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우리는 분노를 어떻게 극복 하는가?
10/14토(土)창 4:1-8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창 4:7)
인간 분노의 역사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창세부터 시작된 오래된 흑암의 역사입니다. 분노로 인해 일어난 첫 살인사건은 가인의 동생 아벨을 죽인 사건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창 4:6-7). 하나님께서 경고했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분노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인 것입니다.
어떻게 분노를 극복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 관계가 깨졌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네가 선을 행하지 않으면 어찌 낯을 들겠느냐?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다투고 화가 나면 얼굴을 보지 않고 말을 합니다. 가인은 아직 살인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이미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아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만 더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아벨은 양 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바쳤다. 주님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창 4:4-5). 제물과 함께 가인 자신을 받지 않은 것은 제사 이전에 하나님과 관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물과 사람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분노의 결과는 반드시 죄와 연결되어 삶을 망치게 됩니다.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다’라고 합니다. 죄가 너를 원하고 있으니 화를 이겨서 죄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노를 극복하지 않으면 반드시 죄에 붙잡히게 됩니다. 이것이 사단이 노리는 목표입니다. 분노는 죄와 사단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분노, 죄악, 사단은 한 묶음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먹은 죄를 범한 것도 그 속에 사단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저녁을 먹을 때에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요 13:2). 유다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충분히 로마를 정복하고 왕이 된다면 자신도 한 몫을 차지할 수 있을 텐데 예수님 자신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구원받는다고 하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분노가 생긴 것입니다.
▣분노를 극복하는 것은 예배의 성공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착한 행실을 말할 수 있지만, 영적으로 보면 선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선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게 생명을 주시고 오늘을 살게 하시는 생명의 근원이신 그분에게 목적을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이 되지 않으면 죄가 노려보고 마음속에 분노가 쌓이게 됩니다.
예배는 생명의 근원이시고 나를 살게 하시는 그분에게 목적을 두고 집중하는 삶입니다. 가인의 예배는 믿음이 없는 예배였지만 아벨의 예배는 믿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믿음이란 우리의 생명의 근원 되시고 삶의 원동력이신 그분을 인정하고 늘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만 바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참 예배를 회복하니 하나님이 자신의 삶 속에서 숨을 쉬듯 자신을 보호하고 도우심을 알게 됩니다.
And...
요즘 현대인은 대부분 부요하고 편리한 삶을 살지만, 역설적으로 대부분 분노에 붙잡혀 힘들고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매일의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은 너무도 충격적이지만 그 이유는 너무도 하찮은 것입니다. 현대인의 분노가 하늘을 찌릅니다. 주차문제로 이웃 간의 흉기로 살인을 한다든지,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지고, 택시를 타고 가던 중 실랑이가 벌어져 기사의 따귀를 때려 중상을 입히고, 길거리에 가다 쳐다보았다고 집단 폭행을 당하고, 말로는 표현되지 않고 이해가 안 되는 사건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술, 스트레스, 사회불안, 정신 이상 등으로 분석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분노의 영, 어둠의 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다 분노라는 중증 질병에 붙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노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분노에 대해 아주 심각한 경고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 화가 날 수는 있지만, 그 화로 인해 마귀에게 잡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새가 머리 위로 지날 수는 있지만, 둥지는 틀지 않도록 하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화를 바로 풀지 않으면 침소붕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을 마귀가 붙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분을 품는 것은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 관점으로 그 문제를 바라보면 상대의 마음을 읽게 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만 있으면 세상에 이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최근에 엽기적 살인사건의 주범인 000도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살인하게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화를 내면서 마귀에게 붙들리게 된 것입니다.
분노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그 마음의 주인은 사단입니다. 분노를 다스리려면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이런 고백이 필요합니다. 지금 분노로 인해 마음이 상해 있는 분이 있다면 한 번만 이렇게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분노의 대상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용서 못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도 사단에게 붙들려 그런 행동을 한 것뿐입니다. 내가 분노하는 그 대상도 하나님께 붙들린다면 내게 가장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스”(Emily Dickison)의 시(詩)를 소개합니다.
당신의 애타는 가슴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한 생명의 아픔을 덜어 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
헐떡이는 작은 새 한 마리 도와 둥지에 다시 넣어 줄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
희뿌연 매연과 같이 당신의 분노가 치밀고 있다면 사람을 보지 말고 온전하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마귀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종이 되어 분노를 극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해
https://youtu.be/1u5Y4M-x1mY?si=gOFp_KHTSnG6Yz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