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4. 子曰 木從繩則直하고 人受諫則聖이니라
(자왈 목종승즉직 인수간즉성)
공자가 말씀하시길 “나무가 먹줄을 좇으면 곧고, 사람이 간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거룩하게 된다.”고 하였다.
⋇ 繩(먹줄, 줄, 새끼줄 승) : 여기서는 목수들이 쓰는 먹줄을 뜻함.
⋇ 受諫(받을 수. 간할 간) : 간하는 것을 받아들임.
(해설)
산을 지키는 나무는 즉 살아남은 나무들은 대개 비틀리고 바르게 자라지 못한 쓸모없는 것들이다. 곧게 자라고 튼실한 나무는 그 효용성 때문에 베임을 당하기 쉽다. 나무도 그 효용에 따라 차별화되며 계획에 의한 식목은 쓰임새가 많은 것들을 우선하여 심었으며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나무로 지목한 나무는 철저한 보호를 받았다. 궁궐이나 사당 그리고 관사 주변에는 그에 맞는 나무를 선택하여 심었다. 방풍림이나 가로수 혹은 마을 어귀 등에도 그 특성에 맞는 나무를 선별해 식수하였다. “여자아이를 낳으면 뒤뜰에 오동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했던 옛 어르신들의 지혜도 있고,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면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도 전해진다. 그러나 옛날에 나무는 그 쓰임새가 다양하여 귀중한 자산이며 사람의 됨됨이도 나무에 비유한 예가 많이 등장한다. 목수가 그 쓰임새에 맞추어 크기와 길이대로 다듬을 때 그 치수에 따라 줄을 먹인다. 직선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필요에 따라 곡선과 원형으로 그리기도 한다. 곧다는 말은 강직과 주관이 뚜렷함을 말한다. 시세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지켜야 할 정도를 고수한다. 선비정신이란 말로 대변되는 우리 선조들의 몸과 마음가짐이 그를 지칭하기도 한다. 너무 고지식한 면을 꼬집어 비웃거나 비유를 하는 예도 많지만 한 시대를 이어오는 전통과 그 뿌리는 아직도 우리사회의 밑바닥에 도도히 흐르고 있다.
군주시절에 군주에 잘못됨을 바로 잡게 간언을 한다 함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용기와 충정 없이는 시도하기 어려운 법이였다. 그래도 그를 감수하고 과감하게 상소를 하는 충신들이 있었기에 나라의 법과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고 위태한 나라의 기강과 향락과 감언에 빠졌던 군주가 정신을 차리고 온전한 상태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철 푸름을 자랑하는 소나무의 기상과 대나무의 곧음이 곧잘 인용된다. 곧음은 꺾이지 않는 충절과 바른 길을 걷는 우직함 그리고 자신의 믿음을 굳게 지켜 나아가는 용기를 상징한다. 남이 자신의 모든 행동이나 말에 대하여 옳지 못한 부분을 지적하면 대부분 솔직하게 인정하기 보다는 반발하며 너나 잘하라고 오히려 역정을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러한 충고를 받아 들여 자신의 행동과 말 등에 실수를 인정하고 고쳐 나간다면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닐까?
자신도 하기 힘든 일인데 남이 하면 얼마나 그 사람이 커 보일까? 스스로를 뒤돌아 볼 줄 알고 잘못된 점을 고쳐 나간다면 주변에 사람들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행동은 꾸준하게 지속되어야 한다. 삼일을 못가서 원상태로 돌아간다면 시작하지 못한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고쳐나가면 작은 물이 모여 냇물이 되듯이 시간이 지나면 그 크기는 평가하기 어려운 크기로 자랄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이 있지요.
