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2024학년도 한의대 편입 시험에서 원광대학교, 동의대학교, 상지대학교에 최초합격한 99년생 김민재라고 합니다. 합격생이 된 지금, 어떻게 공부할지 갈피를 못 잡고 혼란스러워하는 분들을 위해 제가 공부해온 지난날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부족하지만 제 경험이 준비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자기소개
- 생물 베이스 O / 화학, 한문, 한의학 베이스 X
- 토익 980점 / 상공회의소 한자 1급
- 공부 기간: 2022년도 9월 ~ 2024년도 1월(실제로 공부에 전념한 기간은 1년 4개월)
- 공부 시간: 초반에는 8~9시간 / 중후반에는 10~11시간 / 시험 직전에는 12시간 정도 (따로 쉬는 날 X)
저는 대학 재학 중에 한의대 편입 제도를 알게 되어 일반편입을 뽑는 모든 학교에 지원하자는 생각으로 한의학, 한문, 화학, 생물 4과목을 모두 공부했습니다. 2022학년도 9월달부터 공부를 시작하였고 3달 동안 토익 950점, 한자 급수 1급을 취득을 목표로 공부하였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10월 말쯤 목표치가 달성되어 10월 초부터는 생물 공부를 병행하였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한의학은 12월부터는 한의학총강을 독학으로 한 번 밑줄 그으면서 쭉 읽고 한의학집요 인터넷 강의를 듣고 그냥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한문과 화학은 공부가 아예 하나도 안 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생물과 한의학 시험문제 경향이라도 파악해오자, 기출문제라도 복기해오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학교 4곳을 시험을 치러 갔습니다. 첫 해 결과는 우석대학교 예비 18번, 나머지 학교는 모두 불합격이었습니다.
2023년도에는 본격적으로 화학과 한문 과목을 추가하고, 한의학 과목을 제대로 배웠습니다. 이번 시험 결과 원광대학교, 동의대학교, 상지대학교 총 3곳에 최초합격하였습니다. 과목별 공부 방법에 대해서는 곧바로 후술하겠습니다.
2. 공부에 관하여
2-1. 토익
토익은 다들 잘 아시는 박혜원 T 850+ 파워토익을 들었고 빠르게 강의를 한 번 들은 후부터는 서점에 파는 기출문제집들만 구입해서 계속 풀었습니다. 토익은 일정 점수까지는 양치기가 답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950점 이상은 단순 양치기만 해서는 점수를 뚫기 힘들고 오답 정리, 실제 시험에서의 시간 관리 능력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모르는 단어나 표현이 나올 때마다 그냥 넘어가지 말고 아이패드나 노트에 꼼꼼히 정리해 두시고 시간 날 때마다 눈에 익도록 반복해서 보세요. 그리고 계속해서 시험을 치시면서 본인이 어떤 글 제재나 파트(ex: article 지문, PART2 등등)에서 약한 지 진단하세요. 그 부분을 평소에 더 비중을 둬서 연습하고, 다른 파트에서 시간을 확보해 그 부분에 투자를 하는 등 계속해서 점검을 하셔야 합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노력들이 쌓여야 970~980점 이상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토익은 원하는 목표 점수와 기간(ex: 5월까지 970점 이상)을 정해두신 다음 집중해서 가능한 일찍 끝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토익에서 시간이 끌릴수록 불안해지고 다른 필기과목 공부할 시간을 뺏기게 됩니다.
2-2. 한의학
저같은 경우 일반적인 한의학 공부 코스와는 다르게, 한의학총강은 인강을 따로 듣지 않았고 그냥 혼자 읽으면서 노트 정리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한의학이라는 과목에 대한 전체적인 감을 어느 정도 잡은 후, 한의학 공부의 큰 뼈대는 인강과 과외 모두 한의학집요(총강의 summary 버전)로만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다시 총강을 곁들여 읽으며 디테일하고 암기가 안 되어 있는 부분들을 추가해서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정리했습니다.
