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함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이 시에서 사물은 그냥 사물이 아니다. 사물과 마음이 관계할 때 플라스틱 휴지통은 도구의 역할을 벗고 ‘등에 묻은 빗방울 털며 환하게 웃는 손’의 숭고한 감각을 불러온다. 일상의 먼지 속에 파묻혀 있던 유년의 잃어버린 기억과 성장기의 설레는 추억이 살아나고 고무신과 나뭇잎 같은 소소한 사물들마저 화자의 안팎을 성화한다. 이 과정은 세상일에 매여 사는 에고를 정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한낱 휴지통으로 출발한 명상이 육친과의 이별이라는 적멸의 공간까지 이어진다. “어머니 마지막 눈 감겨드리고/ 오래도록 거두지 못한 그 손”의 죽음 의식을 회복할 때 시 쓰기는 일종의 제의와 같다. 모든 제의가 회귀를 통한 변화의 성스런 기획이듯이 제의로서의 시 쓰기를 통해 시인은 자아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모두가 비를 피하기 위해 돌아간 텅 빈 공원에 혼자 돌아와서 청소 노동자의 불편을 염려하며 휴지통을 뒤집어놓고 가는 아이의 초상이 시인과 겹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