瓜田李下(과전이하)
- 오이 밭과 오얏나무 밑이란 뜻으로,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와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을 줄인 成句(성구). -
당나라 穆宗(목종)이 어느 날 당대의 명필인 柳公權(유공권)에게 “요즘 조정에서 시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조치에 관하여 불평하고 비난하는 일은 없는지요?”하고 물었다. 이에 유공권은 “폐하께서 곽민이란 자를 빈령의 수령으로 보낸 일이 있는 다음부터 비난이 자자하옵니다.”하고 생각한 바를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이에 목종은 “그것은 왜 그런가? 곽민으로 말하면 商父(상부)의 조카이며 태황태후의 작은 아버지로 항상 정직하고 속임이 없기에 작은 벼슬자리를 준 것이거늘 그게 무슨 그리 비난거리가 된단 말이요?”하고 다시 물었다. 유공권이 “그 동안 곽민이 세운 공으로 치자면 그런 정도의 벼슬자리는 과분하다고 할 수 없사옵니다. 하지만 곽민은 자기의 두 딸을 궁 안에 들여보냈기 때문에 그런 벼슬을 얻은 것이라고 들 쑥덕거린다고 하옵니다.”하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목종은 “곽민의 딸을 입궁시킨 것은 태황태후를 그저 예로 뵙도록 한 것이지 궁녀로 삼으려 한 것이 아니다.”하고 사실대로 말하였다. 이에 유공권은 정중히 “瓜田李下(과전이하)의 혐의를 어떻게 벗을 수 있겠사옵니까?(瓜李之嫌 何以戶曉 : 과이지혐 하이호효)”하고 아뢰었다고 함.(출전 文選 : 문선)
황포돛배
지금에야 서울에서 필요한 생필품 등을 기차나 화물차로 실어 나르지만 옛날에는 팔도의 물화가 황포돛배에 실려 한강의 서강, 마포, 뚝섬나루에 운반됐었다. 서강에는 곡물을, 마포에는 생활용품을, 뚝섬에는 시탄, 곧 땔감을 주로 날라댔던 것이다. 택시에 회사택시와 개인택시가 있듯이 옛날 황포돛배에도 물화의 집산을 도맡고 있던 객주 소유의 돛배가 있고 선상에서 가족과 생활하는 개인돛배가 있으며, 나라의 세공을 나르는 관영돛배가 있었다.
하루에 마포에만 드나드는 황포돛배만 해도 100∼200척 이었다 하니 대단한 물량이요, 이 돛배의 사공들만을 상대로 한 색주가가 나루에 드나드는 돛배의 척수와 항상 맞먹었다 하니 유흥경기도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이 한강 황포돛배가 두려워하는 “三畏(삼외)”가 있었다. 그 하나가 망원역풍이다. 너른 망원동 앞강에 이르면 역풍이 일어 황포를 재빨리 내리지 않으면 배가 돌거나 심하면 뒤집히거나 했던 것 같다. 둘째가 노량 배다리다. 임금이 사냥을 가거나 성묘를 갈 때면 나루에 배다리를 놓게 마련이다. 보름 전부터 한강의 돛배를 징발하는데 800척이 되어야 배다리를 놓을 수 있었다. 이로써 황포돛배의 사공들은 전후 한 달 동안 상업을 잃어야 했다. 그래서 이런 배다리 怨歌(원가)까지 생겨났던 것이다. “강원도 시탄장수/통 배 빼기고 울고 가고/전라도 알곡장수/황포 빼기고 울고 가면/삼개(麻浦 : 마포) 객주 발 뻗고 울고/색주가들 머리 잘라 판다.” 셋째 두려움이 幸州水賊(행주수적)이다. 