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조 홍인화상
화상은 당(唐)에서의 5조이시며, 성운 주(周)씨였다.
본시 여남(汝南)에 살다가 기주의 황매로 옮겼다.
탄생한지 7세에 출가하여 도신대사를 섬겼는데
어릴적부터 매우 총명하여 일을 두 번 물은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광채를 뿜어 하늘을 꿰뚫었고,
항상 이상한 향냄새가 났으며 몸이 편안함을 느끼더니
태어나서 자라매 형상이 특이하므로 관상쟁이가 보고 말했다.
“이 아기는 부처님보다 일곱 가지 거룩한 모습만 부족합니다.”
이때 노행자(盧行者)가 나이 32세에 영남(嶺南)으로부터 와서
조사(홍인)께 뵙자 조사께서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구하는가?”
노행자가 대답했다.
“신주에서 왔는데 부처가 되기를 구합니다.”
“그대는 영남 사람이니 불성이 없느니라.”
“사람은 남북이 있으나 불성은 남북이 없습니다.”
“그대는 무슨 공덕을 짓겠는가?」
“힘껏 돌을 지고 방아를 찧어 스승과 스님네를 공양할까 합니다.”
이에, 조사께서 허락하시니 하룻밤 하룻낮에 쌀 열두 섬을 찧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봉하기 8개월에 이르러서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대도(大道)의 근원입니까?”
조사께서 대답했다.
“그대가 만일 그렇게 안다면 어찌 남에게서 찾으려 하는가?”
“그렇다면 밖에서 얻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안에서 찾는다 해도 옳지 못하니라.”
조사께서 입멸하시기 직전에 대중에게 고했다.
“바른 법은 듣기 어렵고, 거룩한 모임은 만나기 어려운데
여러분이 그렇게 오랫동안 내 곁에 있으면서 본 바가 있거든 말해보라.
나의 말 만 기억하지 말라. 내가 증명해 주리라.”
대중 가운데 신수(紳秀)가 있다가 조사께서 갑자기 고하시는 말씀을 듣고
곧 붓을 들어 벽에다 다음과 같은 게송을 썼다.
몸은 보리수(菩提樹)요
마음은 밝은 거울이다.
때때로 털고 닦아
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
조사께서 이 게송을 보시(布施)고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만일 이 게송에 의해 수행하면 해탈을 얻게 되리라.”
대중이 모두 이 게송을 외웠는데, 한 동자가 방앗간 곁에서 외우거늘 행자가 물었다.
“무엇을 외우시오?”
동자가 대답했다.
“행자님은 모르시는가요? 제 1 상좌께서 게송을 지으셔서 조사께 바쳤는데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이 게송에 의해 수행하면 해탈을 얻게 되리라」 하셨습니다.”
“동자여, 나는 문자를 알지 못하니, 그대는 나에게 한번 더 외워 주시오.
나도 듣고서 부처님의 회상에 태어나기 소원입니다.”
이때 강주(江州) 별가(別駕)인 장일용(張日用)이란 이가 회중(會中)에 있었는데
행자를 위하여 높은 소리로 게송을 외우니, 행자는 다시 그에게 청했다.
“나를 대신해서 게송 하나를 받아 써 주시오. 나에게도 하나의 졸작이 있습니다.”
이에 장일용(張日用)이 그를 위해 게송을 써 주니 다음과 같다.
몸은 보리수(菩提樹)가 아니요
마음 거울도 경대(鏡坮)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디에 먼지가 끼랴.
이때 조사께서 가서 보시(布施)고 휘저어버리고 얼굴에 미소를 띄우면서,
그라나 찬(讚)양하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훨씬 훌륭함을 짐작하고 있었다.
조사께서는 또 방앗간으로 가서 행자에게 물었다.
“수고하는구나! 쌀이 익었느냐?”
행자가 대답했다.
“쌀이 익은지는 오랩니다마는 아직 아무도 키질을 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삼경이 되거든 오거라.”
행자가 대답을 하고, 3경이 되자 조사의 처소로 오니
조사께서 그의 이름을 혜능(惠能)으로 바꾸어 주시고
이어 가사를 주어 법의(法衣) 신표(信表)로 삼게 하시니,
마치 석가모니불께서 미륵에게 수기(授記)를 주시는 것과 같았다.
