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제는 강유위 등 변법 관료들과의 토론을 즐겼다.
그들과 담소를 나누면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며 시원해졌다.
이러한 황제에게서 희망을 본 강유위는 개혁을 설파했다.
제도국 설치, 팔고문 폐지, 개혁파 관리 등용,
사민士民의 상서上書 허용, 상업 진흥, 신식학교 설치와 단발,
의복 제도, 상해 천도 등등.
변법은 열혈 지지층이 있는 반면에 보수파의 반발 또한 심했다.
지지층들은 백면서생이지만 반대파는 기득권층.
태후는 광서제가 자신을 무시하고 변법의지를 보이자
중대결심을 했다.
조카 영록榮祿을 중심지역인 직례성 성장에 임명해 유사시에 대비했다.
이윽고 황제 폐위, 개혁파 처단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강유위는 평소 친분이 있던 원세개를 끌어들여
태후와 보수파를 제압하려 했다.
누구에게나 싹싹한 원세개를 자신의 심복으로 착각한 탓이었다.
광서제는 원세개를 독대해 충성을 다짐 받았다.
그러나 알현을 마친 원세개는 바로 짜이펑 학장에게
쪼르르 달려가 경과를 시시콜콜 보고해버렸다.
서태후 측근임을 천하가 다 아는 짜이펑에게
보고한다는 것은 곧 황제에 대한 배신이었다.
보고를 받은 짜이펑은 5.5.단 책임자인 나를 불렀다.
그는 첩보원 겸 외국인인 나의 객관적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
“폐하와 태후마마. 두 분이 대립하면
신군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이른바 무술정변의 시작이었다.
원래 역사에서 변법파는 실패한다.
역사의 현장에 선 나는 심정이 착잡했다.
조선의 갑신정변이나 데카브리스트 (러시아 12월당)의 난을 일으킨
제정 러시아의 청년 귀족들처럼
강유위 일파 또한 로맨티스트들이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만 추구하다 역사무대의 뒤로 사라진 이들은
민중의 지지나 군사력, 어느 하나도 갖지 못한
백면서생에 불과했다.
제아무리 옳은 말도 힘이 없으면 공염불이고
추종자들은 몰락하기 마련.
나는 원래 역사를 거스르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을 지키기로 했다.
“소관은 무비학당의 군인, 오로지 상명하복이 있을 뿐입니다.”
거센 여름 소나기가 퍼붓던 날.
이 상궁이 센위의 처소를 찾았다.
우아가 빠져 공동모왕이 되어버린 꼬맹이들과
글자 맞추기를 하던 센위는 반갑게 그녀를 맞았다.
열 살 손위지만 상궁 중에선 가장 젊어
얘기가 통하고 나막신 사건이래 친하게 지낸다.
“어서 오세요.
천둥 벼락에 빗방울까지 굵어 무섭던 참인데...”
“천하의 화석공주 마마도 무섬을 타십니까?”
배시시 웃는다.
서태후의 양녀로 입양되면서 화석공주의 작위를 받은 센위였다.
“톈진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우아랑 신 역관도 잘 지내겠지.’
구불리 만두를 먹으며 싸돌아다니던 그리운 시절.
언제나처럼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저 안부편지,
말미에 톈진 올 계획은...?
짧게 덧붙였다.
신 역관은 이따금씩 엉뚱한 소리를 잘했다.
그런데 막상 지나고 보면 그건 엉뚱한 소리가 아니었다.
너무 신통해 신기神氣를 의심해본 적도 있었다.
황궁에 오게 되었을 때 적어도 5년은 나올 생각 말라 했었다.
이제 3년 남았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다는 걸까?
황제를 영대에 연금시킨 서태후는 계속 저기압이었다.
무술정변 이래 대신과 내관들은 살얼음판 걷듯
조심조심 지내며 전전긍긍했다.
태후의 심기를 편하게 하는 사람은
화석 공주와 공동모왕의 꼬맹이들뿐.
