말 잘 할게요” 라고 빌어야 돼. 거리에 나가서 빌어야 돼. 빌면서 “우리가 달라질 겁니다.” “뭐가 달라질 건데?” “뭉칠게요. 믿음직한 상대가 돼 드릴게요” 그걸 하자 이거야, 지금. 민란을 통해서.
열변이 길어지면서 그는 시간에 쫓겼습니다. 국밥 한 그릇 대충 먹고 행사장으로 내달리는 그를 뒷모습으로 배웅했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리 바쁘게, 살얼음의 거리로 서둘러 내달리게 할까요. 그는 오랜 기간, 매 시대, 모든 무대에 충실했습니다. 자신이 주인공이든, 다른 사람의 조연이든. 그런데 너무 오랜 기간, 시대에 가장 정직했던 명배우를 우리는 너무 혼자 있게 한 것 같습니다. 무대에서도 무대 밖에서도. 지금 모두가 그의 말에 한 번은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할 이유입니다.
‘국민’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자---(유시민 )
국가 또는 사회가 악을 저지르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누구나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막고 싶어할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다수가 그 악행을 악행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리고 국가권력을 쥔 힘센 사람들이 악행을 그만두지 않으려 한다면, 그들을 이길 힘이 없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흔히 이런 상황을 경험한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단독으로 악에 맞서는 길을 선택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불복종’이었다. 미합중국 군대는 1846년 멕시코를 침략해 영토를 빼앗았다. 백인 노예소유자들이 도망친 흑인 노예를 추적해 잡아들이는 일을 허용하고 지원했다. 소로우는 이 둘 모두를 악으로 보았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기가 살던 매사추세츠 주정부와 연방정부에 대한 불복종을 선언했다. 주민세 납부를 거부한 것이다.
법보다 정의에 대한 존경심부터 길러야
납세를 거부한 죄로 감옥에 갇힌 소로우는 요지부동 납세거부 의사를 고수했지만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가족이 세금을 대납한 덕분에 금방 풀려났다. 그는 난생처음 했던 감옥 체험을 소재로 1848년부터 강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1849년에 이 강연록과 다른 에세이를 묶어 책을 냈다. 오늘날 우리에게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바로 그 책이다.소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유일한 책무는 언제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소로우는 악이 저질러지는 책임을 대중에게 떠넘기는 데 반대했다.
“매사추세츠주 안에서 천 사람이, 백 사람이, 내가 이름을 댈 수 있는 정직한 열 사람이, 아니 단 한 명의 정직한 사람이라도 노예 소유하기를 그만두고 실제로 노예제도의 방조자의 입장에서 물러나며 그 때문에 형무소에 갇힌다면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소로우는 말했다. 그 자신은 한 사람의 노예도 소유하지 않았기에, 소로우는 세금 납부를 거부하는 방법으로 형무소에 갇혔던 것이다.
소로우는 ‘위대한 개인주의자’였다. 그에게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였다. 사람은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를 위한 도구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다만 이 세상에 살러 왔을 뿐이다. 삶의 주인은 내 자신이다. 그런 개인은 정부보다 더 강하다는 믿음을 소로우는 이렇게 표현했다. “정부는 뛰어난 지능이나 정직성으로 무장하지 않고 강력한 물리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미약한 개인의 위대한 힘
소로우는 미약한 개인에 불과했지만 ‘시민의 불복종’이 가지는 힘은 세계의 양심과 지성을 불러 모았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미국 정부가 소로우와 같은 의인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개탄했다. 마하트마 간디와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불복종운동에 정신적 자양분을 공급했다. 그는 ‘절대적 선’을 추구하는 개인에게 희망을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처럼 선하게 되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단 몇 사람이라도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어디엔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사람들이 전체를 발효시킬 효모이기 때문이다.”누구나 소로우처럼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흉내라도 내려고 하는, ‘국민이기에 앞서 먼저 인간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바로 ‘깨어 있는 시민’이며, 그런 시민들의 연대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로서 국가가 악을 저지르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세금 많이 거둬 누군들 복지 못하나--당의 복지정책 국민이 지지한다… 따르라--(이기명 )
어느 조직에서든 말썽부리는 인물은 있다. 독불장군이 됨으로써 시선을 모으고 열악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속 보이는 짓이다. 그러나 진실이 밑받침된 철학도 없고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말품만 좀 팔면 되니까 말이다.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얄팍한 생각이다. 잘못 생각했다. 밑지면 손해다. 민주당이 국민과 약속을 했다. 국민의 복지와 관련해서다. 보편적 복지다. 국민의 복지를 생각하지 않는 정권도 정당도 정치인도 없을 것이지만 부자들의 세금 깎아주고 복지예산을 날치기로 없애버리는 정당은 희귀하게도 한국에 있다. 한나라당이다. 그러면서 친서민 정당이란다.
