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6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사돈지간’ 9명, 생활고로 탈북…목선 타고 서해로 귀순
북한 주민 9명이 작은 목선을 타고 서해를 통해 귀순했다. 이들은 두 가족인데 사돈지간 이다. 부부와 3,4살 정도의 어린 두 자녀를 중심으로 시댁과 처가, 양 가족이 함께 탈북했다. 황해도 강령에서 출발한 두 가족은 비가 많이 내리는 가운데 서해 북방한계선 NLL쪽으로 남하했고, 우리 군 당국에 잡히자마자 귀순의사를 밝혔다. 노동자 가족으로 '생활고' 때문에 귀순하게 됐고, 한국방송을 몰래 봐왔다고 정부 당국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콩고민주공화국 폭우에 따른 홍수와 산사태로 180명 사망 100여명 행불
2023년 평택에서 미군 F-16 전투기 추락 조종사는 비상탈출
2023년 찰스 3세 영국 국왕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
찰스 3세 부부는 버킹엄궁에서 출발하여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와 국왕 호위대 약 200명 등으로 구성된 ‘왕의 행렬’은 더 몰과 트래펄가 광장을 거쳐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한다. 대관식 예식은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집전하며, 골격은 전통을 그대로 따른다. 그중에 700년 된 대관식 의자에 앉아서 성유를 바르는 의식을 했다 성유 의식이 끝나면 찰스 3세는 레갈리아라고 불리는 왕의 물품들을 걸치고 대관식 왕관을 쓴다. 왕비의 왕관, 예복 일부와 장갑, 의자 등은 새로 제작하지 않고 선대 왕과 왕비들의 것을 재사용했다. 성유는 동물친화적 재료로, 초청장은 재생용지로 만들었다. 대관식이 끝나면 종이 울리고 예포가 발사되었다. 버킹엄궁으로 돌아가는 ‘대관식 행렬’은 오후 1시께 출발. 국왕 부부는 ‘황금마차’를 타고 영국과 영연방 군인 약 4천여명을 뒤따라 약 2㎞ 구간을 되돌아갔다. 마지막으로 찰스 3세 부부와 윌리엄 왕세자 가족 등이 버킹엄궁 발코니에 나와 대중에 인사하고 이때 공군기 등이 분열 비행을 했다.
2022년 쿠바 수도 아바나의 5성급 호텔 폭발 9명 사망 13명 실종 40여명 부상
2018년 78명 탄 러시아機 '낙뢰' 맞고 비상착륙중 불..사망 41명
승객과 승무원 78명이 탄 러시아 국내선 여객기가 비상착륙하는 과정에서 기체에 화재가 나 41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현지 언론들은 사고기가 이륙 직후 낙뢰를 맞은 것으로 전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아에로플로트 항공사 소속 '수호이 슈퍼 제트 100' 여객기가 5월5일 오후 6시 2분께 북부 도시 무르만스크로 가기 위해 모스크바 북쪽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을 이륙했다가 28분 뒤 회항을 결정했다.
여객기는 이륙 후 모스크바 인근 상공을 몇 차례 선회 비행하다 급격히 고도를 낮춘 뒤 비상착륙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객기는 너무 빠른 하강 속도 때문에 두 번의 시도 끝에 착륙에 겨우 성공했으나 이 과정에서 기체 뒷부분이 화염에 휩싸였다.
착륙 기어가 지상과 충돌하며 부서졌고 그 파편이 엔진으로 날아들면서 불이 난 것으로 보인다
2016년 북한 노동당 36년 만에 제7차 대회 염
2013년 강원 고성의 탄소배출권조림조합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등록
2011년 이명박 대통령 개각 단행
이명박 대통령은 기획재정부 장관에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을 내정하는 등 5개 부처에 대한 개각을 실시했다. 당초 류우익 주중국 대사와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 등 이 대통령의 측근들이 통일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에 각각 유력 검토됐으나 이들의 기용은 보류됐다.