한의학 과외 수업을 들으면서 혼자 공부하는 시간에는 매주 진도 나갔던 공부 자료를 ‘제가 보기 편한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필요에 따라 내용을 가감하면서 중요한 개념과 원문을 빈칸 뚫은 test지+ 답지로 구성된 단권화 책 1권을 만들었습니다. 만들면서 중요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복습하고, 시험기간 막바지에 output(암기 출력) 연습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생리학의 경우는 시간이 부족해 따로 test지를 따로 제작하지는 못했고 과외 선생님의 생리학 test지 병합본을 인쇄해 시험 직전까지 시간 텀을 두고 계속해서 풀었습니다.
그리고 막바지 11-12월에는 한의학 문제풀이반에서 ① 틀린 문제들 ② 아는 것 같은데 헷갈렸던 문제들 ③ 처음 보는 생소한 내용들을 따로 한글 파일로 정리해서 단권화시킨 책 뒤에 부록 느낌으로 추가했습니다. 이렇게 하니 책 분량이 200p로 딱 맞아떨어졌고 시험 보기 전날까지 이 노트만 반복해서 6-7회독 정도를 돌렸습니다. 그렇게 하니 시험 하루 전에는 노트 한 권을 통째로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회독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자기가 정한 범위 내에서 반복을 통해 회독 속도를 끌어올려 ‘시험 직전에 전체 내용을 한 번 슥 다 보고 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공부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중요한 부분들은 그때그때 다 암기를 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갈수록 끝까지 잘 안외워지는 부분들, 자주 실수하는 부분들과 같은 구멍을 메꾸는 식으로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평소 미루다 보면 나중 갈수록 외워야하는 양이 끝도 없이 많아지니까, 오늘 하루동안 이건 반드시 암기한다(ex: 오수혈 표 절반)라고 정해놓고 그걸 최대한 지키시는 식으로 공부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세명대 시험에서 의학사 part가 깊고 까다롭게 출제되었습니다. 세명대를 대비하시는 분들은 총강/생리학이 완벽히 숙지되셨다면 중국의학사 책 등을 추가해서 심화 공부를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3. 생물
생물의 경우 어느 정도 기본기는 있는 상태였다고 말씀드립니다(전공과는 아닙니다). 시간은 좀 흘렀지만 수능을 칠 때 생1, 생2 과목을 모두 공부해본 경험이 있고 과학탐구 학원에서 조교로 아르바이트를 2년 정도 했었습니다. 물론 그 범위 이외의 일반생물학 파트는 저도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제 생물 공부 방법의 핵심은 개념보다 ‘문제를 통해’ 공부했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방대한 양의 개념서를 한 번에 다 외울 수도 없을 뿐더러, 단순히 개념서 회독만 해서는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 -> 개념으로 넘어가는 공부를 하면 개념 중에서 ‘진짜 문제화’되는 부분들이 어딘지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문제집의 경우 저는 심플리시티 ox, 심플리시티 객관식, 변리사 생물 1차 기출문제, MDEET/PEET 기출문제들 중에서는 과하지 않은 문제들만 제가 직접 문제를 선별해서 풀었습니다.
메인으로 본 문제집의 경우 한 회차당 틀린 갯수가 0개 or –1개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풀었습니다(풀면 풀수록 틀린 부분, 헷갈리는 부분만 보면 되니까 시간은 저절로 줄어듭니다). ox, 객관식 둘 다 6-7회독씩은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제지 전 회차 문제의 모든 선지에 대한 저만의 해설지를 따로 썼습니다. 해설지가 있었지만 빈약한 부분들이 있었고 맞춘 문제여도 1~5번 선지 모두를 확실히 판단해서 맞추는 경우는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보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해설지를 쓰려면 문제와 관련된 개념을 정확히 숙지해야 하는데, 암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생각보다 빈틈이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럼 그 과정에서 개념교재로 다시 넘어갑니다. 그렇게 문제와 개념을 왔다갔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헷갈리는 부분에 대한 개념을 다시 보는 효과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암기와 공부가 됩니다. 처음에는 무척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1회독을 할 때 이렇게 해설지를 써 두면 시간 텀을 두고 다시 문제를 풀 때 내가 정리해 두었던 해설지를 다시 보면서 공부하면 되기 때문에 무척 편합니다.
