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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전쟁이 일어나는 곳. / 霊的な戦いが起きる場所。 ( 2024년 1월 28일 주일예배)
본문; 고린도전서 1:18-25
고전 1: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9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20 현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21 이 세상은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22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24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18. 十字架の言葉は、滅んでいく者にとっては愚かなものですが、わたしたち救われる者には神の力です。19. それは、こう書いてあるからです。「わたしは知恵ある者の知恵を滅ぼし、/賢い者の賢さを意味のないものにする。」20. 知恵のある人はどこにいる。学者はどこにいる。この世の論客はどこにいる。神は世の知恵を愚かなものにされたではないか。21. 世は自分の知恵で神を知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それは神の知恵にかなっています。そこで神は、宣教という愚かな手段によって信じる者を救おうと、お考えになったのです。22. ユダヤ人はしるしを求め、ギリシア人は知恵を探しますが、23. わたしたちは、十字架につけられたキリストを宣べ伝えています。すなわち、ユダヤ人にはつまずかせるもの、異邦人には愚かなものですが、24. ユダヤ人であろうがギリシア人であろうが、召された者には、神の力、神の知恵であるキリストを宣べ伝えているのです。25. 神の愚かさは人よりも賢く、神の弱さは人よりも強いからです。
지난 주일에는 영적전쟁의 본질과 실체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우리의 세계관이 변화하는 것이 영적전쟁의 본질입니다. 또한 사악한 마귀의 유혹과 도전이 영적전투의 실체인 것이지요. 외적으로는 교회생활과 믿음생활을 방해하고, 내적으로는 자신의 영적인 존재가치를 부정하도록 미혹하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적전쟁의 본질과 실체에 대해 분명히 기억하며 용감하고 담대한 태도로 당당하게 승리의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다시금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통해 영적전쟁이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체감되고 실감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해서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오늘의 말씀을 통해 영적전쟁을 위해 우리가 취하고 붙들어야 할 권세와 권능에 대해서 명확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본문의 18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요. 원어의 표현으로 보자면...
(듀나미스 테우-)라고 말하는데요. 듀나미스는 능력으로 번역되는데... 특히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표현할 때 쓰는 말로서 “다이나마이트”라는 폭발물의 뜻하는 영어의 어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듀나미스란 폭발적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난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그것이 곧 십자가의 말씀, 혹은 십자가의 도라고 말씀하시는데요. 곧 ‘복음’입니다. 복음이란 직접적으로는 로마의 황제가 약속한 것을 선포하며 알리던 소식을 표현하던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요.
당시 일반적 의미에서 ‘유앙겔리온’이란 로마황제가 전쟁에 승리하여 로마제국의 영토가 확장되고, 노예를 더 많이 확보하고, 국력이 강력해짐으로 로마시민들의 복지가 더욱 견고해진다는 소식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세속의 국가가 선진국이 되고 강대국이 됨으로 인하여 자신들이 누릴 혜택과 물질적인 풍요로 상징하는 성공을 뜻하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유앙겔리온은 하나님 나라가 승리하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듀나미스)이 더욱 분명하게 우리 안에 임한다는 뜻이었던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전승의 소식이라는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를 하나님 나라와 그 뜻이 성취되는 것으로 차용하여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듀나미스(능력)는 곧 유앙겔리온(복음)의 현실화를 위해 성도인 우리에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며,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본문의 표현으로 돌아와서 성도가 가진 능력의 실체를 성경은 십자가의 도, 혹은 십자가의 말씀이라고 고백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멸망하는 자들에게 십자가의 말씀은 미련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말씀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으면 영생의 존재로 살게 되는 것이고, 미련한 것으로 여기면 멸망의 자식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의 말씀을 적용하면 십자가의 말씀이 곧 자신의 세계관을 확인하는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다시 말해 도무지 성공적이지 못한 활동이며, 납득할 수 없기에 믿을 수 없는 행위로, 혹은 결핍이 있는 계획으로 여기는 세계관에 속한 이들은 결국 멸망의 길을 따라 가고 있음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9절이하에서 25절까지 십자가의 말씀이 왜 하나님의 지혜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십자가의 말씀이 현실에서 선포되고 전달되는 모습을 표현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전도의 미련한 것...” /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라고 표현한 것인데요. 여기서 어리석게 들리는.. 혹은 미련한... 이라고 사도 바울이 표현한 것은 영생에 속한 자들의 입장이 아니라, 멸망으로 향해 나가는 자들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전하는 “십자가의 말씀”은 교회 내에서는 설교, 교회 외적으로는 전도하는 말로서 이해할 수 있는데요.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 설교와 전도라는 행위를 멸망에 속한 자들은 미련하고도 어리석은, 혹은 효율적이지도 않은 내용과 말이라고 치부하고 말아 버린다는 것이지요.