복지를 말하기야 얼마나 좋은가. 박근혜도 마치 특허 얻은 상표처럼 복지를 들고 다닌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복지예산 날치기 통과에는 침묵이다. 조용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처세술 때문인가. 지도자는 소신을 밝혀야 한다.변변한 정책 하나 제대로 마련을 못하고 질질 끌려만 다니던 민주당이 이번에 작심을 하고 연구 마련한 복지공약을 약속했다. 전당대회에서 당헌에 ‘보편적 복지’를 명시하고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등의 내용을 담은 당 강령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당헌으로 국민과 약속을 한 것이다.한나라당으로서는 비상사태다. 이미 한나라당은 날치기를 통해서 복지예산을 모두 없애버리고 서민들의 복지는 외면함으로써 모습만 친서민 정당이라는 자신들의 정체를 확실히 드러냈다. 부자 감세를 함으로서 부자 정당으로의 위치도 확고하게 다진 바 있다.
여론은 한나라당에 등을 돌렸다. 지난해 6·2선거에서 야당후보들은 무상교육이라는 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서울시 교육감을 비롯해서 경기 강원 등 야당 교육감들은 모두 당선이 됐고 그들이 공약한 무상급식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공약이 ‘빌 공(空)’ 자 공약이 아님을 실천으로 보여준 것이다. 서울시장 오세훈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결사항전을 하고 있으나 명분도 없고 돌아오는 것은 야유와 질책이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복지를 세금과 연계시켜 세금폭탄이라고 우겨대지만 먹혀들지가 않는다. 이미 세를 잃었다.민주당은 국민의 지지와 여론을 뒷받침할 논리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한나라당의 단말마적 공세를 차단해야 한다. 문제는 내부의 적이다.
한나라당이야 반대당이니 당연히 그렇다 쳐도 민주당 안에서 복지정책과 관련해 전열을 흐트러트리는 영양가 없는 발언이 나오는 것이다. 누군지 알 것이다.정동영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이제 흥미를 잃었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 줄 글을 쓰는 이유는 그가 일으키는 해악이 어떤 것인지 국민과 민주당 당원들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그의 흔적은 돌아보는 것만으로 진흙탕을 밟는 것과 같다. 도리없이 진흙이 튀긴다. 대선 경선 때부터 주민등록증 사건을 비롯해 논란을 빚었고 분수 넘친 대선후보로서 참패한 것은 그렇다 치고 두 번의 당 대표로서 그의 처신은 수치 자체다. 자신이 당 대표와 대선후보를 했던 민주당에 대한 자해 행위는 아직도 민주당의 상처로 치유되지 않았다.
