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향토문화(鄕土文化) 탐구
연곡면(連谷面)
주문진읍 바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연곡면(連谷面)은 두로봉(頭老峰, 1,422m), 복룡산(伏龍山, 1,015m), 동대산(東臺山, 1,434m), 백마봉(白馬峰, 1,094m) 등 높고 험준한 산들이 들어서 있는 골짜기가 대부분으로, 연곡천(連谷川)이 흘러 바다와 만나는 곳에 영진항(領津港)이 있다.
연곡면은 대부분이 깊은 골짜기의 산골짜기 마을이 많고 영진항 부근만 좁은 벌판지역이다.
연곡해수욕장 / 매 바위와 거북바위 / 매바위(일명 마귀할멈 바위)
연곡면(連谷面)의 행정구역을 보면 방내리(坊內里), 영진리(嶺津里), 동덕리(冬德里), 송림리(松林里), 행정리(杏亭里), 신왕리(新旺里), 유등리(柳等里-버들이), 삼산리(三山里), 퇴곡리(退谷里) 등 9개의 리(里)가 있고 인구는 7,000여 명이다. 해변을 제외한 대부분이 산간지역이다 보니 주민들은 산채채취나 재배, 잎담배, 자연산 버섯 채취(송이, 느타리, 표고 등), 토종꿀 생산 등을 많이 하고 영진항 부근의 작은 어촌에서는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리 많지 않다.
이곳 영진항에 가까이 있는 연곡해수욕장은 깨끗한 모래와 맑은 물, 그리고 둥글게 굽어진 백사장이 너무나 아름다운데, 해수욕장과 영진항 사이에는 기묘한 바위들도 많다. 그 중에서도 어민들이 치성을 드리는 ‘매 바위와 거북바위’가 신기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매 바위를 보면 보는 방향에 따라 매(鷹)가 엎드린 것도 같고 다른 쪽에서 보면 매부리코에 늘어진 턱 주름, 그리고 두건을 뒤집어 쓴 모양새가 틀림없이 그림으로 보던 마귀할멈을 닮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마귀할멈 바위’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연곡면은 청학동(靑鶴洞)에 우리나라 명승(名勝) 제1호로 지정된 소금강(小金剛)이 있는 것이 자랑이다.
소금강(小金剛)은 원래의 이름이 청학산(靑鶴山)이었는데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빼어난 산세가 금강산과 흡사하다 하여 강릉 출신인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쓴 청학산기(靑鶴山記)에 작은 금강산이라는 의미로 ‘소금강(小金剛)’이라 한 후 소금강이라는 명칭이 보편화 되었다고 한다.
소금강이 있는 계곡을 소금강 계곡, 혹은 청학동 계곡, 어떤 이들은 무릉계곡(武陵溪谷)이라고도 부르는데 기암괴석이 둘러서 있고 맑은 계곡물이 넘쳐흘러 정말 금강산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가마소(釜淵洞) 마을 / 전후재(前後峙) / 소금강 입구 / 식당암(食堂巖) / 구룡폭포
소금강 계곡 입구에서부터 명소들을 꼽아보면 십자소(十字沼), 연화담(蓮花潭)과 금강사(金剛寺)라는 사찰도 있다. 조금 계곡을 오르면 신라의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앉아 밥을 먹었다는 식당암(食堂巖), 구룡폭포(九龍瀑布), 만 가지 형상을 하고 있다는 만물상(萬物相), 선녀탕(仙女湯) 그리고 계속 계곡을 오르면 노인봉(老人峰)에 이르게 되는데 제법 거리가 멀다. 또, 구룡폭포(九龍瀑布) 옆의 능선을 따라 오르면 신라 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망국(亡國)의 한을 품고 은거(隱居)하였다는 아미산성(峨嵋山城) 유적도 흔적이 남아있다.
나는 1999년에 묵호항에서 배를 타고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상상을 뛰어넘는 경관에 놀랐던 적이 있다. 우선 규모면에서 소금강은 물론이려니와 설악산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진부(眞富)에서 주문진 쪽으로 오려면 진고개를 넘어오게 되는데 중간쯤 내려오면 청학동이 되고 왼쪽 길옆에 가마소(釜淵洞) 입구라는 팻말이 보인다. 이 가마소를 가려면 전후재(前後峙)라는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지금은 좁고 구불거리기는 하지만 찻길이 뚫려 차가 다니지만 예전에는 걸어서 넘던 고개였다.
우리 고모부 말씀에 의하면 가마소에서 ‘청학동까지 꼬박 한나절 걸이여~’, ‘전후재 꼭대기에서 하늘까지 30리 밖에 안돼어야~’, ‘왜 전후재냐하면 전에두 없구 후에두 없는 고개래서 전후재여~’하던 고개이다.
지금은 찻길이 뚫리기는 했지만 너무 가파르고 꼬불거려서 운전을 하다보면 소름이 돋기도 한다.
가마소(釜淵洞) 마을은 정말 옴폭하니 가마솥(釜)처럼 생긴 마을로 마을 위쪽에 가마소라는 샘물이 있다.
가마소는 그야말로 오지 중의 오지로, 일제시대가 끝난 줄도, 6.25 전쟁이 터진 줄도 몰랐다는 곳이다.
이곳은 산나물 채취, 토종꿀 생산, 옥수수 재배 등으로 살았는데 지금은 펜션과 휴양시설이 들어서면서 피서지(避暑地)로, 휴양지(休養地)로 각광받는 곳이 되었고 산나물을 재배하여 판매하는 집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