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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목요시학회> 문학 포럼 및
고 김양헌 문학평론가 1주기 추모의 밤
2009. 7. 4.
목요시학회
시오리
수요문학회
프로그램
<제 1 부> : <목시> 포럼 (사회 : 윤일현)
1. 개회
2. 주제 강연
주제 :「달의 뒤편」, 이 시 이렇게 썼다 -시창작방법의 이론화를 위한 試論
발제자 : 장 옥 관(시인 ․ 계명대 문예창작과 교수)
3. 상반기 시집출간 및 등단 축하 (류인서, 천수호, 김명희, 전태련, 김석윤, 윤수)
<제 2 부> : 고 김양헌 문학평론가 추모의 밤 (사회: 권미강)
1. 여는 마당 : 추모 시낭송-춤 퍼포먼스
(권미강(시), 박정희(고려대 사회체육과 교수)(현대적살풀이춤)
2. 김양헌 연보 낭독 (엄원태)
3. 추모시 낭송 (문인수, 박정남, 송재학, 박상봉, 김대호 등)
4. 추모 평론 낭독 및 짧은 추억/회고담 (송재학, 윤은경, 이옥진 등)
(제2부의 영상 슬라이드는 공연연출가이신 여정우 선생님 도움을 받았습니다.)
5. 폐회
<발제문>
「달의 뒤편」, 이 시 이렇게 썼다
―시창작방법의 이론화를 위한 試論
장 옥 관(시인 ․ 계명대 문예창작과 교수)
흔히 시창작은 가르치고 배울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창작론이 작가와 작품이라는 실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창작이라는 하나의 과정을 논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문학 현상으로서 이론적 파악이 불가능한 지점에 창작론이 위치해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사실 창작의 이론화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창작의 발상은 대부분 대상에서 촉발된 직감적 감흥이나 우연한 기회에 찾아오는 영감 같은 데서 출발되지요. 이러한 점들 때문에 창작 과정을 이론화하는 데는 많은 제약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이론적 일반화가 없는 한 대학에서 창작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오늘날 국내 대학의 문예창작 교실은 대부분 창작발상법과 창작 심리 등 본질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글쓰기 비결’ 수준의 창작 기예 연마에 매달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따라서 시창작의 이론화는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이론화를 이룬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가. 그것은 문예창작학이라는 학문의 정체성을 검토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시론과 시창작론은 엄연히 다르겠지요.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는 이를 엄밀하게 구분하고 있지 못합니다. 시론이 아닌 시창작론이 다룰 수 있는 연구 주제는 크게 보아 창작발상법, 형상화기법, 문장표현기법, 내적형식의 유형화 등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창작 행위의 전 과정에 대한 연구도 필요한 사항이겠지요. 곧 제재선택, 자유연상, 시상 전개 구상, 집필, 퇴고 등 창작 과정의 전반적인 행위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간 국내에서 나온 개론 수준의 시창작론 저서에 시창작 전 과정에 대한 이론적 검토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지나치게 형식 차원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실제적인 창작 행위와는 거리가 멉니다. 창작과정은 작가가 상상하는 과정인 <예술충동의 과정>과 상상을 객관화하는 과정인 <표현양식의 과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존의 이론은 예술충동의 과정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고, 창작심리의 두 영역인 의식적 창작과 무의식적 창작에 대한 고려가 없어서 올바른 창작방법론이라고 하기에 어렵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시창작과정론을 보완하여 문학창작교실에서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론 도출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시창작 실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시창작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의 상반적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감에 의존해 창작해야 한다고 보는 부류와 장인과 마찬가지로 시작품을 갈고 가다듬어야 한다고 보는 부류가 그것입니다. 곧 낭만주의적 시관과 고전주의적 시관이라고 하겠지요. 낭만주의 시관에 따르면 시창작 이론화는 불가능합니다. ‘광기에 사로잡힌 자’에게 시작의 순서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창작론의 이론화 과정은 부득불 고전주의적 시관에 기대어야 합니다.
훈련의 과정으로서의 시쓰기는 일반적 글쓰기 과정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것은 글의 제재를 찾는 과정과 이를 구체화하는 주제 설정의 과정, 주제를 뒷받침해 줄 자료수집 과정, 글의 자료를 일정한 순서와 논리적 흐름에 맞도록 배열하는 구상의 과정, 개요표 작성의 과정, 집필의 과정 및 퇴고의 과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작문의 과정을 시작의 과정에 적용한다면, 1)시의 제재를 선택하는 과정, 2)자유로운 상상력을 동원하여 제재에서 촉발된 다양한 이미지와 상징적 의미를 연상하는 과정, 3)시상 전개를 구상하는 과정, 4)집필 과정, 5)퇴고의 과정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창작 과정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지요. 창작과정의 해명이라는 차원에서 이러한 단계를 설정하였으니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이를 좀 더 명료하게 따져보기 위해 세분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시 창작의 일반적인 과정
가. 제재선택의 과정 : 창작 동기와 관련됨
1) 현실적 동기 : 사회 현실의 모순을 검출하고 타파
2) 관념적 동기 : 사물의 존재론적 의미부여, 의미 있는 정서 표출
제재선택의 과정은 시인이 어디에서 그것을 취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창작 동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작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현실적 동기와 관념적 동기가 그것입니다. 관념적 동기는 또한 인식/발견의 시와 정서 표출의 시로 나눌 수 있겠지요. 깨달음의 시와 마음을 표현하는 시라고 불러도 좋겠습니다.
