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2일 오늘의 역사
2022년 북한 대남용 개발 탄도미사일 3발 발사
합동참모본부는 “오후 6시 29분쯤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3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비행거리 360㎞, 고도 90㎞, 속도는 마하 5(시속 6,120㎞)로 탐지됐다. 군 당국은 이 미사일을 남측 위협용인 초대형 방사포(KN-25)로 추정하고 있다. 북한이 초대형 방사포를 쏜 것은 2020년 3월 이후 2년 2개월 만이다. KN-25는 북한이 대남용으로 개발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3종 세트(KN-23~25)’의 하나다. 북한은 1월 17일 ‘북한판 에이태큼스’로 불리는 KN-24도 두 발 쐈다. 북한은 또 모두 20초 정도 간격을 두고 미사일을 쏘아 올렸는데, 연속 3발 발사는 처음이다. '연사'가 정착되면 탐지ㆍ요격이 당연히 어려워진다.
2015년 애국지사 홍재원 선생 별세
애국지사 홍재원(98) 선생이 12일 오후 4시 13분 별세했다.
강원 화천 출신으로 광복군 제2지대에서 활동했다. 1945년에는 한·미 합작 특수부대인 OSS훈련 정보·파괴반에서 훈련받은 뒤 강원도반에 배속됐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 되었다
2014년 ITX-새마을 운행 시작.
2007년 보복폭행 혐의 김승연 한화회장 구속, 수감
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들을 보복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화그룹 김승연(55) 회장이 2007년 5월 12일 새벽 구속, 수감됐다. 재벌 총수가 폭행혐의로 구속된 것은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은 11일 밤 11시쯤 김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김 회장은 자정을 넘겨 서울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김 회장은 지난 3월 8일 자신의 아들과 몸싸움을 했던 서울 북창동 S유흥주점 종업원 4명을 경기도 성남시 청계산 인근 신축 건물 공사장에 감금한 뒤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하고, S유흥주점에 찾아가 다른 종업원 2명을 손과 발로 폭행한 혐의다. 김 회장 구속은 사건 발생 64일만이다.
2003년 체첸 즈나멘스코예 정부청사에서 트럭 자살 폭탄테러
체첸 북부 즈나멘스코예 소재 지방정부 청사 주변에서 2003년5월12일 오전 10시 10분쯤(모스크바 시각) 폭탄을 실은 트럭이 폭발, 40명 이상이 숨지고 200여명이 부상했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폭탄 테러는 체첸 반군 소행으로 보이며,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과 지방 내무부 건물이 입주해 있는 청사에 대한 폭발 기도로 보인다고 러시아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폭탄을 장착한 러시아제 카마즈 트럭이 청사에 진입하면서 러시아 경비병이 이를 제지, 검문하려는 순간 폭발, 청사 건물 일부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괴됐으며, 인근 가옥 8채도 대파됐다고 말했다. 두다예프 체첸 내 친러시아정부 안보위원회의 서기는 “폭발 장소에는 직경 16m, 깊이 5m의 대형 웅덩이가 파였으며, 500m떨어진 곳에서도 폭발음을 들을 정도의 강력한 것이었다”
러시아 정부는 이번 폭발 사건을 체첸 반군들의 테러로 규정하고, FSB와 검찰에 직접 사건 진상 파악과 테러범들에 대한 검거를 지시했다.
체첸에서는 지난해 12월에도 체첸 수도 그로즈니 정부 청사에 폭탄을 장착한 트럭(카마즈)이 돌진, 폭파하면서 7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바 있다.
지난 91년부터 러시아로부터 분리 독립 운동을 해오고 있는 체첸 공화국은 지난 3월 23일 주민투표를 거쳐 분리 독립 투쟁을 종식하고 러시아 연방임을 재확인하는 신헌법을 승인하는 내용의 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바사예프 등 체첸반군 지도자들은 이에 반대해 왔으며, 자폭테러와 소규모 게릴라전 위주로 정부군과 지속적인 충돌을 벌이고 있다
2001년 여류문학가 강신재 별세
여류문학가 강신재씨가 2001년 5월 12일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였다. 그는 6·25 전쟁 이후 한국문단에서 남녀 사이의 현대적 애정 모럴을 추구, 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어 보인 여성작가였다.