뻘 밭 갈대 속에 도적떼가 숨어 있다가 황포돛배가 다가오면 낚배 몰고 가서 노략질을 일삼았던가 보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돛자리로 돛을 만들다가 문익점이 무명을 전래시킨 이후부터 무명베로 돛을 만들었는데 무명 올 사이의 통풍을 막기 위해 황토 흙가루 칠을 해서 황포가 된 것이다. 배의 크기에 따라 돛의 폭이 넓어지는데, 2∼3척 폭의 무명베를 여섯 폭 이으면 六段帆(육단범)이 되고 열 폭 이으면 十段帆(십단범 : 장단범)이다. 1,000석의 곡식을 실었다는 천석선의 황포돛대는 스물다섯 폭을 이었으니 돛폭이 근 20미터나 되었다. 서양의 돛배는 돛대가 서너 개씩 있고 돛도 너덧 개씩 있어 바람을 조절, 역풍이 불어도 지그 잭으로 진행을 하는데 황포돛배는 돛대가 하나요, 작은 보조돛대가 고작인지라 역풍이 불면 돛을 거두고 待風(대풍)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한강에 사라진 풍물-황포돛배가 복원되어 진수를 했다. 漢江十詠(한강십영) 가운데 야밤에 부르는 강원도 사공 마누라의 정선아리랑이 눈물겨웠다던데, 그런 정취 일랑 상상 속에서 만 복원하기로 한다.(이규태 코너 1988년)
※ 漢都十詠(한도십영) - 徐居正(서거정) -
1. 木覓賞花(목멱상화)
尺五城南山政高(척오성남산정고) 성 남쪽 하늘에 닿은 산이 놓였는데
樊綠十二靑雲橋(번녹십이청운교) 열 두 청운교를 드디어 올라가니
華山揷入玉芙蓉(화산삽입옥부용) 옥부용 꽂아 세운 듯 한 화산(백악)
漢江染出金葡萄(한강염출금포도) 금포도 물들여 낸 듯 한 한강
長安萬家百花塢(장안만가백화오) 장안 만호엔 집집이 꽃밭
樓臺隱暎紅似雨(누대은영홍사우) 누대에 비추어서 붉은 비가 오는 듯
靑春未賞能幾何(청춘미상능기하) 청춘이 얼마이뇨 마음껏 구경하자
白日政長催羯鼓(백일정장최갈고) 해는 정히 긴데 갈고를 재촉하세
※ 樊(울타리 번), 揷(꽂을 삽), 塢(둑, 성채 오), 催(재촉할 최), 羯(종족 이름 갈).
2. 麻浦泛舟(마포범주)
西湖濃抹如西施(서호농말여서시) 서호의 짙은 화장 서시와도 같은데
桃花細雨生緣漪(도화세우생연의) 복숭아 꽃 가랑비가 푸른 물가에 오는구나.
盪漿歸來水半蒿(탕장귀래수반호) 배를 저어 돌아오니 물이 겨우 반 삿대 불었는데
日暮無人訶竹枝(일모무인가죽지) 해 저물어 죽지가(경기민요)를 부르는 사람 없네.
三山隱隱金鼇頭(삼산은은금오두) 삼산은 은은한 금오의 머리
漢陽歷歷鸚鵡州(한양역역앵무주) 한양에도 역역한 앵무주 일세.
夷猶不見一黃鶴(이유불견일황학) 머뭇거려도 황학은 보이지 않고
飛來忽有雙白鷗(비래홀유쌍백구) 문득 저기 날아오는 한 쌍의 백구
※ 抹(바를 말), 漪(물놀이 의), 盪(씻을 탕), 漿(미음 장), 蒿(쑥 호), 訶(꾸짖을 가), 鼇(자라 오), 鸚(앵무새 앵), 鵡(앵무새 무).
3. 濟川翫月(제천완월)
秋光萬頃瑠璃정(추광만경유리정) 만이랑 가을빛이 유리처럼 고요한데
畵棟珠簾초寒影(화동주렴초한영) 화동. 주렴이 차갑게 비추었네.
長空無雲爭如掃(장공무운쟁여송) 하늘은 씻은 듯 구름 한 점 없고
坐待月出黃金餠(좌대월출황금병) 앉아서 기다리니 달 떠오른다. 황금 송편
乾坤淸氣骨已徹(건곤청기골이철) 천지의 맑은 기운이 뼈에 사무치고
明光一一數毛髮(명광일일수모발) 밝은 빛에 머리칼을 하나하나 셀만하다
牛夜深深更奇絶(우야심심경기절) 밤이 길어 갈수록 더욱 기절한 경치
倚遍闌干十二曲(의편난간십이곡) 열두 구비 난간을 모두 기대어 보았네.