이 대통령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서규용 전 농림부 차관, 환경부 장관에는 유영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 고용노동부 장관에는 이채필 노동부 차관, 국토해양부 장관에는 권도엽 전 국토부 1차관을 각각 내정했다
이번에 발표된 내정자들은 지역적으로는 울산·충북·강원·경북·경남이 각 1명씩이다. 유 환경장관 내정자는 여성이고, 이 고용부장관 내정자는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 출신이다.
2010년 서울 수복 ‘태극기 게양’ 박정모 대령 별세
6·25전쟁 당시 ‘9·28 서울 수복(1950년 9월 28일)’ 전날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던 박정모 예비역 대령이 2010년 5월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4세.
1926년 전남 신안군 도초면에서 태어난 박 대령은 1944년 일본 후쿠오카 오리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명령으로 이듬해 1월 다나베 해병단에 입대했다.
박 대령은 광복 때 일본군을 탈출한 뒤 대한민국 해군에 다시 입대해, 1950년 1월에 해병대 소위로 임관했다. 6·25 때는 해병 소대장으로서 인천상륙작전, 금곡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다.
특히 1950년 9월 27일 오전 6시 10분에 중앙청 옥상에서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올려 미국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세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공훈”이라는 표창을 받았다. 박 대령은 1961년 7월 대령으로 예편했고, 을지·충무·화랑 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2009년 350m '한강전도' 그린 김학수 화백 별세
역사풍속화가 혜촌(惠村) 김학수(金學洙·90) 화백이 2009년 5월 6일 오전 2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1919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이당(以堂) 김은호와 소정(小亭) 변관식을 사사했고, '궁궐도' '삼강행실도' '광대줄타기' '의사 안중근' 등 역사풍속화를 비롯해 산수화·위인화를 주로 그려왔다.
1964년부터 2006년까지 한강과 그 일대를 현장 답사하며 화폭에 담은 유명한 '한강전도'를 남겼다. 한강 1300리를 폭 48㎝, 길이 20m가량의 화선지 두루마리 26개에 옮긴 것으로 길이만 350m 가까이에 이른다. 고인은 또 한국외항선교회 창립 멤버로 참여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성화(聖畵)를 많이 남겼다. 김 화백은 6·25 때 부인과 2남2녀를 북에 남겨두고 월남한 뒤 재혼하지 않고 50년 넘게 홀로 살았다.
2009년 산악인 오은선, 히말라야 칸첸중가봉 무산소 등정 성공
한국의 간판 여성 산악인 오은선(43·블랙야크)이 2009년 5월 6일(이하 현지시각) 네팔 히말라야 칸첸중가봉(Kanchenjunga·해발 8586m)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이로써 히말라야 14좌(해발 8000m 이상) 중 10개 봉 등정에 성공한 오 대장은 세계 여성 산악인 최초의 히말라야 14좌 정복의 꿈에 한걸음 더 바짝 다가섰다.
5월4일 해발 5600m 베이스캠프를 출발한 오 대장은 5일 오후 10시10분 캠프4(해발 7600m)를 떠나 19시간30분 만인 6일 오후 5시40분 칸첸중가 정상을 밟았다. 지난 3월 19일 인천공항을 통해 칸첸중가 원정에 오른 지 49일 만이다.
네팔과 인도 국경에 위치한 칸첸중가는 히말라야 14좌 중 최동쪽에 위치해 '히말라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비추는 산', '하늘 위에 빛나는 보석'이라 불린다.
현재 칸첸중가 베이스캠프에는 오 대장을 비롯해 미국, 스페인, 네덜란드 등 모두 7개팀이 모여 정상 정복에 도전했으나 오 대장이 가장 먼저 성공했다.
오 대장은 1997년 갸셔브롬 2봉(8035m)에 오르며 히말라야 정복에 나섰다. 2004년 아시아 여성 최초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해발 8848m)를 등정했고, 지난해에는 마칼루(8463m), 로체(8516m), 브로드피크(8047m), 마나슬루(8156m) 등 4개 봉 연속 등정에 성공해 '철(鐵)의 여인'으로 불렸다.
