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9일 오늘의 역사
2022년 러시아군 우크라이나 시베르스키도네츠강을 건너다 73대의 탱크와 장갑차, 1천∼1천500명의 병력을 손실 대대급 전멸
2017년 문재인 19대 대통령 당선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12월이 아닌 5월에 치러진, 제6공화국 최초의 대통령 궐위선거였으며, 입후보자 수가 13명(당초 15인이었으나 두 명은 사퇴)으로 역대 최다 출마자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또한 대통령 선거로는 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사전 투표에서 투표율이 26.1%에 달하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촛불집회를 거치며 시민들의 정치 참여 의지가 성장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으로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된 대통령 후보 TV 토론회의 큰 영향력과, 소셜 미디어와 예능을 통한 선거운동 등 이전과는 다른 특징들이 돋보였다.
투표 결과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총 유효투표수의 41.09%인 13,423,800표를 득표해, 2위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24.04%)와 3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21.42%) 등을 제치고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6.76%,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6.17%를 각각 득표하였고, 그 밖에 8명 군소 후보의 득표 합계는 0.52%에 그쳤다.
2012년 여성 헤어스타일 혁명 이끈 ‘보브컷’ 창시자 비달 사순 별세
1960년대 파격적인 ‘보브컷(Bob cut·단발머리에 컷을 넣어 비정형으로 스타일링한 머리)’을 선보여 여성 헤어스타일의 개척자로 우뚝 섰던 세계적 헤어스타일리스트 비달 사순(Vidal Sassoon·84)이 9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순은 1997년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투병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28년 영국 런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사순은 1960년대 여성 헤어스타일에 ‘자유’를 선사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너는 가난하니 커서 미용사가 돼라”는 어머니 조언에 따라 14세 때부터 미용 가위를 잡기 시작한 그는 26세 되던 1954년 런던에 자신의 첫 미용실을 냈다.
사순이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 건 1960년대 초 ‘혁명적 단발컷’으로 평가받은 ‘보브컷’을 세계 최초로 선보이면서부터다. 그는 평범한 단발머리를 뜻하는 ‘보브’에 기하학적인 ‘커팅’을 넣어 ‘보브컷’을 탄생시켰다. 비달 사순이 창조한 스타일이라 해서 ‘사순컷(Sassoon cut)’으로도 불린다.
2012년 러시아의 수호이 슈퍼제트 100(Sukhoi Superjet 100) 최신형 첫 중단거리 여객기가 시험비행 중 인도네시아 살락산에 충돌, 승무원포함 전원이 사망하다.
2009년 장영희 교수 별세
생애 마지막 8년 동안 장 교수는 세 번 암 진단을 받았다. 2001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완치됐으나 암이 척추로 전이됐고 다시 간까지 번졌다.
장 교수는 지난 2년간 24차례에 걸쳐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2010년부터 보급될 중학교 영어 교과서와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집필을 계속했다. 지난달 중순까지 병상에서 교정을 봤다. 수필집 에필로그에 장 교수는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며 "난 여전히 그 위대한 힘을 믿고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고 썼다.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끝으로 병원에서 퇴원한 장 교수는 어머니, 여동생 순복씨 가족과 함께 살아온 서울 마포구 연남동 집에서 열흘을 보냈다. 지난 3일 이후에는 반(半) 의식불명 상태였다. 어린이날인 5일, 허리가 아파 누워 있던 어머니가 몸을 추스르고 장 교수 다리를 주물렀다. 순복씨는 "의식이 없던 언니가 엄마 손길을 느끼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엄마'라고 불렀다"고 했다.
2007년 나이지리아 피랍 대우건설 임직원 3명 전원 석방
나이지리아 건설현장에서 무장단체에 의해 피랍됐던 대우건설 임직원 3명이 사건발생 후, 6일 만에 무사히 풀려났다.