나. 자유 연상의 과정 : 상상력을 동원하여 제재의 이미지와 의미를 연상
1) 대상 본질에의 접근
2) 은유와 환유의 축을 따라가는 무의식적 연상
이 과정은 기존의 시쓰기 과정에서 소홀히 다루어졌던 부분입니다. 국내외 창작관련 이론서들이 하나같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바람직한 글쓰기는 정신의 의식적인 통제를 제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잠재의식을 해방시켜야 에너지가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거죠.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생각이나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직관적인 글쓰기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기왕의 시창작 이론은 이 점을 간과했지요. 그 결과 의식적 창작만을 강조함으로써 자유로운 상상력에 제약을 가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직관적 글쓰기는 의식적 글쓰기에 벗어나 창의적인 요소가 확대된 무의식적 글쓰기를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이를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은 문학과 심리학에서 두루 구사하고 있는 자유 연상과 의식의 흐름, 자동기술법, 적극적 상상력 기법 등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방법들은 궁극적으로 은유와 환유의 축을 따라가는 무의식적 연상을 통해 달성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시인은 사물/사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 시상 전개 구상의 과정 : 이미지의 배열과 시적 정서 조절
1)이미지 위주의 시 : 이미지의 연결과 통합, 확산과 집중 등 고려
2)이야기 위주의 시 : 사건 혹은 행위의 선택과 배열, 강조와 생략 등 고려
시상 전개란 시적 발상으로부터 하나의 완결된 시상으로 정립되어가는 전체 과정을 뜻합니다. 이 시상 전개 과정은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는 시와 이야기가 주가 되는 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시의 경우는 이미지의 연결과 통합, 확산과 집중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이야기체시의 경우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에서 벗어나 응축력과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사건 혹은 행위의 선택과 배열, 강조와 생략 등의 과정을 거칩니다.
라. 집필의 과정 : 적절한 시어 및 문체 선택, 어조와 화자의 결정
1) 문체 결정 : 구어와 문어, 축자적 언어와 비유적 언어, 통사체와 해사체 등 선택
2) 화자와 어조 결정 : 숨은 화자와 드러난 화자, 정어와 반어, 역설과 패러디 등 활용
집필의 과정은 구상한 시상에 언어의 형상을 입히는 과정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제재, 제재의 이미지와 시상 전개에 가장 적합한 시어를 선택하고, 이에 알맞은 언어표현을 선택해야 합니다. 사실상 집필의 과정이야말로 시창작의 핵심이라고 하겠지요. 집필 과정을 통해 처음에 의도했던 주제가 바뀌고 내용이 달라지는 경험을 누구나 해보셨겠지요. 그것은 물이 물길을 따라 흘러가듯이 말도 말길을 따라 스스로 방향을 잡고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 편의 시에서 문체와 화자와 어조 등은 시인이 표현하고 싶은 내용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바. 퇴고의 과정
1) 첨가의 원칙 : 미처 표현되지 못하였거나 미진하게 표현되었을 경우
2) 삭제의 원칙 : 구성의 긴밀성을 도모하기 위해
3) 재구성의 원칙 : 주제를 보다 명료하게 표현하기 위해
퇴고의 과정은 세 가지의 원칙이 있는데, 그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시작 과정을 고려하여 지금부터 졸시를 통해 시창작의 실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2. 자작시를 통한 시창작의 실제 과정
달의 뒤편
등 긁을 때 아무리 용써도 손닿지 않는 곳이 있다 경상도 사람인 내가 읽을 수는 있어도 발음할 수 없는 시니피앙 ‘어’와 ‘으’, 달의 뒤편이다 천수관음처럼 손바닥에 눈알 붙이지 않는 한 볼 수 없는 내 얼굴, 달의 뒤편이다 물고문 전기고문 꼬챙이에 꿰어 돌려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 더듬이 떼고 날개 떼어 구워 먹을 수는 있어도 빼앗을 수 없는 귀뚜라미 울음 같은 것, 내 눈동자의 뒤편이다
―시집『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가. 제재선택 과정 : 관념적 동기(존재론적 의미부여)
-경상도말에서는 ‘ㅓ’와 ‘ㅡ’가 기호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촉발
세계 인식의 한계성을 자각
이 시의 창작 동기는 관념적 동기, 그 중에서도 존재론적 의미 부여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경상도말은 음소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기호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착안을 했습니다.
나. 자유 연상하는 과정 : 제재에 대한 자유 연상과 이미지의 탐색
- 익숙함 속에 숨은 낯설음 혹은 인식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사례 찾기
경상도말의 미분화된 음소, 손닿지 않는 등 긁기, 볼 수 없는 자신의 얼굴
빼앗을 수 없는 귀뚜라미 울음, 눈동자의 뒤편, 달의 뒤편 등
선택된 제재를 두고 자유 연상을 펼친 결과, 평소 익숙한 것이라고 여겼던 대상의 이면에 숨어 있던 낯설음, 인식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사물과 정황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목록이 위에 적혀 있는 사항들입니다. 이러한 이미지를 하나의 완결된 시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시상 전개를 펼치게 되었으며 그 결과는 도표와 같습니다.
