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光을
으슬렁대다
강 문 석
멀리 동해의 쪽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며 전망경관이 압권인 일광산은 아침햇살을 가장 먼저 받는 곳이란 옛 기록을 가졌다. 일광산에서 그 이름을 따온 일광면을 찾은 날은 며칠간 선들거리던 가을바람도 자취를 감춰 등줄기에 땀이 솟는 일광욕을 피할 길 없었다. 전동차를 내려 역 광장을 나서자 바로 송정-덕하 간 지방도가 나타났다. 도로에서 갈라져 뻗은 해안도로 저만치에 하늘을 찌르듯 우뚝 선 동성판유리 공장굴뚝이 낯익었다. 40여 년 전 산업화로 나라가 오랜 가난에서 막 벗어나기 시작하던 때였다.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선 철판도 필요했지만 판유리도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자재였다. 당시 국내의 판유리 대부분은 이곳에서 만든다고 했었다. 하지만 동성판유리는 ‘한국유리’로 넘어갔다가 결국 중국에 밀려 공장가동을 멈춘 지도 꽤나 오래란다. 일광은 현직 때의 관할지였고 그때도 판유리공장의 전기요금은 납기를 넘기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우리 사업장을 긴장시켰다. 당시엔 부서 내 단합대회나 송별회와 환영회를 주로 기장 대변을 지나고도 한참 거리가 먼 일광의 칠암리 횟집에서들 가졌다.
그랬던 일광이었지만 오늘날 천지개벽할 정도로 변한 기장에 비하면 낙후된 탓에 옛 모습을 그대로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일광까지 운행하는 전동열차가 생겼다는 뉴스를 접하고도 별로 마음이 동하지 않았던 일광이었다. 일광을 너무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집으로 부쳐온 <봉생문화> 가을호에 가마골소극장이 소개되어 있었다. 극장은 두 달 전 동남권 문화예술의 새로운 전진기지로 일광역 앞에 문을 열었노라고 했다.
오늘 무대엔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 창작뮤지컬이 올랐다. 시인 윤동주는 만주에서 태어나 일본말로 교육받은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보낸 기간은 불과 2년 남짓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고향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한마디로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에 더욱 고향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는 것. 뮤지컬은 ‘디아스포라, 돌아갈 고향이 없는 동주와 돌아갈 고향이 사라져버린 현대인’을 하나로 그렸다.
토요일이긴 했지만 부산에서 오가는데 걸리는 시간과 2만원이란 입장료 부담도 무시할 순 없을 텐데 객석은 거의 다 들어찼고 관객들은 출연진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얼굴이 생명인 출연진들은 다정한 표정으로 관객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서는 연출로 값진 추억을 선물하고 있었다. 일광전동열차는 짧은 구간 14개 역을 오간다. 대부분 옛 동해남부선 철길을 그대로 이용했지만 해운대와 송정 사이는 장산을 관통하는 터널구간으로 질러가는 편이라 거리는 많이 짧아졌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 교대역, 2호선 벡스코역, 3호선 거제역과 각각 환승할 수 있도록 교통망을 구성한 기지가 놀라웠다. 열차마저도 품격이 느껴지는 최신형으로 승객들에게 쾌적한 분위기를 선사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동열차가 벌써 나라 바깥까지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시발역에서는 두 청년과 중년부인 그리고 딸과 며느리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까지 8명의 일본인이 단체로 열차에 올랐다. 그들의 자녀인 네댓 살 꼬마 남매 중 누나는 천연덕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일행들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우리 꼬맹이들처럼 꽥꽥 괴성을 지른다거나 신발 신은 채로 시트를 밟고 쿵쾅거리지 않았다. 유아 때부터 시작한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교육 때문이지 싶었다. 동래역에선 젊은 서양인 커플도 열차에 올랐다. 그 청년도 일본 젊은이처럼 민소매 셔츠에다 아랫도리는 주요 부위만 가린 핫팬츠를 걸치고 발바닥엔 샌들을 끼우고 있었다. 연인과 함께 한 해외여행에 기분이 들떴는지 바로 옆자리 파트너에게 열차 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고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종착역에 내리면서 책망할 의도로 어디서 왔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캐나다에서 왔고 옆에 선 아가씬 묻지도 않았는데 미국에서 왔다며 천진하게 웃고 있었다. 초대형 선박 모형의 편익시설이 정중앙에 들어선 삼성리 일광해수욕장은 마침 썰물이었고 지저분한 백사장 때문인지 해수욕객은 보이지 않았다. 고사리 손들 몇이서 모래로 성을 쌓거나 물웅덩이를 파는 놀이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해수욕장 끄트머리에 붙은 해안산책로를 지나고도 한참을 남쪽으로 들어가야 학리항에 닿는다.