구원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십자가의 메시지와 복음설교를 이해되지 않고, 납득되지 않고, 효율적이거나 능률적이지 않으며, 성공과 성취를 보장하지 않기에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데요. 그 이유는 이 세상에 멸망의 영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이 악한 영이 지배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4)
우리도 복음을 믿고 거듭나기 전에는 모두 그 공중의 권세를 잡은 멸망의 영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2)
하지만, 십자가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믿어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 거듭나서 영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듀나미스(능력), 즉 그 파워풀한 권능 아래에서 살고 있는 것을 믿습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의 영적전쟁은 눈에 보이는 어떤 실력행사나 권력다툼 혹은 가시적인 성과나 성공을 자랑함으로 승리가 열매맺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십자가의 복음과 그 약속을 믿지 못하게 방해하는 영적인 세력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2)
그렇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어떤 존재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하는 싸움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관을 주무르는 권세, 시대정신이라는 권위, 그리고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대적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한 영들, 혹은 권세들과 싸우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곧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은 십자가의 말씀인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우리를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능력이 되는 것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어떻게 영적전투을 치러야 하까요? 바로 우리 내면의 세 영역에서 복음으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첫번째, 생각입니다. 두번째, 마음 즉, 의지와 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입술입니다.
마귀는 가장 먼저 우리에게 못된 생각을 던져줍니다. 아주 가벼운 생각을 던지다가 점점 무겁고 어두운 생각들을 우리에게 던져 주지요.
마귀는 우리에게 비판(비난)하려는 생각, 미운 생각, 악한 생각, 불신, 좌절, 낙심, 두려움, 열등감, 죄책감 등의 생각을 끊임없이 던져 넣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부정적인 생각들도 계속해서 청소하지 않으면 산처럼 쌓이게 되어 있습니다.
구세주이시며 자신의 스승이셨던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팔아넘겼던 가룟 유다도 처음부터 행동으로 실천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 악한 마귀가 주는 생각이 먼저 자리잡았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요 13:2)
마귀는 먼저 생각으로 우리를 미혹하고 점령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죄와 관련된 생각이 그를 범죄하게 한다고 경계하고 계시지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8)
두 번째로 생각과 함께 우리가 지켜야 할 곳이 마음입니다. 마음은 우리의 의지가 형성되는 곳입니다. 생각은 하루에도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이 오가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좋은 생각이든 악한 생각이든 마음의 영역에 쌓이지 않으면 우리의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악한 생각들이 자꾸 떠올라도 마음의 영역에 쌓아두지 않으면 의지가 생기지 않고, 행동으로 드러나기 어렵습니다.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생각의 영역에서 나쁜 생각이 들면 신속히 청소해버리고, 좋은 생각을 자신의 마음에 쌓아두고 의지가 형성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는 것이지요.
마귀는 그래서 끊임없이 나쁜 생각을 던져 넣어서 우리 안에 나쁜 마음이 형성되어 나쁜 행동과 죄의 의지가 뿌리내리도록 유혹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것을 마음에 견고한 진이 형성된다고 표현합니다. 생각이 자꾸 쌓여서 낮은 벽이 되고 결국은 점점 그 벽이 높아져서 견고한 진처럼 굳어지는 것입니다. 그 나쁜 의지의 견고한 진이 우리를 범죄하게 하는 것이지요. 지금 당장은 죄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결국은 여건과 환경이 주어지면 반드시 범죄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 안에 쌓은 그 악하고 견고한 진이 우리를 더럽히는 범죄가 된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마 15:19)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에서 떠오르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복음과 십자가의 말씀으로 거를 것은 거르고, 지킬 것은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켜낸 우리의 선한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에 성령의 열매가 맺는 밭을 일구어야 하는 것이지요. 성령의 열매란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곧 복음과 십자가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관리할 때 우리 내면에 성령의 열매가 튼실하게 맺혀가며, 바람직한 인품과 성품이 형성되는 것이지요. 이는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악한 생각도 하루아침에 범죄로 나타나지 않듯이, 선한 생각과 십자가의 능력도 하루아침에 짠~ 하고 형성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리고 나약한 버섯은 하루아침에 생겨날 수 있어도, 태풍을 견디는 전나무는 수많은 세월을 견디며 성장한다고 말이지요.