다. 시상 전개 구상의 과정
핵심 이미지 부차적인 이미지군
볼 수 없는 자신의 얼굴 - 물질(시각)
구워먹을 수 없는 귀뚜라미 울음 - 비물질(미각)
⇒ 물질적 상상력과 비물질적 상상력을 통합하고, 촉각/시각/청각/미각의 이미지를 교차하여 나열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이미지의 집중과 확산을 기함으로써 하나의 완결된 시상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라. 집필의 과정
1) 문체의 선택
- 아어주의에서 벗어난 일상적․구어체 언어 선택
- 동일 구문의 반복에 의한 리듬감 형성
언어 표현에 있어서 미문주의에서 벗어나 보다 생생한 삶의 실감을 표현하기 위해 되도록 구어체, 일상어를 선택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달의 뒤편’이라는 동일 구문을 반복하여 강한 리듬감을 형성하고자 했습니다.
2) 화자 및 어조 결정
- 시적 주체와 밀착된 화자 선택을 통해 감정 이입 유도
- 연쇄적 진술 방법을 통한 의식의 개방
- 속도감을 지닌 반복 기법을 통한 연상의 비약
화자 선택은 독자의 감정 이입을 고려하여 시적 주체와 밀착된 경우를 취했습니다. “물고문 전기고문 꼬챙이에 꿰어 돌려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 같은 비속한 표현의 비약적인 구절을 통해 의식의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동일 구문의 반복에 의해 형성된 속도감을 통해 연상의 비약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 집필에 들어가기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달의 뒤편’에서 ‘눈동자의 뒤편’으로의 비약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마. 퇴고의 과정
1) 첨가의 원칙
- “물고문”에서 “귀뚜라미 울음 같은 것”까지 구문은 초고에서는 없었던 부분이었지만,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이 부분을 넣게 됨. 그 결과 “달의 뒤편”에서 “눈동자의 뒤편”으로 비약적인 상상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음.
2) 삭제의 원칙
- 원활한 이미지 흐름을 위해 가급적 조사를 생략하고 문장 부호를 최소화했음.
3) 재구성의 원칙
- 행/연 있는 시를 산문시로 바꿈. 속도감 형성을 위해서임.
⇒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존재의 유한성 혹은 존재와 세계의 단절을 통해 야기되는 삶의 불가해함이라는 주제를 담은 한 편의 완결된 시편을 탄생시키게 되었습니다.
학문으로서의 문학은 객관적 검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창작은 하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문학 현상으로서의 과정입니다. 따라서 이론화가 매우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점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창작은 가르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이론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학에서 시창작을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시창작 전 과정에 대한 이론적 고찰을 해보았습니다. 그것은 일반적 글쓰기 과정에 기초한 시쓰기의 일반적 과정의 설정입니다. 곧 제재선택의 과정과 자유연상의 과정, 시상 전개 구상의 과정과 집필의 과정 및 퇴고의 과정이라는 시작 단계의 구분입니다.
그동안 제시되었던 시창작과정론과 다른 점은 무의식적 창작 방법을 강조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이 방법은 의식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연상을 이끌어냄으로서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생각이나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데 강점이 있지요. 이를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이 자유 연상과 의식의 흐름, 자동기술법, 적극적 상상력 기법 등입니다. 이러한 방법들은 궁극적으로 은유와 환유의 축을 따라가는 무의식적 연상을 통해 달성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있는 그대로 사물과 사태의 진실을 밝힐 수 있으며 독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창작과정의 이론화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자작시의 실제과정을 대입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시창작 교육현장에 적용시킬 수 있는 이론적 모델을 산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추론과 논리에 따르는 개념적 지식과 개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수행적 지식의 사이에 끼여 있는 창작론의 딜레마 때문에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하겠습니다.
김양헌(金楊憲) 연보(年譜)
1957년 : 11월 3일(음) 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평동(돌빼기) 332번지에서 아버지 김규연과 어머니 이기출의 6남매 중 다섯째로 출생. 영천 중앙초등학교, 영천중학교. 계성고등학교 졸업.
1977년 : 영남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입학. 이 해에 국문과의 친구들과 <나우> 문학동인 결성. (동인지 4회 간행). (총 60여 편의 시를 발표)
1983년 : 영남대학교 대학원 졸업 문학 석사 학위 취득. ( 학위논문 : 朝鮮前期조선전기 時調시조의 硏究연구, 연구 논문「가객들의 장형시조」, 『영남어문학』제13집, 한민족어문학회, 1986.)
1983년-1985년 : 육군본부 보안사령부에서 군복무, 병장으로 예편.
1986년 : 제갈옥순과 결혼. 장녀 현숙 출생.
1987년 : 구미의 금오공업고등학교 교사로 부임. (이후 주로 구미 지역에 거주하면서 문학 활동. 김선굉 시인, 장옥관 시인 등과 만나면서 문인들과의 본격적인 교유, 관심의 중심을 소설 평론에서 시 평론으로 옮김)
1988년 : 문화비평에 「문학은 사회의 거울인가」를 발표하면서 평론활동 시작.
1989년 : 김선굉, 장옥관 시인 등과 함께 구미의 수요문학회를 주도. (10여회에 걸쳐 저명 문인들을 초청한 문학 강좌를 열고, 14회에 걸쳐서 강변시인학교를 개최, 『수요문학회보』 발간. <길>, <햇살>, <뿌리>, <동그라미> 동인 등을 지도, ‘지역 문학 동인 연합세미나’ 개최, ‘공단순회 근로청소년 문예 강좌’를 주도. 구미 지역 문학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
1990년 : 시오리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대구 지역의 문인들과 모임 및 여행 등을 통하여 활발하게 교유하면서 본격적인 평론활동 시작.
1991년 : 평론 「일상적 우연의 반복과 필연적 사건의 극소화」 발표. 차녀 가혜 출생.