뼈를 묻겠다던 동작을 버리고 전주로 내려갔다.탈당을 하고 당선된 후 애걸 끝에 복당했다.민주당이 들락날락 여인숙인가. 2007년 대선패배가 노무현 탓이라고 맹랑한 핑계를 대드니 다시 사과했다. 소신이었다면 끝까지 노무현 탓이라고 주장해야 하지 않겠나.제발 좀 조용히 있으면 좋은데 이번에는 복지정책에 시비를 건다. 말 안 하면 입에 가시가 돋치는가. 욕심은 끝이 없어서 당권에 도전했다. 그의 정치행태는 정도를 한참 벗어났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국민의 눈은 아직 차갑다. 과거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약을 흔들지 마라… 국민과의 약속이다
민주당의 복지 정책은 이제 공약으로 국민들에게 제시됐다. 이 공약으로 민주당은 총선을 치를 것이며 대선 역시 이 공약은 유효하다. 일사불란은 독재적 전유물이라지만 당론으로 결정됐으면 따라야 한다. 더군다나 당의 지도부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과연 그런가. 그러나 정동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정동영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세금을 거둬 복지를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발맞추어 한나라당은 세금폭탄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말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할지 모르지만 정동영은 민주당의 최고위원이다. 보편적 복지는 특별한 복지가 아니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인 대한민국에서 무상급식은 중학교까지 시행되어야 맞는다.
그러나 교육재정이 어려우니 초등학교만 하자는 것이다. 서울시장 오세훈을 비롯해 한나라당이 반대한다. 그러나 이미 박근혜 지역구를 비롯해서 많은 한나라당 지역구에서 무상급식이 시행되고 있다. 국민의 호응도 뜨겁다. 민주당이 공약한 3개 복지공약에 대해서 한나라당은 마치 뒤통수라도 맞은 듯 실신 직전이다. 민심의 흐름을 알기 때문이다. 급기야 전가의 보도처럼 ‘세금폭탄’이란 퇴색한 무기를 들고 나왔다. 세금으로 망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정동영을 도와주는 것인가. 정동영이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인가.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믿는다.민주당은 분명히 말했다. 부자 감세의 철회와 고소득층의 비과세 축소 그리고 4대강 사업의 조정이다.
그 밖에 복지를 실현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깨진 독에서 물이 새듯 사라지는 부정에 의한 예산 낭비, 불요불급한 형님예산과 지역이기주의에 기초한 선심성 예산만 줄여도 복지예산은 충당되리라고 믿는다.사람에게는 신뢰가 참으로 중요하다. 특히 정치인에게는 신뢰를 넘는 덕목이 없다. 신뢰를 잃은 정치인은 제아무리 똑똑해도 소용이 없다. 반드시 국민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삼국지를 보면 촉나라의 위연이란 장수가 있다. 공명은 위연을 알아봤다. 반드시 배신을 할 것임을 안 것이다. 지금 위연을 말하는 것은 우리 정치에서도 위연같은 인물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배신자인가를.
신뢰를 상실한 자를 경계해야 한다
네티즌이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다. 민주당의 복지공약과 배치되는 주장을 차단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당론과 배치되는 헛소리를 분질러버려야 할 것으로 본다. 손학규 당 대표는 즉각 그 싹을 잘라야 한다.민주당에서 복지에 관해 당 지도부와 다른 말 하는 것으로 치고 나오려는 정 의원의 행태는 또다시 민주당을 한심한 집단으로 보이게끔 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조중동, 한나라당에서 또다시 세금폭탄 운운하며 보수층 재집결을 할 기회로 이용당해 주시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복지에 관해서는 지금 민주당 지도부가 하는 방향이 옳다고 보는데, 이에 대해 다른 소리를 하는 정동영 의원은 누구를 위해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부당하게 왜곡해 집행되는 예산을 바로잡는 게 우선이고, 그래서 부족할 때 증세를 논해도 충분할 텐데 시작도 못 한 마당에 세금폭탄 때리겠노라고 한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모두 다 “예” 할 때 혼자 “아니요!” 하면서 튀고 싶으면 어디 허허벌판에 가 혼자 하면 좋겠는데,아직도‘찍찍 짹짹’ 데리고 골목대장 해 보고싶은 사람 있으면 정신 차리시라고 해 드리고싶다.마음에서 그대 버린 지 이미 오래다.’
당 안팎에선 정동영의 ‘부유세 승부수’에 대해서 어젠다를 선점, 차기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될 복지 논쟁의 주도권을 쥐려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이 아니라고 알고 그럴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고 믿지만 혹시 아직도 대통령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 기가 막힐 뿐이다. 우리 국민의 수준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꿈은 누구나 꿀 수 있다. 그러나 허망한 꿈은 백일몽이다. 망상이다. 망상에 매몰되다 보면 몽상가로 사람취급도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에 그런 정치인이 제법 많다. 망상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야 한다.