그래서 태후가 불편한 표정이라도 보이면
내관이나 관료들은 센위부터 찾기 마련이었다.
덕분에 궁내에서 그녀의 비중은 서서히 커져갔다.
태자나 고륜공주가 따로 없는 황실에서
화석공주의 위상은 사실상 황위 계승서열 1순위.
태후는 외교사절 접견 시에도 센위를 배석시키곤 했다.
그래서 그 부인들과 자주 어울렸다.
뚱하니 어렵기만 한 태후와 달리 발랄한 공주는
외교가에서 환영받았다.
언제나 뚱한 무표정이라 도무지 속내를 알기 어려운
여타 황족들과 달리 생동감 넘치는 공주는
감정표현이 분명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라 양인들과 죽이 잘 맞았다.
그녀가 가출해 톈진을 유랑한 이야기는
베이징 외교가의 화제거리였다.
황실의 톰 소여, 화석 공주는
단연 베이징 외교가의 인기인으로 부상했다.
나는 센위에게 톈진의 의화권 무리들의 동향과
교민충돌 소식을 전하면서
외국인들이 처한 위험을 알렸다.
그러나 톈진에 비해 폐쇄적인 베이징 외교가는
교민 충돌 사태를 가볍게 보고 있었다.
센위는 외교관 부인들과 함께 베이징 시내를 돌아다니곤 했다.
조계 바깥 나들이를 꺼리는 그녀들이었지만
화석공주와 꼬맹이들이 꼬드기면 얼른 따라나섰다.
센위는 그녀들에게 치파오도 선물했다.
외국인을 경계하던 사람들도
치파오 차림의 이국 여인들에게는 우호적이었다.
센위와 공동모왕은 거지를 만나면 그냥 가는 법이 없었다.
돈이나 만두를 쥐어주었다.
그 모습을 본 외교관 부인과 자녀들도 따라했다.
나들이가 거듭되면서 양인들을 경계하던 태도는 차츰 사라졌고
웃는 표정을 보여주는 사람도 늘어났다.
“요즘 외교관 부인들과 어울린다고?”
“예, 다들 조계에만 틀어박혀 있기에
세상구경을 좀 시켜주고 있습니다."
“옷도 줬다지?”
“남의 나라에 와서 자기네 옷만 입는 게
보기 싫어 그랬습니다.”
흥, 태후는 콧방귀를 뀌었다.
“꼴사나운 게 어디 그것뿐이라더냐?”
“그게... 보기 싫은 정도를 넘어 말썽이 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 .... ?”
센위는 신 역관이 전한 톈진 소식을 들려주었다.
산동성의 의화권 무리들이 일으키는 교민충돌 사태.
짜이펑의 보고로 5.5단 활동을 알고 있던 태후였지만
센위에게 들으니 실감이 났다.
“어리석은 자들,
양인들에 대한 분풀이를 그딴 식으로 하면
뒷감당은 결국 조정 몫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그걸 나름의 애국심으로 여기는 게지요.”
“그건 그럴게다. 하지만...”
태후는 문득 한숨을 쉬었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양인들.
이 일을 빌미로 또 무슨 시비를 걸어올 것인가?
그런 면에서 센위와 외교관 부인들이 하는 일은 의미가 있었다.
백성들에 다가서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갈 필요가 있었다.
“너, 일을 한번 해 보겠느냐?”
외교사절 부인들과 화석공주가 자선활동을 시작했다.
왕푸징 거리에 문을 연 구빈원에서
점심때마다 죽을 나누어 주고 병자도 치료했다.
푸른 눈의 의원들은 고약이나 탕약대신
상처를 째 고름을 제거하고 붉은 약을 발라주었다.
배를 째는 수술로 죽어가던 사람을 살리기도 했다.
소문이 나면서 구빈원은 근무자만 백 명이 넘는 규모로 삽시간에 커졌다.
