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초등학교 동창회가 조직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다소 때늦은 감이 있으나 꼭 필요한 일이며 어려운 일을 도맡아 수고하시는 간부 여러분께 고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대전에서 줄곧 살며 느낀 점인데 지방일수록 초등학교 동창회가 활성화되어 있다.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 앉은 쭈그리 노인들이 마치 어린애가 된 듯 툭툭 치며 장난을 서로 하는가 하면 남녀간에도 스스럼 없이 이름을 불러가며 끈끈한 정을 나누는 것을 보며 부러워 하곤 했다.
동창회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야 모두가 있지만 정작 나서서 그 일을 추진하다보면 시간과 경비와 노력이 들게 되고 자기 희생을 감수해야하기에 이리도 오래 끈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한번 동창회 조직에 헌신하신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어렵게 만들어진 이런 기회를 동문 여러분의 열열한 참여로 훈훈한 정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모처럼의 기회가 되어 옛 교정을 들어설라치면 작지만 아담한 교정에 그리 바뀌지 않은 건물등이 아직 그곳에 있으나 낯선 후배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만 맴 돌뿐 정작 그리운 옛친구들이 없음에 일말의 실망과 엄습하는 그리움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렇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때 그 시절의 친구들이지 낡아가는 교정은 아닌 것이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상념에 젖어본다.
꿀 같은 휴식시간이면 잽싸게 뛰쳐 나와 공놀이를 했으나 변변한 운동 시설이 없어서 건물 벽에 대고 치던 일.
점심 시간이면 다같이 살기 어렵던 시절이었음에도 더 어려운 친구들을 위해 학교에서 제공되던 옥수수빵. 가끔은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과 바꿔 먹기도 했지만 간식을 거의 못하던때라 그런지 그 옥수수 빵 한주먹 얻어 먹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지금 애들이 보면 이걸 음식이라고 주느냐 할 정도로 거친 음식이었으나 피자나 치킨보다 더 맛있고 더 만족스럽던 옥수수 빵 !!
그 와중에도 있는 집 애들은 우유를 대서 먹고 있었는데 그게 또 그렇게 부러웠다.
그거 한 모금 마시면 팔에 힘이 불끈 솟을 것 같고 우유 먹는 애들의 피부는 우유빛으로 희멀건해서 부티가 나보였다. 우유 때문만은 아니고 영양식을 하는 때문이었겠지만 말이다.
추억은 두서도 없고 토막 토막 끊어지지만 가장 생각나는 것은 알미늄 도시락과 조개탄 난로다.
못 먹고 못 입던 그 시절 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추웠다.
어머니가 전구로 쒸워 기워주신 양말을 두개씩 겹쳐 신어도 발이 시렵고 아침이면 한 뼘이나 될까싶은 겨울햇볕에 몸을 녹이느라 양지바른 담벼락에 동네 꼬마들이 옹기 종기 모여 해바라기하던 풍경이 빛바랜 사진처럼 스쳐간다.
그때 유일하게 우릴 덥혀주던 난로는 조개탄 난로였다.
불이 쉽게 붙지 않아서 처음에는 연기가 온 교실을 메우지만 그래도 좋은 자리에서 도시락을 덥히느라 늘 시끌벅적했다.
알미늄 도시락.
그땐 일본어를 많이 쓰던 때라서 ‘양은 밴또’라고 했다.
보온 도시락이 없던 시절에 홑겹 금속 용기에 담아간 밥이 점심 시간에 따뜻할 리가 없다.
궁하면 통한다던가?
요즘같이 공기조절기로 온풍이 나오면 생각도 못할 기발한 보온 수단이 난로에 올려 놓는것인데 한반에 5~6십명이나 되다보니 좁은 난로 뚜껑위에 다 올리기 버거웠다.
문제는 타도 않 되고 차가와도 않 되기에 수없이 자리 바꿈을 해주어야 되는데 때로는 힘께나 쓰는 녀석이 밑에서 3~4번째 좋은 자리만 독 차지 하기도 하고 찌그러진 도시락이 밑에 있다보면 일시에 와르르 쓰러져서 교실바닥에 동댕이 치는 일도 빈번했다.