※ 翫(가지고 놀 완), 掃(쓸 소), 徹(통할 철), 遍(두루 편).
4. 楊花踏雪(양화답설)
北風捲地萬籟響(북풍권지만뢰향) 북풍이 휘몰아쳐 만뢰가 울리는데
江橋雪片大於掌(강교설편대어장) 강다리에 눈송이 손바닥보다 크구나.
茫茫銀界無人蹤(망망은계무인종) 망망한 은세계에 인적이 끊기고
玉山倚空千萬丈(옥산의공천만장) 하늘로 치솟은 옥산이 만길
我時騎驢帽如屋(아시기려모여옥) 내가 그때 지붕만한 모자를 쓰고 나귀를 타니
銀花眩眼髮竪竹(은화현안발수죽) 은 꽃은 눈부시고 머리칼 대처럼 빳빳이 서네.
歸來沽酒靑樓陰(귀래고주청루음) 돌아와 청루에서 술을 사 마시고
醉傍寒梅訪消食(취방한매방소식) 취하여 매화 옆에서 봄소식 물어 보네
※ 捲(말 권), 籟(세 구멍 퉁소 뢰), 響(울림 향), 驢(나귀 려), 帽(모자 모), 眩(아찔할 현), 竪(더벅머리 수), 傍(곁 방), 訪(찾을 방).
5. 盤松送客(반송송객)
故人別我歌遠遊(고인별아가원유) 벗이 나와 이별하여 원유를 노래하네.
何以送止雙銀甌(하이송지쌍은구) 무엇으로 전송할까. 은 한 쌍
都門楊柳不堪折(도문양유불감절) 도문의 버들가지 어이 차마 꺾으리
芳草有恨何時休(방초유한하시휴) 방초는 한이 있어 어느 때나 그칠까
去年今年長參商(거년금년장삼상) 거년에도 금년에도 노상 이별의 길
富別貧別皆銷腸(부별빈별개소장) 부자이별 가난이별 이별 모두 서러워
陽關三疊歌皆闋(양관삼첩가개결) 양관 삼첩의 노래 이내 끝나리.
東雲北樹俱茫茫(동운북수구망망) 동편 구름 북쪽 나무가 모두 아득하구나.
※ 甌(사발 구), 銷(녹일 소), 闋(문 닫을, 마칠 결).
6. 藏義尋僧(장의심승)
三峯亭亭削寒玉(삼봉정정삭한옥) 세 봉우리 우뚝 옥을 깍은 듯한데
前朝古寺年八百(전조고사년팔백) 8백 년 된 전조의 옛 절
古來回巖樓閣重(고래회암누각중) 고목과 둘러 선 바위에 누각이 층층
鳴泉激激山石裂(명천격격산석열) 샘물이 꽝꽝 울려 산 바위가 찢어지는 듯
我昔尋僧一歸去(아석심승일귀거) 내가 전에 중을 찾아 한번 거기에 가서
夜闌明月共軟語(야난명월공연어) 밤 깊어 달 아래서 함께 조용히 이야기하였더니
曉鍾一聲發深省(효종일성발심성) 새벽 종 한 소리에 깊은 깨달음 바랐으나
白雲滿地不知處(백운만지부지처) 흰 구름 땅에 자욱해 어딘 줄을 몰랐었네.
※ 削(깍을 삭). 巖(바위 암), 裂(찢을 열), 軟(연할 연).
7. 興德賞蓮(흥덕상연)
招提金碧照水底(초제금벽조수저) 절의 금벽이 물 밑에 비추고
荷花初開淨如洗(하화초개정여세) 연꽃이 처음 피어 씻은 듯 깨끗한데
霏霏紅霧拂瓊闌(비비홍무불경난) 붉은 안개 보슬보슬 옥난간에 떨치고
香風欲動翻袖紵(향풍욕동번수저) 향풍이 불어서 모시소매를 펄럭이네.
