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을 부르는 섬 (백령도)
김 혜 숙
인천 연안 부두 터미널은 안개로 뒤덮여 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 바로 백령도 가는 첫 배를 타려고 동트기 전부터 얼마나 서둘러 왔던가. 안개가 심해서 출항 여부는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고 서울로 돌아가자니 몇 달 전부터 세운 계획이 허사가 된다. 일행 모두는 맥빠지고 허탈해진 기분을 애써 감춘다.
Y초등학교 교사인 백령도 여행팀, 우리 모두는 한 두 시간은 그런대로 참고 견뎠다. 하지만 서너 시간이 경과되니 출항이 어렵겠다 싶어지는지 자포자기 심정으로 눈을 감는다. 점심때가 되자 밥부터 먹고, 다음 일을 상의해 보잔다. 모두 서둘러 새벽에 집을 나선 탓에 아침밥이나 제대로 챙겨먹고 나왔겠는가. 터미널 부근에서 빈속을 채우고 나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안개를 밀치고 해님이 힘겹게 고개를 내미나 안개에 휩싸여 이내 사라진다. ‘장풍을 써서 안개를 걷어낼 수 있는 신통력이 내게 주어진다면······ .’ 허튼 생각에 실없는 웃음이 새어나온다.
거의 포기하고 차선책을 강구하는데 출항을 알리는 방송이 들린다. 대합실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대 여섯 시간 동안 간절히 원했기에 기쁨이 배가된다. 더 큰 즐거움을 안고 승선한다. 물결도 잔잔하고 동료들과의 담소도 즐거우며 긴장 뒤의 졸음도 여유롭게 맛본다.
네 시간이 금방 지나고 하선하는데 빗줄기가 내려꽂힌다. 용기포 부두에서 우리팀을 태운 버스 기사의 입담이 가라앉은 우리들의 기분을 상승시킨다. “백령도는 눈과 비가 귀한 고장인데 비를 몰고 온 손님들은 진객 입니다.” 하는 인사말에는 우릴 위로해 주려는 배려가 담겨있어 잘 대접받은 듯하다. 또 메밀국수가 너무나 맛있다고 추천한 음식을 칭찬했더니 작은 일을 칭찬하는 선생님들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백령도와 백령도 주민들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촉촉하게 비내리는 백령도가 아늑하고 조용하다. 3킬로미터에 이르는 회백색 모래사장인 사곶천연비행장은 텅 비어있다. 우리가 탄 버스가 모래밭을 신나게 달린다. 모두 버스에서 내려 모래밭을 힘차게 달린다. 맨 앞에서 ‘나 잡아봐라.’ 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고 있는 저 선생님들은 유년으로 돌아가 해맑은 웃음을 날려보내고 있다. 여행이란 이렇게 잊혀진 순수를 일깨우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이곳은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한 규조토로 이뤄져 있어 실제로 육이오 전쟁때 비행기지로 활용됐단다. 사곶 비행장은 나폴리와 함께 세계에서 단 두 곳밖에 없는 천연 비행장이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콩알 크기의 둥근 차돌이 해변 전체에 덮혀있는 이곳이 콩돌해안이다. 모두 신발을 버리고 맨발로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 바다쪽의 조약돌은 더 작고 둥글다. 많이 걸은 탓에 발바닥이 아려온다. 발바닥 맛사지가 제대로 된 모양이다. 우리팀은 조약돌을 리듬악기로 활용하여 ‘등대지기, 섬집아기, 바닷가에서’ 등을 동심에 젖어 부른다. 또 다른 편에서는 파도에 밀어넣기와 안간힘을 써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등 치기어린 놀이가 진행중이다. 파안대소로 바닷가가 떠들썩하다. 웃음이 명약이라지 않던가. 자유가 넘실대는 바다에서 움츠렸던 날개를 활짝 편다. 이곳의 찜질은 악성 피부병에 효과가 있어 피부 질환을 앓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은 비가 오락가락 하는 바람에 오히려 호젓하게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세상의 이치엔 음과 양, 명과 암이 교차하기 마련인가 보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는 동료들의 모습이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중화동 포구에선 제주도에서 봤던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이 눈에 띈다. 어떤 부녀가 스티로폼으로 멋진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공들여 저 배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대화와 아이디어가 교환 됐을까.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잘 자랄 저 소녀의 미래 모습이 그려진다.