히말라야 14좌는 1986년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산악인 라이홀트 메스너가 처음으로 등정한 뒤 국내에선 박영석·엄홍길·한왕용씨가 차례로 완등했지만 여성 산악인은 아직 세계 어느 누구도 정복하지 못했다.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36)과 호주의 겔린데 칼텐브루너(39), 이탈리아의 니베스메로이(48) 등 세계의 간판 여성 산악인 3명이 모두 11좌 등정에 성공했고, 한국의 오 대장과 고미영(41·코오롱스포츠) 대장이 각각 10개봉과 8개 봉 정상에 올라 바짝 추격하고 있다.
2007년 프랑스 대선에서 우파 사르코지 당선
2007년 5월 6일(현지 시각) 치러진 프랑스 대선에서 성장과 개혁, 외교에선 친미(親美)를 내세운 중도 우파 대중운동연합 (UMP)의 니콜라 사르코지(Sarkozy·52) 후보가 53.06%의 득표율로 분배와 평등을 강조한 중도 좌파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Royal·46.94% 득표)을 누르고 프랑스의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번 선거는 여성 대통령 탄생 여부를 놓고 관심을 모았으나 개표 결과, 사르코지가 53.06%의 득표율로 46.94%의 지지를 얻은 루아얄 후보를 크게 앞섰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나는 모든 프랑스 국민의 대통령이 될 것” 이라며 “프랑스는 지구 온난화 방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 이라고 밝혔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자크 시라크 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16일 자정을 기해 임기 5년의 대통령직을 넘겨 받는다.
2007년 여성 작곡가 김순애씨 별세
박목월의 시(詩)에 곡을 붙인 ‘4월의 노래’를 비롯해 ‘네잎 클로버’‘그대 있음에’ 등의 가곡을 남긴 여성 작곡가 김순애(金順愛·88)씨가 5월 6일 밤(한국 시각)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별세했다.
고인은 1941년 이화여전과 1957년 미국 이스트만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30여편의 성악곡, 바이올린 소나타, 교향곡 등을 작곡하며 왕성하게 활동해 ‘한국 최초의 여성 작곡가’로 평가된다.
이화여대 교수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2005년 간호사들의 ‘신생아 학대’ 사진 논란
신생아 부모들 모임 인터넷 카페 등에 신생아의 콧구멍에 볼펜 2개를 끼워 놓은 사진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인터넷에서는 모 사이트에서 가져온 글이라며 “자는 아기 깨워 온갖 반사실험을 다했다. 머리 온갖 데 다 눌러보며. 애기 고생 좀 했겠지만, 나는 배운 거 실제로 해봐서 좋고. 서로서로 좋은 일이었다” 글이 돌아다녔다.
이밖에도 카트형 장바구니에 두 살 전후의 어린아이를 접어 넣어 끌고 가는 사진과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할 미숙아를 소파에 앉혀 젖병을 굴리는 사진 등이 유포됐다. 누군가가 두 손으로 신생아의 얼굴을 감싸안고 찍은 ‘인간 복숭아’ 제목의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콧구멍에 볼펜을 끼우고 있는 신생아 사진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경찰은 “사진의 주인은 간호사가 아닌 일반 사무직으로 2003년 그만뒀으며, 사진 속의 신생아는 신생아실에서 착용이 불가능한 털모자 등을 쓰고 있는 점 등으로 미뤄 신생아실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찍힌 사진일 가능성이 크다” 고 밝혔다.
한편 대구 동부경찰서는 8일 병원에서 신생아를 괴롭히는 모습을 연출해 사진을 찍고, 이를 인터넷 미니홈페이지에 올린 혐의로 간호조무사 이모(여·24)씨와 김모(여·25)씨, 장모(여·24)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와 김씨는 직장인 대구 A, B산부인과에서 신생아의 얼굴을 손으로 일그러뜨리거나 비닐팩 속에 집어넣는 가학적인 장면을 연출해 사진을 찍은 혐의다. 장씨는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이씨를 도와 신생아를 괴롭히는 사진을 찍은 혐의다.