有時碧筒飮無數(유시벽통음무수) 때론 벽통에 술을 무진 마시며
白日高談揮玉塵(백일고담휘옥진) 한낮의 고담으로 옥주를 휘두르기도
居僧挽手待明月(거승만수대명월) 중과 손잡고 달 떠오르길 기다리자니
小樓一夜凉似雨(소루일야량사우) 작은 다락 하루 밤이 비처럼 서늘하구나.
※ 提(끌 제), 荷(연 하), 霏(눈 펄펄 내릴 비), 拂(떨 불), 紵(모시 저), 挽(당길 만).
8. 立石釣魚(입석조어)
溪邊怪石如入石(계변괴석여입석) 시냇가의 괴석이 사람처럼 섰는데
秋水玲瓏照寒碧(추수영롱조한벽) 옥 같은 가을 물이 푸르게 비치었네.
把釣歸來藉綠蕪(파조귀래자녹무) 낚시대 들고 와서 풀밭 깔고 읹으니.
百尺銀絲金鯉躍(백척은사금리약) 은실 백자 끝에 금 잉어 띈다.
細斫爲膾燖爲羹(세작위회심위갱) 잘게 저며 회치고 끓여 국을 만드니
沙頭屢臥雙玉甁(사두루와쌍옥병) 모래 위에 쌍옥병이 연방 거꾸러지는구나.
醉來鼓脚歌滄浪(취래고각가창랑) 취하여 다리를 치며 창랑을 노래하니
不用萬古麒麟名(불용만고기린명) 만고의 기린각 이름 무삼 하리오.
※ 藉(깔개 자), 蕪(거치러질 무), 躍(뛸 약), 斫(벨, 쪼갤 작), 膾(회 회), 燖(삶을 심), 屢(창 루), 甁(병, 단지 병), 滄(찰 창).
9. 箭郊尋芳(전교심방)
平郊如掌草如茵(평교여장초여인) 손바닥처럼 반반한 들, 돗자리 같은 풀
晴日暖風濃殺人(청일난풍농살인) 갠 날씨에 따스한 바람이 사람의 흥을 돋우네.
朝來沽酒典靑衫(조래고주전청삼) 아침에 청삼을 잡혀 술을 사가지고
三三五五尋芳春(삼삼오오심방춘) 삼삼오오로 꽃다운 봄을 찾아가네.
飛觴轉急流水曲(비상전급유수곡) 돌리는 술잔이 유수곡에 더 급해져
靑樽易枯長鯨吸(청준이고장경흡) 고래처럼 마시니 술병이 쉬 마르네.
歸來駿馬踏銀蟾(귀래준마답은섬) 준마타고 달 밟으며 돌아 오느라니.
玉笛聲殘杏花落(옥적성잔행화낙) 옥피리소리 자지러지자 살구꽃이 떨어지네.
※ 茵(자리 인), 枯(마를 고), 鯨(고래 경).
10. 鍾街觀燈(종가관등)
長安城中百萬家(장안성중백만가) 서울 성중 백만 집에
一夜燃燈明似霞(일야연등명사하) 밤새껏 켜놓은 등불이 노을처럼 환하구나.
三千世界珊瑚樹(삼천세계산호수) 삼천세계가 온통 산호수요
二十四橋芙蓉花(이십사교부용화) 24교가 어디나 연꽃
東街西市白如晝(동가서시백여주) 동쪽거리 서쪽 저자가 모두 대낮
兒童狂走疾於狖(아동광주질여유) 좋아라고 뛰는 아이들 잔나비보다 더 빠르네.
星斗闌干爛未收(성두난간란미수) 북두성 기울도록 등을 아니 거두니
黃金樓前催曉漏(황금루전최효루) 황금 다락 앞에 새벽 누수 재촉하네.
※ 霞(놀 하), 狖(검은 원숭이 유), 爛(문드러질 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