석양 아래 이곳 하양 빨강 두 등대는 동화 속 그림처럼 다가왔다. 일광의 물고기들이 특별히 눈이 어두운지 가족단위 또는 동료들과 찾은 젊은 낚시꾼들이 바글바글했다. 낚싯대는 주로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는 방파제 안쪽에 드리우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낚시에 몰입하지 않고 낚시터를 쏘다니며 담배를 피워대거나 동료들과 잡담을 늘어놓으며 히히거렸다. 어떤 젊은이는 낚싯대 몇 개를 설치해놓고 냉방을 켜놓은 레저용 차량 안에서 안락하게 낚시찌를 지키기도 했다.
청정한 바다까지 찾아와서 배기가스와 소음공해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예삿일이 아니다. 가족단위 낚시꾼 틈엔 아장아장 걷는 꼬마도 보이는데 난간이 없어 아슬아슬했다. 방파제엔 술병과 담뱃갑 과자봉지가 나뒹구는데도 연신 육류고기와 소주 라면박스를 들고 도착하는 이들이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토요일 밤을 바닷가에서 거하게 한잔 할 모양들인데 벌써 사위는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이동항 주차장에선 까만 몽돌을 한 자루 바닥에 쏟아놓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두 노인이 돌을 채취해온 중년사내에게 큰돈 벌었다는 격려를 해주고 있었다. 바로 이곳 특산물로 통하는 ‘기장흑돌’이었다. 추사 김정희가 기포해변을 거닐다가 희고 검은 바둑알을 줍게 되었고 그 생긴 모양에 감탄하면서 ‘자연기’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기장흑돌은 한 해에 1000벌을 나라에 바쳤다는 기록까지 전해오고 있다. 오래오래 후손들까지 전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마구잡이로 파내고 있으니 걱정이다.
부산 시인들이 쓴 작품이 시발역인 부전역 승강장에 15점이나 내걸렸다. 작품을 어떻게 선정했는지 알 수 없으나 게시된 작품들은 역을 찾은 여행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긴 어려워 보인다. 은유를 생명으로 하는 것이 시라고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들이 대다수였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자라나는 초등생들의 ‘동심이 바라본 열차나 기차역’ 글이 훨씬 더 울림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도 아니라면 단 한 점을 걸더라도 명시 ‘사평역에서’를 노래한 곽재구 시인에게 부탁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모르겠다.
첫댓글 회장님 잘 계시는지요~!
오늘 폭우가 솓아져 곳곳에 비피해가 많았다고 하는데 피해는 없어신지요!
일광풍경 잘 읽었습니다
소극장도 생겼네요~! 이제 일광이 문화쪽으로도 발전을 할모양 입니다~ 회장님과 사모님 다정한 모습 너무 보기 좋습니다~!!^^ 두분 늘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게릴라성 폭우라 지역별로 편차가 큰 것 같습니다. 김홍두 님도 학생들 휴교령 내려진 이야길 하면서 폭우피해를 걱정하는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따스한 격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