2-4. 한문
오준아카데미에서 원광대, 동의대 대비로 한문 과목만 풀커리큘럼을 탔습니다. 오준 교수님만의 한문 접근법이 있는데 그게 저한테 어느 정도 체화되고 난 이후부터는 한문이 재밌고 자신감이 많이 붙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강의들과는 다르게, 오준 교수님께서는 단순 의역이 아닌 원문의 의미 자체를 파고드십니다. 마치 내가 그 시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생동감 있게 해설해주시기 때문에 같은 글을 봐도 이해가 쉽고 잔상이 오래갑니다. 제가 1년만에 한문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 수 있었던 데에는 교수님만의 해석법, 곧 한문 독해의 정도(正道) 를 수용하고 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중용/논어는 오준 교수님 실력고사 테스트지 + 제가 직접 만든 빈칸 테스트지로 중요한 부분이나 주자주들은 거의 다 외웠고 맹자/교양한문/고문진보는 양이 너무 많아서 외우지는 못 하고 교재에서 표시된 중요한 부분 & 단어 위주로 2-3회독 정도 하고 나서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한문 공부에 대해서 질문주시는 분들을 보면 그 많은 양을 다 공부하는 게 가능하냐고 망설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양에 압도되지 마시고 스스로 매일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을 정하고 그 분량을 밀리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면 제가 보기엔 절대 불가능한 양이 아닙니다. 저 같은 경우 인강은 하루에 2개 정도씩만 꾸준히 소화하려고 했고 진도 나간 부분은 그날그날 철저히 복습, 암기까지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덧붙여, 개인적으로 한문이라는 과목은 어느 정도의 감수성과 흥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험을 위한 공부, 무작정 암기보다는 ‘스스로 좋아하고 즐겨야’ 합니다. 다른 공부를 하다가 막히거나 머리가 아플 때, 좋아하는 한시나 글들을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에 시험을 쳐보니 원광대에서는 사서의 비중이 확 줄고 교양한문과 한시 쪽의 비중이 높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단순 암기보다 순수 한문 독해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공부할 때 꼼꼼하게 텍스트의 맥락과 주제를 이해하고 넘어가는 습관을 들이시길 바랍니다.
2-5. 화학
개인적으로 화학은 개념을 한 번 이해하고 익혔다면 문제풀이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토익과 약간 결이 비슷합니다). 문제를 통해 개념을 체화시키고 실제 시험장에서는 그냥 문제 푸는 기계가 되어 실수없이 바로바로 풀이방법이 출력이 되어야 합니다.
유기화학은 시간이 부족해 제일 신경을 쓰지 못한 과목이라 자신있게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유기화학이라는 과목 자체가 외우려면 끝도 없고, 공부할 범위가 너무 넓으니 수험 기간의 일부를 할애해 자신만의 공부 바운더리를 딱 정하고 그 안에서 공부한 개념과 반응식들만 완벽히 외우시길 바랍니다.
*원광대의 경우 이성질체와 배위 화합물, 점군, 분광학(NMR) part를 매우 좋아하니 이 부분만큼은 시간을 써서라도 정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지엽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까지도 꼼꼼히 암기하여 실전에서 나왔을 때 맞출 확률을 높이는 식으로 대비하면 될 것 같습니다.
3. 공부 외적인 부분에 관하여
3-1. 운동
수험생활 내내 헬스(웨이트)를 했습니다. 수험생활을 하면서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헬스장이 쉬는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편입시험이 치뤄지기 2주 전까지 월화수목금토, 주 6일 동안 매일 1시간~1시간 30분 정도 운동했습니다.
드라마 ‘미생’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옵니다.
“네가 무언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리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돼.“
정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체력이 무너지면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어느새 공부하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지고, 흔히들 말하는 ’슬럼프‘를 겪게 됩니다. 그러니 공부를 하는 것에 앞서서, 매일매일 꾸준히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헬스의 장점 2가지는 시간과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점과, 혼자 or 남들과 함께가 모두 가능한 유연한 운동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꼭 헬스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수영, 배드민턴, 러닝 등등 운동의 종류는 많으니 자기가 좋아하고 잘 맞는 운동을 취사선택하시면 됩니다.
