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송선생님관한글-sbs편글(우리팬클럽도있다)

[바다효리]

<“캐스터는 스포츠 MC!” - 송재익>

“제가 뭐 만담가도 아니고, 코미디언도 아닌데 가끔씩 시청자들의 요구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송재익 캐스터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온 국민을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당겨 시청률 60퍼센트를 육박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었기 때문이고, 350여 명의 팬클럽에 끝없는 송재익 어록(語錄)까지
갖추고 있는 명실공히 최고의 축구 캐스터로 유명 연예인 못지 않는 인기를 얻고 있으니 사람들의 억측이나 지나친 요구는 당연지사다.
사실 송재익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MBC를 떠올릴 것이다. 한국이 출전했던 모든 월드컵 중계를 비롯해 1984년부터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 메인 진행 등 1970년 입사 이후 MBC의 스포츠 중계는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런 그가 SBS미디어넷으로 옮겨온 것도 스포츠 중계에 대한 절실한 소망이 바로 그 이유다.
처음 그는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MC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갓 입사한 아나운서에게 프로그램을 덜커덕 맡길 수 없는 사정과, 아나운서팀에도 질서가 있으니 프로그램을 원하는 대로 맡을 수 있는 형편이 안되니 특유의 재치를 십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스스로 몸부림 쳤습니다. 신입시절 월급이 6개월 동안 1만원 정도였는데 그 돈을 털어서 소형 녹음기를 사고, 도시락을 두개 싸서 효창운동장, 복싱장을 다니면서 연습했죠.”
택시기사도 뒤돌아볼 유명한 너털웃음으로 아나운서 초임시절을 회고했다. 관중석에서 녹음기를 대고 슛, 라이트, 레프트를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화장실에 가서 실황을 보고 재현을 하면서 연습을 했다. 그리고 선배들에게 들려주면서 조언을 요청해 스스로 꾸지람을 자청했던 것이다.
귀찮아하는 선배들도 있었지만‘스포츠 캐스터를 하고 싶어하는 놈’, ‘애드립이 강한 놈’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아웅산 사건과 KAL기 폭발사고 등 굵직한 사고에서의 분향식과 영결식에는 그가 나섰고, 결국 1986년 아시안 게임에서 개폐회식 메인 아나운서가 된 것이다. 그의 중계에서 즐거운 비유와 속시원한 멘트가 줄줄 쏟아져 나올 수 있었던 저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복싱을 단편소설에 비유한다면, 야구는 가계부, 축구는 콩트를 쓰듯이 중계를 진행해야 합니다.”
스포츠 중계를 프로그램의 진행자라고 말하는 그는 종목마다 진행의 성격을 달리 구분짓고 있다. 말하자면 배고픈 사연이 많아 열 대를 때리고도 한 대로 끝나버리는 게임인 복싱은 단편소설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고, 각종 기록과 개인 선수의 실력이 중요한 야구는 가계부처럼 정확해야 하고, 한 점의 골과 슛을 위해 팀웍을 발휘하며 달리는 축구는 순간의 재치를 발휘하는 콩트여야 한다고. 담배를 하나 살 때에도, 택시를 탈 때에도, 후배를 만날 때에도 늘 이야기가 넘쳐나는 그를 만난다면, 중계에서 독특하고도 절묘한 명대사들이 가능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독특한 멘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만, 전 본연의 중계에 충실할 뿐입니다. 단지 상황이 났을 때 저도 모르게 나오는 거죠.”
송재익 캐스터의 재치 맨트들은 지금도 회자된다. 일테면 월드컵 지역 예선전 중 일본전에서 황선홍의 알맞게 차올린 센터링을 보고 “아∼ 마치 며느리 시아버지께 밥상 들여가듯 잘 넣어줬군요!”는 그의 독특한 비유법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며, 황당한 센터링에 대해 “마치 외딴 백사장에 혼자 처박힌 빈 콜라병 같군요”라든지, 멕시코 선수가 공을 안 빼앗기려고 무릎 아래에 꼭 끼워놓고 용을 쓰자 “마치 아랫목에 엉덩이 깔고 앉아 있는 듯한 자세군요”, 이탈리아의 빗장 수비를 빗대서는 “이탈리아 오늘 대문은 다 잠궜는지 몰라도 쪽문이 다 열렸어요”, 패스한 볼이 빼앗겼을 때는 “마치 숟가락도 들기 전에 밥상을 떠미는 격 아니겠어요?”, 수비가 빈틈을 보이면 “깨진 쪽박처럼 물이 줄줄 세는군요” 등등 무수히 많다. 그래도 가장 빅히트를 친 대사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지역예선 한일전에서 한국이 2 대 1 역전승을 일궜을 때 “아∼ 드디어 후지산이 무너집니다” 라는 명언은 감동마저 불러 일으켰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명대사는 축구든 복싱이든 마이크 앞에선 송재익 캐스터라면 계속 될 것이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뜨개질하던 할머니도, 젖먹이는 아기 엄마도 내 중계 앞에서 즐거워하며 지켜봐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