특히 1960년작 ‘젊은 느티나무’는 계부의 아들인 이복 오빠와 손아래 누이가 가족 아닌 순수한 남녀 사이로 돌아가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고 리얼한 필치로 그려내 당시 독서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40년 전 이 작품은 월간 ‘사상계’에 전격 발표되면서, “본연한 인간성과 순수한 경지를 추구하는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경기고녀(현 경기여고)와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1949년 등단한 강씨는 ‘임진강의 민들레’, ‘명성황후’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중앙문화대상(1984) 등을 수상했다. 1960년대 말부터 한국문인협회 PEN 이사, 여류문학인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1983년부터 예술원 정회원으로 활동했다.
1998년 거평그룹 부도
199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유혈시위 발생
경제 및 물가난에 의해 1998년 1월부터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시위소요상황이 최정점을 향해 급상승한 것이다. 잠시 소강 상태를 보였던 대학생 시위가 1998년 5월 12일 자카르타 트리삭티 대학에서 학생 6명이 사망하면서 성난 파도로 바뀌었다.
시위대들은 이날 수하르토의 하야를 외치며 정면 돌파를 시도하다, 군경이 발사한 플라스틱 탄에 맞아 하나둘씩 흩어졌다. 목격자들은 이 중 2명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졌다고 밝혔으나, 인근 숨베르 와라스 병원 관계자는 모두 6명이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이번 사태로 대학생과 자카르타 시민 등 수천명은 유혈사태에 흥분, 트리삭티 대학 주변에서 상점과 주유소 은행 경찰차량을 불태우는 등 시위사태가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빠져들었다.
결국 수하르토의 사임 발표로 자카르타 유혈사태는 마무리 됐고, 인도네시아 국민에게 자신들의 민주화 요구가 정당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1997년 LG화학, 차세대 `퀴놀론계 항생제`개발
LG화학이 탁월한 효능을 지닌 차세대 `퀴놀론계 항생제(LB20304a)` 개발에 성공했다. 이 항생제 개발로 1997년 5월 12일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회사인 영국 스미스클라인 비참사에 3천7백75만달러(3백40억원)의 기술 수출료와 2000년 상품화 이후 매년 3백억원씩 20년간 총6천억원의 로열티를 조건으로 기술제휴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 항생제는 호흡기와 요로감염증, 피부감염증에 탁월한 효능이 입증됐다. 회사측은 이 신약을 5년간의 연구끝에 개발하여 국제적인 전문 시험용역회사인 영국 코반스사의 비임상 동물실험과 1단계 임상실험을 거쳤다고 밝혔다. LG화학의 신약 개발은 독자 연구개발은 거의 없고 원료를 외국에서 들여와 포장해 파는 국내 제약사들에게 제약시장이 얼마나 큰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를 시사했다.
1994년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 사망
190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태어난 에릭 에릭슨은 정규대학에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한때 화가를 지망하며 유럽을 방랑했으나 빈의 정신분석원에서 만난 안나 프로이트에게서 정신분석학 훈련을 받았다. 31세에 미국으로 이주, 미국 각지에서 임상연구에 종사하면서 자신의 정신분석학 체계를 잡아갔다. 비록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예일 버클리 하버드 등의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쳐 20세기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에 지대한 공적을 남겼다.
프로이트에게서 배웠지만 그의 이론은 프로이트와 몇가지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였다. 에릭슨은 인간행동의 기초로서 이드보다는 자아를 더 강조했다. 그는 프로이트와 달리 자아를 성격의 자율적 구조로 간주했다. 주요저서로는 발달의 사회성을 주창하는 ‘유아기와 사회’(1950) ‘정체성과 생활주기’(1959), 개인생활사와 역사의 만남을 예증하는 ‘청년 루터’(1958) ‘간디의 진리’ (1969) 등이 있다.