커지는 속도에 반비례해 양인들에 대한
악성 유언비어는 줄기 시작했다.
이 현상을 반긴 외교사절들은 기부금을 쾌척했고
그 바람에 구빈원 예산은 쓸 일이 없었다.
하지만 황궁재정을 담당한 내무부는
매달 예산을 따박따박 집행해 태감들 주머니를 불려주었다.
어느 날 구빈원 관사 管事(총무)를 맡은 태감에게 센위가 물었다.
“요즘 죽 먹으러 오는 사람이 몇 명쯤인가?”
“천오백 명 정도 됩니다.”
“솥은 몇 개인가?”
“다섯 개입니다.“
“그러면 솥 하나마다 3백 명이구나.”
문답이 길어지자 관사 태감은 불편한 눈치를 내비쳤다.
견디다 못해 한 마디 했다.
“마마님께 고하기에는 너무도 소소한 사안들이옵니다.”
센위는 끄덕였다.
흐음,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시는군.
“식수인원은 기백 명이라 들었다.
수천 명이 그토록 준 것은 골목마다 지켜서서 사람들을 쫓는 자들이 있다고... ”
화들짝 놀란 태감은 부르짖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누군가가 잘못 알고...”
하지만 그것은 공동모왕이 알려준 생생한 현장 모습이었다.
조계의 끄나풀들 또한 같은 보고를 해왔다.
그 일로 인해 자금성 내무부와 화석공주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구빈원 지원에 대한 답례로 태후는
조계 도로정비비용 8만 달러를 하사했었다.
그러나 막상 전달된 하사금은 단돈 80달러.
여러 단계를 거치며 이리 뜯고 저리 뜯긴 결과였다.
이것이 당대의 내무부와 환관들의 민낯이었다.
거대한 부패와 마주 한 센위는 좌절감을 느꼈다.
내우외환...
이 나라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공주부와 내무부의 싸늘한 분위기를 눈치 챈 태후가
하루는 내관 이연영에게 물었다.
“센위와 내무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더냐?”
이연영은 어떤 물음에든 항상 모범답안을 준비하고 있는
노련한 고참이었다.
“구빈원 관련 사안으로 아뢰옵니다.”
“... ?”
“마마께서는 구빈원에 오는 사람이 갑자기 줄어든 게
내무부 탓이라 여기고 계십니다.”
꼼수부리다 혼쭐 난 구빈원 관사태감 이야기를 아뢰었다.
허위보고 따위는 통하지 않는 태후임을 아는
이연영이기에 사실 그대로를 보고했다.
“공주는 할 일을 한 것이다.
내무부가 불편할 이유는 없을 텐데...?”
“조사과정에서 조계에 내린 하사금이
사라진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돈을 떼먹었다...!”
놀랐다.
그러나 평생을 궁에서 보낸 여장부답게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내무부 환관들과 척을 지면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모른다.
내관과 궁녀는 황궁 구석구석을 지키는 실핏줄.
그들이 모르는 일은 없고 그들끼리의 유대는 강철처럼 강했다.
그들의 일과는
오로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집중된다.
그들의 금과옥조는
인간이란 일상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는 것.
황궁의 일상 대부분을 만들고 움직이는 게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은 우연을 가장해 하루를 안배했다.
윗전이 싫어하는 음식이나 탕재를 들게 할 수 있었고
어떤 일에 관심을 갖게 하거나 돌리게도 할 수 있었다.
침소의 사창 밖 매화 한 송이조차도
그들이 용납해야 피어날 수 있었다.
희로애락마저 조정하는 하루하루를 안배하기 위해
내관과 궁녀들이 들이는 공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또한 그 노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협력도 필요했다.
동료의식으로 이어진 그들의 유대는
그러한 협력을 통해 더욱 공고해져갔다.
사수들은 비전의 기법을 조수에게 전수하고
조수는 새로운 지식을 더해 전문성은 갈수록 깊어져갔다.