지난 1월 19일. 국민의 명령 ‘민란’ 토론회가 있었다. 김대중 도서관을 꽉 메운 청중들은 토론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천정배 의원이 토론자로 참석했고 이인영 최고위원의 모습도 보였다. 천 의원은 ‘민란’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믿고 싶다. 정권교체의 방법이 어디에 있는지 민주당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의 명령이다.
안상수·박근혜마저… 한나라당 큰일 났습니다-[분석] 무상급식 실시 지역 절반이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 또는 국회의원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실시 여부는 최대의 이슈 중 하나였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중요한 요인 또한 무상급식이었다. 지난 선거에서 국민들은 이미 표로써 심판을 했지만 여전히 무상급식 논쟁은 끝나지 않고 오히려 무상의료, 무상보육 문제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런 와중에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등 진보교육감뿐만 아니라 울산과 대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도교육감들은 무상급식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의회의 무상급식 예산 편성을 집행하지 않겠다며,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의 무효를 선언해 서울시의회, 곽노현 서울교육감과 극한 대립하고 있다.오 시장은 대법원에 이 조례의 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했고, 주민투표를 발의하겠다고 했다가 주민 투표 발의를 무기한 연기한 상황이다. 이는 ‘서울광장 조례’ 이후 두 번째 조례 무효화소송이다.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 실시 지역 절반이 ‘한나라당 아성’
▲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지역 중 상당수가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이거나 국회의원의 지역구이다. 안상수 대표, 박근혜 대표는 자기 지역구가 망국적 좌파 포퓰리즘 정책인 무상급식이 실시되는 동안 뭐 했을까? 혹시 이들도 좌파 포퓰리스트들이라고 비난 해야 하나? |
교육상임위원인 민주당 김춘진 의원실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초등학교 기준 전국 230개 시·군·구 가운데 80%에 해당되는 181개 자치구가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이 중 절반인 90개 지역이 전면 무상급식이고, 나머지 91개는 부분적 무상급식이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무상급식 때문에 참패를 당하는 ‘무상급식 굴욕’을 겪었는데 한나라당의 무상급식 굴욕은 선거 패배에서 그치지 않는 듯하다.
재미있게도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90개의 자치구 중 절반인 45개 지역이 한나라당 소속의 단체장(구청장, 시장, 군수)이 있는 곳이거나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의 당선 지역이다.
한나라당이 무상급식을 ‘좌파 포퓰리즘, 망국적 대중영합주의, 세금 폭탄’ 등의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해 원색적으로 비난해 온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특히 대구 동구, 인천 옹진군, 경기 과천시, 양평군, 경북 고령군, 군위시, 경남 고성군, 창녕군, 충북 단양군, 제천시 등 19곳은 우스꽝스럽게도 자치단체장과 지역구 의원이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다. 한나라당 탈당 무소속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진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들 중 일부는 지역의회까지 한나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의 논리대로라면 스스로 ‘망국적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욕하는 무상급식을 자기 당 소속 단체장 또는 의원들이 실시하고 있거나 적어도 이를 방조 또는 묵인하고 있는 것이다.
안상수·박근혜는 ‘좌파 포퓰리스트들의 무상급식 특구’ 출신?