해당화가 피어있는 낮은 언덕을 오른다. 해당화 꽃에 코를 묻고 향기를 들이마신다. 달콤하고 진한 향에 취해 연신 코를 벌름거리니 내마음까지 향기에 물든다. 해당화 향내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심청각에 오른다. 심청전에 관련된 판소리, 음반, 고서, 영화등 많은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얼마전, 심청전 마당극을 국립극장에서 흥미 있게 감상하고 직접 고사마당에 참여한 적도 있어 더 실감나게 들여다본다. 심청전은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훌륭한 각본이라고 여겨왔던 터다. 이곳 백령도에 오니 심청이 실제의 인물처럼 생각된다. 심청이가 몸을 던진 인당수는 두무진 앞바다로 물길이 험난하단다. 황해도 도화동은 심청의 고향이고 백령도 장촌마을은 뺑덕어미의 고장이라니 정말 재미있다. 실제로 연화리의 연꽃도 자동차 타이어 만한 크기였고 항해의 안전을 위해서 해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습속도 백령도에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는 사실에 근거한 부분도 있나 보다.
기상 관계로 두무진의 해상 유람이 불가하고 내일 인천으로의 출항도 어려울 거라고 한다. 태풍이 오면 며칠씩 발이 꽁꽁 묶일 수도 있을 텐데 항로가 열리길 빌어본다. 허나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 걱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어서 느긋하게 마음을 먹는다.
두무진 일부를 육로로나마 보기 위해 나선다. 잠깐 햇볕도 따갑게 내리쬐고 바다도 잔잔해서 운행 여부를 물으니 그들은 어디론가 전화한다. 희망을 가지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지 오늘, 유람선의 첫손님이 된다. 어렵게 성사된 만큼 모두 만면에 홍조를 띄며 어린애처럼 좋아한다. 끼룩끼룩 울며 나는 갈매기들과 함께 코끼리 바위, 형제바위를 바라보고, 장군바위, 촛대바위 등을 올려다본다. 수천, 수만년동안 자연의 조화와 힘찬 파도의 생명력으로 빚어낸 조각품이 아닌가. 그들이 깎아지른 낭떠러지와 어우러져 신비와 경이로움의 극치를 이루며 나그네를 부른다. 북쪽 지역 장산곶이 너무나 가까운 지역이어서 두무진 일주가 허락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일부만 돌고 회항한다.
썰물 때 볼 수 있다는 물범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올 줄이야. 두 마리, 또 두 마리, 이어 대 여섯 마리. 모두 열 마리 정도가 바위에 앉아 있다. 물이 많이 빠질 때는 수많은 물범 무리들을 볼 수 있단다. 이 녀석들이 보이는 지점에서 유람선이 가랑잎처럼 흔들린다. 긴장되고 무서워져서 표나지 않게 난간을 꼭 붙든다. 인당수가 가까워서 그러나 보다. 인간은 대자연 앞에 너무나 무력한 존재가 아닌가.
다행히도 바닷길이 열려 예정대로 쾌속선에 오를 수 있게 되어 안도한다. 백령항을 출발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네뛰기를 하듯 파도 따라 몸이 앞뒤로 흔들린다. 그때마다 토하는 사람, 통로에 누워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 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무간지옥이 따로 없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일텐데, 조금 덜한 사람이 심한 사람에게 지압을 해 주고, 등을 문질러 주고, 다른 사람이 토한 봉투를 치우기도 한다. 간호사가 환자를 대하듯 정성을 다해 보살피는 모습에서 진한 동료애를 맛본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제일 멀미가 심했던 이는 인천 연안부두에 내려서 “마음 써줘서 눈물이 난다.” 고 말하며 자꾸 눈물을 찍어낸다. 어린애 같은 순수가 그 눈에 가득 고인다. 눈물방울이 아름다운 보석이 되어 반짝인다.
이번 여행은 날씨가 쾌청하지 못해 백령도행 쾌속선도, 두무진 유람선도 아슬아슬하게 탔다. 허나 오랜 기다림 끝에 어렵게 얻은 소망이 얼마나 소중한 지도 알았고 그 일을 통해 팀의 결속력도 얻었다. 바닷가에서의 치기어린 모습에 파안대소하며 동심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던 순수도 맛봤다. 어려움 속에서 발휘했던 동료애도 아름다웠다. 풍광도 수려했지만 동화 같은 많은 얘기들을 담아올 수 있어 더 기쁘고 뿌듯하다. 이번 백령도 여행은 다른 어느 때보다 여운이 오래 남을 듯하다.
첫댓글 _((()))_ _((()))_ _((()))_
_()()()_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_(())_
아득히 먼 곳으로 알았던 백령도여행이군요.
북한 장산곶과 가깝다니 더욱 가보고 싶습니다.
사곶해안 몽돌해안 물개~
_()()()_
감사합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