1990년 청소년헌장 발표
청소년은 지금까지 주로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되거나 미래이 주역으로 인식되어 현재의 삶을 소홀히 함으로써 자발적인 참여와 활동을 제한받아 왔다.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일 뿐만 아니라 오늘 이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되어 자율과 참여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청소년에 대힌 인식을 전환하였다.
이에 1990년 5월12일 제정,선포된 청소년헌장을 개정(1998년 10월 25일)하여
청소년의 주체적인 삶과 자율적인 참여를 보장하고 청소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와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명시하였다
1984년 교육부 고교국어 문법 통일안 마련
1981년 검찰 우편진술제 실시
1975년 캄보디아 미국 상선 `마야구에스`호 나포
1974년 이탈리아 국민투표로 이혼법존속 결정
1970년 한국등반대 히말라야 `추렌히말`봉 정복
한국 히말라야 등반사상 최초의 등정 의혹은 1970년 창립 25주년을 맞아 추렌히말 (7,371m·최고봉 동봉)에 도전한 한국산악회 원정대(대장 김정섭)다. 추렌히말은 네팔 히말라야 서부 다울라기리산군에 위치한 준봉으로 같은 높이(7,371m)의 동봉, 중앙봉, 서봉 세 개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산에 한국대가 도전하기 전에 일본(1962년)과 이탈리아대(1969년)에 위해 중앙봉만이 두 차례 도전을 받았으나 정상을 허락하지 않은 채 미등봉으로 남아 있었다.
당시 원정대는 김호섭(25) 부대장과 고소포터 린지 왕겔 셰르파가 4월 29일 처녀봉인 추렌히말 동봉(7,371m)을 초등했다는 소식을 외신을 통해 국내에 전했으나 같은 해 가을 시즌 남동벽으로 중앙봉 초등에 성공한 일본의 정강대(靜岡大)팀은 “한국대의 등정을 믿지만 6,300m 지점에서 동봉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동봉 상의 7,000m에서만 등정이 가능하다”며 등정의혹을 제기한다.
이 의혹은 일본 산악 전문지 ‘岳人’(1970년 11월호)과 <월간山> 전신인 ‘등산’(1970년 12월호) 양 산악전문지를 통해 갑론을박의 논쟁이 이어지다가 1971, 1972년 김정섭 대장의 친동생인 김기섭, 김호섭 형제가 마나슬루에서 조난사하면서 잠시 묻히고 말았다.
1988년 추렌히말 동봉 정상에 오른 중동산악회 대원. 1970년 한국산악회 팀의 등정 의혹을 마무리짓는 등반이었다.
이 의혹은 1987년에 이어 1988년 추렌히말 재등반에 나선 중동산악회 원정대에 의해 풀렸다. 중동 팀이 확인한 동릉 마지막 구간은 양쪽이 천여 길 절벽인 데다 길이가 무려 1km에 이르는 험난한 칼날 설릉이었다. 중동산악회는 루트를 바꾸어 정상에 올라선 뒤 한국산악회 팀이 오른 봉이 동봉 아래 무명봉일 가능성이 높다고 단정지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1983년 가을 마나슬루 단독 등정에 성공한 허영호는 동국대가 오른 봉우리는 정상이 아니라고 이의를 제기한다.
1966년 미국-중공 공군기 중공-월맹 국경서 공중전, 미그기 1대 격추
1965년 서독, 이스라엘 외교관계 수립
1964년 대한상공회의서 상공인의 날 제정 첫 실시
1964년 서울 시내버스 총파업
1963년 미국 앨라배머주서 흑인들의 인종차별 반대운동 격화
1962년 남산 케이블카 개통
서울남산에 최초 여객삭도(케이블카) 은하수와 무지개가 개통되었다
이 케이블카는 회현동 승강장에서 남산꼭대기에 있는 예장동 승강장 까지 선로의 길이는 605 m, 시종점간의 고저차 138 m로, 노선의 평균 경사각은 약 77°이다. 운행 속도는 약 3.2 m/s로, 편도 운행 시간은 3분 남짓이며 1961년 9월 2억9천만환을 들여 준공하였다.