외교통상부는 2007년 5월9일 새벽 1시30분 나이지리아 리버스 주(州)정부와 무장단체가 총 5차례 협상 끝에 대우건설 정태영 상무, 안종태 전문위원, 하익환 부장이 모두 석방됐다고 발표했다. 정부 당국자는 “피랍됐던 정 상무 등 3명은 모두 건강하며 주나이지리아 대사관에서 보호하고 있다” 고 말했다.
대우건설 정 상무 등은 2007년5월3일 나이지리아 남부 니제르델타 지역 포트 하코트시(市) 북동쪽에 위치한 아팜 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총을 쏘며 난입한 무장단체에 의해 피랍됐다. 정 상무 등이 납치되는 과정에서 나이지리아 군인이 1명 사망하고, 무장단체가 과도한 정치적인 요구를 내세움에 따라, 사태해결이 지연됐었다.
2007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사전 구속영장 신청
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들을 보복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화그룹 김승연(55) 회장에 대해 경찰이 2007년 5월 9일 사전(事前)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이 폭행 혐의로 재벌 총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처음이다.
김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은 지난 3월 8일 사건이 발생한 지 60여일만에 이뤄졌다.
이날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에는 김 회장이 아들과 몸싸움을 했던 서울 북창동 S유흥주점 종업원 4명을 청계산 인근 신축건물 공사장에 감금하고 쇠파이프와 손, 발 등으로 폭행한 혐의, S유흥주점에 찾아가 다른 종업원 2명을 손과 발로 폭행한 혐의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김 회장이 범서방파 행동대장 오모씨 등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혐의는 영장 내용에서 제외됐다.
2005년 명성황후 시해범의 후손들, 사건 110년 만에 사죄(謝罪)의 뜻 전하기 위해 방한
일제의 1895년 명성황후 시해 만행에 가담한 일본 낭인(浪人)의 후손들이 사건 110년 만에 한국을 찾아와 2005년 5월 10일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잠든 경기 남양주시 홍릉에서 조상을 대신해 무릎을 꿇은 채 사죄하였다.
1895년 경복궁에 뛰어들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낭인(浪人) 중 주역급인 구니토모 시게아키(國友重章)의 외손자 가와노 다쓰미(河野龍巳)씨와 이에이리 가키쓰(家入嘉吉)의 손자 며느리 이에이리 게이코(家入惠子)씨가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들과 함께 이날 한국에 왔다. 저녁 6시 인천공항에 도착한 가와노씨와 이에이리씨 외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은 2004년 11월 결성된 시민단체로 구마모토 출신의 전직 교사 20여명이 회원이다. 이들은 명성황후 시해범들의 후손을 찾아내고 관련 기록을 조사해 시해사건 진상 규명에 앞장서고 있다.
흔히 ‘을미사변’으로 알려진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황후의 친러 정책을 막으려던 일본 세력이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에 무단 난입, 황후를 죽이고 불태운 사건이다.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공사의 지휘 아래 당시 한성신보 주필 구니토모 시게아키가 낭인들을 이끌었다. 미우라와 구니토모 등 명성황후 시해범 56명은 이듬해인 1896년 히로시마 법정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전원 석방됐으며, 구니토모는 1909년 병사했다.
2004년 친러 체첸대통령 아마드 카디로프 피살
체첸공화국 수도 그로즈니 디나모 스타디움에서 2004년 5월 9일 폭발사고가 발생, 아마드 카디로프 체첸대통령이 사망했다. 이날 사건은 카디로프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승전 59주년 기념 행사가 열리던 도중 귀빈석 밑에 장착된 지뢰가 폭발하면서 발생했다.
그는 이슬람 성직자 출신으로 체첸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투사에서 친(親) 러시아 인사로 변신한 인물이었다. 1999년 10월 러시아의 제2차 체첸 침공 이후 러시아에 적극 협력해 이를 토대로 2000년 6월 크렘린궁에 의해 체첸 대통령으로 지명돼 체첸을 통치해왔다. 이로 인해 그는 체첸 반군들의 암살대상 1호로 지목돼 왔다. 이날 그의 죽음은 자신의 변절 행위로 멀어진 민심을 되돌리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됐다.