1992년 : 평론「나무에 관한 몇 가지 상상력」(문화비평, 1992)외 3편 발표.
1993년 : 공저『한국 현대시문학의 이해와 감상』(영남어문학회 편, 학문사, 1993), 평론 「아버지의 행방, 혹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외 5편 발표.
1994년 : 평론「명사의 반란, 동사의 쟁기질」(『오늘의 시』,1994)외 9편 발표, 백두산 일원 여행.
1995년 : 「푸줏간의 물고기」(『세계의 문학, 1995)외 11편 발표. 격월간지 보성(주) 사보에 '시인들의 여행 수첩'이라는 란을, 송재학, 장옥관 등과 함께 집필.
1996년 : 평론 「붉고도 따뜻한, 상처의 흔적들」(『열린시조』, 1996)외 16편 발표.
1997년 : 평론 「절망도 곰삭으면 희망이 되는가」(《대구예술》)외 16편 발표.
1998년 : 평론 「마른 오징어를 씹으며 떠나는 여행」(『시와시학』)외 14편 발표.
1999년 : 1998년 문학과 사회 10주년 기획으로 집필한 「不相流通불상류통/同氣感應동기감응」으로 제 4회 고석규 비평문학상 수상. 평론 「게릴라와 농민군」(『게릴라』)외 5편 발표.
2000년 : 김천농공업고등학교로 전근하면서 김천으로 이주, <은유>, <등등문학회> 주도, 김천지역 문학의 활성화 기여. 평론 「천일馬화」(『천일馬화』유하 시집해설)외 4편 발표.
2001년 : 평론 「화용론적 결핍과 관능의 충만」(『현대시학』 2001, 1월호)외 16편 발표.
2002년 : 평론 「입이 곪고 발톱이 썩으리라」(『사람의 문학』, 2002)외 15편 발표.
2003년 : 평론 「소리는 왜 냄새를 버렸나」(『한국문학』,2003, 가을호)외 6편 발표. 송재학, 장옥관, 엄원태 시인 등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시 전문 카페 ‘목요시학회’에 적극 참여. ‘바람재 들꽃’ 자연보호 모임의 창립에 참여, 제 2대 회장을 역임. 문인들과 티벳 여행,
2004년 : 3월에 구미 정보여고로 전근. 평론「허구와 실재 사이를 떠도는 섬, 노도(櫓島)」,(『한국문학』, 2004, 봄호)외 12편 발표. 인도 여행.
2005년 : 금오공업고등학교로 전근. (별세할 때까지 재직).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에 출강, 시와 문장 강의. 첫 평론집 푸줏간의 물고기를 시선사에서 간행. 평론 「생의 극점을 스쳐가는 너덜겅의 꽃뱀」(『열린시학』, 봄호)외 19편 발표. 계간 문예지 시선 편집위원.
2006년 : 1월 5일부터 8일간 몽골 여행, 같은 달 일본 여행. 2월 25일부터 금강산 여행. 대구문인협회 평론분과위원장 취임. 이 해 여름부터 간암을 앓기 시작. 평론 「것들의 야적장」(이하석 시집 것들 서평)외 16편 발표. 「촌놈 시인, 다시 현장에 서다」는 첫 수술을 여덟 시간 앞둔 9월 25일 자정 무렵, 서울 삼성병원의 휴게실 컴퓨터로 완성하여 송고.
2007년 : 1월 4일부터 요양을 위하여 지리산에 머물렀음. 이해 5월부터 이듬해 5월 19일까지 요양을 위하여 병가, 휴직. 휴직 기간 중 김천시 남면 갈항사지 어귀에서 요양, 이듬 해 1월 경 구미 집으로 다시 돌아옴. 평론 「지게와 재봉틀, 풀밭 위에 서다」(김신용 작품론) 발표. 둘째 평론집 이 해골이 니 해골이니의 원고 정리.
12월 5일 수요문학회 주최 ‘이하석 시인 초청 시노래 공연회’를 끝으로 거의 20년에 걸쳐 시간과 열정을 투자해 온 구미지역에서의 문화운동을 마감.
2008년 : 「실존의 배꼽을 어루만지다」(문인수 시집 배꼽 발문)를 끝으로 종횡무진 휘둘러온 평필評筆을 놓음.
4월 17일 : 두 번째 평론집 이 해골이 니 해골이니를 고요아침에서 간행.
5월22일 : 그 동안 치료를 받아온 서울 삼성병원에서 3개월 시한부 통보.
6월 5일 : 이하석, 문무학, 송재학, 장옥관 시인 등 대구 경북지역의 문인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제 2 평론집 이 해골이 니 해골이니의 출판기념회.
6월 14일 : 장녀 현숙 출가 (사위: 玉榮哲옥영철. 주례: 김선굉 시인).
6월 23일 : 급격한 지병 악화로 담당 의사로부터 1개월 통보. 6월 24일 팔공산의 한사랑요양병원에 입원. 7월 1일 대구 신암동 소재 누나 집으로 퇴원.
7월 3일(음 6월 1일): 새벽 3시 30분 경, 향년 52세로 영면. (묘소 : 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평동 지리곡 (池里谷)).
※ 기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사위원, ‘문화비평’ 편집위원, ‘구미문화’ 편집주간, ‘교육월보’ 현장편집위원, 구미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정책위원, 예총 구미지부 수필 및 평론 분과 위원장, 백신애 문학상 운영위원 등 여러 가지 일들을 맡았음.