왕복식으로, 2개 선로에 총 2대의 객실이 중간지점에서 정확히 마주쳐 지나가도록 설계되었다.
각 객실의 정원은 38명이다. 연중무휴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운행하였다
우리나라 삭도 산업의 선두주자로 제 몫을 해온 남산 케이블카이지만, 지난 2002년 7월 7일 상하행선 2대가 갑자기 멈춰서는 사고가 발생, 60여명의 탑승객들이 지상 40~50m 상공에 매달려 있다 1시간여 만에 구조되기도 했다
1962년 제9회 아시아영화제 개최
제9회 아시아영화제가 1962년 5월 12일부터 16일까지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렸다. 이번 영화제에는 한국을 비롯 일본, 대반, 홍콩, 싱가폴 등 6개국에서 극영화21편, 기록영화 15편을 출품했다. 극영화부문에서는 한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일본의 `위를 보고 걸어라` 대만의 `태풍` 등이 대상을 놓고 각축을 벌였다.
모윤숙 영화제심사위원장은 3일부터 출품작을 심사해서 한나라에서 한작품씩 뽑아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시민회관에서 시사회를 열었다. 16일 저녁 7시 박정희 최고회의의장 내외와 많은 영화인이 모여 폐회식을 열고 우수작품에 시상을 했다. 22개 부문 상 가운데서 한국은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차지한 최우수극영화상을 비롯해, 7개 부문 상을 받았다. 일본은 8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고 기록영화 최우수작은 싱가폴이 차지했다.
1962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 라오스정세에 대응 7함대 출동명령
1956년 우리나라 최초의 TV 방송 시작
1956년 5월12일 오후 7시 30분, 우리나라 최초의 TV방송 전파가 발사되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5번째, 아시아에서는 필리핀, 일본, 태국에 이어 4번째 TV방송국 보유국이 되었다.
방송국 이름은 코캐드(KORCAD). 미국 RCA사의 한국 대리점을 맡고 있던 황태영씨가 설립한 방송국이었다. 호출부호는 HLKZ였고 출력은 0.1㎾로 미약했다.
이날 서울 종각 건너편의 RCA 빌딩 3층 스튜디오에서 선보인 첫 시험방송은 궁중 연례악 ‘취타’와 국악 합주곡 ‘수제천’이었다. 민속무용단의 승무와 백설희·현인 등 인기가수가 대거 출연한 쇼프로도 2시간 동안 방송됐다. 화신백화점 앞과 서울역 등에 설치된 TV를 처음 본 시민들은 한결같이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쌀 한 가마니가 1만8000환이던 시절에 14인치 TV 수상기 한 대값이 34만환이나 됐으니 TV 수상기 보급도 기대에 못 미쳤다. 300대뿐이었다. 결국 재정난으로 소유권이 대한방송(DBC)으로 넘어갔지만 이마저도 1959년 2월에 원인 모를 화재로 방송국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국영방송 KBS가 방송을 시작한 것은 1961년 12월이었다
1951년 국민방위군 해체
1950년 11월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후퇴하기 시작하자 이승만 정부는 만17세에서 40세 미만의 장정들을 제2국민병, 즉 국민방위군으로 편성하여 대구와 부산 등 남부지역으로 이송하도록 했다.
