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 김윤식시인 생가를 찾아서,,,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남도 여행길에 벌교, 보성 빛 축제를 잠시 즐기고, 보성 율포 해수녹차탕을 지나서 장흥 토요시장을 거쳐서 강진으로 들어가는 길에 마치 눈발이 날리고 제법 겨울의 우중충하고 쌀쌀한 날씨를 보였다. 크리스마스 휴일이지만 궂은 날씨로 길거리의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크리스마스날 내리는 하얀 눈발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강진에는 다산 정약용선생의 유배지로 다산초당이 유명하지만 백련사, 고려청자도요지, 영랑 김윤식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영랑 김윤식은 본관은 김해, 1903년 1월 16일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에서 아버지 김종호와 어머니 김경무의 사이에 5남매 중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지주로 영랑은 가정에서 한학을 배우며 자랐다. 강진보통학교를 다니며 13세에 결혼을 하였으나 1년 만에 사별하였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 후 1917년 희문의숙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3.1 운동 때 강진에서 의거하다 체포되어 6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다음해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 영문학과에서 공부하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유학중 무정부주의 혁명가인 박열과 사귀었고 괴테, 키츠 등의 외국문학에 깊이 빠져 있었다. 고향에 머물면서 1925년 김귀련과 두 번째 결혼하였다. 1930년 정지용, 박용철 등과 함께 <시문학>동인에 가입하여 동지에 여러 시(시문학 창간호에 13편의 시, 2호에 9편의 시를 발표하며 화려하게 등단함)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쓸쓸한 뫼 앞에’, ‘제야(除夜)’ 등의 서정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 이어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등의 서정시를 계속 발표하였고,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이 무렵에 쓴 시이다. 당시 사상성과 목적의식이 아닌 순수한 서정시를 발표함으로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일제 말기에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는 곧은 절개를 보여주었다. 8·15해방 후 강진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결성하고 대한청년단 단장을 지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49년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내는 등 우익보수주의자의 입장에서 정치에 참여했다. 평소에 국악이나 아악, 서양명곡을 즐겨 들었다. 1935년 첫 시집 <영랑시집>을 간행하였다. 해방 후에 시작 활동에 전념하다가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때 포(유)탄에 맞아 4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지는 서울 망우리에 있다가 용인공원으로 이장됨. 전남 광주광역시에 있는 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눈발이 굵어져가는 크리스마스 오후 전남 강진으로 영랑 김윤식선생의 생가를 찾아 간다. 강진군청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영랑의 생가는 옛 모습 그대로를 잘 보존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입구에 주차장이 있으며 대문을 들어서면 우측으로 ‘내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우에’ 시비를 볼 수 있고 좌측으론 기념품을 판매하는 ‘처음처럼’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으로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비가 나오고 안대문을 들어선다. 문턱이 있는 안대문을 지나면 좌측으로 ‘마당 앞 맑은 새암을’의 시비가 있으며 정면으로 안채가 있으며 남도의 일자형 집으로 되어 있으며 우측으로 장독대가 있으며 장독대 앞에는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의 시비가 있다. 집 뒤편에는 큰 동백나무가 여러 나무 있으며 동백꽃이 피고 있었다. 그리고 동백나무 아래 ‘동백닙에 빗나는 마음’의 시비가 있으며 아래쪽으로 툇마루가 있는 행랑채가 있다. 앞에는 감나무, 큰 은행나무. 모란꽃밭 등이 있으며 전형적인 남도의 정원으로 잘 관리 되고 있었다. 행랑채 옆으로 ‘사개틀닌 고풍의 퇴마루에’란 시비가 있다. 영랑 생가는 아버지가 서울로 가면서 집을 팔고 가셨다 한다. 후에 재구입하여 영랑생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영랑의 성격은 엄한 편이나 속은 여림, 휘문의숙 재학시 홍사용, 박종화, 정지용, 이태준과 함께 수학하였으며 시어에는 향토적 고향의 정서를 담고 있으며 남도의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순수한 문학세계를 구축하였다. 판소리의 신명에 도취하여 임방울, 이화중선, 이중선 등 당대의 소리꾼을 불러 노래에 심취했었다. 영랑은 다산초당 주변의 길과 숲을 좋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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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한 그의 시는 정지용의 감각적인 기교, 김기림(金起林)의 주지주의적 경향과는 달리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절제된 언어로 민요적 운율의 시를 쓴 영랑의 작품들은 목적의식이 담긴 시를 거부하고 이상적인 순수서정시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어 속을 흐르는 조용한 저항의식이 담긴 민족주의적 시를 쓰기도 하였다. 