세번째로 우리가 지켜야 할 장소는 입술입니다. 입술은 눈에 보이는 것인데 왜 내면세계와 관련이 있을까요? 앞서서 말씀드린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들은 그것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결국 우리의 입술을 통해 밖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눅 6:45)
또한 사도바울은 우리의 입과 마음을 지킴으로 우리가 구원에 이른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9-10)
너무 유명한 구절이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9절에서는 입으로 시인하는 행동이 먼저인 것처럼 말씀하시는데요. 10절는 마음이 먼저인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원래 성경은 장과 절을 구별하여 기록하지 않았지요. 그러므로 절로 구별된 문장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문장인 것을 감안하다면... 입술과 마음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으로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입의 침이 입 안에 있으면 매우 주요한 소화액으로 기능하는 좋은 요소입니다. 하지만, 그 침이 입 밖으로 나오면 더러워집니다. 심지어 그 침이 뭍은 것도 더럽히게 되지요. 이처럼 우리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혹 우리가 연약한 사람인지라 순간 나쁜 생각이 떠오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쁜 생각을 입으로 말하는 순간 나는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게 됩니다. 의도하지 않은 나쁜 말로 인해서 인생전체가 부정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귀는 우리를 그렇게 나쁜 인생으로, 또는 죄인의 삶으로 유도하고 미혹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속여서 내가 순간 실수했다고 변명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아시고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것만을 믿고 입술을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마귀의 계략에 놀아나는 영적인 좀비가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우리가 그냥 지나가는 말이라도... “죽겠다.”, “힘들다”, “역시 안 되나 보다.”, “왜 이렇게 적냐”, “왜 이렇게 더니냐...”, “쟤는 왜 저러냐..”등등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말로 뱉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그런 말은 침과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입술 밖으로는 뱉지 않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 간구하며 자신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잠 22:11)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29)
우리가 몇 주 전에 사랑에 관한 메시지를 나누었을 때, 사랑이 우리를 축복하고 복된 인생을 살게 하는 능력이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의 입술로 먼저 사랑을 실천하고, 우리의 입술을 지킴으로 사랑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격려하고, 칭찬하고, 덕을 세우는 일에 나의 입술을 사용하면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입술을 더 아름답게 해 주시고, 복되고 풍성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수시로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말로 입술을 채우고, 우리가 주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하는 노래로 입술을 채우면 마귀에게 쏘는 영적 미사일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찬양하였습니다. 그 때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해 놓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행 16:25-26)
우리가 감사로 고백하는 입술과 우리의 찬양이 우리에게 둘러쌓인 답답한 담을 헐고, 우리가 매인 문제의 사슬을 끊고, 이 땅의 모든 죄인들을 가두고 있는 멸망의 옥문을 열어 재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의 영적인 전쟁터인 생각과 마음과 입술을 온전히 지킴으로 영적전투의 승리자로 주님 앞에 칭찬받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결코 세력을 과시하거나, 성공과 성취를 자랑하는 모습 등으로 기세를 올려서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세속적인 세계관과 시대정신이 미련하게 여기고 납득하지 못하는 십자가의 복음과 그 말씀을 믿을 때만 승리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일상에서 패배하는 것처럼 보이고, 효능과 능률의 연약함으로 도퇴되는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결코 물러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좌절시키기 위해 마귀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입술로 침투하는 영적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감사와 찬양, 그리고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입술에 파수꾼을 세울 때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직 주님의 임재하심을 생각으로 기억합시다. 주님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읍시다. 주님과 동행한 일상을 감사의 말로 입술에서 고백하고 기록에 남깁시다. 그리하여 든든하고 뿌듯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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