전쟁 초기 북한군의 급습으로 서울시민을 적의 수중에 고스란히 넘겨주었던 경험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한겨울 혹한 속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50만여 명의 국민방위군을 이동시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국민방위군 장정들 가운데 수만 명이 남하하면서 얼어 죽고 굶어죽는 참상이 연출되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행방불명, 동상, 질병 등으로 낙오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살아서 목적지에 도착한 장정들도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거지중의 상거지, 해골들의 행진이었다
결국 국회는 국민방위군을 해체하기로 하고 국민방위군 사령관 김윤근과 부사령관 윤익헌 등 5명을 사형하였다
1949년 소련, `베를린 봉쇄` 322일 만에 해제
소련이 베를린과 서방측을 연결하는 모든 교통로를 봉쇄했던 이른바 ‘베를린 봉쇄’가 1949년 5월 12일 해제됐다. 1948년 6월 24일 봉쇄 이후 322일 만이었다.
2차대전 후 독일은 미·영·불·소 4개국에 의해 분할점령됐으나 소련 점령지역 내에 있는 베를린만이 공동관리하에 있었다. 베를린 봉쇄는 미·영·불 서방 3개국이 자신의 점령지역을 통합해 단일 경제공동체로 하고 베를린을 포함한 통합 전 지역에 새로운 통화인 마르크화(貨)를 유통시키기로 한 것이 빌미가 됐다.
소련은 보복에 나서 육로·철로·수로를 봉쇄하고 식량수송까지 금지했다. 연합국은 250만 베를린 시민들을 돕기 위해 항공기를 이용한 식량·연료·의약품 공수작전으로 맞대응했다. 소련이 베를린 4개국 공동관리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베를린의 독점적 지배권을 주장하면서 긴장도 더욱 고조됐다.
그러나 미국의 방침은 정면대응이었다. 공수는 예정대로 진행됐고 항공기가 3분마다 떴다. 수송 횟수만 약 20여만회, 공수물자도 약 232만t에 달했다.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식량은 배급제로 됐다. 전력소비도 제한됐으며 공장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어느덧 동독 주둔 소련군은 40개 사단으로 증가했고, 미군은 원폭 탑재기를 영국에 배치했다. 다행히 양측의 자제로 무력충돌로까지는 발전하지 않았지만 독일의 분단은 더욱 고착화됐다
1943년 북아프리카 주둔 독일군, 이탈리아군에 항복
1939년 영국 터어키 상호원조조약 조인
1936년 사진미학의 이론을 정립한 영국의 사진가 에머슨 사망
1935년 폴란드 초대 대통령 피우수트스키 사망
1933년 소련의 시인 보즈네센스키 출생
1929년 독립 나미비아의 초대 대통령 누조마 출생
1925년 일제 한국서 치안유지법 공포
1922년 장작림 동삼성 독립선언
1919년 임시정부의 김규식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 제출
1910년 수리남의 초대 대통령(1975-1980) 페리에르 출생
1905년 주 영국공사서리 이한응 런던서 자결(구한말 첫 순국)
1905년 문학평론가 이헌구 출생
1895년 소설가 성해 이익상 출생
1884년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 사망
4세에 4중주곡의 제1바이올린을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에는 프라하로 와서 음악에의 열정을 불태웠다. 당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프로크슈의 지도를 받아 19세에 페라디난도 황제의 궁전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행동하는 음악가 스메타나는 보헤미아(지금의 체코와 슬로바키아)를 통치하던 오스트리아의 압정에 정면으로 대항했다. 혁명군을 위한 `국민의용군 행진곡`과 `자유의 노래`를 만든 것도 이 무렵이었다. 1874년 11월 청력을 잃어 보청기를 사용하면서 작곡한 연작교향곡 `나의 조국`은 그를 상징하는 곡이 됐다. 체코 전설속의 공주 리부셰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리부셰`도 1881년 체코 국립극장 개관기념으로 올려져 그를 국민음악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의 50세가 넘은 노쇠한 몸은 심한 인후두통으로 점차 시들어갔고 대화조차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마침내 1884년 5월 12일 죽음을 맞았다.
1871년 비스마르크 독일수상에 취임
1859년 러시아의 소설가 악사코프 사망
1856년 독일의 식물학자 심퍼 출생 - 최초로 대륙을 식물지리구로 나누는 데 성공
1820년 나이팅게일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