체첸 공화국은 소련 연방 해체 후 러시아로부터 가장 먼저 분리 독립을 추구했으나 우리나라 경상북도 크기만한 1만9000㎢ 국토면적에도 불구, 연간 260만t의 원유를 생산해내는 등 유전이 풍부해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할 수 없었다. 2000여명으로 추산되는 체첸 반군 강경파들은 이런 국민적 정서를 이용, 체첸의 완전 독립을 주장하며 러시아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다.
2003년 콩고민주공화국 여객기, 160명 추락사
콩고민주공화국(DRC)의 소련제 일류신76 국내선 항공기가 비행 도중 뒷문이 열리면서 여러 명의 승객들이 기체 밖으로 떨어져 사망했다고 외신들이 9일 보도했다.
지난 8일 밤 수도 킨샤사를 이륙한 사고기는 원래 화물기이지만 경찰과 가족 등 모두 200여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륙 45분쯤 뒤 2200m 고도를 비행 중일 때 화물을 싣고 내리는 뒷문의 압력장치 고장으로 문이 열리면서 승객들이 밖으로 떨어졌다. 추락한 승객 숫자에 관해 AP와 AFP통신 등은 공항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160여명으로, BBC 방송은 129명으로 보도했으나, DRC 정부관계자는 10일 오전 0시 30분(한국시각) 미국 CNN 방송과 인터뷰에서 “희생자는 7명에 불과하며, 나머지 대부분의 승객들은 비행기 앞쪽으로 대피해 화를 면했다” 고 주장했다.
제트 엔진 4개가 달린 이 낡은 화물기는 콩고민주공화국 군 당국이 전세 내 킨샤사에서 동남부의 이 나라 제2도시 루붐바시로 운항 중이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흔히 화물기가 승객 운송용으로도 사용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사고 후 조종사는 비행기를 킨샤사로 되돌려 무사히 공항에 착륙시킨 후 “모든 승객들이 기체 밖으로 빨려나갔다” 고 말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2003년 미국, 소형 핵무기 금지법안 폐기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이란 등의 핵 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의회에 소형 핵무기 연구·개발금지법의 폐기를 요구했으며,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는 이에 따라 지난 9일 이 법의 폐기 조항이 포함된 2004년도 국방예산안을 9일 논란 속에 가결했다
이 법은 1993년에 제정된 ‘스프래트·퍼스(Spratt-Furse) 수정안’으로 TNT 5000t 이하의 폭발력을 가진 소형 핵무기 생산을 위한 연구와 개발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부시 행정부는 새로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할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으나 이 같은 금지법은 미국이 냉전 후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군사력을 재편하는 시점에서 무기 연구를 제약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의 존 워너(Warner) 상원 군사위원장은 9일 “실전 배치는 하지 않겠지만 소형 핵무기에 대한 연구는 점점 더 지하시설로 들어가는 적들과 새로운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신중한 조치”라고 말했다. 공화당 인사들은 “위험 물질을 주변에 퍼뜨리지 않으면서 생물·화학무기를 그 자리에서 태워 버리기에는 소형 핵무기가 적격”이라고 주장했다
1998년 일본의 가격파괴왕 미야지 도시오 사망
일본의 `가격파괴왕` 미야지 도시오(69) 조난 전기 사장이 1998년 5월 9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싸움꾼`이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그의 일생은 관청 및 규제와의 투쟁의 연속이었다. 철도청 직원을 거쳐 38세 때 도쿄에 할인전문점 체인인 조난전기 1호점을 개설, 담합과 규제위에 구축된 일본의 고물가 구조 파괴에 나섰다.