수험생활 동안 운동을 할 때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점은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스터디카페에서 쭉 자리를 지키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아침에 공부하고 점심을 먹기 전에 운동을 갔다가 다시 스터디카페로 복귀하는 루틴을 반복했는데, 억지로 바람을 쐬는 효과도 있고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기 때문에 수험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정말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운동은 꼭 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3-2. 마음 근력과 지구력
많은 수험생분들이 간과하는 부분입니다. 수험생활 중 운동하시는 분들은 많이 봤지만 여기까지 신경쓰는 분들은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마음 근력과 지구력은 흔히들 말하는 ‘멘탈’에 해당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앞서 설명한 운동이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 준다면, 매일 마음 근력과 지구력을 키우는 습관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정신을 유지시켜 줍니다.
매일 아침 공부하기 전 커피를 마시면서 10~15분 정도를 투자해 제가 좋아하는 블로그에 매일 올라오는 짧은 수필을 보거나 책들을 보면서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놓고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말들, 내용이 좋은 잠언과 명언 등을 소개하는 종류의 글과 책들을 위주로 봤습니다. 그리고 그날그날 읽었던 부분 중에서 마음에 가장 와 닿는 구절 한 문장 정도를 플래너 밑에 필사를 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작년 4월달부터 시험 보기 하루 전까지 하루도 안 빼놓고 이 루틴을 지켰습니다. 나중에는 이 루틴이 빠진 하루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공부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런 시간 버리는 짓을 왜 하느냐?’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수험 생활에서 공부보다도 중요한 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습관과 루틴이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마음 근력과 지구력을 기르려고 노력했고, 나중에 돌아보니 정말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 아닌가하고 생각될 정도로 제 마음이 넓어졌으며 사소한 일들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해온 방법만이 정답은 아니니 명상이나 짧은 일기 쓰기, 종교를 믿으시는 분들은 성경 읽기과 묵주 기도 등등 여러 방법을 활용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를 만들어 놓고 공부하시길 추천합니다.
4. 마치며 / 태도에 관하여
2과목을 하기에도 벅찬데, 어떻게 4과목을 1년만에 다 준비했냐고 질문을 많이들 주십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히려 ‘1년 동안 2과목만 공부하면 지루할텐데, 4과목을 하니까 질릴 때마다 과목을 바꿔가면서 공부하면 수험생활이 덜 질리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일종의 자기최면이긴 했지만요(후반부로 갈수록 벅차고 힘들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태도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쉽게 가지 않는 길을 가면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으니까, 힘들어도 그냥 우직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4과목을 모두 공부하는만큼 한 과목에 치우치지 않게 열품타 어플을 깔아 과목별 비중을 정하고 최대한 골고루 공부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한의학과 생물은 대부분 학교의 공통 과목이기 때문에 각각 30~35%, 한문과 화학은 각각 15~20% 정도로 배분해 초반 개념 진도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시험 직전까지 최대한 이 비율이 유지되도록 관리했습니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말은, 항상 능동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배운 내용에만 안주하고 멈추는 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 & 시험을 보면서 특정 학교의 경향성을 파악했다면 그에 맞춘 +α의 공부를 해주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우석대에서 다른 학교들보다 그래프와 그림 문제가 많이 출제되는 생각이 들어 이를 대비하기 위해 MDEET/PEET 문제들을 직전에 한 번 더 풀어보고 갔습니다. 원광대에서는 가계도와 교차율 문제가 생물에서 다수 출제되니 수능 평가원의 예전 기출문제들(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에서 괜찮은 문제들만 긁어모아 쭉 연습을 하고 들어갔습니다. 동의대 생물에서는 식생분진 단원의 내용이 다른 학교에 비해 월등히 많이 출제되는 것 같아 식생분진 단원 정리 노트를 10페이지 내외 분량으로 따로 정리해 눈에 익도록 보고 들어갔습니다.
한의대 편입 시험을 준비하기 몇 년 전에, 수능을 통해 한의대 입학을 도전했었습니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지만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받고 좌절했고, 심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우울하던 그 시절 우연히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깨달음을 준 ‘인생글’을 보게 됩니다. 한글로 된 글을 읽고 감동받아 방 한켠에 써 놓고 마음을 달래곤 했었는데, 합격자가 된 지금은 번역 없이 원문으로 읽을 수 있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아무튼, 그 글의 일부를 갈무리해서 수기를 읽는 여러분들께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내가 전에 낙양에 머무를 때 낮에는 절에 가서 밥을 얻어먹고 밤에는 차가운 도자기 가마에서 잠을 청하였다. 입는 옷은 미처 몸을 다 가릴 수 없었고 멀건 죽으로는 배고픔을 면할 수 없었다. 그때 윗사람들은 나를 미워했고 아랫사람들 역시 나를 꺼렸으며 모두들 내가 천하다고 하였다.