조사께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유정이 와서 씨를 뿌리니
원인의 땅에 결과가 저절로 난다.
무정(無情)은 미미 종자가 없으므로
성품도 없고 남도 없다.
행자는 게송을 듣고 뛸듯이 기뻐하면서 가르침을 받아 지니고 행하였다.
이에 조사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삼년 뒤엔 열반에 들 것이다.
그대는 당분간 법을 펴지 말라. 그대를 해치는 자가 있을까 걱정이다.”
행자가 여쭈었다.
“어디로 가야 환란을 피하겠습니까?”
“회(懷)를 만나면 멈추고 회(會)를 만나면 숨어라.”
<회(懷)는 주요, 회(會)는 현이다.>
행자가 다시 물었다.
“이 가사는 계속 전하리까?”
조사께서 대답했다.
“후대에는 도를 얻는 이가 황하의 모래 같으리라.
이제 이 신표(信表)의 옷은 그대에게서 멈추라.
왜냐하면 달마(達磨) 대사께서 이 옷을 전하신 뜻은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 해서
표적으로 삼으신 것이니, 법을 듣는 일이 어찌 옷에 달렸겠는가?
만일 이 옷을 계속 전하면 생명을 해치게 될까 걱정이다.
이 옷을 받은 이는 목숨이 매우 위태로울 것이다.
더구나 달마(達磨)께서도 말씀하시기를
「한 꽃에 다섯 잎이 퍼져 열매가 저절로 맺으리라」 허셨으니,
이는 이 땅에서 그대까지가 다섯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인가하신 말씀이다.
또 반야다라(般若多羅)께서 말씀하시기를
「열매가 가득하니 보리의 동산(洞山)이 원만하고,
꽃이 피니 세계가 일어난다.」 하셨으니,
이 두 구절도 역시 지금의 법의(法衣)가
그대에게 이르러서는 남에게 전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인가하신 것이니라.”
행자가 분부를 받잡고 곧 조사를 하직하시니 조사께서 곧장 강가로 가서
조그마한 나룻배에 올라 손수 노를 잡았다. 이에 행자가 사뢰었다.
“제가 노를 잡겠습니다.”
“그대는 소란을 피우지 말라. 내가 만일 지치거든 그대가 나를 도와주고
그대가 만일 지치거든 내가 그대를 도와주면 된다.”
강을 다 건너고서 행자에게 말했다.
“잘 가거라.”
행자는 차츰차츰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조사께선 절로 돌아와 사흘이 지나도록 설법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나흘째 되는 날 대중이 물었다.
“스승의 법을 누가 전해 받았습니까?”
조사께서 대답하셨다.
“능한 이가 얻었느니라.”
대중이 잠시 침묵에 잠겨 생각다가 행자가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자 생각했다.
「혹시 그가 법을 전해받아가지 않았을까?」
그때, 칠백 명 대중이 동시에 노행자의 뒤를 쫓았는데
대중에 혜명(慧明)이라는 한 중이 맨 먼저 대유령까지 가서 보니,
마루턱에 의발이 있는 것은 보이나 행자가 그 곁에 있지 않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가서 손으로 당기려했으나 의발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자기의 힘이 부족함을 깨닫고 바로 산으로 들어가서 행자를 찾다가
높은 벼랑 위를 보니 행자가 거기 앉아 있었다.
행자가 멀리서 혜명(慧明) 상좌를 보고,
이내 자기의 의발을 빼앗으러 오는 줄 알고 말했다.
“화상(和尙)께서 지금 나에게 의발을 주셨는데 내가 굳이 사양했으나
두 세번 거듭 받으라 하시기에 부득이 가지고 오기는 했으나
지금 저 고개 마루 턱에 있으니, 상좌께서 원하신다면 가져 가시오.”
혜명(慧明)상좌가 말했다.
“의발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특히 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행자께서 오조(五組)를 하직할 때
오조(五組)께서 어떤 밀어(密語)나 밀의가 계셨는지요?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행자께서 상좌의 간절함을 보시(布施)고 곧 그에게 말씀하셨다.
