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동차회사 가운데 덩치 큰 5~6개 업체만 살아남는다는 '빅(Big)5 생존론'이 다시 힘을 얻으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합종연횡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인도 타타자동차가 재규어·랜드로버를 인수한 데 이어 최근 이탈리아 피아트가 크라이슬러와 GM유럽(오펠)을 동시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글로벌 인수·합병에 불을 지폈다. 최근 중국 업체도 내부 통폐합과 함께 포드 산하의 볼보 등 매물로 나온 해외 자동차회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빅5 생존론'이 재부상하는 것은 세계적인 생산설비 과잉에 판매는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세계 자동차 생산능력 9400만대 가운데 무려 36%인 3400만대가 과잉이다.
◆피아트그룹, 자동차업계 거인 될까?
피아트는 파산 보호를 신청한 크라이슬러에 이어 GM의 유럽 자회사인 독일 오펠과 제휴한다는 계획을 지난 3일(현지시각) 발표했다. 피아트·크라이슬러·오펠 연합군이 탄생할 경우 생산능력이 500만대를 넘어 자동차업계의 '글로벌 빅5' 진입도 가능하다.
그러나 피아트가 오펠을 인수할 경우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독일 노조와 정치권의 반발이 예상된다. 또 피아트는 크라이슬러에 소형차를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크라이슬러 지분 20%를 얻었지만 피아트가 실제 지출하는 현금은 한푼도 없다. 따라서 피아트의 이번 계획이 '쇼'에 불과할 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피아트는 올 1분기에 4억1100만유로(약 700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인수·합병이 단기간에 효과를 못낸다면 자금 부담이 피아트를 옥죌 가능성도 있다.
또 BMW와 로버, 다임러벤츠와 크라이슬러 등 굵직한 인수·합병이 대부분 재앙으로 끝났기 때문에 피아트의 성공 여부 역시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일본·유럽에서도 구조 재편 '꿈틀'
A&D컨설턴트의 윤재석 회장은 "플랫폼(차의 기본 뼈대와 엔진·변속기)과 전자장비를 한 회사가 개발하기엔 부담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생산대수를 늘려 대당 단가를 낮춰야만 경쟁력 유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유럽 업체의 통합 움직임도 감지된다. 스즈키의 스즈키 오사무 회장은 최근 "10여개 대기업으로 구성된 일본 자동차업계가 도요타, 혼다, 닛산 등 3곳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현 최대주주인 포르쉐를 거꾸로 인수할 계획이다. 최근 포르쉐는 폴크스바겐 지분 매입과 주력 차종 판매 부진이 겹치면서 자금 흐름이 크게 악화된 상태다. 이외에도 독일 BMW와 프랑스 푸조·시트로앵도 원가 절감을 위한 기술 제휴를 검토 중이며, 벤츠와 BMW도 자본 제휴에 나서고 있다.
◆한국 완성차업체, 글로벌 재편 과정 주시해야
국내도 현재의 5개 완성차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대·기아차를 제외하면 개발능력·규모면에서 장기적으로 독자 생존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2~3년 내 현대·기아차 대 나머지 1개 업체로 재편될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과잉 생산문제 해결이 선결 과제다. 현대·기아차의 올해 생산능력은 600만대에 달하지만 실제 생산은 400만대를 넘기기 어려울 전망이다. 안수웅 LI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자동차업계가 내부 구조조정과 생산 유연성 확보를 이루지 못한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