<추모시>
빨래
문 인 수
"……달빛에 몸을 널어 말리다!"
시인, 김양헌이 그해 여름 맑은 달밤에
욕지도 너럭바위 위에
큰 대 자로 벌렁 드러누워 외친 말이다.
그는 그날
밤새도록 민박 숙소에 올라오지 않았다. 무엇으로
그 많은 몽돌 소리를 모두 잠재웠을까.
그로부터 꼭 십일 년 후,
2008년 7월 3일 새벽 3시 30분에
그는 죽었다. 흰 이마를 통해 오래 방울방울 짜내던 땀방울,
그 부지기수의 비명을 다 말린 것이다. 간암 말기,
창백하게 야윈 병상의 사내가
목청껏 시를 읊으며 날개를 단 것일까.
달 가까이, 가까이, 침묵에 드는…… .
- <문학수첩> (2008년 가을호)
봄날의 피크닉
- 더욱 봉긋해진 무덤
박 정 남
무덤은 도화꽃 속에서 봉긋하다
무덤 속의 사람도 다정하게 나와 앉았다
복숭아꽃 떠가는
여기는 무릉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없었다
잉잉거리는 벌들이 꽃 속을 후벼 파며
들어갔다가 나오곤 했다
무덤 건너 한 복숭아꽃밭이 피고
또 한 무덤 건너 붉은 복숭아꽃밭이 피고
여자들이 가득 피크닉 나와 앉았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앉아
서로 음식을 나눠 먹는 오랜 시간
이윽고 한 무덤이 갈라지며 손을 흔들고 떠나갈 때
여자들과 복숭아꽃 만개한 밭이
저녁노을과 함께 그 속으로 끌린 듯
서서히 걸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더욱 봉긋해진 무덤이 남고
부드러운 어둠이 내려와서 덮었다
너가 옮기는 숲의 이름
-김양헌(1957~2008)
송 재 학
병은 12,302그루*의 나무를 몇 년에 걸쳐 그의 몸에 이주시켰다
그는 계간지『식물세계』의 발행인을 원했다
그는 숲을 챙겨갈 요량이다
살쩍이 희끗해진 대신
그는 초록 수염을 길렀다
포자처럼 기관지에 착근한 히말라야시다 때문에
숨 쉬는 게 힘들다고 그는 웃는 듯 찡그리는 듯했다
잣나무 앙상한 가지는
혈관 바깥으로 번지고 있다
나무와 사람이 해쓱한 그늘이라면
매일 비질하던 그 숲의 말간 입구를
그는 이제 천천히 봉인한다
너무 좁아져서 일몰조차 힘들게 드나드는 그곳,
마구 울리던 전화벨의 부음을 그와 내가 함께 들었다
*김양헌의 평론,「불상유통/동기감응, 1990년대 시읽기의 방법적 시론」(『문학과사회』,
1998년 봄호)의 인용. 평론가 김양헌의 학교 사택에서 거주했고, 12,302그루는 그가
헤아린 학교 전체 나무의 숫자이다.
- <문학과사회> (2008년 가을호)
동기감응 하다 -故 김양헌 평론가를 추모함
박 상 봉
늦은 밤 혼자서 말의 감옥에 갇혀 시의 속살 더듬다가 몽돌 선생과 동기감응(同氣感應)하는 날이 있다 세상의 짐 내려놓고 영천군 임고면 고향 땅으로 돌아가 야트막한 산비탈 풀숲에 몸 눕히고 사는 눈 밝고 입 바른 사람, 투명한 낯빛과 후박한 턱수염 눈에 선하다 인간이 더럽힌 말의 얼굴 닦아주고, 멍든 말의 가슴 어루만지던 부드러우나 엄한 손가락으로 가리켜 세운 말법이 꿈틀꿈틀 나뭇잎 되살아나듯 온몸 뒤틀어 흔드는 밤말의 자궁 들쑤시고, 말의 속살 발라내고, 말의 감옥 물어뜯고, 말의 내장 헤집던 숨결, 맑은 물소리처럼 가깝게 들린다 금오산 중천에 둥글게 떠오른 달이, 강변로 수양벚나무 활짝 핀 꽃길이, 직지사 뒷길 청노루귀 꽃밭이, 맷돌로 팍팍 갈아낸 그의 결 고운 문장으로 환하다 너무 착한, 너무 따뜻한, 아까운 한 사람 우리 곁을 떠났으나 붓으로 찍어놓은 지칭개 꽃빛 바람 따라 흔들리는 것 듣고 있으면 흙으로 돌아간 살이 동기감응(同氣感應)하는 형식임을 알겠다
그의 행방
김 대 호
그는 세 시경 병실을 빠져나갔다
환자복과 꿉꿉한 내금
심지어 몸까지 냅두고서
절규도 민망한 새벽 고요
첫차 다니기 전 운전도 못하는 그가
맨발로 무중력의 길 방향없는 길을 감으로 걸어나갔다
그곳은 주소없는 고향
발끝에서 한 뼘, 정수리에서 한 뼘
얼굴도 안 보이고 웃음 소리도 안 들리지만
시선이 가는 곳마다 그가 보인다 그가 들린다
밤길 뒤통수에서 한 뼘 거리로 느끼는 살의(殺意)
온몸 퍼지는 닭살 그리움
그의 고향이고 우리의 고향인 그곳, 핏줄로 땡기는 동향(同鄕)
그가 마감된 것도 모르고 늦은 전화를 하는 사람이 있다