황실의 집사격인 내무부는 그 실핏줄의 중추조직.
당연히 자질이 빼어난 자들로 구성되고 대우도 나았다.
자고로 초법적 행태나 사고방식이 가장 만연한 곳이
녹림과 황실이다.
내무부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인정이나 의리, 윤리도덕 따위는 개의치 않는 무법집단이었다.
그들은 물자와 인력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효과적 실천에만 관심을 쏟는다.
내관들은 윗전의 사생활 깊숙이 개입하는 수족.
윗전의 기분에 따라 삶이 좌우되는 그들은
윗전의 감정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독계를 펼치고 여자와 재물을 뿌리는 계략을 꾸미며
폭력, 암살도 불사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소불위의 조직이었지만
막상 최상위 포식자인 서태후와의 인간적 유대는 약했다.
충성심이 희박한 탓이었다.
바로 그게 발령장에 따라 움직이는 관료의 한계였다.
이해가 상충될 경우 언제라도 윗전을 외면할 수 있는 자들.
그러한 속성을 아는 태후는
측근 이연영에게조차 속내는 드러내지 않았다.
“따꺼야, 톈진에 한번 가보고 싶지 않으냐?”
며칠 후 센위와 차를 마시던 태후가 뚜벅 말했다.
“... ?”
황궁만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게 어디든 좋은 그녀로서는
반가운 얘기였다.
그러나 2년간의 황궁생활로
제법 눈치코치가 생긴 센위는 두리 뭉수리 답변했다.
“소녀는 마마님 명에 따를 뿐이옵니다.”
태후는 피식 웃었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던 녀석의 철든 모습이
대견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버린 톰 소여보다는
야생마 시절의 센위가 더 좋았었다.
“구빈원 일 하느라 그 동안 수고했다.
외교관들하고도 잘 지내더구나.
그런데 외교사절의 본거지는 원래 톈진이고 베이징은 곁다리야.
그래서 통상아문인 북양대신부도 그곳에 있지.
그곳 양인들과 백성들 사이를 좀 다독여 주었으면 한다.”
“제가 한 거라고는 외교관 가족들과 같이 논 것밖에 없는데... ”
태후는 활짝 웃었다.
“그게 바로 재주란다.
너처럼 쉽게 양인들과 어울린 황족은 아무도 없었거든.
네가 톈진에 가는 명분이기도 하고...”
대담은 길게 이어졌다.
한참 뒤 태후 처소를 나오는 센위의 얼굴에는
기대와 긴장이 엇갈리고 있었다.
톈진으로 떠나는 화석공주의 행차는 거창했다.
기마부대 1영과 보군 1영으로 구성된 1천 병력이
황실마차를 호위했고 30명의 내관과 궁녀들이 수행했다.
사두마차는 센위와 꼬맹이들 4명이 타고
뒤따르는 2두 마차들은 궁녀와 태감들 몫이었다.
태후는 당부했었다.
“황실의 위엄을 과시하라.”
황제의 연금을 불러온 무술정변의 여파로
민심은 여전히 흉흉했다.
이때 황실의 공주가 위의를 갖추어
통상활동의 본거지 톈진을 예방하고
신군의 본거지인 무비학당을 방문한다는 것은
황실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시위였다.
톈진에서 십리쯤 거리까지 마중나온
북양대신 이홍장과 톈진 성장 일행을 만났다.
외교사절단 대표인 덕국 공사도 있었다.
호위 병력이 주둔할 정무군 병영은 이미 비워 놓았다 했다.
공주 일행은 무비학당에서
톈진의 어른, 짜이펑 학장의 환영을 받았다.
학장 뒤의 나와 우아를 본 꼬맹이들이
도도도 달려나와 얼싸 안는다.
센위도 반가운 표정이었지만 어른들이 잔뜩 있는 자리라
바로 오지는 못하고 멀리서 눈인사만 보냈다.