경찰은 또 A산부인과 원장 배모(36)씨에 대해 노동복지법상의 관리책임을 물어 형사처벌키로 했다.
이씨 등은 경찰에서 “아기들이 예뻐서 미니 홈페이지를 꾸미려고 그랬을 뿐 괴롭힐 의도는 없었다. 아기들과 보호자들에게 미안하다” 고 말했다.
2004년 한국산 토종늑대 30년 만에 재탄생
2003년 미국 싱가포르와 아시아 국가 최초로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2002년 최경주, 한국인 첫 PGA 제패 - PGA 컴팩클래식 우승
최경주 선수가 컴팩클래식대회에서 우승함으로 한국인으로는 처음 미국PGA투어 챔피언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최경주는 2002년 5월6일(한국시각) 뉴올리언스의 잉글리시턴골프클럽에서 끝난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5언더파 67타를 쳐 4라운드 합계 17언더파 271타로 우승, 상금 81만달러를 차지했다. 최경주에 앞서 동양인으로는 일본의 아오키 이사오(1983년)와 마루야마 시게키(2001년), 대만의 첸지충(1987년)이 PGA투어에서 우승한 바 있다.
1970년(실제로는 1968년) 전남 완도에서 출생한 최경주는 화흥초등학교 시절부터 역도 선수를 하다가 완도수산고 1학년 때 생긴 골프부에 뽑혀 난생 처음 골프라는 운동을 접했다. 완도의 한 연습장에서 볼을 치던 그를 눈여겨본 서울 한서고 재단이사장 김재천씨가 다시 한서고 골프부에 스카우트했고, 거기서 골프에 본격 입문했다. 1993년 프로테스트를 단번에 통과, 직업 골퍼의 세계에 뛰어든 최경주는 1995년 팬텀오픈에서 첫승을 거머쥐며 상금랭킹 7위에 오른 데 이어 1996, 1997년에 2년연속 상금 1위에 올라 국내에선 더 이상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9년까지 국내에서 7승을 거둔 뒤 일본에 진출, `꿈의 무대`라는 미국PGA투어로 향하는 문을 열어 젖혔다. 1999년 말 가족을 데리고 플로리다주 잭슨빌로 이주한 최경주는 2000년 1월 소니오픈에 턱걸이로 참가했다. 결과는 컷오프. 투어 카드만 있으면 될 줄 알았던 미국PGA투어 벽은 높았다. 에어캐나다챔피언십에서는 톱10(공동8위)도 한번 경험했지만 그해 상금액 30만5745달러(랭킹 134위)로는 2001년 출전권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도 뚝심의 최경주는 좌절하지 않았다. 두 번 b가기 싫다는 `지옥` 같은 Q스쿨을 또 거쳤다. 2년차의 여유를 찾은 그는 2001년 29개 대회에 참가, 19개 대회에서 상금을 받았고 톱10에 다섯 차례 들었다. 80만326달러로 상금랭킹 65위. 2002년 출전권은 자동 확보됐고 출전대회의 격도 달라졌다. 미국그린에 적응이 빨라지면서 그의 성적도 일취월장했다.
2002 시즌 들어 첫 대회인 소니오픈에서 공동7위로 톱10을 장식한 최경주는 마침내 컴팩클래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10년 계획이라지만 내심 5년을 바라보고 있던 그로서는 최소 2년은 앞당긴 우승이다. 1m72의 크지 않은 키이지만 82kg의 탄탄한 체구에 역도로 단련된 강한 다리힘과 어깨 근육을 바탕으로 외국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스윙을 갖췄다.
2001년 이형택 선수, ATP 공식 투어 결승 진출
한국 테니스의 희망 이형택(25·삼성증권)이 마침내 세계남자프로테니스협회(ATP) 공식 투어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전인미답의 길에 발을 올려 놓았다.