현금구입으로 구매단가를 낮추고, 마진을 박하게 붙이는 박리다매형 상술이 그의 특기였다. 후생성이 원산지 표시가 없다는 이유로 외국산 유명 브랜드 립스틱의 국내 시판을 금지하자 그는 매장에 `후생성이 못팔게 하는 물건입니다`라는 현수막과 함께 담당부서 전화번호가 적힌 무료전화를 설치해 후생성 관리가 판매금지에 항의하는 소비자 전화에 시달리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96년 나라시마 라오 인도 총리 사임
1994년 넬슨 만델라,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
흑인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부당하게 차별대우를 받게 되자 한평생을 인권운동에 바친 넬슨 만델라가 1994년 5월 9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청년동맹과 민족회의를 결성해 저항운동을 전개했고,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악마의 섬 `로번 섬` 감옥에 18년 동안 갇히는 등 모두 27년을 감옥에서 보낸 인권운동의 투사인 그는 1993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1994년 4월 26일부터 29일까지 사상 최초의 다인종 선거가 실시되어, 흑인 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가 전체 유효 투표의 62.5%를 획득하며 승리했다. 이날은 342년간의 백인 통치를 종식시킨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고 있다
1994년 조계종 원로회의, 월하스님을 제9대 종정으로 추대
1990년 민자당 첫 정당대회서 노태우 총재 선출
1990년 반(反)민자당 대규모 시위 발생 - 서울 도심서 2만명 격렬 시위
민자당 창당대회가 열린 1990년 5월 9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민자당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학생들은 미 문화원에 화염병을 던져 불을 질렀으며, 경찰차가 전소되고, 진압경찰이 무장해제를 당하기도 했다. 이날 있었던 대학생들의 시위는 1987년 6월 민주화시위 이후 최대 규모로 벌어졌다.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17개 주요 도시에서도 학생 및 재야단체들이 시위에 참가했다. 서울의 경우 명동 일대로 뛰쳐나온 시위대는 순식간에 2만여명으로 불어나 회현 고가도로 밑에서 롯데백화점 앞 1㎞거리를 뒤덮었으며 오히려 진압경찰을 명동 외곽지역으로 밀어붙이고 4시간 가까이 도심일대를 장악했다. 이날 시위에는 대학생들 뿐아니라 전교조 전노협 전민련 등 전 재야단체회원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이날 시위의 표면적 구호는 민자당 해체로, 민자당 출범 1백일 동안 반민자당 투쟁을 효과적으로 추진하지 못한 운동권이 민자당 창당일을 계기로 총력 대응한 결과였다. 서울시경은 5월 13일 5.9시위 사태의 배후주동 혐의로 김근태 전민련공동의장을 검거했다.
1987년 폴란드 여객기 일류신62기 이륙직후 엔진고장 추락 사망 183명
1983년 정부, 외국상표 도입 자유화하기로 결정
1982년 라이베리아국 원수 도 장군 내한
1980년 중국 최초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실험계획을 발표
1979년 미국 전략무기제한협정(SALT2)협정에 미국-소련 양국이 기본적 합의를 보았다고 발표
1976년 이탈리아 북부 지진 750여명 사망
1973년 남북적십자 6차 본회담 (~11일 서울)
1970년 중국 캄보디아와 정식 수교
1969년 재무부 차관업체 45%가 부실업체라고 발표
1966년 중국 3차 핵실험. 서부내륙서 첫 수폭 실험
1964년 최두선 내각 총사임. 후임에 정일권
1964년 동양방송(라디오 서울) 개국
1960년 미국 FDA, 먹는 피임약 ‘에노비드10’ 승인
1956년 일본 필리핀 배상협정 성립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 폭동
6.25사변으로 인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중이던 친공포로들이 수용소장인 도트 준장을 납치하고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
16만여명의 공산군 포로들 중 이념상으로 북한에 송환되길 거부하는 반공포로들과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포로들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포로수용소 소장에 도트 미군 준장이 부임하자 친공포로들은 밥에 독약을 넣었다고 억지를 써 단식투쟁을 하면서 새 소장과의 면담을 요청했고 영문도 모르는 도트 준장은 그들의 수용동을 찾아갔다가 친공 포로들에게 납치 감금당한 것이다.