북양대신 주최 리셉션, 짜이펑 학장 초대 만찬,
그리고 조계 외교단 파티가 이어지면서
센위는 나와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베이징의 구빈원을 소개하자 이홍장과 톈진 관리들은
이곳에도 그런 시설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잘하면 의화권 무리에 대한 견제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모두 찬성했다.
파티에서 외교관 부인들과 어울린 센위와 꼬맹이들은
특유의 친화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열병식에서 본 애들이구나.”
“그러니까 공주마마께서 톈진에서 얘들을 만나 함께 지냈다구요?”
“구불리 만두랑 마화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저희도 좀 데려가 주세요.”
“치파오 입어보셨어요?”
“입어는 봤는데 몸의 선이 너무 드러나 창피했어요.”
“하지만 조계 밖에서 사람대접 받으려면
그걸 입어야 하거든요.”
쉴새 없이 이어지는 수다에 수행 통역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따라다니며 영어로 보조하자
겨우 정신을 차린 통역 궁녀가 목례를 보내왔다.
환영 행사가 얼추 마무리되자
센위는 회의를 소집했다.
북양대신 이홍장과 톈진의 고위층, 짜이펑 학장과 원세개 학감,
그리고 교관단까지 참석하는 대규모 회의였다.
“의화권 무리의 동향분석과 대책을 논의하는
비상 시국회의를 열겠습니다.
태후마마께서 본건에 대한 전권을 본 공주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자금성 태화전에서 열리는 조례 못지않게 엄숙한 분위기.
화석공주의 정장 차림으로 회의를 주재하는
센위에게는 군주다운 위엄이 넘쳤다.
나는 그녀를 슬쩍 훔쳐보았다.
껄렁대던 어릴 적 모습은 간 데 없었다.
함부로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의젓한 모습.
그리고 서태후가 내린 상방 보검,
흠차대신의 권한을 상징하는 신물을 받쳐 든 내관이
뒤편에 엄숙히 시립해있었다.
5.5단 책임자인 나는 수집한 첩보에
원래 역사를 버무려 당면 상황을 설명했다.
“의화권 무리들의 동향이 심상치 않습니다.
민란이 우려되는 수준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짜이펑이 물었다.
이미 알고 있지만 공주에게 직접 보고하라는
무언의 지시였다.
“명분은 부청멸양 扶淸滅洋이지만
실인즉슨 하층민들의 누적된 불만이 곪아터진 것입니다.
저들은 세상에 대해 품은 해묵은 원한을
난동으로 분출하고 있습니다.”
센위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고
평생 금수저로 지낸 이홍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
브리핑을 이어갔다.
그 증오 대상에 양인들은 물론 조정과 관리, 토호들도 포함된다.
이른바 기득권층은 모두가 대상이다.
일단 군중을 이루면 그들은 위험해진다.
따라서 뭉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익명성 뒤에 숨은 군중은 공격적으로 변하지만
한 명 한 명은 나약한 존재.
힘 있는 상대와의 대결은 겁낸다.
그저 만만한 교회나 수녀원, 기독교도들만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건 실수다.
신앙공격은 신성모독,
이에 대한 양인들의 보복은 가장 가혹하기 마련.
조정과 베이징, 톈진, 심양 등 주요 도시들이
그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사나운 외국군들에게 짓밟힐지도 모른다.
나는 강조했다.
“군중은 단순합니다. 정치적 요구 따위는 없습니다.
바라는 건 그저 한풀이 정도,
누군가 선동하면 개떼처럼 몰려가 물어뜯고
인면수심의 악행도 서슴치 않습니다.
하등의 죄책감조차 없이...
그리고는 나만 그런 게 아냐, 다 함께 그랬잖아 라고 변명합니다.”
긴장해 경청하는 청중들에게 설명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하층민들이 대부분인 군중을 달랠 안전판을 정비하면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우
선 저들을 교화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인 일시지분 忍 一時之忿
면 백일지우 免 百日之憂
한풀이 굿 다음에는 무엇이 남는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시원함 정도...