특히 언론에서 “(무상급식은) 젊은 세대의 빚더미로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고 국가적 재앙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면서 핏대를 올리던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지역구인 과천이 전국에서 무상급식을 가장 먼저 실시한 지역이라는 점이 알려져 망신을 사고 있다. 그가 지금껏 4번의 지역구 선거에서 무상급식을 좌파 어쩌고 하며 반대한 적이 없다는 점을 설명할 길은 없어 보인다. 과천시는 2000년부터 초등 일부 무상급식을 시작하여 2001년 조례를 통하여 연간 20억 원의 자체 예산으로 전국 최초로 무상급식을 실시하기 시작했는데, 이 당시 국회의원 안상수를 비롯하여 시장과 시의회가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현재 한나라당의 논리에 의하면, 과천은 좌파 포퓰리스트들이 망국적 무상급식을 실시한 최초의 ‘좌파 해방구’ 쯤 되는 것인데, 그것을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들이 주도했다는 자기모순에 빠지고 만다. 지금도 과천시청 홈페이지에는 한나라당 소속의 여인국 현 시장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행히 관내 초등학교 학교장과 학부모들이 하루라도 빨리 전 학년 급식을 실시하기 위해 공사기간 중 도시락 배달을 하는 등 두 팔 걷고 나서 주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라고 하면서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한다는 보도 자료를 자랑스럽게 올려놓고 있다.
웃기는 것은 안상수 대표의 과천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실질적인 얼굴격인 박근혜 전 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도 마찬가지다.
비록 지난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것에 앙심을 품고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당선되기는 했지만 김문오 현 달성군수도 한나라당 출신이다. 달성군의 지역구 국회의원인 박근혜, 군수인 김문오, 군의회가 한나라당 일색인데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게다가 달성군은 2012년에는 무상급식을 중학교, 고등학교로 확대할 계획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달성군의 무상급식 예산 편성을 반대하며 이를 막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 논리대로라면 지역구의 무상급식을 막지 않은 박근혜 전 대표도 좌파 포퓰리스트 또는 이의 방조자란 말인가?이외에도 이번에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내정된 정병국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양평군, 한나라당 대변인 출신 조해진 의원의 지역구인 창녕군, 송광호 최고의원의 지역구인 제천시, 단양군 등도 단체장과 지역구 의원이 모두 한나라당이다.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지역 중에는 대통령의 오른팔인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역구인 성남시도 있다.한나라당이 무상급식을 ‘망국적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진심이라면 먼저 안상수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 조해진 전 대변인 등 자기 당 국회의원들과 자치단체장들이 속한 지역에서 실시되는 무상급식을 막지 않은 것에 대해 사죄하고 이들을 징계해야 한다. 아니면 자신들이 좌파 포퓰리스트들이라고 자기고백을 했어야 한다. 이것을 하지 못하겠다면 그들은 단지 “우리 동네 아이들 점심은 공짜로 주어도 되는데 다른 동네 아이들 밥 공짜로 주는 것은 안 된다”고 하는 패악질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오세훈 시장, 대공원 입장·학습준비물은 되지만 급식은 안 된다?
현재 무상급식에 대해 가장 격렬히 반대하는 것은 단연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의회 출석을 거부하고 시의회와의 협의를 일절 중단한 것도 모자라 대법원에 제소를 하고, 예산 집행 중단을 선언했다. 그리고 4억의 혈세를 들여 무상급식 반대 광고를 했으며, 여전히 최소 200억 정도의 세금이 사용돼야 한다는 주민투표를 관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주민투표 포기설에 대해서는 시기의 문제일 뿐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2006년 4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아이를 가리지 않고 어린이대공원을 무료 개방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2010년 5대 선거에서는 학습준비물 없는 학교 공약을 내세워 모든 학생들에게 학습 준비물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서울에서는 65세 이상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에 있어서도 경제력을 따지지 않는다. 이런 것에 비추어 보면 어린이 대공원 무료입장이나 학습 준비물 전부 지원은 되는데 점심 급식은 일부만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4억을 들여 무상급식 반대 광고를 언론에 내 여론의 뭇매를 맞았음에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관측은 이를 차기 대권 도전을 위한 세 모으기로 보고 있고, 오 시장 역시 대권 불출마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어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런데 주민투표라는 초강수를 던졌다가 시기를 무기한 연장하면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대법원 제소만 했다. 왜 그랬을까?