나는 말했다. ’내가 천한 것이 아니다! 다만 때와 운이 그러한 것 뿐이다.‘
내가 그 뒤에 과거에 등과를 하고 벼슬이 극히 높아져 지위가 삼공의 반열에 이르니, 모든 벼슬아치를 통솔할 수 있고 생사여탈의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밖으로 나갈 때는 채찍을 든 군사들이 나를 호위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옷을 입고자 하면 능라비단을 대령하였고 음식을 먹고자 하면 산해진미를 대령하였다. 윗사람은 나를 총애하고 아랫사람은 나를 받들면서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흠모하며 말하기를 내가 귀하다고 하였다.
나는 말했다. ’내가 귀한 것이 아니다! 다만 때와 운이 그러한 것 뿐이다.‘
대저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부귀만을 받드는 것은 옳지 못하며 빈천함을 업신여기는 것 또한 옳지 않으니, 이는 천지가 고리처럼 순환하기에 끝이 다하면 다시 시작하는 이치와 같기 때문이다.“
북송(北宋)시대 명재상이었던 여몽정이라는 사람이 쓴 ‘파요부(破窯賦)’라는 글입니다. 이 글을 통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조금은 운명론적인 사고관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모든 일에는 다 자신의 ‘때와 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비록 수험생 신분이라고 해서, 잘난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되는 걸까요? 내가 만약 합격자가 된다면, 나는 원래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니 교만해도 되는 걸까요? 그 누가 뭐라고 한들,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정하는 겁니다. 자신이 가진 잠재력과 가치를 남들이 정하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본인이 한의사라는 꿈을 품고 이제 막 도전하는 초시생이라면 지금 나에게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정진하세요. 적어도 저는 매일 그런 마음가짐으로 공부했습니다. 본인이 불합격의 아픔을 겪은 재시생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탓을 자신에게 돌리며 자책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후회없이 하루하루를 노력해왔는데도 막상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다면, 그건 아직 본인의 때와 운이 오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자신이 어떤 조건과 상황에 처해 있건,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품은 태도와 매일매일의 노력만큼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기다립니다. 하루하루 자신을 믿으며 기다립니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기회가 옵니다. 도움을 주는 귀인이 나타나고, 생각치도 않았던 합격의 기쁨을 안게 됩니다.
有志者事竟成,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여러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교수님께서 양이 많긴 하지만 한문 과목을 끝까지 놓지 말라고 조언해주신 덕분에 원광대, 동의대 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험 기간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 주신 오준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첫댓글 합격생: 김민재, 99년생남학생. 1년 여만에 원광동의상지대 세 곳에 합격하였어요! 대단합니다!
^^ 위 글은 토익,생물,화학,한의학,한문 전 과목을 망라한 훌륭한 글입니다 . 허나 수험생 여러분! 꼭 秀才 민재처럼 토익980,한자1급일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 합격자평균은 토익910~920한자1~2급입니다. 하루하루를 거의 완벽하게 수험생활을 해야만 합격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부디 자신의 리듬을 갖고 꾸준히 정진하세요. 합격성공의 그 날은, 공부하신 것이 꽉 차는 해에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이 소중한 합격 수기에 오준의 자작 漢詩로 댓글을 달아 민재의 합격을 축하, 격려합니다.
少 年 得 志 三 山 夢 젊은 나이에 뜻을 얻어 한의학도의 꿈을 이루었네,
送 君 寄 語 莫 忘 記 자네 보내며 당부 붙이니 잊지 마시게나.
磨 斧 作 針 李 太 白 옛날 도끼 갈아 바늘 만든 이 이태백이었고.
針 奇 藥 異 金 珉 載 훗날 침 용하고 약 신통한 자 김민재라!
*三山: 益山(원광),釜山(동의),雉岳山(상지)