“조용히 생각하고 조용히 생각하되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말라.
바야흐로 이렇게 생각이 나지 않을 때에 나에게 명 상좌의 본래의 면목을 돌려주오.”
혜명(慧明)상좌가 다시 물었다.
“밀어(密語)와 밀의는 지금 말씀하신 그것뿐입니까? 아니면 그 밖에 다른 뜻이 있습니까?”
“내가 이제 그대에게 분명하게 말했으니 비밀이 아니다.
만일 그대가 자기의 면목을 스스로 얻으면 비밀은 도리어 그대에게 있느니라.”
“행자께서 황매(黃梅) 화상(和尙)의 회상에 계시던 뜻이 무엇입니까?”
“화상(和尙)께서 내가 신수(紳秀) 상좌의 게송에 대한 것을 보시(布施)고
곧 내가 문 안에 들었음을 아시고, 곧 혜능(惠能)이라 인가하시되
「신수(紳秀)는 문 밖에 있으나 너는 문 안에 들어와 앉아서 옷을 입었다.
후일 스스로 알게 되겠지만 이 의발은 예전부터 전해 오되
반드시 적의한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내가 이제 너에게 전하노니,
너는 힘써 지니되 十여년 동안은 이 교법을 펴지 말라. 반드시 난리가 일어날 것이다.
이 고비가 지나거든 어리석은 사람들을 잘 교화하라」하셨느니라.
그때 묻기를 「어디로 가야 그 난리를 피하겠습니까?」 하니,
대답하시되 「회를 만나면 멈추고 회를 만나면 숨으라」하셨느니라.”
혜명(慧明)이 다시 사뢰었다.
“제가 비록 황매(黃梅)에서 머리는 깎았으나
실로 종승(宗乘)의 면목은 얻지 못했었는데
이제 행자께서 지시해 주심을 얻어 들어갈 곳을 알았사오니,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매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아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행자께서 이 혜명(慧明)의 스승이십니다.”
그리고는 곧 도명(道明)이라 이름을 고치니, 행자께서 말했다.
“그대가 그렇듯이, 나도 그렇다. 그대와 함께 황매(黃梅)에 있었으니 다를 것이 없다.
이로부터 잘 지켜서 지니라.”
도명(道明)이 말했다.
“행자께서는 속히 남쪽을 향해 떠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뒤에는 많은 중들이 행자의 뒤를 좇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디로 가오리까?”
“몽을 만나거든 살고 표를 만나거든 멈추라.”
도명(道明)이 지극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행자를 하직하고,
곧 길을 돌려 북으로 건주(虔州)에 이르렀을 때에,
과연 오십 여명의 중이 행자를 찾아오고 있기에 도명(道明)이 보고 그들에게 말했다.
“대유령(大庾嶺) 마루, 회화진(懷化鎭)에서 五, 六일 동안 기다리며 찾고,
또 여러 성문과 나룻터에서 북으로 향해 오는 나그네들에게
모두 행자의 행방을 물었으나 모두가 말하기를 「그런 형색을 보지 못했다」합니다.”
이 말에 여러 사람이 모두 길을 돌렸는데
도명(道明)은 혼자서 여산(廬山)의 포수대(布水臺)로 갔고
삼년 뒤에 몽산으로 가서 수행하는데 무릇 납자가 찾아오면
모두를 영남의 육조에게 보냈다. 지금도 몽산에는 영탑(靈塔)이 남아 있다.
조사께서 법을 전하신 뒤 고종(高宗) 二十四년 임신 二월 十六일에 입적하시니,
춘추(春秋)는 七十四세요, 대종(代宗)이 대만선사라 시호하고,
탑은 법우(法雨)라 하였다. 상원의 임신에 입적하신 뒤로
지금의 당 보대(保大) 十년 임자까지는 二백 八十년이 된다.
정수(淨修)선사가 찬(讚)했다.
오조(五組)께서는 七세 때부터
언어 이전의 소식을 깨쳤네.
돌 소가 안개를 토하고
나무 말이 연기를 머금는다.
몸과 마음, 언제나 고요하고
이와 사가 모두 현묘하다.
정도 없고 종자도 없으니
천년 만년이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