세계 81위 이형택은 6일(한국시각) 미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US클레이코트 챔피언십(총상금 35만달러) 단식 준결승에서 체코의 미할 타바라(73위)에게 2대1(4―6, 6―2, 6―1)로 역전승했다. 남녀를 통틀어 한국선수가 공식투어대회 결승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자는 이형택이 지난해 영국 삼성오픈에서, 여자는 94년 박성희(은퇴)가 인도네시아 오픈에서 각각 준결승에 진출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이형택은 랭킹 포인트 24점과 최소 2만7000달러의 상금을 확보했다. 대회 우승상금은 4만6000달러다.
지난해 US오픈 16강 진출로 세계 테니스계의 주목을 받았던 이형택은 이로써 ‘반짝 스타’가 아니라 ‘노련한 강호’로 성장하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2000년 아일랜드공화군(IRA) 무기사찰 수용
아일랜드공화군(IRA)이 6일 “국제적 공인을 받은 제3자에 의한 정기적인 무기 사찰을 허용하겠다” 고 선언했다. 1998년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이 체결됐으나, IRA가 무장해제 이행을 거부해 협상은 1999년 12월 이후 교착 상태를 보여 왔다.
1999년 이승엽, 최연소 100호 홈런 달성
1999년 임진각에 21톤 `평화의 종` 건립
1999년 인류최고(最古)로 추정되는 `돌 연장` 케냐서 발견 후 공개
1997년 교육부, 1998년부터 교원 차등보수제 도입
1996년 전 합참의장 한신씨 별세
그는 6.25때 큰 전공을 세웠으며, 청렴 강직한 생활로 군내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대표적인 원로장성이었다. 1922년 함남 영흥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 일본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광복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1946년 월남,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육사2기로 입학했다.
그는 6.25발발 이후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전투 때 수도사단 1연대장으로 경북 안강 기계전투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둬 북진의 발판을 마련했다. 때문에 6.25를 통틀어 `방어작전엔 한신`이라는 말을 들었다. 휴전 이후 수도사 단장, 6군단장, 교육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군사혁명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그는 5.16 당시 모의과정엔 참여하지 않았으나 동기생인 박정희 최고회의부의장의 권유로 입각, 1963년까지 내무장관 및 감사원장을 지냈다.
1963년 6군단장으로 군에 돌아와 교육사령관-2군사령관을 거쳐 1969년 1군사령관에 임명됐다. 그 뒤 군내에선 그가 육군 참모총장으로 영전할 것을 기대했으나 대쪽같은 성품으로 군 안팎의 견제를 받아 1972년 합참의장에 임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5년 예편할 때까지 군전력증강사업(율곡사업) 등 자주국방 계획의 골격을 짰으며, 아세아자동차사장 및 회장, 대한중석사장을 역임했다
1996년 호주, 사상 첫 원주민 판사(보브 벨레어) 탄생.
1996년 콜비 전 미국 CIA국장, 실종 9일만에 시체로 발견-CNN방송.
1994년 영국-프랑스간 해저터널 개통
1994년 5월 6일 영-불간 도버해협을 연결하는 해저터널을 이용한 특급 열차 ‘유로 스타’가 개통했다.
영-불해저터널은 지난 1986년 미테랑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가 서명한 건설협정에 따라 총공사비 1백50억달러(약 12조원)를 투입, 약 7년 만에 완공한 것으로, 도버해협의 최단거리인 프랑스 칼레와 영국 폭스톤 사이의 해저 약 50㎞를 3개의 지하터널로 연결하고 있다.
워털루 역에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함께 기차에 몸을 실었다. 쏜살같이 달린 `유로 스타`는 시속 300㎞로 3시간 만에 런던과 파리를
이 해저터널은 세계 첨단기술이 총동원된 기술혁신의 상징이자 지금까지 항공편이나 배편으로만 건널수 있던 도버해협을 사상 처음으로 육로로 연결한 것이었다.