주민투표는 일단 시의회에서 2/3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 이와는 반대로 대법원에 조례 무효 확인을 구하는 것은 대법원의 인적 구성 변화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을 비롯하여 개혁적 성향이라고 일컬어지던 대법관들이 바뀌었거나 조만간 교체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 추천된 후보가 모두 서울대 출신의 남성이라는 점 등에서 보듯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이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여론이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검증을 받은 상황에서 주민투표는 가능성이 없으니 시간을 끌면서 대법원의 보수적 성향 변화에 기대는 서울시장의 모습은 정치적 꼼수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한나라당은 앞에서는 ‘좌파 포퓰리즘’이니 ‘망국적 매표 행위’ 어쩌고 하며 연일 무상급식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경기 과천, 대구 동구 등 한나라당 소속 의원의 지역구나 자치구에서 진행되는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한나라당의 무상급식 공격이 진정이라면 안상수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의 지역구는 무상급식이 실시되는 망국적 좌파 포퓰리스트들의 특구인 셈이다. 한나라당의 이런 이중 플레이가 오히려 그들 스스로 무상급식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닐까?
“유죄와 무죄가 뒤바뀐 용산참사,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
“특공대를 동원해 철거민을 무참히 살해한 김석기 전 서울 경찰청장이 최근 일본 오사카 총영사로 내정됐습니다. 반면 용산참사 철거민들은 아직도 감옥에 있습니다. 살인개발도 곳곳에서 진행 중입니다. 용산참사는 결코 끝나지 않았습니다.”20일 서울역에서는 용산참사 2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 주최로 범국민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은 故이상림 씨 등 철거민 5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가 발생한지 2년 째 되는 날이다.이들 철거민들은 2년 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에 있는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강제철거 반대’, ‘생존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경찰의 강제 진압과정에서 숨졌다.
이후 시민들은 국민재판을 열고 이명박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유죄를 선언했으나 정작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망루 농성 철거민 7명에게 징역 4-5년의 원심을 확정하는 판결을 내렸다.이날 추모제에 참여한 유가족과 1천여 시민들은 “아직 용산참사는 끝나지 않았다”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백기완(80)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추모사를 통해 “이명박 정권은 춥고 배고픈 사람을 폭도로 몰아 학살했다”며 “사람을 죽이고도 여전히 대통령 자리에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이어 백 소장은 “배고픈 사람을 쫓아내고 감옥 보내는 사회를 내버려둘 것인가”라며 “사람 죽인 대통령과 체제를 몰아내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사 과정에서 남편 故이상림씨를 잃은 전재숙(72)씨는 “용산참사에 대한 유죄와 무죄가 완전 뒤바뀌었다”며 “농성을 벌인 철거민들은 4, 5년 동안 감옥에 있고, 처벌받아야할 김석기는 일본 영사관에 가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망루 농성 주도 혐의로 복역 중인 아들 이충연(37)씨에 대해서도 전 씨는 “우리 아들은 죄인이 아니다”며 “감옥에 있는 가족들이 나오고 책임자를 처벌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다”고 밝혔다.이날 추모제엔 현재 공공사업, 재개발 등으로 쫓겨나거나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는 철거민 100여명도 참여했다.지난 2009년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과 경기 구리시 아천동을 잇는 ‘용마터널’ 공사로 거리에 나앉게 된 이종택(60)씨도 이날 추모제에 참가했다.
지난 10년간 이 지역에서 민물장어 장사를 했다는 이 씨는 “장사를 시작할 때 권리금, 공사비만 당시 돈으로 1억 5천만 원이 들었는데 3달치 영업보상으로 2500만원 줄 테니 나가라고 한다”며 “이 돈으로 어디로 이사 가서 장사를 하란 말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이 씨는 “우리의 상황이 용산참사 상황이랑 똑같다. 공무원 몇 명이 있는 사람은 챙겨주고 없는 사람은 내쫓고 있는데 우리는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고 주장했다.이날 추모제에 10대부터 6-70대 까지 다양한 연령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용산참사 이후 이명박 정부가 변한 것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모(62)씨는 “이명박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며 “돈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독점하는 개발은 추진해선 안된다”고 밝혔다.최모(48)씨도 “이명박 정부가 달라진 것이 없다. 이 대통령은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방법으로 정치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