시간과 기억, 공간과 거리 같은 효과음이 울린다
한 뼘 거리인데, 그는 전화 받지 못한다
<초대 추모시>
꽃잎 장례
-故 김양헌 선생 영전에
김 명 리
시간의 호젓한 가장귀를 열고 들어서며
그대 앞장서고 우리들 뒤따르고
미등 안 켜고도 안개 속을 날아가는 새떼들 좇아
우리가 밤을 향하여 가는 것이냐, 아무도 묻지 않는다
짧았기에 휘황한 기억들
총상總狀 꽃차례로 샛노랗게 모였다 흩어지는 저 꽃잎들
눈 감으면 더 깊이
눈의 점막을 째고 들어오는 슬픔이어서
펄 속 같은 칠월 하늘 장마전선 한 귀퉁이가 절로 오므라든다
바람 소리 물소리 속절없이 나란한
그대 생의 탯자리, 오, 여기
이곳에 당도하려고
그대 그토록 숨 가삐 천지간 없는 봄을 찾아 헤매었도다
꽃 진 자리마다
환幻인 듯 몰려다닌 대낮의 아지랑이
울 듯, 울 듯, 웃으며 멀어져가니
다정多情이 그대의 병 키웠음을 왜 모르랴
길잡이 새떼들 안 보이고
물고기좌에서 빠져나온 물고기 한 마리, 그예 물소리 따라가고 없다
운명의 맨 밑바닥에
차갑게 가닿는 꽃잎 한 장의 무게,
돌아오지 못하는
그대의 마음의 이정里程을 여기 못 박아놓고
길 없는 길 따라 뿔뿔이, 우리만 늙은 밤을 향하여 되돌아온다
-<현대문학> 2008년 8월호
<추모 평론 낭독과 추억담>
《문예중앙》(2005년 겨울호) : <송재학 시인과 이야기하기>
서쪽으로 날기 위한 나비 날개의 온도
때 : 2005. 10. 15.
곳 : 청우헌(聽雨軒)
도가니탕은 걸쭉하였다. 국물까지 다 긁어먹고 나오니, 남산만하게 배가 부른 달이 얼굴을 내민다.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잠시 가까이 지내는 시인들 얘기를 늘어놓았다. 오래 만나지 못한 탓이다. 범물동에서 안심까지 새로 난 외곽도로 얘기도 오가고, 달도 슬쩍 끼어들었다. 이 달은 천수백 년 전 기파랑이 보았던 그 달이기도 하다. “열치매/나토얀 리/ 구룸 조초 가 안디하”, 양주동이 해독한 이 「찬기파랑가」 앞부분은 예전부터 교과서에 실린 터라 1950년대에 출생한 세대는 누구나 알고 있다. 요즘은 보통 향가 해독을 집대성한 김완진의 『鄕歌解讀法硏究』를 따라 “늦겨곰 라매/이슬 갼 라리/ 구룸 조초 간 언저례”로 읽는다. 어쨌거나 이런 문제와 상관없이, 시인은 구름 사이로 달이 흘러가는 소리를 미세한 말의 결에서 들은 모양이다. 이효석은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메밀꽃 필 무렵」)린다고 했던가, 시각과 청각이 뒤얽히며 뿜어내는 말의 숨결, 송재학 시인은 그 가녀린 흐름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시로 붙잡아둔다.
청우헌에 들어서자 불현듯, “빗소리는 아버지의 편지함/빗소리는 귀로 만들어진 물받이통으로 소식을 보낸다”(「아버지도 오시는 무덤」)는 시구가 떠올랐다. 오늘처럼 달밝은 밤에조차 청우헌에는 빗소리가 들리는지 모르겠다. 이제 “아버지보다 더 오래 지상에 사로잡”혀,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가 되어버린 시인의 내면에는 아직도 그 날의 슬픔과 괴로움의 먹장구름이 뒤덮곤 하는 걸까. 시인은 산문 「청우헌기」 마지막 대목에 폭우 대신 “햇빛의 전후이거나 햇빛의 왁자한 속삭임”을 놓지만, 어느새 “빗물은 슬금슬금 스며들어와 녹물 번져서 몸 여기저기 대못 박힌 상처를 추억하게 한다.”며, 몸의 일부로 껴안고 살아온 떨칠 수 없는 시간의 상흔을 현재라는 시간대에다 겹쳐놓는다. 시간은 흐르고 또 흐르지 않는다.
마른 시간 곱씹어 우화루에 바치다
윤 은 경
우화루는 바스러질 듯 곱게 말라 있다. 세월의 더께도 “상처의 모진 더껑이”(「고목」)도 천년 햇살에 기화하여 옹이조차 문드러진 우화루 판벽, 오래 입적을 기다려온 노승처럼 쪼글쪼글한 살갗에 후광이 얼비친다. 이름 또한 깃털마냥 가벼워, 우화(雨花) 우화(寓話) 우화(羽化), 물기 쭈욱 빠지고 소리의 뼈만 남았다. 툭, 치면 폭, 내려앉을 우화루, 그 배흘림기둥에 기대 세상을 다시 읽으면 “몸이 이룬 슬픔”(「花岩을 보지 못하고」) 가득 찬 가슴에 검은 빗장 덜컥 걸리고, “버릴 것 못 버린 죄”(「칡」) 겨울 저녁답 땅거미처럼 몰려든다.