이 터널의 개통으로 지금까지 배편으로 최소한 2시간 걸리던 것이 35분으로 단축되었고, 유로스타는 파리~런던을 3시간에 런던~브뤼셀을 3시간15분에 주파할 수 있게 됐다.
1991년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서울에 도착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남북 단일팀으로 참가하기 위해 1991년 5월6일 북한선수들이 서울에 도착했다
남북체육회담을 통해 단일팀 구성에 합의하고 분단 46년만에 함께 세계무대에 도전한 청소년 축구 코리아팀은 정신력과 투지를 앞세워 축구사상 처음으로 아르헨티나를 꺽고 8강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1990년 러시아 공화국, 사회민주당 창당
1987년 제9차 한국.미국 안보회의 워싱턴서 개막
1987년 중국 서북부 산림 대화재, 사망 193명 피해면적 1만1000km2
1986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민주화위한 시국성명서 발표.
1985년 도시가스 연쇄폭발사고 발생
1985년 5월 6일 12시20분쯤부터 40여분 동안 서울 마포구일대 11개동과 서대문구의 3개동 등 14개동에서 도시가스가 누출되거나 폭발하는 가스사고가 발생했다. 수많은 가구의 가스레인지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곳곳에서 지하가스매설관과 도로가 터지는 등 일대소동을 치렀다. 이 사고로 1만여가구가 피해를 입고, 10여집에 불이 나고, 10여개의 맨홀이 터졌지만 다행이 사망자는 없었다.
사고의 1차적 원인은 서울도시가스공장의 압력자동조절장치에 이물질이 끼여 고장이 일어난데 있었으며, 또 서교정압실 주위의 배관이 잘못돼 고압가스가 정압실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저압관을 통해 가정으로 공급된 것이 2차원인이었다.
1985년 5월 6일이던 성년의 날을 5월 3째주 월요일로 변경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 여의도서 우리나라 천주교 순교자 103명 성인으로 시성
1983년 호남고속도로 대전∼광주 4차선 확장 기공식.
1981년 미국, 국제테러행위 지원혐의로 미국주재 리비아외교관에 추방령
1981년 공정거래위원회 발족
1981년 한국 아르헨티나 무역해운협정 체결
1977년 서울대, 여주군에서 석기시대 농경기구 발견
1976년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서 해방후 최초 남북대결. 1 : 0으로 패배
1975년 성년의날 5월 6일로 변경
1974년 여간첩 채수정 사건
1974년 브란트 서독 수상 보좌관의 스파이사건으로 인책 사퇴
1974년 정부 정부미 혼합곡으로만 방출한다고 발표
1971년 유진산 신민당수 지역구 출마 포기, 전국구1번 등록. 당내반발 유발 (진산파문)
1969년 경제기획원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지침 발표
1968년 프랑스 사상 최대의 학생 데모
1965년 서민들의 질박한 삶 그린 화가 박수근 사망
박수근은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났을 뿐 천재들에게서 흔히 목격되는 정열과 광기, 드라마틱한 삶의 역정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다. 소박한 소시민이었고 보통사람이었으며 더없이 자상한 아버지였다. 그림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질박한 삶이 묻어 나온다.
가난과 전란 속에서 춘천, 평양 그리고 서울의 창신동을 떠돌며 때로는 도청 서기로, 때로는 미군부대 초상화가로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언제나 꿈을 잃지 않았고 화필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평생 그의 벗이 되고 만 가난 탓에 아들을 잃었고, 화가에게 생명같은 눈이 실명되는 불은을 겪었다.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 ” 1965년 5월 6일 그가 숨지면서 한 마지막 말이었다.
1965년 신아일보 창간
1963년 아동 문학가 강소천 선생 별세
함남 고원군에서 태어난 선생의 본명은 용률. 소천은 필명이다.