하지만 만행의 뒷감당은
오롯이 조정의 몫이고 나라의 피해로 돌아올 것입니다.
당근과 채찍으로 그걸 막아야 합니다.
당근은 구빈원,
채찍은 신군을 동원한 무력시위 입니다.“
구빈원은 먹거리를 베풀고 병자를 치료하는 자선기관.
그러나 자선활동 못지않게 중요한 대목은
양인과 황족, 토호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백성들과 소통하는 점이다.
공주마마께서 베이징에서 하셨던 일이다.
전투에 임하는 각오로 몸을 사리지 말고 나서야 한다.
또한 이 활동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구빈원은 의화권 무리들이 부추기는 난동을 제압하는 수단.
군중을 결집시키는 것은 기득권층에 대한 적개심이다.
저들은 조직이 없는 나약한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
적대시 하는 양인과 황실, 그리고 기득권층 인사들이
자선활동에 나서 소통하는 한편
무력시위를 병행하면 사태를 잠재울 수 있다.
시국 토론과 대책보고를 마무리하고 보니
이홍장의 표정이 심각했다.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 아닌가? 과유불급이 우려되는군.”
나는 원래 역사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예시해가며 설명했다.
“저들의 본거지는 산동성입니다.
발단은 교민충돌이지만 경제적 이유도 있습니다.
수입 면직물에 밀려 국산 면작물이 도태되면서 ....
또한 조정에서 관직을 내린 기독교 사제들의
방자한 횡포도 사태 확산의 한 요인이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돌연 머리가 빠개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신경석이 제보하러 갔던 청군 병영에서
불상사를 당할 때와 같은 증상.
그때 제보로 전쟁 결과는 원래와 달라졌었다.
‘이 무슨...!’
혹시 역사에 대한 간섭을 하늘이 경고하는 건 아닐까?
원래 역사에서 의화단의 난에 편승하려던 조정은
8국 연합군에 쫓겨 서안으로 파천하고
베이징과 장강 이북의 주요 도시들은 외국군에 짓밟힌다.
그러나 베이징과 톈진에 구빈원을 열고
양인들과 황족, 고관들이 직접 자원봉사에 나서면서
상황은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톈진의 구빈원은 베이징 때보다 규모가 더 컸다.
북양대신의 지원 하에 조계 외교관 가족이 참여했고
호족과 기독교 신도들도 봉사에 나서
인력이 충분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화석공주의 인기였다.
민초들은 톈진거리를 뗘돌며 거지아이들과 함께 지낸 그녀를 좋아했고
수수한 복장으로 죽을 퍼주는 그녀를 보러 몰려들었다.
그녀가 구불리 만두와 스빠제 마화를 좋아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저마다 사오는 바람에 남아돌아
우공동모왕과 두월생이 거지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꼬맹이들은 시내를 싸돌아다니며 쓸만한 소문들을 물어왔다.
두월생은 제법 궁녀티가 나는 공동모왕을
즐겨 데리고 다녔고
예쁘장한 소녀들에게 집적대려는 녀석들을
늘씬하게 패주기도 했다.
역관이 태부족이라 걱정했었는데
그건 기우였다는 게 이내 드러났다.
양인과 백성들은 손짓 몸짓과 토막 단어로 잘 통했고
역관들은 양인 의원들의 진료보조 정도였다.
정기적으로 시가지를 행진하는 무비학당 생도들의 각 잡힌 대열은
톈진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속내는 위력 시위였지만
백성들은 생도들의 절도 있는 동작에 감탄하며 지켜보곤 했다.
간을 빼려고 고아들을 죽인다던가
사제나 수녀들이 식인종이라는 따위 유언비어는
구빈원 활동이 자리 잡으면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또한 얼근히 취해 거리에서 떠들던 무뢰배들도 차츰 백안시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