주로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살린 섬세한 시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영랑의 시는 순수 서정시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의 많은 시가 의미를 크게 강조하거나 관념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언어의 미적 구조와 음악성에 치중한다는 점에서는 순수시라고 볼 수 있으며, <내 마음>이라는 주관적 감정의 표출에 몰두한다는 점에서는 서정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순수 서정의 세계에만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는 상징시로서의 면모와 이미지즘의 측면이 드러나기도 하며, 또한 존재론적인 생의 인식이 발견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시에 비관적인 현실 인식과 부정적인 세계관이 일관되게 흐른다는 것은 중요한 점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그러한 것들이 보다 적극적, 투쟁적으로 강조되어 나타나지 않을 뿐이며, 이것조차 언어 미학적인 섬세한 배려가 시의 표면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화돼 보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시를 좀더 자세히 들어다 보면, 그의 시야말로 시의 의미와 가락, 그리고 형식이 유기적으로 잘 통합됨으로써 현실인식이 미의식으로 탁월하게 상승된 예술시의 한 모델이 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시가 당대 현실의 참상과 민중들의 고통스런 삶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오히려 영랑이 시종일관 언어미학에의 끈질긴 집념은 당대 일제의 포악한 파시즘에 시인이 대처할 수 있는 예술적 은전 방식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로 판단된다. 그가 보여준 한국의 정통적 서정과 가락에 대한 뜨거운 애정, 향토적 정감의 소중함에 대한 재발견의 노력, 그리고 그에 따른 한국어의 시적 가치와 그 예술적 가능성에 대한 깊이 있는 신뢰와 실천적 탐구야말로 바람직한 시인의 사명 완수 일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 시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자연의 정경은 그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는 것들이다.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에 제시된 아침 햇살처럼 빛나는 은빛의 강물, 「제야」에 제시된 맑은 샘물과 밤의 심상, 「가늘한 내음」에 제시된 보랏빛 노을의 고요한 아름다움, 「내 마음 아실 이」에 나오는 향맑은 옥돌의 심상 등은 모두 마음의 순결성을 나타내는 예들이다. 이렇게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자연의 정경을 통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순결한 마음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김영랑 서정시의 출발은 바로 이 순결성에 있었다. 이 순결성이 그의 시를 아름다운 해조와 서정주의의 극치로 몰아간 것이다. 그 순결한 마음은 자연의 미묘한 변화와 대응되므로 분명히 파악되지는 않는다. 순결성은 꽃가지의 은은한 그늘이나 봄날의 미미한 아지랑이처럼 모호한 상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영랑은 자연의 맑고 깨끗한 정경을 통해 마음의 순결성을 보여 주었는데, 자연의 정결한 모습에 집중하게 되면 자연히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황홀감을 갖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본래 자연을 통한 순결성의 추구는 현실 세계의 추악함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이때에 자연은 현실과 대립적 위상에 놓이게 된다. 현실은 고통과 비애가 교차되는 장소로 인식되는 반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순결함은 이 모든 현실적인 것을 망각할 수 있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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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 단풍 들것네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참고: 이숭원, 현 서울여대 교수 외,,,,
첫댓글 밑의 사진을 보니 옛 모습하고 다르군요. 관광객을 위해 인위적으로 많이 고쳐진듯합니다. 3년전에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대장님, 돌담집의 옛모습이 변한 것인가요? 지붕을 새로 이어서 새집 같았습니다. 관리가 되지 않으면 볼품없이 되는데 관리가 계속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감사합니다...
넷번째 반갑네요 ~~^^
반갑습니다...감사합니다...좋은 날 되십시오...
경남방에서 아예 우리 호남방으로 오시지요? ㅎㅎㅎㅎ 고맙습니다. 좋은델 다니시네요?
큰서방님, 작년부터 남도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습니다. 차츰 다녀 볼까 합니다. 호남방에 올려서 죄송합니다....감사합니다...
가까이 있음에도 가볼 생각을 못하였습니다.
강진에 계시면 만덕산 숲길을 걸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영랑께서 자주 만덕산 정약용선생의 오솔길을 걷곤 하셨답니다..행복하십시오...
언제 기회가 되면 영랑생가는 모란꽃피는 봄에 와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새농민님.. 그때는 농장견학고 함께하셔서 먼저한 선배로서 블루베리에 대한 조언도 더 해주시고요 ^^ 따스한 녹차도 한잔 함께하는 시간 가질수 있음 더없이 좋겠어요 반가웠습니다.
모란이 피면 한 번 더 가보고 싶습니다. 블루베리는 관수를 잘 하시면 잘 자랍니다. 가뭄을 방지하는 것, 잡초 제거하는 것이 생명입니다. 과실은 아주 많이 익었을 때 수확하시면 감미가 좋습니다. 언제 뵈면 차 한 잔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매, 단풍 들것네... 새농민님의 마음아 나를 보세요.. 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매, 단풍 들것네...전입신고 내일모레 기둘리니 ![ㅋ](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5.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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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 동백꽃이 붉어서 좋았어라,,,,동백이 피면 영랑을 그리워 할 것도 같습니다. 삶의 시간이 화살처럼 달려오고 있어도 순수 서정시를 쓸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눈에 익숙한 곳입니다.. 좋은 날 되십시오
익숙한 곳에 사시나 봅니다. 행복하시겠습니다..그날따라 눈이 내렸습니다. 크리스마스 축복을 영랑께서 내려 주셨습니다. 눈은 내리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지요...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