선생은 24세 되던 1939년, 동화 `돌멩이`로 본격적인 아동문학가로 나서 조선일보와 어린이 잡지 `아이생활` 등에 동화를 게재했다. 광복 후 고원중-청진여중에서 교사로 있으면서 아동문학 활성화에 애쓰던 선생은 6.25가 터지자 월남, 문교부 편수국에서 교과서를 만들면서 아동 교육에도 관심을 두었다. 1957년 어린이 날, 선생이 기초해 아동문학가협회 이름으로 발표한 어린이헌장은 어린이 사랑운동의 결실이었다. 선생은 1959년 이후 연세대와 이화여대에서 아동문학 강좌를 맡아 어린이 신문발간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동요 시집 `호박꽃 초롱`, 동화집 `조그만 사진첩`, `꿈을 찍는 사진관`, `인형의 꿈` 등이 있다.
1965년 선생이 한국의 아동문학에 남긴 업적을 기리기 위해 소천아동문학상이 제정되었고 이후 제6회 시상 뒤부터 강소천 아동문학상 운영위원회가 발족돼 연간 발표된 작품 중 우수작을 선정, 매년 5월 5일 어린이날 시상했다. 1972년부터 선생의 기일(忌日)인 5월 6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5년 서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1953년 미국에서 인공심장을 사용한 심장수술 성공
1952년 장택상, 제3대 국무총리 취임
1952년 이탈리아의 교육자 몬테소리 사망
몬테소리는 안코나에서 태어나 로마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그 부속병원의 정신과 조수로 직업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자 의대생이었고, 최초의 여성 의사였다. 19세기 말까지도 이탈리아의 의과대학에서는 여학생을 받지 않았던 터라, 몬테소리는 왕과 교황에게 탄원한 끝에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로마대학에서 다시 심리학 및 교육학을 전공한 뒤 1907년 1월 6일 3세∼6세까지의 노동자 자녀를 위한 유치원인 `어린이의 집`을 열어 몬테소리법에 의한 교육을 실시했다.
1909년에는 '몬테소리 방법'을 출간했으며 유아원의 기적으로 불린 그녀의 교육방법은 곧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13년에 정식으로 국제 몬테소리 교원양성 코스가 창설됐고 1929년에는 국제몬테소리협회가 독일 베를린에 설립됐다.
1952년 서울-부산간 민간전화 개통
1950년 여성 저널리스트 아그네스 스메들리 사망
1949년 변호사 시험령 제정
1948년 김구-김규식, 남북협상에 대한 공동성명
1946년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무기휴회
1941년 스탈린 소련 수상에 취임
1937년 독일 호화 비행선 ‘힌덴부르크’ 미국 상공서 폭발
1937년 5월 6일 오후 3시30분, 프랑크푸르트를 떠난 독일 비행선 ‘힌덴부르크호’가 뉴욕 맨해튼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객실과 식당, 오락실까지 갖춘 호화 여객선이었다. 1년 전 상업운행을 시작한 이래 독일·미국 간을 10여차례나 오가며 1002명이나 되는 승객을 실어날라 시민들 눈에는 익숙한 광경이었지만 축구장 3배 크기의 비행선이 낮은 고도로 하늘을 가를 때면 언제나 장관이었다.
이 날은 이 해의 첫 운행일이었다. 비행선이 뉴저지주 레이크허스트 해군비행장에서 착륙준비를 하며 고도 23m를 유지하고 있던 오후 7시 10분쯤, 갑자기 비행선 뒤쪽에서 한 줄기의 불꽃이 번쩍이면서 작은 폭발음과 함께 수소가스주머니가 파열됐다. 삽시간에 번진 불로 뒤쪽이 내려앉아 11명이 떨어지고 곧 몸체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상으로 추락했다. 최초의 폭발로부터 불과 32초밖에 걸리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다. 승객 13명, 승무원 22명, 지상요원 1명 등 36명이 숨졌고 61명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수소가스 때문이라고 조사결과가 발표됐지만 정전기 방전설, 나치에 항의한 태업설 등 다양한 설이 제기됐다. ‘힌덴부르크호’ 폭발과 함께 대형 비행선 시대도 막을 내렸다.