결국 유엔군이 탱크와 소총으로 수용소를 둘러싸고 강경 대응하자 72시간만에 도트 준장을 풀어주었으나 도트는 이 사건으로 종신 대령으로 강등됐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폭동사건은 포로수용소 안에서 포로와 전쟁을 하고 수용소장이 포로가 되는 등 포로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역사에 남아 있다.
1951년 이시영 부통령 사임
1950년 `슈만플랜` 제창
1950년 5월 9일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슈만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계획` 이른바 `슈만 플랜`을 제창했다. 슈만 플랜은 `국경을 초월한 협력관계를 유지하지 않고서는 서유럽의 미래는 없다"는 전제하에 서유럽 전체의 자원과 공장을 초국가적 기능에 의해 관리한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유럽의 석탄·철강 생산을 프랑스와 독일 및 이에 참가하는 유럽 여러나라의 공동관리하에 두고, 생산의 합리화와 근대화를 기초로 한 공동경제시장을 창설해 결국은 유럽연합으로까지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간의 전쟁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것도 부수효과로 제기됐다.
아데나워 서독 수상은 이 제안을 환영하며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라는 중요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첫 걸음으로 평가했다. 서유럽 6개국(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은 이듬해 4월 슈만 플랜을 구체화시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조약을 체결하고 12월에 비준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는 오늘날 유럽연합(EU)의 모태가 됐다.
1942년 일본제국 조선에 징병령 공포
1940년 소련군 프라하 점령
1940년 민족 3당인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이 한국독립당으로 통합
1940년 노르웨이 대독 항전 중지
1936년 이탈리아, 에티오피아 병합 선언
1936년 5월 9일 이탈리아가 무력제압한 에티오피아의 병합을 선언했다. 이탈리아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은 공황에 의한 국내경제위기로부터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1934년 12월 에티오피아와의 전선을 형성, 1935년 10월 국경분쟁을 이유로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에티오피아 황제는 이를 국제연맹에 제소했으나 영국과 프랑스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독일은 에티오피아 병합을 승인했다. 결국 에티오피아 황제는 영국으로 망명했다.
1930년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 선생 타계
한말 일제시대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남강 이승훈(1864∼1930) 선생이 1930년 5월 9일 6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선생은 "내뼈를 표본으로 만들어 사랑하는 학생에게 보여주기를 원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1864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남강은 보부상과 국제 무역상 등으로 부를 쌓았으나 연이은 사업실패를 겪으며 외세와 민족문제에 대한 인식과 반일 민족의식을 갖게 됐다. 1907년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에 감명받은 것을 계기로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에 가입, 평안북도 총감이 됐다. 이후 서적-출판 판매 회사인 태극서관을 설립, 민족자본 육성에 힘쓰는 한편 초등교육기관인 강명의숙과 중등교육기관인 오산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 운동을 전개했다.
1911년 안중근 의사의 사촌 안명근의 독립자금 모금사건인 안악(安岳)사건에 연류돼 제주로 유배되었고, 같은 해 일본 경찰이 민족운동을 탄압한 105인사건으로 기소돼 징역6년을 선고받았다. 3·1운동 때는 기독교계를 대표해 33인 중 한사람으로 참여,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4년 조만식 선생 등과 함께 물산장려운동을 주동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선생은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1999년 `12월의 문화인물`로,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2001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1928년 조선일보 제4차 무기정간
1928년 미국의 테니스 선수 곤잘레스 출생 - 미국 프로 선수권대회 남자단식에서 7회 연속 우승을 포함하여 8회 우승
1926년 미국 탐험가 버드 북극 횡단 비행성공
1916년 영국 프랑스 비밀협약 (터키문제)
1897년 시인 변영로 출생 - 시를 언어예술로 자각하고 기교에 중점
1894년 동학군 해산
1860년 영국 소설가 제임스 배리 출생
1850년 프랑스 화학자 게이 뤼삭 사망
1805년 독일 극작가 쉴러 사망
1660년 조선왕조 18대 왕 현종 즉위
1328년 목은 이색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