콩자반이며 멸치 볶음 심지어 김치까지 교실바닥을 어지럽히기 마련이지만 우선은 까르르 웃던 그 천진스러움이 눈물겹게 그립다.
어쩌다가 정말 오랜만에 계란부침이 밥 위에 올려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의 그 기쁨이라니....
우리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 여러 남매 키우시느라 도시락 반찬 개발에도 신경을 많이 쓰셨는데 가끔은 돼지고기를 썰어 넣은 볶음 고추장을 싸 주셨다.
한 끼 반찬에 고작 2~3조각의 고기. 맨 고추장만 겨우 면하기 위해 돼지는 냄새만 풍겼지만 분명 특식이었다.
주변 친구들과 모여 앉아 반찬을 한곳에 모아놓고 함께 먹곤 했는데 좋은 반찬 싸갔다고 돌아 앉아 먹을 수는 없는 노릇.
친구는 여럿이고 볶음 고추장 속에 고기 조각은 불과 몇 개 않 된다.
보이지 않는 고기조각을 찾아 부딪치던 젓가락의 주인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은근히 신경전을 벌리던 ‘돼지 헤엄친 고추장’ 반찬도 추억의 한 페이지l에 각인되어있다.
도시락과 얽힌 이야기 중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평소 장난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어쩌다 않하던 짓을하면 사고를 치게되는데.
그날도 늘 같이 다니던 친구와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린 길가다 말고 가방 싸움을 하게 되었다.
비닐로 된 가방은 끈으로 매어져 손에 들고 다녔는데 다른 애 들이 가끔 가방을 휘두르며 장난 치는 것은 봤어도 정작 그때 처음 해본 것이다.
여러번 가방끼리 부딪쳐 봤지만 승부가 쉽게 나지 않자 나는 필살의 일격을 가해 드디어 그친구 가방을 땅에 떨어뜨리고야 말았다.
거기서 그쳤으면 좋았는데 승리감에 도취한 나는 그의 가방을 몇 차례 밟아 주었다.
아뿔사.
그가 황급히 가방을 열고 도시락을 점검하는데 힘없는 도시락은 형편없이 찌그러져 있는게 아닌가?
순간 그는 온 세상 시름을 한 몸에 안은 양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때의 황당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홀어머니와 어렵게 사는 처지 였고 그렇다고 선 듯 변상할 능력도 없는 나였기에 그랬다.
길모퉁이에서 구겨진 도시락을 어찌어찌 펴주긴 했으나 점심시간마다 우그러진 그의 도시락을 안쓰럽게 보면서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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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그락![!](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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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죠.![하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46.gif)
그때가 그리워지네유![ㅠ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9.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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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벤또를 겨울에 난로위에 올려 놓으면 요즈음에 렌지 역할을 했죠!!
아하! 밴또! 그 밴또를 하교 하면서 풍물놀이 한다구 친구들과 함께 마구쳐서 다찌그러져서 모친한테 디지게 혼나기도 여러번,,,하하하 죽어라 삻었지만 다시금 그리운 그 사절이지요! 글 감사히 읽었읍니다!
노란 양은벤또........옥수수빵, 정말 맛있었지요???? 옛날 생각이 나네요.
양은도시락~~~전 국민학교때 달리기 선수였답니다 그래서 방과후 운동하고 운동 끝나고 옥수수빵을 서너개 더 주었지요~~ 집에가져가서 쪄먹었던 기억~~교문밖 냉차장수,설 익은 복숭아 사먹던기억, 그옛날 기억에 빠져봅니다~~~
전 집이가까워서 도시락을 안싸고 다녔는데 강냉이 죽이랑 빵이 먹고싶어서 ...엄마 졸라 도시락이랑 빵과 바꿔 먹었죠 ㅎㅎㅎ
그 시절에 먹었던 옥수수빵의 맛을 잊을 수가 없어 간혹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