물소리 물소리 따라 화암사 오르는 돌길, 갈참나무 서걱이는 소리, 서어나무에 반짝이는 햇살, 서풍에 쓸려오는 이내로 홍진의 때 다 씻은 듯하지만, 아득한 우화루는 인간의 속내 금방 알아차려, “눈부신 죄로 사무친 몸”(「봄-나무-희망」), “한번도 내 것이 아니었던 청춘”(「용담을 만나다」) 오롯이 다 드러낸다. 버릴 것 다 버려 바싹 마른 우화루 판벽은 상처와 욕망을 비추는 명경대 같아서, “연화보궁을 점찍어 두고” 거듭거듭 화암사를 찾아간대도 마음의 격랑 잠재우지 못한 몸으로는 결국 “화암을 보지 못하고/화암을 떠”(「花岩을 보지 못하고」)날 수밖에 없다.
…… <중략> ……
우화루는 지금 아래층은 창고, 위층은 공양주가 허드렛일을 하는 곳이 되었다. 그렇다고 별반 아까울 것은 없다. 그냥 아껴두는 것보다 사람 온기가 들어가는 게 그나마 나을 성싶다. 일 거든답시고 엉덩이 깔고 앉아 스님 몰래 가슴 설레기도 안성맞춤이다. 보물 622호, 출입금지 안내문이라도 내건다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기둥 몇 개 세우고 널빤지를 덧대 지은 집이 특별 대접을 한다고 고마워할 턱도 없다. 비바람에 젖고 햇살에 다시 마르기를 수백 년, 그 인고의 세월을 읽고 눈물 뿌리는 것도 우화루가 아니라 인간의 몫이다.
튀어나온 내장으로 환(幻)을 읽다
이 옥 진
시에서는 실사보다 허사가 더 중요해요. ‘나는 학교에 간다. 너는 얼굴이 예쁘다.’고 할 때 ‘너 얼굴 예쁘다.’ 하는 것은 우리가 건드릴 수 있는 종류가 아니고, ‘얼굴도 예쁘다.’ 할 때, 언어의 수사는 허사에 해당하는 ‘도’의 미묘함에 있지. 사물들이나 세상에서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 부분들이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다고.
그리고, 또 시란 일종의 접속사를 통해서 붙여나가는 거라 생각해요. 접속사 ‘그리고, 그런데, 그러나’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러나’로 가기에는 상당한 긴장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또 잘못 뒤집었을 때는 완전 말장난이 되지. 대충 ‘그런데’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러나’가 수직으로 벌어진다면, ‘그런데’는 처음 벌릴 때는 아주 호기심 찬데 나갈 때는 다른 성격이 되지. ‘그런데’로 말문을 열고 붙여나가서 새로운 틈새를 만드는 거, 그런 게 시가 아닌가? 왜 축구선수들 하는 거 보면, 앞이 가로막히면 일단 볼을 띄워주고 돌아가서 공을 차지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언어를 먼저 띄워주고 그 다음에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주고.
틱낫한을 읽다보니 이런 게 있더라고. 나무하고 나뭇잎의 관계에서 나뭇잎이 나무의 엄마다. 우리는 나무가 나뭇잎의 엄마라 생각하는데, 이렇게 벌려주고 둘째 단계에서 뭐라고 이야기하나 하면, 나뭇잎이 뿌리에서 오는 물로 광합성을 해서 나무에게 영양을 다 준 다음 낙엽으로 떨어지면 썩어서 또 영양을 준다. 그러니까 나뭇잎이 나무 엄마 아니냐. 틱낫한이 탁월한 시인인 게, 따라서 나뭇잎의 삶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나뭇잎 안에서의 삶’, ‘나무 안에서의 삶’이라고 해야 한다.
그와 같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안 당연한가, 어떻게 안 당연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가. 그 틈새가 바로 시인들이 보여주는 하나의 세계고. 그렇지 않다면, 시가 있어야 할 아무 이유도 없고. 지금 시를 뭔 짝에 쓰느냐? 뭔 짝 뭔 짝이 무슨 술 되고 밥 되는 거 아니지. 바로 그 틈새 보여주는 것, 그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고. 그렇지만 그 틈새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 틈새만큼 숨쉬고, 그 틈새만큼이 인간의 것을 넣을 수 있는, 그것이 시인의 자리지. 나탈리 골드버그의 말 중에 이런 게 있어, “만약 그런 사소한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는 내일 당장에 원자폭탄을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는 놈들이다.” 그러면 이야기가 다 풀리지요?
- 『열린시학』(2005년 여름호)
<추모산문>
사람과 나무
송재학
평론가 김양헌은 2008년 7월에 세상을 떠났다. 부음을 받기 며칠 전 몇몇 시인들과 함께 그의 병실을 찾았다. 병실 바람벽에 붙인 '청정일심淸淨一心'이란 프린터 명조체가 가슴을 후빈다. 기실 평론가는 약기운 때문인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모로 쓰러지듯 눕는다.
그가 맑은 정신으로 임종을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을 알기에 몸과 정신에 대해 그가 괴로우리라는 건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토록 가깝게 지내던 피붙이 같은 친구가 이제 경각에 도달했는데 무엇으로 그를 위로하랴. 그리고 이틀 뒤 그나마 먹던 곡기를 그가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곡기가 없으면 며칠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염려도 함께였다. 그 다음날 부음을 들었다.