1932년 프랑스 대통령 두메르 암살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75세의 늙은 프랑스 대통령 폴 두메르가 1932년 5월 6일 총격을 받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날 사망했다. 두메르는 이날 오후3시경 로스차일드 재단본부에서 거행된 `종군작가 구제를 위한 도서판매회`에 참석해 `전쟁`이라는 책한권을 사고 나와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연설을 하려던 중이었다. 범인은 정신이상인 러시아 시인 고르굴로프로 밝혀졌으며 그는 후에 사형에 처해졌다
1921년 독일-소련 통상조약 조인
1916년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경기장인 YMCA실내경기장 신축
1910년 영국 에드워드 7세 사망, 조지 5세 즉위
1906년 러시아 헌법 공포
1904년 독일 화가 프란츠 폰 렌바흐 사망
1893년 위당 정인보 출생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로 국혼 환기 운동을 전개한 위당 정인보 선생이 1893년 5월 6일 출생했다.
위당은 1923년 연희전문 교수로 부임한 이후 국학 관련 논설을 조선일보 등에 활발히 게재했으며 1930년에는 `5천년간 조선의 얼`을 발표, "육체의 죽음보다 더한 것인 마음의 죽음으로, 우리 민족의 마음이 되살아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단군 없이 한국과 한국인은 없다고 강조해 단군연구 운동을 진작했으며, 우리 역사가 낳은 큰 인물로 단군과 세종대왕, 충무공 이순신, 다산 정약용을 들기도 했다.
8.15 해방과 더불어 대한민국 건국 준비사업에 참여, 건국 후 초대 감찰위원장을 맡아 관기를 바로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6.25 전쟁중 병상에 납북된 후 소식이 끊겼다. 문화관광부는 위당을 2000년 `7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1861년 인도 시인 타고르 출생
1856년 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 출생
1856년 북극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 출생
1840년 세계최초의 우표, 영국에서 발행
1840년 5월 6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우표가 영국의 교육자 로랜드 힐에 의해 탄생했다. 우표가 탄생되기 전에도 공식, 비공식으로 우편증지를 사용했지만 그때는 주로 편지를 받는 사람이 우편요금을 부담했고 거리별, 무게별로 요금도 모두 달랐기 때문에 몹시 번거롭고 복잡하여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때 마침 힐이 우편제도 개혁의 실효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각계의 큰 호응을 얻었다. 힐은 거리와 지역에 관계없이 보내는 사람을 부담자로 한다는 취지로 우편제도 개혁을 제안, 1839년 영국 의회에서 채택된 후 빅토리아 여왕의 서명을 받아 1840년 1월 1일부터 정식 발효됐다.
하지만 최초로 붙이는 식의 우표를 구상해낸 사람은 로랜드 힐이 아닌 스코틀랜드의 한 책방주인이자 인쇄소의 주인이었던 제임스 찰머스였다. 이 제안이 로랜드 힐에 의해 받아들여진 후 우표 디자인을 고심하던 힐이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식 기념 메달을 소재로 디자인해 이날 1페니 짜리 흑색 우표가 발행됐다. 이것이 바로 세계최초의 우표 ‘페니블랙 원페니(One Penny)’이다. 이틀 후인 5월 8일에는 2펜스 짜리 우표 ‘펜스블루 투펜스(Two Pence)`가 발행됐다. 이는 우표의 색깔이 흑색과 청색이어서 붙여진 이름들이었다.
최초로 우표를 탄생시킨 힐은 1846년부터 1864년까지 영국의 우편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을 수행하며 근대우편제도를 정착시키는데 큰 공헌을 해 후에 기사작위까지 받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또한 새로운 우편제도의 실시에 따른 우편업무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우편함이 설치되도록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는 세계 최초의 우표가 탄생된 지 44년 후인 1884년 11월 18일 홍영식 선생에 의해 5문과 10문(문(文):당시 화폐단위) 2종의 우표가 발행됐다.
1758년 프랑스 혁명가 로베스피에르 출생
1618년 조선조의 무신 강항 사망
973년 신성로마황제(1002~1024) 하인리히 2세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