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속삭임 / 이용수
되돌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때가 있다. 기댈 언덕이 있었으면 했지만 내겐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역 담당 권찰집사에게 심방尋訪예배를 원한다고 부탁했다.
흔히, 남편이 가정의 기둥이라고들 말한다. 나는 아내도 가정의 기둥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그의 빈자리에서 깨달았다. 예배를 부탁한 지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다 되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초초한 나는 담당자에게 전화하여 심방을 안 오는지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그것도 몰라요. 남자만 있는 집에 누가 심방 간다고 합디까?”라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날카로운 사금파리 하나가 내 가슴을 긋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 당시 우리 교회에는 남자목사가 네 명이나 있었다. 그 사람에게 심방 요청을 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차라리 물어보지나 말 걸 그랬다. 소외감이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하는가를 절절이 느꼈다.
임대 기간이 끝나 방세를 올려 줄 형편이 못 되어 이사를 했다. 내가 다니는 교회와 거리가 멀어졌다. 차를 두 번씩이나 환승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많이 걸어야 했다. 집 근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어느 날 그 교회에서 내가 사는 집에 심방尋訪 온다고 했다. 넉넉지 못한 내 삶을 그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또한 이사하기 전에 다니던 교회 구역 담당자에게 들었던 매서운 말 한마디가 내 가슴에 여전히 박혀 있던 터라 심방 온다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 전도사는 교회에서 나를 볼 때마다 심방 받으라고 거듭 재촉했다. 주저주저하다가 그만 심방 받는 것을 승낙하고 말았다. 청소를 하고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는 것들을 깨끗이 정리한 다음, 그들을 맞아들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반지르르 윤기 나는 옷을 입은 여인은 방에 앉지도 않고 서서 방안의 가재도구와 나를 번갈아 본다.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다. 불쾌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내가 살아가는 일에 대해 물었다. 살얼음 위를 걷는 위태로운 심정이었지만, 그에게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했다. 다만, 나는 어른이니까 참고 견딜 수 있지만, 아들이 불쌍하다고 부언하였다. 한 두 마디의 대화가 오간 다음 예배가 시작되었다. 내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그 여인이 대뜸, “이 집의 아들이 우상이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그 말이 어이가 없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들이 불쌍하다고 한 내 말에, ‘우상’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소리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가난하다고 감정까지 없는 건 아니다. 솟구치는 울분을 진정시키기 힘들었지만 꾹 참았다.
‘당신의 아들은 부모가 아침밥을 해 먹여 학교 보내겠지만, 아내가 없는 나는 생활이 어려워 내 아들에게 아침밥도 못 챙겨줍니다. 당신의 아이들은 밤늦도록 공부하면 간식도 챙겨주곤 하겠지만, 내 아이는 밤늦도록 공부해도 간식 한 번 사 먹이지 못합니다.’ 엄마가 챙겨주는 아침밥을 먹고 학교 가는 아이가 우상인지, 아침을 챙겨주는 엄마가 없어 밥도 못 먹고 학교 가는 아이가 우상인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예배가 끝났다. 자존심이 몹시 상하고 마음도 개운치 않았다.
울적한 마음도 진정시킬 겸 금정산에 올라갔다. 울분이 풀리지 않아 기도는 하지 않고 바위위에 앉아 하늘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뭉게구름이 바람 따라 무심히 흘러가고 있었다.
멍한 정신으로 숲속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거센 바람에 꺾인 소나무의 상처가 순간 내 눈앞에 다가왔다. 꺾인 상처에 진한 송진이 눈물자국처럼 엉겨 있다. 한동안 부러진 소나무 가지에 엉겨 붙어 있는 송진을 바라보고 있을 때다. 그 소나무는 나에게 죽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속삭여주는 듯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랄까. 소나무는 말 못하는 수목일지라도 세파에 시달리는 내가 가엾게 보였던 것일까. 그 나무는 나에게 다시 말했다. 나무의 무늬가 괜히 멋으로 만들어진 줄 아느냐고.
나무의 속삭임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쳤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가슴 속에서 불덩이 같은 것이 솟구쳐 올랐다. 내 몸은 작은 바위덩이처럼 얼어붙었다. 소나무의 상처는 송진이라는 눈물로 치유가 되어 옹이가 되지 않았는가. 고통이 응어리진 소나무의 옹이는 상처로 더 단단해지고 아름다운 무늬로 아로새겨졌을 것이다. 옹이의 무늬가 있는 가구는 그 무늬로 하여금 오히려 강인한 의미가 더해진다.
한바탕 울분을 토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괴롭히던 미움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고난은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 때문이다. 내 생각을 모르는 그 사람이, 남자만 있는 집에 누가 심방을 가느냐고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또, 내 가정을 위해 기도하며 아들이 우상이 되지 않게 해 달라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에 따라 말을 했을 것이고 기도했을 것이다. 만약 나도 그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그와 같은 말과 행동을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대화를 절제하였다. 나와의 소통을 위한 다른 길을 찾았다. 그 길은 오로지 내 마음을 전달하는 글쓰기였다. 울며 웃으며 백지 위에 가슴속 응어리를 토해내었다. 가슴속을 털어놓는 글쓰기는 내 마음을 추스르게 했다.
꺾인 소나무의 상처를 보고 슬픔을 토해내며 울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십수 년이 흘렀다.
첫댓글 “그것도 몰라요. 남자만 있는 집에 누가 심방 간다고 합디까?”
“이 집의 아들이 우상이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도무지 이해 가지 않아 화가 치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