그는 반인반수半人半樹였다. 그는 12302그루의 나무와 함께 살았다. 12302라는 숫자는 그의 평론 「불상유통 동기감응」에 등장한 나무의 숫자이다. 그게 그가 재직하던 학교의 나무 숫자란 건 내 짐작이다. 그 학교 관계자에게 물어보아도 나무의 숫자 같은 건 알지 못한다. 하지만 12302라는 건 분명 그가 헤아린 전체 나무의 숫자이다.
그는 먼저 구획을 나누었을 것이다. 자그만 공책에 나무의 이름과 위치가 한 그루 한 그루 적혀갔으리라. 50개의 블록이 생겼지 않았을까. 몇 달이나 걸렸을까. 이름 모르는 나무들도 분명 있었을 터. 그 나무의 이름을 알 때까지 그는 다음 나무의 숫자를 헤아리지 않았을 것이다. 장항리사지의 탑을 보고 토함산을 지나갔을 때 길가의 나무들은 엄청 커다란 분홍 꽃을 달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게 후박나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일본목련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그 두 나무의 특징에 대해 상세하게 말했다. 후박나무와 일본목련이라니! 남해 창선도에서 나는 제대로 된 왕후박나무를 처음 보았다.
후박나무와 왕후박나무는 어떻게 다르지? 그때 나는 어렴풋이 그가 어떤 식물지를 쓰고 있다고 믿었다. 또 하나, 시인들과 함께 여행한 욕지도에서의 일이다. 해변가의 햇빛 속에서 까짓것 거풍을 하던 우리 시선에 잡힌 것은 둥근 스카이라인과 그 호의 중심에서 바람을 마중하고 있는 나무였다. 제 이름이 뭐지? 느낌과 선체험과 감각이 만든 여러 나무 이름이 등장했지만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너무 멀었고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곳까지 갈 요량을 내지 못했지만 시인이 아닌 그 평론가는 왕복 30분의 노고를 조금도 귀찮아 하지 않고 다녀왔다. 그는 반인반수였다. 때죽나무 이름이 아슴슴해질 때 때죽나무 아래 있으면 나무의 이름이 떠오른다고 그는 말하곤 했다. 때죽나무 꽃의 비눗향기를 맡고서야 나무 이름이 어렴풋한 나와 다르게 그는 온전히 나무로부터 동기감응하여 그 이름을 듣는 듯했다.
그가 1998년 『문학과사회』에 게재한 「불상유통 동기감응」이란 글은 1990년대 우리 시 읽기의 주요한 지렛대와 나침반이다. '1990년대 시읽기의 방법적 시론'이란 부제가 붙은 그 글은 1990년 한국시의 날줄과 씨줄을 짚어가는 뛰어난 글로 한동안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글은 그와 인근의 시인들이 번뇌하고 토론했던 문학담론이기도 했기에 그 글이 발표된 후 그를 포함해서 여러 시인들이 함께 모여 후일담을 다시 되뇌이곤 했던 기억이 아직 또렷하다.
『세계의 문학』에 게재했던 평론「푸줏간의 물고기」도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평문이 던져준 충격은 나로선 비평의 문학이란 감회였다. 그의 글은 우선 미문이다. 그 미문은 정확한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뒷받침되어 그것에 늘 서투른 나로서는 부러웠던 재능이기도 했다.
"요즘 들어서야 우리말의 흐름을 꼼꼼히 따져보게 되었다. 인간이 더럽힌 말의 얼굴을 닦아주고 자본주의에 멍든 말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말이 철철철 흘러가도록 물꼬를 터주는 일은, 말을 다루는 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짊어져야할 책무일 터"라는 첫 평론집의 서문은 마치 시인의 말에 대한 책무처럼 보인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글과 텍스트를 외우다시피 몰두했다. 문장에 대한 헌신이 그의 몸을 급속도로 망쳤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문장을 돌보았다.
그의 글에는 무엇보다 형식의 아름다움이 미문을 뛰어넘고 있었다. 위의 글「불상유통 동기감응」에서도 그는 한 생물학자와의 만남으로 글을 풀어가고 있다. 한국현대시를 어떤 측면으로 이해하고 또한 12302 그루의 나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물학자는 한국현대시의 분석법으로 방정식을 들고 나온다. 방정식에 대하여 그는 단절과 소통이라는 방법으로 90년대 우리시의 입체적 분석을 가한다. 이러한 형식의 다양성은 그가 상재한 두 권의 평론집 『푸줏간의 물고기』와 『이 해골이 니 해골이니』에서 참으로 다채롭게 변주되고 있다. 형식에 대한 절절한 고민은 그가 비평을 문학으로 수용했기에 당연한 번뇌이었다.
장례식이 끝난 며칠 뒤 하관을 보지 못한 여러 시인들과 함께 그의 묘를 찾았다. 경북 영천 임고 땅이다. 포은 선생의 임고서원 근처 복숭아 밭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야산이었다. 기가 막히네, 여러 사람들이 입을 떼었다. 그렇게 꽃을 좋아하더니 분홍꽃에 완전히 파묻히게 되었네 그려. 확실히 그의 품성과 낯익음이 그대로 풍경으로 재현되었다. 나는 『티벳 사자의 서』몇 구절을 읽었다. 부디 영면하소서.
- <시안> 2008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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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무 긴 자료글이라, 한글 파일 다운 받아 보시면 더 나을 겁니다. 당일까지 제 불찰로 누락되어 부랴부랴 현장 끼워넣기된 '추모시 3편' 추가분은 상봉씨가 다시 좀 올려 주세요. 이건 멀리서나마 마음만으로 함께 해 주시는 루님 같으신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출력해서 경건한 마음으로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